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의 푸른 꿈 / 이난영
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
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 이난영 노래
내뿜는 담배연기 끝에 흐미한 옛 추억이 풀린다
조용한 다방에서 뮤직을 들으며 가만히 부른다
흘러간 옛 님을 부르누나 부르누나 사라진 꿈을
찾을길 없어 연기를 따라 헤매는 마음 사랑은 가고
추억은 남아 블루스에 나는 운다
내뿜는 담배연기 끝에 흐미한 옛 추억이 풀린다.
새빨간 장미 향기 끝에 흘러간 옛노래가 그립다
고요한 찻집에서 울리는 멜로디 가만히 듣는다
그님의 숨결을 울리누나 울리누나 흘러간 행복
잡을 길 없어 불빛을 따라 잠기는 마음 청춘은 가고
상처만 남아 불루스에 나는 운다
새빨간 장미 향기 끝에 흘러간 옛 노래가 그립다.
가수 이난영(李蘭影)
이난영(본명 옥례.1916. 6. 6.~1963. 4. 11.)은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다.
1923년 목포공립여자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4학년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졸업을 못하고
중도에 자퇴했다.
어머니와 제주도에서 곁방 생활을 하던 중 극장을 경영하는 주인의 추천으로 순회공연을
하던 삼천가극단 막간가수로 노래를 부르게 된다.
여기에서 노래실역을 인정받아 1932년에 목포의 극단 태양극장에 입단하면서 무대에서
정식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이난영이라는 예명도 이 무렵 박승희가 붙여 주었다.
1933에는 태평레코드에서〈시드는 청춘>을 오케레코드에서는〈향수>를 발표하여
정식으로 데뷔하면서 1943년까지 오케레코드사의 사장 이철의 눈에 들어 전속가수로
활동하며 오케의 간판 스타 역할을 했다.
1935년에 일제 강점기 최고의 인기곡이자 한국 가요사의 불후의 명곡으로도 불리는
〈목포의 눈물〉을 발표하면서 가왕(歌王)이라 불릴 만큼 높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
비음이 섞인 경쾌한 창법이 특징이며, 트로트와 신민요를 비롯하여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에 모두 능했다.
1936년에는 오카 란코(岡蘭子)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음반을 발표하였고 1937년에
가수 겸 작곡가 김해송과 결혼하였다.
이난영은 천재적 음악인이었던 김해송과의 결혼 이후 남편이 작곡한 노래를 부르면서
전성기를 보냈고 오빠 이봉룡도 김해송의 지도를 받아 유명한 작곡가가 되었다.
태평양 전쟁 종전 이후에는 무대 활동에 주력하면서 김해송이 이끄는 KPK악극단에서
활동하였는데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김해송이 실종되어 혼자 자녀들을
키우면서 어려운 생활을 해야 했다.
1958년 동료 가수 남인수가 이혼한 뒤로는 사실혼 관계로 지내다가 1962년 남인수가
사망하여 다시 혼자가 되었다.
1963년에는 미국에 건너가 딸들이 결성한 그룹 김시스터즈와 함께 공연을 하였고
1965년 삼일절 기념공연을 마지막으로 서울 중구 회현동에서 사망했다.
-----남인수와 이난영 이외 연예인들-----
목포의 눈물로 대변되는 이난영의 “다방의 푸른 꿈“인 이 노래는 우리나라 최초로
트롯트가 아닌 블루스 음계로 쓰여진 곡으로 당시에는 짜스 (째즈)라 부르고는 했다.
가사는 6.25이후 월북한 작가 조명암이 곡은 당대 천재음악가라 불리어지던 이난영의
남편 김해송이 작곡한 노래이다.
우리는 흔히 이 난영을 떠올릴 때 긴 저고리치마를 입은 얌전한 모습을 연상하고는 한다.
그런데 이 노래를 부르던 이난영의 모습은 어떠하였고
서슬 퍼런 일제하에서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째즈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 당시 이 난영은 이런 재즈 곡등을 노래할 때 몸의 라인이 그대로 노출되는
우단 (비로도) 드레스에 담배를 꼬나물며 아주 요염하게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쳤던 김해송과 이난영. 그리고 남인수에 얽힌 3각관계
그리고 또다른 여인의 운명적 사랑이야기와 더불어 일제와 6.25가 그들에게 안겨준
씻을 수 없는 상흔은 이난영의 기구한 인생을 엮어 나갔다.
이난영의 아버지는 철공소에서 일을 했으며 술꾼이었다고 한다
이에 견디지 못한 어머니는 이난영이 초등학교 시절에 집을 나와 제주도의
식모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난영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초등학교 1학년과 3학년 때 각각 재수를 하였고
성적은 신통치 않았으나 지금의 음악과목에 해당되는 창가 (唱歌) 만큼은10점
만점에서 늘 9점 이상을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진다.
하지만 아버지의 술로 인한 폭압에 오빠 이봉룡은 동생을 어머니가 계신 제주도로
보내기로 결심을 하고 이난영은 이때 학교를 자퇴하고 어머니가 식모로 일을 하고 있는
제주도로 거취를 옮기게 된다.
그곳에서 이난영은 인생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닥트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