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19. 예수비전교회 성령강림주일낮예배 성령 충만, 평안, 믿음 유백선 목사
요한복음 14: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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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비전교회 카페에는 삶의 행복과 깊은 감동을 주는 메시지가 더 많이 있습니다. 카페에 들어오셔서 함께 나누시고 예수님의 비전으로 복을 받고 함께 주님의 교회를 세워나가시기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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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존경받는 교육지도자 파커 J. 파머(Parker J. Palmer) 작가가 쓴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이란 책에서 말했습니다. “과거에 연연하는 자세를 버려라. 과거로부터 배운 것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미래 세대를 세우는 것이 내 삶의 중심에 있는 목표다. 우리 가족, 우리 교회공동체는 불확실성이 크게 증폭된 시기에 살고 있다. 엄청난 위기와 기회가 중첩되어 나타나는 시기에 살고 있다. 이런 시기에 통찰력이 개인과 가정, 교회와 사회의 미래적 사활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다양한 관점에서 삶을 관조(觀照)하고 지속적으로 영성과 사고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시대를 꿰뚫어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함께 살아나는 마을과 교회를 소망하며 미래 세대를 준비하는 것이다. 나와 우리 가족과 우리 교회 성도들을 포함하여 청소년, 청년, 신(新)중년들(은퇴 후 제2인생을 살아가는 세대, 50-70세)이 하나님의 인재로서 조화와 변화, 가능성을 갖는 것이다.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춧돌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새로운 미래 패러다임이 요구하는 인재상이 무엇인가? 변화된 패러다임에 맞추어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어떤 기독교적 훈련이 필요한가?’ 사람은 감각기관을 통해 정보를 수집한다. 이는 인식(지각)(perception), 인지(recognition), 앎(knowing)의 순서로 진행된다. 가장 처음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이해에서 시작하여 평가가 이루어진다. 마침내 그 사물의 전체를 알고 소화하였다고 생각하는 단계로 이루어진다. ‘앎’에 필요한 조건이 대상과 앎의 주체인 나다. 앎의 주체가 지닌 ‘주관성’에 따라 앎의 결과가 달라진다. 객체와 주체 사이에서 객관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을 보고 말하든지 주관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사람이 핵무기를 만들고 나서 그 핵무기가 사람을 위협하는 지식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앎은 책임이 중요한 문제이다. 호기심과 통제의 목적으로 지식을 대하면 그 결과가 참혹하다. 앎이 사랑을 목적으로 실현해야 사람을 살리고 웃게 하는 일을 해낸다. 앎이 사랑의 역할을 모두 깨달을 때 세상이 아름다운 변화가 일어난다. 생각과 사고의 차이가 고차원의 영역을 나누는 기준이다. 사랑의 가치를 잃어버리면 사물을 바라보는 생각, 관심의 영역이 단순한 개인의 문제에 국한시킨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가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마음이 부서진 자들에 의해 민주주의는 진보한다.“
여러분! 교육수준이 높아져서 지식과 습득한 정보가 많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지식과 습득한 정보에서 재테크의 성공과 실패에 영향을 줍니다. 더 성공하고, 더 발전하려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새로 습득한 지식을 융합하여 재생산해야 합니다. 지식과 정보를 몸으로 체득하고, 가르쳐야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지식과 정보로 삶이 더 나아져야 할 것입니다. 지식이 사랑의 역할을 깨달아야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인재로서 우리의 가정에 어떻게 영향을 주어야 합니까? 주의 이름으로 세운 교회를 어떻게 지속해야 합니까? 절대적인 가치가 없는 세상에 어떻게 영향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습니까? 불확실한 사회에서 자신의 영혼을 맑게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디에도 마음이 치우치지 않고, 지속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해야 삶이 행복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합니다. 자기 가치를 인정해야 대접을 받습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령강림(세례)에 대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나에게 들은 바 아버지(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다. 그러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행 1:4,5,8)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야 권능을 받습니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야 예수님의 증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교회공동체에 강림하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모든 민족에게 전파할 수 있습니다. 바벨탑 사건 이후에 다양해진 언어들, 모든 언어로 구원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그 사람에게 임해야 하나님의 능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라.” 성령이 충만하면 내가 나를 주장하지 않고, 성령님께서 나를 주장하고, 인도하십니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고 주의 능력을 가진 제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본문 26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님의 다른 이름이 ‘보혜사’입니다. ‘보혜사(파라클레토스/παρακλητος/parakletos)’는 “중보자, 위로자, 변호자, 돕는 자.”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혜사를 주셔서 영원토록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요 14:16) 보혜사는 진리의 성령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 진리이신 예수님을 증거하십니다. (요 15:26) 진리의 성령님이 내 심령에 오시면 진리를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시면 보혜사가 오셔서 함께 하신 것입니다.(요 16:7) 진리의 성령님께서 오시면 그 사람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스스로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들은 것을 말합니다. 장래 일을 그 사람에게 알리십니다. 진리의 성령님이 내(예수님) 영광을 나타냅니다.(요 16:13,14)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를 마음 판에 새깁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을 받습니다. 귀중하게 여김을 받습니다.(잠 3:3-4) 진리를 말하는 사람이 의를 나타냅니다.(잠 12:17)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로 인해 죄악이 속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인해 악에서 떠나게 됩니다.(잠 16:6) 진리의 하나님을 향해 복을 구하는 것입니다.(사 65:16)
하나님께서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셨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셔서 하나님 앞에서 범죄자에 대해서 대언자(파라클레토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요일 2:1)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요 1:14) 진리를 따르는 사람이 빛으로 나옵니다. 예수님께 나오는 사람의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을 나타냅니다.(요 3:21)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합니다.(요 17:19) 진리의 성령님께서 진리의 말씀을 갖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갖고 있습니다.(고후 6:7) 성령을 받으면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입니다.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합니다.(엡 1:13-14) 진리가 예수 안에 있게 합니다. 예수 안에서 가르침을 받으면 유혹의 욕심을 버립니다.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지 않습니다. 옛 사람을 버립니다.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됩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습니다.(엡 4:21-24)
여러분! 보혜사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두 가지를 합니다. 하나는 성령님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성령님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면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합니다.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합니다.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씁니다.(딤후 2:15) 분별하는 지혜와 총명한 마음을 얻습니다.(왕상 3:12) 성령님이 임하시면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고 부정한 것과 정(깨끗)한 것을 분별합니다.(겔 44:23) 천기를 분별하고 시대의 표적도 분별하는 능력이 있습니다.(마 16:3)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시면 이 세대를 본받지 않습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것, 기뻐하시는 것,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합니다.(롬 12:2) 성령님께서 가르치시면 신령한 일을 신령한 것으로 분별합니다.(고전 2:13) 성령님께서 가르치시면 영들을 분별합니다.(고전 12:10) 성령님께서 가르치시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합니다.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의의 열매가 가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립니다.(빌 1:10-11) 진리에 순종하여 영혼을 깨끗하게 한 것입니다.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한 것입니다.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벧전 1:22) 성령님께서 가르치시면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아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미혹의 영이 있으면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사람입니다.(요일 4:6)
다른 하나는 성령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여기서 “생각나다(휘포므네세이/‘υπομνησει/)”는 말은 “조용히 상기하다, 기억을 떠오르게 하다, 훈계하다, 회상하다, 기억하다.” 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대로 살고, 생각하는 대로 됩니다. 예수님의 수제자로 자긍심을 가졌던 베드로가 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마 26:34)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고, 기억했다면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내 안에 계셔서 하나님의 생각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시고, 미래와 희망을 주신다. 하나님께 와서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으신다.”(렘 29:11-12)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모든 것이 추억이 되고, 사랑이 됩니다.
현대 명상문학의 시조 제임스 앨런이 <위대한 생각의 힘>에서 말했습니다. “생각이라는 무기고에서 우울함과 무기력과 불화 같은 무기를 만들어 자신을 파멸시킬 수 있다. 환희와 활력과 평화가 넘치는 천국 같은 집을 지을 도구를 만들 수도 있다. 인간은 사고를 통해서 행복하고, 불행하기도 했다. 환경은 그 생각의 거울에 불과하다. 어떤 생각을 끊임없이 하다 보면 그 결과가 인격과 상황을 만들어 낸다. 사람의 인격이 자기 마음에 품은 생각을 닮는 것이다. 인간은 모든 생각을 행위로 표현한다. 그래서 행동이 생각의 꽃이다. 기쁨과 고통이 그 열매다. 그래서 무익하고 불순한 생각의 잡초를 뽑아버려야 합니다. 제대로 유익하고 순수한 생각의 꽃과 과실을 길러내야 합니다. 마음이 고요해질수록 큰 성공을 거둔다. 초연하고 의연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평온한 마음은 자기 계발의 최종 단계다. 현명한 사람은 생각을 다스리고 만족할 줄 안다. 같은 상황에서 생각이 다르고, 해석을 다르게 하면 인생이 달라진다.” 사람이 꿈을 이루지 못한 이유가 생각을 바꾸지 않고 결과를 바꾸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은 생각이 성취를 제한하고 자유로운 생각이 가능성을 확장시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 평안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본문 27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여기서 “평안(에이레넨/’ειρηνην/)”은 “번영, 하나가 됨, 안식, 고요, 화합, 일치, 안전, 전쟁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끼친다(아피에미/αφιημι/aphiemi)”는 말은 “용서하다, 버리다, 곁에 두다, 떠나다, 생략하다, 따로 내놓다, 고생하다, 포기하다, 허락하다, 인정하다, 방해하지 않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은혜와 평강입니다.(민 6:25-26)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해주십니다.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행 15:11, 엡 2:5)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 은혜를 아는 사람이 은혜의 복음을 증거합니다.(행 20:24)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덕을 세웁니다.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습니다.(엡 4:29,30)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시고, 평강의 복을 주십니다.(시 29:11)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셔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렘 33:9)
하나님께서는 주의 법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큰 평안을 주십니다.(시 119:165)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신 의의 결과가 영원한 평안과 안전입니다.(사 32:17) 영의 생각이 생명과 평안입니다.(롬 8:6)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입니다.(엡 4:3) 참된 안식과 평안이 행복을 느끼게 합니다. 성령님께서 충만하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합니다. 성령님께서 충만하면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합니다. 구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빌 4:4-6)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마음을 주장하라는 것입니다. 평강을 위하여 우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있어야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골 3:15)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셔야 마음에 근심이 없습니다.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눈과 혼과 몸이 쇠약해집니다.(시 31:9) 근심이 마음에 있으면 번뇌하게 됩니다. 선한 말은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잠 12:25) 마음의 근심이 심령을 상하게 합니다.(잠 15:13) 심령의 근심이 뼈로 마르게 합니다.(잠 17:22)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셔야 마음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합니다.(눅 1:75)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습니다.(요일 4:18)
여러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께 갔다(승천)가 다시 오실(재림)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여기서 “기뻐하다(에카레테/εχαρητε/exarete)”는 말은 “유쾌하다, 행복하다, 환영하다, 축하하다, 잘 되다, 번성하다”라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하나님께 가신 것을 왜 기뻐하라고 말씀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모든 믿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성령님이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래 일도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요 16:13) 성령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십니다.(롬 8:16)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충만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롬 15:13)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에게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시 37:4)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사람을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시기 때문입니다.(시 149:4)
예수님께서 왜 이 말씀을 하셨습니까? 제자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본문 29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복음을 전할 때 성령님께서 나타내십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합니다.(고전 2:4-5) 성령님께서 내 안에 계시면 내 몸이 성령의 전이라고 아는 것입니다. 내 몸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고전 6:19-20) 이제 성령으로 충만하고, 평안을 얻기 원합니다. 성령님께서 나타나심으로 각 사람을 유익하게 하여 하나님의 구원으로 영광을 돌리시기를 축복합니다.(고전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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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비전교회91 원문보기 글쓴이: bsy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