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고등학교 홍성희 교사
서산고 홍성희 교사는 제자들의 명문대 입학을 위해 힘쓴다. 그가 생각하는 명문대는 남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이 아니라 ‘아이들이 가고 싶은 대학’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찾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인정받으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홍 교사는 10년 전부터 직접 진학 지도를 하고 방과 후 수업과 야간 자율 학습을 강요(?)하며 아이들을 이끈다. 급식 없는 방학에는 교무실에서 손수 밥을 지어 먹이며 아이들의 미래를 닦아나가는 ‘불도저’ 선생님이다.
취재 김지민 리포터 sally0602@naeil.com 사진 오병돈
봉사 시간 없는 봉사 활동의 의미
충남 서산고 홍성희(58) 교사는 얼마 전 학생들과 함께 1천 포기의 김장김치를 담가 동사무소를 통해 독거 노인, 장애인, 지역 공부방에 전달했다. 벌써 24년째 계속해온 일. “처음에는 친구를 도와달라는 학생의 부탁을 받고 김치를 담근 것에서 시작된 일이에요. 열심히 선생님을 돕는 제자를 보며 봉사를 학생 생활 지도에 접목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지요.” 이렇게 몇 포기로 시작한 김치 봉사는 점점 커져 7, 8년 전부터 1천 포기가 됐다.
흔한 절임 배추도 쓰지 않는단다. 배추를 나르고 자르고 절이고 씻어 물을 빼는 일, 김칫소를 썰고 양념을 버무려 속을 채우는 과정을 학생들과 홍 교사는 꼬박 이틀 동안 해낸다. 추운 날씨에 이틀을 꼬박 고생하니 학생들은 적어도 8시간의 봉사 시간을 ‘획득’ 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에 봉사 기록은 남기지만 봉사시간을 주지는 않아요. 봉사 시간을 주면 순수한 봉사 정신이 아닌 점수를 위해 참여하게 되니까요.” 김장 봉사 때 먹는 점심 식사 비용도 학생들이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이렇게 김장이 어려운 줄 몰랐어요. 엄마가 언마나 힘든지 알 것 같아요.”
“이 김치를 받고 맛있게 먹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작은 힘이 모여 큰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김장 봉사에 참여한 아이들의 소감도 다양하다. 아이들이 얻은 이 느낌은 고스란히 아이들의 학생부와 자기소개서에 녹아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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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과의 전쟁 같은 사랑
홍 교사는 학생들과 함께 봉사 활동을 하며 아이들의 인성을 키우는 것은 물론 학생의 진로 진학에도 깊은 정성을 쏟는다. “우리 학교의 선생님과 아이들 모두 상처가 많아요. 학비 지원 대상자 비율도 높고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를 떠나야만 하는 학생도 많으니까요.” 어려운 가정환경, 자존감 낮고 꿈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엄마 같은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홍 교사는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입학 때부터 담임과 학년부장을 겸하며 3년을 함께한다. 함께 호흡하지 않으면 아이들과 선생님의 고충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2학년은 입학 당시에는 ‘문제 학년’이었지만 지금은 학교에서 ‘가장 괜찮은 학년’이란 평가를 받는다. 비결은 일대일 맞춤 진로 지도. 1학년 학기 초부터 개인별 상담을 통해 학생과의 공감대를 만들고 학생의 적성에 맞는 학과를 찾아 관련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렇게 3년 동안의 진로 파일을 만들어 대입 자료로 활용한다.
방과 후 수업 진행은 물론 1학년은 꿈의 대학 탐방, 2학년은 희망 대학 탐방, 3학년 선배가 다니는 대학 경험하기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희망에 맞는 대학을 선택하고 준비할 수 있는 동기부여에도 힘을 쏟는다. “시골 학교는 수시 지원이 대부분이라 학생부와 자기소개서가 더 중요한데도 막상 쓰려면 내용이 없다는 것이 아쉬웠죠.”
시골 학교, 공교육의 힘을 보여 주마
처음에는 야간 자율 학습을 실시해도 신청하는 학생이 별로 없었다. 학생과 학부모 설득도 홍 교사의 몫. “별명이 ‘약장수’예요. 내가 말하면 다 듣게 된다고 학생들이 지어준 별명이에요. 하하하. 자신의 미래를 이유와 근거로 삼아 설명하니 잘 따라오는 것 같아요.”
홍 교사가 특별히 더 공을 들이는 것은 심층 면접. 농어촌 전형과 학생부 종합 전형, 교과 전형으로 수시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심층 면접은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지역에 면접 전문 학원도 없고, 도시로 가자니 비용이 만만치 않죠. 학교에서 준비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방학 보충 기간에는 교무실에서 밥을 지어 먹이며 학생들을 관리한다. 시간이 늦어지면 학생들의 ‘운전기사’ 노릇도 마다하지 않는다. 홍 교사의 제자 사랑은 학교의 경계도 없다. 서산고뿐 아니라 인근 고교 3학년들의 면접 지도도 기꺼이 한다. 지역 내 중학교 3학년들에게도 기회만 되면 대입 관련 정보를 전하고 준비시키려고 애쓴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그가 근무하는 학교마다 시골 학교로서는 놀라운 입학 실적을 올리고 있다. 노력을 인정받아 2009년 교육부와 EBS가 주최한 ‘공교육 살리기’ 학생 지도 분야 우수상, ‘2014 올해의 스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파란만장 홍 선생님
“저 자신이 공교육의 수혜자예요. 음악을 잘하고 좋아했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따로 교육을 받을 수 없었어요. 그때 학교 음악 선생님께 피아노를 배워 음악교육학과에 진학했고 음악 선생님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으니까요.”
교육자면서 동네의 어른 역할을 한 아버지의 영향도 컸다. ‘동네의 스승’이었던 아버지를 보면서 교육자의 자세와 책임을 배웠다. 지금은 ‘뼛속까지 선생님’이지만 젊은 시절 그는 수녀를 평생의 길로 여겼단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딱 3년만 아이들을 가르치자고 들어선 교직이 평생의 길이 되었다. 전교조 해직 교사로 서산 YMCA, 서태안환경운동연합 등의 창립을 도우며 시민운동을 했다. “그 시간 많은 반성을 했어요. 밖에서 보는 교사의 모습이 어떤지 확실히 알 수 있었죠.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더 친절해야겠다는 생각.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결심도 다질 수 있었고요.”
홍 교사는 그동안 ‘여한 없고 후회 없는’ 교직 생활을 했다고 고백한다.
정년이 얼마 안 남은 홍 교사의 꿈은 무엇일까? “정보가 부족해 방법을 모르거나 환경이 어려워 미리 꿈을 접은 아이들의 진학과 진로 설정을 도와주고 싶어요.”
홍 교사의 시골 학생 진학 지도 계획은 미래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