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암 이응노 미술관
(顧菴 李應魯 美術館)
位置: 大田廣域市 萬年洞
2014년 8월 20일(수요일)
고암 이응노(顧菴 李應魯 1904-1989) 미술관은 고암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예술연구를 목적으로 2007년 5월 개관 했다.
원래 서울 평창동에 있던 이응노 미술관을 폐관하고 선생의 고향 이였던 대전으로 이전을 하여서 재개관(再改館) 한 것으로
筆者 는 그렇게 알고 있다.
필자의 집에서는 큰 길만 하나 건너면 갈 수 있는 지근거리에 위치해 있어서 쉽게 접근 할수 있는 곳이고
부근에는 예술의전당, 대전시립미술관, 수목원, 남문 움직이는그늘막 광장, 등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고
차가 다니지 않는 엑스포 다리로 이어진 갑천 넘어 에는 엑스포과학공원 이 있다.
이는 계획된 둔산신도시(屯山新都市) 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넓은 길과 수목으로 시원하게 잘 조성된 이곳에 대전을 상징하는 예술과 과학 뿐 아니라 놀이 마당까지 쭉 늘어 놓았기 때문이다.
바로 문화예술 과 자연, 그리고 과학과 건강 이다.
다행히 신도시를 계획한 사람들이 일터만 있다고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알았나 보다.
이곳에는 고층건물, 문화예술, 정부기관 수목원, 식당가, 과학공원이 각각 독특한 모습으로 제자리를 차지하고
조화로움을 자랑하고 있는 곳이다.
이응노 미술관은 흰색콘크리트를 사용하여 지은 외관이 담백하고 간결해 보인다.
프랑스 의 이름난 건축가 로앙 보두앵(Laurent Beaudoun)은 생전의 이응노 화백을 만난적은 없지만
그의 작품세계를 진지하게 연구하여 디자인에 적용했다고.~!
70여년의 그림 인생에서 동양화와 서양화 구상과 추상을 넘나든 화백의 문자추상(문자를 형상화 하여
그림으로 표현하는 기법)에 주목하여 대표작 수(壽)를 모티브로 미술관을 지은 것이다.
입구 앞 소나무 한그루는 미술관(美術館)의 아름다움에 점을 찍는 화룡정점(畵龍點睛)이다.
미술관에서는 9월 21일까지 “서독으로 간 에트랑제 이응노” 展이 열린다.
에뜨랑제(Etranger)가 무었인가 알아보니 “이방인”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곳역시 作品 撮影 이 不許 되는곳이기에 賣店에서 販賣 하는 影印本 을 撮影 했다>
<이응노 미술관 관람>
[관람시간]
3~10월 AM10,00~19,00
11~2월 AM10,00~18,00
[휴관일]
월요일, 1월1일, 설날, 추석날,
매달 넷째주 일요일은 무료입장
노산 이선승지 以善勝之
이응노 미술관 야외에 있는 조각품
특이한 족각품 이다.
미술관 정문 앞이다.
정문에는 천정을 뚫은 소나무가 있다.
서쪽 독일로 간 이방인 이응노
이응노 화백이 유럽어느 도시에 있을때 찍은 사진인듯...
필자는 이응노 화백은 잘몰라도 그분의 본부인(修德寺隣近居住)은 여러번 만나 대화도 많이 했고 식사도 하면서 친근감을 느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고암선생보다 나이가 위인것으로 아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필자의 장모님과 절친했던 그분은 외국인과 결혼한 남편을 원망없이 기다리며 한평생을 조용히 살았다.
그분은 상당히 깔끔하고 정갈한 분이셨던 기억이 있다.
설명은 없었으나 이화백이 사용하던 서실모습을 재현한듯...
전시관 작품을 정면으로 촬영할수가 없어서 멀리서 그냥 보이는대로 촬영해 보았다.
전시관 내부는 이런 모습이다.
다양한 작품들이 걸려있다.
"군상시리즈"
군상 시리즈는 주로 70년대 부터 고암이 타계하기 직전까지 계속되는데 초기 군상작품은 후기 문자 추상에서 보이던
도식화된 양식이 기하학적을 단순해지거나 혹은 장식화 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이른바 "군상 시리즈"로 불리는 후기의 군상 작품에서는 마치 붓으로 서체를 쓰듯 인간 형상을 무수히 나열한
전면구도의 작품이 두드러졌다.
특히 고암의 군상은 한번의 붓놀림이 곧 한 사람이 되는 일격의 운필이 무한히 반복되어 나타난 것으로 한지위에 그려진 한사람 한사람은 고암의 연륜과 탈속한 필력에 의해 미차 살아 숨쉬는 인간과 같은 기운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군상작품은 고암의 인생관과 예술관이 집약적으로 담겨있는 고암 예술의 대미(大尾)라 할수 있다.
구성(構成)
1970년대 들어서면서 고암은 문자추상이라는 새로운 조형적 실험에 몰두한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서당에서 익힌 서예를 토대로 자영의 형태를 추상화 하거나 음과 뜻을 획과 정이라는 조형적 형태로 표현한
한지에서 또 다른 동양적 추상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초기 문자추상 단계에서는 주로 평면 위에 상형문자와 같이 변형된 서체와 한지 위에 번진 수묵의 우연적인 효과가 어우러진
서예기법을 현대추상으로 재해석 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면 후기 문자추상 단계에서는 문자 자체의 기하학적인 형상들을
해체 하고 변형하여 다시 재구성하는 경향이 주를 이뤘다.
그는 한글과 한자가 가진 추상적인 패턴에 주목하고 이것을 다양하게 조합하면서 무수한 변주를 창조 하기에 이른다.
그림값을 정하는 기준은 무었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준은 없다 가 맞을것 이다.
유독 우리나라는 작가의 경력을 기준으로 작품값을 매기는 이상한(?) 기준이 적용되고 있는가 하면
작품의 크기에 따라 가격을 매기는 호당 개념이 통용되고 있다.
물론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적용하다보니 통례가 된것일 것이다.
양정무 교수가 지은 "그림값의비밀"이라는 책을 읽어보니 그림값-도시근로자의 평균소득x2"라는
공식이 적용될수 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도 그 논리가 타당성이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x2 라는 개념속에는 작품을 판매하는 중계상 즉 딜러의 몫이 추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갤러리에서 초대전시회 개최시 작가와 갤러리의 배눈이 통상적으로 5:5 정도임을 가안하면 타당성이 있다고 하겠다.
2013년도 4인가족 도시근로다 월평균 소득이 510만원 정도(정부발표)이다.
말하자면 화가가 한달에 500만원 정도는 벌어야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 정도의 소득이 되는 셈인데
여기에 딜러(갤러리)몫을 더하면 한달에 1,000만원 정도의 작품을 매원 팔아야 비로소 월평균소득 도시근로자
생활이 가능하다는 결론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본 그림값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가?
1,000만원 이면 월평균소득 도시근로자의 두달치 소득이 되는 셈인데...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소비자는 "그리값이 비싸다" 라는 얘기를 할수밖에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