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아 목사님 말씀 중).
수6:26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27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니 여호수아의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 |
과거에 성경을 보았던 관점은 어떤 것은 나에게 어떤 것은 불신자들을 하는 말씀이라 착각했다.
노아 홍수나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사건도 창조과학 관점으로 불신자들에게 사실적인걸 증거하기 위한 거였다.
여리고성은 나 자신으로 여리고(달= 율법), 자기 힘으로 하는 열심인데 이런 쪽으로 보지 못했다.
이것이 마귀적이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물질적인 가치관으로 가득 찬 시선인데 이 관점으로 성경을 봤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모든 기준이 지각이 깨져야 된다.
우리는 인생이 아니라 영생으로 가려면 모든 하는 일이 망해야 그래야 진짜 영을 찾는다.
우리는 유아기적 사고에 머물길 원하는데 그러면 절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관점이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요 하나님이요 영적인 거라면 아 이렇게까지 해야 해! 나올 수 없다.
우리는 육적으로 본성이 편안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부대낌과 고난과 환란 없이는 절대 진리로 갈수 없다.
어떤 목사님의 글에 진리가 실제가 될 때까지 계속 충돌하라!
우리는 충돌하면 아프니까 충돌을 피하려 하는데 그것 없이는 진리가 실제가 안된다.
고통속에 방황하는 내 마음 주께로 갈 수 없지만 저항할 수 없는 그 은혜로 주님의 길을 걷게 하소서
이 가사처럼 주님 은혜를 주셔서 끝까지 가게 해달라는 고백이 여러분에 마음에 충만하길 소원합니다.
고통과 고난과 이 충돌을 통해서 우리 영혼 깨끗하게 되고 고침 받는다.
진리의 말씀에 충돌하여 내 심령 가운데 흔적이 된 진리의 말씀 만이 우리를 변질되지 않고 끝까지 인도한다.
여러분은 힘들 때 어떤 말을 듣기로 원하세요?
정말 성령을 받으면 받을수록 객관화가 되고 편협한 자기중심적 이기주의적인 사고관이 깨어진다.
모든 것을 편벽됨이 없이 보는데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그때 정당한 재판이 이루어진다.
나를 공의로 나를 심판해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철저히 나를 위한 속성 있다는 것으로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져야 한다.
제가 다니는 체육관에 절대 소리 내지 않기!
왜 운동을 하면 소리를 낼까요? 나를 들어내기 위한 것으로 그게 보여져야 된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소리에 나 좀 알아줘! 이게 담겨 있다.
나의 모든 습관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져야 한다.
신음소리 하나까지 나를 인정해 주고 나를 알아주기를 원하는 것으로 우리 머리에서 발 끝까지 채워져 있다.
율법의 속박이 아니라 나에게 이게 있었네 나를 자꾸 발견하고 그걸 인정해 버리면 자유하다.
그래서 피가 터지게 싸우고 신음하고 씨름하고 율법으로 인해 죄책감 속상해하고 에너지를 쏟고 다시 기도하여 회복하고 넘어졌다 일어섰다 하면서 새긴 흔적이 바로 십자가로 말씀이요 진리다.
자기 사랑으로 생긴 상처 말고 십자가의 흔적이 많이 생겨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원합니다.
군사
군사(먹다+ 에노쉬,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 나는 혼자 설 수 없는 자가 군사다.
딤후2:3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우리는 충돌을 안 겪고 진리의 사람이 되려 하는데 고난 받는 게 당연하다.
4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자기 생활은 자기 생명, 자기 생계, 자기 선. 자기(자아)를 말하며 이것을 빼야 한다.
기쁘게 하려 함이라(일치하게 되다) 그분과 일치하게 될 때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거다.
그분은 하늘인데 우리는 땅적 존재로 자아도 육적 속성도 안 빼고는 그분의 뜻을 안다는 것은 거짓이다.
우리는 군사 이면서 나팔 부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언약궤를 가지고 가야 한다.
고난을 겪고 그분과 일치되게 하는 게 군사로 그때 그분의 뜻을 안다.
딤후2:9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복음으로 고난을 받은 것으로 진리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고난 받은 것이며 그 안에 들어가면 자유다.
10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원한 영광과 함께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하여,,,
11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함께 죽으면 산다는 것으로 전제조건이 먼저 죽었으며!
12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참으면(휘포메노. 밑에 머무르다, 인내하다, 견디다). 그리스도 진리 십자가를 붙잡고 인내하는 거다.
이것이 군사의 특성으로 이런 군사가 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원합니다.
수6:8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나아가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9그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행진하며 후군은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더라
배열 순서. 군사-> 나팔 부는 제사장-> 언약궤 맨 제사장-> 군사.
이렇게 매일 한바퀴씩. 이게 창세기에 첫째 날이 되니. 한 바퀴 도는 것. 둘째 날이 되니, 이게 두번째날 도는 것.
창세기에 있던 일이 똑같이 여호수아에 일어난 것으로 내 안에 여리고성이 무너져야 한다.
창세기는 내가 진리의 사람이 되는 창조라면 여호수아에서는 한바퀴씩 돌면서 내 안에 악이 무너지는 거다.
앞뒤로 군사(적군의 공격을 막는다)가 따라 가는데 여리고 성을 도는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말라한다.
오직 나팔소리만 들리며 계시록에 나팔소리가 들리니 재앙이 떨어진다.
심판없는 구원은 없으며 심판을 건너뛰는 것 아니고 심판을 다 받고 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원합니다.
언약궤 안에 있는 3가지는 다 인간의 죄성 곧 나의 본성이 있다.
나의 본성 나로서는 도저히 선할 수 없는 본성을 시은좌 가 덮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가 덮는다.
예수 그리스도로 덮은 사람은 자기의 본성을 절대 잊지 않는 것으로 언약궤는 니 본성 잊지 마! 이거다.
그런데 언약궤를 통하여 우리의 본성을 안 보고 하나님의 능력만 본다.
능력만 봐서 쫄딱 망한 집이 엘리의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로 한날에 죽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 한다.
언약궤의 본질적인 의미는 나를 절대 받을만한 것이 없으며 주님이 덮어줘야 해,,, 이거다.
그런데 그것에 나타나는 부수적인 능력만 봄으로 언약궤만 있으면 전쟁에서 승리해! 하다가 망했다.
언약궤를 부적으로 만들어버린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도 우리가 부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의 죄성을 못 보고 껍데기 하나님의 능력만 보고 하나님은 다 행하실 수 있습니다 이게 부적 신앙이다.
우리를 살리려고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고 그대로 아무 소리도 안 하시고 무능력하게 죽은 주님은 안본다.
남편도 퇴직하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다. 돈을 벌어줘야 하는데,,, 남편을 돈 버는 부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남편이 불쌍하게 여겨져야 한다. 곧 남편에게 대하는 마음이 하나님 대하는 마음이다.
내 부모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 모든 것이 다 말씀으로 들려야 하며 자기 속이 보여야 한다.
자기 좀 귀찮게 하고 자기 불편하게 하면 싫은 것으로 세 번 밥 차려주는 것도 싫어!
못된 거잖아요! 그것 아니라는 것으로 그때마다 나를 달아보는 거다.
아휴 아휴~~~ 내가 이런다!!! 그게 기도다.
여리고 성을 다시 건축하지 마!
여리고성(율법 자기 힘으로 하는 모든 것). 이 종교 행위를 다 무너뜨리려 예수님이 죽으신 거다.
여리고성이 무너졌다는 것은 헤롯 성이 무너진 거다.
갈2:18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과 함께 십자가에 죽은 것으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으면 다시 세우지 말라는 거다.
19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여리고 성이 무너짐으로 우리 종교생활 내 힘으로 하는 것이 무너져야 곧 죽어야 다시 산다는 거다.
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1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여리고 성을 세우면 그리스도가 헛되이 죽은 것으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지 마!
너를 지성소로 데려 가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로 죽었으니 다시 성소로 돌라가지 말라는 거다.
갈3:3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육체가 종교 생활하는 것은 성소로 불신자가 아니고 나를 말하며 끝까지 지성소로 가라는 거다.
끝까지 성령으로 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원합니다.
여리고 성을 다시 세운사람.
왕상16:34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그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다시 건축하였는데 벧엘은 하나님의 집으로 저와 여러분을 말한다.
히엘- 하나님의 능력이 부각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 곧 언약궤를 부적으로 삼은 사람이다.
혼의 신앙은 인정 칭찬 화려함 아름다운 은사사역으로 사람들이 그것을 원함으로 뿅 가버린다.
하나님의 집을 만들어야 할 사람이 여리고 성을 건축한 것이다.
아비람(높음의 아버지, 고상한). 고상하고 높아지는 것 좋아하는데 이것이 죽었다는 거다.
스급(높은 곳에 위치하다). 다 높은 자리 화려한 것 원함으로 여리고성을 짓는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가게 되어있다.
어느 시대
왕상16:30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31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32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33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여리고 성을 쌓는 것이 바알을 위하여 재단을 쌓는 것과 같다는 거다.
그리고 이방 여자인 이세벨과 합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여리고 성이 완전히 무너지고 다시는 쌓지 말아야 한다.
벧엘의 이름대로 하나님의 집을 진리의 터 위에 진리의 집을 계속적으로 짓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