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의 변
모임에 나가지 않고, 정기구독하던 잡지를 더는 구독하지 않고, 누군가를 만나보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고, 곧 죽을 사람처럼 주변을 정리하고…세상으로부터 마치 자신을 유배시킨 듯 산다고 해서 잘못되었다 할 나이는 아닙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이제는 그렇게 하겠다는 말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을 하기는 했어도 문득 떠올랐다 지나가는 생각이었습니다. 실천할 만한 용기도 없었습니다.
삶이 귀찮아진 것도, 갑자기 의미를 잃은 것도 아닙니다. 몸과 마음 모두 그렇게 살 때가 왔다고 일러줍니다. 얼핏 떠오르는 대로 설명하자면 우체통에 꽂힌 우편물을 가지러 가는 일, 모임에 가려고 행장을 갖추고 차를 타고 전철역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걷는 일, 입지 않는 옷을 걸어두고 보는 일 등이 지금의 삶과는 동떨어진 듯해 왠지 서먹합니다. 예전처럼 새로움을 가져다주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낯섭니다. 지금쯤이라면 그야말로 희망다운 희망이 있을 리 없고 희망을 찾으려고 뭔가 계획하고 좇을 일도 없습니다.
등산하다가 제각각 오른 자리에 앉아서 세상을 내려다봅니다. 이것을 일컬어 관조(觀照)라 할 만한데 의당 관조에는 장래를 논할 조목(條目)은 없습니다. 그러니 장래에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겠다고 하는 것은 관조하는 이에게는 당치 않습니다. 오히려 관조는 그 반대여서 반성을 거듭하며 그간의 삶을 정리하고 또 정리해 가는 것이 관조하는 이의 덕목입니다.
시대에 어울리거나 앞서가지는 못해도 카페에 모아둔 음반, 책만으로도 오래된 친구를 만나듯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다면 시간을 보내기에 부족하지 않습니다. 또한 곁에는 이십여 평 남짓한 밭이 있어서 무료함을 견디기에도 좋습니다. 말년에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종산에 계신 부모님께도 다녀오고 신천 가를 유유자적하며 무료함을 달래겠습니다. 신간을 보며 지식을 늘려본들 크게 쓸모가 없습니다. 새 옷을 사 입고 갈 곳도 없습니다. 깨끗이 손질해 입은 옷이 새 옷에 못지않습니다.
나는 세 가지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데 하나는 고등학교 선후배들이 만나는 60년 된 모임이고, 다른 하나는 중학교 동창 여섯과 만나는 모임이며, 마지막으로 스무 해쯤 된 문학회 모임입니다. 그 밖에도 한두 군데 모임이 더 있기는 합니다. 앞선 두 가지는 얼굴만 봐도 좋은 그야말로 유유상종(類類相從)한 친구들과의 만남이니 거스르거나 멈춰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나다닐 수 없을 때까지는 만나게 될 것입니다. 문학회 모임은 소명처럼 받들어온 모임이어서 그야말로 그곳에 뼈를 묻어도 좋을 모임입니다. 내 고장 문학의 발판이 되기를 바라면서.
먹는 일도, 사는 일도 시들해진 때에 세상일에 기웃거리는 것은 제 분수를 모르는 일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볼 때 보호받아야 할 늙은이, 거들어 주어야 할 사람, 말을 거스르지 말고 비위를 맞추고 지나가도 탓할 일 없는 사람, 내일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는 오늘 안녕하신가를 걱정하고 마는 그런 사람이 되고 만 지경입니다. 그러할진대 세상일에 참견하고 훈수를 한다고 해서 더 훌륭하다거나 끝까지 제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칭찬받을 일은 없습니다.
아무 소리 말고 동시대를 살았던 선후배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선현들의 일갈을 음미하며 책을 읽는 일은 구차하지 않아 좋습니다. 그러다 그도 시들해지면 밭에 나가 풀을 뽑습니다. 마침 눈이 침침해지고, 귀도 잘 듣지 않고, 생각의 예리함도 늦가을 된서리 맞은 덩굴처럼 폭삭 주저앉아 무뎌졌으니 그 빛나는 시절은 가고 말았습니다. 할 일이 남았다면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고, 스스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두어 그렇게 해야 할 때가 오면 거침없이 세상을 뜨는 일입니다.
정기구독하던 잡지도 모두 구독 기간이 끝나면 더는 구독하지 않겠습니다. 혹시 여윳돈이 생기면 차라리 잡지사에 보내 수필 발전에 보탬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더는 최근의 경향을 알거나 몇몇 작가의 글을 보기 위해 잡지를 구독해 읽지는 않을 작정입니다.
내 생각이 그렇게 하는데 제격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거치적거리는 것을 걷어내고 나면 한결 삶이 간편해질 것이어서 작정해봅니다. 요즘은 어디론가 며칠 여행을 떠날 때도 집안을 둘러봅니다. 그럴 리 없어도 혹시 돌아오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어지럽힌 것은 없는지 살핍니다. 옷장만도 그만두었고,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남긴 것을 치우는 불편함을 남겨두기 싫습니다.
그것이 정리의 변입니다. 한때는 세상이 나를 알아주기를 소망해 이런저런 일을 저질러 보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희망 없는 일에 기운을 빼지 않습니다. 칠봉산 자락 어딘가로 숨어든 늙은 올빼미처럼 살다가 스러지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 겨울 칠봉산이 유독 가깝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