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송(唐宋)시기 - 전다도
전다법은 육우의 《다경》중에서 자세한 기록이 있기 시작하였다. 《다경》의 초고는 당대의 영태 원년(765년)에 발간되었고, 또 수정을 거쳐 덕종건중 원년(780년) 이후에 원고를 탈고하였다. 《다경》의 발표는 중국 다도의 탄생을 상징이었다. 그 후 비문이 《다술》을 편찬하였고 장우신이 《전차수기》를 편찬하였으며 온정균이 《차채집록》를 편찬하고 교연, 노동이 차 노래를 작곡하면서 추파조란하였기에 중국의 전다도로 하여금 날로 성숙되게 하였던 것이다.
㉠ 전다도(煎茶道)의 차예
전다도의 차예는 비기, 선수, 취하, 후탕, 습다의 5대 환절이 있다.
① 비기(備器) - 《다경》 〈사지기(四之器)〉장에서는 다기 24점을 나열하기를 풀로(함회승), 거, 탄과, 화협, 복, 교상, 협, 지낭, 연(불말), 나합, 칙, 수방, 녹수낭, 표, 죽협, 차궤(게), 완, 숙우, 분, 찰, 척방, 재방, 건, 구렬, 또한 다기를 저장할 수 있는 도람이 있다고 하였다.
② 선수(選水) - 《다경》 〈오지자(五之煮)〉에서 말하기를 ‘그 물의 사용에서 산속의 물이 으뜸이고, 강 속의 물이 중이며, 우물 속의 물이 하이다’ ‘그 산속의 물에서도 샘물, 석지(石池)를 흐르는 물이 가장 으뜸이다.’‘그 강물은 사람과 멀리 떨어진 자를 취하며 우물은 사람들이 많이 길어 먹은 물을 취하여 사용한다.’고 하였다. 육우는 만년에 《수품(水品)》일설로 《천품(泉品)》이라는 책을 지었다. 장우신은 서기 825원년을 전후로 《전다수기(전다수기)》를 편찬하였는데 그중에서는 유백추의 천하지수(天下之水)를 7등분으로 평가한 것을 그리고 육우가 천하지수(天下之水)를 20등분으로 평가한 것을 인용하였다. 물의 품질을 중히 여기는 것은 중국 다도의 특징이다.
③ 취화(取火) - 《다경》 〈오지자(五之煮)〉에서 말하기를 ‘그 불의 사용에서는 숯으로 하며, 그 다음으로는 경신을 사용한다. 숯 차 봉급에 힘을 쓴다. 숯은 그 이정에는 번자(燔炙)로서 전니(膻膩)에 소급되는 것으로서 고목(膏木), 패기(패기)로 까지는 쓰이지 않았다’라 하였고 온정균이 서기 860년 전후에 편찬한 《채다록(采茶錄)》의 ‘변(辨)’조목에서 ‘리웨(이약)는 귀공자이다. 평생동안 화장품엔 접근하지 않았지만 차 감별에는 속성이 맞았다. 맛보면서 말하기를 ’차는 반드시 느슨한 불로 끓여야 하고 타 오르는 불로 달여야 한다‘고 하였다. 타 오르는 불이라 함은 숯불의 화염을 일컫는 것이니 이의 사용은 끓이는 물이 끓어 넘치지 않게 하는바 일반적으로 차의 맛을 기를 수 있다’고 하였다.
④ 후탕(後湯) - 《다경》 〈오지자(五之煮)〉에서 말하기를 ‘그 끓음은 어목(어목)과 같아서 척 끓음은 조금 소리가 나는 것이고 두 번째 끓음은 테두리에 연주(연주)같은 샘이 솟아나는 것이며 물결이 일고 물방울이 튕기는 것이 그 세 번째의 끓음이다. 이 이상 더 끓은 물은 너무 된 것이어서 마실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후탕(後湯)은 전다(煎茶)의 관건이다.
⑤ 습다(習茶) - 습다는 장다(藏茶), 자다(炙茶), 연다(碾茶), 나다(羅茶), 전다(煎茶), 작다(酌茶), 품다(品茶)등을 포함한다.
8세기 말에 편찬한 《봉씨문견기》 권6 음다 조목에서 기재하기를 ‘초나라 사람 육홍점(陸鴻漸)은 다론을 위하여 차의 효과 및 전다자다법 그리고 다구 만드는 24사와 바구니로 모두 저장하는 것을 설명하였다. 원근의 모든 이가 경모를 하였고, 더욱이 호사자들은 집에 하나씩 간직하기도 하였다. 상백웅(常伯熊)이라는 자가 있어서 홍점(鴻漸)의 이론을 더욱 심화시키고 윤색하였기에 그때부터 다도가 크게 행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왕과 공작, 선비들이 마시지 아니한 자가 없었다. 어사대부(御史大夫) 이계료(李季聊)는 강남을 안정시키고 회현관(淮縣館)에 이르러 백웅(伯熊)이 차 마시기를 즐기는 자이기에 이공(李公)이 청하였다고 하였다. 백옹은 황피삼(黃被衫)입고 오사모(烏紗帽)를 쓰며 손에는 다기(茶器)를 잡고 입은 차 이름을 통달하여 구분해 지적할 수 있어 모든 이로 하여금 눈을 새롭게 한다..........고’하였다. 상백웅의 평생 사적은 잘 알려지지 않으며 대력 육우와 동시대 사람일 것이다.
육우, 상백웅 외에 교연, 배문, 장우신, 유우석, 백거이, 이약, 노동, 전기, 두목, 온정균, 피일휴, 육구몽, 제기 등 사람들이 있어서 전다도의 차예에 대하여 모두 공헌을 하였다.
㉡ 다례
《다경》 〈오지자(五之煮)〉에서 육우는 말하기를 ‘인부는 진귀함을 복렬할 시 그 그릇 수를 3으로 하며 다음으로 5로 한다. 만일 손님의 수가 5명이라면 3그릇씩 행하며, 손님수가 7명이라면 5그릇씩 따른다. 만약 손님 수가 6일 이하라면 그릇 수에 제한되지 않으나 일인분이 모자라는 부분을 전영(전영)으로 보충한다’고 하였다. 한 번 차 다림에 적어도 3그릇이고 많아도 5그릇이다. 손님이 5명이면 3그릇씩 따르고 7명이면 5그릇씩 따르며 부족한 2그릇은 먼저 퍼낸 ‘전영’으로 보충한다. 만일 손님이 4명이상이면 3그릇씩 따르고 6명이면 5그릇씩 따르며 모자라는 1그릇은 ‘전영’으로 보충한다. 만일 8명 이상이면 화롯불을 2개로 하며 화롯불 3개에 동시로 끓일 수 있다. 다시 사람 수에 따라 그릇 수를 확정한다.
㉢ 다경(茶經)
《다경》〈구지략(九之略)〉장절에서는 ‘약송간석상가좌(약송간석상가좌), 약감천임간(약감천임간)’‘약원(상초하삼개전자)제암(제암), 인긍입동(인근입동)’고 하였는데 이는 곧 음다 활동을 소나무 사이의 바위 위, 샘의 변간측, 산의 동굴 중에서 진행한다는 뜻이다. 〈십지도(十之道)의 장절에서는 또 기록하기를 ‘비단으로 혹은 4폭 혹은 6폭으로 나누어 씌어졌는데 여러 구석구석까지를 다 기록하였다. 즉 차의 기원, 공구, 제조, 그릇, 끓이기, 마시기, 행사, 축출, 책략을 보는 것으로 적었다. 이에 《다경》은 그 내용의 시작과 끝을 완비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실내에서 차를 마실 때 사면 벽에 《다경》의 내용을 담은 족자를 걸어서 후세에 서화 족자를 거는 효시를 열었다.
여온(呂溫)의 〈3월 3일 다연서(茶宴序)〉에서 말하기를 ‘3월3일 사월의 청명절은 차를 마시는 날이니 이에 제자들은 의논하여 다작(茶酌)으로 대체한다. 비로소 꽃 계단을 돌아 마당의 그늘에서 휴식을 하는데 시원한 바람은 사람을 설레게 하고 날씨는 사람의 흥을 머무르게 한다. 누워서는 푸른 아지랑이를 보고 앉아서는 향기로운 가지에 기대지만 꾀꼬리 울음소리 가까이에 들리거늘 그 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앉아서는 향기로운 가지에 기대지만 꾀꼬리 울음소리 가까이에 들리거늘 그 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옷자락에 스치는 꽃봉오리 또한 흩어지지 않네.....’라고 하였다. 날아가는 꾀꼬리에 꽃잎은 날리고 바람은 시원히 햇빛은 밝아 맑고 은은한 환경이로다.
전기(錢起)는 〈조거(趙莒)와의 다연(茶宴)에서〉라는 시에서 말하기를 ‘참나무 아래에서 말 잊고 자다(紫茶)를 대하니 전승한 도인은 지는 노을에 취하누나, 속세의 마음은 깨끗이 버려도 절로 나는 흥은 다하기 어렵고, 한 나무의 매미소리에 그림자는 기울어 지네’라고 하였다. 청죽이 흔들거리며 나무 그림자가 기울어지는 청아한 환경이다.
임간석상(林間石上). 천변계반(泉邊溪畔), 참나무 아래의 그윽하고 품위 있는 자연 환경을 선택하였다. 혹은 도관승료(道觀僧寮), 서원회관(書院會館), 청당서재(廳堂書齋)이며 사면 벽에는 족자를 걸어놓는다.
㉣ 수도(修道)
《다경》의 〈일지원(一之源)〉에서는 기록하기를 ‘다지위용, 미지한이라, 차의 복용에 그 맛이 극히 없음으로 그 마임에는 정행검덕 득 올바른 행동을 하고 소박한 덕성을 가진 사람한테는 가장 맞으며, 만약 덥고 마르고 뭉치고 답답하며, 머리가 아프고 눈이 보이지 않고 사지가 성가시고 모든 마디가 시원치 않으며 네 댓번 쉼이 없이 말을 한 상황에서는 제호감로와 맞먹는다’라고 하였다. 차를 마시는 것은 ‘정행검덕(精行儉德)’에 이로우며 사람으로 하여금 강신건체(강신건체)하게 한다.
《다경》의 〈사지기(四之器)〉에서는 그 풍로의 설계를 할 때에 곧 바로 유가《역경(易經)》의 ‘팔괘(八卦)’와 음양가의 ‘오행(五行)’사상을 응용하였다. 풍로 위에는 ‘감상손하리우중(坎上巽下離于中)’‘체균오행거백질(體均五行去百疾)’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복(鍑)의 설계는 ‘네모난 것을 귀틀로 하는 것은 올바르게 하기 위함이요. 그 테두리를 넓게 하는 것은 오래 사용하기 위함이며, 배딱지를 길게 함은 그 중심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고 하였는바 이는 모두 유가의 정령(正令), 무원(務遠), 수중(守中)의 ‘중정(中正)’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다경》은 단지 음다의 양생효용을 밝혔을 뿐만 아니라 이미 음다를 정신문화의 단계로 승화시켜 그 종자를 검덕(儉德), 정령(正令), 무원(務遠), 수중(守中의 배양으로 하고 있다.
시 승려 교연은 육우보다 연장이지만 육우와는 망년지교였다. 교연은 다도를 정통하여 다시(다시)20여 수를 지었다. 그의 〈음다가초최석사군(飮茶歌誚崔石使君)〉라는 시에는 ‘한 번 마심에 흔미함을 씻고 한번 더 마심에 나의 정신이 맑아지니 날리는 비가 먼지에 뿌려지듯 하고 세 번 마시어 득도하니, 어찌 번뇌 벗기에 고심이 필요하랴..... 다도에 모든 진리가 있음을 익히 아니, 오직 단구(丹丘)만이 이를 얻음과 같더라’라고 하였다. 교연은 처음으로 ‘다도(茶道)’라 표기하였다. 그의 차문화 역사에서는 공덕은 육우와 맞먹는다. 그는 차를 마시는 것이 혼미함을 씻고 정신을 말게 할 뿐만 아니라 도 닦음의 문경이라고 인식하면서 세 번 마심에 모든 진리의 득도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옥천자 노동은 《주필사맹간의기신다(走筆謝孟諫議寄新茶)》 즉 ‘가는 필로 맹간의 보낸 새 차에 감사하면서’라는 시중에서 쓰기를 ‘한 주발에 목 축이고, 두 주발에 고민이 없어지며, 삼 주발에 메마른 마음을 모으니 오직 문자 오천 권이구나. 네 주발에 맑은 땀을 내니, 평생의 불평사, 모공으로 흩어져 없어지네, 다섯 주발로 나의 기골 맑고, 여섯 주발에 선령과 통하니 일곱 주발을 마시면 안 되거늘 두 겨드랑이로 청풍이 이는구나’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문자5천권’은 노자의 5천 언《도덕경》을 가리키는 것이다. 세 주발의 차에 시비와 은혜 원한이 연기가 소실되고 구름이 흩어지듯 없어진다는 뜻이며 오완기골청(五碗肌骨淸), 육완통선령(六碗通仙靈), 칠완우화등선(七碗羽化登仙)이라소 하였다. 이 ‘칠완다(七碗茶)’가 천고에 유전이 되면서 노동은 이로 인해 육우와 같이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전기는 《조가와의 다연》이라는 시에서 주인과 손님이 마주앉아 차를 마시는 것을 쓰면서 말은 잊어도 도는 있었고, 속세의 마음을 씻어 버리니 연단복약보다 훨씬 낳았다고 하였다.
비문(비문)은 《다술(茶述)》에서 기록하기를 ‘차는 동진에서 기원하여 금조에 이르러 발전하였다. 그 성정(性精)은 맑고, 그 맛이 담결(淡潔)하니, 그 사용됨은 번뇌를 씻는 것이요, 그 공효는 화합하는 것이리라. 백 가지를 섞어도 혼잡하지 않으니 모든 이를 넘어서 오로지 홀로 높다’라고 하면서 차는 그 성질에서 맑고 맛은 엷어, 번뇌를 씻어 화합에 이르게 하며, 그 합함에도 부동하여 품격은 홀로 높기만 하더라고 하였다.
당나라 중기 이래로 이미 차의 청, 담의 품성과 척번(滌煩), 치화(致和), 전진적공용(全진的功用)을 인식하였다. 음다는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양생(養生), 이정(怡情), 수성(修性), 득도(得道)를 하게 할 수 있으며 더욱이 우화등선(우화등선)할 수 있다고 한다. 육우의 《다경》, 비문의 《다술(茶述)》, 교연의 ‘삼음(三飮)’, 노동의 ‘칠완(七碗)’은 모두 다도의 정신을 높이 거양하였으며, 음다를 일상적인 물질 생활로 부터 정신적인 문화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이상으로 종합해보면 8세기 의 당나라 중기 떼에 이르러서 차를 달이는 차예는 완비되었으나 차로 도를 닦는 사상이 확립되었으며, 음다 환경을 주시하는 초보적인 음다 예의가 구비되었는바 이는 중국 다도를 정식으로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육우는 전다도의 창시자일 뿐만 아니라 또한 중국 다도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기도 하다. 전다도는 중국에서 제일 먼저 형성된 다도의 형식이며 당나라의 중, 말기에 흥성하여 오대(五代) 북송을 걸쳐, 남송에 이르러 망함으로써 대략 5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