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의 이야기, 무대와 만나다가부장이 가장 노릇마저 못하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가부장제란 “가장인 남성이 강력한 가장권을 가지고 가족구성원을 통솔하는 가족 형태 또는 가족구성원에 대한 가장의 지배를 뒷받침해 주는 사회체계를 일컫는 제도”로 “가부장제적인 가족 형태와 사회체계는 서로 규정하고 재생산하면서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이 둘은 분리해서 고찰될 수 없고 종합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가부장제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생계와 직결되는 ‘바깥’일이고, 가장은 가족을 먹여 살리고 책임지며 가족의 중대사를 결정한다. 그렇기에 남성들이 바깥에서 생계와 직결되는 중대한 일을 하는 것에 비해 여성들은 집에서 사소한 일을 담당하는 것으로 치부되어왔다. 이런 가부장제에서 가장으로서의 최고 아웃풋은 자기 가족을 최대한 ‘바깥’의 위험으로부터 지키면서 안으로는 소중하게 보듬는 사람이다. 공과 사가 분명하여 밖에서는 도를 지키고 안에서는 온정을 베푸는 이런 가장들은 종종 섬세하게 일기를 남기기도 하면서 자기 존재를 드러내곤 하지만 존재감 제로에 도전하다 못해 땅 파고 들어가는 케이스도 있기 마련이다.
〈뮤지컬 《숲속에서》(1987)의 오리지널 포스터〉 (출처: Wikipedia)
미국 브로드웨이가 자랑하는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의 뮤지컬 《숲속에서》(1987)에는 존재감 시들시들한 빵집 주인과 아예 실종된 빵집 주인의 아버지가 등장한다. 이 작품은 그림형제의 동화 가운데 『신데렐라』, 『라푼젤』, 『빨강 두건』, 『잭과 콩나무』의 이야기가 끝난 이후의 이야기다.
〈영화화 된 《숲속에서》(2014)의 한 장면〉 (출처: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1막에서는 주요 등장인물이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숲속으로 달려간다. 신데렐라는 구박받던 신세에서 벗어나 한 번만 왕자의 파티에 가서 신나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라푼젤은 자신을 가둔 엄마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고, 빨강 두건은 할머니께 갓 구운 빵을 가져다드리기 위해, 잭은 하나뿐인 친구인 암소 밀키 화이트를 시장에 내다 팔아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숲으로 향한다.
그런데 여기에 의외의 설정이 하나 살짝 끼어든다. 원작인 동화에서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물인 빵장수 부부다. 빵장수 부부는 간절하게 아이를 원하지만, 무슨 수를 써도 아이가 생기질 않는다. 이웃집에 사는 무시무시한 마녀가 이들에게 불임의 저주를 걸어두었기 때문이다. 간절히 애원하는 빵장수 부부에게 마녀는 세 가지 물건을 가져오면 저주를 풀어 주겠다고 말한다. 옥수수수염처럼 노란 금발, 우유처럼 하얀 암소, 금색 구두.
대체 이걸 어디서 구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신데렐라가 파티가 열리는 성으로 출발하던 그날 밤, 빵장수와 그의 아내는 동화 속의 숲으로 뛰어들어 동화를 휘저으며 세 가지 아이템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금색 구두는 신데렐라의 발에, 노란 금발은 라푼젤에게, 하얀 암소는 잭에게 있다. 이들이 숲속을 이리저리 헤맨다면 똑바로 자신의 목표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유일한 인물은 빨강 두건을 쓴 소녀다. 식탐이 남다르지만, 할머니께 빵을 가져다드리기 위해 옆을 보지 않고 달리던 이 소녀에게는 늑대가 찾아온다. 수많은 동화 속 인물이 이리 얽히고 저리 얽히면서도, 1막은 그럭저럭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신데렐라와 라푼젤은 왕자를 찾았고, 잭은 보물을 챙겨 거인의 나라에서 도망쳤고 거인은 추락해서 죽었다. 빵장수 부부에게 걸린 저주가 풀렸으며, 그 덕에 마녀는 아름다운 외모를 찾았다.
2023 토니상 시상식 쇼케이스 《Into the Woods》
그러나 1막에는 수많은 떡밥들이 널린 채로 이 해피엔딩이 결코 영원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그리고 2막은 추락한 거인의 아내가 남편의 복수를 위해 아랫 세상에 나타나 잭을 내놓지 않으면 다 부숴버리겠다고 날뛰는 것으로 시작한다. 왕실은 자기들만 살자고 백성들을 버리고 앞장서서 달아나는데, 그중에는 바람둥이 신데렐라의 남편도 있다. 거인의 아내는 잭의 집을 부수었고 잭의 어머니도 세상을 떠난다. 아이가 생긴 이후 다른 아이들이 남 같지 않은 빵장수 부부는 자신의 아이와 함께 잭과 빨강 두건을 챙겨가며 살길을 향해 나아가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빵장수는 자신의 아내를 진정한 인생의 동반자로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인정도 잠시 아내는 거인의 아내에게 밟혀 세상을 떠나고 남은 이들은 힘을 합쳐 거인의 아내를 물리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신데렐라는 바람둥이 남편을 떠나고 빵장수는 자신의 갓난 아이를 기르면서 고아가 된 잭과 빨강 두건을 쓴 소녀를 거둔다. 가정에서 존경받는 가장이고 싶었던 그는 가장 원치 않는 방식으로 그 바람을 이루게 된다.
사실 이 작품 안에서 가장 게으른 가부장은 신데렐라의 아버지다. 신데렐라의 아버지는 어떻게 각색해도 골치 아픈 존재다. 이 작자는 새로 맞이한 아내와 그 딸들이 자신의 친딸을 구박하고 하녀처럼 부려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자다. 이 자는 그래서 각색에 따라 이야기가 시작될 때 아예 저승에 보내거나 언급도 제대로 하지 않기 일쑤다. 그만큼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친아버지라는 인물은 골치 아픈 존재다.
〈고전소설 『장화홍련전』〉 (출처: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우리나라 고전 중에도 가부장으로의 최소의 인정도 없는, 처리가 골치 아픈 가장이 있다. 바로 장화와 홍련의 아버지다. 계모 이야기의 가운데 가장 잔인하고 치밀한 내용이기도 하거니와 실화가 바탕이라는 실감 나는 설명이 곁들여져 더 으스스하다. 장화와 홍련은 영민하고 아름다워 마을에서 칭송이 자자한 딸들인데 그들의 아버지 배씨는 아내를 잃은 후, 단지 아들을 잘 낳는다는 것에 눈이 멀어 박색인 허씨를 아내로 맞는다. 허씨는 아들을 줄줄이 낳아 배씨를 기쁘게 하면서, 뒤로는 자신의 자식이 아닌 장화와 홍련을 구박한다. 결국, 허씨는 장화와 홍련이 시집 갈 때 가져갈 지참금이 아까워 혼인을 앞둔 장화에게 다른 남자와 정을 통했다는 누명을 씌워 우물가에 밀어 죽이고 이어 언니의 부정을 믿지 않았던 동생 홍련까지 죽여버린다. 이때, 앞장서서 일을 처리한 것은 허씨가 낳은 큰아들 장쇠이다.
억울한 두 사람의 혼령은 마을 원님이 부임할 때마다 귀신으로 나타난다. 부임한 원님들마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자, 강심장의 지원자가 나선다. 이 원님은 자매의 혼령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다. 도리어 자매의 하소연을 듣고는 마침내 허씨 모자와 아버지 배씨를 불러 모든 죄상을 낱낱이 밝히고 우물에 빠져 있던 자매의 시신을 거두어 제를 지내준다. 허씨와 장쇠는 벌을 받지만, 아버지 배씨의 결말은 버전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배씨가 어진 새 아내를 맞이하고 죽은 장화와 홍련이 그들의 딸로 다시 환생한다는 결말도 있고, 배씨가 참회하며 살아간다는 내용도 있지만 어쩐 일인지 모든 잘못은 허씨에게 돌아갈 뿐 배씨는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 애초에 아들을 향한 배씨의 집착과 묵인이 아니었다면 일어날 일이 아니건만 모든 책임은 계모인 허씨와 장쇠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때로 장쇠는 허씨가 데리고 들어온 아들로 이야기가 바뀌기기는 할지언정 배씨의 묵인에는 변함이 없다.
〈국립창극단에서 제작한 《장화 홍련》(한태숙 연출, 2012)〉 (출처: 국립창극단)
국립창극단에서 제작했던 호러 장르로서의 창극 《장화 홍련》(한태숙 연출, 2012)은 어떠한 경우에도 해학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판소리의 미덕에서 웃음기를 쏙 뺐다. 이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호러가 될 법하지만, 호러 창극 《장화 홍련》은 각자의 욕망이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충돌하면서 비극이 발생한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2011)에는 사이코패스인 아들이 어머니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정체를 일찌감치 깨닫고 의무를 다하되 사랑은 주지 못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사람의 감정은 이성만으로는 어떻게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창극 속의 새어머니는 의붓딸인 장화와 홍련을 구박하기는커녕 자신의 도리를 다하지만, 그들을 사랑할 수는 없었고, 장화와 홍련 역시 새어머니를 친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의 아내로서 거리를 두고 대하면서 비극이 일어난다. 영민한 장화는 약혼자와 유학을 떠날 예정이고 홍련은 그런 장화를 따라 유리 감옥 같은 집을 떠날 생각에 들뜬다. 하지만 장화보다 지능이 떨어지고 사회적으로 출세할 길이 막힌 듯이 보이는 장쇠가 장화를 죽여버리고, 어머니 허씨는 자신이 낳은 아들 편에 서서 증거인멸을 위해 홍련마저 죽인다.
2014 국립창극단 장화 홍련 재공연 홍보영상
호러 창극 《장화 홍련》은 온통 어두운 검은 무대 위에 유일하게 빛났던 장화의 결혼식 베일은 빛을 잃고, 장화와 홍련이 복수를 향해 나아갈 때는 장화와 홍련이 더 무서운 인물처럼 그려진다. 애정이라고는 없이 한 집안에서 한정된 재산을 나눠 써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닥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가정 내 살인을 다뤘다. 이 작품은 판소리에 그리스 비극처럼 깊고 무거운 코러스 기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귀신으로 나타나 원을 푼다는 고전적인 드라마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모습 또한 보여준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조차 아버지는 전통적인 수수방관의 아이콘이다. 모든 일은 등장하는 여성 간의 질투와 알력으로 일어나고 아버지는 이리저리 우유부단하게 부평초처럼 떠돌아 관객에게 고구마를 선사할 뿐이다. 어쩌면 이 작품 안의 가장 큰 호러는 아버지라는 가부장제의 테두리가 가족을 지킬 의지가 없는 사실이다.
신데렐라든, 장화와 홍련이든 가장 큰 비극은 가부장제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조선 후기에 확립된 장자 중심의 가부장제는 가족제도로서만이 아니라 사회체계로 여전히 공고한 지위를 누린다. 특히나 아버지가 누렸던 ‘아내’로서의 어머니를 보고 자란 현재의 청년들에게 있어서 여성은 그 형태를 벗어나는 것이자 남성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로 규정되면서 남녀 간의 갈등도 극대화되는 추세다. 결국 이 비합리적인 체계는 이야기 속에서 가장 중심을 잡아야 할 인물인 아버지부터 무너지게 하고 그 아래의 가족이 살해되는 결말에 이른다. 오늘의 현실에서는 그 아이들이 아예 태어나지도 않는 시점에 다다랐다. 아이가 태어나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그 아이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면 이 단단한 가부장제를, 이제쯤은 버릴 때도 되었건만.
집필자 소개이수진뮤지컬 〈지킬앤 하이드〉, 〈그리스〉, 〈넌센스〉, 〈에비타〉 등 번역하고,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 등을 썼습니다.〈뮤지컬 스토리〉 저자 / 더 뮤지컬 어워드 심사위원 역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