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의사, 교수가 부러워하는 직업

[임성희]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이 혼란스럽던 시국의 1980년대 초.

당시에는 매월 25일에 반상회가 열렸다. 동사무소 2년 차 새내기였지만 담당구역 반상회를 주재하게 되었다. 반상회를 준비한 집 주인이 퇴직 교사였는데 지역에서 명망 있는 집안의 종손으로 반상회가 끝나자 주민은 대부분 돌아가고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던 교수, 의사 등 몇 명과 반주를 하게 되었다.

 나이도 어리고 직위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사무실에 가야 한다고 했지만, ‘반상회를 주재한 사람이 빠지면 안 된다.’ 해서 마지못해 얘기를 듣고 있었다. 처음엔 젊어 보이는 검사분이 자신의 직업이 매우 힘들다며, 근무 시간에 정상인(?)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다고 하였다. ‘일반인도 아니고 정상인 이라니?’ 매번 범죄자들과 만나고 살인, 강도 등 사건ㆍ사고를 처리하다 보니 표현이 그렇게 되더라는 얘기였다.

 연세가 지긋하신 의료원장님이 맞장구를 치며 자신도 평생 정상인들과 만나는 직업이 참 좋은 것 같은데 아쉽다는 얘기를 하였다. 외과의사라 늘 찢어지고, 뼈 부러지고, 피 흘리는 환자만 보는 것이 좋은 직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초급대학 학장님이 본인도 마찬가지라며 나서니 모두 ‘교수님이...왜요?’ 라는 의아한 표정으로 집중하였다. 학장님은 교수가 되기 전에는 고등학교 교사를 하셨는데 고등학생이든 대학생이든 그들과 생활하면 환경의 적응을 받아 그들과 같은 정신연령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즉, 초등학교 교사는 초등학생 수준, 중학교 교사는 중학생 수준으로 생각하게 된다며, 머리 희끗한 본인은 대학생 된지 얼마 안됐다는 농담같은 말에 모두 한바탕 웃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진 분들이 불만인지 애로사항인지 아니면 자랑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리는 얘기를 하면서 나보고 직업을 잘 선택하였다며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솔직히 속으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리는 있는 것 같았다. 이분들 입장에서 좋은 직업의 기준인 정상적인 사람들과 만나는 직업은 대체로 맞는 말이니.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직업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고 특히 낮은 보수에 대하여는 불평·불만을 넘어 급여일이 되면 출근하기조차 싫었던 때라 어떻게 하면 좀 더 조건이 좋은 곳으로 갈 방법이 없을까 끊임없이 궁리하던 때였다. 이런 흔들리던 마음이 이 반상회를 통해 다시 한번 마음을 추스르고 나에게 주어진 소명이므로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해보자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왕 선택한 길이고, 모두 부러워하는 직업인들의 소망(?)인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사람들과의 만남’을 주로 하는 직업이니까.

 직장생활을 하면서 민원인들에게 힘들어하고 사람에게 상처받아 진로를 고민하는 동료나 후배를 만나면 이때의 이야기를 해 주면서 우리 직장이 얼마나 중요하고 좋은지를 알고 신중한 선택을 하도록 설득하곤 하였다.

 한 번씩 강단에서 ‘검사가 부러워하고, 의사와 교수도 부러워하는 직업은?’ 하며 퀴즈를 내면 아무도 대답을 못 한다. 정답을 ‘일선에서 주민들과 직접 업무를 보는 직업들’이라고 하면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 한다. 이유를 설명해 주더라도 조금은 알겠다는 표정이지만 갸우뚱 한다.

 직업에 무슨 귀천이 있겠냐만 어디서 무엇을 하던 장단점이 있고, 남모르는 애로사항이 있을 것이고,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면도 있을 것이니 선택한 일에 성심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좋은 직업인의 갈 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푸른숲]

직업은 귀천이 없지만 자신에게 맞는 직업이 최상인 것 같습니다. 좋은 소재로 이야기를 잘 풀었습니다.

[정동식(seven)]

저도 정상인을 만나는 일이 많지 않았는데 .....
같은 공무원이라도 급부행정과 규제행정을 하는 사람들의 차이도 있습니다.
그 분들의 말에 공감이 가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최순태]

자기 직업에 만족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공무원 시절 반상회에 나가보면 온갖 민원이 많았지만, 그들의 말을 선임께 전달하여 해결한 기억이 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