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조 창작 강의1
제 2 강 시조 형식
1.장
처음에 장은 완결된 작품을 지칭하는 단위로 쓰였다.
세시풍요』(1843)에서는 초·중·종 삼장을 가리키는 단위로 쓰였다.
寶兒一隊太癡狂 截路聯衫小袖裝
時節短歌音調蕩 風吟月白唱三章
기생 한떼 미치광이와 같이 길을 막고 긴소매 나부끼며
시절단가 부르는 소리 질탕한데 찬바람 밝은 달밤에 3장을 부르더라
- 유만공의 『세시풍요』
고악보『삼죽금보』(1864)와『장금신보』(연대미상)의 시조는 5장으로 표기되어 있다.『서금보』(연대미상)는 ‘시조장단’ ‘삼장시립’,『양금보』(연대미상)는 ‘시조장단’, ‘삼장시조’ 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아양금보』(연대미상)는 ‘시쥬갈낙(時調加樂)’으로 구음(口音)이 삼장으로 표기되어있다.『방산한씨금보』(1916)는 ‘시절가’로 되어 있다. 현 시조 악보들도 초·중·종 3장으로 고정되어 표기되고 있다.『삼죽금보』(1864),『장금신보』이 때부터는 시조 악보가 3장으로 되어 있어 ‘장’이 더이상 시조 한 수를 지칭하고 있지 않다.
『교주 해동가요』와 『증보 가곡원류』․『시조유취』, 시조전집 『교주 가곡집』등 1920년대 이후의 시조집에서도 모두 3장의 의식 밑에 기사되어 있다. 육당의『백발번뇌』, 노산의 『노산시조집』, 가람의 『가람시조집』, 위당의 『담원시조집』, 이호우의 『이호우 시조집』, 김상옥의 『초적』등에서도 3장 형식을 그대로 쓰고 있다.
이와 같이 ‘장’은 처음에는 완성된 작품, 한 수의 시조로 지칭해오다가『세시풍요』이후부터는 음곡의 단위로 쓰이기 시작했고, 가곡의 영향을 받아 5장으로도 잠시 쓰이다가 이후 초․중․종의 시조 3장으로 굳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록으로 보면 작품 한 편이 1장, 3장, 5장, 3장으로 변천되었음을 알 수 있다.
1장 → 3장 → 5장 → 3장
초․중․종장을 한 연으로 하여 초․중․종장을 3행으로 쓸 경우, 각 장을 3연으로 하여 각 장 두 구를 두 행으로 쓰는 경우, 각 장을 3연으로 하여 초․중장 두 구는 두 행으로 종장 첫구는 한 행으로 나머지는 두 행으로 쓰는 경우 등 여러 경우들이 있다.
조운의『조운시조집』등에서는 3장의 개념을 가지면서도 구나 장을 한 줄로 쓰지 않고 이미지 중심으로 몇 줄로 나누어 쓰고 있는 경우도 있다. 현대에 와서는 3장을 염두에 두고 한 소절(음보)을 한 행으로 처리하기도 하고 한 소절(음보)을 행갈이까지 하는 경우도 있어 다양하게 연갈이, 행갈이를 하고 있다.
장과 구는 자유시의 연, 행과는 다른 개념이다. 연은 몇 개의 행이 모여 이루어진 문학적 단위이지만 2개의 구, 4개의 소절(음보)로 이루어진 장은 음악적·문학적 단위이다. 장 대신 행이란 용어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시조 한 수가 3줄로 기사되기 때문에 그렇게 쓴 것으로 보인다. 한 장을 이미지 중심으로 몇 행으로 나누어 쓰기도 하기 때문에 장 대신 행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적합하다고 볼 수 없다.
장은 음악적·문학적 단위로 시조에만 국한되어 사용되고 있다. 문학적 단위로 쓸 때는 자유시에서처럼 연갈이, 행갈이를 자유롭게 할 수 있으나 장을 연으로 생각하고, 구나 소절(음보)을 행으로 생각하는 그런 관념으로는 쓰이지는 않는다.
시조 = 3장, 초장+중장+종장
2. 구
구는 하나의 의미 개념을 가진 문장의 단락으로 주술과는 관계없이 두 개 이상의 단어가 통합되어 나타나는 통사론적인 단위이다.
소유사기태(小柳司氣太)의 신수한화대자전(新修漢和大字典)에는 구를 문장 중 의미가 끊어지는 단위라고 하였으며, 리태극은 하나의 의미 내용이 단락이 되는 문장의 도막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이희승의 국어사전에는 안팎 두 짝씩 맞춘 한 덩어리라고 하였다.
구에 대한 개념 규정은 안자산, 정병욱, 최남구 등의 6구설, 이병기의 8구설, 이광수, 이은상, 조윤제 등의 12구설 등이 있다.
이병기의 8구설은 초․중장은 2구로 종장은 4구로 나누었는데 이는 구의 개념이 불분명하고 일관성이 없다. 각 장 4도막으로 되어 있는 이상 종장이라고 해서 초․중장의 구와는 다를 수 없다.
시조는 각 장의 둘째 마디(음보)와 셋째 마디(음보) 사이에서 기식 단위가 나타난다. 여기에서 하나의 의미가 일단락되는데 이 일단락되는 마디가 구이다. 그래서 각 장은 자연스럽게 두 구로 나누어진다.
동창이 밝았느냐/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희놈은/상기아니 잃었느냐
재너머 사래긴 밭을/언제 갈려 허느니
각 장 2구로 구분한다면 초장에서는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니다’가 되고, 중장에서는 ‘소치는 아희놈은’, ‘상기 아니 잃었느냐’가 되고, 종장에서는 ‘재너머 사래긴 밭을’, ‘언제갈려 허느니’가 된다.
각 장 4구로 구분한다면 초장에서는 ‘동창이’, ‘밝았느나’, ‘노고지리’, ‘우지진다’가 되고, 중장에서는 ‘소치는’, ‘아희놈은’, ‘상기아니’, ‘잃었느냐’가 된다. 그리고 종장에서는 ‘재너머’, ‘사래긴밭은’, ‘언제 갈려’, ‘허느니’가 된다.
구는 문장 중 하나의 의미 단락이면서 율독시 구 사이에 기식 단위가 나타난다. 각 장 4구로 보면 각 구는 한 단어는 될 수 있어도 하나의 의미 단락을 이루지 않는다. 각장 4구들은 한 단어로 인식되지 의미 내용의 도막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이광수, 이은상, 조윤제의 각 장 4 구의 12구설은 구의 개념에 맞지 않는다.
구와 구 사이에서 기식 단위와 함께 일단의 의미가 끊어져 한 장에 두 구가 형성되어 전체 시조 한 수는 6구가 되는 것이다.
시조는 대체로 강약으로 율독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때 각 장의 첫째 구와 둘째 구 사이에 큰 쉼인 기식 단위가 나타난다.
동창이 밝았느냐 / 노고지리 우지진다
초장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는 하나의 문장이다. 문을 이루면서 하나의 의미 개념을 가진 것은 ‘동창이 밝았느냐’와 ‘노고지리 우지진다’이다. 율독시 운율 단위는 자연적으로 의미 단위와 함께 읽혀진다. 그래서 의미 단위 사이에서 기식 단위가 나타나는 것이다. 한 덩어리의 생각을 나타내면서 말의 의미가 끊어지는데 이 끊어지는 의미 단위가 바로 구이다.
시조 한 수는 초장 2구, 중장 2구, 종장 2구 총 6구로 되어있다.
초장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중장
소치는 아희놈은
상기 아니 잃었느냐
종장
재너머 사래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구는 ‘문장 중 하나의 의미 내용이 단락되는 도막’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시조 = 각 장 2구, 6구
3. 소절
흔히 시조를 ‘3·4·3(4)·4/ 3·4·3(4)·4/ 3·5·4·3’의 45자 내외의 음수율을 가진 정형시라고 말한다. 그러나 고시조나 현대시조를 통틀어 보아도 이러한 자수에 들어맞는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글은 첨가어이다. 첨가어는 실질 형태소인 어근에 형식 형태소인 접사를 붙여 문법적 기능을 나타낸다. 그 때마다 어근에 접사가 더해짐에 따라 음절수가 늘어난다. 이런 음절수를 율격적 자질로 삼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음수율보다는 어절을 율격적 자질로 삼는 음보율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해 우리 시가에서는 오래전부터 음보 율격을 적용, 사용하고 있다. 어절이 늘었다 줄었다하는 첨가어인 우리 글에 이러한 음보율 사용이 적절하고 타당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근년에(1980년대부터) 우리 학계에서 시조 박자 단위를 영어 정형시 율격 용어 ‘음보 (foot)’로 말하는 추세가 생겼는데, 여기에 큰 문제가 있다. 영시 율격 용어‘foot'(음보).는 그 개념이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있는 바와 같이, 우선 그 단위를 이루는 음절수 가 (2/3/4… 몇이건 간에) 음보마다 항상 일정하고 그 안에서 ’강세(stree)배열 순서도(이 를 테면, ‘약강’이면 내내 약강-약강… 또는 ‘강약약’이면 내내 강약약-강약약…처럼) 똑같고, 대체로 줄(시행)마다 똑같은 음보수가 들어있다.
음보(foot)는 한 시행 내에 강약, 약강 등의 강세로 반복되는 율격의 기본 단위이다. 대개 한 개의 강세가 있는 음절과 한두 개의 강세가 없는 음절들로 구성된다. 한 시행 내에서 약강으로 2번 반복되면 약강 2음보가 되고 한 시행 내에서 약강으로 4번 반복되면 약강 4음보가 된다.
영시에서는 spondee(장모음-장모음)강강, pyrrhic(단모음-단모음) 약약 등이 있기는 하나 iambus(단모음-장모음)약강, trochee(장모음-단모음)강약, anapaest(단모음-단모음-장모음)약약강, dactyl(장모음-단모음-단모음)강약악 등 네 음보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영시와 시조의 예이다.
위와 같이 영시의 강약율에서는 율격 단위의 형성에 있어서 한 단어에서 음절이 분할되어 음보를 형성하고 있으나 한국어에서는 한 단어에서 음절이 분할되어 강약의 음보를 형성하지 않는다. 강약이 한국시의 율격 형성에 필수 자질로 관여하지는 못하고 있는 이유이다.
우리말의 액센트는 하강율을 이루고, 이것은 음보를 형성하며, 이 음보 넷을 단위로 하 는 강약4보격(trochaic tetrametre)이 곧 시조의 음보율이 된다 …중략… 시조는 그 (기식 의 분배)라는 면에서 고찰할 때 2음보 단위로 중간 휴지를 갖고 4음보율을 구조 원리로 하는 3행시이다.
시조는 2음보 단위로 중간 휴지를 갖고 ‘강약/강약//강약/강약’의 4음보율을 구조 원리로 하는 강약 4보격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영시에서는 하나의 강음절을 중심으로 그것에 어울리는 약음절이 한 음보를 이루지만, 우리나라 시의 경우 대체로 휴지를 주기로 해 3, 4음절이 한 음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어에서는 3, 4음절 같은 다음절의 단어(음보)에서 음절이 분할되어 규칙적으로 강약의 음보를 형성하지 않는다. 영시에서의 음보와는 다른 것이다.
음절수가 일정한 영시 ‘음보’ 박자는 음절수가 일정하지 않은 시조 마디 박자와는 성격 이 다르다. 한국의 시조 마디 박자 같은 것은 영어에서 일상 보통 말씨(산문)에 나타나고 있다. 이를 영어 ’말씨 박자‘(speech rhythm)라고 하는데 강세 음절 하나를 핵으로 삼고 연속되는 박자를 말한다. 이런 보통 영어 말씨 박자가 영어 자유시에 나타나면 영시 율격 용어로 ’용수철 박자‘(탄력성 박자/sprung rhythm)라 한다. 시조 ’소절‘은 대체로 ’첫음절 에 강세가 오는 다음절 용수철 박자‘(multi-syllabic head-stressed sprung rhythm)라 할 수 있다.
언급한 바와 같이 음절 분할이 불가능하고 강약이 실제적으로 율격 형성에 필수 자질이 되지 못하고 있다. 시조의 마디 박자는 강세 음절 하나를 핵으로 삼고 연속되는 말씨 박자, 용수철 박자와 같다. 영시의 음보 박자와는 다르다.
음보는 음절수가 일정한 영시의 음보 박자요 시조는 음절수가 일정하지 않은 시조의 마디 박자, 탄력적 박자인 용수철 박자이다. 때문에 시조에 있어서 불분명한 ‘음보’ 대신 용수철 박자에 적합한 용어인 ‘소절’로21)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시조 율격 용어로 ‘음보’라는 말을 이대로 줄곧 사용한다면 두고두고 국제적 오 해를 부를 것이 뻔하므로, 이미 10년 전부터 나온 주장이지만22) 앞으로 우리는 (영어 정 형시 율격용어 ‘foot'번역어인) ’음보‘를 미련 없이 버리고, 그 대신 ’마디‘ 또는 ’소절‘이라 는 술어를 사용하면 괜찮을 듯하다는 주장에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서양 음악에서의 바(bar)는 악보에서 큰 마디와 상대되는 악곡의 가장 작은 단위로 오선 위에 수직선으로 표기되며 소절(小節)이라고도 한다. 마디는 박자표에 의해 정해지는데 4분의 4박자는 4분 음표가 1마디 안에 4개에 상당하는 박자가 있다는 뜻이다. 음악에서 이 마디는 큰 마디와 상대되는 작은 마디로 소절(bar)이라고도 한다.
시조의 한 장도 4마디로 이루어져 있다. 이 4마디는 서양 음악에서 작은 악절에 해당된다. 시조에 있어서의 한 마디는 4음절 기준, 1음절에 1박으로 4분의 4박자로 율독된다. 시조에 있어서의 구는 2마디로 서양 음악에서의 2마디인 동기와 같고, 장은 4마디로 4마디인 작은 악절과 같다.
청산리 /벽계수야//수이 감을/자랑마라
♩♩ /♩♩♩♩//♩♩♩♩/♩♩♩♩
시조로 말한다면 시조 한 수는 세 개의 작은 악절에 해당되고 한 장은 작은 악절에 해당되며 구는 동기, 한 마디(바)는 소절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장=작은 악절, 구=동기, 소절=마디(바)
시조에 있어서의 한 장은 일반적으로 하나의 문장이거나 하나의 절로 이루어져 있다. 구는 문장이나 절보다는 작은 의미 개념을 가진 하나의 단락으로 한 장이 2구로 되어 있다. 소절은 구보다도 더 작은 마디로 한 장이 4 마디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 2 구 4소절이다.
장(1)>구(2)>소절(4)
시조의 장은 초․중․종 3장으로 되어 있고 각 장은 2구로 총 6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1구에 2 소절로 각 장 4소절, 총 12소절로 되어 있다.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시조=각 장 4 소절, 12소절
소절은 음절이 모여서 만들어진 음의 마디로 최소 운율의 측정 단위이며 휴지에 의해 구분되는 율격적, 문법적 최소 단위이다.
시조에 있어서의 소절은 3, 4음절이 보통이다. 율독시 3, 4음절을 단위로 해서 휴지가 발생하는데 이 때의 율독 단위가 소절이다. 소절은 음절수가 반드시 같아야할 필요는 없다. 동일한 시간의 양, 등시성이 휴지를 한 주기로 해서 발생되기 때문에 소절은 길이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시간의 개념으로 보아야한다.
‘동창이’, ‘밝았느냐’를 읽을 때 ‘동창이’는 3음절로 ‘밝았느냐’는 4음절로 그 길이가 다르다. 그러나 율독 시엔 같은 시간으로 읽혀진다. ‘동창이’는 ‘♩♩’ 1,1,2박으로 읽혀지고 ‘밝았느냐’는 ‘‘♩♩♩♩’1,1,1,1박으로 읽혀져 같은 시간의 양인 4박으로 율독된다. 이 때 휴지가 생겨 같은 시간 양의 음절들이 반복된다. 이 반복되는 음절들이 소절이다.
시조는 초․중․종 3장으로 되어 있으며 각 장 2구, 각 구 2소절, 총 12소절로 된 우리 고유의 정형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조 = 3장, 6구, 12소절
제 3 강 시조 분류
1. 기존 논의
창하는 사람들은 시조를 특별히 시조창이라하지 않고 문학하는 사람들도 시조를 특별히 시조시라고 하지 않는다. ‘시조’는 문학․음악상의 명칭으로 통칭되어 쓰여져 왔기 때문이다. 시조가 창에서 독립하여 문학양식으로 정착되면서 시조를 시조시로 쓰자는 이도 있으나 시조 용어 자체가 문학이였고 음악이었던 관계로 시조의 용어 통칭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음악상으로의 시조는 평시조계열, 지름시조계열, 사설시조계열 등으로 분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금도 문학상으로서의 시조 분류로 평시조․엇시조․사설시조를 드는 이들이 있다. 이는 창법상의 명칭이지 문학상의 명칭이 아니다. 작금의 문학상의 분류 명칭으로는 일반적으로 단형시조․중형시조․장형시조 혹은 단시조․중시조․장시조를 든다. 평시조는 단형시조(단시조)가 아니다. 엇시조, 사설시조도 중형시조(중시조), 장형시조(장시조)가 아니다. 평시조․엇시조․사설시조는 단형․중형․장형시조(단․중․장시조)와 같은 자수의 문제가 아닌 창법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학상으로서의 기존 시조 분류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평시조․엇시조․사설시조, 또 하나는 단형시조․중형시조․장형시조(단시조․중시조․장시조)가 그것이다.
이병기는 시조는 그 창과 작과의 형태가 달라 창의 형태로는 평시조, 중허리시조, 지름시조, 사설시조 네가지를, 작의 형태로는 평시조, 엇시조, 사설시조 세가지를 들었다. 창작 용어를 음악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조윤제는 시조를 단형․장형으로 나누어 단형을 ‘시조’로, 장형을 ‘사설시조’로 불렀다. 엇시조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음악 용어와 문학 용어를 혼용하여 쓰고 있다.
리태극은 문학 형태상 시조를 단시조․중시조․장시조로 3대별하여 문학적인 명칭으로 기술하고 있다. 김대행도 또한 단형시조․중형시조․장형시조로 3대별하여 문학적인 명칭으로 기술하고 있다. 최동원은 문학 형태상 시조를 정형과 파형으로 양대별하고 정형시조를 단시조, 파형시조를 장시조로 명칭을 정립했다. 문학적인 명칭으로 양대별하고 있다. 고정옥은 평시조와 장시조로 양대별, 음악 용어와 문학 용어를 혼용하여 쓰고 있다.
2대별 평시조,중허리시조,지름시조,사설시조 (단시조·중시조·장시조)
3대별 평시조·엇시조·사설시조 (단형시조·중형시조·장형시조)
4대별 시조·사설시조 (단시조·장시조)
2. 평·엇·사설시조의 검토
시조는 문학이 음악을, 음악이 문학을 떠나서는 논의될 수가 없다. 시조시 자체가 가곡이나 시조창이였으며 가곡이나 시조창 자체가 시조시였기 때문이다. 시조에 있어서 문학과 음악은 통칭되어 불리워져 왔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시조가 음악과 문학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로 정착되었으나 문학상의 명칭을 기존의 음악상의 명칭으로 그대로 쓰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1926년 동아일보에 발표된 가람 이병기의「시조란 무엇인고」라는 논문 이래로 국문학계에서도 음악적 명칭인 평시조·엇시조·사설시조를 문학에서도 그대로 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문학적인 형태면에서는 단형시조를 평시조, 중형을 엇시조, 장형을 사설시조라고 하지 만, 음악적인 형태상으로 보면 이와 전혀 다르다.
‘평’과 ‘엇’과 ‘사설’의 이름은 자수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음악 형태와 관 련이 있는 것이다. 가령 중형인 엇시조도 음악적인 형태를 바꾸면 사설(엮음)이 되고, 장형인 ‘사설’도 그 형태를 바꾸면 ‘엇’이 될 수 있다.
평시조·엇시조·사설시조는 자수 배열에 의한 문학적인 갈래 형태인 단시조․중시조․장시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시조시를 노래하고 있는 가곡에서도 기본장단에는 정형시조인 단시조가, 변형장단에서는 변격시조인 장시조가 구별되어 가창되지 않는다.
중형시조가 엇시조로 불리고 장형시조가 사설시조로 불린다는 구분은 없다. 중형시조 도 음악형태를 바꾸어 사설시조로 부르고, 장형시조도 음악형태를 바꾸어 엇시조로도 부르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보아 음악 형태상의 3대별을 문학 형태상의 유별에 그대로 적용하고, 이 문학형태의 차이를 자수의 많고 적음으로써 설명하려는 종래 방법이 음악과의 관련성에 서 온 것이라고 하는 것은 이론적인 타당성이 없는 것이다.
음악적인 용어와 문학적인 용어를 구별, 평·엇·사설시조의 용어 사용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평시조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중려로 전반적으로 평평하게 부르는 곡이며. 엇시조는 A+B의 형태로 처음은 높은 소리 나중엔 흥청거리는 창법으로 부르는 곡이다. 사설시조는 장단 또는 리듬을 촘촘하게 엮어 부르는 곡이다. 창법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단시조· 중시조· 장시조와 같은 문학적 용어로는 쓸 수가 없다.
평시조·엇시조·사설시조(음악적 용어) ≠단시조· 중시조· 장시조(문학적용어)
3. 단형·중형·장형시조의 검토
시조 분류가 3대별이냐 2대별이냐 하는 것은 중시조의 존재 여부에 달려있다.
중시조와 장시조의 구별에는 자수, 구, 소절 등으로 활용되어 왔다.
서원섭은 많은 시조에서 공통된 요소인 음수율을 만들고 그것을 근거로 해서 시조의 개념을 규정했다. 그 결과 「교본역대시조전서」에 수록된 3335수 중 평시조는 2759수가, 엇시조는 326수가, 사설시조는 250수가 된다고 하였다. 평시조는 각장 내외 2구로 각장 자수는 20자 이내로 된 시조로, 엇시조는 삼장 중 초․종은 대체로 평시조의 자수를, 중장은 그 자수가 40자까지 길어진 시조로, 사설시조는 초․종은 대체로 엇시조의 중장의 자수와 일치하고 중장은 그 자수가 무한정 길어진 시조로 규정했다.16) 평시조가 82.7%, 엇시조가 9.8%, 사설시조가 7.5%이다.
리태극은 단시조를 3장 6구 45자 내외로, 중시조는 단시조의 기준율에서 어느 한 구가 10자 이상 벗어난 시조로, 장시조는 두 구 이상이 각각 10자 이상 벗어난 시조라고 규정하였다.
김제현은 단시조를 3장 6구 12소절로, 중시조를 3장 가운데 한 장의 1구가 2,3소절 정도 길어진 시형으로, 사설시조는 어느 한 장이 3구 이상 길어지거나 두 장이 3구 이상, 혹은 각 장이 모두 길어진 산문적 시형으로 규정했다.
중시조·장시조의 기준들에 각각 다 다르다.
최동원은 이러한 엇시조와 사설시조의 구분이 형태상이나 내용상으로 모호하다는 점을 들어 정형인 단시조와 파형인 장시조로 2대별하고 있다.
종래 시조의 정형과 파형의 구분은 장의 신장에 두기도 하고, 구를 기준으로 하여 구 분하기도 했다. 파형시조로서의 엇시조(중형시조)와 사설시조(장형시조)의 구분은, 장의 신장성에 기준을 둘 경우와 구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 따라서, 한 작품이 엇시조도 되고 사설시조도 된다.…중략…
고시조의 작품들을 비교해 보면 많은 수가 개작·와전·오기 등에서 변개되어 혼란한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시조가 가창을 통해서 전승해왔고, 또 가곡이나 시조창의 음악형 태가 가사의 장단을 제약하지 않는다는 데에 이유가 있다고 하겠다. 이런 작품들은 비 교하고 검토해서 올바른 복원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바이다. 엇시조로 규정되는 작품 가운데에는 이와 같은 복원을 꾀한다면 정형으로 되어야할 작품이 많다고 본다.
이런 점으로 보아 정형에서 몇 자가 더 늘어난다고 해서 엇시조라 내세울 수도 없으 며, 엇시조라는 중형의 설정 자체가 별다른 의의를 가지지 못한다고 하겠다.
종래의 문학 형태상의 3류별을 전제로 하고 엇시조와 사설시조를 내용면에서 검토해 보더라도 이질적인 차이를 찾아볼 수 없다. 사설시조가 지니고 있는 내용상의 특징은 엇시조에서도 두루 볼 수 있는 것이다.
중시조와 장시조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들어 2대별하고 있다.
중시조과 장시조의 경계가 확실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중시조는 정격에서 조금 벗어난 형태이며, 장시조는 중시조보다 더 벗어난 형태이다. 중시조와 장시조는 같은 3장을 유지하면서 구, 소절의 길이가 정해져 있지 않은 변격의 형태들이다. 이와 같이 중시조와 장시조의 구분들의 경계가 모호하고 비슷하면서도 제각각이다. 이렇게 되면 자수, 구, 소절 등으로 중·장시조를 구분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평시조(단시조)
초·중·종 평시조자수 3장6구45자내외
3장6구12소절 정형(단시조)
엇시조(중시조)
초․종은 평시조의 자수, 중장은 그 자수가 40자까지 길어진 시조
한 구가 10자 이상 벗어난 시조
한 장의 1구가 2,3음보 정도 길어진 시형으로,
파형(장시조)
서설시조(장시조)
초․종은 엇시조의 중장의 자수와 일치, 중장은 자수가 무한정 길어진 시조 두 구 이상이 각각 10자 이상 벗어난 시조
어느 한 장이 3구 이상 길어지거나 두 장이 3구 이상, 혹은 각 장이 모두 길어진 산문적 시형
단시조·장시조로 나눈 2대별과 단시조·중시조·장시조로 나눈 3대별, 이 두 가지이다.
중·장시조를 포용한다면 시조의 정의는 ‘3장 형식의 우리 고유의 시가 문학 양식’ 쯤으로 정의되어야할 것이다. 지금까지 장은 3장이되 6구 12소절 그 이상으로 늘어난 중·장시조도 시조로 취급해왔기 때문이다.
시조는 3장 6구 12소절로 그 자체가 정격이다. 여기에 사실상 변격, 파격을 붙일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오랫동안 정격에서 벗어난 중시조(엇시조), 장시조(사설시조)도 시조의 장르로 인정해왔다. 필자는 일단은 이를 변격으로 명명하고 시조를 정격과 변격으로 나누고자 한다.
시조 자체에 이미 정형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시조는 그 형이 3장으로 정해진 하나의 정형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중․장시조에 단형․중형․장형시조라는 ‘형’의 삽입은 정해진 3장의 틀에 다시 3장의 틀을 삽입하는 것과 같다. 의미를 강조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뜻이 없다. 시조 자체에 이미 3장이라는 형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단시조․중시조․장시조의 용어의 사용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시조의 문학적 분류
단시조 3장 6구 12 소절
변격
중시조 3장이되 6구 이상의 벗어난 형태 장시조
중시조와 장시조는 길이의 장단에 따라 구분하고 있는 것 외에는 별 다른 내용의 특징을 찾아볼 수 없다. 현대에 와서는 정격에서 벗어난 시조를 장시조(사설시조)라는 이름으로 창작되고 있지 중시조라는 이름으로 창작되고 있지 않다.
필자는 시조의 문학적 분류를 정격인 단시조와 변격인 장시조로 분류하고자한다.
4. 연시조, 단장·양장·혼합시조의 검토
최초의 시조악보는 정조 때의 학자 서유구의『임원경제지』중 유예지의 거문고보 뒤 끝에 실린 「양금보」이다. 이 양금보의 시조는 현재의 평시조에 해당되며 이와 같은 시대인 이규경의 구라철사금보의 시조악보도 유예지의 시조 악보와 동일하다.
음악에 있어서 시조가 평시조로 그 명칭이 바뀐 것은 지름시조인 소이시조가 생겨난『삼죽금보』(고종원년.1864)이후부터이다. 이후 평시조와 지름시조가 시조의 하위 분류가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사실 ‘시조’와 ‘평시조’는 같은 용어이다. 또한 시조가 음악상, 문학상 통칭되어 불렀으므로 문학상으로의 단시조도 시조와 동일한 용어라고 볼 수 있다.
시조=평시조=단시조
시조가 통칭 명칭으로 쓰일 때의 등식이다. 192,30년 대 이후 음악·문학이었던 시조가 음악과 문학인 서로 다른 장르로 정착되어감에 따라 같은 용어였던 평시조와 단시조는 장르 자체가 달라졌고 서로 다른 뜻을 갖게 되었다. 평시조, 단시조 등도 지름시조가 생긴 이후 시조의 하위 분류가 되었다.
시조≠평시조≠단시조
1932년 11회에 걸쳐 연재된「시조를 혁신하자」에서 가람은 부르는 시조보다 읽는 시조, 짓는 시조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하면서 연작 시조의 도입을 주장했다. 이 연시조는 과거의 각수가 독립된 상태였던 것21)을 제목의 기능을 살려 현대 시작법을 도입, 여러 수가 서로 의존하면서 전개 통일 되도록 짓자는 주장이 제기되어 오늘날의 새로운 시조의 연시조가 등장하게 되었다.
현대시조의 연시조는 ‘A’ 라는 같은 주제 아래 지어진 ‘A1+A2+A3…’ 와 같은 형태들이다.
이러한 연시조를 문학상의 시조의 분류로 넣어야할 것인지의 여부는 논의가 필요하다. 한 주제 아래 지어진 연이은 단시조의 형태들이기 때문이다.
단장 시조는 4소절을 가진 한 장의 시조이다. 양장 시조는 각 4소절을 가진 두 장의 시조이다. 혼합 시조는 단장, 양장, 삼장 시조들이 결합한 4,5,6,7장 등 다장으로 늘어난 시조이다.
이를 실험삼아 창작하는 이들이 있다. 이는 시조의 3장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시조라고는 볼 수 없다. 적어도 변격 시조라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장시조와 같이 3장 형식은 갖추어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단장시조, 양장시조, 혼합시조는 시조가 아니다.
제 4 강 운율론
1. 압운
운을 흔히 압운이라 하고 율은 율격이라고 한다. 압운과 율격을 가리켜 운율이라고 한다.
압운은 한시부나 서양시에서 일정한 곳에 같은 소리를 반복하여 운율적 효과를 내는 방식이다. 규칙적인 소리의 반복을 뜻한다.
압운은 동일한 음소 또는 음소군의 규칙적인 순환이다. 음소는 자음이나 모음을, 음소군은 음절이나 단어, 구절, 문장 등을 말한다. 압운의 단위는 최소 음소에서 최대 문장에까지 이르게 된다. 음절 전체가 완전히 동일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음절 내에서 부분적으로 음성이 동일해야함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때의 압운 단위는 자음 혹은 모음이다. 음절, 단어, 구절, 문장 내에서는 일부 음절이나 일부 단어, 구절, 문장 등이 동일하거나 비슷하면 된다. 이 때의 압운 단위는 일부의 음절, 단어, 구절, 문장 등이다.
이러한 음소나 음소군 단위의 규칙적인 소리 반복으로 압운이 형성된다. 그러나 압운은 소리 반복만이 아닌 압운이 되는 단위들 사이에 의미 관계가 필연적으로 있어야한다.
근래안부문여하 近來安否問如何
월도사창접한다 月到紗窓妾恨多
약사몽혼행유적 若使夢魂行有跡
문전석로반성사 門前石路半成沙
-李媛의 ‘夢’
임이여 요즈음 어떻게 지내시는지
달이 창에 비킬 때마다 한스럽기만 하네
만일 꿈길이 자취가 있다면
임의 문 앞 돌길이 모래가 되었을 것을
何,多,沙는 모음 ‘아’가 행 끝에서 반복된다. 동일한 음소의 압운의 의미는 유사하지 않지만 새로운 차원의 의미 관계를 정립시켜준다. 1행의 ‘어떻게 지내는가’의 물음 ‘何’에, ‘한이 많다’라는 ‘多’로 답을 하고는 4행에서 깨알같이 많은 ‘모래’라는 ‘沙’로 1행의 ‘何’의 의미를 구체화시켜주고 있다. 압운이 소리의 반복만이 아닌 새로운 차원으로의 의미 관계를 형성시켜주고 있다. 그래서 압운은 압운 단위 사이의 의미론적 관계를 중요시한다.
압운은 위치에 따라 두운, 요운, 각운 등으로 분류된다. 두운은 행이나 연의 앞의 위치에서, 요운은 중간 위치에서, 각운은 끝의 위치에서 음소나 음소군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위 한시는 칠언절구로 기․승․결 밑에 운이 있다. 운자는 ‘何, 多, 沙’로 ‘아’의 모운을 공통으로 하여 반복되고 있다. 행의 끝에 운이 반복되므로 이를 각운이라 한다. 영시에 있어서의 운도 다양하여 두운, 요운, 각운 외에 강약을 이용한 모운, 자운 그리고 남성운, 여성운4) 등이 있다.
영시에서의 모운은 강세 음절에 같은 모음이 반복적으로 배치된 것을 말한다. 이 때 강세 음절의 앞뒤에는 다른 자음이 와야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Maiden crowned with glossy blackness,
Lithe as panther forest-roaming,
Long-armed naead, when she dances,
On the stream of ether floating.
-George Eliot, The Spanish Gypsy
윤기있는 검정머리의 처녀는
표범처럼 날씬하게 숲 속을 헤매고
춤을 출 때는 팔이 긴 요정이 되어
공기의 흐름따라 떠돌아 다니네.
1행과 3행의 blckness와 dnces 그리고 2행과 4행은 raming과 flating은 서로 모운을 이루고 있다. 모운이 시행의 끝부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시행의 중간이나 심지어는 서두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각운에서 마지막 자음은 꼭 같으나 그 앞에 나오는 강세가 붙은 모음이 비슷하거나 다를 때는 이를 자운이라고 한다. 모음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불완전한 압운에 해당된다.
There's a golden willow
Underneath a hill
By a babbling shallow
Brook and water-fall;
황금빛 버드나무 한 그루
언덕 아래에 서 있고
그 옆에 쫄쫄 흐르는
얕은 시내와 폭포
hill과 fall은 마지막 자음은 같으나 모음이 다르므로 자운을 이루고 있다.
운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는 동일한 음소 또는 음소군이 규칙적으로 순환해야한다. 영시나 한시에서 논의되고 있는 엄격한 압운법을 시조에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무운시로도 볼 수 있으나 시조에서의 운의 반복은 영시나 한시와 같은 운은 존재하지 않아도 정서 환기나 음향감 등을 충족시켜 줄 수 있어 나름대로의 운의 특성을 갖고 있다.
우리말에도 운 즉 소리의 반복은 존재한다. 그 소리의 반복이 시의 의미에 부분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꽃은 작은 싸리꽃 산들한 가을이었다
봄 여름 가리지 않고 언제나 가을이었다
말라서 바스러져도 향기 남은 가을이었다
-김상옥의「 싸리꽃」전문
위 경우는 각 장의 4음보 ‘가을이었다’가 반복되고 있다. 동일한 단어들이 동일한 소리로 각장에서 규칙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장의 끝에 같은 음절들이 반복되므로 각운에 해당된다. ‘가을이었다’ 라는 단어가 반복됨으로써 그 앞의 동사나 형용사의 도움으로 반복 이상의 강조 의미를 띄고 있다.
강을 건너기 위해 산은 서있고
산을 적시기 위해 강은 철석거린다
강물에 산이 빠질까 배 한 척 띄우는 강
-신웅순의 「 내사랑은 40」전문
위 시조는 초․중․종장의 첫음보에 ‘아’라는 음운이 반복되고 있다. 두운이다. 강과 산은 대비의 의미도 있지만 종장에서의 ‘강’, ‘산’의 운의 반복은 초장․중장을 합일시키는 의미도 아울러 갖고 있다. 정서 환기나 음향감뿐만 아니라 의미까지 환기시켜 주고 있다.
그 나무 아래 머물면 잊었던 나를 찾을 것 같고
그 나무 아래 앉으면 사무친 사람 만날 것 같고
그 나무 아래 오래 앉으면 어떤 길이 열릴 것 같다
-김정희의 「보리수 아래」전문
위 시조는 초장․ 중장․ 종장할 것 없이 같은 음절이 반복되고 있다. 연을 기준으로 두운․ 요운․ 각운이 다 들어있다. 두운은 ‘그 나무’, 요운은 ‘아래’, 각운은 ‘것 같’의 소리가 반복되고 있다. 같은 의미가 장마다 대비되어 의미가 전개되고 있다. 같은 소리가 장마다 반복되어 있어 의미를 점점 상승시켜주고 있다.
갈 섶에 말없이 앉아 빈자일등 켜 놓고
머물다 떠난 인연 바람결에 보낸 후
빈 집에 허리를 꺾고 열반경을 외운다.
-김정희의 「민들레 초상」전문
얼핏보면 압운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치 않다. 자세히 살펴보면 초장의 2행과 종장의 1행의 음운 반복이 의미와 깊은 연관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규칙적인 반복이라기보다는 단 한 번의 반복으로 반복의 효과를 상승시켜 주고 있다.
홀씨를 바람에 다 날려보내고 빈 집에 앉아 열반경을 외우고 있는 민들레의 모습이 선하다. 그것은 ‘외운다’라는 세음절로 꽃 대궁을 세워놓고 있어 꼿꼿하게 앉은 사람의 모습으로 시각과 함께 의미도 배가시켜주고 있다. ‘빈’의 음절 반복은 고착 이미지에 의해 더욱 새로운 의미로 태어나고 있다.
창작에 압운을 잘 조절하기만 해도 의미는 되살아날 수 있다. 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운율이다. 운율 중에서도 압운은 시의 필수 요건이며 시의 생명이기도 하다. 리듬감이 없다면 이미 시가 아니다. 언어를 버려야할 시조에 있어서 시조 창작에 있어서의 운은 의미를 환기시켜주는데 없어서는 안될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우리의 시는 영시에서처럼 강약을 이용한 운과는 다르며 한시에서처럼 사성을 이용한 운과도 다르다. 시조에서 강약율과 고저율이 다소 인정된다고 해도 우리말은 부착어의 특성으로 단순한 소리 반복에 더 많은 비중이 주어진다. 그래서 의미와의 관계 속에서 압운 체계를 밝혀낸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러나 운은 수사적 유희만이 아닌 음조의 질적, 미적 현상, 음악성에까지 미칠 수 있어 자유시나 시조에도 운의 비중은 서양시나 한시에 비해 결코 낮다고만 볼 수 없다. 우리 시나 시조에도 의미까지 환기시켜 줄 수 있는 많은 음상과 음감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운들을 창조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면 특히 전통적 시조에서의 의미를 더욱 멋스럽고 맛깔스럽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은유 1
1) 은유의 설명
① 선택 제약
촘스키는『통사이론의 양상』에서 선택 제약의 관점에서 은유를 설명하고 있다. 선택 제약이란 한 어휘 항목이 다른 어휘 항목과 결합하는 방식을 규정짓는 규칙을 말한다. 한 문장에서 명사는 통사자질을 가지고 있는 반면 동사나 형용사는 명사와의 관계에 따른 선택 자질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한 주어는 아무 낱말이나 술어로 삼을 수 없고 오직 여러 낱말 가운데서 특정한 낱말만을 술어로 선택하게 되어있다.1)
불교 용어 ‘관세음(觀世音)’은 통사 규칙을 위반했다. ‘세상의 소리를 듣는다’라고 할 것을 ‘세상의 소리를 본다’ 라고 했다. 소리는 듣는 것이 아니라 보아야한다는 것이다. 통사 규칙의 위반으로 오히려 의미가 깊어졌다. 규칙을 위반함으로써 은유가 생성되는 것이다.
점과 점이 방울방울
선긋기 공부하네
내려온 하늘 높이
깊이도 재보고
지구에
점을 찍어서
오목판을 만들고
-백민의 「비」전문
‘점과 점이 방울방울 선긋기 공부하네’, ‘내려온 하늘 높이 깊이도 재보고’, ‘지구에 점을 찍어서 오목판을 만들고’ 등은 통사 규칙을 위반한 문장들이다.
어떻게 해서 비가 선을 긋고 하늘 높이를 재볼 수 있겠는가. 비는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내려오는 것이다. 내려오는 모습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또한 비는 점을 찍는 게 아니라 땅이 패이는 것이다. 물론 오목판도 만들 수 없다. 사실 빗방울을 점으로, 빗줄기를 선으로, 땅이 패인 것을 오목판으로 은유했다. 일상의 통사 규칙에서 어긋나 있다. 통사규칙을 위반함으로써 그 의미의 폭과 깊이가 달라진다. 촘스키는 이런 선택 제약을 어김으로써 은유가 성립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② 질의 격률
폴 그라이스는 화용론의 입장에서 은유를 설명하고 있다. 정상적인 의사 소통이 가능하기 위하여 지켜야할 원칙이 있는데 이를 협조의 원리라고 했다. 그라이스는 이 협조의 원리를 양의 격률, 질의 격률, 관계의 격률, 방법의 격률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양의 격률은 대화의 목적에 꼭 필요한 만큼의 정보만을 제공하고 필요 이상으로 많은 정보를 주거나 필요 이하로 적은 정보를 주어서도 안된다고 규정짓고 있다. 질의 격률은 대화에서 그릇된다고 믿고 있는 것을 말해서는 안되며 진실된 것만을 말해야한다고 규정짓고 있다. 적절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말을 해서는 안된다. 관계의 격률은 대화와 직접 관련된 것만을 말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적합성과 연관성을 강조하고 있다. 방법의 격률에서는 명료성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긴다. 될 수 있는 대로 모호하거나 애매한 말을 피하고 간결성과 논리적 질서를 추구하려고 한다.
그라이스는 협조의 원리 중 질의 격률을 어긴 것으로 은유를 설명하고 있다. 질의 격률은 진실된 것만을 말해야한다. 은유는 대상을 빗대어 말해야하기 때문에 진실과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멀다. 이를 어긴 것으로 은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 세상 모든 꽃이
다 그만한 아픔이란다
소망만큼 꽃잎이 다치고
절망만큼 마디가 굵은
노숙자 마른 기침소리
온 들녘이 꽃이구나
-고정국의 「구절초 피었구나」 3연
이 세상 모든 꽃이 어찌 아픔이고 소망만큼 꽃잎이 다치고 절망만큼 마디가 굵어지는가. 온 들녘 구절초가 노숙자의 마른 기침소리라니 작자는 분명하게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고 진실을 말하지도 않았다. 진실된 것을 말해야하는 질의 격률을 어긴 것이다. 질의 격률은 축어와 비유를 구분, 진실된 것만을 말해야하는데 꽃을 아픔이나 노숙자의 마른 기침으로 은유했다. 그래서 소망만큼 꽃잎이 다치고 절망만큼 마디가 굵어진다고 비유한 것이다.
댄 스퍼드와 데이르드 윌슨 같은 적합성 이론가들은 의사소통에 최적의 적합성은 축어적 발화로 얻어진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정보를 처리하여 얻는 소득이 그것을 처리하는데 드는 노력에 미치지 못할 때는 축어적 발화가 비유적 발화보다 그 적합성 면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적합성 이론에서 중요한 두 개념은 맥락 효과와 처리 노력인데 맥락 효과는 적합성을 지녀야할 필요 조건이며 다른 조건이 같다면 이 맥락 효과가 크면 클수록 적합성도 그만큼 커진다고 한다. 적합성 정도를 판단하는데 필요한 요인은 맥락 효과를 위하여 들이는 처리 노력이다. 처리 노력이 크면 클수록 적합성의 정도는 그만큼 떨어진다.4)
누가 몇 살이냐고 물었을 때 30살 3개월 3일이라고 말한다면 노력에 비해 그 효과는 떨어진다. 처리 노력이 많은 반면 맥락 효과는 그만큼 떨어진다. 참이냐 거짓이냐보다 경제적이냐 비경제적이냐가 더 중요하다. 적합성의 원칙은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것이다.
너라고 어쩌겠느냐 이 가을 햇살 앞에선
푸른 하늘을 향해 짐승처럼 울던 산아
붉은 죄 고해성사를 온몸으로 쓸 수 밖에
-정광영의 「단풍」전문
단풍을 ‘붉은 죄 고해성사’라고 했다. 단풍은 축어적 의미로는 늦가을에 붉은 엽록소가 분해하여 붉거나 누른 빛으로 변하는 나뭇잎을 말한다. 이런 사전적 의미는 적합성의 원칙에서 보면 최대의 효과를 얻었다고 볼 수 없다. 적어도 붉은 나뭇잎으로 표현하였다한들 이는 의미 손실로 밖에 볼 수 없다. 문학에 있어서의 필요한 정보는 축어적 의미뿐만이 아니라 전달하고자는 문장의 맥락 효과를 높일 수 있어야한다. 필요한 정보가 ‘붉은 죄 고해성사’인 은유적 표현이 훨씬 의미의 파장이 크고 깊다. 이렇게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어야한다. 맥락효과 면에서 보면 은유는 그만큼 경제성이 있다.
2) 은유의 이론
① 치환 이론
치환 은유는 한 사물의 다른 사물로의 전이를 말한다. 축어적 의미를 비유적 표현으로 바꾸어놓는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사물을 경험했을 때 이것을 기술할 새로운 언어가 없어서 이와 유사한,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다른 사물의 이름을 여기에 부여하는 것이 은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은유는 ‘전이’이고 전이는 유추, 곧 유사성이다. 휠라이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은유 개념을 치환 은유란 용어로 기술했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은유 개념으로서 치환 은유는 보다 가치있고 중요하지만 아직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원관념)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거나 보다 구체적인 것(곧 보조관념)으로 옮겨지는 의미론적 이동을 특징으로 한다.
은유란 사물에다 다른 사물에 속하는 명칭을 부여해주는 것이다. 이같이 명칭의 전이는 유에서 종으로, 종에서 유로, 종에서 종으로, 또는 유추에 의거해서 이루어진다.
치환 은유는 모호하고 불확실한 사물을 잘 알려져 있거나 구체적인 사물로 유추에 의해 바꾸어 놓은 ‘A는 B이다’의 식의 비유법이다. 치환 은유는 위 네가지 중 네번째에 해당되고 앞의 세 가지는 주로 환유나 제유에 해당된다.
‘백합은 화원의 귀부인’이라고 했을 때 백합은 ‘순수하고 깨끗하고 고상하다’라는 귀부인의 이미지에서 유추했다. 백합을 귀부인으로 치환, 백합의 식물 이름인 축어적 의미를 귀부인인 비유적 의미로 전이시켰다.
눈송이가
쏟아진다
하하하 웃음꽃도
다발다발
묶어놓은
수다쟁이 가시내야
까르르
입을 모으면
이야기가 쏟아진다
- 신명자의 「안개꽃」전문
은유의 원개념 안개꽃이 생략되어 있다. 안개꽃을 눈송이라든지 웃음꽃이라든지 이야기 등으로 치환했다. 원개념은 안개꽃 하나지만 매개념은 여러 개로 되어 있다. ‘안개꽃=눈송이, 웃음꽃, 이야기’이다. 원개념 안개꽃을 여러 형태의 매개념으로 형상화하여 밝은 이미지로 치환시켰다.
전이
원개념 ← 매개념
② 상호작용 이론
리처드는 은유의 구성요소를 원개념과 매개념9)으로 나누었다. 주의(主意, tenor)와 매체(媒體, vehicle)가 그것이다. 매체라는 운반 수단으로 주의라는 의미를 실어나른다는 뜻이다. ‘A는 B이다’라고 할 때 A는 주의, 원개념(원관념)에 해당되고 B는 매체나 매개념(보조관념)에 해당된다. A는 축어적 관념 B는 비유적 관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리처드는 한 사물의 의미인 주의를 다른 의미인 매체로 은유를 설명하였다. 주의와 매체가 서로 공존, 두 관념의 상호 작용에 의해 은유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두 관념이 함께 지니고 있는 특징을 은유의 기반이라고 불렀다.
쳐라, 가혹한 매여 무지개가 보일 때까지
나는 꼿꼿이 서서 너를 증언하리라
무수한 고통을 건너 피어나는 접시꽃 하나
-이우걸의 「팽이」 전문
원개념과 매개념을 ‘A=B’라 할 때 위 시조는 ‘팽이=접시꽃’이다. 팽이의 의미와 접시꽃의 의미인 두 개념의 상호작용에 의해 의미가 생성되고 있다. 팽이는 무수한 채찍이 가해져야 돈다. 이를 접시꽃에 비유했다. 접시꽃도 무수한 비바람을 견뎌야만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무지개가 보일 때까지 고통을 줌으로써 접시꽃이 피어난다는 이야기이다. 인내와 고통이 없이는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 두 개념의 상호작용의 기반은 고통과 인내이다. 이러한 기반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도는 팽이’이고 ‘피어나는 접시꽃’이다. 팽이의 특징과 접시꽃의 특징이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 내고 있다.11)
상호작용
원개념 ↔ 매개념
③ 개념 이론
레이코프와 터너는 은유에서는 의미 변화가 일방적으로 밖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기점(원개념)에서 시작하여 목표(매개념)로 옮아갈 뿐 기점과 목표사이에 어떤 관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생은 나그네길’이라고 한다면 상호작용 이론은 인생과 나그네길의 의미가 쌍방으로 작용하여 제 3의 의미가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나그네길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고 나그네 길의 관점에서 인생을 볼 수도 있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요, 나그네는 인생길이라는 은유가 쌍방으로 성립될 수 있다.
그러나 개념 이론에서는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는 은유는 성립하여도 나그네길은 인생이라는 은유는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여행을 떠날 때 ‘그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말하거나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그가 이 세상을 떠나갔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몇겹을 내비쳐야 푸른 속살 내비칠까
온 땅을 과녘 삼아 쏘아 붓는 그 화살을
그 누가 항변할 것인가 도리없는 이 질책
-장정애의 「소나기」 첫 수
소나기를 화살이라고 했다. 개념이론에 따르면 의미의 기점은 소나기이다. 소나기가 목표인 화살로 의미가 이동하는 것이다. 소나기는 갑자기 세차게 쏟아졌다가 그치는 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출발하여 과녘삼아 쏟아 붓는 화살로 의미가 이동하는 것이다. 소나기는 화살이지만 화살은 소나기가 아니라는 얘기이다. 상호 작용 이론에는 쏟아내는 것이 쌍방으로 작용하여 새로운 의미가 형성되지만 개념 이론에서는 소나기는 화살처럼 쏟아지지만 화살은 소나기처럼 쏟아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동
원개념 → 매개념
④ 맥락 이론
치환이론, 상호 작용이론, 개념이론은 은유의 의미를 해석하고 실마리를 보편적 원리에서 찾으려고 하지만 맥락이론은 이러한 원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은유의 의미를 구체적인 상황에서 찾고자 한다. 은유의 의미가 상황과 맥락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맥락 이론은 역동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특성을 갖는다.
버그먼은 ‘은유가 일어나는 맥락과 그 은유를 사용하는 장본인이 누구인지 모르고서는 그 은유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말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스탬보브스키도 ‘은유적 표현은 무엇보다도 먼저 오직 그 표현이 사용되는 어떤 맥락 안에서만 은유로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은유는 맥락이 의미를 결정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은유가 맥락을 결정짓기도 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전제가 되어야 은유의 뜻을 알 수가 있다는 말이다.
예쁜 아이를 보고 ‘야, 이 여우야’ 했을 때와 숙녀보고 ‘야, 이 여우야’ 했을 때 그 의미는 서로 다르다. 전자는 영리하고 똑똑하다는 칭찬이지만 후자는 약삭빠르고 교활하다는 질책이다.
연인에게 장미꽃을 주었다면 장미꽃은 사랑의 의미이고 선생님께 드렸다면 이 장미꽃은 존경의 표시일 것이다. 같은 장미꽃라할지라도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리 읽혀질 수 있는 것이다.
맑아서 슬퍼지는 물빛꽃 저 눈망울
별빛이 몇 십 광년 미치게 달려와서
망울진 그 눈빛 속에 퐁당 빠져 있는 게야
-최경희의 「산꽃」 전문
위 시조를 하나는 소녀에게 하나는 여인에게 들려주었다고 한다면 소녀가 해석한 산꽃과 여인이 해석한 그 의미가 다를 것이다. 은유는 ‘물빛꽃 = 별빛 = 산꽃’의 등식이다. 소녀는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고 여인은 그리움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위 시조를 쓰게된 상황과 은유가 일어나는 맥락에 의해 은유가 좌우된다고 본다면 은유의 뜻을 명확히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접하는 상황이나 표현이 사용되는 맥락에서 의미를 해석할 수밖에 없다.
‘물빛꽃’은 ‘맑아서 슬퍼지는’ 맥락에서 찾아야할 것이고, ‘별빛’은 ‘몇 십 광년 미치게 달려온’ 맥락에서, 또한 ‘눈빛 속에 빠진’ 맥락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눈빛’은 ‘망울진’ 맥락에서 그 의미를 유추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은유는 한 맥락에서만 찾아야하는 것이 아니라 맥락 전체에서도 처해있는 상황에서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여러 맥락에서 찾을 수 있어 한 맥락에서만 가능하다는 은유의 전제는 무색해질 수 밖에 없다.
상징처럼 은유도 전체 문맥을 필요로 할 때도 있을 것이다. 텍스트 자체뿐 만이 아니라 텍스트를 읽는 분위기까지도 감안해야 상황에 맞는 은유를 찾아낼 수 있다. 이처럼 맥락의 범위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는 거의 무한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운율론 2
신 웅 순
2. 율격
압운은 규칙적인 소리의 반복이나 율격은 규칙적인 반복의 양식이다. 율격은 어떤 방식으로 반복되느냐의 문제이다. 이 때 반복의 단위는 소리 외에도 음절군, 음절량, 이미지, 의미, 정서 등이 있다. 압운은 소리 반복의 단위가 기저가 되지만 율격은 단위 구성 요소가 그 기저가 된다.
강약을 구성 요소로 하면 강약율이 되고 고저를 구성 요소로 하면 고저율이 된다. 외에 장단율, 음수율, 음보율, 내재율, 의미율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1)
운율= 운(압운, 소리 반복) + 율(율격, 반복 양식)
1) 강약율
강약율은 액센트에 의해 강음절과 약음절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율격을 말한다.
한시의 평측법과 같이 규칙적이지는 아니지만 우리말 시가에는 일종의 음성율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말 액센트는 하강율이 보통이며 이것이 한 음보를 형성, 넷을 단위로 강약 4보격을 이루고 있다. 이것이 시조의 음보율이다.
3음절은 보통 ‘강․약․중강․(약)’으로 4음절은 ‘강․약․중강․약’으로 읽혀진다. 시조의 한 음보는 4음절이 기본이며 3음절은 끝음절의 장음 실현으로 3음절이 4음절의 양을 갖게 된다. ‘강․약․중강․(약)’의 2음절 단위로 강약이 반복되는 강약 4보격이 되는 것이다.
5음절 이상인 종장의 둘째 음보는 어떻게 처리해야할 것인가. 시조를 각 장 4박자로만 읽혀져야 한다면 기계적이고 단조로와 종장의 첫째, 둘째 음보의 파격의 멋을 한껏 살릴 수 없게 된다.
종장 둘째 음보는 대략 5-8음절이다. 6음절이라 할 때 ‘강․약․약’, ‘강․약․약’으로 율독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강․약․약’, ‘중강․약․약’으로 읽을 것인가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기계적이며 어색하지 않도록 사안에 따라 신축성 있게 율독되어야 할 것이다. 종장의 둘째 음보는 과음보로 다른 음보의 등가에 맞추어 발화의 양을 같은 값으로 조절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빠른 속도의 읽기가 필요하다.
시조의 강약율은 존재한다. 강약율이 각 장의 음보에서 규칙적으로 실현된다면 이를 창조적으로 살릴 필요가 있다. 물론 사안에 따른 신축성 있는 율독은 인정해야할 것이다.
2) 고저율
김석연님은 시조의 운율을 형성하고 있는 기조와 고저율의 관계를 분석하고 ‘시조 낭송의 패턴’을 제시하였다.6) 황희영님은 ‘한국시의 율각의 성립 종류’라 하여 현대시 3편(진달래꽃, 모란이 피기까지는, 님의 침묵)을 율독하여 분석했다.
위 분석들은 시조나 근대시의 율독에서 고저율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강세는 대체로 고저를 수반하게 된다. 강약율이 ‘강․약․중강․약’ 읽혀질 경우 고저율도 통상 ‘고․저․중고․저’로 읽혀지게 된다.
2음보의 시는 일반적으로 ‘강약’, ‘고저’로 읽혀진다. ‘새야새야 파랑새야//녹두밭에 앉지마라’의 경우 행의 첫째 음보인 ‘새야새야’, ‘녹두밭에’에서 상대적으로 강하게, 높게 읽혀지고 둘째 음보인 ‘파랑새야’, ‘앉지 마라’는 상대적으로 약하게, 낮게 읽혀진다.
4음보인 시조의 경우에는 2음보를 겹친 것과 같거나 비슷해 ‘강․약․중강․약’의 강세로 읽혀져 고저율 역시 ‘고․저․중고․저’와 같이 하강율로 읽혀진다. 4음보가 이런 원칙대로 읽혀지고 있는가는 다분히 의문시될 수 있다. 같은 사람, 같은 내용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혀지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시조에도 고저율은 있다. 그러나 원칙에 입각하여 읽혀지는 것은 아니다. ‘고․저․중고․저’로 대체로 읽혀지나 사안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읽혀질 수 있다.
나무들이
은빛 고운 드레스를 입는다
밤을 맞이하는
가슴은 달아오르고
외딴집
작은 불빛이
금단추를 풀고 있다
-지성찬의 「설야 」전문
위 텍스트를 강․약․중강․약으로도 읽을 수 있지만 내용으로 보면 우아하고 은근한 감을 주는 약강의 Iambus로 읽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시조 의 율독과는 정반대가 된다. 사안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율독하여 나름대로의 시조의 맛을 낼 수 있는 것이다.
3) 장단율
강세는 고조(高調)를 수반한다. 그 강세가 물리적으로 어느 특정한 음절을 고(高), 강(强), 장(長)으로 발음함으로써 강조를 가져오기도 한다.8)
우리 시가의 각 음보 내의 율성은 강약․고저․장단 등 어느 하나만의 특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강약율의 주장을 충분한 타당성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고저나 장단의 요소가 전연 배제되어야 한다고만 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9)
우리말에 있어서 음운적 자질이 가장 잘 판별된다는 근거에서 비교적 명확하고 단순한 이 장단의 음운 자질이 현대시에의 율격형성에 관여할 가능성이 크다고 기대되기도 한다.
현대시에서 강(强), 고(高), 장(長)이 실현된다면 외형율인 시조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실제적으로 시조에서도 첫째, 셋째 결음보에는 강·고와 함께 장음이 실현된다.
세상을-겁탈하는 느닷없는 폭설마냥
꽃-은∨창궐한다, 몹-쓸∨바이러스여
혓속에-독니를 감춘 채 나부끼고 있구나
익명의-탐욕에 냅-다∨꺾일지라도
백-지∨한견에 박힌 검붉은- 관지 자국,
씨방 속-감미는 남아 시간의 뼈를 갉는다
-박기섭의「‘꽃 」전문
‘-’은 장음 실현이고 ‘∨’은 정음 실현이다. 각 초장의 첫째 음보와 각 중장의 셋째 음보가 결음절이다. 3음절일 경우 끝음절에서 2음절일 경우는 첫째 음절에서 장음화 현상이 일어난다. 일정한 음보에 장음이 규칙적이고도 반복적으로 실현된다면 시조에도 장단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어에서는 중세 국어의 성조 체계가 무너지고, 현재에는 ‘장단’ 자질만 남아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그 자체로써 율격 형성의 기본 자질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율격 기저는 음운론적 장단에 있으며 그 장단이 교체의 규칙성을 유지해야 한다. 시조에 있어서는 결음절(초·중장의 첫째, 셋째 음보)과 과음절(종장의 둘째 음보)의 배치가 장단의 필수 자질로는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장단은 강약, 고저 등과 함께 율격을 형성하는데 일조가 될 수 있어 시조의 맛을 한결 맛깔스럽게 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4) 음수율
음수율은 율격 형성의 필수 자질이 음절수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율격이다. 강약․고저․장단의 운율적 자질과는 달리 일정한 음절군이 율격의 단위가 되어 형성된다. 이러한 율격은 우리의 고전시가나 현대시의 율격 연구에 지배적인 방법이 되어 왔다. 우리말은 첨가어이기 때문에 체언이나 용언 등에 조사나 어미가 붙어 하나의 어절을 이루고 있다. 한국어 어휘는 2, 3음절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조사나 어미가 붙거나하면 3, 4음절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음절수가 율격의 단위가 되어 3․3조, 3․4조, 4․4조 등의 율격이 이루어진다.
시조의 기준 음수율을 흔히 초장 3․4․4(3)․4, 중장 3․4․4(3)․4,종장 3․5․4․3이라고 한다. 고시조 중에서 이 기준 음수율을 지키고 있는 시조는 7%밖에 되지 않는다. 실제로는 300여 종의 음수율이 검출되고 있다.12) 이렇게 우리시가의 음절수가 고정적이 아니고 가변적이고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음수율에 의한 율격 연구는 그 타당성을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다.
고전 시가나 한국시의 율격을 음수율 측면에서 다루는 학자들이 있기는 하나 음절의 가변성으로 인해 원칙을 고구해내기엔 쉽지가 않다.
수 겹겹 명주헝겊 떨림으로 펴 보이신
마지막 목숨의 불빛, 운학 무늬 서돈 금반지
내 손을 꼬옥 감싸며 눈감으신 어머니
-박영식의 「유품 」전문
각 장 4 음보이다. 음절수는 초장의 3․4․4․4, 중장의 3․5․4․5, 종장의 3․5․4․3이다 이러한 음절수는 음보에 의한 계산법이다. 시조에 있어서 음보를 기준으로 음절수를 계산한다면 음수율은 의미를 잃게 된다. 한 음보 안에 어떤 것은 2음절, 또 어떤 것은 7, 8음절인 경우도 있어 음절수가 각양각색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시조에 있어서 각 장에 음절수 원칙을 세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 시가의 음수율은 대체로 3․4조, 4․4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시조의 형식 규율을 ‘음수율’로 규정하게 되면 총 12음보 가운데 종장의 첫음보를 3음 절로 고정하는 딱 한 군데에서만 맞고 나머지 11군데는 맞지 않게 되므로 이제 음수율의 망령에서 벗어나야한다는 교훈을 얻게된다.
위 인용문은 시조의 음수율 적용이 무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시조에서 음수율은 종장 첫음보에만 적용되고 나머지는 다 다르다는 것이다. 고시조에 300여종의 음수율이 검출되고 있다는 것은 시조에 음수율 적용이 무리가 있음을 단적으로 증명해주는 하나의 근거가 될 수 있다.
5) 음보율
음보는 시를 읽을 때 끊어 읽기의 한 단위이다. 보통 3음절이나 4음절이 하나의 단위가 되어 음보율을 이룬다. 영어에서의 음보율은 보통 강세를 받는 한 음절과 강세를 받지 않는 한 개나 두 개의 음절로 한 묶음이 되어 율격을 이룬다.
영시에서는 한 단어에서 음절이 분할되어 강약의 음보를 형성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시에서는 한 단어에서 음절이 분할되어 강약의 음보를 형성하지 않는다. 대체로 휴지를 주기로 해 3, 4음절이 한 음보를 이루고 있어 영시에서와 같이 규칙적인 강약의 음보는 사실상 형성되지 않는다. 음보가 한국시의 율격 형성에 필수 자질로 관여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다.
그래서 우리 시가의 경우 호흡군, 통사관계, 율독에 따른 시간의 등장성, 의미와 문맥 등으로 구분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15) 이러한 음절의 묶음, 끊어 읽기의 한 단위가 한 시행에 몇 번 반복되느냐에 따라 음보율이 결정된다.
붉은 댕기 나풀대며 철없던 내 언니는
그리움의 시를 쓰다 폐렴으로 앓아눕고
겨울밤 백지장 위에 꽃물 쏟아 놓았었지
-임성화의 「동백꽃」전문
위 시조의 음보에 따른 음절을 보면 초장이 4․4․3․4, 중장이 4․4․4․4, 종장이 3․5․4․4이다. 3․4음절의 단위가 반복되어 각 장 4음보를 형성하고 있다.
6) 내재율
내재율은 문장 속에 은폐되어 있는 율격이다. 내면에 흐르는 말 소리가 말뜻과 일체가 되어 형성되는 자유로운 호흡율이다. 외재율처럼 규칙적이고 체계화된 율격이 아닌 자유시나 산문시 같은 자유로운 율격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에 따라 작품에 따라 그 율격이 달라진다. 정해진 틀도 없으며 율격의 단위도 천차만별이다. 내재율은 이렇게 개성적으로 특유하게 형성되는 율격이다.
단시조에는 내재율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조 자체가 3장 6구 12음보로 정형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시조는 대부분 중장에서 길어져 그 중장에서 나름대로의 내재율이나 산문율이 은폐되어 존재하기도 한다.
뽕나무 하면 생각나는 일이 많지요
하교길에/ 뒤가 마려워/ 후다닥 /뛰어든 뽕밭//
웃뜸/ 연심이/ 고 쪼그만/계집애//
옴시락거리며/ 먼저/ 일 보고 있던//
다른/ 무엇보다/ 고 살끈한/ 엉덩이/ 떠오르지만요//
몰라몰라/ 그 때 마침/ 노을빛/ 콩당콩콩//
방아 /몇 섬/ 찧었다던가//
쏴하니/ 개밥바라기/ 시린 살점/ 두엇/ 떠올랐다가//
달싹이다/ 끝내/ 아무 말 않고/ 팽 돌아선/ 고,고,고//
짜끌짜끌한/ 오디 입술/ 생각 나지만요//
그 후로 내 가슴 뽕밭이 하두 환해져서
환해는 와서……
-이지엽의 「가벼워짐에 대하여」전문
중장의 음보는 4․4․3․5․4․3․5․5․3로 분석된다. 음절수, 음보수가 불규칙적이기는 하나 대체로 4․3․5 음보격으로 이것이 두 번 반복되고 있다. 2-5음절을 한 단위로 하여 반복되는 나름대로의 율격, 내재율이 존재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장시조는 정형율과 내재율을 동시에 갖고 있는 독특한 시조 형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한 율격들이 장시조만의 특유한 특징을 십분 살려내고 있음을 간과할 수는 없는 것이다.
7) 의미율
리듬이란 소리의 일정한 반복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행동의 일정한 반복, 사고의 일정한 반복, 빛의 일정한 반복도 리듬이다. 리듬이란 바로 율동이다. 모든 움직임의 규칙적인 반복이란 뜻이다. 따라서 현대시의 리듬, 현대시의 내재율을 이해하는 길은 반드시 시에 나타난 음성적 규칙만이 아니라 이미지의 반복, 의미의 반복, 정서의 반복도 모두 시의 리듬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시 속에는 그 의미 진행이 등가적, 병치적 아니면 함의적 등의 어떤 리듬들이 반복되어 나타날 때17) 그것을 의미율이라고 한다.
시조에도 그 의미들이 일정한 리듬을 가지고 나름대로 외형율과 결합, 진행됨을 볼 수 있다. 단시조는 초장에서 의미를 일으키고 중장에서 발전, 종장에서 반전하여 마무리 짓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때 안 묻은
그대로
태초의 숨결
그대로
신의 입김
그대로
자연에 내맡긴
그대로
뻗어서
자랑도 아닌
때 안묻은
그대로
-이상범 「난시(蘭詩) 」전문
위 시조의 전개 방식은 병렬식이다. 서로 독립된 같거나 비슷한 뜻을 가진 의미가 장과 구에 분배되어 있다. 그러한 같거나 비슷한 의미가 병렬식으로 전개, 서로 반복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연시조나 장시조 같은 것들은 중층 구조로 의미를 배치, 반복시켜 의미의 다양화를 꾀하고 있다. 이 때도 의미율을 얻을 수 있다.
어지러운 마음속에
신호등 하나 있었으면
머물고
떠나감이
꼭
그
좋은 때 되어
들끊는 무분별함을
잡아줄 수 있다면
어두운 마음속에
촛불 하나 있었으면
몸 사뤄 밝혀주는
미더움에 뜨거워져
절망의
빗장을 푸는
그런 빛이 있었으면
-나순옥의 「 그래 그랬으면 」전문
위 연시조는 각 연의 장들이 대구가 되어 같거나 비슷한 의미들이 되풀이되고 있다. 대우식 전개이다.
첫째수 초장의 ‘어지러운 마음속에 신호등 하나 있었으면’과 둘째수 초장의 ‘어두운 마음속에 촛불 하나 있었으면’이, 첫째수의 종장의 ‘들끊는 무분별함을 잡아줄 수 있다면’과 둘째수의 종장의 ‘절망의 빗장을 푸는 그런 빛이 있었으면’이 서로 같거나 비슷한 의미들이 짝이 되어 의미들이 되풀이 되고 있다. 서로 대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행복도시부산환경문화알리기사업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판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