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12. 예수비전교회 주일낮예배 거룩한 믿음, 긍휼로 구원하라 유백선 목사
유다서 1: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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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중국 상하이에서 4년 간 선교사로 일했다. 조지타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학위를 받고 비즈니스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저스틴 휘트멀 얼리(Justin Whitmel Earley)가 강연자, 작가로 <크리스천 일상 정리법/(믿음과 삶을 일치시킬 매일 매주의 실천)>을 썼습니다. 어느 새해 전야에 친구들과 생활의 리듬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새로울 것이 없는 습관 몇 가지를 끄적거렸다. 그런데 단순한 습관들이 영혼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에 따라 살아가도록 돕는 공동규칙이 있다. 혼돈의 시대에 사랑의 삶을 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매일 아침, 정오, 잠들기 전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로 사랑 안에서 하루를 보낸다. 다른 사람과 한 끼 식사를 하면서 이웃과 복된 식탁을 누렸다. 휴대전화를 한 시간 끄고 함께 있는 사람과 온전하게 함께 있도록 했다. 휴대전화를 보기 전에 성경을 읽으면서 사랑받는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졌다. 하루 금식을 하면서 세상의 필요에 눈뜨는 법을 배웠다. 한계를 받아들이고 휴식하며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 올바른 제한은 자유를 창조한다. 가정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곳이다. 음식을 통해 사랑의 가치를 전달한다. 기독교인이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한 이유는 인생의 집이 기독교적으로 장식되어 있어도 습관의 구조가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단순한 습관들이 자신의 영혼과 삶의 전반을 뒤바꾸는 경험을 하였다. ‘최선의 나’가 되고, ‘최선의 결과’를 얻고 싶어 무한히 선택할 자유를 원했다. 그런데 한계를 모르는 자유가 자신을 무너뜨린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한계 없는 자유를 탐하다가 불순종하였다. 매일 하는 행동의 40%가 습관의 결과물이다.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적에 맞게 조율된 습관을 체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 주입하는 습관에 따라 나도 모르게 내 모습이 형성되고 만다...“
여러분! 일상에서 습관이 중요합니다. 일상에서 습관이 ‘무엇을 사랑하는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가?’ 이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것이 큰 도전입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일을 생소하고, 낯설고, 신뢰가 없어서 망설이기 때문입니다. 습관이 반복되어 정착되면 그 습관이 시간과 정신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광란의 세상 속에서 습관과 습관을 구현하는 지혜가 온전하게 나가는 길입니다. 가치 있는 일이 어려운 것입니다. 기독교 전통은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변화는 서로 돕고 책임지는 공동체 안에서 일어납니다. 거룩한 습관은 익히고 나면 눈에 띄지 않게 작용합니다. 우리의 습관이 진리와 일치해야 하나님 앞에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의 리듬을 찾도록 영감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그 사랑의 문제가 인간의 모든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사도 유다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유다는 ‘하나님을 찬양하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배신하고 팔았던 가롯 유다(Judas Iscariot) 때문에 좋은 이름, 좋은 이미지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형제요, 야고보와 형제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사랑으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라. 성령으로 기도하라. 긍휼로 구원하라.’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신 사람을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아’ 부르시면 어떤 마음, 어떤 느낌을 받습니까? 본문 20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여기서 “사랑하는 자들(아카페토이/‘αγαπητοι/agapetoi)”이란 말은 “극진히 사랑하다, 친애하다, 존경하다, 좋아하다,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 이 말은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사람이 그 사랑을 알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을 극진하게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정체성을 가져야 자존감이 높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은 사랑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유일한 아들(예수님)을 속전으로 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우리)를 언제 사랑하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사랑하셨습니다.(롬 5:8)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반면에 세상 사람들은 흠이 있으면 사랑하기를 주저합니다. 죄가 있고,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면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도 자주 A/S를 받아야 합니다. 얼마나 자주 사랑의 에프터서비스를 받고 있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합니다.(요삼 1:2) 여기서 “영혼이 잘 되다(유오두타이 헤 프쉬케/ευοδουται ‘η φυχη/eyodoytai he psyxe)”는 말은 “호흡이 순조롭다, 마음이 번영하다, 영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다, 번성하다”라는 뜻입니다. 한 영혼이 순조롭기를 원합니다. 영혼이 순조로운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시 150:6) 마음이 번성하기 원하는 것입니다. 영혼이 올바른 길로 가며 번영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면 마음이 기쁩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면 즐거워하고 육체도 안전하게 사는 것입니다.(시 16:9)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주의 법을 사랑합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큰 평안이 있습니다. 장애물이 없습니다.(시 119:165) 평안이 없다면 주의 법을 사랑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장애물이 많다면 주의 법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학자 헨리 드루먼드가 말했습니다. “인생을 돌아보면 제대로 살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았던 순간뿐이다.” 내 인생을 제대로 살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충남 공주의 풀꽃문학관 안에서 나태주(79세) 시인이 말했습니다.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키가 또래보다 작았다. 우등생도 아니었고, 특출 나게 잘하는 것도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자조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나를 사랑해주셨던 선생님이 계셨는데 내가 몰랐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들꽃처럼 관심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풀꽃은 사람이 심어놓은 곳에 살지 않는다. 자기가 살고 싶은 곳에서만 핀다. 들꽃을 보고 시(詩)를 썼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내가 시집과 수필을 200권 넘게 출간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인정해주었다. 과거보다 주머니 사정이 여유가 생겨서 조금 더 많이 나눌 수 있어 감사한다. 콤플렉스를 가진 인생이 다른 사람에게 위로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80년을 바라보는 인생은 돌아보며 쉬어가는 시기다. 하지만 풀꽃이 나를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풀꽃이 유명해진 것은 세상과 협동했기 때문이다. 나는 15살부터 70세까지 이름도 없고, 빛도 없이 작품 활동을 했다. 오랜 기간 창작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잘한 것이 아니라 좋아했기 때문이다. 43년간 교사로 일하면서 내 마음을 표현하는 삶을 살았다. 무당 집안에서 태어나 기독교와 먼 삶을 살았다. 그런데 내가 기독교인 아내와 결혼하고 아내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크게 아파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2007년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내가 좋아하는 복음송이 있다.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 내 맘대로 고집하며 온갖 죄를 저질렀네. 예수여 이 죄인도 용서 받을 수 있나요? 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받을 수 있나요...“ 내 인생의 때마다 예비하신 ‘여호와 이레’가 있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부모님도 내가 기적적으로 회복한 후에 교회에 나왔다. 요즘에 교회에 가는 즐거움을 누린다. 주일은 일부러 아침을 먹지 않는다. 교회 국수를 먹는 재미가 있어서다. 설교를 통해 일주일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몰랐을 때도 나를 사랑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받아주셔서 기쁜 마음이 들고 가슴에 희망이 피어난다. 내가 마이너 인생을 살았기에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축복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메이저로 가는 길을 산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메이저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거룩한 믿음(테 하기오타테 피스테이/τη ‘αγιωτατη πιστει/te hagiotate pistei)”은 “신성한 믿음, 순결한 믿음, 봉헌된 믿음”이란 뜻입니다. ’거룩‘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다. 너희도 거룩하라.”(레 11:45) 거룩한 믿음이 구별된 믿음입니다. 거룩한 믿음은 하나님께 속한 믿음입니다. 거룩한 믿음은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거룩한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계신 것을 체험합니다. 거룩한 믿음이 있어야 기적을 체험합니다. 거룩한 믿음의 기도가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 상달됩니다.(대하 30:27)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이 왜 거룩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까? 거룩한 믿음이 없으면 자기 경험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경험에 머물러 있으면 경험하지 못한 것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자기 지식에 머물러 있으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 믿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자기감정에 머물러 있으면 감정적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라”는 말은 “자신을 건축하라, 인격을 세우라”는 뜻입니다.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자신의 인생을 건축해야 합니다. 자신의 가정, 가족을 세워야 합니다. 거룩한 믿음 위에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거룩한 믿음 위에 선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세대들이 그 거룩한 믿음 위에서 믿음의 유산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령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령으로 기도하라(엔 프뉴마티 하기오 프로슈코메노이/εν πνευματι ‘αγιω προσευχομενοι/en pneymati hagio proseyxomenoi)”는 말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라는 뜻입니다. 기도가 하나님과 거룩한 소통입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왜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까? 성령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으신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롬 5:5) 성령으로 기도하면 성령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롬 8:16) 성령님께서 우리가 연약함을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것을 알지 못할 때 성령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하며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해서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롬 8:26,27) 성령으로 기도하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롬 15:16) 성령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고전 2:10) 성령으로 기도하면 신령한 일을 분별하기 때문입니다.(고전 2:13) 성령으로 기도하면 각 사람에게 유익하게하기 때문입니다.(고전 12:7)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킵니다. 영생에 이르도록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립니다. 본문 21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엔 아가페 떼우/εν αγαπη θεου/en agape theoy)” 있으면 모든 일에 넉넉하게 이깁니다.(롬 8:37)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합니다.(엡 1:6) 하나님의 사랑 안에 예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기쁨이 충만합니다.(요 15:9,1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합니다.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랍니다.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웁니다.(엡 4:15,16)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어야 영생에 이르게 합니다. 영생에 이르도록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으면 성령 안에서 사랑을 알립니다.(골 1:8)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마음의 위안을 받습니다.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가 모든 것을 풍성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춰져 있습니다.(골 2:2-3)
여러분! 성령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한 영혼을 긍휼히 여깁니다. 본문 2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여기서 “의심하다(디아크리노메누스/διακρινομενους/diakrivomenoys)”는 말은 “철저하게 분리하다, 주저하다, 흔들리다, 논쟁하다, 망설이다”는 뜻입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믿음이 연약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합니다. 자신의 의심이 해소될 때까지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밤 사경에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신 모습을 보고 놀라며 유령이라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즉시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라.”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서 물 위로 걸어가는데, 바람을 보고 무서워서 물속에 빠져 들었습니다. 다급하게 소리 질러 외쳤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예수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아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마 14:25-31) 믿음이 작으면 의심합니다. 물 위를 걷다가 의심하면 물속에 빠집니다. 믿음이 약해서 의심하는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롬 14:1) “긍휼(엘레오스/ελεος/eleos)”은 “부드러운 자비, 불쌍히 여김”을 말합니다. “긍휼”은 죄로 인해 비참해진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긍휼이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출 33:19) 성령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의심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가 사도 바울을 돕다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사도 바울이 근심하면서 하나님께 긍휼히 여기주시기를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치유하여 근심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빌 2:27)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에게 의심하는 사람을 왜 긍휼히 여기라고 하십니까?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종교인에서 끌어내어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종교인은 사탄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사탄은 종교인들이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를 만들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에서 종교인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합니다. 그러나 거룩한 믿음 위에 서 있는 그리스도인이 종교인을 구원하여 거룩한 믿음으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아가페)과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추십니다.(고후 4:6) 이제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고, 믿음의 교회를 세우고, 축복의 가정을, 성도를 세우시기 원합니다. 성령으로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구원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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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비전교회91 원문보기 글쓴이: bsy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