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과 다윗 Ⅲ (삼상 19:1-24)
영적적용 : 육신관리론
요약
성도의 육신은 어떻게 관리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 말씀의 감화와 지
혜와 기도로 관리함이다. 즉 요나단이 사울을 설득함은 하나님의 사랑의 감화
와 생명 건 큰 구원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감화를, 다윗이 멀리서 수금을 탐과
사무엘에게 피신함은 죄는 멀리하고 신앙은 가까이 함의 지혜를, 사울이 세구
의 큰 우물 근처에서 성령을 받았듯이 기도로서 은사를 받아 육신을 관리해야
한다.
설명
본문은 사울이 다윗을 죽이고자 세 번이나 음모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여기에
신령한 의미의 육신관리법이 나타나 있다.
☆ 육신 관리법
1. 하나님 말씀으로서 관리해야 합니다.
6-7절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그가 죽
임을 당치 아니하리라 요나단이 다윗을 불러 그 모든 일을 알게 하고 그를 사
울에게로 인도하니 그가 사울 앞에 여전히 있으니라"
1) 요나단이 설득 - 복음의 말씀의 감화를 가리킨다.
2) 큰 구원을 이룸 - 그리스도이 십자가 희생 사건을 연상시킨다.
2. 지혜로 관리해야 한다.
10절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
고" 12절 "미갈이 다윗을 창에서 달아 내리우매 그가 도망하여 피하니라"
1) 멀리서 수금을 탐 - 죄는 멀리함이 지혜이다.
2) 사무엘에게 피신 - 신앙 감동의 요소를 가까이 함이 지혜이다.
3. 기도로서 해야 한다.
23-24절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
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행하며 예언을 하였으며 그가 또 그 옷을 벗고 사
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종일 종야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웠었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1) 세구 - '전망대'라는 뜻으로 성령을 사모함의 교훈이다.
2) 큰 우물 - 성령을 상징한다.
강해
오늘은 다윗 세 번째 시간으로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 계속적인 사울의 음모에
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본문 만해도 사울은 다윗을 죽이고자 세 번이나 음
모함을 봅니다. 특히 사울은 다윗이 전공을 세워 그 명성이 높아질 때마다 시기와
질투가 극도에 달하여 다시 귀신에 들려 발작합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진리는 '신
앙이란 주도권 싸움이다' 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의 원리는 '영혼의 성장만이
우리의 소망이다' 하는 점입니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
을 다스릴 남자라' 한 것처럼 역사적으로 만국을 다스린 남자인 다윗의 잠재력은
곧 온 만유를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예표요, 또 우리 중생한 성도들의 영적인 예
표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열심히 신앙 안에서 성장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육신을 다스리는 비결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 육신이란 하나
님께서 주신 것으로 아주 없애거나 무관심할 성질도 아니요 오직 다스려서 하나
님의 도구로 고쳐서 쓸 성질의 것입니다. 만약 아주 없앤다면 그것이 곧 죽음이
요, 또 무관심한다면 그것으로 인해 병들어 큰 환난이 오게 됩니다. 그렇다고 무
조건 두둔하다가는 우리의 영혼을 지옥까지라도 끌고 갈 수 있는 무서운 것이 바
로 육신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육신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영혼에 붙
어 있으며 육신도 곧 우리 자신이란 점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가 너무나도 중요합
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
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
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
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
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
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
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막9:43-49)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기 육신관리가 아주 중요합니다. 천국의 상도 이 육신을 어
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썩어질 것으로 심고 신
령한 것으로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육신이란 별 것이 아닌 것 같아도 우리
에게 가장 큰 영광을 가져다 줄 수도 있고 반대로 가장 큰 불행을 가져다 줄 수
도 있습니다.
그럼, 육신 관리법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육신은 하나님 말씀으로서 관리해야 합니다.
1-7절의 내용입니다. 그 중에 6-7절에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되 여
호와께서 사시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치 아니하리라 요나단이 다윗을 불러 그 모
든 일을 알게 하고 그를 사울에게로 인도하니 그가 사울 앞에 여전히 있으니라"
했습니다.
이 부분을 보면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에게 목숨걸고 다윗을 비호하며 변호하며
부탁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범죄하지 말라는 것이요, 구체적으로는 다윗
은 왕에게 득죄하지 않았고, 한 번도 왕에게 악을 행치 않았으며, 선한 일만 했
고,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원수들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위해 큰 구원
을 이루어 왕도 기뻐하지 않았느냐는 내용입니다. 여기 요나단이 사울을 설득하는
내용을 보면 그 대로 다 복음입니다.
이처럼 우리 육신이 하나님을 거역해야 할 이유가 어디있습니까? 우리를 사랑하
사 세상에 나게 하시고, 독생자를 보내어 구원하여 주셨고, 성령을 영혼만이 아니
라 육체까지도 주셨고, 또 육신의 연약함도 도우셔서 치료하시고, 의식주도 허락
해 주시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붙들어 주실 것이며, 나중에 육신도 영혼과 동일하
게 부활시키셔서 영생의 소망까지 주셨는데 무엇이 불만이 있고 무엇이 거역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육신이 방종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영혼을 죽이려
고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른다는 소치요 이치상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귀한 진리 속에서 감화를 받아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며 순
복하고 낮아져야 합니다.
특히 요나단이 다윗이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었다는 말
이 사울에게 큰 설득이 된 것처럼 우리는 나를 위해서 천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시고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수치와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사 나를 구원
하신 그리스도의 큰 사랑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 때 육신은 통제가 되어집니
다. 여기 육신이란 비단 몸만을 의미한다기 보다 생각까지를 포함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그 크신 은혜를 깨닫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방종하고 교만하고
안일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바른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 앞에 자신의 육신적인 것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자 그 완악하고 귀신이 들리기까지한 사울이지만 6절에 여호와의 사심으로
다윗을 해치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 결과입니다. 이처럼 우
리는 늘 말씀에서 그 은혜를 깨닫고 맹세는 못할지라도 정말 굳센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즉 육신 통제는 하나님의 말씀의 감화에서 온다는 사실을 깊이 기억하시
기 바랍니다. 그러나 육신은 감화를 받았다가도 잠시 후면 또 다시 엉뚱한 생각을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의 말씀과 성도와 교회를 가까이 하며 감
화 속에 살아야 합니다.
2. 육신관리법은 시험될 일들은 멀리하는 지혜로 관리해야 합니다.
8-17절의 내용입니다. 10절에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
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또 12절에 "미갈이 다윗을 창에서 달아 내리우매 그가 도
망하여 피하니라" 했습니다.
이번에도 다윗이 사울에게 죽임을 당할 결정적인 두 번의 사건이 있었지만 하나
님의 도우심으로 잘 피했습니다. 10절과 12절에 피했다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당시 블레셋과의 전면전도 있었지만 국지전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또 전쟁
에 나가서 큰 승리를 거두자 그 동안 잠잠하던 사울에게 다시 불일듯한 시기와
질투가 생겨나 또 악신에 들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때 다윗과 그의 처 미갈의 태
도가 주는 교훈이 참 오묘합니다.
먼저는, 수금을 타는 다윗의 교훈입니다. 다윗은 전에는 귀신 들린 사울 곁에서
수금을 탔습니다. 그래서 연속적인 창질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 번에는 떨어
져서 수금을 탔습니다. 사울이 창을 던져 그를 벽에 박으려고 한 것도 그가 떨어
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을 멀리 피신시키는 미갈의 교훈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한다
는 정보가 입수되자 미갈은 다윗을 밤에 창문을 통해서 도피시킵니다. 여러분 미
갈이 누구입니까? 사울의 딸이지요? 그러나 미갈의 이름은 천군장 미가엘과 같습
니다. 두 다 공통점이 많은데 두 다 자식이 없지요? 둘 다 보호하는 사명이지요?
둘 다 왕과 특별한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늘의 왕이요 하나는 땅의 왕입니
다. 그런데 본문이 말씀하는 중요한 점은 미갈이 다윗을 멀리 피신 시켰다는 것입
니다. 우상을 눕혀 놓고 변장시켜 다윗이 병들었다고 속이면서까지 시간을 벌어
다윗으로 하여금 멀리 피신하게 하였습니다.
이 두 사건에서 주는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육신은 가급적 시험을 멀리
하는 것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위험한 가스나 휘발유는 어떻게 관리해야 합니까?
불과 멀리 관리해야 합니다. 그곳은 절대적인 금연구역이어야 합니다. 이처럼 육
신에는 본능라는 휘발유와 같은 것이 있어 세속과 가까이 두면 타락하기 쉽기 때
문입니다. 이리역 폭발사고를 우리는 잊지 못합니다. 수십톤의 화약박스 위에 켜
놓은 촛불이 불러온 그 비극 말입니다.
믿음 좋은 교인들이라도 사람 잘못 사귀면 10년 가르친 것 하루 아침에 버립니
다. 또 남녀 관계도 바울의 교훈 대로 멀리함이 지혜입니다. 사람은 가까이 하다
보면 가깝게 되어 있습니다. 가깝다 보면 문제가 생겨나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주
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이길 수 있어야 하지만 또한 우리 육신의 약점도 인정해
야 합니다. 그래서 되도록 자기 앞에 거친 것을 두지 말고 형제들 앞에 거친 것을
두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니다. 학생들도 중고등학교 기간 동안에는 혹시 공부에
지장이 될지 몰라도 신앙과 가정교육을 위해서 외지로 보내지 않아야 하겠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그래서 지혜의 대왕 솔로몬은 잠언에서 이렇게 교훈했습니다. 잠2:16 이하에 "지
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그는 소시의
짝을 버리며 그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 그 집은 사망으로, 그 길은 음부
로 기울어졌나니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 길을 얻
지 못하느니라 지혜가 너로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그리고
잠5:1 이하에서는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근
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
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
우며 그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 걸음은 음부로 나아가나니 그는 생명의 평탄한
길을 찾지 못하며 자기 길이 든든치 못하여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그런즉 아
들들아 나를 들으며 내 입의 말을 버리지 말고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하라 그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두렵건대 네 존영이 남에게 잃어버리게 되며 네 수한
이 잔포자에게 빼앗기게 될까 하노라 두렵건대 타인이 네 재물로 충족하게 되며
네 수고한 것이 외인의 집에 있게 될까 하노라 두렵건대 마지막에 이르러 네 몸
네 육체가 쇠패할 때에 네가 한탄하여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나를 가
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 많은 무리들이 모인 중에서 모든 악
에 거의 빠지게 되었었노라 하게 될까 하노라" 했습니다. 여기 음녀란 비단 이성
문제만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음녀는 종교적 윤리적 도덕적 기타 모든 죄악을 다
가리킵니다. 성경은 이단도 멀리하라고 교훈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믿음에 도움
이 되는 환경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강정식을 선호하는
데 지나치면 지혜로운 일이 되지 못합니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오늘까지도 우
리에게 좋은 교훈을 줍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성곽을 쌓는 일입니다. 이 성곽
이 튼튼하면 안정된 신앙생활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시122:6-7절에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
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사울을 멀리하지만 반대로 가까이 한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영
의 거성인 사무엘이 있는 라마나욧이었습니다. 이 곳은 얼마나 영적인 세력이 강
한 곳인지 나중에 사울과 그 군대가 접근하기도 전에 성령에 감동됩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 곳에 피신하였습니다. 즉 가까이 한 것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시험의
요인을 멀리하고 은혜의 요인은 가까이 하는 지혜롭게 육신을 관리하시는 성도들
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육신관리는 기도로서 해야 합니다.
18-22절의 내용입니다. 그 중에 23-24절에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
의 신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행하며 예언을 하였으
며 그가 또 그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종일 종야에 벌거벗은 몸으
로 누웠었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한
말씀이 있습니다.
사울을 피해 도피한 다윗은 라마 나욧의 선지학교 사무엘을 찾아 갑니다. 이 소
식을 들은 사울은 사자들을 세 번이나 보내 다윗을 잡고자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세 번 다 그들이 하나님의 신에 사로잡혀 다윗 잡는 일을 잊고 예언을 한 것입니
다. 그래서 사울이 직접 다윗을 잡으려고 가지만 사울 역시 세구에 있는 큰 우물
근처에서 사무엘과 다윗을 소재를 묻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예언을
하며 라마 나욧에 이르러 그 곳에서 옷을 벗고 예언을 하며 종일종야 눕는 놀라
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다윗을 잡으러 왔던 사울이 변화되는 장면입니다.
여기 사울이 성령을 받은 세구의 큰 우물이 무엇일까요? 세구란 전망대라는 뜻
이요 큰 우물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이것을 한자로 압축한다면 성령 대망이 되겠
습니다. 즉 구해서 얻는 성령이란 뜻이 되는데 이것은 바로 은사를 뜻합니다. 즉
성령의 은사를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은 한 성령이시지만 생명으로 나타날 때
는 중생으로 능력으로 나타날 때는 은사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은사는 구해야 옵
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육신이 완악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순복하도록 영성을 입혀주시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육신은 보고
듣고 체험하지 않으면 얼른 믿거나 순종하려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순수
한 믿음을 가진다면 성경 66권으로도 부족함이 없지만 인간의 육신은 너무도 완
악하여 알면서도 그냥은 믿으려 하지 않고 그냥은 순복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돔 성에 롯에게 천사가 나타나 강제로 손을 잡고 끈 것처럼 성령께서
은사를 통하여 우리의 손을 잡고 끌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세 번이나 사자들을 통한 간접적인 교훈을 통해서도 마음을 고치
지 못하여 자기 스스로 다윗을 잡고자 했다는 사실은 그 만큼 우리 육신은 완악
함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우리는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체험을 합니까? 예수 믿
는 사람치고 체험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꿈 속의 일이 현실로 나
타나는 일도 많습니다. 이런 경우가 많은 분들은 영 분별의 은사가 임한 것으로
생각하면 틀림이 없습니다. 이것은 미리서 기도로 대비하여 사단의 시험에서 지키
고 주신 것으로 믿고 열심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사울의 완악함은 스스로가 직접 성령에 사로잡힐 때 비로소 풀려졌습
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구적인 것은 아닙니다. 육신은 성령이 감동이 끝나면 언제
든지 다시 원 위치로 돌아가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
도에 힘써 성령의 감동이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기도가 약해지는 순간 인간
은 넘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여 있어 기도하라 하
셨습니다. 그럴 때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한 속담처럼 육신도 하나님을 위한
귀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의 육신 통제법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신은 하나님이 내신 것이요 하나님의 유업을 함께 누릴
대상이며 하나님의 도구임이 사실이지만 육신이 제 위치에 있지 못하고 나타날
때 이것이 우리를 실족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말씀의 감화와 세속을 멀리
하고 기도를 통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온전히 육신을 다스려 하나님께서 쓰
시고 기뻐하실 구한 육신이 되도록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