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 2004년 6월 23일(수) 이른 10시 곳 : 동원 모인사람 : 도서관 모둠원 함께 읽은 책 : 꿈을 먹는 요정(미하엘 엔데/시동주니어)
미하엘 엔데의 작품 중 그 세 번째 시간이다. [꿈을 먹는 요정]은 '단잠나라'의 잠 못 드는 공주에 대한 이야기이다. 단잠나라 사람들은 '잠을 잘 자는 사람은 마음도 따뜻하고 정신도 맑다'고 생각하여 잠을 가장 잘 자는 사람을 왕으로 뽑는다. 그런 나라에 그런 왕이건만 정작 왕의 딸 '단꿈공주'만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악몽을 꾸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이에 왕은 단꿈공주를 도와줄 사람을 찾아 나섰다가 악몽을 먹어치우는 '꿈을 먹는 요정'을 만나게 된다. 그 후로 악몽을 꿀까 봐 겁이 날 때면 꿈을 먹는 요정을 초대하는 주문을 외워 요정을 부르게 된다.
누구든 어둠에 대한 두려움은 있을 것이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그럴게다. 갓난아기들이 잠을 잘 때면 쉽게 잠들지 못하고 많이 보채는 것도 아이에게 있어서는 잠이란 이 세상과의 단절이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 아들녀석은 아직도 잠자리에 들 때면 이 엄마가 옆에 있어줘야 한다. 낮에는 씩씩한 사내아이이지만 밤이 되면 무지 마음 약한 겁쟁이로 변한다. 스스로도 인정하여 '나 겁쟁이잖아!'를 밤이면 밤마다 외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침대와 책상을 들여놓아 자기 방을 꾸며줬건만 그곳은 한낱 장난감을 늘어놓는 곳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이가 밤을 두려워하는 것은 혹시 이 엄마를 닮은 것은 아닐런지... 지금은 아이까지 낳고 무서울 것이라고는 없는 나이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엄마란 그리고 또 아줌마란 존재는 어떠한 상황에서건 용감하게 변신할 수 있으므로...
미하엘 엔데의 '꿈을 먹는 요정'을 잠자리에서 읽어주다가 왠지 그 요정이 우리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존재란 것을 느꼈다. 악몽을 먹어치우는 그 요정을 부르기 위해서는 주문이 필요하다. 이렇게 말이다.
"꿈을 먹는 요정아, 꿈을 먹는 요정아! 뿔로 된 작은 칼을 들고 나에게 오렴! 유리로 된 작은 포크를 들고 나에게 오렴! 작은 입을 있는 대로 벌려서 아이들을 괴롭히는 악몽을 얼른 먹어치우렴! 하지만 아름다운 꿈, 좋은 꿈은 내가 꾸게 놔두고 꿈을 먹는 요정아, 꿈을 먹는 요정아! 내가 너를 초대할게!"
그날이후 이 주문글은 프린트되어 머리맡에 놓여져 있다.
같이 보고 싶은 책으로는 '아빠! (필립 코랑텡 / 정가 - 7,800 원 / 원제 : Papa!/베틀북(프뢰벨))'와 '힐드리드 할머니와 밤 (첼리 두란 라이언 (글), 아놀드 로벨(그림) /원제 : Hildilid's Night /시공주니어)'을 골랐다. 두 이야기 모두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하지만 밤과 어두움이 두려운 한 아이와 또 다른 한 할머니가 벌이는 한바탕 작은(?) 소동을 담고 있다. 머쉬멜로우 같은 목소리의 은희씨가 '아빠'를 읽었다. 여기서 잠깐^^ 책을 읽고 난 은희씨는 영화 '디 아더스'가 생각난다고 한다. 서로를 괴물이라고 여기는 '진짜 아이'와 '진짜 괴물'처럼 자신의 실체(귀신)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는 등장인물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화 '식스 센스(The Sixth Sense)' 는 어떠한가? 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야기는 끝까지 완벽하게 관객을 잘도 속이고 있다. 그러다 막바지에 이르러선 관객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치는 반전이란 덫을 일찌감치 놓고 있었던 것이다. 감독은 관객을 향해 '속았지롱~!'을 외치며 스크린 속으로 사라진다.
할 이야기는 많고 시간은 모자라니 이야기는 점심 먹는 시간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얘깃거리가 넘치는 은희씨는 늘 부르튼 국수가락과 식은 찌개로 간신히 요기만을 하곤 한다. 마음 속에 담긴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라 배도 덜 고픈 것인지...
일 주일에 한 번 두 시간의 만남은 때론 이야기의 끝이 딴 배를 타기도 하지만 늘 이렇듯 우리에게는 아쉬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