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1월 5일 (목) 촬영.
라 갤러리에서 지금 박노해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입장료 없습니다. 고맙게도 무료로 보여줍니다.
저와 함께 감상해 볼까요.
소개하는 사진은 원본과는 많이 다릅니다. 선명하지도 않고 감동스럽지도 않습니다.
박 노 해 시인 사진작가 혁명가 그리고 -
1957 전라남도 함평 출생, 1984 첫 시집 <노동의 새벽> 출간.
박노해는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뜻의 필명으로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이라 불렀다.
1989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결성. 1991년 안기부에 체포, 고문 끝에 사형을 구형받고 무기수가 되어
감옥 독방에 갇혔다. 1998. 7년여 만에 석방. 이후 민주화운동유공자로 복권됐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2000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권력의 길을 뒤로하고 비영리 사회단체 <나눔문화>를 설립했다.
2003 이라크 전쟁터에 뛰어들어 평화활동을 펼쳤으며,
전 세계 분쟁현장과 빈곤지역, 지도에도 없는 마을들을 걸으며 진실을 기록해 왔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자급자립하는 삶의 공동체인 '나눔농부 마을'을 세워 가며 새로운 사상과 혁명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저서로 <노동의 새벽,1984>, <사람만이 희망이다, 1997>,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2010>, <걷는 독서, 2021>,
<너의 하늘을 보아, 2022> 등이 있다. 사진전 <라 광야, 2010>, <나 거기에 그들처럼,2010, 세종문화회관>,
<다른 길, 2014, 세종문화회관>을 개최, 2012년부터 <라 카페 갤러리>에서 22번째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길 떠나는 소년.
안데스 산맥의 높고 외딴 집에 사는 모자가 이른 아침부터 감자를 싣고 먼 길을 떠난다.
일찍이 아빠를 잃은 열한 살 로니 일레메는 물려받은 낡은 손목시계에서 아빠를 느낀다.
"제가 아홉 살이 됐을 때 엄마가 채워주셨어요. '이 시계를 찰 때가 되면 네가 집안의 가장이다.
아빠는 하늘에서도 너와 엄마를 지켜줄 것이고 파차마마와 모든 신들이 널 보살펴줄 것이다.
아들아, 미안하다. 착하고 강하게 살아가라.' 아빠가 제게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래요."
어린 가장은 말에 맨 밧줄을 팽팽히 당기며 흐르는 시간 속을 힘차게 걸어간다.
감자를 굽는 아이들
오늘은 감자를 수확하는 두레노동의 날. 일하는 어른들 곁에서 아이들도 바쁜 하루다.
야생화 언덕 사이로 신나게 뛰어놀다가,
말에게 풀도 뜯기고 어린 동생들도 돌보다가, 날이 저물 녘이면 마른 풀을 모아 불을 피우고
저녘 식탁에 오를 갓 캐낸 감자를 굽는다.
고생 끝에 맛있게 구워낸 감자를 나눠먹으며 '장하다, 애썼다, 고맙다'는 어른들의 칭찬과 격려는
아이들의 작은 가슴을 자긍심으로 부플게 한다.
벼 타작하는 날.
마을 사람들이 모여 벼 타작을 하는 날에는 아이들도 학교 대신 논에 나와 일을 거든다.
소년은 볏단을 옮기며 한 사람 몫을 든든히 해낸다. "저, 비밀인데요, 처음엔 힘들어서 눈물 날 뻔했어요.
그래도 어깨너머로 따라 배우고 요령도 생기면서 내가 이만큼 해냈구나, 신도 나고 힘이 나요."
노동과 놀이와 공부가 하나 된 삶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살아 움직이며 자라나는 아이들.
어렸을 때부터 대지와 이웃 속에서 자연스레 전승되고 익혀가는 현장 지성과 전인적 감각은
생애 내내 부닥치는 삶의 문제와 자기 결정에 무능하지 않은 고귀한 밑거름이 되어주리니.
멋쟁이 어린 농부
내리쬐는 햇볕과 만년설산 찬바람 속에 머리를 보호하는 모자는 안데스의 필수품이다.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물려준 모자는 이제 일을 거들기 시작한 아들의 것이 되었다.
나도 안데스의 농부라는 듯 멋지게 모자를 갖춰 쓰고 제 몸만 한 괭이를 든 아이의 품새가 제법 단단하다.
이 땅을 지켜갈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대를 이어 자라나고 이어지고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 희망의 근거가 아닌가.
저 산 너머엔
양떼가 좋아하는 새 풀이 돋아난 푸른 고원으로 강아지도 당나귀도 방울소리 울리며 함께 나서는 길.
누나는 비바람이 불면 둘러쓸 담요, 삶은 감자와 치즈 그리고 코카잎까지 보자기에 싸 야무지게 등에 메고,
처음 나선 동생은 길을 익히며 뒤따라간다.
"저 산 저 언덕 저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요. 언젠간 더 큰 세상으로 멀리멀리 가보고 싶어요."
안데스의 리듬이 이미 몸의 선율로 실려있는 듯 소녀는 사뿐사뿐 비탈길을 오른다.
헤브론 광야의 소년들
광야에 첫 비가 내리고 풀빛이 싱그러울 때 아이들은 양떼를 몰며 '걷는 독서'를 한다.
성서에도 기록된 고원지대 헤브론은 물이 넉넉하고 포도와 올리브, 벌꿀과 무화가가 풍성한 땅이지만
지금은 점령당한 분쟁의 땅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양떼는 풀을 뜯고 아이들은 책을 읽는다.
비록 내일이면 여린 손에 작은 돌멩이를 쥐고 침략자의 탱크를 향해달려갈지라도.
씨앗을 지키는 아이
마을 어디서나 보이는 중심 자리에 한 생을 마친 수백 년 된 고목 위로
다음 생을 이어갈 종자 싹이 트고 있다.
결실은 아래로 고르게 나눠져야 하지만 고귀한 종자는 높은 곳에 두어야 한다.
높은 곳은 더 춥고 척박하고 고독할지라도 태양과 별들이 그를 품고 단련해주는 곳.
그리하여 마침내 새날의 희망이 되는 것.
아이가 정성스런 손길로 종자 싹을 가꾼다.
동생을 등에 업고
고산 마을에서 한 뼘의 밭이라도 넓히기 위해 마을 어른들은 멀리 산 위로 길을 떠나고,
소녀가 울며 보채는 동생을 등에 업고 달랜다.
막대사탕을 건네자 동생 입에만 물려준다.
"저는 괜찮아요. 동생을 내려 놓으면 울거든요. 갓난아기 때부터 제 등에 업고 잠을 재웠어요.
이제는 등에 업힌 동생이 배고픈지, 졸린지,아니면 어디가 아픈지 전 다 알 수 있어요."
아, 우리들은 다 이렇게 부모님과 언니 누나의
등에 업혀 자라나 지금 이 지상을 걷고 있으니.
브란따 항구의 어부 가족
거센 파도를 헤치고 고깃배가 돌아오면 아이들은 벌써 항구로 달려나간다.
아빠가 잡은 신선한 생선을 배에서 건네주면 종류별로 바구니에 담는 것은 아이의 일이다.
가정이란 부모든 아이든 누구 한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다.
성장단계에 따라 저마다 기여할 몫이 있고, 서로 헌신하는 만큼 함께 향유하며
하나의 믿음속에 각자의 꿈을 꾸는 곳.
스스로 자기 앞가림을 해나가는 습관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도리를 배우는 곳.
가정은 아이에게 있어 최초의 공동체이고 좋은 세상을 향한 첫 번째 출발지이다.
양동이지게를 지고
온 가족이 벼를 수확하고 정미하는 날, 소년은 양동이 지게에 쌀겨를 지고 나른다.
인도에서 볏집과 쌀겨는 가축의 먹이로도 쓰고, 소똥에 섞어 말려 연료로 쓰고 , 흙집 보수에도 쓴다.
이 작은 아이는 벌써 할 줄 아는 게 참 많다. 밥을 차려 먹고 청소하고 이불 개고 심부름하고
손님이 오면 차를 내고 곁에 앉아 귀 기울이고, 아이들은 이렇게 삶 속에서 저절로 배워간다.
교육은 삶에 대한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 아니, 삶 그 자체에서 교육은 완성되는 것.
볏집을 먹은 소가 우유를 주고 쌀겨를 먹은 닭이 달걀을 주면
새 신발을 살 생각에 땀 젖은 얼굴엔 웃음이 돌고 발걸음은 힘차고 경쾌하기만 하다.
목욕하는 형제
일용직하는 노동자들이 움막을 치고 사는 이라와디 마을.
이곳 강변은 공동 빨래방이자 노천 목욕탕이고 어른들의 소식터이자 아이들의 놀이터이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가 땀을 씻고 빨래를 하는 동안 형은 아껴 쓰던 귀한 비누조각으로 동생의 등을 밀어준다.
"오늘 동생이랑 다퉜는데 서로 등을 밀어주면서 화해했어요.
엄마가 동생만 챙겨줄 때는 좀 속상하기도 한데요, 그럴 땐 몰래 친구들이랑 장에도 쏘다니고 그래요. 하하.
동생 없이 저 혼자였으면 외롭고 갑갑했을 것 같아요."
아쉬움도 모자람도 서운함도 강물에 흘려 보내고 형제는 물소리에 잠이 들어 별빛같은 꿈을 꾸겠다.
물소 수레를 처음 탄 날
농사를 도와주고 짐수레를 끌어주는 물소는 버마인들에게 고마운 식구이고 친구이다.
여섯 살 소년 텟은 오늘 처음 물소 고삐를 쥐었다. 소달구지의 조정법을 알려주는 아빠의 말을 따라
아이는 바닥에 깔아놓은 콩 위를 둥그레 돌며 작은 사령관이 된 듯 물소를 이끌어간다.
노동을 하는 가축도 나눠먹을 권리가 있다며 입망을 씌우지 않고 콩을 먹게 하는 그 마음까지.
아이는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간다.
조각배에 꿈을 싣고
고원에 자리한 '산 위의 바다' 인레 호수는 아름다운 자연과 여러 민족의 전통문화가
생생하게 살아있어 '버마의 심장'이라 불린다. 그러나 군부 쿠데타로 지금은 갈 수 없는 땅.
물결만이 자유로이 흘러가는 인레에서 아홉 살 소년이 동생을 학교에 데려다주러
조각배에 태우고 능숙하게 발로 노를 젓는다.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지만 그래도 우리는 나아가리라.
바람과 파도가 단련시킨 그 힘으로. 한 배를 타고 동행하는 믿음과 희망으로.
우정이 자라는 난민촌 학교
패인 흙담 앞에 다 낡은 칠판 하나, 따가운 햇빛을 피할 교실도 책상도 없지만
아프간 난민촌 아이들은 어린 동생들까지 데리고 먼 길을 걸어 학교에 나온다.
아이들이 이렇게나 열성으로 학교에 오는 건 산술이나 글자를 배우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점심으로 싸온 빵을 조금씩 떼어 모아서 얼마 전 지뢰를 밟은 친구네 집을 찾아가고,
싸운 애들을 모아 화해의 악수를 시키고,
'연 날리러 가자, 굴렁쇠 하자, 축구 하자, 포도 따 먹으러 가자' 하루가 바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저 자연과 친구들과 있으면 놀고 싸우고 화해하고 돕고 경쟁하고 협력하고
그렇게 서로 배우고 기대며 스스로 자란다.
학교가 줄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은 그런 우정을 쌓아갈 만남의 기회인 것을.
간절한 눈빛으로
지도에도 없는 높고 깊은 산속의 아카족 마을. 보아주는 이 없어도 정성껏 전통 의상을 차려 입고
판자로 지은 한 칸짜리 학교에 모여든 아이들이 아빠들이 짜준 나무 책상에 앉자마자
간절한 눈동자로 공부 삼매경에 빠져든다. 배움은 간절함이다.
결핍과 결여만이 줄 수 있는 간절함이다. 그 간절함이 궁리와 창의, 도전과 분투,
견디는 힘과 강인한 삶의 의지를 불어넣는다. 우리가 아이들에게서 빼앗아버린 것은
그 소중한 '결여'와 '여백'이 아닌가. 간절한 마음에 빛과 힘이 온다.
누나가 지켜줄게
막막한 사막 지평과 불타는 태양 볕에 누비아 사막엔 태초의 정적만이 흐른다.
아빠는 낙타에 대추야자를 싣고 떠났다. 며칠째 아빠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남매는
시원한 흙집을 두고 불볕의 사막을 서성인다. "내 손 놓으면 안 돼, 누나가 지켜줄게,"
이글거리는 사막의 맹수가 걱정되는 누나는 다섯 살 남동생의 손을 꼬옥 잡는다.
사랑은 한 인간으로서 약함과 결여로부터 나온다. '나는 네가 필요하다. 네가 함께 있어주면 좋겠다.
그런 너를 위해 나 또한 너에게 나를 내어주겠다'는 그 사랑의 힘으로 우리는 나아가는 것이니.
탐빈나무 숲에서
7년 동안 뿌리와 밑둥만 키우다 약 3미터가 되면 30미터 높이까지 자라나는 버마의 탐빈나무.
꼭대기에 달린 열매 줄기에서 채취한 수액 탕예는 달고 시원한 음료이자 술과 원당의 원재료다.
수액 통을 가지러 맨발로 나무에 오른 아빠를 조마조마하며 어깨 걸고 지켜보고 있는 남매.
이 마을 아이들에게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탐빈나무에 오를 힘과 용기를 갖게 되는 것이다.
"아빠가 멋있어요, 저도 어서 커서 나무에 올라 높은 곳에서 세상을 보고 탕예를 가져올 거예요."
아이들의 존경과 응원에 아빠는 더욱 힘을 내는 키 큰 탐빈나무 숲은 외롭지 않은 일터다.
로띠를 굽는 시간
집집마다 화덕에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갓 구운 고소한 빵 냄새가 퍼져나가는 저녁.
직접 씨 뿌려 거둔 햇밀로 만든 반죽을 무쇠판에 올려 로띠를 굽는 엄마 곁에서
아이는 불을 때고 조절하는 일을 돕는다.
"하루 중에 제일 행복한 시간이에요. 아이와 오늘 있었던 일을 나누며 말해주죠,
누구든 만나면 먼저 웃으며 인사하렴. 친구와 우애 깊은 사람이 진짜 부자란다.
거짓말하면 네 마음이 불편하니 정직하렴. 그리고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렴."
노래하며 가는 아이들
숨이 가쁜 해발 4천미터 시미엔 산맥 길에서 아이들이 제 몸무게보다 무거운 나뭇짐을 이고
먼 길을 걸어 고원의 장터로 향한다.
나뭇짐을 팔아 손에 쥐는 건 단돈 300원인데 아이들은 맑고 높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희망은, 자신을 짓누르는 무게만큼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로 노래하고
한 옥타브 위의 사고를 해야 한다는 듯이.
그래 아이야, 너는 지금 작지만 너는 이미 크다.
너는 지금 무겁지만 네 앞에는 빛이 온다.
너는 지금 모르지만 너의 때가 오고 있다.
페샤와르 시장의 신발 수선공
페샤와르 시장에서 신발을 수선하는 소년. 이 아이의 손을 거치면 불편했던 신발도
발에 딱 맞는다며 찾아오는 이들로 분주하다. 지난해부턴 직접 디자인한 신발도 출시했다.
귀중한 연장통에는 색 바랜 사진을 붙여놓았다. "제게 기술을 물려주고 돌아가신 아빠인데요.
'얘야, 나보다 더 단단하고 멋진 신발을 만들렴.'지금도 저를 보며 잔소리하는 것 같아요, 하하."
일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전심전력으로 일을 해나가고 책임지는 과정 속에서 기쁨을 맛보고 자기 절제로 단련된 아이의 인격은
훨씬 앞선 곳으로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으니.
대추야자를 운반하며
오늘은 불타는 누비아 사막에서 혼신으로 키워낸 종려나무에서 달콤한 대추야자를 수확하는 날.
열 살 무함마드는 대추야자를 노새에 실어 강 건너로 운반하는 책임을 맡았다.
사막의 맹수들과 여러 위험으로부터 친구들과 함께 무사히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의지에 찬 얼굴이다.
수단 사막의 아이들은 잘 알고 있다.
자신만의 세계를 획득하고 자유를 넓혀가려면 공동의 책임과 의무를 다 해내야만 한다는 걸.
다시 만난 무함마드는 일주일에 걸친 임무를 마치고 앓아 누웠으나, 씨익 웃는 천진한 소년의 얼굴 위로
강인한 사내의 위엄이 서려 있었다.
노을 지는 사막에서
긴 하루가 지나고 태양이 기울자 양떼를 몰고 귀가하던 아이가 생각에 잠긴다.
지금 저 아이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야생의 자연 속에서 추위와 더위, 불편과 고됨,
막막함과 외로움, 무서움과 함께 문득 찾아드는 심연의 경이와 생의 신비를 직감하는 듯한 아이.
긴 그림자처럼 스미던 이 순간의 빛이 10년 후, 30년 후, 어느 날 번쩍 되살아나
다시 솟구칠 날개가 되어줄지, 아무도 모른다. 아이에겐 홀로 있는 내밀한 시간이 필요하다.
자연스런 그늘과 어둠, 고독과 침잠이 필요하다.
영원하라, 체 게바라
볼리비아의 오지 마을 '라 이게라'는 체 게바라가 최후를 맞이한 곳이다.
그는 헝클어진 머리칼로 피기침을 토하면서
두 눈을 뜬 채 이 외진 곳에서 총살당했다.
"진정한 혁명가를 이끄는 건 위대한 사랑의 감정이다."
쿠바 혁명의 권력과 영예를 뒤로 한 채
중남미 민중의 해방을 위해 볼리비아로 떠나 참혹하게 '실패한 혁명가'로 생을 마친 게바라.
그러나 그날 그의 심장을 관통했던총성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맑은 눈빛을 지닌
소년 소녀의 가슴을 관통하고 있으니.
매일 아침 들꽃을 꺽어다 놓아주는
이 마을 소녀가 가만히 고개를 숙인다. "그라시아스 니냐." (고맙다 소녀야.)
봄을 기다리며
하늘과 땅이 하나인 듯 새하얀 설원의 쿠르디스탄. 폭설로 하루 일거리를 공친 구두닦이 아이들이
총성의 공포도 잊고 추위도 배고픔도 잊고 허리까지 쌓인 눈 속을 신나게 달린다.
눈 속에 싹트는 작은 새싹 하나라도 먼저 보고 언 강 아래로 흐르는 봄의 물소리를 먼저 듣고
종알종알 속삭이고 노래하며 봄을 찾아 나선다. 아이들은 봄이다. 그 자체로 봄이다.
설원에 어깨 걸고 선 쿠르드 아이들이 이 분쟁의 땅에서 간절히 평화의 봄을 부른다.
어린 양을 안고
하카리에폭설이 내리면 총성마저 멈춘다. 눈이 강제한 짧고도 차가운 평화다.
쿠르드 해방을 위해 저기 자그로스 산맥으로 떠난 형과 누나들이 살아있는지 마음이 시린데
눈 속에 갇혔어도 어린 양은 태어난다. "어린 양을 돌보는 건 저희들 몫이에요.
봄이 오면 양과 함께 산 높이 오를 거예요. 이 양이 자라 새끼를 낳고 또 새끼를 낳고 낳으면
누나랑 형들이 돌아올 날이 있겠죠, 그렇죠?"
수몰된 고대 도시 하산케이프의 동굴집
나라 잃은 세계 최대 소수민족 쿠르드인들의 8천년 역사가 어린 고대 도시 하산케이프.
수메르, 로마, 오스만 제국 등의 유적이 가득하고 쿠르드인들의 빛나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그러나 터키 정부는 티그리스 강 상류에 댐을 지어 2020년에 이곳 하산케이프를 수장하고 말았다.
쿠르드인들의 수 천 년 지혜가 담긴 동굴집들도 숨바꼭질하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아이들의 가슴에 새겨진 고귀한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미래로 기억되고 이어져갈 테니.
폭탄 대신 꽃을
이스라엘 전폭기의 집중 폭격으로 황무지처럼 무너져버린 스리파 마을.
마을 축제를 앞두고 연극 연습을 하던 많은 아이들이 한 자리에서 숨졌다.
살아남은 소녀들이 버려진 조화를 들고 와 내 손을 이끌더니 사진을 찍어 달란다.
친구들이 죽은 자리에 꽃을 들고 서서 참아온 슬픔을 터뜨리며 노래를 부른다.
보아주고 들어주는 건 나 한 사람뿐인데
아이들은 우리 폭탄 대신 꽃을 손에 들자고, 세계를 향해 평화 시위를 하는 것만 같다.
파괴된 이스라엘 탱크 위에서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2006년, 국경 마을 빈트 주베일은 폐허의 무덤이었다.
목숨 건 항전으로 멈춰 세운 이스라엘 탱크 위에서 레바논 국기와 헤즈볼라 깃발을 흔들며
울먹이는 열 살 알리와 일곱 살 가디르 남매. 피난 갔다 돌아오니 집도 학교도 친구들도 사라져버렸다.
"왜 탱크 위에서 그러고 있니?" "죽은 친구들이 하늘나라에서 보라구요.
사라, 후세인, 하산... 편히 잠들어. 폭탄소리에도 깨어나지 말고, 무섭다고 울지 말고...
잊지 않고 기억할게. 우리 다시 만나자." 죽지 않고 사는 게, 살아있는 게 꿈인 아이들이 있다.
전사의 딸
하늘만 뚫린 거대한 감옥 같은 팔레스타인 난민촌 '아인 알 할웨'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가난과 전쟁의 공포를 공기처럼 마시며 자란다.
소녀의 아빠는 급진 해방 조직의 대표였고 나와의 인터뷰 이후 총격전에서 숨을 거뒀다.
다음해 다시 만난 소녀는, 동생들을 키우고 차를 내오고 요리를 해주며 움직이는 정물처럼 내 곁을 맴돈다.
벽에 난 총탄 구멍은 그대로인데, 소녀만 '슬픈 성숙'이다.
아홉 살 소녀의 명랑한 말소리와 웃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었다면 가슴이 덜 아팠을 텐데.
흙벽돌 찍는 아이들
파키스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흙벽돌 공장. 이 붉은 벽돌은 색이 곱고 단단해 세계에 수출된다.
더는 밀려날 곳 없는 전쟁 난민과 극빈층이 마지막으로 내몰리는 일자리이기도 하다.
"5살 때부터 벽돌을 찍었어요. 하루 14시간씩요. 아빠가 다치고 빚을 져서 제가 집안을 책임져야 해요.
제 꿈은요, 학교요, 학교 다니는 거요. 책을 읽고 친구들이랑 노는 거요.
일어나서 어디로든 걷고 뛰는 거요."
오늘도 파키스탄에서만 약 170만 명의 아이들이 온종일 앉은걸음으로 흙벽돌을 찍고 있다.
파슈툰 소녀들
미국의 계속되는 침공과 산사태로 피폐해진 아프가니스탄 산악 국경 마을의 파슈툰 소녀들.
잘 웃지도 않고, 소리 내어 울지도 않고, 젖은 눈동자로만 지난 일들을 증언한다.
선생도 없는 학교에 모여 손 칠판 하나에 돌려가며 글자를 쓰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영하의 추위에 난로도 외투도 양말도 없이 벌벌 떨던 소녀들이 묵연히 앞을 응시한다.
폭격과 가난, 그리고 여자의 몸을 뒤덮는 숙명으로부터 자유로운 저 먼 곳을 보는 것일까.
소녀들은 이 추운 꿈을 품에 꼬옥 안는다.
파슈툰 소년들
이 높고 험하고 외진 마을을 찾아온 나를 놀람과 경계, 슬픔으로 바라보던 파슈툰 소년들이
폭격에 죽은 가족과 친구들 사연을 얘기하다 어느새 어린 매의 눈동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 그 눈빛이다.
알렉산더도 영국도 소련과 미국조차 물리치며 이 땅을 '제국의 무덤'으로 만든 파슈툰의 눈빛.
아이들아, 네 안에는 푸른 빛이 살아있으니. 부디 죽지 말고 다치지 말고 살아서 다시 만나자.
달려라 아이들아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에서도 아이들은 바람 빠진 공 하나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정적만이 가득한 평원에 울리는 건 강인한 심장의 고동소리와 웃음소리뿐.
아이들에겐 존재의 광활함이 필요하다. 부모와 어른들의 과잉된 관심과 보호가 아닌
대자연의 여백과 자유, 자유의 공기 말이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깊은 숨을 쉬며 자신만의 비밀스런 은하를 여행하고
혼자서 저지르고 애태우고 스스로 헤쳐가고 친구와 모험하며 울고 웃고 자라갈 테니.
자유와 분투, 반항과 도전, 실패와 일어섬 속에 그 아이만이 타고난 고유한 개성이 깨어날 테니.
둥글게 동네 한 바퀴
맨발의 아이가 폐타이어를 굴리며 골목길을 달린다. 세계 어느 마을에서나 아이들은 둥근 공, 둥근 구슬,
둥근 굴렁쇠만 있으면 앞으로 앞으로 달려 나간다. 그래, 아이야, 태양은 둥글고 지구는 둥글단다.
살아있는 것은 다 동그란 길을 돌아 나온단다. 오늘이 빛나지 않아도 어둠 속에서 별들이 빛나니.
내일은 둥근 것. 희망은 둥근 것. 사랑은 둥근 것.
불가촉천민 소년의 기도
열두 살 비벡은 불가촉천민 부부의 자식이다.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매일 자기 손으로
빨아 다린 셔츠와 바지를 단정히 차려 입고 나선다. 꽃을 좋아하는 나를 알아보고 짜이를 내올 때면
찻잔 옆에 무심한 척 꽃송이를 놓아주는 아이.
비벡의 작은 방에는 몇 권의 책과 기도문이 있고 꽃향기 그윽한 흙마당에는 흰 빨래가 빛난다.
날 때부터 주어진 이 낡은 카스트의 천대와 차별 속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 총명한 일머리, 인간의 절도와 기품,
이런 품성을 갖기까지 그 고통과 눈물을 나는 안다.
비벡이 날마다 작은 성상에 물을 부으며 기도를 한다.
"저에게 인내를 주세요. 제가 용기 있게 자라면 어려운 이들에게 일용할 우유 같은 사람이 될게요.
저에게 지혜를 주세요. 제가 선생님이 되면 저 같은 아이들을 품어 줄 나무 같은 사람이 될게요."
바라만 봐도 좋은 친구
이슬람 최대 명절인 이드 알 아드하.
한 대지에서 한 식구로 살아온 소와 양에게 정성껏 꽃 장식을 해주고 기도를 바친 뒤,
신선한 고기를 세 개의 바구니에 나누어 담아 가족, 친지 그리고 가난한 이웃과 나눈다.
무엇보다 이 날은 아이들의 축제 날이다. 말린 꽃잎과 향료를 띄운 물에 몸을 씻고
선물 받은 옷을 입고 나와 기분이 들뜬 소녀들은 말 한마디에도 꺄르르 웃음을 터트린다.
어떤 이해관계도 없이 그냥 사람과 사람으로, 함께 있는 것만으로 좋은 그냥 친구인 친구로,
어린 날 순수한 우정을 다져가는 것. 이것이 인생에서 모든 관계의 기초가 된다.
아이들은 놀라워라
어린 형제가 일 나간 엄마를 마중하러
거센 바람 부는 황야를 가로질러
믿음의 손을 붙잡고 나아간다.
아, 우주 가운데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한 톨의 지구에서 짧고도 괴로운 생을 사는 '인간의 비참'
그럼에도 서로 사랑하고 헌신하고 사유하는 '인간의 위대'
그 사이에서, 지구에 온 아이들은 흔들리는 별빛이다.
이토록 위험 가득한 세계 속에서
이렇게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 속에서
인간의 비참과 위대 사이를 가르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아이들은,
아이들은 놀라워라.
가장 먼저 울고 가장 먼저 웃고
가장 연약하고 가장 강인하고
자신들만의 길을 찾아서 거침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버리는 아이들은,
아이들은 놀라워라.
아이들은 시대의 전위여라.
아이들은 인간의 희망이어라
아이들은 어둠 속 빛이어라.
전시장 모습입니다.
아래층 라 갤러리 카페로 내려 왔습니다.
한 편의 다큐 영화를 본 듯한 여운이 이내 가시지가 않는군요.
아름다운 것을 보는데도 슬픈 마음이 됩니다.
차 한잔을 마셔야 겠습니다. 계피가루가 첨가된 커피가 제 마음처럼 넘칠 것 같네요.
그리움은 사랑이라고 했나요.
제 마음속에 지금 그리움이 넘치고 있습니다.
울기라도 했으면...
|
첫댓글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을 처음 읽고 목메었는데...
가봐야겠네요. 소개 감사합니다.
바위솔님 덕분에 편안하고 안전하게 문화생활을 하는 사람 입니다 ㅎㅎ 오늘 또한 뜨거운 마음으로 박노해님 자알 만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시인, 사진작가, 혁명가... 박노해
걷는 독서...
내 작은 글씨가 꽃시였음 좋겠다.
정말 작은 글이 사람을
바꿀 수 있는 큰 힘이란 것을 알게되는....
-----
잘 가보게 되지 않는 사진전.. 책상 앞에 앉아 구경 잘했어요.
늘 감사합니다~^^
박노해시인이 세계 곳곳 어둡지만 순수함이 깃든 곳을 비추셨네요. 소개해 올리신 바위솔님께 감사 말씀 전합니다... ^^
흑백사진이 주는 묘한 감동이 있네요.
라 갤러리가 어딘지 찾아봐야겠어요.
여기 예전에 몇번 가봤어요.
1층은 카페를 하고 2층은 갤러리..
박노해 사진전을 상시 열어서 지날때 들리곤 했는데
사진에 달린 글을 읽으면 마음 내려 놓게 됩니다.
박노해 시인은 시대의 전설이죠.
건강히 오래 사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