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장 소야(少爺) -3
군옥산(君玉山) 기슭, 대지를 핏빛으로 물들이는 노을 아래로 나
란히 걸어가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일남일녀(一男一女)인데, 모습이 조금 신비했다. 아니, 우스꽝스
럽다고 하는 쪽이 더 알맞을 것이다.
사내가 앞서 걷고 여인은 뒤따라 걷는데, 사내는 기(奇)하다 할
수 있고, 여인은 괴(怪)하다 할 수 있었다.
사내는 속옷 차림이었다. 반면, 여인은 아주 헐렁한 옷을 걸쳤고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있었다.
여인은 사내의 그림자(影)인 양 바짝 뒤따르고 있었다.
"광인도장(狂人道場)이 머지않았다. 잘하면 내일 새벽 안에 그 곳
에 당도할 수 있을 것이다!"
청년은 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노르끄레한 얼굴인데, 이상하게도 호감을 주고 있었다. 오관(五
官)이 제멋대로인 것이 아주 야릇한 매력인데, 그것은 바로 광무
군의 역용한 얼굴이었다.
스슥- 슥-!
광무군은 일잔월과 함께 초상비(草上飛)로 움직여 갔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흠, 묘한데?"
광무군은 급히 걸음을 세웠다.
일잔월은 그가 서자마자 몸을 세웠다. 그녀는 항상 광무군의 일
장(丈) 안에 있었다.
광무군은 야릇한 눈빛을 하며 한 동안 일대를 살폈다.
"일대에 무형진세(無形陣勢)가 펼쳐져 있다. 암만 해도 강호(江
湖)인 듯하다!"
광무군이 말하는 강호는 바로 무림이었다.
"……!"
일잔월은 광무군이 어떤 행동을 취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행(行)
하라는 지시가 없으면 그녀는 요지부동이다.
일잔월은 하나의 벽(壁)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길동무가 되지 않
았다면 광무군은 꽤나 적적했을 것이다.
일잔월은 며칠 사이 광무군의 무공 상대 노릇이 되었었다. 그녀
덕에 광무군의 무공초식은 가일층 원활해질 수 있었다.
광무군은 일대를 한 동안 살피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구궁(九宮)이 역으로 포진돼 있다."
무림지다성과 천세야옹에게 포진학을 배운 광무군이 아니던가?
천하에 그의 이목을 숨길 수 있는 진법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
었다.
"이것을 일컬어 반구궁팔괘(返九宮八卦)라고 하는 것이다. 자아,
내가 걷는 대로 따라 걷거라!"
광무군은 휘청휘청 걸었다. 마치 취팔선보(醉八仙步)를 시전하듯.
일잔월은 그가 발을 내딛는 곳만을 골라 발을 내딛었다.
두 사람은 거의 한 덩어리가 되어 움직였다.
제 11장 소야(少爺) -4
깊은 숲 안, 오랜 전부터 향화객(香火客)이 끊긴 관제묘(關帝廟)
가 있었다.
그 안, 섭선(攝扇)을 든 미공자(美公子) 하나가 앉아 있었다.
그 앞에는 열 명의 복면인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광인도장(狂人道場)에는 광노야(狂老爺)라는 도장주(道場主)와
구노(九老)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말해 보십시오. 퍽 궁금합니다!"
미공자의 목소리는 조금 여렸다. 마치 여인의 목소리같이.
"구노(九老)는 이러합니다!"
복면인은 노인인 것 같았다. 그의 목소리는 꽤나 창노(蒼老)했다.
"검광(劍狂), 도광(刀狂), 의광(衣狂), 주광(酒狂), 수광(睡狂),
색광(色狂), 독광(毒狂), 광불(狂佛), 광도(狂道)가 있습니다!"
"……."
"제가 미친 자 행세를 하고 수소문한 바에 의하면… 광노야(狂老
爺)의 배후에는 다른 세력이 있는 듯합니다!"
"흠!"
"광노야는 수 년 전부터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장차 파란이 될 일이 틀림없습니다. 그는
백팔 광검대(狂劍隊)를 모았는데, 그들의 무공은 가히 일기당천
(一騎當千)입니다!"
"……!"
미공자는 듣기만 했다.
"광검대만 해도 을목마마찰(乙木魔魔刹) 전부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설마? 마마찰(魔魔刹)에는 일천 마승(魔僧)이 있는데?"
"광검대는 강력한 화탄(火彈)과 암기(暗器)에 능합니다. 그래서
일기당천입니다!"
"화탄? 암기?"
"광인도장에는 재주꾼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각기 한 가지씩의 물
건 만들기에 미쳐 있습니다!"
"……."
"그 중 가장 재간이 좋은 자는 광불(狂佛)과 광도(狂道)입니다.
특히 광불의 화기제조는 천의무봉입니다. 그래서 광노야마저 광불
을 결코 자신의 아랫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흠, 그러면 그들 광인도장이… 하여간 서천(西天) 쪽과 선(線)이
닿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까?"
"예!"
"그리고… 지금 그들과 선을 끊으려 하고 있고요?"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럼, 왜 그런 것을 노출시킬까요?"
"글쎄요. 혹, 불러들여 죽이자는 계략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불러들여 죽인다고요?"
"광인도장은 천라지망(天羅地網)에 뒤덮이고 있습니다. 대라신선
이라도 일단 빠져들면 나설 수도 없을 것입니다."
"흠……."
"그의 세력을 장악한다면… 가히 십만대군(十萬大軍)을 얻는 것이
나 다름없습니다."
"얻을 수 있을까요?"
"광노야라는 자를 납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록 불가능하다고 여
겨지는 일이기는 하지만!"
노복면인의 말이 거기에 이를 때였다.
갑자기 폭갈과 함께 미공자가 눈에서 섬망(閃芒)을 쏘아 내며 손
을 쳐 냈다.
"누구냐!"
한순간 수중의 섭선이 쫘악 펴지며 그대로 작살 같은 기세로 토담
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꽝-!
토담벽이 무너지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밖에서 웃음소리
가 났다.
"핫핫… 귀한 섭선을 그냥 주다니… 핫핫! 이것만 팔면 나와 일잔
월이 삼 년은 놀고 지낼 수 있겠는데?"
"다가선 자가 있다니……!"
"어… 어떻게 진식을 뚫었지?"
"놓쳐서는 아니 된다!"
휘휙- 휙-!
도합 열한 명이 일제히 달려 나갔는데, 그 빠르기는 가히 전광석화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