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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성은 잠들 시간이 되면 무슨 생각을 할까? 2021년 1월 허공으로 사라진 한광성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있을까? 유럽에서는 그 누구도 유벤투스 유망주였던 그에게 이 두 가지 질문을 할 수 없으며 심지어 그의 친구가 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의 왓츠앱 계정은 갑자기 휴면 상태가 되었고 인스타그램 프로필도 두 개나 사라졌다. 이제 25살이 된 한광성의 나라에서는 소셜 네트워크가 존재하지 않는다.
2019년 9월부터 12월까지 유벤투스 U23에서 한광성의 동료인 다우다 페이터르스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그가 떠나는 날 아침, 그는 저한테 떠난다고 말했어요. 그게 다였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는 말해주지 않았어요.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팠어요. 누군가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전날 전화를 걸었는데 다음 날 아무 연락이 없으니까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해합니다. 그가 항상 국가를 우선시하고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를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다우다 페이터르스는 2020년 1월 8일 이후 한광성과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 침묵을 지키고 있던 한광성은 카타르와 알 두하일로 탈출했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영원히 사라졌다. 북한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좋은 이야기의 끝...
모험은 바르셀로나에서 시작되었다. 2010년대 초반,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은은 대표팀 전력 강화에 열심이었고 현지 유망주들의 유럽 진출을 환영했다. 여러 카탈루냐 중개업체를 통해 바르셀로나의 한 아카데미가 보육원 역할을 하도록 선정되었다.
몇 명의 선수와 그들을 감독하는 정권 요원들을 수용할 수 있는 집이 마련되었다. 오전에는 훈련, 오후에는 레슨, 주말에는 경기 등 한광성은 15살의 나이에 축구 선수의 견습생 삶을 살고 있었다.
한광성은 또한 스페인어에 익숙해져 있었고 그에게 펼쳐진 세상은 달랐지만 놀라울 정도로 잘 길들여지고 있었다. 그는 이미 다른 선수들보다 한 수 위였다. 스페인 시즌이 끝나고 며칠 후, 그가 유소년 대표팀에 복귀했을 때 이 사실은 더욱 분명해졌다.
한국과의 16세 이하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9번 유니폼을 입은 한광성은 골을 넣으며 특별한 대회를 마무리했다. (2014년 9월 20일, 2대1 승리) 몇 주 후 리버풀은 그를 영입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2015년 봄, 한광성은 다른 곳, 이탈리아에서 기대를 모았다. "대회 전에 우리는 한광성과 그의 동포 몇 명을 데려오기로 북한 연맹과 합의했습니다. 영국인들이 문의했을 때 한광성은 이미 이곳에 와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기까지 왔어요. 그들은 한광성에게 꿈을 꾸도록 스티븐 제라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한광성은 스티븐 제라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침묵을 지켰습니다!"라고 페루자에 본사를 둔 민간 기관인 ISM 아카데미의 알레산드로 도미니치 이사는 설명한다.
보드카를 좋아하는 북한 요원 두 명의 상대적인 감독 아래서 한광성은 계속해서 빠르게 배웠다. "젊은 선수들은 모두 약간 긴장하고 모든 것이 끝날까 봐 두려웠지만 한광성은 그런 모습이 덜했습니다. 예를 들어, 힘들고 가족에게 편지로만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집중력이 강하고 단호했습니다."라고 알레산드로 도미니치가 말한다.
도미니치는 덧붙였다. "평양국제학교 (일종의 국립 기술학교)를 졸업한 축구 선수들의 평균 수준은 매우 뛰어납니다. 유소년 수준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와 경쟁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한광성은 좋은 기초를 다지고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그 후에도 계속 발전하다가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북한은 이러한 진전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니 기뻐할 만하다. 2015년 가을, 한광성은 칠레에서 열린 17세 이하 월드컵에 참가해 16강에 진출했다. 페루자 아카데미는 곧 한광성에게 너무 좁아졌다.
당시 조르지뉴를 고객으로 두고 있던 이탈리아 에이전트 산드로 스템페리니는 비공식적으로 구단으로부터 위임장을 받아 2017년 겨울 말 칼리아리로 세리에A 진출을 시켰다. ISM은 이 계약으로 약 40만 유로를 회수했다.
한광성은 사르데냐에서 다시 한번 모두를 놀라게 했다. 프리마베라 첫 경기에서 그는 권위 있는 비아레지오 컵에서 시저스킥으로 골을 넣었다. "사랑에 빠지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때로는 번개처럼 번쩍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는 이 보석에 대해 이렇게 썼다.
칼리아리 1군 감독도 그 마법에 걸려 2017년 3월 17일에 다이아몬드를 빅리그로 불러들였다. 4월 2일, 조 하트의 토리노를 상대로 당시 18세였던 한광성은 북한 선수로는 최초로 세리에A에서 골을 넣었다. 역사가 만들어지는 중이었고 시나리오는 완벽했다.
동시에 또 다른 게임이 진행되고 있다. 이 게임에서는 유엔과 북한이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김정은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유엔은 강경하게 대응한다.
2017년 9월 3일, 북한 TV 뉴스의 스타 진행자가 은퇴를 앞두고 '큰일'이 있을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정권의 최근 핵실험의 '완벽한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며칠 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경기 종료 휘슬을 불었다. 9월 11일로 만 19세가 되던 한광성은 아직 몰랐지만 운명이 뒤집힌 순간이었다.
북한의 특정 전략 자원을 박탈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에 이어 결의 2397호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유엔 안보리는 결국 유엔 회원국들에게 "불법 무기 프로그램을 위한 자금을 창출할 가능성이 있는" 북한 시민의 자국 영토 내 거주를 금지할 것을 요구했다.
기본적으로 소득이 많은 사람이 대상이다. 유럽연합은 2018년 2월 26일에 이 조치를 시행했으며 회원국들은 24개월 이내에 제명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한광성에게 이 날짜는 2년 후인 2020년 1월 겨울 이적시장에서 중요한 시점이 될 것이다.
그 동안 한광성은 칼리아리에서 한 달에 25,000유로를 벌고 있으며 이것은 39호실의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김정일이 만든 이 국가 속의 국가는 국외 거주자들로부터 돈을 모으는 일을 담당한다.
페루자의 한 술집에서 몬테팔코 잔을 들며 한광성을 추억하던 그의 오랜 친구 중 한 명이 이 사건을 요약한다. "처음에는 북한 정권이 그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돈을 벌기 시작하더니... 슬픈 일이죠. 그가 첫 계약을 체결하던 날이 기억납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였습니다."
다음 날, 한광성은 서양인 친구 두 명에게 최신 아이폰을 주문해달라고 부탁했다. 한광성은 아이폰을 받고 감탄하며 왓츠앱, 인스타그램을 다운로드했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경기장에서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사실 2017년 6월, 한광성은 첫 대표팀 유니폼을 입게 된다. 하지만 세리에A에서는 여전히 조금 부족했다. 다음 시즌 칼리아리는 이미 한광성이 발을 디딘 페루자 (세리에B)로 임대하기로 결정했다.
페루자는 순식간에 마법에 빠졌다. 한광성은 골을 쌓아 올렸다. 2017/18 시즌 첫 4경기에서 5골을 넣었다. 그리고 언론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8월 27일자 코리에레 델 롬브리아의 스포츠면 헤드라인은 "Delirio Han"이었다. 다음 날 이 신문은 "모두가 평양에서 온 한 선수에게 열광하고 있다."라고 썼다.
이탈리아에서는 이 페노메논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당시 이탈리아 상원의원이었던 안토니오 라치가 이 기회를 잡았다. 북한과 가까운 이 우파 정치인은 2015년 ISM 아카데미와 북한 연맹과 연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2년 후, 안토니오 리치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과 정기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김정은이 자신의 동포를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자랑스러울 수도 있고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특히 2017년 9월 말, 한광성이 Domenica Sportiva 프로그램의 초대를 수락했을 때는 더욱 그랬다. 한광성은 이제 이탈리아어를 마스터했고 유명한 Rai 쇼에 출연할 예정이었다.
한광성은 마지막 순간에 약속을 취소하고 밀라노의 한 호텔에 숨어버렸고 결국 인터뷰에 응한 사람은 마시밀리아노 산토파드레 페루자 회장이었다.
산토파드레는 며칠 후 라 스탐파에서 북한 관리가 한광성에게 공개적으로 말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설명했다. 산토파드레는 방송에서 사과하며 한광성이 결국 TV에 출연하고 싶지 않다고 '느꼈다'라고 말했다.
한광성은 페루자에서 성공적인 첫 시즌 (2017/18시즌 17경기 7골)을 보내는 동안 빅클럽들의 러브콜을 받은 주인공이었다. 2018년 3월 27일 평양에서 열린 세 번째 성인 대표팀 경기에 운 좋게도 참석할 수 있었던 레퀴프 기자는 대표팀의 생동감, 기술적인 여유, 효율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19년 9월 2일, 유벤투스가 한광성을 영입한다는 소식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도미니치는 회의실 테이블을 두드리며 "Boum!"이라고 회상한다. "모든 것이 바뀌었고, 전 세계 언론이 지구상에서 가장 큰 클럽 중 하나에 합류할 이 젊은 북한 선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죠. 하지만 그것은 한광성에게 큰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
칼리아리의 톰마소 줄리니 회장은 기뻤다. 칼리아리는 국제적으로 긴장된 상황에서도 4m 유로에 가까운 이적료를 챙겼다. 그는 유엔의 압박을 감지했을까? 유벤투스는 유엔 회원국들이 북한 국외 거주자를 추방하라는 지시를 내린 시점에 한광성에게 5년 계약을 제안하며 훨씬 덜 원시안적인 태도를 보였다.
한광성은 그물망을 빠져나가길 바라고 있다. 적어도 사석에서는 자신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는 일은 축구뿐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그렇게 말한다. 유베 U23 라커룸에서 그는 여전히 놀림을 받고 있다.
다우다 페이터르스는 "그는 정말 재미있었고 농담도 잘했죠. 하지만 경기장에서만 그랬고 경기장 밖에서는 달랐습니다. 특히 어느 날 아침 팀 동료가 그에게 미국인을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이런 질문이나 어린 시절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입을 닫았어요."라고 말한다.
페이터르스는 회상한다. "사실 그는 의도적으로 약간 엉뚱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거기서 무엇을 먹었냐고 물으면 모든 것을 다 먹었다고 대답하곤 했어요." 한광성과 프리마베라 14경기를 함께 뛰었던 페이터르스는 한광성을 "매우 감정적"이라고 표현하며 "우리가 졌을 때는 뭔가 아쉬워서 소리를 지르곤 했어요. 득점할 때도 마찬가지였죠. 그는 매우 감정을 드러냈어요."
2019년 말 유벤투스의 리저브 선발로 10경기에 출전해 1골 2도움을 기록하는 등 20경기에 출전했다. "하지만 그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프로팀에 가까워지면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죠..."라고 한광성 이전 동료는 말한다. 한 선수의 전 동료 두 명이 확인했듯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그가 강하다고 생각했다.
2019년 10월 26일, 그는 처음으로 프로팀에 부름을 받았다. 두 달 후 그가 매각됐을 때 그의 파트너들은 깜짝 놀랐다. 한광성의 친구는 말한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어요.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한광성은 떠나는 것이 싫었고 카타르로 이적하는 것은 더욱 싫었습니다."
유베는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유엔 제재와 유럽법을 준수하라는 압력을 받았는가? 유베나 이탈리아 외무부 모두 한광성을 상대로 많은 것들이 음모를 꾸민 이 이야기를 다시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2020년 3월 2일 유엔 북한 전문가 그룹이 발표한 보고서에서, 우리는 이 기관이 2019년 9월 이탈리아에 한광성 사건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6개월 후, "이탈리아는 전문가 그룹에 (...) 한광성이 2020년 1월에 출국했다고 답했다."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알 두하일 거래가 성사된 지 한 달 후 유베 법무팀이 알 두하일에게 요구한 금액은 7m 유로다. 클럽의 재정에 대한 조사에서 유베는 이 거래를 통해 3.16m 유로의 자본 이득을 얻었다고 언급했다. 또 누가 수표를 현금화했는가? 유베는 응답하지 않았다.
오랜 에이전트인 스템페리니는 이 거래가 "두 클럽 사이에 직접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광성과 알 두하일을 연결하는 계약서에는 그의 서명이 적혀 있다. 계약서에는 5년 동안 총 4.13m 유로(!)의 보수가 명시되어 있었다.
유엔이 나사를 조이고 있다. 2020년 8월 보고서에서 전문가 위원회는 "카타르에 어떤 결의안이 적용 가능한지 다시 한 번 명확히 했다."라고 밝혔다. 한광성은 그 여파로 그룹에서 제외됐다.
꿈의 끝. 한광성은 처음 5개월 동안 레이더망에서 사라졌다. 2021년 1월 29일, 유엔 주재 카타르 상주 공관은 한광성이 카타르에서 추방되었다는 서한을 보냈다. 사흘 전, 그는 카타르항공 비행기 (QA 131)에 탑승했다. 평양으로 향했는가? 아니다. 한광성은 1월 26일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에 착륙했다.
그의 행방을 추적하려면 이탈리아 수도의 EUR 지구로 가야 한다. 자국의 대사관이 있는 근처의 그곳에서 한광성은 2021년 1월 말부터 2023년 7월까지 '감금'상태로 있었다. 그는 30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커리어와 남은 환상을 잃어버렸다.
Viale dell'Esperanto의 26번 인터폰을 누르는 것만으로도 고독의 순간을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한 정권 관리가 이탈리아어로 "근데 기자는 뭐하는 사람이냐?"라고 외치며 경찰을 부르겠다고 협박했다.
길 건너편에서 한 이웃이 주변을 둘러보며 이 건물의 불빛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한광성의 친구 두 명이 2022년 여름에 방문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익명을 원했지만, 그중 한 명은 그의 깨어진 운명을 말로 표현하려고 했다. "육체적으로는 멀쩡했지만 저에게는 큰 고통을 안겨줬어요. 그가 꿈에서 악몽으로, 잔디밭에서 떠나기 힘든 곳으로 갔기 때문에 충격이었죠. 하지만 그때 누가 그를 걱정했나요?"
한광성은 실제로 2023년 여름 말 베이징을 거쳐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는 11월 16일 시리아 (1대0 패배)와 11월 21일 버마 (6대1 승리)에서 열린 2026년 월드컵 예선 두 경기에 다시 대표팀으로 출전해 골을 넣었다.
한광성의 팬들은 경기 시트를 발견하고 놀랐지만, 그의 이름이 적힌 시트를 보고 한광성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지 3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그가 하루 종일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는 어디 있지? 클럽에 계약할 수 있을까? 스포츠 디렉들은 여전히 ISM 아카데미의 책임자인 알레산드로 도미니치에게 문의한다.
러시아와 중국은 유엔으로부터 자유롭기에 탈출구가 될 수 있다. 연락을 받았을 때 유엔 북한 전문가 그룹은 조사가 계속되고 있다고만 말했다.
이제 막 25살이 된 한광성은 3개 국어를 구사하며 몇 년 전의 예리한 공격수, 빠른 발, 언제나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선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북한 축구의 기대주 한광성은 음바페처럼 1998년 말에 태어났다. 그는 여전히 프로 축구를 꿈꾸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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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직 어리네요 ㄷㄷ
ㄹㅇ재능이었다 보는데ㅜㅠ
와 아직도 25살... 음바페 동갑이군요 ;;;
조금 남쪽에서 태어났으면 훨씬 더 이름을 날렸으려나...
대한민국 국적이였음
대표팀에 바이에른,psg,토트넘,유벤투스ㄷ
ㅠㅠ
ㅗㅜㅑㅔ
안타깝네요
그나마 우린 남쪽에서 태어난 것만으로도 천운이었다고 할 수 밖에...
참 안타깝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이 있어도 북한이 선수의 앞날을 막아구나.
진짜 타고난 스트라이커라고 봤는데 안타깝다
누굴 원망하리
미친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