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과
영적 성장을 위한 비결-성령
초대교회의 선교 사역은 성령과 함께하는 사역이었으며 성령이 주도하는 사역이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전파를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유대인들의 선민의식과 이방인에 대한 천대하는 정신이 자리잡혀 있는 이들 속에서 배움이 짧은 제자들이 선교사역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성령의 권능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그 사업이 쉬울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들을 대항하는 거대한 악의 연합을 보여 주셨다. 그들은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 (엡 6:12)과 싸워야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홀로 싸우도록 버려 둔 바 되지 않을 것이었다. ”(행적, 29)
이러한 상황가운데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큰 권능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성령의 권능이다. 성령이 함께하지않았다면 이 선교 사역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제자들에게 성령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구주께서는 아무리 논리적이라 할지라도 논쟁으로는 굳은 마음을 녹이거나, 세욕과 이기심의 딱딱한 껍질을 깨뜨리지 못할 것을 아셨다. 구주께서는 제자들이 하늘의 선물을 받아야만 하며, 또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분을 아는 산지식으로 뜨거워진 마음과 감동적인 입술로 선포할 때에만 복음이 효과가 있으리라는 사실을 아셨다. ”(행적, 31)
세상의 욕심과 이기심의 딱딱한 껍질들로 마음이 둔해져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복음을 받아들이게하고 그들의 마음을 복음의 말씀으로 녹이는데에는 하늘에서 주신 선물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 일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성령이 필요한지를 아시고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던 것이다.
(행 1:4-5) 『[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제자들은 성령이 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을 것이다.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자 방언의 역사가 나타났다.
(행 2:1-4) 『[1]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한번도 경험해보지않는 방언의 역사는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바람이 불 때 바람따라 배가 떠내려가듯 제자들도 성령의 바람이 임하자 성령에 이끌려 말씀을 선포하였다. 어느 누구도 몰아치는 성령의 바람을 막을 수는 없었다. 또한 폭풍이 거침없이 몰아치듯 성령의 충만함은 거침없이 몰아쳐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16개국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서 각기 자신들의 나라 방언으로 선포된 말씀을 듣게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어부들처럼 배움의 지식이 짧은 사람들에게서 시간적으로, 능력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방언의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고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모든 일은 성령의 권능이 임한 결과였으며 성령이 주도한 역사였다.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자 두려움이 누구 앞에서든지 담대하게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
(행 4:13)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 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행 4: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행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초대교회는 일곱 집사를 선택하였다. 그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었다.
(행 6: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행 6: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일곱집사 중 한 명이었던 스데반은 어떠한 사람이었는가?
(행 6: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이 말하게하심을 따라 말할때에 그의 말을 능히 당해낼 사람들이 없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강력한 무기는 무엇일까? 똑똑한 것일까? 재능이 많은 것일까? 재물이 많은 것일까? 아니다. 성령의 충만함이다. 성령의 능력이 임할 때 그 능력을 능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하루아침에 이방나라의 언어를 유창하게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어떤 사람이 앉은뱅이를 손만 잡아 일으켜서 걷게하고 뛰게할 수 있겠는가? 스데반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말하자 어느 누구도 능히 당해내지 못한 것이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었다. 어떤 은혜였었는가?
(행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것을 보게되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요 축복인가?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에게 하나님께서는 가장 귀한 장면을 보여주고 싶으셨다. 그에게 영광스러운 하늘의 광경을 보여주신 것이다. 얼마나 사랑스러웠으면 그리하셨을까? 성령이 충만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축복이었다.
스데반의 순교이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흩어지게 되었다. 그 중 빌립 집사는 사마리아 성에 가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게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와서 행한 일은 무슨 일이었는가?
(행 8:14-17)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15]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만 받을 뿐이러라 [17]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이방인들에게도 성령받기를 기도하였다. 복음도, 성령도 유대인이나 제자들의 소유물이 아니란 것이다. 그것은 누구든지 이 복음과 성령을 받기를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주시기를 원하신다. 빌립 집사도, 베드로와 요한도 이 복음과 성령에 대하여 선민의식을 가지지않았다. 모두에게 이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은혜가 주어진 것처럼 성령도 제자들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주시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하여 빌립 집사를 사용하셨다.
(행 8:26)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행 8:29-30)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성령께서는 에디오피아 복음 전파를 위해 빌립 집사를 어떻게 사용하셨는가? 예루살렘에 왔다가 가는 중이었던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성령께서 빌립에게 나아가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이것은 복음 전파는 성령이 주도하며 이끄신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게하기 위하여 주의 일꾼들을 적절한 상황으로 인도하셔서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신다. 에디오피아의 복음 전파를 위해 성령께서는 만남을 통해 일하게하신 것이다.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후 빌립은 어디로 갔었는가?
(행 8:39)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행 8:40) 『[40]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하나님께서 빌립을 다른 곳으로 인도하셨다. 아소도에 있는 여러 성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이다. 그 후 가이사랴로 이르게되었다. 빌립은 성령의 도구가 되어 성령께서 이끄시는대로 사역을 하였다. 빌립의 사역은 주의 영이 이끌어가는 사역을 한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게하시고자 일꾼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실 것이다.
“한 천사가 빛을 구하고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에게 빌립을 인도한 것처럼, 오늘날도 천사들은 성령께서 저희 혀를 성화시키고 그 마음을 정련하고 고상하게 하도록 허락하는 일꾼들의 발걸음을 인도할 것이다. ”(행적, 109)
우리는 복음 전파를 위해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성도들이 되어야할 것이다. 성령이 주도하는 사역, 성령이 함께하는 사역,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역이 되어야할 것이다. 그러기위해 성령충만한 생애를 살아야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을 위해 또 어떤 인물을 사용하시는가?
(행 10:17-20) 『[17]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마침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18]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우거하느냐 하거늘 [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20]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성령께서 이방인 전도를 위해 베드로를 사용하신다. 보자기 환상을 통해 베드로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하신 후 백부장 고넬료가 보낸 종들과 함께 가도록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명령을 내린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있을때에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났었는가?
(행 10:44-46) 『[44]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시니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그곳에 함께 말씀을 듣던 중 모든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임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성령께서는 복음 전파와 영혼구원을 위해 관여하시고 역사하신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본격적인 이방인 선교를 하도록 명령하신다. 어떤 인물이 택함을 받게되었는가?
(행 13:1-3)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행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행 13: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성령께서 바울과 바나바를 이방 선교를 위해 따로 세우셔서 선교사로 파송하게 하신 것이다.
이들은 구브로 섬을 시작으로 높은 타우루스산맥때문에 힘들었던 밤빌리아 버가를 가기도하였고 이고니온에서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고함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하였으며 루스드라에서는 돌에 맞아 거의 죽을뻔한 상황까지 갔어도 지나온 교회들을 다시 가서 돌아보는 사역을 행하였었다. 성령께서 보내신 일에 충성을 다하는 자들의 모습이다.
성령께서는 2차 선교여행을 떠난 바울과 바나바에게 어떻게 관여하셨는가?
(행 16:6-9)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 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2차 선교여행 때 바울과 바나바는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고자 하였었다. 그런데 성령께서 직접 선교의 길을 막으시는 것이었다. 아시아에서 말슴을 전하지 못하고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가게된다. 그리고 또 비두니아로 가고자 하는 그들을 막으신다.
드로아에서는 밤에 환상가운데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도와주라는 환상을 보게함으로 마게도냐로 건너가서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뵈레아, 아덴, 고린도 지역에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이와같이 성령께서 선교사역을 주도하신다는 것을 깨닫게해 주셨다.
이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에게 직접 위험을 미리 알려주기도 하셨다. 어떤 위협에 대한 지시였는가?
(행 20:23-24)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1: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행 21:10-11) 『[10]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갔을 때 사로잡힐 수 있으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였다. 두로의 제자들과 아가보 선지자를 통해 알려주시기도 하셨다. 하지만 바울은 그 위험을 피하지않고 복음을 위해 목숨을 잃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성령께서는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성도들에게 맡기시지만 복음 전파를 위해 여러 방법으로 도우신다. 성령충만함으로 담대하게 말씀을 전파하게하시고 무슨 말씀을 전파해야할 것인지, 때로는 방언의 은사를 내리셔서 많은 이방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하시고, 또한 각종 표적과 기사와 치유의 은혜를 내리시기도 하시며, 직접 성령의 음성으로 명령하시고 환상을 통해 선교사역을 이끌어가시고 주도하신다는 사실이다.
이와같이 각 교회 선교사역은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주도하시는 사역이 되어야할 것이다.
오늘날 선교사역을 하기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성령이다.
한 영혼이 성령의 감동을 받게될때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가?
(요 4:28-30)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물길러 왔었던 물동이를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 후 그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친구들에게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였다. 성령의 감동을 받게되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그 감동이 마음을 가득채울 때 그 감동을 도저히 억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생명을, 그 감동을 전하지않고는 있을 수가 없게되는 것이다.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혼의 전률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의 참회의 정신은 깊은 것이어서 마치 감정의 폭풍과 격동이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게 될 것이며, 그의 온 영혼이 진리의 회개케 하는 능력 아래 부복하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회개한 영혼에게 용서를 말씀하실 때, 그는 하나님께 대한 정열과 사랑으로 충만해 질 것이며 열성과 활력으로 가득 차게 되고 그가 받은 생명을 주는 정신은 도저히 억제할 수 없을 것이다. ”(전도, 288)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에 따라 성령을 간구하는 일이다. 성령으로 충만하게될 때 성령께서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시게될 것이다. 우리가 성령의 도구가 될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정열과 사랑, 열성과 활력, 전하고자하는 정신을 주실 것이다. 그럼 우리의 모든 사역은 성령이 주도하는 사역이 될 것이다.
성령의 약속
“성령의 약속은 어떤 시대나 어떤 족속에게 제한되어 있지 않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거룩한 감화가 세상 끝 날까지 그를 따르는 자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행적, 49)
하나님께서는 성령이 성도들과 교회 안에 충만하기를 원하신다. 에스겔에서는 성전 동쪽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남쪽 제단 우편으로 흘렀고 북문으로 나가서 보니 물이 바깥문 우편에서 나와 흘러 일천 척을 척량하자 물이 발목정도이던 물이 일천척을 또 척량해보니 무릎정도가 되고 또 일천척을 척량해보니 물이 허리쯤 차게되었더니 또 일천척을 척량해보니 강이 되어 물을 건너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겔 47:1-5) 『[1]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겔 47: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이 물이 강물이 되어 모든 생물이 번성하고 모든 것이 살게되고 고기가 심히 많고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게되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교회 안에 성령이 충만해질 때 교회가 영적으로 번성하게되고 영적으로 살아나고 영적으로 소성함을 얻게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교회의 영적 성장에 필수적인 것이다. 교회가 성장하기위해서 성도들마다 성령 충만을 간구해야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령이 임재할 수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과 뜻을 두어야할 것이다.
“성령께서 임하실 수 있는 곳에 그대들의 마음과 뜻을 두라. 그분께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통하여 그대들의 마음과 양심에 이르고자 역사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7증언, 213)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도구가 되기위해 우리의 마음이 준비돼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릇에 무엇인가 담기 전에 그릇이 먼저 깨끗하게 준비되어야하는 것처럼 우리가 먼저 준비되어야하는 것이다. 그럼 성령이 임할 때 어떤 변화가 생기는 것일까?
“성령 강림 후, 제자들은 그분과 그분이 위하여 죽으신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였으므로 그들의 말과 기도를 듣는 사람들의 심령이 녹았다. 그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말하였으며 그 능력의 감화로 수많은 사람들이 개심하였다.” (사도행적, 22)
성령의 충만은 영혼들에 대한 사랑의 충만으로 이어지고 사랑의 충만은 사람들의 심령을 녹이게하고 사람들을 개심하게만들게될 것이다. 영혼들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해진다는 것은 성령이 충만해진 결과이다. 성령이 아니고는 사람의 심령을 녹일 수 없다. 성령이 충만해질 때 사랑이 그들의 심령을 녹게할 것이다.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해지는 성령충만한 성도들이 많아질 때 개심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