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로 간 서정주의 후일담
특강 오양호
만주로 간 뒤의 서정주는 <<화사집>>을 버렸다. 서정주와 같은 시간에 만주로 간 <시인부락> 동인 유치환이 가열 찬 생명애로 인간의 실존에 몰입할 때(<생명의 서> 연작 3편) 서정주는 <滿洲에서>로 시의 긴장도를 늦추고 있었다. <滿洲에서>의 시적 화자가 정처를 정하지 못하고 떠도는 것은 유치환의 <생명의 서>의 화자가 사생결단 생명에 매달린데 비하면 대안 없는 생명의 소진이다. <시인부락>파의 에스프리가 유치환에게는 생명문제로 심화되었다면 서정주의 그것은 텅 빈 공간의 주체소멸이다.
이런 정황은 반세기 넘어 서정주가 만주체험을 이야기 시로 다시 쓴 ‘구만주제국체류시 5편’ 외 3편에 의해 ‘나의 정신적 실상의 회복’으로 시도되었다. 그 이야기 시 가운데 하나인 <北間島의 總角英語敎師 金鎭壽翁>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서정주는 “일본식민지시절의 우리나라에는/슬픔이 기쁨인 얼굴을 하고/사는 사람도 꾀나 많기는 많았지만/北間島라 恩津中學의 英語敎師 金鎭壽처럼/그게 그 극치를 이루고 있는 사람은/나는 난생 처음 보았네.”라며 김진수의 소주를 얻어먹으며 신산한 객고를 풀었다며 그를 그리워하는 것이 그렇다. 그러나 金鎭壽는 서정주가 ‘나의 정신적 실상의 회복’을 위해 쓴 다른 작품 <일본헌병 고 쌍놈의 새끼>처럼 자신의 정체를 달리 재구성시킬 수 없는 존재다. <일본헌병 고 쌍놈의 새끼>는 “1940년 그 황량한 남만주가을의 어혈瘀血빛 황혼을/여余는 사는 걸 되도록이면 좀더 자유롭게 하기위해서/ 도문역圖們驛의한가한곳에서 한바탕 흔쾌히 오줌을 누고 계시다”가 일본헌병에게 들켜 즈이들이 사는 곳에 끌려가 다짜고짜로 “고라! 시네! 시네!(이놈! 죽어라! 죽어라!)”하며 정갱이가 녹초가 되도록 얻어맞은 이야기다. 웃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시원하고 재미있게 만주시절을 희화하는 그 입심은 서정주 특유의 그 덜 자란 문체가 독자를 웃긴다. ‘나의 정신적 실상의 회복’을 구현하는 역할을 한다.
<북간도의 총각영어교사 김진수옹>은 사정이 다르다. ‘金鎭壽’라는 인물은 ‘皇紀二千六00年 경축기념’, 그러니까 일본천황의 선조가 다카마가하라高天ヶ原라는 천계에서 내려왔다는 그 천손강림 2600년을 축하하기 위해 은진국고학생恩津國高學生들이 막을 올린 연극을 지도하고 연출을 보아 그 기념행사를 빛낸 희곡작가이다. 천황은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니다. 김진수는 그런 천황의 천손강림을 연출했고, <무대 뒤에서>라는 연극 평을 썼다.김진수는 童劇 <세 발 자전거>에서 <고향의 봄>과 <오빠 생각>을 합창으로 연출했다. 그러나 동극의 스토리는 그런 노래가 조성하는 민족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서정주의 <北間島의 總角英語敎師 金鎭壽翁>이 서정주의 정신적 실상의 회복이 되려면 김진수옹은 진짜 김진수가 아닌 다른 김진수라야 한다. 그는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주체를 소멸시키고 산 실재인물이다. 서정주가 아득한 시절의 김진수며 咸亨洙를 소환하며 <시인 함형수 소전>을 쓰고, 김진수를 기리는 것은 서정주의 만주가 한 번도 떳떳하게 살지 못한 공간이었기에 그걸 재 소환하여 치욕을 해소하고, 자신의 실재 삶을 재구성하여 당당해 지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리고 어딘가에 귀속하지 못해 불안했던 구차스런 자취를 지우고 그 자리에 덜 자란 서정주식 시의 흔쾌한 흔적을 남기려는 전략일 것이다. <북간도의 총각영어교사 김진수옹>은 회고담에서 발견하는 과장이나 미화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장과 미화의 실체가 절대로 그럴 수 없는 존재라고하면 그때 시는 예술이기를 포기해야 한다.
서정주는 한 세월 지난 뒤에 만주시절을 회상하는 글에서 ‘내 배후엔 무슨 무서운 각하라도 하나 앉아있을 것이라고 쯤 상상했는지도 모르지’라고 했다. 큰 힘을 등에 업은 듯한 포즈로 순사부장 출신 일본인 상관의 기를 죽인 이야기다. 그리고 다시 한 세월 지난 뒤에 그때를 재구성하여 정신적 실상을 회복하려 했다.
零下 30度의 치운 벌판에 天地의 뼈다귀들처럼
큰 나무기둥들이 즐비하게 널려쌓여 있었는데,
巡査部長출신의 고 무식한 日本人所長놈은
“그 나무기둥 마다
우리會社 마크의 쇠도장을 찍어넣어라!“ 해서
나는 中國人 部下靑年 두사람을 데리고
그 쇠도장이 새겨진 쇠망치를 들고
땅! 땅! 땅! 땅!
…(중략)…
“센숀(先生님!) 찔렁찔렁(참 치워요)!” 했지만
나는 그들한텐 대답도 없이
“에잇! 빌어먹을 것!
나도 長白山 馬賊이나 되어갈까부다!”
그렇게 생각하며 찍어대고만 있었지.
<간도 용정촌의 1941년 1월 어느 날>에서
이 이야기시의 내용은 <滿洲에서>에서와 다른 작품 <만주에서>도 길게 다루어졌다. 그런데도 거듭 쓰는 것은 그 이야기가 서정주에게는 ‘세상을 뜨기 전에 꼭 글로 남기고 싶은 글’, 곧 주체소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일 것이다. 정황이 이렇지만 ‘순사부장출신의 고 무식한 일본인 소장 놈’과 같은 철지난 울분풀이는 후일담 특유의 과장된 해석으로 자신을 변호하는 것으로 독해되지 않는다. 화법이 현재시제기에 시적 진실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사의 재구성이 주는 한계이다.
정황이 이렇지만 이런 현상을 서정주식 수사로 간주하고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장면이 있다. 개인정서에 밀착된 사적고백이 도를 넘어 우리에게 허위의 충격을 가하는 장귀가 등장하는 까닭이다. 바로 “에잇! 빌어먹을 것!/나도 長白山 馬賊이나 되어갈까부다!”이다. ‘장백산 마적’은 마적이 아니다. 독립군이다. 그때 일제와 만주국은 백두산에서 1940년 초까지 항일유격전을 벌리고 있던 김일성 부대를 ‘장백산 마적’이라 했다. 이 심각한 사실을 알리는 생생한 문건이 존재한다.
金日成等反國家者에게 勸告文
-在滿同胞百五十萬의總意로-
「 東滿一帶에 金日成을 爲始하야 相當한 數의 反國家武裝軍이橫在하여서, 國內의治安을 어지럽게하고 있음으로, 그네들에게 日滿軍警에 依한「今冬의 最終的인 大殲滅戰에」前期하야 反省歸順하도록, 在滿同胞百五十萬은 同胞의 愛情으로 蹶起하야, 이제 그대에게 勸告文삐라를 飛行機로서 多數히 뿌리었다. 이것은 그 勸告文의 全文이다.」
荒凉한山野를 定處없이 徊徘하며 風餐露宿하는 諸君! 密林의 原始境에서 現代文化의 光明을 보지 못하고 不幸한 盲信때문에 貴重한 生命을 草芥같이 賭하고 있는 가엾은諸君! 諸君의 咀呪된 運命을 깨끗이 淸算하여야될 最後의 날이 왔다! 生하느냐? 死하느냐? 百五十萬 白衣同胞 總意를 合하야 構成된 本委員會는 今冬의 展開될 警軍에 最終的인 大殲滅戰의 峻嚴한 現實 앞에 直面한 諸君들에게 마즈막으로 反省歸順할 길을 열어주기爲하야 이에 蹶起한 것이다. 諸君의 無意義한 浪死를 阻止하고 諸君을 新生의길로 救出하는것은 我等百五十萬에 賦與된 同胞愛의 至上命令으로 思惟하야 全滿坊坊谷谷에 散在한 百五十萬을 代表한 各地委員은 十月三十日 國都新京에 會合하야 嚴肅하게 諸君의 歸順하기를 勸告하기로 宣言하고 玆에 그總意의執行을 本委員會에 命한것이다. 民族協和의 實現과 道義世界創成의 大理想을 把持하야 燦然히 躍進하고있는 我滿洲國에 있어서 百五十萬의同胞가 忠實한構成分子로써 國民의 義務를 다하야 光輝있는 繁榮의길을 前進하고있는데 一部에文明의 光明을 보지못하고 架空的인盲信 때문에 國家施設의 惠澤과 法律保護에서 全然離脫된 不幸한 諸君들이 尙存하는 것은 民族的인 一大汚點이뿐만 아니라 피를 함께한 諸君으로 하여금 이世上慘憺한 生活을 繼續케한다는것은 人道上座視할수없는 重大問題로서 생각하야 이에 本委員會는 百五十萬이 總意를代表하야 諸君이 한사람도 남김없이 良民이되도록 卽時 歸順하야 同胞愛속에도라오기를 嚴肅히 勸告하는바이다.
…(중략)…
東南地區特別工作後援會本部(新京特別市韓日通鷄林會內)
顧問;淸原範益 崔南善 中原鴻洵
總務;朴錫胤 伊原相弼 金應斗
常務委員:崔昌賢(新京) 朴準秉(新京) 李性在(新京) 金東昊(安東) 金子昌三郞(營口) 徐範錫(奉天)金矯衡 (撫順) 金仲三(鐵嶺) 外 六十名.
인용이 너무 길다. 그런데 의고체 문장이 어딘가에 눈에 익고,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본부에 최남선 이름이 들어 있으며 총무가 셋인데 그 둘이 박석윤과 김응두이고, 상무위원 명단에 <<만선일보>>사장 이성재가 포함된 것을 드러내려다가 그렇게 되었다.
권고문에 서정주가 <간도 용정촌의 1941년 1월 어느 날>에서 쓴 ‘장백산 마적’이라는 표현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 관동군과 만주국은 조선독립군을 ‘匪, 匪賊’이라 불렀고, 김일성은 匪首라고 했다. 일제는 독립군이 그들의 재산을 약탈하고 생명을 노리고 떼를 지어 다니며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 다며 ‘비적’이라 불러 민심이반을 꾀했다.백두산을 근거로 한 독립 세력을 ‘백두산 마적’이라 부른 것은 동북항일연군을 만주의 원래 마적 떼와 연계시켜 독립투쟁의 성격을 호도하려는 일제의 술책이다. 그렇다면 서정주가 김일성이 이끄는 백두산의 동북항일연군을 ‘마적’이라 부르는 것은 ‘在滿同胞百五十萬의 總意’로 만든 <金日成等反國家者에게 勸告文>과 발상이 같은 것이 된다.
이런 사실을 전제하면 ‘에잇! 빌어먹을 것!/나도 長白山 馬賊이나 되어갈까부다!’는 서정주식 수사로 간주하고 절대로 웃고 넘길 사안이 아니다. ‘장백산 마적’을 무슨 불평불만분자나 개인적 오기의 집단으로 규정하는 의미가 되는 까닭이다. 또 ‘장백산 마적’은 巡査部長출신의 고 무식한 日本人所長놈이란 기발한 소재를 끌어와 유별난 표현을 통해 만주에서 당한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려는 서정주식 재간이 도를 넘어 서정주 자신을 해찰하려 든다. 서정주를 영원한 친일로 옭아매는 <스무살 벗에게>, <<최체부의 군속지망>, <마스이오장송가松井伍長頌歌>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이나 되어갈까부다.”에서와 같이 부사격 조사 “부다”로 부정적 의미를 형성한다. 이 말은 체언의 뒤에 붙어 앞말이 비교의 기준이 되는 대상임을 나타내거나 서로 차이가 있다는 어감과 분위기를 조성한다. 곧 비교의 대상이 되는 말에 붙어 ‘~에 비해서’의 ‘~보다 낫다.’의 뜻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나도 長白山 馬賊이나 되어갈까부다!’는 관동군과 싸우는 독립군은 할 게 없어 ‘마적, 곧 독립군’이 되었다는 의미다. 이런 논리는 설령, 우리가 사회주의를 주적으로 간주한다 하더라도 용인할 수 없다. 일제 강점기 독립투쟁은 사상과 무관한 우리민족이 극복해야할 상수常數인 까닭이다.
주지하듯이 작품의 해석은 작가의 의도에 따른 의미발견이 아니라 작품 자체에서 도출된 객관적 결과이다. 서정주주의자들은 “巡査部長출신의 고 무식한 日本人所長놈은/그 나무기둥 마다/우리會社 마크의 쇠도장을 찍어 넣어라! 해서/나는 中國人 部下靑年 두 사람을 데리고/그 쇠도장이 새겨진 쇠망치를 들고/땅! 땅! 땅! 땅!” 같은 대문을 서정주다운 수사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말재간 뒤에는 독립군을 마적이라 부르는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는 역사의식이 깔려있다. 이런 점에서 <간도 용정촌의 1941년 1월 어느 날>이 그의 말대로 ‘나의 정신적 실상의 회복’의 글쓰기라 하더라도 용인하기 어렵다. 당대 삶의 현장이 아니기에 형성될 수 없는 시적 진실이 독자의 상상력을 차단하여 시적 진실을 반대로 구현하기 때문이다. 정황이 이러하기에 서정주의 만주체험의 의미는 <滿洲에서>, <문들레꽃>, <무제>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1.3. 바보의 생명잉태
서정주가 <滿洲에서> 말고, 만주에서 쓴 다른 두 편의 작품, <문들레꽃>과 <무제>는 아주 짧은 작품이다. 그 때문인지 <무제>의 경우, 서정주는 이 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지 원제목 <무제>를 버리고 <소곡>으로 이름을 바꿨다. ‘소곡’은 규모가 작은 초라한 작품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작품에서 생활인 서정주가 아닌 회감을 독특하게 형상화시키는 서정시인 서정주를 만난다. <문들레꽃>에서는 바보가 아닌 바보를 만나고, <무제>에서는 짙푸른 하늘 아래에 사는 배고픈 ‘나’, 화자가 서정주를 지킨다.
바보야 하이얀 문들레가 피였다
네눈섭을 적시우는 룡천의 하눌밑에
히히 바보야 히히 우습다
사람들은 모두다 남사당派와같이
허리띄에 피가묻은 고이안에서
들키면 큰일나는 숨들을 쉬고
그어디 보리밭에 자빠졌다가
눈도 코도 相思夢도 다없어진후
燒酒와같이, 燒酒와같이
나도 또한 나타나서 공중에 푸를리라.
<문들레꽃> 전문
이 작품은 봄이 와 민들레가 하얀 꽃을 핀 것을 노래하는 서경시다. 1행 ‘바보야 하이얀 문들레가 피었다.’가 ‘바보1’이라 하고, ‘히히 바보야 히히 우습다’는 ‘바보2’라 하자. 바보1은 삶의 의욕을 잃고 기가 죽었고, 바보2는 바보상태에서 깨어난 바보다. 문들레꽃을 보는 바보1은 누구일까. 문들레‧민들레는 아무데서나 자란다. 길가에 밟히면서도 자라고, 척박한 자갈땅에서도 자란다. 그러면서도 하이얀 고결한 화판으로 먼지 나는 봄 길에 봄이 온 것을 알리며 주위를 밝힌다. 봄의 전령사다.
2행, ‘네 눈섭을 적시우는 룡천의 하눌밑에’는 무슨 의미일까. ‘룡천’의 1차적 의미는 ‘마구 법석을 떨거나 꼴사납게 날뛰는 모습을 욕하여 이르는 말’이고, 2차적 의미는 ‘문둥병이나 간질병 따위의 몹쓸 병’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용천의 하눌밑’은 ‘사람들이 고질에 걸려 시달리듯 살아가는 세상’, 또는 ‘머리 맞대고 함께 살기 어려운 세상’쯤 되겠다. 이런 의미를 이 시가 탄생한 1941년에 대입하면 서정주 시에서 감지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시의식이 나타난다. 바로 당대 사회를 검증하는 역사의식이다.
‘애비는 종이었다.’, ‘손톱이 까만 애미의 아들’, ‘갑오년이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을 들먹이며 선대의 가난과 불운과의 관계에서 벗어나려 병든 수캐마냥 달려온 개인사와 다른 의식, 사회의식이 행간에 배어 있다. 그러니까 둘째 행은 ‘네’가 바보 같이 눈물을 흘리며 살아야하는 그 힘든 세상, 그 질곡의 세상을 은근히 나무란다. 그러나 그 세상에도 봄이 와 민들레가 꽃을 피웠으니 얼마나 기쁘냐는 것이다. 바보야 바보처럼 주저앉지 말고 일어서라는 충고다. ‘네’는 바보 같이 눈시울만 적시는데 민들레꽃을 봐라. 민들레도 봄이 왔다고 저렇게 꽃을 피우며 봄을 맞이하지 않는가. 그래서 바보 2의 ‘히히 바보야 히히 우습다.’는 바보가 아니다. 바보 흉내다. 용천 같은 세상에 휘말려 바보처럼 울었지만 이제 ‘네’는 삶의 이치를 깨닫고 털고 일어서는 존재다.
‘사람들은 모두다 남사당派와 같이/허리띄에 피가 묻은 고이 안에서/들키면 큰일 나는 숨들을 쉬고’에서는 1, 2, 3행의 시상이 한 번 뒤집히는 언술이다. 사람들은 ‘들키면 큰일 날 일’, 은밀한 정사를 치르는 게 그렇다. 바보도 생명잉태에 동참하며 세계를 자아화시킨다. 민들레꽃이 밝히는 그 세상에로의 진입이다.
‘그 어디 보리밭에 자빠졌다가/눈도 코도 相思夢도 다 없어진 후/燒酒와같이, 燒酒와같이’는 무엇인가. 상사병이 들었으나 들키면 큰일 나는 일을 소주 먹은 듯 치르고 난 뒤, 보리밭에 나자빠져 생명의 열기를 식히는 모습이다. 그러고는 바보1과 시적 화자는 함께 히히 웃는다. 그 둘은 ‘히히 바보야 히히 우습다.’며 눈을 맞춘다. 함께 바보 흉내를 내고 있다. 이 시의 정점이 형성되는 데가 여기다. 바보를 등장시켜 ‘룡천의 하눌밑’ 같은 세상을 한번 비틀고, 육체의 향연을 보리밭의 향기와 버무리는 초 통속적 언어 활용이 그러하다. 서정주가 아니고는 창조할 수 없는 놀라운 인간주의적 감성이 몇 개의 장면으로 포개지고 있다. 여러 가지 추문에도 불구하고 서정주의 시업이 결과적으로 예술성 탐구와 민족어의 완성에 닿는, 혹은 그것을 향한 도저한 예술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은 이런 시적 성취에 근거할 것이다.
‘나도 또한 나타나서 공중에 푸를리라.’는 마지막 행은 이 시의 주문이다. 1행의 시상과 2행의 시상이 손잡고 화창한 봄 하늘을 새처럼 날아오른다. ‘룡천의 하눌’이 푸른 봄날로 바뀌며 세상과의 불화가 끝난다. 이런 점에서 이 시는 생명의 찬가이다. 굳이 계보를 추적한다면 생명파의 그 생리가 북만주, 그 역경의 세계에서 실현되는 작품이라 하겠다. 이런 점에서 <문들레꽃>은 우리의 기대에 부응한다. 서정주는 이 시를 업고 그 땅을 떠나 질마재로 돌아왔다.
1.4. <무제>와 역사의식
<무제>에는 ‘룡천의 하눌’도 없고, 들키면 큰일 날 숨을 쉬는 살 냄새도 풍기지 않는다. 과도한 생략과 감성의 절제가 시의 주제를 모호하게 만든다. 시의 제목이 없기에 더욱 그렇다. 서정주는 <무제>라는 제목의 시를 9편 썼다. 이 <無題>는 9편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서정주의 ‘무제시’는 10편이다. 193,40년대에는 ‘무제’라는 시는 아주 드문데 서정주는 그렇지 않다. 근래 시에는 ‘무제’라는 제목을 단 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전작으로 ‘무제시’를 써서 단행본으로 출판한 사례가 있으나그것은 특별한 경우다.
시인이 시를 창작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자기 확대 행위이다. 이런 이치로 보면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는 것은 적극적인 창작행위가 아니다. 그러나 창작의도를 무엇이라 명명하기 어려울 때, 또는 작품에 이름을 붙이면 작품이 분출하는 의미를 구속한다고 여길 때, 또는 유명을 넘어서는 무명의 경지를 기대하는 無名論을 펼 때 제목을 달지 않을 수 있다. 이 가운데 동방의 시인들은 세 번째를 가장 선호하는 듯하다. 有名에서 생기는 시비나 다툼을 無名으로 돌아가면 해결된다고 판단하는 가치관과 이름 없는 무명을 최고의 경지로 삼는 세계관 때문이다. 그래서 無名論이라고 할 수 있는 글이 많다. 그렇다면 이 ‘무명론’을 아상我相이 강한 서정주에 대입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그런데 묘한 것은 서정주가 ‘無題’란 시제가 ‘無名’은 ‘최하이므로 최고’인 걸 노리는듯하다는 것이다. ‘無題=無名’은 아니지만 ‘無’라는 말이 이 작품에서 비슷한 사유를 자극한다.
독자가 시를 읽을 때 먼저 착목하는 데가 제목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제목은 작품의 키워드이다. 그런데 시에 제목이 없으면 독자는 자신이 읽고 있는 작품의 핵심을 무엇을 근거로 삼아 파악해야할지 고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의 제목은 시 이해의 단초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제목이 없는 시는 독자에게 사전에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아 시적 진실의 인지를 자기 나름으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의 몫이 더 크다.
무제시의 계보를 역추적하면 중국 만당시절의 이상은李商隱부터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길재吉再, 권필權鞸, 이순신李舜臣, 이승만李承晩 등이 한문으로 쓴 나랏일을 근심하고 염려하는 ‘무제시’가 있다. 그러나 서정주의 <무제>는 나라와 민족을 고심하는 우국충정이 아니다. 그런 시와 제목이 같을 뿐이다. 하지만 서정주의 <무제>도 내포가 결코 가볍지 않고, 그것이 우리의 근대의 문제적 작가의 무제시와 닿는 데가 있어 가볍게 볼 작품이 아니다.
(1) 뭐라 하느냐
너무 앞에서
아- 미치게
짙푸른 하눌.
나, 항상 나,
배도 안 고파
발 돋음하고
돌이 되는데.
-서정주 <無題> 전문
서정주 자신은 이 작품을 딱한 시대에 쓴 딱한 작품이라 했다. 하지만 그런 평가와 달리 작품의 실재는 <문들레꽃>에서 발견한 현실 회감의 정서적 참true이 시적 진실로 형상화 된다는 점에서 ‘소품’이 아니다. 내포를 몇 마디의 역설로 드러내는 기법과 서정주의 시의 한계로 평가되는 역사의식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제1연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 나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의미다. ‘너무’라는 부사는 부정적 서술부를 동반하기에 ‘모른다.’는 부정이 성립한다. 3, 4행은 ‘하늘이 정신을 못 차릴 만큼 푸르다.’고 감탄한다. 그런데 시적 화자는 제2연 첫 행에서 3, 4행의 시상과는 아주 다른, ‘나, 항상 나,/배도 안 고파’라고 말한다. 이 말은 배가 고프지 않다는 사실을 소식의 형태로 묻는 것에 대한 대답이다.
소식이란 무엇인가. 만주 소식이다. 이 시의 공간적 배경, 시간적 배경이 모두 1940년의 만주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소식은 <만주일기>의 “기다리시지요. 찬란한 이 開拓地에 東方의 해가 소사오를 이 우렁찬 아침에 靜雄이는 오늘이야말로 人生다운 새 覺悟를 가젓습니다. 愉快하고 明朗하고 씩씩하게! 열렬한 주먹을 쥐고 前進하겟습니다.”라 한 그런 소식일 것이다.
그런데 그 심각한 사실을 ‘나, 항상 나,/배도 안 고파’ 라고 슬쩍 전함으로써 사유의 경계를 허물어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질곡의 세상, 식민지 학정에 쫓겨 만주에 갔다가 일본인 용역이 된 그런 삶의 형편을 몇 마디 말로 응축하고 있다. ‘나, 항상 나,/배도 안 고파’는 너무 간결하다. 그러나 내포는 복잡하다. 누구나 이 구절을 만만하게 읽겠지만 주제파악은 만만치 않다. 귀신 같이 부리는 역설 투의 말솜씨 때문이다.
이 시의 마지막 연의 ‘발 돋음하고/돌이 되는데.’와 ‘나 항상 나/배도 안 고파’는 길항한다. 하고 싶은 말을 억제하고, 반어법의 통사구조에 시적 진실을 내장시킨 언술이 서로 맞섬으로써 시적 긴장을 가중시킨다. 이 시의 진실이 이러하기에 <무제>라 했을 것이다. 거기에 어떤 제목을 단다면 그것은 이 시의 이런 장구가 분사하는 의미를 구속하여 ‘최하이므로 최고’인 걸 노리는 ‘무명’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무제>는 <문들레꽃>과 같은 격을 형성한다. 침묵과 응축의 기법 속에 역사의식, 사회의식이 숨 쉬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한 까닭이다. 서정주는 <무제>를 <소곡>이라고 제목을 바꾸고 만주에서의 결코 당당할 수 없는 삶을 대수롭지 않은 흔적으로 기록해 두려했지만 그 작품이 오히려 서정주를 지킨다. 굽은 소나무가 선조의 산소를 지키는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