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조준목사/끝까지 충성합시다! (계 2:8-11)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부 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 해 서머나교회와 그 사자
에게 보내 신 계시입니다. 서머나교회는 여기 기록된 대로 많은 핍박과 환난과 궁 핍을 겪
고 있던 교회입니다. 또한 서머나에는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 는, 실상은 사탄의 회에 속해
있던 자들이 있어서 교회를 훼방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환난이 잠시 있었던 것이 아니
라 십일간 계속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서머나는 주전 300년경에 알렉 산더 대왕이 아주 세밀하게 계획해 서 세운 도시였습니다.
서머나는 소 아시아의 중심지로 인도와 파사에서 로마에 이르는 무역로에 위치하고 있었습
니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여러 가지 모양의 주화들을 보면 이 도시는 매우 풍요했던 것
같습니다.
서머나교회의 역사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내용 이상의, 자세한 기록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가 말할 수 없이 심 한 환난 속에서도 충성스럽게 신앙 을 지켰다
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의 내용으로 보아 서 머나교회는 주님께 칭찬들을
만한 교회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마귀는 교회를 말살시킬 목적으로 무자비한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교 회의 사명을 다하게 될 때 세상의 집권자들에게는 곧 위협이 되기 때 문입니다.
어두움에 붙잡혀 있는 사 람들은 빛을 싫어합니다. 빛을 미워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빛의
사명 을 다해서 어두운 면을 밝히면 세상 은 교회를 핍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와 같이 주님의 교회를 말살시키 려는 계획이 무참하게
실패해 버린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배후에서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 입니다.
교회의 지나간 일들을 생각해 봅시다. 언제나 악한 세력이 일어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
니하고 주 님의 몸 된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갖은 핍박을 가했습니다. 그런데 이 상한 것은
핍박이 가해지면 가해질 수록 교회의 모습은 더욱 순수해지 고, 새로워지고, 내적으로 더욱
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서머나교회의 경우도 악한 세력 의 핍박이 심해질수록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에베소 교회의
책망을 거 울삼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애썼 습니다. 그래서 서머나교회에 대해 서는 주님
께서 한마디 책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마귀는 한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
은 주 님의 몸인 교회는 아무리 핍박을 가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시대는
핍박이 없는 평온한 상태 에서 끝이 났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교회를 약화시키 는 데 가장 효과가 크다고 생각되는 무기를 사용하게 된 것
입니다. 그것 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방임이라는 무기입니다. 안일이라는 함정입니다. 주님
의 교회에 아무 어려움이 없으 면 오히려 맥이 점점 빠지게 됩니 다. '편안해 좋다. 평안해
좋다'하며 졸고 잠들게 됩니다. 세상에 대해 눈이 뜨게 되고, 세상을 사랑하게 되고, 세상에
물들게 됩니다. 배는 물위에 떠 있어야 하는데 배 안에 물이 새어들어 오기 시작합니다. 처
음에는 잘 모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물이 배 안에 점점 더 많이 들어와 결국 그 배가
가라앉고 맙니 다. 물 속에 가라앉은 배는 배이기 는 하지만 배로서의 구실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서머나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8절 하반절에
"처음이요 나중이 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했습 니다. 다른 곳에는 '알파와 오메가'
라고 했습니다. 같은 의미입니다. 헬 라말 알파벳의 첫 글자가 '알파'요, 마지막 글자가 '오
메가'입니다. 즉 이 말은 '처음과 나중'이란 말입니 다.
그러면 '처음'은 무엇을 의미합 니까? 하나님께서 처음에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 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은 창조 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하실 일은
무엇입니까? 심판입니다. 그러 니까 주님께서
"처음이요 나중"이라 고 하신 말씀은 주님이 창조주요 심 판주시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사실 핍박을 받고 있 는 서머나교회에 큰 위로가 되는 말 씀이었습니다. 영원 전
부터 계시면 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전능하신 능력으로 세상을 심판하실 하나님이 우리
를 지키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 때 어떠한 핍박과 환난도 능히 참고 이길 수가 있을 것입니
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심판을 믿기 때문 입니다.
더구나 주님은
"죽었다가 살아 나신 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죽 으심은 완전히 죄로 죽을 우리를 구 속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사심은 구속의 완성을 확보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복음을 위 해 박해를 받아 순교한다고 해도 우 리를 다시 살리시는 주님을 믿기 때 문입니
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어떠한 핍박이라도 참고 이길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순
교까지 도 감수할 수 있는 용기와 담력 그 리고 위로를 주십니다.
주님이 죽으시고 그것으로 끝나 셨다면 어떻게 계속 힘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
은 오늘도 살아 계셔서 우리에게 능력을 공급 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 랍니다.
우리가 이제 이 살아 계신 주님 앞에 가서 다시 서게 될 것을 생각할 때 더욱 힘이 솟아남
을 느낍 니다. 우리 주님은 오늘도 살아 계 셔서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더 구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 여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내리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신 말씀 9절을 보세요.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안다"고 했 습니다. 환난은 신앙을 위해서 당하 는 어려움을 말합
니다. 서머나교회 는 신앙 때문에 큰 핍박을 받았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머나교회 는
그 어려운 핍박을 참고 견디어 냈습니다. 복음적인 신앙을 가진 사 람은 교회의 역사가 시
작되면서부터 오늘까지 줄곧 박해를 받아 왔습니 다. 이와 같은 박해를 이겨나가는 것이 그
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위대한 신앙을 가진 성도들 은 다 이 어려움을 극복했습
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서머나교회를 칭 찬하셨습니다.
더구나 주님께서는
"이것을 다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 니까? 우리가 핍박을 참고 견딘 것 을 아시
는 주님께서 마지막날 심판 때 다 갚아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 러므로 우리는 더욱 용감히
싸워 이 겨나가야만 합니다.
주님은 그들의 환난 당하는 것 만 아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궁핍도 아신다고 했습니다. 그
러면서
"실상 은 네가 부요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궁핍한 자리에 있으 면서 비굴해지
지 아니하고, 원망하 거나 시비하지 아니하고, 신앙을 지 킨 것을 주님이 아셨습니다. 세상
사람이 다 몰라줘도 주님이 알아주 신다면 그보다 만족한 일이 어디 있 겠습니까?
서머나교회에 핍박이 가해지면 서 믿는 사람들이 물건을 팔 수 없 게 되었습니다. 일자리를
잃어서 돈 벌 기회를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이 것은 서머나교회뿐만 아니라 초대교 회가 직
면했던 문제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신앙을 지킨 서머나교회 는
"실상은 부요한 자"였습니다. 육 신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영적으로는 부한 것이 정말 큰 축
복입니다.
오늘의 교회의 약점이 무엇입니 까? 서머나교회와는 정반대의 현상 입니다. 물질적으로 풍
요를 누리면 서 영적으로는 빈곤한 상태에 있는 교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님
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사는 것이 그 가산의 넉넉한 데 있 지 않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돈 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이 전 부는 아닙니다. 돈 이외에 중요
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참된 부는 결코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말 대로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될 때 내가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 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 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 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 님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그만큼 부 요한 자가 됩니다.
서머나교회는 외부로부터 핍박 을 받고 환난을 당하고 내부에서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저
희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하면서 실상은 거짓 선생들인 자들 때문에 많은 어려움 을 겪었습
니다. 서머나교회 교인들 가운데는 사단의 회에 속해 있는 사 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
나님 의 말씀에 기록된 것 이외의 것을 전했기 때문에 주님께로부터 책망을 들은 것입니다.
그들은 성도가 아니 라 사단의 회원이었습니다.
이 사단의 회는 예나 지금이나 계속해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역사 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
에도
"마귀 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 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10'이라는 숫자는 인간의 수(數)로는 만수(滿
數)인데 아무리 길고 혹독한 박해라 도 일정한 기한이 있고, 그 다음에 는 축복이 있을 것
을 뜻합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두 가지 격려의 말씀을 하십니다.
우선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 다.
이사야서에 보아도
"두려워 말 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3장에도
"내 가 과연 너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 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 라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
했습 니다.
두려해야 할 때 두려워하지 않 는 것은 만용이요, 두려워하지 않아 야 할 때 두려워하는 것
은 비겁입니 다. 우리에게는 하나님밖에 두려워 할 분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 지 않습니다.
왜 우리가 두려워합니까? 한마 디로 믿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풍 랑 만난 제자들이 주님
과 함께 있으 면서도 자기들의 기술이 한계에 이 르렀을 때 두려워했습니다. 그때 예 수님
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왜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이다지도 믿음이 없느냐?"
하셨습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하나 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확고한 신앙 입니다. 믿음이 있는
곳에 두려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생과 사를 하나 님께 온전히 맡기고 태연하게, 안심 하고
있을 수 있는 거기에 참 신앙 이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 품에 안 겨 있는 어린애가 밖이 어
둡다고 무 서워합니까? 아닙니다. 어머니를 의 탁하기 때문에 무서워하지 않습니 다.
열왕기하 6장 16절에
"두려워하 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에 봉착한다고 해 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 씀 믿으시고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 셨습니다.
'충(忠)'이란 한자를 보면 '가운 데[中] 마음[心]'이라는 뜻이 있습니 다. 옆에 있는 마음이
아니라 중심 으로 무엇을 하는 것을 충성이라고 합니다. 중심은 곧 진실을 의미합니 다. 성
경에 나오는 충성이란 말의 근본 뜻은 '믿음'과 '미쁘다'는 말입 니다. 영어로는 'faithful'이
란 말을 씁니다. 'faith'는 믿음이라는 말입니 다. 믿음직스럽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미쁘십니다. 그러므로 믿 을 만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믿음직스러워야 합니다.
"너희를 부 르신 이는 미쁘시니 그가 이루시리 라"하셨습니다. 미쁜 것과 충성은 하나님의
근본 성품 가운데 하나입 니다.
그러므로 충성이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의 성품 가운데 기본적 요소 가 되는 것입니다. 그
래서 갈라디아 서 5장 22절에 성령의 열매를 말하 면서 이 충성도 한 요소에 포함시킨 것입
니다.
사람은 재주와 능력이 각각 다 릅니다. 그렇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 은 누구든지 이 충성의
성품이 다 있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에게 충성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 다. 고린도
전서 4장 2절에
"맡은 자 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 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모 든 것을
맡은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청지기입니다. 관리인입니다. 맡은 사람은 신실해야 합니다. 주인
이 볼 때 믿음직스러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맡았느 냐, 혹은 얼마를 맡았느냐 하는 것 이 아니라 그 맡은 것을
얼마나 충 성스럽게 감당했느냐 하는 데 관심 이 있으십니다. 재주와 능력이 어떻 든지 받
은 재주 그대로, 배운 지식 그대로, 가지고 있는 재물 그대로, 얻은 능력 그대로 충성하는
것이 하 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충성된 사 람을 들어 쓰셨습니다. 가령 요셉은 충성된 사람이라고 성
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도 충성된 사람이었 습니다. 갈렙도 충성된 사람이었습 니다.
다니엘도 충성된 사람이었습 니다. 충성은 우리 믿는 사람의 성 품 가운데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이 간사하다는 말을 들으 면 부끄러운 일이요, 용서할 수 없 는 것입니다.
우리는 충성해야 합니 다.
충성에는 몇 가지 시금석이 있 습니다.
첫째는 양(量)의 시금석입니다.
주님께서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큰 것에도 충성한다"고 하셨습 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자기
아 버지를 도와서 양을 칠 때 충성된 목자로 일했습니다. 그래서 그후에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었을 때 그 백 성을 충성스럽게 다스렸습니다. 요 셉은 보디발 장군 집에서 종살이할 때
충성되게 일했습니다. 그래서 그 가 애굽의 총리 대신으로 일할 때에 도 충성된 대신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어떤 주인 이 종들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그리고 한 달란트
를 맡기고 멀리 떠났습니다. 얼마 후에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에게 맡긴 것을 계산 하자고
했습니다. 다섯 달란트 맡았 던 사람은 열심히 장사해서 다섯 달 란트를 남겨 내놓았습니다.
두 달란 트 받았던 사람도 최선을 다해 장사 해서 두 달란트를 남겨 주인에게 내 놨습니다.
주인이 그것을 받을 때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에게나 두 달 란트 남긴 사람에게나 똑같이
"착하 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 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라"고
칭찬했습니다. 만일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이 충성되게 일 해서 한 달란트를 남겨 왔다면
그 역시 똑같은 칭찬을 받았을 것입니 다.
그러므로 우리가 충성된 사람이 되려면 먼저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합 니다. 신앙생활도 작은
일에 충성해 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와 저 녁에 잘 때 기도하는 것은 사실 작 은 일입
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꼭 지키는 것이 충성입니다. 예배시간 에 안내를 맡는 일이나, 헌금
위원으 로 일하는 것, 계수하는 것, 성가대 원으로,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는 것, 구역을 책
임지는 것이 그렇게 큰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일 맡아서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사람이
큰 일을 맡아도 충성합니다.
둘째는 시간의 시금석입니다.
얼마나 오래 충성하느냐가 문제 입니다. 속담에 작심삼일이라는 말 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이나 맡 아서 충성되게 할 수 있습니다. 그 런데 그 열심이 얼마나 오래가느냐 하는 것
이 문제입니다. 전에 가룟 유다 같은 사람도 처음에 예수를 따 를 때 한 2년쯤은 열심으로
충성스 럽게 일을 했기 때문에 회계의 책임 을 맡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3 년째 되는
해에 예수를 배반했습니 다. 데마 같은 사람도 처음에는 열 심히 사도 바울을 도우며 따라
다녔 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는 그 사 도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 습니다. 충성에
는 이와 같이 시간의 시금석이 있습니다.
Scotland 의 Edinburgh 어느 교회 묘지에는 개의 무덤이 있고 그 무덤 앞에는 충견비가 서
있다고 합 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개를 길렀 는데 그 주인이 죽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그
죽은 사람의 장례를 지내 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키우던 개만은 절대로 돌아오
려 하 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 이 끌고 오려해도 이 개는 주인의 무덤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 틀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니까 하는 수 없이 사람들이 주인의 무덤을
지 키고 있는 개에게 먹을 것을 날라다 주었습니다. 이 개는 그때부터 죽을 때까지 14년 동
안 주인의 무덤을 지 켰다고 합니다. 이런 개는 우리 사 람보다 낫습니다.
충성은 지내보아야 압니다. 교 회를 봉사하는 것도 몇 해 동안은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그
런데 10 년, 20년 꾸준히 봉사하는 것이 중 요합니다. 시간의 요소가 있습니다. 전쟁에는 최
후의 5분이 제일 중요하 다는 말이 있습니다. 잘해 오다가 마지막에 가서 실패하면 안됩니
다. 여기에 참된 충성이 나타나는 것입 니다.
여러분, 맡은 일이 무엇이든지 끝까지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는 지금 1999년, 다시말해
1900년대 의 마지막 부분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제 26일 있으면 1900
년대가 지나가고 새 천 년, 2000년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끝 까지 충성함으로 1900년대를 잘
마 무리 지어야겠습니다 . 유종의 미를 맺읍시다.
그리고 셋째는 환경의 시금석입 니다.
녹음방초(綠陰芳草) 승화시에는 송죽의 절개를 알 수 없습니다. 그 러나 이렇게 찬 바람이
불고 흰눈이 펄펄 내리게 되면 송죽의 참 절개를 알게 됩니다. 옛글에도 나라가 어지 러워
질 때 양상(良相)을 안다고 했 습니다. 집안이 가난할 때 어진 아 내를 알 수가 있습니다.
충성이 언 제 나타납니까? 어지러운 일이 일어 나고 환난이 있고 핍박을 받을 때 나타납니
다. 이와 같이 어떤 환경을 당하든지 꾸준히 자기의 책임을 지 켜나가는 것이 충성입니다.
영국의 London의 Walker 미술 관에는 미술가 Contler라는 사람이 그린 '충성'이라는 유명
한 그림이 있 습니다. 그 그림은 Pompei라는 로 마의 도시가 베스비어스 화산이 폭 발되면
서 화산재에 도시 전부가 묻 혀버려 멸망당하는 광경을 상상해서 그린 것입니다. 화산의 재
와 불이 눈같이 Pompei성에 내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겠다고 성문으로 조수처 럼 밀려
나아갑니다. 그런데 그 가 운데 문을 지키는 책임을 맡은 군인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이
사람은 본래 로마 사람입니다. 그는 성문을 지키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 람들은 살기
위해서 공중에서 쏟아 지는 화산재를 피해 성문을 빠져나 가느라 아우성인데 이 군인만은
아 무리 눈처럼 재가 쏟아지고 불이 내 려도 자기의 창을 굳게 잡고 꼼짝하 지 않고 그대로
서서 죽음을 기다립 니다. 이것이 충성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서머나교회의 감 독이 폴리갑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오랫동안 교회를 섬기면
서 살았는데 그가 86세가 된 때에 로마 정부에서 온 제국에 기독교를 탄압하라는 명 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86세의 폴 리갑을 로마의 관리들이 끌어다 놓 고 이제라도 네가 그리스
도를 부인 하면 살려 주겠지만 그냥 그리스도 를 믿겠다면 죽일 수밖에 없다고 위 협했습니
다. 그때 노(老)폴리갑 감독 은 조용히
"86년이란 긴 세월을 내 가 우리 주님을 섬겼는데 주님께서 는 한번도 나에게 잘못한 일이
없습 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내 왕을 훼방할 수 있습니까?"라는 말을 남 기고 순교했다
고 합니다.
"네가 죽 도록 충성하라 작은 일에 충성하라 끝까지 충성하라 어떤 환경에서도 충성하라."
우리 민족성은 충성입니다. 삼 국시대에서 우리는 고구려의 을지문 덕 장군, 백제의 계백 장
군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조선시대에서 단종 시절의 성삼문을 위시한 사육신의 충성을 보
게 됩니다. 임진왜란을 통 해서는 이순신 장군의 충의, 한말에 와서 민 충정, 이 준, 안중근
같은 충성의 역사가 우리 나라의 역사를 단장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한국교 회의 역사를
보아도 수많은 교회지 도자들이 자기의 생명을 기쁘게 바 쳐 한국 교회를 빛냈습니다.
새 천년을 바라보면서 주님께서 우리 교회를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죽도록 충성하 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는 말씀을 기억하
며 어 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끝까지 충 성된 일꾼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 서 생명의 면
류관을 다 받으시기 바 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