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눅 12:45)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눅 12:46)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
(눅 12: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눅 12: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전도를 하다보면 한 번쯤 들어보셨을 질문이 있습니다. "그럼 조선시대 사람들은?" 복음을 들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을 수 없었는데 그것 때문에 지옥에 갔다면 억울한 것 아닌가, 그 얘깁니다.
저는 말씀을 모를 때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몰랐는데 지금도 그 답을 모르겠습니다. 지역적으로, 시대적으로 복음을 전혀 듣지 못했기에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의 구원은 어떻게 되는지 말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추측은 두 가지인 것 같습니다. '몰라서 안 믿었지만 그래도 지옥에 갔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택한 백성은 어찌해서든 다 천국 간다'.
둘 다 아닙니다.
세상에 태어났던 사람들 중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몰랐던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은 누가 알려줘야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이미 넣어 주신 지식입니다.
(롬 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그런데 그것은 복음에 관한 지식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이 존재하고 나는 죄인이라는 지식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을 찾았던 이방인들이 신구약에 걸쳐 많이 나옵니다. 대표적으로는 고넬료가 있겠고, 아브라함이 아내를 팔아 자기 목숨 부지하고자 했던 대상 그랄 왕 아비멜렉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이 둘은 웬만한 성도들보다 퀄리티가 높은 사람들이었으며 결국 하나님의 긍휼을 맞보게 됩니다.
또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두 가지 번역본으로 볼 텐데, '모든 사람에게'의 위치를 주의 깊에 보시고 어떤 번역이 맞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딛 2:11, 개역개정)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딛 2:11, 킹제임스 흠정역)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
'모든 사람에게'는 부사구라서 사실 어디에 배치해도 문법상 틀린 것은 아니지만, 개역개정대로라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았어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으니 킹제임스 흠정역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킹제임스로 보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난 것은 은혜인데, 그 은혜란 구원을 주시는 은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인생의 어느 시점에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마주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랬다고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니고 그 은혜를 마주한 그 사람이 믿음으로 반응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을 100% 믿고 신뢰하며 이해하자면, 은혜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구원을 주시는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구절을 킹제임스 흠정역으로 읽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 은혜가 어떻게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지 그 방법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진 않지만, 아무튼 나타난답니다! 그것도 모든 사람에게!
물론 모든 상황, 모든 경우에 대해 (예를 들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찌 되는 거냐?)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이 주제에 대해 완벽하게 아는 사람은 없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나는 억울해요. 이건 불공평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를 얘기해 봅시다. 오늘 큐티 본문은 어떤 종에 관한 얘기입니다. 자기 주인이 어디 멀리 갔는데 그 주인이 더디 올 거라면서 동료 종들을 때리고 흥청망청 먹고 마시면 나중에 그 주인이 돌아왔을 때 그를 엄히 때릴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우릴 때린다는 말이 아니라 심판이 있을 거란 뜻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자기가 한 일을 정산하게 됩니다. 그런데 둘 다 매를 맞긴 맞지만 알고 그런 자와 모르고 그런 자가 매 맞는 정도가 다릅니다. 이 부분이 보통 잘 모르는 특이 사항이며 한편 굉장히 충격적입니다. 왜냐면 알고도 준비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면서도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뜻이 아닌데...", "이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은 아닌데..."라고 인지하면서도 그래도 끝까지 하는 경우 말입니다. 머리로는 잘 이해가 안 되는 상황입니다. 아마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는 대부분 두려움, 의심, 또는 인간적인 생각 같은 것이겠지요.
저는 은혜를 전달하는 일을 맡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가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곳에서도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했던 작은 일들, 예수님 때문에 물 한 잔 건 낸 것도 상을 받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으로 비유되는 나무, 풀, 지푸라기 등으로 쌓은 내 아성, 그러니까 사람들의 의견을 기준으로 하여 했던 모든 일들은 다 타버리게 됩니다(고전 3:12-12). 그런 건 다 헛짓이란 뜻이지요.
미래를 알고 싶다는 생각, 모두 다 해 보셨을 것입니다. 집값이 오를 것인가, 주식이 오를 것인가, 미래를 안다면 다 해결될 질문들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더 놀라운 미래에 대한 지식을 이미 부여받았습니다. 이것은 변하지도 않을 미래, 바로 그리스도의 심판대입니다. 그 미래를 알기에 후회 없는 인생, 후회 없는 한해, 후회 없는 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