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라면 한국전쟁이 발발한 시기이고 해방 후에 전쟁까지 겪으면서 여러가지로 바뀌었을테니
한복이라는 전통에 대해 어떤 인식이 바뀌었는지 알아보는건 흥미로운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침 논문을 찾아보니 올해 「1950년대 동아일보 기사를 통해 본 한복 양상 연구」라는 논문이 보여서 한번 찾아보았다.
논문에서는 자료를 위해 동아일보 1950년 1월 1일자부터 1959년 12월 31일자까지 실린 복식 관련 기사를 살펴본 결과 약180여개의 기사를 선별했다고 한다.
이 중 한복과 관련하여 총 26건의 기사를 분석해서 당시 사회적 시각, 당시 유행하던 한복 구성, 착용율 같은걸 볼 수 있는 기사들이 있었다고 한다.
논문에서 정리한것에 따르면
한복의 인식에 관한 기사
50%에 해당하는 기사가 당시 한복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관한 기사라고 한다.
대부분은 한복을 부정적으로 인식했고 이러한 부정적 인식은 또 3가지로 나눈다.
①한복에 나타나는 사치성
②양장(洋裝)과 비교하여 불편한 한복의 기능성
③한복에서 느껴지는 고루함
아래는 해당 기사의 예시이다.
1953년 8월 21일(금요일)자
“마음의 재건보(再建譜) (2) -
대우(待遇)받으려면 호사(豪奢)해야... 밀수(密輸)는 사치(奢侈)가 조장(助長)하는가”
남성들의 마카오 양복 착용과 여성들의 양단 저고리와 벨벳치마의 한복차림을 그 예로 언급
1956년 1월 19일(목요일)자 신문
“아내는 사치(奢侈)에 눈 어둡고…"
“여름이면 ‘하이·힐’에
‘파라솔’, 겨울이면 ‘비로-드’ 치마저고리에 양단 두루마기로 몸을 휘감고 들떠 돌아가는 바람에…”
1954년 11월 25일(목요일)자 신문
“주부의 활동복”
‘의생활의 현상과 장래의 방침’, ‘제작의 현상과 개선’,‘활동복의 필요성’이란 주제로 당시의 한복 위
주의 의생활이 갖고 있는 불편함을 제기하면서여성의 바지 착용을 촉구
1956년 9월 16일(일요일)
“양장과 가정생활-몸과 살림에 맞도록”
-다른 나라 복식과 비교할 때 한복은 월등히 뛰어나나 세탁시 일일이 뜯어서 빨래해야하고 관리에 시간이 소요됨을 지적
양장의 장점을 강조함으로서 가정에 양장 착용을 주장
1952년 11월 16일(일요일)자 신문 실린 가십성 기사
두루마기와
고무신 착용을 고집해온 국회의원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한복을 입어야만 시장이나 농촌에서 잘어울릴 수 있다는 답변
1956년 1월 21일(토요일)자 신문
한복을 착용해온 모 국회의원이 회의 차 재무차관의 사무실을 방문했으나 옷차림만 보고 진정이나 하러온 시골
노인으로 착각하여 인사도 받지 않는 실례를 범해 거듭 사과를 했다는 내용
1959년 6월 2일(화요일)자의 신문
모 국회의원의 여름 한복차림 소개
다른 의원이 이런 그의 차림을 조선시대 양반에 빗대어 대감(大監)이라고 칭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국회의원도 일종의 벼슬이니 양반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며 약간의
조롱을 섞어 기사를 마무리
논문에서는
이러한 부정적 인식의 기사 외에 긍정적 인식의 기사도 있었다. 해외에서의 행사나 외국인
을 대상을 하는 행사 참여 시 한복을 착용한 사례에서는 한복이 갖고 있는 우아함과 아름다움
을 긍정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1959년 4월 29일(수요일)자의 해외 영화제 참여시의 한복
착용과 1959년 5월 7일(목요일)자의 미국 유명 영화감독 초청 연회에서의 한국 여배우들의 한복 착용에서는 한복의 긍정적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가치나 전통미를 표현하고자 할 때는 한
복이 이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요소로 작용해 긍정적 인식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라며 한복의 긍정적인 면을 언급한 기사도 소개하고 있다.
한복 디자인관련 기사
또 당시에 한복 디자인에 대한 기사들도 소개하고 있는데
-양장에는 다양한 유행의 변화가 나타나면서 한복에서도 동정과 깃의 넓이가 남자 저고리만큼 넓어진 유행을 소개했고
-치마·저고리의 색상을 같은 색으로 통일하면 키가 커 보이고 신선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소개
-일상복보다 예복으로 착용범위가 좁아졌다고 언급
-무명으로 한복을 지을 경우 6,000~7,000환, 포플린으로 지을 경우 3,000~4,000환 정도 비용이 든다고 함
-한복을 변형시킨 양장패션을 소개함(아리랑드레스로 우리나라 최초 패션디자이너 노라노의 작품이다. 제3회 미스코리아 진 오현주가 1959년 제8회 미스 유니버스 대회가 참가 시 착용한 드레스 3벌은 등록문화재 제613호로 지정되었다)
한복 구성 관련 기사
한복구성과 관련된 기사가 있는데
가슴둘레와 화장의 치수만 갖고 바로 마름질하여 저고리를 만들던 재래의 방법에서
허리둘레, 엉덩이 둘레 등등의 서양식 입체치수를 반영한 패턴 제작은 1950년대부터 시작한걸로 설명됨
연령별, 체형별의 저고리 치수에 대한 소개가 있음.
한복 착용율에 대한 기사
1950년대 당시의 실제 전문직 여성들의 양장 대비 한복착용 비율
서울 중앙방송국의 일본어 방송을 위한 여성 아나운서모집 지원자119명 중
-93명 양장 차림(57명은 코트도 함께 착용)
-26명이 한복차림
다만 해당 지원자들에 대한 통계는 당시 고졸 이상의 고학력에 직업경력도 뛰어났기에 당시 일반적인 모습으로 설명하긴 어려움.
그렇지만 한복의 선호도가 떨어졌다는 예시 중 하나로 볼 수 있음.
이것저것 내용 보니 재미있긴 함.
가령 1950년대 한복은 사치의 상징이었다는 점이나(그런데 지금도 한복 1벌 사입거나 만들어입으려면 돈이 많이 나가는건 사실임.)
오래된, 시골노인 등의 이미지로 인식되거나 양장이 권장되거나 하는걸 보면 그 시기에는 그랬지만
그래도 요즘은 전통한복 복원의 움직임이나 생활한복을 입는다거나 보다 젊은 이미지,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오는 부분에서 한복의 느낌이나 소비도 시대, 환경, 연령에 따라서 달리 생각될듯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