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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칼과 장미』, 『오렌지빛 가스등』 외
•장편소설 『바람의 둥지』
•탄리문학상, 대구문학상, 대구예술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작가협회 회원
•대구소설가협회 회장 역임
초나라 사람 중에 방패와 창을 파는 자가 있었다. 방패를 칭찬하며 말하였다. “내 방패는 견고해서 그 어떤 물건으로도 뚫을 수 없다.” 그리고서는 창을 칭찬하며 말하였다. “내 창은 날카로워서 그 어떤 물건도 뚫을 수 있다.” 누군가가 말하였다. “그럼 당신의 창으로 당신의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 그 사람은 대답할 수 없었다. 무릇 뚫을 수 없는 방패와 뚫지 못하는 물건이 없는 창은 같은 세상에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한비자)
카페 ‘다리’의 창 너머로 보이는 안심습지에는 물이 그득하게 차서 조용히 흐르고 있다. 경산지역에는 사흘이나 비가 왔다고는 하지만 40밀리에도 채 못 미치는 강수량이었다. 그래도 북부지방에 많이 내린 덕분에 금호강 물이 저리 그득하게 흐를 수 있는가 싶다.
때마다 이 안심습지를 바라보면서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지 모르겠다고 뇌곤 한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계셔요?”
박 마담이, 아니 영숙 씨가 커피잔을 접시에 받쳐 들고 와서 옆자리에 앉는다. 내가 청해둔 커피 코리아노(나와 카페 주인 영숙 씨 사이에는 아메리카노가 코리아노로 통한다.)를 가지고 온 것이다.
“저기 좀 봐요. 영숙 씨 카페 참 명당이야. 저 보배로운 안심습지 위로 추억의 안심교가 걸려 있지.”
“저는 여기서 태어나서 자랐지만 습지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전번에 김 선생님 말씀해 주신 것 듣고서야 저걸 습지라고 하는구나 하고 알았으니까요.”
한 달이나 됐나? 그때도 이렇게 창밖을 내다보고 앉았는데, 영숙 씨가 그랬었다. 날이 너무 가물어서 강이 저렇게 말라가고 있다고, 농사에는 타격이 클 것 같다고. 그날 내가 영숙 씨한테 습지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을 해 주었었다.
습지는 하천이나 늪, 연못으로 둘러싸인 습기가 많은 축축한 땅이다. 늪과 갯벌도 습지의 한 형태인데, 바닷가의 갯벌과 같은 해안습지와 내륙습지가 있다. 하구습지, 하천습지, 산지습지 등은 내륙습지의 일종이다. 그러니까 이 안심습지는 내륙습지 중에서 하천습지에 해당한다. 여러 가지 생물의 서식지이며 오염원을 정화해주는 기능이 있고, 또 비가 많이 오면 저수지 역할을 하여 홍수와 가뭄을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습지에는 다양한 생물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어서 생태계와 자연의 보고이다. 그래서 람사르 협약으로 이런 습지의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강 이렇게.
“이 안심습지는 강의 배후습지라고 하지만 사실은 강의 한 부분이죠. 뭐랄까? 강바닥이 그냥 습지가 된 거죠. 습지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 행정기관에서 저 습지의 나무와 풀들을 제거하려고 했다가 언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어요.”
“왜 조용히 잘 있는 나무들을 베어내려고 했을까요? 행정기관에서?”
“큰물 질 때, 물 흐름을 방해한다는 이유였다니, 월급 받고 할 일 참 없었던가 봐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요? 나도 그럴 것 같은데?”
“무식한 자가 용감하다고 하잖아요. 어이없는 일이죠.”
“김 선생님은 늘 이렇게 비판적이랄까? 부정적으로 보시는 것 같아요.”
“이걸 뭐 부정적이라고 할 것도 없죠. 그냥 단순한 의견이죠.”
“말씀하실 때 들어보면 부정적이거나 비판적인 경우가 좀 많은 듯해서.”
“비판이 꼭 나쁜 건 아니죠. 건전하고 정당한 비판이라면. 사실은 비판하는 사람보다는 비판받을 짓을 한 사람이 문제죠.”
“그런데 비판이 건전하고 정당한 경우보다는 비난이거나 모함인 경우가 더 많은 것 아니겠어요? 요즘 뉴스 보면 그런 생각 떨칠 수
가 없어요.”
“그렇죠? 한참 텔레비전을 뜨겁게 했던 것 몇 개만 봐도 너무나 악의적이고 저질스럽단 생각을 떨치지 못하게 해요. 어느 단체에서 그 대표적인 것이라면서 몇 가지 발표한 것이 있더라고요.”
“저도 그 기사 티브이에서 본 기억 있어요. 대통령이 회식한 식당 이름이 지명에서 온 것인데도 친일 행위라고 했던 얘기 같은 거죠?”
“맞아요. 그중에서 백미는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이 청담동 술집에서 심야에 법무법인 변호사 백여 명을 데리고 술을 마셨다는 것이죠. 법무부장관은 술도 안 마시는 사람이고, 거기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여자가 거짓말이었다고 실토를 했는데도 그 국회의원은 계속 떠들어대서 이 양반이 국회의원 소양이 있는가 의심스럽더라니까요. 어디 이것뿐이겠어요?”
이렇게 노닥거리고 있는데, 출입문이 열리고 젊은 여자 두 사람이 들어온다. 영숙 씨는 손님 맞으러 가고, 나는 벽시계를 쳐다본다. 상수와 여기서 만나자고 약속을 한 것이 오후 3시인데 벌써 4시가 다 되어가고 있다. 무슨 일이 있는가? 그렇다면 전화라도 할 것인데. 그러면서 다시 시선을 습지로 돌리는데, 상수가 카페 안으로 들어선다. 창가의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번쩍 들면서 씨익 웃는다. 늦어서 미안하다는 인사다.
“거인 손바닥만 한 밭뙈기도 농사라고 가물다가 비가 오니 손봐야 할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야. 이것 치우면 저기 손봐야 하고, 거기 손보고 나면 또 그 옆에 할 일이 있고, 그러다 보니 서둘러 온다고 온 것이 이리 늦었네.”
“농사일하다가 온 사람을 빈둥거리고 있은 내가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지. 더구나 성주 가야산에서 여기까지는 거리가 얼마야?”
“못 온다고 전화하고 다음에 올까 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바쁜 사람 한 번 만나기도 어려운데 약속까지 어겨서야 되겠나 싶었어.”
“아이구,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네. 혹시 박 사장 자네가 술 생각 난 것 아닌가? 박 마담 영숙 씨 얼굴도 보고 싶었을 거고?”
“허허허. 김 선생 독심술은 속일 수가 없어. 가야산 산삼주만 먹다 보니 세속의 막걸리가 그리워서. 여기 다리 카페에서도 술 파나? 그래야 박 마담하고 셋이서 환담도 할 건데.”
“꿈도 야무지네. 카페에서 술판 벌이면 경찰이 영숙 씨 잡아갈걸? 가까운 곳에 실내포장 있어. 거기 가서 한잔하고 나중에 여기 와서 영숙 씨하고 코리아노 한 잔 더 하면서 얘기도 나누고 그러지 뭐.”
실내포장 어부의 오두막. 그 초라한 술집의 이름은 이렇게도 낭만적이었다. 경산에서 안심으로 가다가 안심교 못 미쳐서 왼쪽 작은 길로 접어들면 고산서원 앞을 막 지나서 거기 길가에 있었다. 문 앞엔 서툰 글씨의 작은 간판이 붙어 있고, 출입문 양쪽으로 엉성하게 벽돌을 쌓아서 집 모양을 대충 갖추고 있지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뒤쪽이 터져 있어서 강의 풍경이 그대로 다 보였다. 깔끔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강의 풍경을 안고 술을 마신다는 기분이 있어서, 언젠가 ‘위험한 다리’ 얘기를 하던 날 저녁에 영숙 씨와 함께 처음 와 본 후 벌써 여러 번 다녀갔다. 나보다는 나이가 조금 더 많지 싶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번갈아가며, 때로는 함께 일을 하는데, 오늘은 할아버지가 당번인 모양이다. 술은 막걸리로 선택을 하고 안주를 고르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동태탕을 권한다. 막걸리 안주로는 역시 국물 있는 게 제격이라는 상수의 의견에 따라서 그걸로 주문을 했다.
“상식인 잘 있나? 그 새로 지어서 문 열었다는 카페 한번 가 봤어? 이름이 산과 나무였던가?”
막걸리잔을 부딪치며 내가 물었다.
“산과 나무와 새. 그렇지. 체면치레하느라고 한번 가 봤어. 생각했던 것보다 건물이 크고 모양도 직육면체 모양이어서 별나다 싶었는데, 안에 온갖 시설이 다 되어 있어서, 이런 시골구석에는 개 발에 편자 아닌가 싶기도 하고, 짓는 데 돈도 많이 들었겠구나 싶더라고. 색깔까지도 완전히 검정색이야.”
“새로운 감성의 표현이구먼. 그래, 내가 뭐랬어? 상식이한테서 변화가 감지된다고 하잖았어?”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속담이 맞다니까.”
“왜? 무슨 일 있어?”
“국회의원 이름 팔아서 여기저기서 돈 긁어모으고, 대출도 많이 받았다는데, 글쎄 그 건물 명의가 제 이름이 아니고, 왜 그 여자 있잖아? 전에 지배인이라고 소개하던 여자. 그 여자 명의로 되어 있어서 돈 빌려 준 사람들이 받을 길이 막막해졌다는 거야. 부강식당도 마찬가지고. 크게 사기를 한 건 친 거야. 그러면서 뭐라는지 알아? 검정색은 모든 색깔을 다 빨아들이는 색깔의 블랙홀이라나 뭐라나. 기가 막혀서. 그래서 내가 그랬지. 모든 빛의 총화는 검정색이 아니고 흰색이라고. 알아듣기나 했는지 몰라.”
“그 친구가 또 한 번 사람 실망시키네. 희망적인 변화를 발견했다고 했던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건가?"
“정치판 기웃거리는 사람치고 옳은 정신 가진 놈 없다니까. 도의원 한 번 나왔다가 낙선한 그것도 정치라고, 사기치는 데는 앞장을 서니. 나 원 참.”
“그나저나 박 사장은 돈 안 물렸어?”
“왜 안 물렸겠어. 큰돈은 아니지만. 내 농막 지을 때, 상식이가 군청에 편의 좀 봐 줬다는 것 때문에 냉정하게 거절하지 못한 게 잘못이지.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돈으로 술 좋아하는 자네한테 술이나 한잔 멋지게 살걸. 하하하,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 깨진다더니.”
이렇게 노닥거리고 있는데 안주 냄비가 나왔다. 전에도 먹어 봤는데 맛이 괜찮았다.
“난 동태탕이든 메기탕이든 탕 냄비만 보면 경석이 장례식 날 먹었던 낙동강식당 메기 매운탕 생각난다니까.”
“그날 배고프던 참에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 그나저나 경석이 무덤에 가 본 지도 오래됐네. 저승에서도 세상만사 다 그림자춤이라고 소리 지르고 있는지. 죽은 녀석 걱정할 만치 내가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실체가 없는데, 그림자만 춤을 춘다는 건 논리적으로 모순이지. 그런데도 그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건 세상엔 모순된 것들도 공존하고 있다는 얘기 아닐까?”
“그런 생각도 가능하겠는데? 한비자가 저승에서 울고 있을라?”
“근데 이 명태만치 한 가지 어종이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진 경우도 드물지 싶어. 명태, 동태, 북어, 황태, 새끼는 노가리.”
“하나 더 있어. 낙태라고. 덕장에서 말리던 명태가 바닥에 떨어진 걸 그 사람들 은어로 낙태라고 한다네, 이름이 좀 우습지?”
“하하하, 그렇네. 근데 말야 그림자춤 이야기가 모순이라면, 하나의 사물에 두 가지 이상의 이름이 존재한다는 것도 모순 아닌가? 예를 들면 상식이를 보고 유능한 정치인이다 하는 것과 사기꾼이다 하는 것같이?”
“글쎄 그걸 뭐 모순이라고까지 해야 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앞뒤 안 맞는 일이 세상엔 많으니까.”
상수가 텔레비전을 가리킨다. 거기에서는 가상화폐 문제로 논란을 빚은 야당 국회의원이 탈당을 했다는 소식으로 앵커가 열을 올리고 있다. 나는 가상화폐니, 코인이니 하는 것들이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짐작도 안 되면서도, 참 국회의원이 잘도 논다 싶다. 전 재산이 전세보증금 11억 원뿐인데, 그걸 몽땅 코인 사는 데 넣었는데, 재산 11억 원은 그대로 있단다. 이거야말로 초나라 무기상의 창과 방패 같은 이야기다. 더 웃기는 건 가상화폐는 공직자 재산 공개에 넣지 않아도 되고, 세금도 부과하지 않는다는 법안을 이 사람이 발의를 했단다. 그런데 이 희한한 이야기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국회 회기 중에도 코인 거래를 했고, 법무부장관 청문회 진행 중에도 했단다. 그러다 보니 자료를 검토해 볼 여가도 없어서 장관 후보자의 딸 논문 저자 얘기를 하면서 ‘이李 모某’ 교수를 ‘이모姨母’라고 해서 한바탕 폭소를 터뜨리게 했다.
“정치판 코미디가 점입가경이구먼. 국민 대표 국회의원이, 세비는 저희 맘대로 올려 받으면서 회의 중에도 코인 투자를 했다니, 제
사보다는 젯밥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얘기지.”
“그리고 저 재산 숫자 얘기도 어떻게 저리 오차가 심할 수 있었을까? 초등학교 산수 수준인 셈법인데?”
“거짓말하다 보니 그렇게 됐겠지. 하나의 거짓말을 유지하기 위해선 새로운 열 개의 거짓말이 필요하다잖아. 감춘 것 없다면 금액이 저리 큰 차이가 날 수가 없지.”
“텔레비전 보니까 코인 투자한 금액이 100억 정도 된다고 하던데? 더 웃기는 건 뭐겠어? 자기는 아이스크림 하나도 돈 없어 못 사 먹고, 라면으로 끼니 때우고, 운동화도 구멍 난 것 신고 다닌다는 거야. 지지자들한테 그렇게 얘기하면서 모금 계좌까지 방송에서 알려줘서 모금 일등 했대. 국회의원 중에서. 그런 걸 가난 코스프레라고 부르더군. 코스프레라는 말도 난 이번에 처음 알았어. 요즘은 하도 외국어를 남발하니까 영어 백 점 받았던 박 사장은 신날지 몰라도 평생 국어만 가르친 나는 무식쟁이 다 됐다니까.”
“그래도 공장뺑이 나보다야 교육자인 김 선생이 낫지.”
“외래어도 그렇지만 우리말도 제대로 못 써. ‘저희 나라’, ‘저희 국회’라고 하지를 않나, ‘보여진다’, ‘생각되어진다’ 이런 말은 너무 널리 쓰여서 이게 맞는 말인가 싶은 착각이 일어날 지경이라니까. ‘다르다’라고 해야 할 걸 ‘틀린다’고도 하고. ‘다른 것’과 ‘틀린 것’도 구분하지 못하니, ‘이 모’ 교수와 ‘이모’도 구분 못하지.”
“왜 그렇게 됐겠어? 김 선생 같은 국어 선생이 교육을 잘못 시킨 탓이지. 수원수구리오? 하하하.”
이렇게 떠드는 사이에 동태탕은 아직 뜨거운데 막걸리병은 벌써 비었다. 술맛이 난다는 건 두 사람의 기분이 좋다는 방증이다. 할아
버지와 시선이 마주치자 내가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인다. 아예 두 병을 가져오라는 신호다.
텔레비전 화면은 다시 우리 대통령과 일본 총리의 회담 얘기로 바뀌어 있다. 얼마 전에 일본을 방문한 우리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이어, 우리나라에 온 일본 총리와의 정상 회담. 과거사에 발목 잡혀 미래를 향한 걸음을 떼지 못해서는 안 된다고, 과거사와 미래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우리 대통령의 이야기에 일본 총리는 ‘강제 동원은 가슴 아픈 일’이라며 화답했다고 한다. 이걸 두고도 방송국 테이블에 둘러앉은 서너 사람의 패널들은 평가가 엇갈린다. 한 걸음 나아간 실리 외교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고, 자존심 버린 친일 외교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패널에 대한 소개가 간단한 문자로 표시되는데, 가만히 보니 긍정 평가를 하는 사람은 여당 편이고,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야당 소속이다.
“한 가지 사실을 두고 저렇게 극명하게 대조적인 평가를 하는 것도 모순 아닌가?”
“한비자의 모순 이야기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서로 어긋난다는 점에서는 닮은꼴이지.”
“난 말야. 일본 총리가 우리나라에 와서 저런 말도 하고, 또 현충원 참배도 했고, 지세븐 회의에 참석한 우리 대통령과 함께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위령비 참배도 했다니, 한일 관계의 진일보라고 평가하고 싶어.”
“김 선생 일본 여행 자주 가더니 일본 물 든 것 아냐?”
“물론 과거사만 보면 가슴 아프지만, 미워도 이웃 아닌가? 지정학적 형편을 무시하고 언제까지나 헐뜯고 싸우면서 살 수만은 없
지 않겠어? 일본 여행 갔다가 나가이 다까시 기념관엘 가 보고, 또 엔도 슈사쿠 문학관을 둘러보면서 난 그런 생각을 했어. 일본과 영원한 원수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 일본도 우리의 좋은 이웃이 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 전에도 내 일본 갔던 얘기 박 사장한테 여러 번 했었잖아? 나가사키 원폭 폭심지공원에서 촛불을 켜 들고, 우라까미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
나의 일본 여행의 기억 속에는 나가이 다까시永井隆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가 자리하고 있다.
나가이 다까시. 1952년, 나가사키 의대에서 43세의 아까운 나이로 선종할 때까지, 다다미 두 장의 좁은 여기당如己堂에 누워, 피폭으로 인한 암으로 죽음이 이미 한쪽 손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초인적인 능력으로 쓴 ‘나가사키의 종鐘’을 비롯한 수많은 저서들. ‘평화를’이란 글씨를 1천 장이나 써서 각계에 보내어 전쟁의 참상을 되새기게 하고 평화만이 최고의 가치임을 역설했다. 이 정신은 혼을 다해 쓴 그의 휘호 ‘如己愛人’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물론 그의 마지막 거처였던 ‘여기당’의 당호도 여기에서 나왔다. 내 몸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 이건 성경 속에 들어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이었다. 도산 선생의 휘호로 남아 있는 ‘愛己愛他’나, 일본 작가 나카라이 도스이半井桃水의 문학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의 글씨 ‘忘己利他’도 같은 의미이다. 성경 말씀을 한문으로 바꾸어서 붓글씨로 쓴 것.
가장 큰 계명誡命이 무엇이냐고 묻는 율법 교사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 37-40)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문학관 건너편 구로사끼黑崎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자애로운 시선으로 바다를 내려다보고 계신 성모님 치맛자락을 잡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돌계단을 내려왔다. 만灣의 건너편 언덕 위로 엔도 슈사쿠 문학관의 모습이 멀리 보이는 바닷가에 ‘침묵沈黙의 비碑’가 서 있다. 둥글넓적한 두 개의 돌덩이를 이웃하여 세운 이 비는, 한쪽에는 ‘침묵의 비’라고 적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인간이 이렇게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나 푸릅니다.’라는 비문이 일본어로 씌어져 있다. 그의 소설 「침묵」의 한 구절이다. 비문을 읽고 나서 다시 내려다보는 현해玄海의 물결은 참으로 가슴이 아리도록 짙푸르다.
소설 ‘침묵’. 그 끝자락에서 절규하는 로돌리코 신부의 목소리는 아직도 내 가슴 깊은 곳에 살아서 메아리로 들려온다.
“페레이라를 보고, 그리고 바닷속에 세운 기둥에 묶여서 죽고, 죽음 당해서 가마니에 싸여 바다에 던져지는 신자들을 보면서 절망했던 로돌리코도 역시 후미에踏繪를 밟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머뭇거리는 로돌리코의 발아래서 그리스도는 이렇게 속삭였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은 바로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로돌리코는 마음으로 울면서 부르짖었다. ‘주님.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계신 것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목소리는 온유했다. ‘아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너희와 함께 괴로워하고 있었을 뿐.’”
“김 선생 그 얘기 여러 번 해서 나도 알고 있어. 그만치 감동적이었단 얘기겠지. 그래서 대구에 ‘한국여기회’가 생겼단 얘기도 했었지.”
“그래, 맞아. 한국여기회는 대구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중심이 되어 출발했지만, 일본 나가사키 교구와의 공감이 있었다고 할 수 있어. 그곳에도 일본여기회라는 단체가 있어. 거기에서는 과거사 때문에 적대감 같은 걸 느끼고 하지는 않아. 그냥, 한 인간으로서, 하느님의 같은 자녀로서의 인정 같은 걸 느낄 뿐.”
“난 김 선생 얘기 들으면서 다시 그 ‘모순’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었어. 우리가 일본에 대해서 서로 상반된 두 가지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도 모순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만약에 말야, 초나라의 그 무기상이 자기 창으로 자기 방패를 찔렀으면 어떻게 됐을까?”
“거기에 대답이 있으면 모순이 아니겠지. 방패가 뚫리든지 안 뚫리든지 둘 중 하나겠지 뭐. 궤변이긴 하지만.”
“난 언뜻 그런 생각이 들었어. 창과 방패가 서로 다른 사람 손에 들렸을 때는 모순이 되지만, 같은 사람의 양손에 들리면 천하제일의 무기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 다른 사람 방패는 무엇이나 다 뚫을 수 있고, 내 방패는 그 어떤 창으로도 뚫리지 않는다면? 이것도 궤변이지 싶지만.”
“하하하. 오늘 여기에 소피스트 두 사람 탄생하네. 그런데 말야. 세상에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더러 있지. 어쩌면 이 궤변 속에 답이 있을지도 몰라. 예를 들면 변증법辨證法같이. 하나의 명제命題가 있다.
이걸 정正이라고 하지? 변증법에서.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다른 하나의 명제. 그게 반反인데 이 둘이 만나면 합合이라고 하는 하나의 새로운 명제가 탄생한단 말이지? 어때? 내 논리 기차지 않아? 의견의 차이, 평가의 차이 같은 걸 이렇게 변증법적으로 해결하면 큰 힘이 생겨나지 않을까? 우리나라 정치판의 여야 차이 같은 것도 해결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어.”
“꿈은 좋다만 그건 좀 어려울걸? 정과 반이 갖고 있는 욕심과 편견이 합을 만들어내는 걸 방해하고 있으니까. 창과 방패를 한 사람 손에 쥐여 주려고 하겠어? 근래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지는 국회의원들의 어두운 얘기들을 봐. 야당 대표 이야기는 벌써 오래돼서 이제 귀에 충격도 안 와. 수사 기록만 20만 페이지라고 하잖아. 그 놀라운 숫자에도 전혀 놀라지 않는 국민들이 놀라운 거지. 역설적으로 말야. 그 뒤에 계속되는 것들만으로도 국민들은 놀라서 자빠질 상황 아냐? 전당대회에서 돈봉투 뿌린 이야기는 일파만파로 커져 가는데, 그 일로 탈당을 해서 무소속이 된 사람 얘기하는 것 한번 들어 봐. 자기는 아무 죄가 없는데, 검찰이 기획 수사를 하고 있고, 야당 탄압을 위해 죄를 만들어서 뒤집어씌운다는 거야. 녹취 파일이 있는데도 말야.”
“도둑이 제 발 저려서 그렇겠지. 자기의 경험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거든.”
“더 웃기는 건 수사선상에 오른 사람들이 하는 얘기야. 돈봉투 3백만 원은 밥값이라는 거야. 밥을 3백만 원짜리를 먹는지. 구멍난 운동화 신고, 라면만 먹는 국회의원이 같은 당이라는 게 신기하지 않아?”
“정치인 거짓말이야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지만, 요즘 와서 더 심각하게 느껴지는 건 내 생각 탓이지 싶어. 정치인은 원래 거짓말 디엔에이를 타고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해 버리면 편할 텐데, 그게 안 되니 나 스스로가 괴로운 거지.”
“그 3백만 원 밥값 얘기 나왔을 때, 인터넷에 떠돌아다닌 우스개 얘기가 있어. 사실은 우스개가 아니고 심각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거지방’이란 얘기 들어 봤어? 카톡 대화방이야. 하도 재미있어서 혼자 보기 아깝더라고. 그래서 오늘 자네 만나면 보여주려고 한 장 인쇄해서 가져왔어. 원래는 긴데, 내가 좀 줄였어. 재미있어. 한번 읽어 봐.”
나는 점퍼 안주머니에 접어서 넣어 둔 인쇄 종이를 꺼내어 술잔 옆에다 펴놓았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익명의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채팅 서비스)에서 ‘거지방’을 검색하면 수백 개의 단체 채팅방이 뜬다. ‘돈을 버는데 돈이 없는 직장인 거지방’, ‘한 달에 30만 원만 쓰는 거지방’, ‘시험 기간에도 커피를 허용하지 않는 대학생 거지방’ 등 다양한데, 모두 최근에 한꺼번에 생겨났다.
‘소비방’ ‘절약방’으로도 불리는 거지방에서는 자신의 지출 내역을 공개하고 다른 이들의 평가와 조언을 받곤 한다. 거지방에서 나온 재미있는 대화는 밈meme이 돼 인터넷 커뮤니티, 소셜미디어 등으로 퍼지고 있다. 500원짜리 생수를 샀다고 하는 사람에게 “오후에 비 온다는데 좀 더 기다리시지 그러셨어요”라고 하거나, 버블티를 사 마셨다는 사람에게 “다음부터는 컵에다 버블 모양의 스티커를 붙여라”고 하는 식이다.
대부분의 거지방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한 분위기다. 불필요한 지출을 고백하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여자 친구와 마라탕 4만 원어치 시켰는데 다 못 먹었고 남긴 건 버렸다”고 하자, “둘이 2만 원어치 먹어도 남던데, 무슨 일이냐?”, “남은 것 버리지 말고 다음 날 밥 말아 먹으면 된다.”, “연애는 사치다. 헤어져라.” 같은 반응이 쏟아졌다. 회사 스트레스로 단 게 당겨 3,900원짜리 과자를 샀다는 직장인에게는 “회사 탕비실을 털어야지 뭐 하는 짓이냐”, “스트레스 받을 땐 산책을 해라”, “과자 말고 200원짜리 사탕을 사 먹어라” 등의 조언이 나왔다.
가장 많은 비난은 프랜차이즈 카페 커피와 담배 소비, 택시비에 쏟아진다. 5,000원짜리 아이스 카페라테를 사 먹었다는 대학생은 “미쳤다”, “물이나 마셔라”, “카페라테는 생일에나 마시는 것” 같은 비난이 쏟아졌다. 담배를 사느라 4,500원을 쓴 직장인에게는 “돈 써서 왜 건강을 망치느냐”, “흡연 부스에 가서 간접흡연을 하라” 등의 반응이 나왔다. 택시는 금기시돼 있다. 대중교통 혹은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 사진을 올리거나 유료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것도 꾸지람을 듣기 일쑤다. 소비를 조장한다는 이유에서다.
사고 싶은 것을 올리고 허락을 구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반려된다. 무선 이어폰 한쪽을 잃어버려 한쪽을 당근마켓(중고 거래 플랫폼)으로 사도 되냐는 질문엔 “이제부터 귀가 하나 없다고 생각하라” “남은 한쪽을 팔아라”라는 답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어때? 재미있지? 이것도 3백만 원짜리 밥 얘기하고 모순 이론으로 나란히 세울 수 있지 않겠어?”
“그러면 역시 정, 반, 합의 이론으로 해결을 해야 하는데, 잘될지 모르겠네.”
“모두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데, 그 뒤엔 씁쓸한 미소가 떠오르는 건 무슨 이유일까? 젊은이들의 저 쓸쓸한 정서를 달래줄 정치는 언제쯤 가능할까? 적자생존, 싸워서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생각에 젖어 있으면 이 모순의 세상을 해결할 방법은 영원히 없을지도 몰라. 용서와 이해와 배려, 그런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하는데.”
이미 식어버린 동태탕 냄비는 검게 탄 바닥을 드러내고 있고, 막걸리병도 모두 빈 플라스틱 병으로 변신했다. 술값은 내가 카드로 결제하려는데, 기계 고장이라서 카드는 안 된단다. 덕분에 현금 가진 상수가 술값 내고 나는 공술 호사를 했다.
카페 ‘다리’로 돌아가는 길은 아까 왔던 길을 버리고, 강변에 바짝 다가서 있는 좁은 길을 선택했다. 해는 벌써 서산을 넘고 있고, 옅은 산 그리매가 서서히 세상을 덮어 오고 있다.
“어이, 김 선생. 자네가 믿는 그 전지전능하신 창조주님께서 좀 수고해 주시면 안 될까? 전세 사기꾼이나 위선적인 정치인들 두들겨 패서 버릇 좀 고치고, 온 백성 격양가 부르면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 좀 만들어 주시면 금방 해결될 텐데?”
“그건 어불성설. 인간이 지은 죄를 하느님께 해결을 강요하는 모순이지. 어머니가 연필 사서 공부하라고 준 돈으로 아이스크림 사먹고 배탈이 나고서는 돈 준 어머니 탓으로 돌리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닐까?”
“그럼 이 고통과 모순의 세상에서 슬픔만 씹고 살아야 한단 말야?”
“어렵지만 방법은 있을 거야. 하느님은 한 쪽 문을 닫으면 다른 쪽 문을 열어주신다는 말이 있어. 내 아까 얘기하던 용서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상생의 길. 그게 답이지 싶어. 내 짧은 소견으로는. 가뭄에 바닥이 드러나던 강도 습지에서 생명을 품고 기다리니 저렇게 물이 그득하게 흐르지 않아? 불확실하더라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손에 꺾어 쥔 한 송이 풀꽃처럼, 그렇게 소중하게 안고 사는 거지. 인생을 말야.”
해가 넘어간 서산 위 하늘에는 붉은 노을이 곱다. 그 노을은 안심습지 물 위에도 비쳐서 우리에게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다. 눈앞의 매화 가지를 걷어치워야 노을 진 서녘 하늘이 보인다더니, 세상사의 잡념을 술기운 빌려서 떨쳐내고 나니 저렇게 저녁노을 고운 하늘도, 노을이 내려와 잠긴 강물도 보이는구나.
저만치 영숙 씨의 카페 ‘다리’의 창문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따뜻한 커피잔을 들고, 좋은 사람들과 욕심이 씻겨 나간 정담을 나눌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따뜻해 온다. 희망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의 것이고,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사람의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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