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다 보면 사회에 철저하게 공리주의적 관점을 적용하는 내용이 일부 등장한다. 담배 회사인 필립 모리스는 체코에서 사업을 진행하는데, 체코에는 흡연이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최근 체코 정부는 흡연에 따른 의료비용 증가를 우려해 담배에 부과하는 세금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했다. 필립 모리스는 세금인상을 막기 위해, 흡연이 체코의 국가예산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비용, 편익분석 작업에 매달렸다. 그 결과, 정부는 흡연으로 손해가 아닌 이익을 본다는 결론이 나왔다. 흡연자들이 생존 중에는 정부의 의료예산을 높이지만 ,결국에는 일찍 죽기 때문에 노년층을 위한 의료, 연금, 주거부분에서 상당한 예산 절감효과를 낳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흡연의 긍정적 효과 - 부정적 효과 = 5,815mil CZK’를 주장하며 흡연이 역설적으로 경제 효과를 부른다는 것이다. 다음 사례를 봤을 때, 이들은 철저히 공리주의적으로 비용과 편익을 계산하여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실제로 과거 우리나라의 경우국가에서는 해당 논리를 일정 부분 수용하여 담배의 제조 및 판매를 공기업인 한국담배인삼공사에서 담당하고 세수를 확보하는데 보태기도 하였다.(현재는 KT&G로 민영화 되었다.)
한편, 우리나라 사회에서도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비용과 편익을 계산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최근 논의되고 있는 제도가 있는데, 바로 연금제도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복지제도인 연금은 현재 성장세가 잦아들고, 인구의 고령화로 인해 여러 문제가 나타나며 개혁의 대상으로 여기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 문제는 이제 연금제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인식 역시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화된 경제환경 속에서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 문제는 국가의 재정건전성, 자 본시장의 안정성, 장기적 성장가능성의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진행되어 온 연금개혁의 방향은 보험료 기여와 급여 간의 연계를 강화하고, 경제활동을 지속할 유인을 가지는 것, 적립금 비중을 증가시키는 것, 인구구조 변화가 연금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확정급여 형태를 약화시키는 형태의 구조적 개혁을 시행하는 것, 사적연금의 역할을 확대 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사적연금과 공적부문의 경계를 재설정하는 것 등이다. 그러던 중 최근 정부에서 공적 연금을 개혁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해 개혁안을 마련하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상생의 연금 개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금 제도를 바꿔 지급 대상 기준선을 올리고, 더 많은 연금 관련 비용을 더 넓은 계층에게 부과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우선 이 문제를 의무론적 관점으로 생각해보자. 의무론의 대표주자격인 칸트 윤리학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칸트 윤리학에서 도덕의 목적은 인간의 ‘선의지’이다. 이들은 인류의 보편적인 윤리관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렇기에 상술한 방향으로의 연금 개혁을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사회 서비스의 공정한 분배와 최소 수혜자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며, 그들은 ‘옳은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무론적 관점에서 연금 제도의 문제에 관해 접근하는 것은 최근 제기되고 있는 ‘저부담-고급여’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충돌하는 측면이 있다. 현재 지적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공적연금제도의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1.공무원연금/군인연금은 이미 적자가 상당하며, 사학연금도 비슷한 상황이다. 2022년 기준 이들의 적자규모는 4조 1천억 수준이며 현 상황이 유지된다면 2050년 국가보전금이 23조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2.2022년 기준 국민연금 적림금은 929조 원 규모이지만, 현행 제도가 유지된다면 2039년에는 재정수지가 적자로 전환, 2057년에는 기금이 전액 소진될 것으로 전망되기에 지속가능성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3.한국의 노인빈곤율은 2020년 40.4%로, 이는 OECD 평군인 13.1%의 3배 이상이다.
현행 제도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보편적 복지 제도인 연금제도가 금전적 문제로 인해 장기적인 유지가 어려운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는 현행 제도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 확대를 지지하는 의무론적 관점이 해결하기 어려운 한계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면 공리주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연금제도의 현실적인 한계점이 명확하다는 것을 고려하여 연금제도의 개혁을 지지할 것이다.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하기에, 결국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연금제도의 지속을 위해 사회적 약자를 포기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한스 요나스의 ’책임 윤리‘까지 반영하여 생각해본다면, 미래 세대에 대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감안한다고 생각하면, 추후 연금 부족 문제로 인해 발생하게 될 이후 세대들에서의 문제점 역시 고려한다면, 공리주의자들은 더욱이 연금제도의 개혁을 주장할 것이다.
덧붙여 요나스의 관점으로 접근했을 때, ’공포의 발견술‘을 통해 연금 적립액 고갈의 위험성을 인지해 연금 제도 유지의 필요성을 인식한 후, ‘책임 윤리‘의 측면에서 연금제도의 공리주의적 개선 방향은 후세대까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에 대한 현세대의 책임 중 하나로서 연금 개혁을 긍정하며 가능성이 있다. 생태학적으로 칸트를 계승하였지만 공리주의와 입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공리주의 역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데, 극단적인 공리주의는 전체주의와 같은 형태로 변질되어 ‘다수의 행복‘을 논거삼아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연금 제도의 존재 의의 중 하나인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 보장’이 아닌 그저 ‘사회 전체 행복의 총합‘에만 치중하는 형태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연금 적립액 고갈이 가시화된 현실을 고려했을 때, 결국 연금 제도의 지속 가능성은 현세대 뿐만 아니라 미래세대까지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며 결국 우리나라 인구의 다수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기에 연금 제도의 개선은 결국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논쟁이 그러하듯 한 쪽으로 치우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연금 제도의 의의는 ‘모든 사회 구성원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 보장’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이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라는 점과 최종적으로 최대 다수의 삶의 질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적 가치관과 부합함과 동시에, ‘모든 사람들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추구는 의무론적 관점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에 대해 이를 돕고 그들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에서 제도의 근본 이념에 의무론적 관점도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의무론적인 이념을 지켜나가면서도 현실을 반영하고 공리주의의 이념에 부합하는 방향의 개혁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기에 누진세 제도와 같은 방안을 통해 연금 적립액을 확충하여 개개인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면서도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보장하는 방안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