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반도 해안둘레길 2코스 선바우길은 동해면 입암리 연오랑 세오녀 공원에서
흥환해수욕장을 지나 흥환어항까지 6.5㎞를 연결하는 구간으로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나무다리와 바위길, 자갈 길, 모래 길, 시멘트 길이 연결된다.
먹바위
마산항 입구에 검은색을 띤 먹바위가 외롭게 서 있다.
신라 제8대 아달라왕 즉위 4년(157년) 동해(東海)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연오랑이 미역을 따던 중 한 바위가 움직이더니 연오랑을 싣고 일본으로 가버렸다. 연오랑을 본 일본 사람들은 그를 신이 보냈다고 여기고 왕으로 섬겼다.
세오녀는 남편을 찾다가 마찬가지로 바위에 실려 일본으로 가 서로 만나게 되었다.
그러자 신라에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고, 해와 달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말에 따라 사신을 보내 두 사람을 청했으나, 연오랑은 "하늘의 뜻이라며 돌아갈 수 없다" 하고
세오녀가 짠 고운 비단을 주며 "이것으로 제사를 지내라" 하였다.
그 말대로 제사를 지내니 다시 해와 달이 빛났다.
그러자 그 비단을 임금의 창고에 간직하여 국보로 삼았고,
그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고 하였다.
그리고 하늘에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고 하였다.
이곳 사람들은 연오랑과 세오녀를 싣고 간 바위가 먹바위라고 이야기 한다.
군상바위
남녀노소가 다 모여 있는 것 같이 늘어선 모습
여인바위길
파도와 바람이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를 빚어냈다.
트레머리를 한 여인이 먼 곳을 우러러보는 형상인데 가늘고 긴 목과 목 뒷덜미의 둥근 선이 아주 아름답다.
대만의 예류지질공원에서 보았던 여인형상을 닮았다.
바닷물이 여인 바위 앞으로 가까이 밀려올 때는 하트문양으로 달려왔다.
여인을 사랑하는 바다의 마음이 아닐까 여겨진다.
신랑 각시 바위
돌 하르방을 떠올리게 하는 신랑 각시바위다.
징검다리 바위
여왕바위
하선대
선녀가 내려와 놀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으로 하잇돌이라고도 불린다.
지금은 선녀 대신 많은 새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조선 명종때의 풍수지리학자인 격암 남사고는 한반도를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으로 보았다.
더불어 백두산은 호랑이 머리 중의 코이며, 호미반도는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천하 명당이라 했다.
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 작성에 앞서 국토 최동단을 결정하기 위해
호미곶과 죽변 용추곶을 놓고 각각 일곱 번이나 답사를 한 뒤에 호미곶을 최동단으로 정했다고 한다.
또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지리에서 대한 십경 중의 하나로 이 호미곶의 일출을 꼽았다.
힌디기
옛날 노씨(盧氏)가 처음 정착하여 살 때 좀 더 흥하게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흥덕(興德)이라 하였는데, 음이 변하여 힌덕, 힌디기로 불렸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흰바위가 많아 흰 언덕, 흰덕으로 불렸고, 다시 힌디기로 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킹콩 바위
해국과 눈향나무 자생지로.
눈향나무는 ‘누운 향나무’로도 불리며, 옆으로 누워 자라는 특징이 있다.
세계자연보존연맹 멸종위기식물 명단에 위기 종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산림청도 희귀‧멸종위기 식물로 정해 법적으로 보호한다.
소원바위
폭포바위
남근석이라는데
선바위
입암2리 탐방로에서 본 선바위, 2코스 선바우 길의 주인공인 선바우
높이 6m가량의 바위가 절묘하게 우뚝 선 바위가 있다.
해안에 우뚝 선 바위라고 하여 ‘선바우’(立岩)
화산으로 인해 형성된 지형으로 역암, 이암, 응회암, 현무암들을 관찰할 수 있으며
백토(벤토나이트)성분도 많이 함유하고 있다.
202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