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에서 온 패트릭 맥그린치 신부는 1950년대 제주도에서 꿩을 사냥해 먹으며 지냈다. 스물여섯 살 파란 눈의 가톨릭 선교사는 당시 제주도 변소에서 기르던 '똥 돼지'를 먹지 못했다. 그는 제주 사람들이 왜 제대로 가축을 기르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설픈 한국어로 농민들을 거듭 설득했다.
―이젠 좀 쉬엄쉬엄 지내셔야죠.
"다리가 아파 전만큼은 일을 못하지만 꼭 정착시키고 싶은 게 있어요. 호스피스 사업이에요. 2007년 성 이시돌목장 안에 '이시돌 복지의원'이란 이름으로 호스피스 전문 시설을 만들었어요. 더는 치료를 기대하기 어려운 환자가 세상을 뜰 때까지 편히 지낼 수 있게 도와주는 곳이에요. 10년 전 시작한 종마 사업이 꽤 잘 되고 있는데 그 돈을 이 의원에 투입합니다. 환자들에겐 돈을 받지 않고요. 죽기 전에 어디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을 도울 호스피스 서비스가 한국엔 너무나 부족해요. 모든 사람은 존엄하게 죽을 자격이 있거든요."
―60년을 뛰었는데 할 일이 남으셨군요.
"하하, 그러네요. 제가 여태 한라산 한번 못 올라가 보았습니다. 바쁜 척하느라고 그랬죠, 뭐. 이제는 약해져서 시간이 나도 갈 수 없게 됐습니다. 한국말도 영어도 점점 어눌해지고… 증발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맥그린치 신부는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시편 118편 23절이라고 했다. "그것은 주님이 하신 일이고 정말로 기적이다."
1950년대 초 맥그린치 신부는 작은 종이 한 장에 적힌 짧은 문구로 '한국으로 가라'는 명령을 통보받았다. 6·25전쟁의 참혹한 사진이 매일같이 전 세계 신문에 실리던 시절이었다.
―삶에서 일어난 가장 큰 기적은 무엇입니까.
"우선 매일 아침 내가 일어난다는 것. 전쟁으로 한두 달 안에 죽을 줄 알았으니까. 그리고 제주도와 한국 그 자체. 잿더미 위에서 사람들이 일어서는 걸 나는 보았으니까. 그리고 기억나는 또 하나의 기적은 60년 전 성당을 지을 즈음 일어났습니다."
맥그린치 신부는 오래전 '기적'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성당을 지어야 하는데 목재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림 앞바다에 큰 배가 암초에 걸려 좌초했다. 가톨릭 신자였던 선장은 맥그린치 신부를 만나 "진상조사단이 3일 후에 올 예정이니 그전에 얼른 부서진 배에서 목재를 가져다 쓰라"고 했다. 성당을 짓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운반할 사람이 부족했다. 당시 신도는 스물다섯 명 정도였다. 맥그린치 신부는 다음 날 새벽 '일단 가보자'는 마음으로 바닷가에 나갔다. 그러고는 눈을 의심했다. 400명이 넘는 사람이 나와 있었다. "그분들은 '제주에 와서 고생하는데 구경만 할 수 있겠느냐'며 웃었어요. 왜 신자도 아닌 분들이 그날 새벽 나섰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마음, 남을 도우려는 그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었다고 믿어요. "
왜 벽안(碧眼)의 사제를 돕겠다고 제주 사람들이 바닷가에 나갔을까. 제주 한림 토박이인 박승준(68)씨는 이렇게 기억했다. "아이고… 그 눈 파란 신부님이 제주에 왔는데 자꾸만 자꾸만 뭘 하겠대. 그러면서 미국에서 원조를 받아다가 옥수수죽, 밀가루죽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고생을 해요. 신부님은 우리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분 애쓰는 거 다 알았어요. 어떻게 도우러 나가지 않을 수가 있어요. 그래서 간 거지 머, 하하. 신부님도 참, 그게 무슨 기적이라고 그러신대요…."
맥그린치 신부, 한국이름은 임피제
제주 사람들 自立 도운 공 인정… 1975년 막사이사이賞 받아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는 수의사인 아버지와 신심(信心)이 깊은 어머니 사이에서 1928년 6월 태어났다. 9남매 중 다섯째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가축 진료를 종종 다녔다. 그때의 경험은 후일 제주에 선교사로 와서 한림읍에 제주도민 자립을 위한 이시돌 목장을 일구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1953년에 아일랜드를 출발해 미국 뉴욕·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부산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부산과 전남 목포에서 한국어를 1년 동안 배운 후 제주에 가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제주 사람을 위해 헌신한 점을 인정받아 1973년 제주도 명예 도민이 되었다. 그때 성(姓)인 맥그린치와 이름인 패트릭 제임스의 머리글자(M·P·J)를 따서 ‘임피제’란 한국 이름을 지었다. 전후 제주 사람들의 자립을 도운 공으로 1975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고 하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았다.
첫댓글 훌륭한 신부님!
제주도 사람들을 잘 살게 하려고 하느님께서 보내주신분!
하느님께서는 임피제신부님을 통하여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신부님, 감사합니다!!!
우주만물을 사랑으로 내시고 사랑으로 섭리하시는 사랑의 주님
참으로 저희나라가 사랑의 빚을 이렇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지고 살아갑니다.
이제 무위사제를 뽑으시어 전세계에 당신을 알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사랑의 빚을 갚을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곳곳에 또한 당신 방법의 사랑의 빚을 갚을 많은 젊은이들을 보내시어
당신의 거룩하신뜻을 이루소서
거룩하시고 전지전능하신 아버지하느님은 무한 찬미영광 받으소서
자비로우신 아버지하느님 임피제신부의 청춘을,한국에 혼신을 바쳐온 60평생을,남은 여생을
항상 동거동락해오심을 느끼며 감사드리며 사랑을 드립니다.
사랑의 아버지하느님 임피제신부의 모두를 통하여 무한 찬미영광 받으소서
사랑의 주님 무위사제와 팍스와 모든 하내영을 통하여 무한 찬미영광 받으소서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를 아는가. 좋아함은 기분이지만 사랑하는 것은 초월과 의지더라”
-패트릭 맥그린치 신부 -
"그것은 주님이 하신 일이고 정말로 기적이다."(시편 118,23)
팍스님, 감사합니다 정말로 잘 읽었습니다.
그 한림수직 담뇨 아직도 제게 있어요. 참 예쁜 무지개 색이 영롱한 담뇨라 아끼는 것이었는데. 그런 것이었군요~
아버지 임피제 신부와 팍스를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제가 마셨던 이시돌우유에 이러한 사연이 있었네요. 주님 임피제 신부님과 제주사람들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예전에 정말 감명깊게 읽었던 '삶과 희망을 준 목자 맥그린치 신부' 책의 주인공을 오늘 또 글로 만나니 너무 반갑습니다.
밤새워 책을 읽으며 예수님의 사랑을 느겼고
물고기를 잡아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시는라 힘쓰시는 신부님의 열정에
제주도 하면 맥그린치 신부님이 생각났었는데 세월이 많이 흘렀네요.
주님,맥그린치 신부님과 주님 사랑을 실천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하느님 아버지, 당신의 크신 사랑에 감사찬미드립니다.
이 땅의 모든 선교사를 통해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이시돌 목장을 다녀온적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보내주신 당신의 대리자이신 맥그린치 신부님께서 제주도의 경제 부흥을 일으키신 분이라는것을 보고 깜짝 놀라웠습니다.
주님께서 이끄시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신 그 신부님.
파리 성지순례때 파리 외방선교원에서 다른나라에 선교하시러 가실때는 그곳을 지나가는 죽음의 길이 있다는 말씀을 들었던 그곳을 걸어서 지나 오신 맥그린치 신부님.
대한민국은 선교 활동이 그렇게도 어려운 나라였답니다
주님.
맥그린치 신부를 통하여 찬미와 무한영광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