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맛집(85)] 몸살 앓도록 먹고 싶은 '금풍쉥이'?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 2013.05.29
■ 여수의 맛집들
이순신 장군도 반한 감칠맛 '구운 평선이'서 이름 유래
서대회 무침 담백한 맛 '장미꽃'같은 닭육회 군침
삼치구이·사시미도 별미
여수는 미항이다.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항구로는 흔히 나폴리를 손꼽는다. 한반도에서는 전남 여수와 경남 충무를 미항, '동양의 나폴리' 혹은 '한반도의 나폴리'라고 부른다. 흔히 "여수에서 인물 자랑하지 마라, 여수에서 돈 자랑하지 마라"고 하지만 "여수에서는 음식 자랑하지 마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여수 앞바다에는 물살이 센 곳이 많다. 생선살이 단단하다. 내륙으로 깊이 들어온 만(灣)도 발달되어 있으니 생선 맛이 풍부하고 산이 멀지 않으니 산에서 나오는 나물들도 흔하다. 배후지의 평야도 넓고 기름지다. 각종 곡물의 수급도 편하다.
여수를 찾는 사람들은 쉽게 돌산 섬의 갓, 장어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여수에는 알려지지 않은 먹을거리들도 퍽 많다. 여수는 장어와 장어 살을 데쳤을 때 꽃처럼 피어오른다는 '하모 유비키'로 유명하다. 갓김치가 맛있음은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수에는 이런 유명한 것들 이외에도 먹을거리가 지천이다.
여수에 가면 어떤 식재료를 만나고 어떤 음식들을 먹어야 할까? 우선 객지에 사는 여수사람들이 몸살을 앓도록 먹고 싶어 하는 것은 '금풍쉥이'다. 금풍쉥이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여럿 가지고 있다. 예전에 여수에서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에서는 서대나 짱둥어 대신 금풍쉥이를 먹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금풍쉥이'는 돔(하스돔)과의 물고기로 '딱돔'이라고도 한다. 붉은 색깔이 도는 이 생선은 처음 보면 마치 금붕어 같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금풍쉥이는 '군평선이'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 시절, 관내시찰 중 이 생선을 드시고 이름을 묻자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이순신 장군이 관내 기녀 '평선이'의 이름을 따서 '평선이'라고 부르게 했는데 나중에 어부들이 '구운 평선이'가 맛있다고 '군평선이'라고 불렀고 금풍쉥이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금풍쉥이는 에로틱하게 '샛서방고기'라고도 부른다. 너무 맛있어서 남편에게는 주지 않고 몰래 만나는 '샛서방'에게만 준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여수에 가면 샛서방이 아니라도 금풍쉥이부터 먼저 만날 일이다.
서대도 얕잡아 볼 일은 아니다. 서대는 구이, 회로도 먹고 말려서 쪄 먹기도 한다. 기름기가 적절하게 있으면서도 맛이 담백하다. 서대를 잘게 썰어 미나리 등 채소와 섞는다. 이때 여수사람들은 잘 만든 막걸리 식초로 서대 회를 버무린다. 회인지 무침인지 헛갈리니 이름이 '서대회무침'이다.
다른 생선들의 맛도 떨어질 리는 없다. 여수 시내 군데군데서 '삼치 전문점'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대단한 인테리어나 큰 가게를 기대하면 실망한다. 허름하고 작은 식당의 메뉴도 마치 전문점 같이 삼치구이, 삼치 회 등으로 간단하다. 어시장 부근의 작은 식당에서도 쉽게 삼치 회를 내놓는다.
해산물 이외에도 먹을 것은 너무 흔하다. 해조류로 모자반과 톳이 좋고 누구나 좋아하는 돌산 섬의 갓으로 만든 갓김치 등도 꼭 한번 만날 일이다. 시내 골목의 작은 식당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한해 이상 푹 묵힌 갓김치를 내놓는다. 여수 시내 군데군데 식당에서 해산물이나 해조류 등으로 만든 음식을 쉽게 내놓는다.
식재료가 흔하고 별미가 많은 여수에서 빠트리지 말아야 할 것은 엉뚱하게도 닭요리다. 닭은 내륙 지방의 별미에 속한다. 생선도 없고 곡물도 흔하지 않은 깊은 산속 혹은 바다나 강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에서 닭을 재료로 한 음식들이 발달한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여수에서 제법 근사한 닭요리를 만날 수 있다. 바로 닭 육회 혹은 '닭 사시미'다. 여수 봉선동의 '약수닭집'은 닭 육회와 더불어 몇몇 닭요리를 내놓는 집이다.
닭 가슴살을 바탕(?)으로 닭 모래주머니의 붉은 부분을 장미꽃처럼 수놓는다.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보면 마치 잘 핀 한 송이 꽃 같은 느낌을 준다. 회를 먹고 나면 곧이어 숯불을 준비하고 잘 저민 닭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숯불에서 잘 익은 닭고기는 색다른 풍미를 준다. 마지막에는 녹두죽을 끓여서 내놓는다. 고기 국물이 밴 녹두죽은 달달한 맛과 더불어 녹두 특유의 구수한 맛이 살아 있다. 인원은 관계없이 큰 닭 한 마리의 숯불구이 가격이 5만원이다. 4명이 먹기에 넉넉하다.
여수에서 이름난 삼치전문점은 이름이 특이하다. '월성소주코너'. 무슨 주류 도매센터 같은 느낌을 주는 이름이지만 간판 아래에는 천연덕스럽게 삼치구이, 삼치사시미 전문이라고 써 붙였다. 실내는 소주코너 정도의 분위기다. 포장마차 수준의 허름한 인테리어에 메뉴도 삼치에 관한 것뿐이다. 3~5만원 정도에 소주와 삼치 회를 넉넉하게 즐길 수 있다.
이름들이 재미있는 것은 여수의 오랜 맛집인 '구백식당'에서 정점에 이른다. 약 30년 전 가게 문을 열었다. 식당 이름 짓기가 번거로운데 마침 전화번호 뒷자리가 '0900'이었다. 식당이름을 '구백식당'으로 정했다. 그 대범함과 여유로움, 넉넉함이 참 대단하다 싶다. '구백식당'의 전화번호는 061-662-0900이다. 여수의 이름난 음식들인 서대구이, 서대 회 무침, 금풍쉥이구이, 아귀찜 등을 즐길 수 있다. 관광객들의 반드시 들르는 곳이어서 손님이 많은 주말에는 서비스가 그리 좋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