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야기-김영배, 울긋불긋 단풍이네
2019년 5월 2일 목요일의 일이다.
오후 1시쯤 해서, 서초동 우리 법무사사무소 ‘작은 행복’으로 나를 수신인으로 한 소포 하나가 배달되어왔다.
내 중학교 동기동창인 김영배 친구가 발신인이었다.
얄팍하긴 했지만, 그래도 두께감이 있는데다가, 시조시인인 그 친구의 이력으로 봐서, 그 내용물이 무엇인지 곧바로 짐작됐다.
역시 그랬다.
‘울긋불긋 단풍이네’라는 제목을 붙인 시인의 생애 세 번째 시조집이었다.
그 제목만으로도 따뜻한 심성으로 한 편 한 편 시조를 읊었을 시인의 마음풍경이 짚어지고 있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2018년 가을에 썼다는 ‘자서’가 맨 먼저였다.
다음은 그 글이다.
알겠네
어디인지
생을 걷다
돌아보니
씌워진
굴레있어
삶 따로
마음 따로
어쩌리
석양은 짙어
고쳐갈 수
없으니.//
그 글에서 나는 시인의 작은 회한을 짚어냈다.
그렇다고 새 길을 따로 낼 수 없는 아쉬움도 짚어냈다.
시인은 ‘가는 봄’에 ‘감자꽃 추억’에 ‘傷痕’ 해서 3부로 이어간 시조집에, 모두 74편의 시조를 담아놓고 있었다.
다음은 1부 ‘가는 봄’의 첫 편인 ‘단풍’이라는 시조 그 전문이다.
천 리
천 리
또 천 리
단풍 고운
삼천리
하늘꺼정
자꾸 높아
이 강토를
태우는데
달래 둔
그리움 깨워
긴 편지를
써 볼거나.//
물든 단풍 이파리 풍경을 보면서 가슴 속에 묻어뒀던 그리움을 깨워내는 시인의 서정이 참 따뜻하게 내 가슴에 담겨들었다.
시인은 그렇게 자연의 한 풍경 한 풍경, 일상의 한 조각 한 조각을 한 수 시조로 읊어내고 있었다.
다 알겠는데, 그 뜻을 알지 못하는 제목이 딱 하나 있었다.
33쪽에 실린 ‘사미니’라는 제목이었다.
시조를 읊어보면 알까 싶어서, 먼저 그 시조를 읽어봤다.
그 전문이다.
먼 하늘 바라보다
산창 닫고 등 돌려도
未忘의 통증으로
그렁그렁 고인 번뇌
소쩍새 몇 봄을 울어야
세월이 약이 될까요.//
누군가 안타까운 그 삶이 담겨 있다 싶었지만, 정작 그 누군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국어사전을 펼쳐봐야 했다.
한문으로 ‘沙彌尼’라고 했고, 그 풀이는 이랬다.
‘불문에 든 지 얼마 안 되는, 수행이 미숙한 여승.’
그 풀이를 보고서야, 내 그 안타까운 사연의 실체를 알았다.
덕분에, 인생사 세상사 또 한 수 배웠다.
‘울긋불긋 단풍이네’라고 해서, 시조집의 제목이 된 시조도 있었다.
다음은 67쪽에 실린 그 시조 전문이다.
안위는
던져두고
彈雨속으
헤맨 날들
먼 길 온
관절만큼
시큰대던
애증조각
나침반
바늘도 떠는
명운의
갈림 길들.
저 여름
풍경화에
청운의 꿈
그린 날들
창가에
턱을 괴던
천사만고
영과 제도
내 한생
차린 정원에
울긋불긋
단풍이네.//
이 시조를 읊으며, 울긋불긋 단풍 물이 든, 내 인생길의 조각조각들도 되돌아 봐야 했었다.
시인의 시조 한 수 한 수에는 그렇듯 수없이 고갯길과 굽잇길을 지나쳐온 우리들 인생의 의미가 푹 녹아 있었다.
시인은 맨 끝 시조로 ‘새재별곡’을 싣고 있었다.
다음은 그 전문이다.
옛 얘기 지줄대는
새재골 구비 돌아
분수령 마루에 서면
주자장 지둥소리
선조들 호국의 넋이
어깨 결은 조령관.
長松도 고개 숙여
수모의 한 삼키고
산죽잎 그 옛날을
서걱서걱 창칼 갈아
옛 상처 투구로 쓰고
결연히 선 조곡관.
역사는 세 관문을
호국터라 적었지만
독도를 탐하는 倭人
벼르쟁이 못 고치니
치켜든 주흘관 附椽
장검보다 시퍼렇다.//
이 끝 시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지둥소리’와 ‘附椽’이라는 대목을 따로 확인해봐야 했다.
Daum사이트 검색 결과, ‘지둥소리’는 ‘땅이 울리고 갈라지는 소리’라고 했고, ‘附椽’은 ‘부연’이라고 읽고 그 뜻은 ‘처마 서까래의 끝에 덧얹는 네모지고 짧은 서까래. 처마가 번쩍 들리게 하여 모양을 내기 위해 씀. 며느리서까래.’라고 했다.
그렇게 고향 사랑,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내고 있었다.
이심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시조를 읊는 내내 다른 시 한 수를 떠올렸었다.
정지용의 ‘향수’, 바로 그 시였다.
다음은 그 전문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거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까마귀 우지 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첫댓글 손녀에게 장난감 사준다는 자네글 읽다말고 지금까지 뭘?핸지도 모리게 기냥 정신 없었어~
삼강을 간지?안간지? 흔적이 없이 나답지 않아 나도 내게 실망시레...지고리...쩝
여러가지로 역활을 못해 미안허이^^
토요일은 억지로 우겨 임당을 나갓는데 안나간것만 못한거라....향수, 이노래도
힘이..파워가 받쳐주어야 절대 조껀,
아무튼 동서남북 애쓰고 설치는 자네의 정열이 그정열이 다시 글로 옮겨지는 과정의 힘이
또 느껴지네!~^^매번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