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탈 쓴 가톨릭…'알고보니 속살은 악마였다'
아일랜드 가톨릭계 아동보호 시설 내 아동학대·성추행·상습 폭행 파문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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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일랜드 ‘아동학대 생존자들의 모임’의 존 켈리 대표(오른쪽)가 21일 더블린의 한 호텔 앞에서 가톨릭 아동보호 시설들 내에서 일어난 아동학대와 성추행, 상습폭행에 대한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출처 www.irishnews.com)
아일랜드에서 가톨릭계 아동보호 시설들 내 성직자들이 오랜 기간 상습적인 아동학대와 성추행을 자행한 것으로 드러나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혀 졌다.
아일랜드 정부 아동학대 조사위원회는 20일(현지시간) 2600쪽짜리 실태조사 보고서를 공개하고 지난 2001년부터 9년간에 걸쳐 가톨릭 아동보호 시설들 내에서 2만 7000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자행된 변태적인 성착취와 학대, 상습 폭행에 대한 전모를 공개했다.
정부 조사위원회의 신 리안 판사는 "가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기관 250여개를 조사한 결과, 아동들이 교회 관계자 또는 내부 상급 학생들로부터 상습적으로 구타를 당하거나 성추행을 당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남자 직업학교들에서는 자의적으로 과도한 체벌이 계속돼 아동들이 내일은 누구에게 맞을지 모른다는 공포심에 떨며 청소년기를 보냈다”며 상습적인 폭행이 매일 반복됐다고 밝혔다.
그는 또 "지난 9년간 실태결과 외에 1940년 이후부터 가톨릭계 학교와 아동보호시설에서 대략 3만 5000명 이상의 아동학대와 성추행 피해자들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아동학대와 성추행을 경험한 피해자들이 지금은 30~80대 성인이 돼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가톨릭 성직자들이 운영하는 아동보호 시설들의 겉 모양은 거룩한 척 천사처럼 보였지만 속살은 밤마다 어린 아이들을 성노리개로 삼았던 것도 모자라, 상습적으로 폭행까지 일삼았던 추악한 악마들의 소굴이었던 셈이었다.
이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남학생 시설에서 소년들은 가톨릭 성직자들로부터 성희롱, 강간 등 성적 학대에 시달렸다. 수녀회가 운영하는 시설의 여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성적 학대는 덜 겪은 편이지만 무차별적인 구타와 모욕에 시달렸다고 AP통신과 스카이뉴스가 전했다.
이번 조사는 19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당시 경범죄자, 무단 결석자, 미혼모, 문제 가정의 아이들 등 3만여명의 교육을 담당했던 가톨릭계 직업전문학교, 고아원, 합숙소 등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보고서는 이들 기관에 소속됐던 학생들과 성직자, 수녀 등 관계자들의 증언을 참고로 비교적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춰 작성됐다.
아일랜드는 유럽에서 전통적으로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이 강한 나라로 인구 대비 93%가 가톨릭 교도여서 국민 대다수가 이번 사건으로 충격에 휩싸여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아동학대 및 성추행 실태조사로 과거 가톨릭 내부의 해묵은 비리까지 들춰지면서 아일랜드 사회 전반에 걸쳐 항의와 비난들이 쇄도하고 있다.
이에 아일랜드 가톨릭 교회를 대표하는 션 브레디 추기경은 "하나님의 이름 아래서 더 보호받아야 할 아동들이 끔찍한 방식으로 학대당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지만 당분간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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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 성직자들에 의해 아동학대와 성추행이 자행된 기숙학교 중 하나인 아일랜드 세인트 콘레스 스쿨.(사진출처 news.sky.com)
바티칸은 이번 파문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그 이유는 정부 조사보고서에 아동학대와 성추행을 자행한 대상들이 정확하게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아일랜드에서 ‘아동학대 생존자들의 모임’의 존 켈리 대표 "당시 학생들은 수감자나 노예 취급을 받았다. 이번 보고서 발표로 희생자들이 작은 위로를 받았을 뿐"이라며 "정부는 왜 이들을 가족들과 생이별시키고 가톨릭 기관들에 보냈는지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존 켈리 대표는 "가톨릭 교회의 아동학대와 성추행을 법정에서 증명하기 위한 물증과 진술을 광범위하게 수집해 가해 성직자들이 처벌 받게 만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아일랜드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해 가톨릭 교회의 국제적 추문을 봉합하는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아동학대와 성추행, 폭행 피해자 1만2000여명에게 1인당 평균 6만5000유로(약 1억1000만원)의 보상 위로금을 지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보상금 지급과 관련해서도 아일랜드 시민사회단체들의 비판과 반발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대가로 국가나 교회를 대상으로 법적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포기 각서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 보상금을 거부한 수많은 피해자들은 ‘아동학대 생존자들의 모임’을 통해 가톨릭 아동보호 시설 내에서 겪은 추악한 만행을 세상에 알리고 가해자들을 사법처리 하기 위한 법적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혀 이번 사태의 향배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