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의 락입문기 (4) 레드제플린을 기억하며

[레오]

1986년도의 레드제플린은 이제 아무곳에도 없다

내가 그때 레드제플린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것은, 그들의 음악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도 지식도 아니었다.

그들의 앨범을 수집했던 것도 아니고, 연보를 꿰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나는 그들의 후광, 그들의 아우라를 추앙하고 있었다. '레드 제플린'은 밴드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의  이념, 하나의 사상이었다.

내가 그때 종로거리에서 치열하게 독재타도를 외치던 대학생이었더라면 그러지 않았으리라.

학교와 정부는 썩어있고 어른들은 나를, 우리를 정신적으로 고문했다.

우리의 선배가 될 언니, 오빠, 형, 누나들은

모두 종로에서 외치고 달리다가 군인들에게 잡혀갔고,

우린 그들을 만날 수가 없었다.

리턴투행거님의 대학일기를 읽다가 잠시 생각한다.

옆방에서 나와 비슷한 음악을 듣는 '그'를 만나는 것은

스무살의 통과의례라고.

하지만 그 스무살들이 모두

종로에서 독재정치에 항거하고 있던 때였다.

난 열다섯살이었고

주위에 아무것도 없었던 나는 레드제플린을 추앙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누군가와의 만남'인 것 같다. 우린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태어나고

이번 생에서 만나지 못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환생하고 윤회한다.

우주를 떠도는 먼지같은 생성과 소멸 속에서

왜 그때 그를 만났는 지 모르겠다.

그것도, 변두리 좁다란 골목길에서

옷가게 앞에서.

어머니가 미국으로 한달간 여행을 가신 여름방학.

그해 여름, 나는 우리 동네 옷가게에서 레드제플린 티셔츠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그 티셔츠를 만지작거리던 내게 '그'가 말을 붙였다.

"학생. 그 티셔츠는 파는 게 아니에요. 제 옷입니다. 그냥 걸어놓은 거에요."

선배의 옷가게에서 한달간 일해주기로 했다는 '그'가 말했다.

스물 일곱살의 그는 매우 점잖은 목소리에 눈빛이 선량했다.

독재정권에 선배들을 모두 잃은

그 동네 아이들에게 선배로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해주기 위해 나타난 전령사 같았다, 그 사람은.

아무 문화적 혜택이 없었던 누추한 변두리 동네의

10대 아이들 몇 명이 그 옷가게에 모였다. 마치 비밀 써클처럼.

'그'는 우리에게

레드제플린을,

이외수를,

그리고 여행하는 법을

알려주고 떠났다. 제주도로 간다고 했다. 자신처럼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사람에게 제주도는 따뜻한 기후를 제공해주는 최상의

여행지라고 했다.

나에게 레드제플린은

1969년에 결성되어, 1970년대를 화려하게 들끓게 했던 수퍼밴드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에서 감성과 낭만이 상실되었던 1980년대

우리의 윗세대는 시위현장에 제물로 바치고

우리의 두뇌를 무력화시키고 싶어했던 '어른'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던 우리, 나의 친구들에게

유일하게 의미가 있었던 유일하게 감정이 있었던

삶의 메시지를 전달해준 혁명, 그 자체였다.

그것이 나의 레드제플린에 대한 기억이다.

[Gettin Tighter]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teeler]

좋습니다~

[Return2Hangar]

아.. 멋진글이네요.-_-)=b

[하드코어매니아]

그당시에 레드제플린 티를.... 멋진 글 잘보았습니다.

[화랑]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시계태엽오렌지]

오~

[spdking]

상당히 멜랑꼬리한 글이군요...이제 다음편에서 왠지 한방이 터질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기대 만빵입니다^^

[마니부족한넘]

ㅎㅎㅎ 역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