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릴케
- 장미, 오 순수한 모순
그렇게 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잠도 되지 않는 기쁨
최초의 울음을 기억합니다 꽃의 흥성거림에서 가지를 떠난 잎사귀에서 오래된 울음을 채록합니다 허공에서 새가 태어납니다 새는 허공의 통증입니다 통증은 당신이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당신은 보이는 곳에서 활동하고 보이지 않는 곳을 선호합니다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곳은 또 다른 당신이 기거하는 공간입니다 불편한 눈들은 감아주십시오 장미의 취향이 연모에 가깝다거나 죽음을 예견한다 하더라도, 온몸에 가시를 두르고 눈시울을 붉히는 꽃은 누구를 위해 울어야 할까요 꽃잎이 떨어질 때마다 목소리를 가지는 영혼에 대해 생각합니다 가령 당신이 함부로 꺼내 읽은 어둠 혹은 아득한 혼잣말 같은 것 말입니다 독백은 때때로 풍경이 되기도 합니다 당신이 당신의 이름이 되고 내력이 되고 무의식이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당신의 태생은 빗돌이면서 맨발에 밟히는 이슬입니다 비문에 새긴 차가운 글자입니다 자각몽은 부서지기 쉬운 성정이지만 당신의 잠은 언제나 단단합니다 그러므로 저녁이 슬픈 까닭을 이해하기로 합니다 풍경은 일시에 사라지기 위한 배경일 뿐입니다 어둠이 출몰하는 곳에서 번식하는 영혼이었던 겁니다 깊어가는 영혼은 난감하고 비통한 맥락이었다는 겁니다 허공과 허공 사이에 집을 지은 당신이 보입니다 왜곡된 공간을 지나 오래된 잠을 건너는 낯선 생의 줄거리가 보입니다
강재남, 『아무도 모르게 그늘이 자랐다』 , 2021년
당신에게 릴케의 시집을 선물한 적이 있지요. 당신도 익히 아시다시피, 릴케는 장미를 무척이나 사랑하여 무수한 장미를 심고 가꾸었어요. 어느 날 릴케는 자신의 집을 방문한 여인들에게 안겨줄 장미를 꺾다, 장미 가시에 찔리게 되고 그 상처가 덧나 죽음을 맞이하게 되죠. “장미의 취향이 연모에 가깝다거나 죽음을 예견한다 하더라도, 온몸에 가시를 두르고 눈시울을 붉히는 꽃은 누구를 위해 울어야 할까요” 당신만을 위해 울어야 할까요? 보다 더 많은 당신을 위해 울어야 할까요? 저의 딜레마입니다.
“꽃잎이 떨어질 때마다 목소리를 가지는”, 무수한 “영혼에 대해 생각합니다”. 오늘 공방에서 만난 캘리 작가는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 여름을 나는 쪽방촌 사람들을 걱정하였습니다. “독백은 때때로 풍경이 되기도” 할까요?…. “당신이 당신의 이름이 되고 내력이 되고 무의식이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어둠이 출몰하는 곳에서 번식하는 영혼”은, “깊어가는 영혼은 난감하고 비통한 맥락이었다는 겁니다”
“허공과 허공 사이에 집을 지은 당신이 보입니다 왜곡된 공간을 지나 오래된 잠을 건너는 낯선 생의 줄거리가 보입니다” 당신은 붙잡을 수 없는, 결코 붙잡히지 않는 물안개와 같습니다. 매혹이라는 당신의 이름, 당신은 “장미, 오 순수한 모순/ 그렇게 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잠도 되지 않는 기쁨”입니다. 당신은 그 모든 “모순”에도 불구하고, “아득한 혼잣말” 같은 “통증”입니다. “허공의 통증” 같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허공에서 새가 태어”나듯, 당신은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릴케”의“장미”입니다. (홍수연)
🦋 다시, 시작하는 나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