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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3십년 전만 해도 우물은 마을 사람들의 생명의 원천수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나마 남아 있는 우물마저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한다. 화순읍내에 유명한 우물이 많이 있지만 특히 남산 주변에 있는 샘은 물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필자는 춘곡(春谷) 강동원(姜東元) 선생을 인터뷰, 남산 주변에 있는 10개의 샘의 위치를 확인한 뒤 선생의 진술을 토대로 주변 사람 등을 심층 취재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덕촌에도 유명한 샘이 있었고 미나리강 주변의 광덕천(광덕리 2구), 남산 아래에 모 벼락 부자집 안에 옹달샘과 남산 대밭아래에 있는 죽림천(竹林泉, 광덕리 1구), 광덕리와 향청리 경계에 샘 이름을 알 수 없는 유명한 동네 샘 등 10개다. 이들 10개의 샘의 뿌리는 남산이다. 물줄기가 남산에서 발원해 샘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남산 공원 입구에 십정원두(十井源頭)라고 새긴 비석이 있다. '10개의 샘의 머리는 남산'이라는 내용인데 대부분 '바가지 샘'으로 명천(名泉)이었다.
"10개의 샘은 물맛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하지만 우물이 하나 둘씩 사라지면서 인심마저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화순문화원장을 지낸 방대식 선생은 이들 샘을 살리지 못한 데 대해 매우 안타까워했다. 십정(十井) 중의 으뜸은 적천(蹟泉) 즉 '자치샘'이다. 진각국사의 자취가 깃들인 샘이라 하여 '자취샘'이라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와전돼 '자치샘'이라 불리고 있다. 남산 공원 입구에 있는 석간천으로 아무리 가물어도 샘물이 마를 때가 없고 무더운 삼복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물맛으로 유명하다. 자치샘에는 화순 출신 고승으로 송광사의 2대 주지를 지낸 진각국사(眞覺國師)의 출생의 비밀에 얽힌 전설이 서려 있다.
엄동설한인 어느 날, 샘물에 참외 두 개가 떠 있어 이를 먹었는데 수태하여 옥동자를 낳았다.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양육할 수 없어 읍에서 서쪽으로 3km쯤 떨어진 숲 속의 큰 정자나무 밑에 몰래 버렸다. 배씨 처녀가 다음날 아이를 버린 곳에 가보니 놀랍게도 학들이 날아와 날개를 펴고 보호하고 있어 이를 기이히 여겨 다시 데려다 기르니 훗날 송광사 2대 주지를 지낸 진각국사(眞覺國師, 1178~1234) 혜심(慧心)이 되었다고 전한다.
학서정에서 500여m 떨어진 논 가운데에 서 있는 석상(石像)은 학서도 석상, 진각국사 석상, '벽라리 민불' 등 다양하게 불리는데 후세 사람들이 진각국사의 모습을 새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3m 50cm 높이의 화강암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는 모습은 순박한 기질의 순후지향(淳厚之鄕)적인 화순의 이미지와 걸맞아 '화순의 미소'로 상징화 돼있다. 이 석상은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으나 조각 기법으로 보아 조선시대 후기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교와 민간신앙이 혼합된 유적일 가능성이 높은 데다 사료적, 유물적 가치가 큰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자치샘 물맛은 철분과 염분이 없어 화순의 명물인 두부와 '기정떡'이 모두 이 샘물 때문에 유명했다고 한다. 물로 빨래를 하면 옷이 깨끗해지고 술을 빚으면 술맛이 좋다고도 전한다.
자치샘 주변에서 40년째 동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유동순(69) 원장은 자치샘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증인이다. 유 원장은 자치샘을 보호하기 위해 5년 전에 화순읍에서 보호각을 세우고 물이 썩는 것을 막기 위해 화순소방파출소에 의뢰해, 매년 물을 퍼내고 있다고 한다. 자치샘은 25년 전에 콘크리트 구조물로 박스를 만들고 샘 앞에는 표지석을 세웠다. 옛날에는 샘 주변에 비스듬히 누운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와 물이 흘려 내려가는 큰 도랑, 빨래터가 있어 운치를 더했다고 한다.
10정의 두 번째 샘은 한천(寒泉)이다. 화순읍사무소 후문 자리에 있던 유명한 바가지 샘으로 옛날 연방죽으로 흘러드는 샘이다. 한천은 물줄기가 자치샘과 연결됐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설명이다. 읍사무소 후문 안쪽에 큰 당산나무가 있었고 나무 아래에 아담한 바가지 샘으로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다. 춘곡 강동원 선생은 "한 여름에는 발을 담글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하고 겨울에는 김이 모락모락 날 정도로 따뜻한 명천이었다" 며 "여름에는 샘물이 차다고 해서 한천(寒泉)이라고도 하고 겨울에는 땀이 날 정도로 따뜻하다고 해서 '땀샘'이라고도 불렀다"고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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