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는 외국곡을 ’76년도에 가수 조영남이 한국어로 작사하여 불러 알려진 곡이다.
고교 시절에 부모의 고향이어서 그런지 가사가 3절까지 자연스럽게 외워졌다.
초딩 5학년 때 엄마가 떠난 이후 가세가 기울어 고3인 ’79년도 10월에 국비로 교육받는 육사를 지원하게 되었다.
필기시험에 합격한 후 신체검사와 체력검정을 거쳐 마지막으로 면접을 볼 때다.
본인 바로 앞에서 면접을 본 수험생이 장학퀴즈에서 월 장원을 했고, 웅변대회에서 입상한 대단한 경력자였다.
그는 면접관에게 자기 경력을 자신 있게 말했는데 면접관들이 그에게 웅변을 해보라고 하니 그는 우렁차고 유창하게 해냈던 것이다.
바로 다음에 본인의 차례가 되어 면접실에 들어가니 면접관들이 “자네는 뭘 잘하나?” 하고 묻기에
면접에 대해 아무런 준비가 없었던 터라 얼떨결에 “노래 좀 합니다!” 라고 하니
“그럼 한 곡 불러보게.” 하여 부른 노래가 「내 고향 충청도」 였다. 다행히도 가사를 다 외우고 있어서 제대로 불렀다.
그렇게 7~8개 정도 되는 면접실을 다니는 동안
앞선 수험생은 들어가는 방마다 ‘이 연사 여러분 앞에 힘차게 외칩니다~’ 하며 웅변을 했고,
본인은 계속해서 ‘일사후퇴 때 피난 내려가 살다 정든 곳, 두메나 산골, 태어난 곳은 아니었지만 나를 키워준 고향 충청도~ (중략) 내 고향은 충청도라오’ 라는 가사를 반복해서 읊조렸다.
그 덕분인지 다행히 면접을 통과하여 최종 합격하게 되었다. 내세울 특기가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 노래가 나를 살렸던 것이다.
노래 가사에 나오듯 내 부모님은 엄마가 서울에서 여중 5년제 졸업 후 일사후퇴 때 고향 진천으로 돌아왔는데
동네 술친구 였던 할아버지들끼리 각자의 막내아들과 막내딸을 혼인시키자고 의기투합하여 부부가 되었단다.
그곳에서 아들과 딸을 낳은 내 부모가 할아버지 자손들과 함께 모두 서울로 오는 바람에
본인만 서울 용산우체국 부근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서울 출생이고 서울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을 나왔으니 서울 사람이지만
부모의 고향인 충청도는 내 고향으로 느껴지면서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저 ‘방가워유’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러다보니 지난번 충북방 모임에 갔을 때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들을 수 있어 마냥 좋았다.
그래서 앞으로 정기모임에 참석하려고 방장님과 통화 후 참석 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작년 12월 모임은 서울 사람들도 다수 섞여 있었지만
이번에는 거의 오리지널 충북방 멤버들 위주로 모인다니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귓가에 맴돌아서인가 보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_()()()_
저도 충청도유
전 오리지널은 아니지만
사반세기 지나 살고 있어
제 2의 고향입니다 ㅎ
고맙습니다 ~^^♡
구수한 향기가 가득한
충청도 사투리
뵙게돼서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서울살다 시골 내려 가다보면
음성쯤부터 고향 사투리가 들립니다
얼마나 정겹던지요.
저에게 충청도는 제2에 고향이지요~
저는 서울 오리지날 토박이라
아직도 충북은 낮설지만
노후를 이쪽으로 정했으니
지호도 충북이 이제는
제 2의 고향이 된네요 ~ㅎ
감동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