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베이징을 방문 했던 1997년으로부터 2년 뒤인 1999년 6월 다시 한번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나는 우연한 기회에 베이징 시내 북부지역에 있는 기념관 하나를 방문했다. 그곳은 근대 중국의 미술계에서 높게 평가되고 있는 미술가 서비홍(俆悲鴻, Xubeihong)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는 곳으로 서비홍기념관(俆悲鴻紀念館)이라고 했다. 문학가 노신(魯迅)의 고향이기도한 강소성(江蘇省)의 소흥(紹興)에서 태어난 서비홍(俆悲鴻)은 후에 중국의 국민적 화가는 물론 예술교육자로 추앙을 받기에 이를 정도로 훌륭한 작품과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
2층으로 되어있는 그 기념관은 6개의 전시실로 나누어져 그의 다양한 그림은 물론 그의 업적을 기리는 자료와 유품 등이 수집되어 전시되어 있었다. 사실적이고도 힘이 있는 화필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 그는 특히 말의 힘 있고 생동감 있는 모습을 즐겨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전시된 많은 그림 중에는 분마(奔馬), 군분(群奔) 따위의 말이 달려가거나 말이 무리 지어 있는 모습을 노련한 필치로 그려낸 작품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가 중국의 국민적인 화가의 하나로 크게 기념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어려운 곤경에 빠져 있을 때 그들 국민 모두에게 미술이라는 예술을 통해서 중국국민들의 힘을 북돋아 주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성어를 가진 타이틀의 그림이었다. 「The Foolish Old Man Who Moved the Mountain, 1929-30」이라는 영어 부제를 가진 그 그림은 중국의 고사를 사실적인 화풍으로 그린 것이다. 큰 산을 조금 조금씩 옮기기 시작해서 불가능할 것처럼 여겨졌던 일을 해내고 말았다는 어느 촌로의 고사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그 그림이 중국인들 모두의 가슴에 깊게 새겨진 것은 그 당시 일제의 침략을 받고 있던 그들에게 그 침략에 대행하여 끝까지 싸워서 물리쳐야 한다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그 그림이 전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인들의 그 무엇에도 쉽게 꺾이지 않는 불굴의 정신과 대국적인 여유와 끈기를 상징해오고 있던 그들의 고사가 그들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이라는 넓고 큰 나라를 몇 차례, 극히 부분적으로 여행하고 나서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글로 쓴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 드넓은 중국의 모든 곳곳을 여행한 뒤에 글을 쓴다는 것도 쉽지만은 않을 일일 것이다. 사실 중국의 많은 곳을 여행해보고 싶다. 우리의 국경 너머에 있는 흑룡강성(黑龍江省)은 물론 눈부신 발전의 대명사로 떠오르고 있는 상해(上海), 당(唐)나라의 도읍이었던 장안(長安), 곤명(昆明)과 석림(石林)이 있는 중국 남부의 운남성(雲南省), 그리고 비단길 실크 로드(Silk Road)가 지나던 타클라마칸사막의 신강성자치구(新疆省自治區)까지 말이다.
내가 베이징을 여행했던 1997년은 우리와 중국의 관계에 있어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작지만 하나의 큰 상징성을 부여할 수 있는 해였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양국 간의 국교가 회복된 것은 1992년의 일이었고 1997년에는 이미 한중간에 무역, 투자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매우 활발한 협력이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있던 시기였다. 양국의 전체적인 관계의 맥락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1997년은 우리와 중국이라는 나라가 기원전의 역사시대 이전부터 가져왔던 관계에 있어서 매우 의미 있는 행사가 치러진 해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앞서 1995년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주석과 우리의 김영삼 대통령 간에 합의되었던 한중국제협력사업 프로젝트가 착수된 해였기 때문이다. 중국이 추진하는 직업훈련원 건설 프로젝트에 우리가 1천만 불 규모의 소프트웨어, 기술 인력과 장비를 중국에 무상으로 공여하기로 한 정부 간의 약속사업이 시작된 것이었다.
수천 년을 두고 중국 쪽으로부터 흘러들기만 했던 문물이 처음으로 역류해서 우리 쪽에서 그들의 쪽으로 흘러가는 하나의 기념비적인 사업이 시작되었다. 우리의 독자적인 인적자원과 기술이 중국 정부의 정책과 사업 추진에 제공되었다. 우리 정부가 중국 정부에 이른바 원조(援助)를 제공한 것이었다. 이 사업은 성공리에 완성되어 이 기관에서 연구되는 과제들이 중국의 인력개발 정책에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이 시설을 통해서 중국 내의 많은 직업훈련 교사들이 그들의 직능을 향상해 나가고 있다. 과거 오랫동안 중국으로부터 새로운 문물을 도입하고 그들의 영향 아래 있었던 우리로서는 감개무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이 우리의 서울을 방문하면서 느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자금성을 닮은 우리 경복궁의 궁궐 모습을 보고, 우리가 한자를 즐겨 쓰는 모습을 보고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 우리의 반만년이라고 하는 역사를 통해 한결같이 그들의 영향 아래에 있었던 우리가 뒤늦게나마 작은 획 하나를 그은 것이다. 중국 측에서 보면 크게 절실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이 사업을 중국은 그들의 자존심을 버리고 양국 간 우호 협력의 상징으로 그들 특유의 유연한 자세로 흔쾌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실리를 중시하는 중국인의 속성을 보여준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처음으로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내가 묶었던 곳은 중일청년교류중심(中日靑年交流中心)의 21세기반점(二十一世紀飯店)이라는 호텔이었다. 일본이 중국과의 우호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하여 중국 측에 제공한 종합건축물이었다. 그 호텔은 시설도 좋고 교통도 편리한 데다가 가격 또한 비교적 저렴하기에 일반 여행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이기도 했다.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중국 측에 제공한 기술이나 장비는 일본이 제공한 건축물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인들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는 사업이 아닐 수 없었다.
중국과의 국가 간 협력에서는 그 프로젝트 사업뿐만이 아니라 중국 서부지역에 나무를 심어서 산림을 가꾸는 사업 등 여러 가지 사업을 정부 간 협력 차원에서 꾸준하게 추진해 나오고 있다.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 중국. 그들은 우리와의 관계를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우리의 가까이에 있었고 또 앞으로도 더욱 가까울 수밖에 없는 나라가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다소나마 능력이 있을 때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돕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우리가 그간 그들로부터의 고통 또한 적지 않게 받아온 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또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들여오기도 하고 배워오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이제 새로운 역사가 써지기 시작한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중국이라는 나라와 그 사람들과의 관계를 되새겨 보고 더 열린 마음, 더 원대한 시각으로 그들과의 진정한 우정과 협력관계를 더욱 돈독히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2003.9.24.)
후기:
내가 중화민국 대만을 처음으로 여행한 지는 40년이 넘었고, 중국을 여행한 지는 30년쯤이 되었다. 중국 여행기를 쓴 지는 20년. 강산이 여러 번 바뀐 세월이다. 그간 대만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중국의 경우에는 너무나 많이 변한 느낌이다. 눈부신 속도로 경제가 발전한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빚어진 중국 사회의 변화 또한 작지 않아 보인다. 자본주의를 본뜬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권위와 독재 정치가 이어지고 있고 경제는 성장하지만, 그 불균형이 커지고 있다. 허울뿐인 공산 이념의 추구 속에서 사회적 기반이 크게 훼손되고 전통의 문화적 가치가 상실되는 변화를 겪고 있다. 또 서둘러 중국의 옛 영화를 찾고자 하는 과도한 욕심이 여러 부작용과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오늘의 시점에서 중국을 바라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2023.10.5.)
첫댓글 어떤 육사 졸업생 중에 조선 시대의 알아주는 양반 가문에 태어나 그 전통에 짓눌린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분이 있었지요. 육사 선배를 보고도 저 친구의 할아버지는 우리 집안의 머슴을 살았다고 말하며 선배를 경멸하는가 하면, 그 선배에게 선배 대우를 하기가 싫어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하곤 하였지요. 결국 그 분은 현실 사회에 적응을 못하고 말더군요.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수천 년 제후국으로 깐봤을 한국에 대등한 높이로 서기가 싫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주제 파악이 안 되는 태도겠지요. 중국이 어떤 마음으로 한반도를 보는가 그 시각에 따라 동아시아의 미래가 크게 달라지리란 생각이 듭니다.
순우글 후기에 공감합니다.공산주의
는 필망이며 모든 인류보편적 가치
를 파괴합니다
시진핑 독재에 사는 중국인민
들이 불쌍합니다
세계의 중심이 되겠다는 각오는 좋지만, 드러내놓고 우리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호언장담하면서 외국을 깔보려는 태도는 경망하기 그지없지요. 남이 인정해 주는 중심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 외교, 문화 측면에서 호혜의 원칙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개인적 라떼도 우습지만 국가적 라때도 천박하지요. 세계인은 오늘날 중국인을 어떻게 보는지 현실을 직시하는 안목을 가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인만큼 보다 폭넓은 전략적 사고를 가지고 접근해야 할 듯합니다. 냉탕과 온탕을 오르내리는 묘한 관계 속에서 우리의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게 뭔지? 단 한 가지 지켜야할 것은 우리의 자유민주체제를 훼손하는 그 어떤 방해공작에 넘어가서는 안되겠지요.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드러난 다음과 네이버 포탈을 이용한 중국의 우리 내정 간섭 추정 건은 확실히 원인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내년도 총선에 영향을 줄 수가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