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전 인도여행기 -3-
순서대로, 이제 밥먹을 시간이다.
아니 기내에서 한끼를 먹었으니 태국에서의 첫 끼인가?
칼질의 추억.
고등학교 2학년때인가? 학교 축제를 하면서 100원짜리 운세 감별기를 만들어서 돌렸었는데(뭐 실은 난 아무것도 안했다.) 그걸로 모인 돈이 꽤되서 넷이 길동사거리 경양식집에서 칼질을 한게 내 생애 최초의 그것이었다.
빵을 공짜로 더 준다는 점이 놀라웠고. 다 먹었다는 표시를 할 때 칼과 포크를 11자로 놓냐 엑스자로 놓냐로 주먹다짐까지 했었다.
이후로도 나에게 칼질이란 일상과는 멀었다. 연대에서는 학식으로 스프를 곁들인 세트가 나온다고 하더라만, 나 댕기던 학교는 그런거 없었다. 아우 그놈의 꽁치 김치찌개.
기내식은 맛있었다. 비프냐 피쉬냐를 묻길래, 식성과 달리 나도 모르게 비프를 외쳤고 함박 스테이크 같은 걸 먹었다. 술도 위스키 네잔?
그렇게 마시고 인도가는 사람 잡는다고 기내를 누볐으니. 어글리 코리안에 단증이 있다면 난 이미 초단이지 않을까?
어쨌건, 카오산 로드를 따라 늘어선 점포중 유리문이 장착되지 않은 뻥 뚫린 곳은 모두 레스토랑이었다. 첫끼라 그랬나? 별 고민 없이 그냥 숙소 앞 식당으로 들어갔다.
사람많고 좋아보이는 곳을 찾고 싶었지만, 내 뒤를 따르는 일곱은 정말 부담스러웠다.
내가 왜 목동이 되어 이 양떼를 거둬야 하냐?
나름 기독교인 집안에서 자란 내가 스님들을 챙기며.
영어 메뉴판은 낯설었다.
비프니 포크니 하는 글자는 알겠는게 PRAWN, 얘는 또 뭐냐?
뭐냐고 물어봤더니, 새우를 들고왔다. 응? 새우는 SHRIMP아니었나?
이걸로 나름 대학물을 먹은 셋과 수능을 막 보고 온 둘이 난상토론을 벌였고, 이건 태국스타일의 영어라는 결론을 내렸다.
고민해봐야 별게 있을 리가 없지. 그냥 소고기 볶음밥을 시켰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비슷비슷한걸 시켰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윽고 주문한 밥이 나왔다.
소문대로 밥알은 알알이 흩어졌다. 양념은 나쁘지 않았다. 볶음 상태도, 군데 군데 계란도 잘 박혀 있었고, 납작하게 썬 소고기도 바짝 튀겨져서 별다른 육질에 대한 감흥없이 먹을 수 있었다. 문제는 밥이었다.
혀에 닿는 질감은 너무 가벼웠고, 씹는 맛은 푸석했으며, 한마디로 목으로 넘길 때 몇 번 걸렸다. 무엇보다 쌀에서 묘한 군내가 났다.
음식은 나만 남겼다. 비구니 스님들은 채식을 했지만 비구스님은 나와선 잘먹어야 한다며 무려 스떼끼를 시도하셨는데, 다 드셨다.
음, 난 고기 냄새 많이 나던데.
음식적응력에 있어서 난 평균 이하다. 인도에 가서 맛살라라는걸 먹으면 죽는다는데. 걱정이 밀려왔다.
새벽부터 움직여서 방잡고 밥먹고,
해봐야 시간은 오전 10시가 채 되지 않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캘커타로 넘어가는 항공권을 구해야한다.
Travel Agency라고 써있는 모든 메인 로드의 문을 다 두드린 것 같다.
한국과 달리 사람들은 무뚝뚝했다. 돈이 안되는 인도행 항공권이어서 였는지도.
대략 왕복 US$200~250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움직였는데, 그런 표는 세상에 없었다.
아니, 무엇보다 저 사람들의 영어랑 내가 하는 영어가 너무 다르다는 느낌.
정말 거의 안 들리더라.
조건은 딱 두가지였다.
출발 날짜? 가급적 빠르면 좋다. 내일이라도
가격은? 싸면 좋다. 경유라도.
내 영어 실력을 간파한 여행사 직원은 계산기에 숫자를 찍어줬다.
어떤 집은 9800이었고 어떤 집은 13500을 넘기기도 했다.
어떤 숫자건 예상한 금액과는 US$100가량 차이가 났다.
그 즈음에 대로 옆 골목에 숨어있는 홍익인간이라는 한국인 식당을 찾았다.
불법 녹음 카세트 테이프를 파는 노점 속 작은 골목에 있었다. 입구에 있는 커다란 태극기는 기묘한 상징같았다. 정말 기묘했다. 저 기호를 사람들이 찾는구나. 그리고 안도하는구나.
안에는 도우미라고 불리는 총각이 청소를 하고 있었고, 사장이라는 허우대 좋은 분은 긴 꽁지머리를 뒤로 묶은 채 담배를 피고 있었다.
불교 신자였는지 내 뒤의 스님들을 보더니 급히 담뱃불을 끄며 합장을 했다.
'어서 오세요 스님. 공양하셨어요?‘
인상과는 다른, 예상밖의 환대였다.
일행을 안에 앉게하고 약간의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인도를 갈라 칸다꼬요.....? 거가 어데라고 갈라캅니까? 보아하니 어린 친구들이 모여서‘
표정이 살짝 심각해지더니 갑자기 종이를 가져와서는 약도를 그려주기 시작했다.
'절로 저래 가면 맛사지 집이 있고, 마르코 폴로라는 호텔이 있고, 그 옆에 IBS라는 여행사가 있습니다. 거가 여서는 제일 쌉니다. 인도가는 표는.‘
누군가에게 습관처럼 내뱉는 어떤 말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구하는 동앗줄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뭐든 막상 알면, 참 짧고 간단한거다.
감사의 뜻으로 일행에서 강제 한끼를 더 먹게하고, 건축을 전공한다는 형과 IBS여행사로 갔다.
처음에는 표정이 좀 심각했다. 그냥 인도를 포기하고 라오스나 캄보디아 베트남으로 빠져야 하나라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근데, 인도를 못간다면 난 대체 여기 왜 있는거지라는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조급해졌다.
'OK. 사흘 후 출발, 왕복 5400바트. 로얄 부탄 에어라인’
자리가 났다. 어서 여권들고와서 돈을 박으란다.
번개같이 홍익인간으로 달려가 여권! 돈! 이라고 했더니 강제 두끼를 급식하던 대중들은 아수라장이 됐다. 복대라는 물건은 나만 차고 있었다. 먹던 라면을 팽개치고 모두 숙소로 달려가 여권을 가져오고, 환전을 하느라 난리법석을 떨고 나니 정오가 막 지나던 시간.
8개의 여권과 꽤 두둑한 돈을 들고 여행사로 갔다.
너 참 느리다라는 표정으로 주인장이 한번 쏘아보더니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고
무뚝뚝한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스치며, 'OK'라는 말을 했다.
오늘 저녁 6시에 다시 오라고 종이에 써줬다.
이제 스테이지 2를 통과했다.
내 뒤에 있던 수능을 마치고 가출한 쌍둥이 자매는 울음을 터트렸다.
살짝 현기증이 났다.
첫댓글 담편 빨리 보고싶어요.^^
지난 나의 모습이 +
떠올라 ~~ 서 미소짓고 잇어요.
이글을 읽으면서 제가 처음 인도 발딛은게 89년인가 되니 ㅜㅜ 격도 안나요 공항서 나오자마자 뒷걸음쳐서 다시 들어가고 싶었다는 ㅜㅜ 여행경험이 있는대도 말이죠
100% 공감 ㅠ.ㅠ 그래도 난 당찻다 왜 라오 태국은 대충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를 인도로 가게 만들었던 새별이는 오대살고 잇을까 나보다 어린 아가씨 혼자 인도 터키 네팔을 돌고 와서 태국에서 자랑질에 속아 넘어가 인도를 가게 됬다 그 새별이는 잘지내시는가 ㅋㅋㅋㅋㅋ
엥 ~ 윗글이 없네!!
작가님 뭐해요 농뗑이치지 마시공 빨리 빨리 올리세요 담편이 궁금? 흥미진진
아예 한 5편씩 아니 10편씩 올려주심 더 좋구요 ^^
뭐지? 이 중년에게만 터지는 반응은? ㄷ ㄷ ㄷ.
ㅎㅎㅎ 정말 재밌어요~~~뒤에 책임져야하는 스님들 쌍둥이 자매들~~~ㅋㅋㅋ 궁금백배~~
아 10년전쯤 첫 인도 여행서도. 경악을 금치 못했었는데. 18년전이시라면. 대단 하십니다.
빨 리. 올 려 라!
위에 올렸잖냐.
아...왜 뱅기티켓을 인터넷으로 안샀지 하고 앉아있네 -_-
하하하 그당시는 종로 탑항공사에서 표 많이 샀죠 날짜변경 스티커 들고 다니고요 여행자 수표 현찰 몸에 차고 신발에 깔고요
푸하하...맞아요 맞아...저도 문득 왜 태국까지 가서 사지? 그랬어요. ㅋㅋㅋ 그 당시 인도항공권 취급하는 여행사가 아마 한국에는 거의 없었지 싶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나의 10년전 인도 여행기를 적고 싶으나 10년전에 뭘했는지. 기억이 안나요. 글쓰시는 분들 대단하신것같습니다
바라나시 골목에서 정전이 되어골목을 걸어나올때 온몸을 휘감던 공포감이 다시 떠오릅니다
중년인가나도 그람??ㅋㅋ 하긴 먹을만치 먹었군 담편보러 가야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