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헌의 지전설(1)
날씨도 무덥고 책 읽기도 싫고 해서, 10년 전 쯤 썼다가 그냥 처박아 둔 글을 꺼내어 실어본다. 담헌 홍대용 관계 글이다. 요즘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인터넷을 뒤적여 보니, 홍대용을 아주 다시없는 과학자로 알고 있기에 좀 아니다
싶어서 몇 토막 꺼내어 싣는다.
모두들 다 아시는 내용일 것인데, 공연한 짓 한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집이 워낙 덥고 딱히 할 일도 없기에 소일 삼아 올려본다.
주제는 「의산문답」에 나타난 담헌 홍대용의 지전설(地轉說)이다.
그냥 시간 나시는 분들 심심풀이 삼아 읽으시기를! 두 번에 걸쳐서 싣는다.
1) 「의산문답(醫山問答)」
「의산문답」은 실옹(實翁)과 허자(虛子)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대화의 기록은 오래된 장르다. 유가의 논어와 맹자가 대화록이지 않은가.
또한 「의산문답」의 우언적 발상, 상대주의적 상상력을 장자의 서술 방식을 차용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곧 광대한 세계와 그 속에 존재하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존재들을 우화 소재로 이용하여, ‘우리’ 사회가 지닌 상식의 보편성에 의문을 던진 장자의 전략을 홍대용은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것이다.[1.임종태, 「무한우주의 우화」, 역사비평71, 역사비평사, 2005 여름, 275면].
하지만 그것이 자연학을 둘러싼 대화라는 점에서 한편 그가 읽었던 한역 서양서도
참고가 되었을 것이다.
예컨대 천학초함의 기인(畸人), 천주실의(天主實義), 태서수법(泰西水法)의
일부(5권의 「水法或問」), 천문략(天問略)과 같은 주요한 천주교서적과 천문학서적은 대화로 이루어진 저작들이다.
또 후술하겠지만 담헌이 보았으리라 추정되는 유예(游藝)의 천경혹문(天經或問)과
같은 저작들, 특히 천문학서적은 대화로 이루어져 있으니, 담헌의 「의산문답」 역시 이런 형식을 차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음은 「의산문답」의 첫부분이다.
(1) 허자가 실옹을 만나자, 실옹이 허자를 비판한다.
(2) 실옹이 이천시물(以天視物)의 관점으로 인성과 물성이 같다고 주장함(人物性同論).
(3) 실옹이 지원설(地圓說)을 주장함.
(3-1) 일식․월식의 그림자가 둥근 것 등 천문학적 증거를 지원설의 증거로 제시함.
(3-2) 지구가 둥글다면 대척지(對蹠地)에 사람이 살 수 없다는 반박에 대해 지구는 무한한 공간에 떠 있기 때문에 상하, 사방의 방위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위에서 아래로 추락하는 일 자체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함(우주무한설). 이에 부기하여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지구의 모든 곳은 중심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함.
(3-3) 대척지설을 반박하기 위한 또 다른 논거로 지구가 자전할 때 ‘기(氣)’가 지구의 표면 쪽으로 쏠려 인간과 사물이 지구의 중심으로 향한다고 주장함(地轉說).
담헌 천문학의 골자는 지구가 둥글다는 지원설이 핵심이고(3), 무한우주론(3-2)과 지구의 자전을 뜻하는 지전설(3-3)은 지원설을 입증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2)에서 담헌은 현대의 천문학과 지구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담헌은 지구와 달과 태양, 별 등의 천체는 태허(太虛)를 가득히 채우고 있는 기(氣)의
운동으로 생성된 것이라고 말한다. 기의 운동을 통해 우주의 생성과정을 설명하는 것은, 중국 우주론의 역사에서 회남자 「천문훈」 이래 오랜 전통[2.구만옥, 조선후기 과학사상사1, 혜안, 2004, 412면]이었다.
담헌의 우주생성론 역시 이런 전통의 연장이다. 하지만 정확하게는 지적하라면, 담헌
우주생성론의 근거는 장재(張載)가 정몽(正蒙)에서 펼친 기론(氣論)일 것이다.
장재의 태허는 기로 가득 차 있고, 기는 운동하여 양기와 음기로 나뉜다. 양기는 떠서
우주 바깥에서 회전운동을 한다. 이것이 하늘이다. 우주의 중심에서 음기가 응집하여
굳어진 것이 땅이다. 이후 다시 기의 운동에 따라 우주만물이 생겨난다[3.문중양, 「조선후기 실학자들의 과학담론, 그 연속과 단절의 역사」, 정신문화연구9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3 겨울호, 31면].
주자 역시 장재의 기론을 받아들였다. 주자에 의하면, 태초의 미분화된 혼돈미분의 원초적 기가 처음부터 회전운동을 하고 있었으며, 그 회전은 바깥쪽일수록 엷어지고 빨라져서 마치 회오리바람처럼 강경(剛勁)해서 천체를 실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안쪽일수록 속도는 느려지고 짙어져서 기가 응집하고 응결해서 유형의 존재인 찌끼
(渣滓)가 되며, 결국 우주의 중심에서 고체인 땅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주희의 우주론 논의에서는 기의 회전 운동이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부각되었는데, 그는 무거운 고체의 땅이 우주공간에 떠 있을 수 있는 것을 바로 기의 회전력에서 구했다[3.같은 글, 32-33면. 원래의 참고서는 山田慶兒, 주자의 자연학, 통나무, 1991, 193-196, 174-176면이라고 함].
담헌은 장재와 주자의 우주생성론에서 자신의 우주생성론을 빌려왔을 것이다. 물론 그는 태허와 기의 운동만을 빌어왔고 음양론은 취하지 않았다. 이렇게 서양 천문학을 섭취한 뒤 여전히 중국과 조선의 지적 전통에서 기론으로 우주의 생성을 설명하는 것은 담헌만이 아니었다. 서양 천문학을 중국의 지적 전통 속에서 소개하고 있는 천경혹문에 실린 “하늘은 비어 있는 것 같지만 빈 것이 아니다. 빈 것(虛)란 기가 꽉 채우고 있어, 빈틈이 없다.”[4.游藝, 「地體」, 天經或問 권2, “揭子曰:‘天之虚, 非虛也. 虛者, 氣塞滿之, 無有空隙.’”]라고 한 게훤(揭暄)의 소론 역시 동일한 성격의 것이다.
요컨대 담헌은 서양 천문학을 접한 이후로 우주와 천체에 대한 사유를 거듭했고 최종적으로 우주와 천체의 발생 기원에 대한 의문에 도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서학서에는 우주의 발생론적 기원을 신으로 설정하고 있었지만, 유가적 전통에 서 있던 담헌으로서는 장재와 정주학, 그리고 게훤의 ‘기’가 훨씬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2) ‘둥근 지구’(地圓)가 만든 대척지(對蹠地)의 문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의산문답」에서 담헌이 힘주어 말한 부분은 (3)의 ‘지원설(地圓說)이다.
대저 땅은 물과 흙이 그 바탕을 이룬다. 그 체상(體狀)은 완전히 둥근데(正圓), 공계(空界)에 떠서 쉬지 않고 회전한다. 온갖 물(物)은 그 표면에 의지해 붙어살 수 있다.”
[5.「醫山問答」. “夫地者, 水土之質也. 其體正圓, 旋轉不休, 渟浮空界, 萬物得以依附於其面也.”]
담헌은 지구가 정원(正圓), 곧 완전한 원형이라고 말한다. 지원설은 서구의 천문학이
전해지면서 알려진 것이었다. 지원설이 전해지기 전 중국과 조선의 지식인이 믿었던
우주구조는 땅이 물 위에 떠 있고 물은 하늘에 감싸여 있는 주희의 혼천적(渾天的) 우주구조였으며 그것은 상식에 맞는 안락한 우주구조였다[6.전용훈, 「조선후기 서양천문학과 전통천문학의 갈등과 융화」, 서울대학교 이학박사 논문, 2004, 226면].
지원설은 복잡한 논란을 야기했다. 예컨대 지구가 둥글다는 여러 천문학적, 지구과학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표면에 사람과 사물이 산다면, ‘대척지(對蹠地)’의 사람과 사물이 추락할 것이라는 상식은 지원설의 수용을 방해했던 것이다.
또 지원설은 오해되고 변형되기도 하였다. 18세기 초반 신유(申愈, 1673-1706)는 지구가 6면의 입방체이며 그 6면에 모두 사람과 사물이 존재한다는 육면세계설(六面世界說)을 주장했고, 그 설을 두고 호서의 노론 학자들, 예컨대 한홍조(韓弘祚, 1682-1712)․현상벽(玄尙壁, 1673-1731)과 이간(李柬, 1677-1727)․한원진(韓元震, 1682-1751) 등은 찬․반의 논란을 벌인 바 있었다[7.六面世界說에 대해서는 具萬玉, 朝鮮後期 科學思想史 硏究1, 혜안, 2004, 272-277면과 임종태, 「‘우주적 소통의 꿈’ -18세기 초반 湖西 老論 학자들의 六面世界說과 人性物性論」, 韓國史硏究138, 한국사연구회, 2007를 볼 것].
육면체설이란 마테오 리치의 건곤체의의 지원설을 수용하되 재래의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재래의 관념을 유지한 것이었다. 육면세계설은 지원설의 오해한 변형물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지원설을 확산시키는 데 일정하게 기여하였다. 물론 이런 논란은
거개 경화세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한편 지원설을 둘러싸고 논란을 벌인 사람들은 거개 서울과 경기, 호서(湖西)의 사족들, 곧 경화세족이었다. 요컨대 1603년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 혹은 건곤체의를 수입한 뒤로부터 150년 이상을 경과하여 담헌이 「의산문답」을 쓸 무렵인 18세기 후반이면 지원설은 경화세족 내부의 지식인들에게는
비교적 널리 인지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담헌은 일식과 월식 때 달과 지구의 그림자가 둥근 것을 증거로 지구가 원형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에 대해서도 그것은 ‘둥근 하늘이 모난 땅의 네 모서리를 가릴 수 없다’(是四角之不相掩)는 말일 뿐이라는 증자(曾子)의 해석을 끌어오는 한편[8.이것은 大戴禮記, 「曾子天圓」에 실린 것이다.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임종태, 17,18세기 중국과 조선의 서구 지리학 이해, 창비, 2012, 90-91면을 볼 것],
또 그것이 땅의 형태를 지적한 것이 아니고 땅의 덕성을 지적한 것이라는 혹자의 말을 인용했다. 즉 천원지방이란 말에서 땅이 네모난 것이라는 판단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담헌 주장의 근거는 마테오 리치다. 곧 천원지방설의 ‘지방’이란 부분을 땅의 덕이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는 본성을 말한 것이고 형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던 것은 마테오리치였다[9.임종태, 같은 책, 37면. 알레니(艾儒略)의 職方外紀 「五大洲總圖界度解」에도 나온다. “天圓地方, 乃語其動靜之德, 非以形論也. 地旣圓形, 則無處非中, 東西南北之分, 不過就人所居立名, 初無定準.”].
이것만으로 천원지방설이 논파될 수는 없었다. 여전히 상식적 지구의 형상은 원형이 아니었다. 담헌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만약 땅이 네모난 것이라면, 사우(四隅)ㆍ팔각(八角)ㆍ육면(六面)이 모두 평면이고 변두리는 담장을 세운 것처럼 깎아지른 절벽일 것이다. 너의 견해는 이런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강과 바다의 물과, 사람과 물(物)의 부류는 한 면(面)에만 모여 살고 있는가? 아니면 여섯 면에 두루 퍼져 살고 있느냐?”
“윗면에만 모여 삽니다. 옆면에서 가로로 살 수가 없고 밑면에서는 거꾸로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10.「醫山問答」. “‘苟地之方也, 四隅八角六面均平, 邊際阧絶, 如立墻壁, 爾見如此.’ 虛子曰:‘然.’ 實翁曰:‘然則河海之水, 人物之類, 萃居一面歟? 抑布居六面歟?’ 虛子曰:‘萃居上面爾, 盖旁面不可橫居, 下面不可倒居也.’”]
허자가 상상하는 지구의 형상은 정육면체다. 이것은 전술한 기호 노론 신유(申愈)가 창안한 육면세계설을 떠올리게 한다. 담헌이 육면세계설을 인지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천원지방설의 논리적 귀결은 육면체로 귀결될 수 있다. 주사위 같은 정육면체의 윗면에만 인간이 살 수 있고, 아래 면과 측면에는 인간이 살 수 없다. 인간이 추락하기 때문이다. 정육면체설은 담헌과 동시대인이 갖는 상식이었다. 하지만 담헌은 그 상식을 배반하고, 지구가 완전한 원형이며 인간은 그 표면에 붙어산다고 말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면에서만이 아니라, 이 면의 대척적인 지점에서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원형의 지구는 상․하가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가 원형일 경우 상․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마테오리치가 건곤체의에서, 그리고 알레니가 직방외기(職方外紀)에서 주장한 것이었다[11.利瑪竇(마테오리치), 乾坤體義:朱維錚 主編 利瑪竇中文著譯集, 復旦大學出版社, 2001, 519면. “夫地厚二萬八千六百三十六里零三十六丈, 上下四方皆生齒所居, 渾淪日球, 原無上下. 蓋在天之內, 何瞻非天? 總六合內, 凡足所佇卽爲下, 凡首所向卽爲上, 其專以身之所居分上下者, 未然也.” 艾儒略(알레니), 職方外紀:天學初函3, 출판사불명, 발행년불명, 1312면. “地旣圓形, 則武處非中. 所謂東西南北之分, 不過就人所居立名, 初無定準.”].
상․하란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대척지에도 사람이 산다는 주장은 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 문제를 두고 18세기 이래 김시진(金始振)․남극관(南克寬)․이익(李瀷) 등 여러 지식인 들 사이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12.김시진과 남극관에 대해서는 전용훈, 앞의 글, 125-133면에 훌륭하게 정리되어 있다].
특히 김시진은 시헌력의 시행을 비판하고 나아가 탕약망과 이마두 등 서양선교사들이
반명(反明) 세력이며 사설을 퍼뜨리는 이단이라고 규정하는가 하면, 지구설도 근거 없는 것으로 단정했던 것이다[13.전용훈, 같은 글, 129면]. 지원설은 확산되었지만 대척지의
사람과 사물이 추락하지 않는 현상의 이유, 또 지구 자체가 아래로 추락하지 않는 이유 등에 관련된 문제는 여전히 충분히 해명되지 않고 있었다.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1687)에서야 공표된 만유인력의 법칙이 마테오리치의 시대에 인지될 리는 만무다. 또 담헌 당시까지 서양선교사들은 그것을 한문으로 옮기지 않았다.
만유인력은 허셸(John. Herschell)의 천문학개론서 담천(談天)(Outline of Astronamy(1849))을 이선란(李善蘭, 1810-?)이 1859년에 번역, 간행함으로써 비로소 알려졌던 것이다[14.이현구, 「최한기의 기학과 근대과학」, 계간 과학사상, 1999 가을, 83면].
물론 서양 선교사들에게 대척지와 상하관념에 의한 지구의 추락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원소설에 의하면, 원소는 각각 원래 존재하는 장소(本所)가 있어 무게에 따라 아래로부터 흙․물․공기․불의 순서로 존재하게 된다. 그것이 본소다.
또 모든 물체는 한가운데에 무게중심이 있는데, 가장 무거운 땅(흙)은 저절로 모든 것의 무게중심이 되어 모든 물체가 땅의 중심(地心)으로 향한다는 것이다[15.웅삼발의 표도설(表圖說), 전용훈, 앞의 글, 221면].
서양 천문학서는 이런 논리로 지구의 중심을 향하는 중력의 존재를 설명하려 했으나,
사원소설 자체가 중국과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수용되지 않았다. 그것은 하늘이 위, 땅이 아래라는 너무나도 자명한 상하관념과 모든 것은 아래로 추락한다는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지구설 자체를 부정하거나 혹은 수용한다고 해도
명백한 근거보다는 천문학적 경험 증거와 경전에 지구가 둥글다는 말씀이 있다는 식으로 정당화하였던 것이다[16.전용훈, 같은 글, 224-229면에 이런 입장들이 요약되어 있다]. 하지만 어떤 논리도 완벽하지 않았다.
4) 또 다른 문제, 지구는 왜 아래로 추락하지 않는가?
담헌은 지원설을 지지하기 위해 나름의 논리를 개발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허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렇다면, 사람과 물(物)처럼 미세한 것도 오히려 아래로 추락하는데, 지구처럼 큰 흙덩이는 왜 아래로 추락하지 않는 것이냐?”
“기(氣)로써 태우고 싣기 때문입니다.”
실옹은 언성을 높여 말했다.
“군자는 도(道)를 논하다가 이치가 딸리면 굽히고, 소인은 도를 논하다가 말이 딸리면
발뺌하는 법이다. 물과 배의 관계란, 배가 비면 물이 배를 싣고 배가 꽉 차면 물이 배를 가라앉히는 것이다. 기는 힘이 없는데 큰 땅덩이를 실을 수 있단 말이냐? 지금 너는 옛날에 들은 것에 집착하고 승심(勝心)에 익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남의 말을 막고, 도를 듣기를 바라니 또한 잘못이지 않은가?
소요부(邵堯夫)는 통달한 선비였다. 그는 이치를 찾다가 깨치지 못하자 ‘하늘은 땅에 의지하고 땅은 하늘에 의지한다.’고 하였다. 땅이 하늘에 의지한다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하늘이 땅에 의지한다고 하면, 넓디넓은 저 태허(太虛)가 어찌 하나의 흙덩이에 의지할 수 있단 말이냐?
게다가 땅이 아래로 추락하지 않는 것은 본디 그런 형세가 있는 것이지 하늘과는 관계가 없다. 소요부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억지로 큰소리를 쳐서 한 세상을 속였다. 이것은 소요부가 자신을 속인 것이다.”
[17.「醫山問答」. “實翁曰:‘然則人物之微, 尙已墜下, 大塊之重, 何不墜下?’ 虛子曰:‘氣以乘載也.’ 實翁厲聲曰:‘君子論道, 理屈則服;小人論道, 辭屈則遁. 水之於舟也, 虛則載, 實則臭. 氣之無力也, 能載大塊乎? 今爾膠於舊聞, 狃於勝心, 率口而禦人, 求以聞道, 不亦左乎? 邵堯夫, 達士也. 求其理而不得, 乃曰天依於地, 地附於天. 曰地附於天則可, 曰天依於地則渾渾太虛, 其依於一土塊乎? 且地之不墜, 自有其勢, 不係於天. 堯夫知不及此, 則强爲大言, 以欺一世, 是堯夫之自欺也.’”]
모든 사물은 위에서 아래로 추락한다. 허자는 이 상식에 근거하여 대척지의 사람과 사물은 아래로 추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담헌은 허자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서, 그렇다면 무거운 지구 자체는 왜 아래로 추락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난감한 질문에 허자는 기(氣)가 지구를 싣고 있기에 지구가 추락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가 지구를 싣고 있다는 생각은 황제내경(黃帝內經)의 ‘대기가 지구를 든다’(大氣擧之)는 말에 바탕을 둔 것이다[18.晉書, 志第一, 「天文」上, ‘天體’ “天表裏有水, 天地各乘氣而立, 載水而行.” 黃帝內經, 「素問」 권9, 「五運行大論篇」, “帝曰:‘地之為下否乎?’ 歧伯曰:‘地為人之下太虚之中者也.’ 帝曰:‘馮乎?’ 歧伯曰:‘大氣舉之也.’ 지구가 추락하지 않고 있는 근거로 ‘大氣擧之’는 일반적으로 선택되는 해결책이었다. 南克寬은 역시 ‘大氣擧之’를 인용했다. 보다 자세한 것은 임종태, 앞의 책, 229-231면을 볼 것].
지구가 아래로 추락하지 않은 이유로 중국 지식인들이 종종 황제내경의 이 구절을
인용하였다[19.方以智․江永 등은 지구가 공중에 떠 있는 근거로 ‘大氣擧之’를 인용했다. 전용훈, 앞의 글, 230면. 다만 담헌이 방이지를 알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조선에서는 정제두가 ‘大氣擧之’를 지구가 추락하지 않는 근거로 제시했다. 전용훈, 233면].
주자 역시 이 구절을 인용하였다. 그는 초사집주의 ‘원즉구중(圜則九重)’에 대한 주석에서 천기의 회전 때문에 땅이 하늘에서 안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20.임종태, 17,18세기 중국과 조선의 서구 지리학 이해, 창비, 2012, 233면].
하지만 경험상 ‘기’는 너무나 가볍고 무력하다. ‘기’의 실재 존재 증거로 꼽는 대기(大氣) 즉 공기가 가볍다는 것은 보편적 경험이다. 담헌은 ‘기’는 지구와 같은 거대한 땅덩이를 실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21.「醫山問答」. “水之於舟也, 虛則載, 實則臭, 氣之無力也, 能載大塊乎?” 淸의 張雍敬은 氣가 땅을 들어 올릴 수 없다고 했다. 보다 자세한 것은 임종태, 앞의 책, 236면을 볼 것].
중국 지식인들은 땅이 낙하하지 않는 이유로, 소옹(邵雍)의 어초문답(漁樵問答)의
‘하늘은 땅에 의지하고, 땅은 하늘에 붙어 있다’(天依於地, 地附於天)는 말[22.性理大典 권13:邵雍, 皇極經世書7, 外書, 「漁樵問對」. “樵者問漁者曰:‘天何依?’ 曰:‘依乎地.’ ‘地何附?’ 曰:‘附乎天.’” 또 이 구절은 주자의 초사집주 권3, 「천문」 권3의 주해에도 나온다. “邵子曰:‘天何依?’曰:‘依乎地.’ ‘地何附?’ 曰:‘附乎天.’담헌은 이런 책들에서 이 부분을 인용했을 것이다]에 기대었다.
담헌에 앞서 서양 천문학을 읽고 나름의 우주론을 제시했던 정제두(鄭齊斗) 역시 이 말을 땅이 낙하하지 않는 근거로 소옹의 이 말을 근거로 제시했다[23.전용훈, 앞의 글, 233면]. 하지만 담헌은 이 말 자체를 비판했다. 이 하늘에 붙어 있다는 말은 타당하지만(아마도 땅은 광대무변한 하늘에 비해 극히 작은 존재이기 때문에), 하늘 곧 ‘혼혼(渾渾)한 태허(太虛)’가 한 덩어리의 작은 땅에 의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소옹은 주역에 대한 상수학적 해석을 토대로 거창한 우주론을 구성했는데, 담헌은 「계몽기의」에서 그 일부를 비판한 바 있었다. 이제 담헌은 「의산문답」에서는 그의 상수학적 우주관을 완전히 부정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황제내경과 소옹의 논리를 변파(辨破)했다 해도 지구가 아래로 추락하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해명되지 않았다. 허자는 다시 반문한다. 그렇다면 새의 깃이나 짐승의 털처럼 가벼운 것도 추락하는데, 무거운 땅덩이가 추락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첫댓글 제가 실학파(존재하지 않았던)를 비판하는 글을 게재하니
개인적 유감 내지 질투심으로 또는 관종으로 오해하실 듯 합니다!
지금 조선사가 정치위주에다 객관적 사료가 풍부함에도
어떤 인물이나 이념띄우기식으로 기술되고 홍보이용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이유입니다
우상을 부수고 객관적 평가를 해야 할 시대에
미화로 완전한 인물로 그리는데 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21세기에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사상 하나도 제대로 해석되지 않는 사례를 봤습니다!
지금 번역이 엉망이라고 저 아닌 50 대 세대에서 지적이 나옵니다!
초부립님이 언급한 프랑스 6.8운동에 대해 앙리 르페브르의 저서번역이 오류로
점철됐고 프랑스 좌파운동의 맥락도
파악을 못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현대세계의 일상성 으로 번역된 책에 대해
일상성으로 이게 번역될 것인가 일상성이 무엇인지 개념을 아는가 하는 비판이 이미
있습니다!
불문학자가 철학서를 번역하니 이모양이다 제주변이 그래서인지 모르나
근거대며 쓰는 글에
공감합니다!
제가 공유도 하고 쓰는
이유입니다!
제가 제일 위험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우상화입니다! 그래서 만해든 누구든 인간의 모습을 한 객관적 기술을 요청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