고향 눈(雪) / 김광욱
눈이 내립니다.
어머니 사시던 고향 옛집
마당에
흰눈이 나비처럼 무도회를 합니다.
어머니 저 세상으로 떠나신 지
어언 삼십 년
그 어머니 나이가 된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어머니가 일하고 쉬시던
툇마루는 납작 주저앉고
창호지 방문은 바람에 떨어져나가
나무 판자떼기 부엌문과 함께
마당 한 쪽에 뒹굴고
마른 해바라기는 씨앗이 달린 채
설풋한 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해바라기를 끔찍히 사랑하여
집 안 전체가 해바라기로 덮였던 여름의 추억
찾아와도 반겨 줄 사람 없는 고향이라
허무함 달래려고
버스 타고 오는 데까지 오다 보니
어머니 집이었습니다.
내 종착지도 여기이고
변환점도 여기 어머니 체취 어린 곳
내 생명이 시작되고 성장한 흙입니다.
흙 속에 어머니의 삶과 노래가
풀잎처럼 살아 숨쉬기에
고향은 영원한 생명의 모태입니다.
흰눈을 한 줌 집어 삼켜 보고
처마의 긴 고드름을 꺾어 아이처럼
거총자세도 취해 보다가 눈밭에 펄썩 주저앉아
어머니이 하고 불러 봅니다.
총탄에 맞은 듯 가슴이 에어지며
사무친 그리움에 소리 죽여 줄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