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울주문화원의 마당놀이 망부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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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演劇)을 지칭하는 말로는 짓, 판, 거리, 마당, 굿, 놀이 등이 있다. 짓은 손짓, 발짓, 몸짓처럼 의사소통을 매개해주는 원초적인 동작을 뜻하므로 연극(drama)의 근원적인 의미인 의사소통의 행위를 잘 짚어주는 말이다.
판은 '판에 박은 듯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일정한 틀 속의 짜임새를 뜻하는가 하면 이판사판, 씨름판처럼 치열한 그 무엇이 일어나 판벌임 끝에 죽을 판 살판 판가름을 내는 편싸움으로서의 연행 현장을 의미한다. 그리고 격투기 같은 경기에서 '삼판양승'이라거나 '누르기 한판'처럼 판은 한 묶음의 과정(過程), 과장(科場), 한 단락, 매듭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판은 '한거리 놀고 갑세'라든가 '무당굿 열두 거리'의 '거리'와 함께 쓰인다. '판'이나 '거리' 둘 다 각종 내기나 겨루기, 걸쭉한 볼거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연희(演戱)상황을 뜻하지만, '거리'는 '마당'에 좀 더 가깝고, 어감상으로 보면 '거리'보다 '판'이 좁혀 옹그러진 핍진감이 있어 훨씬 생동감이 있고 현장감이 강렬하다고 하겠다.
'마당'이라는 마당은 이러한 짓거리가 한판 벌어지는 역동적인 동참의 상황 현장(field)이다. 그러나 본래는 일터, 쉼터, 놀이터, 만남의 자리 등 삶의 현장을 이른다. 그리고 '마당'은 정세, 형국, 처지, 정황, 판국처럼 맞닥뜨려 실제로 부딪치고 있는 시공간적 현실 상황 국면이란 뜻을 갖고 있다. 속된 것과 거룩함이 넘나드는 우리의 연행 현장인 '마당'은 일상적인 것이 거룩하다는 것을, 그리고 일상의 사소한 것이 구원의 토대이자 출구임을 일러 준다. 어느 한 마을에서 굿판이 벌어지는 마당은 평소에는 일상적인 공간이지만 굿터로 정해지면 각종 금기가 지켜지는 성스러운 곳으로 바뀐다.
굿판이 벌어지면 일상적 금기가 거꾸로 뒤집어지는 반란과 혼돈이 일어난다. 그리곤 굿이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한 마당을 두고 속된 곳에서 거룩한 땅으로 그 넘나듦이 자유로운 것이다. 그러기에 '마당'은 우리에게 성속(聖俗)이 넘나드는 틈서리다. 연극의 기초도 굿에서 마련됐고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연극의 기원이 이러한 것에 연유되어 있다. 굿에서 극으로 진전되어 온 현대의 연극은 이러한 원초연극성(Ur-Dramaturgie)의 회복에 있지 않나 싶다.
며칠 전 '망부석'이란 주제로 울주문화원에서 울주청소년이 만든 마당극을 문화 소외지역인 두동면 만화리에 위치한 치산서원(박제상 유적지)에서 열려 동네 어르신들은 물론 면장, 이장, 어린 초등학생들까지 모여 초만원을 이루었다. 울주군의 전통설화를 이해하고 향토애와 역사성 고취는 물론, 망부석과 연관이 있는'치산서원'에서 공연을 함으로써 문화소외지역에 문화 향유권 신장을 도모하기도 했다.
'의미 없는 곳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마당극은 우리가 살고 있는 터 안에 마당을 매개로 하여 인간의 기본적 문제뿐만 아니라 온갖 문명사적 문제를 함께 포함하여 펼치는 표현의 장이었음을 이해했으면 한다.
임 석 시인 울주문화원 사무국장
-경상일보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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