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운데 왼쪽 봉긋한 봉우리가 호음산, 그 앞은 덕유주릉의 지능선
이 덕유산의 맑고 높은 기운과 웅장한 경치는 지리산에 버금가지요. 세상에 산을 유람하는
자들은 반드시 두류산과 가야산만을 일컫지만, 이 덕유산을 따라가지는 못하오. 다만 그 산
들에는 선현들이 남긴 풍모와 옛 자취가 있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우러러보게 함이 있어서 그
런 것이라오. 이 산은 아직까지 그런 것은 없지만, 처음부터 이 산이 그리 볼만한 것이 없지
는 않았소. 소위 ‘물건이 제 스스로 귀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따라 귀해진다’라는 것이
바로 이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라오.
그러나 이런 기회를 만나고 만나지 못하는 것이 산과 무슨 관계가 있겠소. 만일 산의 경치
를 보고서 마음에 얻는 것이 있다면 어찌 반드시 옛사람이 남긴 자취가 있고 없음에 기대겠
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옛사람의 자취만을 따르려고 하다가 정작 산의 경관을 놓쳐버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오.
(是山之淸高雄勝。亞於智異。而世之治芒屩竹杖者。必稱頭流,伽倻。而不及於是山。彼有
先賢之遺風舊迹。使人景慕者然也。而是山未有遇焉。初非是山之不足觀也。所謂物不自貴。
因人而貴者是也。然遇不遇。何關於山乎。苟有觀山之勝。而有得於心焉。則豈必賴人之遺迹
乎。世之徒循人迹而遺山之勝者失矣。)
―― 갈천 임훈(葛川 林薰),「등덕유산향적봉기(登德裕山香積峰記)」에서(유몽인 외 지음,
전송열 외 옮김, 『조선 선비의 산수기행』에서)
▶ 산행일시 : 2017년 5월 13일(토), 맑음, 황사
▶ 산행인원 : 30명(모닥불, 악수, 대간거사, 캐이, 산정무한, 사계, 상고대, 선바위, 진성호,
바람부리, 열정, 두루, 맑은, 향상, 신가이버, 해마, 오모육모, 불문, 대포, 무불, 자유/버들, 영
희언니, 스틸영, 화은, 수담, 메아리, 구당, 승연, 가은)
▶ 산행거리 : GPS 도상거리 35.9km
▶ 산행시간 : 16시간 34분
▶ 교 통 편 : 대형버스 대절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22 : 04 - 동서울터미널 출발
01 : 04 - 육십령, 산행시작
01 : 56 - 할미봉(△1,026.3m)
02 : 55 - 헬기장(1,079m 고지)
03 : 21 - 대슬랩 내리막
03 : 57 - 남덕유산 서봉(1,496.5m)
04 : 34 - 남덕유산 동봉 정상(1,507.4m) 100m 전
05 : 06 - 월성치(月城峙)
05 : 34 - 삿갓봉 정상(1,418.6m) 100m 전
06 : 20 - 삿갓재 대피소
07 : 22 - 무룡산(舞龍山, △1,492.1m)
07 : 58 - 1,430m봉(가림봉)
08 : 33 - 동엽령(冬葉嶺)
09 : 29 - 백암봉(1,503m)
09 : 54 - 중봉(1,593.7m)
10 : 18 - 덕유산 향적봉(香積峰, △1,614.2m)
10 : 30 ~ 11 : 06 - 설천봉(雪川峰), 휴게소, 점심
11 : 55 - △1,216.6m봉
12 : 39 - 검령(劍嶺)
13 : 10 - 두문산(斗文山, △1,052.8m)
14 : 00 - 830m봉, Y자 능선 분기, 오른쪽이 단지봉, 적상산 가는 길
14 : 57 - 단지봉(△769.4m)
15 : 35 - 치목치(致木峙)
17 : 05 - 1,001.0m봉
17 : 15 - 적상산 안렴대(赤裳山 安廉臺, 1,029m)
17 : 29 - 안국사(安國寺), 일주문
17 : 38 - 안국사 주차장, 산행종료
18 : 14 ~ 20 : 00 - 무주, 목욕, 저녁
22 : 36 - 동서울터미널, 해산
1. 설천봉 상제루 휴게소 앞에서, 뒷줄 왼쪽부터 악수, 상고대, 구당, 대간거사, 버들, 모닥불,
메아리, 오모육모, 캐이, 대포, 산정무한, 두루, 사계, 가은, 앞줄 왼쪽부터 해마, 스틸영,
수담, 화은, 승연, 무불, 향상, 맑은, 신가이버(영희언니 찍음)
2. 덕유주릉 동쪽 지능선, 무룡산 가는 길에
3. 중봉(제2덕유산) 가는 길
▶ 남덕유산 서봉(1,496.5m)
지난날 화대, 쌍실, 구봉팔문에 이어 오늘은 육적종주다. 오지산행에서 이벤트 산행으로 일
년에 한번 꼴로 추진하는 무박 장거리 산행이다. 이런 경우 나로서는 무척 곤혹스럽다. 산행
공지 이후 수일간은 가위에 눌린 듯 심신이 피곤하다.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일행들에게
짐이나 되지 않을까? 그 긴 산행시간을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걸을까? 등등.
물론 누구나 다 완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체력에 맞게 적당한 거리를 가면 된다.
산행 중간에 탈출로는 얼마든지 보장된다. 그렇지만 나 역시 산에 들면 더 가고 싶은 감당하
기 어려운 욕심에 안달하기 마련이다. “나두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
냐/ 나 두 야 가련다” 박용철 시인의 「떠나가는 배」를 되뇐다. 가자!
덕유산의 아침은 어떻게 오는가? 비록 짧은 시간이겠지만 이른 아침 동틀 무렵에 덕유주릉
을 걷는 것. 거기서 첩첩한 산그리메를 바라보는 것. 송수권 시인이 “누이야/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라고 한 첩첩한 산의 윤곽선이 그리워 몇 날을
두고 생각만 해도 설레고 가슴이 벅찬 풍경이다.
육십령까지 논스톱으로 갈 것이니 미리 용변을 보시라는 대간거사 님의 차내 안내방송에 또
요의를 느낀다. 통상의 무박산행 때보다 출발시각이 2시간 30분이나 이른 22시로 초저녁이
라 자리 보전하여 아무리 잠을 청해도 잘 오지 않는다. 뒤척이다 깜박 잠이 들었을까 싶었는
데 차내 불이 켜지고 육십령이라고 한다.
열여드레 이지러진 달이지만 밝다. 예전에 지나던 박주가리 밭인가. 산모퉁이 오른쪽으로 돌
아 사면 오르고 백두대간 능선 길에 든다. 조바심내지 말자. 서두르지 말자. 아무쪼록 내 걸
음으로 가자고 다독이며 대 행렬의 뒤를 따른다. 새벽바람이 제법 차다. 잰걸음 한다. 두루
님이 무불 님에게 건네는 말이 나에게도 꽂힌다. 덕유산 서봉까지 7km, 쉬지 말고 그냥 뽑으
시라.
어느 정도 예열이 되었을까. 선두그룹이 겉옷을 벗느라 쉬고 있다. 나는 길 저축하고자 곧장
간다. 물론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이 나를 앞질러 갈 것이다. 혼자 가는 산행이 되고 만다. 달은
나뭇가지 사이를 바쁘게 지나며 등로를 으스름하게 비춘다. 멀리서 소쩍새가 ‘솥 적다 솥 적
다’ 하고 우는 소리가 들린다. 호랑지빠귀는 ‘휘이~익’ 박자 맞춘다. 한밤중 ‘전설의 고향’ 산
길을 간다.
외길일 터이지만 봉우리 꼭대기에 공터나 헬기장이 나오면 바짝 긴장한다. 내리막길이 헷갈
린다.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예의 살펴보고 내린다. 밧줄 달린 바위 슬랩이 연속해서 나오
고 엉금엉금 기어올라 할미봉 정상이다. 큼지막한 정상 표지석 앞에 있는 삼각점은 ‘함양 30
4, 2002 복구’다. 빼어난 경점이다. 사방 둘러 검은 산의 실루엣을 본다. 남덕유산 정상은 안
개가 감싸고 있다. 서상의 불빛은 성단이다.
할미봉 내리막 암릉은 데크계단으로 덮었다. 그리고 사다리와 밧줄 잡고 내린다. 재미없다.
잠시 평탄하게 지나다 한 차례 더 슬랩을 오르고 데크계단을 내리면 할미봉을 완전히 벗어나
게 된다. 나는 가쁜 숨을 내쉬기도 버거운데 힘 좋은 일행(주로 대간거사 님과 상고대 님)들
의 아무렇지도 않은 수런거리는 말소리로 미루어 서로 떨어진 거리를 가늠한다.
헬기장이 나온다. GPS 고도는 1,079m다. 대포 님과 캐이 님을 만난다. 반갑다. 진땀이 날 정
도로 허기진 참이라 휴식하며 빵으로 요기한다. 대포 님이 힘내시라며 포도당이라는 하얀 알
약을 준다. 아까도 나를 앞질러 가며 당분을 섭취하시라며 길쭉한 젤리를 주었다. 이러니 대
포 님이야말로 오지산행의 보배라고 아니할 수 있겠느냐 말이다. 악우애에 힘 받는다.
이정표 ‘서봉 2.5km’를 지나고부터 줄곧 오르막이다. 언제 만날까 맘 졸이며 기다렸던 암릉
이다. 왼쪽 사면의 가파른 대슬랩으로 밧줄잡고 내린다. 서봉 0.5km. 내쳐간다. 마의 구간이
다. 바위 슬랩을 매만지며 오른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바람에 모자가 벗겨져 날아가고, 모
자를 찾으려고 어렵게 오른 슬랩을 내렸다가 다시 오른다.
이윽고 남덕유산 서봉 정상이다. 헬기장에 선두그룹이 쉬고 있다. 오지산행의 대표 철각인
(안나푸르나 등정을 마치고 얼마 전에 귀국했다) 신가이버 님을 비롯한 여러 일행이 전례 없
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연유를 물으니 특히 종주산행은 무게와의 싸움이라 접이식 간이
의자조차 가져오지 않았단다. 무서운 사람들.
나는 탁주를 짐이라 여겨 가져오지 않았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얼음물로 정상주를 대
신한다.
4. 황점, 오른쪽은 금원산
5. 덕유주릉 삿갓봉
6. 가운데 멀리는 월봉산, 그 왼쪽 안부는 수망령
7. 남덕유산 동봉과 서봉(오른쪽)
8. 멀리 가운데는 월봉산
9. 삿갓봉 북서쪽 지능선
10. 삿갓봉 북서쪽 지능선, 멀리 가운데는 시루봉
▶ 무룡산(舞龍山, △1,492.1m)
서봉 내리는 길. 여태 저축했던 길을 다 까먹었다. 맨 후미로 내린다. 내 뒤로 산정무한 님이
남아 있다고 하지만 별 뒷배가 되지 못한다. 산정무한 님은 처음부터 완주할 욕심을 버리고
설천봉에서 곤돌라를 타고 하산해버릴 요량으로 느긋하게 오고 있는 중이다. 설천봉에서 대
간거사 님의 권유로 완주대열에 동참했으나 그건 나중의 일이다.
긴 데크계단을 내리고 모닥불 님과 함께 간다. 시간이 빠듯하다며 일행 모두가 동봉을 오르
지 말자고 미리 담합했다. 동봉 정상 0.3km 전 ┫자 갈림길에서 왼쪽 우회로로 돌아 넘자고
했다. 1,384.4m봉 넘고 안부를 지나고는 두 눈 부릅뜨고 우회로를 살피며 간다. 오르막이 이
어지고 저만치 올랐다가 사면을 돌았던가 고개 갸웃하며 간다.
모닥불 님이 GPS를 들여다본다. 이런, 동봉 정상 근처다. ┳자 갈림길이 나온다. 이정표에
동봉 0.1km다. 그렇지 않아도 후미인데 예정에 없던 동봉까지 와버렸다. 심적 데미지가 크
다. 선두에 엄청 뒤쳐졌을 게다. 급하다. 이때는 줄달음한다. 0.2km를 겁나게 떨어진다. 여러
일행을 만나고 그들도 동봉을 잘못 올랐다니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오랜만에 캐이 님과 함께 하는 산행이다. 오지산행 카페 육적종주 공지에 “멋찐 산행계획이
구먼유~ㅎㅎ”라고 댓글을 달았다가 대간거사 님에게 낚였다고 한다. 캐이 님과는 사연이 오
래고 또한 깊다. 오지산행의 전신인 ‘오케이 사다리’에 입회한 건 캐이 님과 석룡산, 도마치
봉, 국망봉을 연결하는 첫 산행을 하고 나서다. 내 산행 이력이 방향을 틀게 된(다른 말로는
‘인생 조졌다’고 한다) 계기였다.
그때 캐이 님은 자타가 인정하는 그랜저였다. 서로의 근황, 별스런 산꾼들의 동향 등에 대해
얘기 나누며 가다보니 어느새 월성치를 지나고 삿갓봉 근처다. 삿갓봉 넘기 전 경점인 암봉
에 오르자 해는 벌써 반공에 솟았다. 아쉽게도 덕유산의 아침을 놓쳤다. 삿갓봉을 우회한다.
등로 따라 왼쪽 사면을 돌아 삿갓봉 정상 0.1km를 남겨 둔 갈림길에서 미련 없이 삿갓재를
향한다.
삿갓재. 여럿이 아침밥 먹는다. 이상한 오지산행이 되고 말았다. 각자 식사를 마치는 대로 먼
저 출발한다. 마치 남인 듯이. 하기는 살 사람만 살아야 한다. 캐이 님과 나만 남았다. 설천봉
데드라인이 11시다. 10km가 넘는 거리다. 데드라인 안에 댈 수 있을까? 무룡산, 백암봉, 중
봉, 향적봉을 넘어야 한다. 캐이 님은 산 하나에 1시간씩 잡고, 넉넉하다고 한다. 그랬다!
무박산행의 이유 중 하나인 매직 아우어는 무척 짧다. 햇빛이 익기 전에 첩첩 산그리메가 명
료하게 보이는 환상의 시간이 그렇다. 10분 정도에 불과하다. 무룡산 가는 길 잠깐이 매직 아
우어다. 황사의 출몰이 여기라고 예외가 아니다. 지난겨울에는 한낮에도 지리주릉이 분명하
게 보였는데 오늘은 캄캄 가렸다. 금방 조망이 흐지부지해진다. 어쩌면 다행한 일이다. 장관
이고 대관이어서 카메라 파인더만 들여다본다면 언제 산을 가겠는가!
봄의 빛깔이 곱디곱다. 봄의 절정이다. 진달래가 피기 시작한다. 약간 오글오글한 게 필까말
까 생각하는 듯한 진달래다. 고산의 찬바람을 견디느라 진분홍이 되었나 보다. 한계령 님이
몇 번이나 내게 말했던 보고 싶어 한다는 그 진달래다. 사뭇 느긋이 올라 무룡산이다. 용이
춤추는 산이다. 전후좌우 전망이 훤히 트인다. 삼각점은 2등 삼각점이다. 무주 27, 1987 재설.
11. 금원산
12. 금원산
13. 덕유주릉 무룡산
14. 덕유주릉 동쪽 지능선
15. 덕유주릉 동쪽 지능선
16. 덕유주릉 동쪽 지능선
17. 덕유주릉 동쪽 지능선, 매직 아우어는 짧았다
18. 덕유주릉 동쪽 지능선, 무룡산 가는 길에
19. 덕유주릉 동쪽 지능선, 무룡산 가는 길에
20. 덕유주릉 동쪽 지능선, 무룡산 가는 길에
▶ 덕유산 향적봉(香積峰, △1,614.2m)
이제 백암봉이다. 멀다. 무룡산에서 1시간을 잡은 건 무리다. 그 중간인 동엽령까지만 해도
1시간이 넘게 걸린다. 길은 좋다. 바람이 선선하게 분다. 오늘보다 산행하기 더 좋은 날씨는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 덕유주릉. 발걸음으로 남덕유를 줌 아웃하고 백암봉, 중봉을 줌
인한다. 덕유주릉의 엑스트라 시루봉, 가새봉 그 연릉도 장려하다.
나지막한 봉우리를 몇 번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바닥 친 안부가 동엽령이다. 원래는 동업령
(同業嶺)이었다. 높고 멀어서 혼자는 못 가고 여럿이 모여야만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한다(한
국지명유래집). 장의자 놓인 쉼터에서 북상의 뭇 산들을 바라보며 오래 휴식한다. 동엽령을
지나면 향적봉까지 계속 오르막이다. 백암봉 가시거리에서부터 가파른 돌길이 시작된다.
여느 때는 걷기 팍팍한, 긴 오르막 돌길이었다. 바람이 큰 부조한다. 더운 땀을 바로 식혀 주
거니와 어서 가시라 등 떠밀어 준다. 숨 가쁘면 뒤돌아 무룡을 감상한다. 백암봉. ┣자 능선
이 분기한다. 오른쪽이 빼재로 가는 백두대간 길이다. 쉬지 않고 간다. 묵언의 수도자가 된
다. 중봉이 눈으로는 가깝지만 발로는 멀다. 왼쪽으로 가새봉을 가는 ┫자 분기봉을 지나고
약간 내렸다가 긴 돌계단 돌길을 오른다.
황사는 더욱 심해진다. 남덕유산, 삿갓봉, 무룡산이 벌써 흐릿하다. 여기에서도 바람 덕을 크
게 본다. 너무 떠밀어 엎어질 지경이다. 내 등에 돛을 달았다면 훨훨 날아오를 수 있을 것만
같다. 이곳은 등로 주변의 무리지은 진달래꽃으로 보아서만 시절이 봄인 줄 안다. 중봉. ┣자
갈림길 오른쪽은 오수자굴, 백련사를 오가는 길이다.
향적봉이 눈에 잡힌다. 발로도 가까운 거리다. 덕유평전 진달래, 주목을 동무하며 간다. 많은
등산객들과 마주친다. 향적봉 대피소 지나 한 피치 계단 길 우측통행으로 오르면 향적봉이
다. “덕유산정 동쪽으로는 그 중첩한 산릉들의 교태가 이 땅의 그 어느 산보다 더하다. 뭉긋
뭉긋 뒷산 능선이 앞산 위로 머리를 솟구치거나 길고 길게 여러 산릉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펼쳐진 풍경만으로도 장관이건만 …”(월간 산, 창립 32주년 기념 별책부록, 『전국 산악 국
립공원 16곳 가이드』에서)
“이때 구름과 안개가 높이 걷혀 하늘 끝이 탁 트이고 땅의 중심이 드러났다. 사방의 산들이
다 숨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유독 지리산의 천왕봉만이 구름 속에 그 몸을 반쯤 숨기고 있으
니, 지리산이 뭇 산보다 더 높이 솟아나 있음을 알 수 있겠다.(于時雲霧高搴。乾端軒豁。地
軸呈露。四方之山。皆不能蔽虧。而獨智異之天王峯。半隱於雲中。可知智異之高出於群山
也。)”(갈천 임훈(葛川 林薰),「등덕유산향적봉기(登德裕山香積峰記)」에서
그런 향적봉인데 오늘은 유아독존이다. 황사로 사방이 희미하다. 새삼 삼각점이나 확인한다.
1등 삼각점이다. 무주 11, 1988 재설. 설천봉 가는 길. 캐이 님이 칭다오 맥주를 들고 가는
어느 상춘객을 입맛 다시며 보았다. 잊고 있었던 갈증이 갑자기 밀려오더라나. 덩달아 나도
그 한 모금의 시원한 맛이 간절해진다.
21. 앞 왼쪽은 무룡산
22. 1,430m봉(가림봉) 동쪽 능선
23. 앞 왼쪽은 무룡산
24. 멀리가 향적봉과 중봉(오른쪽)
25. 왼쪽 멀리는 적상산, 앞 오른쪽 가새봉(1,370m)
26. 덕유주릉, 멀리는 향적봉과 중봉(오른쪽)
27. 중봉 가는 길 사면의 진달래
28. 백암봉 서쪽 능선과 가새봉
29. 멀리 가운데는 무룡산
30. 덕유주릉 향적봉 가는 길
31. 멀리 남덕유산이 흐릿하다
32. 멀리 가운데는 무룡산
▶ 적상산 안렴대(赤裳山 安廉臺, 1,029m)
설천봉 상제루 아래 휴게소 음식점에 일행들이 모두 모였다(진성호, 바람부리, 열정 님은 앞
서 적상산 쪽으로 살살 가고 있는 중이다). 메아리 대장님을 비롯한 안성에서 망봉, 가새봉을
넘어온 일행도 먼저 와 있다. 캐이 님과 나는 데드라인 11시를 30분이나 남겨둔 10시 30분
도착이다. 음식점은 한산하다. 외부음식은 반입불가라는데 체면 불구하고 도시락 꺼내고 식
수까지 보충한다.
상제루 앞마당에 늘어서 기념사진 찍고 휴게소 건물 뒤로 돌아 철책을 넘는다. 일행 모두 함
께 가는 산행이다. 급전직하 내리막이다. 등로가 여간 사납지 않다. 산죽 숲과 잡목, 너덜이
한데 어울렸다. 인적이 뜸하다. 낙엽 밑 축축한 바위에 몇 번이나 미끄러진다. 내 날랜 덕분
에 기화이초 자세히 들여다보는 척하고 일어난다. 지난해 겨울 눈길보다 더 험악하다.
내리막은 스키장 곤돌라 종점인 △1,216.6m봉에서 잠시 멈칫한다. 잔디밭 시설 그늘에서 휴
식을 취한 후 다시 쏟아지다시피 내린다. 검령 부근은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볼만한데 넙데
데하여 마루금 잡기가 어렵다. 서쪽 방향 확인하고 그저 나아간다. 그러다 오르막이 이어지
면 검령이다. 호젓한 하늘 가린 숲길이다. 오른쪽 사면은 울창한 잣나무 숲이다. 그 너머는
무주컨트리클럽 골프장이다.
기력이 점점 빠지니 봉봉이 준봉이고 봉봉이 첨봉이다. 사실 육적종주의 맛깔 나는 구간은
설천봉에서 적상산 가는 구간이다. 두문산만 해도 지도상으로는 냅다 한달음에 오를 것 같았
는데 세 차례의 오르막을 극복해야 하니 혀 쑥 빼물고 겔겔 댈 수밖에. 두문산 정상은 억새
듬성듬성한 너른 헬기장이다. 삼각점은 ‘무주 307’이다.
두문산 넘어 891.7m봉 오르는 길은 한술 더 뜬다. 촘촘한 등고선이 11줄(축척 1/25,000)인
고도 110m의 곧추선 오르막이다. 금방 얼굴을 화끈하게 달구는 지열을 오지게 쐬며 오른다.
이 다음 830m봉은 Y자 능선이 분기한다. 자칫하면 면계(적상면과 안성면) 따라 왼쪽 노전
봉 쪽으로 빠지기 쉽다. 메아리 대장님이 교통정리 한다. 오른쪽이 단지봉, 적상산 가는 길이다.
천하의 캐이 님이 컨디션 난조다. 일부 다른 일행들과 치목치에서 하산할 것이니 앞서 가라
고 한다. 내 발걸음이 힘들어진다. 불현듯 캐이 님이 저럴진대 나도 그만 둘까 하는 생각이
불쑥 치민다. 작년 6월 설악산 세존봉을 오를 때 그랬다. 앞서 오르던 캐이 님이 세존봉 중턱
에서 더 못 오르겠다며 뒤돌아서고 그 바람에 나도 겁에 질려 뒤따라 내렸었다.
치목치까지 아직 멀었으니 가면서 더 좀 생각해보자 하고 간다. 첨봉인 843.1m봉을 벌목한
가파른 사면으로 질러 넘는다. 흐릿하던 적상산이 또렷하게 보인다. 단지봉은 적상산의 관문
이다. 단지봉으로 알았던 공제선을 여러 차례 뒤로 무르고 733.6m봉 넘어 긴 오르막이다. 단
지봉 우회길이 보인다. 정상 몇 미터를 남겨두고 오를까 말까 갈등이 인다. 그때 우회길 그
끄트머리에서 선두그룹 일행들의 담소가 들린다.
에라, 우회 길로 간다. 단지봉은 예전에 두 번이나 올랐다는 것을 핑계하고서다. 단지봉 내리
는 길. 바닥 친 안부가 치목치려니 드디어 적상산을 오르게 되겠지 하고 잔뜩 기대했다. 그러
나 아직도 멀었다. 준봉 4좌를 넘어야 한다. 정작 적상산 관문은 치목터널 위 580m봉이다.
치목치는 의외로 야트막한 안부다. 비로소 적상산 품에 든다. 603.1m봉 넘는 것은 몸 풀기다.
오늘 산행의 피날레이자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어금니 앙다물고 스퍼트 낸다. 가파른 슬랩
과 맞닥뜨린다. 앞사람이 내는 발자국 계단을 따라 오른다. 수북한 갈잎 낙엽이 되게 미끄럽
다. 낙엽 쓸어 발판 만들어 가며 기어오른다. 여기서도 바람은 내 편이다. 암릉이 나오고 조
망이 트일까 잡목 헤치며 일로 직등한다. 그러나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 뿌릴 듯이 우중충하
고 원경이 흐릿하다.
스틱에 기대어 가쁜 숨 몰아쉬기 몇 번이던가. 저려오는 허벅지를 연신 주물러가며 오른다.
적상산성. 마침내 나도 해냈다! 이후의 걸음은 육적종주를 자축하는 퍼레이드의 길이다. 완
만한 성곽 길을 간다. 오른쪽으로 안국사 가는 ┣자 갈림길을 지나고 0.3km 오르면 안렴대
다. 적성산 정상은 안렴대와 비슷한 고도로 북쪽으로 0.3km 더 간 깃대봉(기봉)이지만 거긴
아무 볼 것이 없다.
안렴대는 절벽 위 경점인 암반이다. 날이 흐려 조망은 무망이다. 바람은 강풍으로 발전했다.
어서 내려가시라 성질내어 막 밀어낸다. 안국사 일주문 지나고 주차장 가는 길. 산굽이 돌고
돈다. 비 뿌린다. 얼굴 들어맞는다. 시원하다. 좀 더 세차게 내렸으면 좋겠다.
33. 앞은 가새봉, 설천봉에서
34. 적상산
35. 적상산
36. 검령을 지나며
37. 적상산이 가깝다
38. 앞은 단지봉, 그 뒤는 두문산, 그 왼쪽 뒤는 향적봉
39. 앞은 단지봉 멀리 왼쪽 흐릿한 산은 향적봉
40. 봉화산(884.5m)
41. 구리골산(?)
42. 적상산 안렴대의 철쭉
43. 안국사 일주문 뒤쪽 편액, 여산 권갑석(如山 權甲石, 1924~2008) 선생의 글씨다
첫댓글 고생하셨습니다...장거리 아직 하시는거 보믄 앞으로도 2030년은 쓸만한() 마지막까지 함께 못해 아쉬웠슴다
적상산이 설천봉 음식점 우동으로는 무리였나 봅니다.ㅎㅎ
늘 그렇듯이 이른아침에 담은 주능에서의 사진들은 동양화를 보는듯하고 (진달래 색채가 번진 것이 그 맛을 더하고), 양념이 듬뿍 담긴 해설은 종주때 정신 없었던 기억을 새록새록하게 합니다.
오후 산행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 지친 마음을 날려버렸던 듯 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쭈욱 빼자고 선동한 사람이 두루였다는 말씀이죠. ㅋㅋ. 두루 쎈데. 서정이 넘치는 산행기 잘 봤습니다. 굿이에요.
육십령에서 떠나는 전사들 뒤에서 편안히 한숨 자는 꿀맛~~^^
용추폭포에서의 오름짓은 오지의 참맛이었지만요
동엽령에서 주능선에 합류.. 일진과 이진 사이에서 여유있게 진행하는 산행에 또다시 쾌재가 나왔어요(왜~?~ -_-;; ~~! 뭣땜시~^^)
설천봉에서 여유로운 식사와 휴식~
그리고 또 중간 곤돌라 내리는 쉼터에서 장시간 휴식
야유회 온 느낌이었어요^^
적상산 안국사가 아닌 향적봉까지 가야하는 거 아닌가요~~~ㅋㅋ
고생많으셨습니다..그 긴 산행을 하는 중에도 찍을건 다 찍으셨네요,,,새벽녁의 해뜨는 것을 못본것은 다음에 다시한번 덕유를 들르라는 거시기님의 뜻이 아닐까요
멋진산행기!
악수님의 큰힘을 다시 보고 느끼며 ..오지의 거장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고통의 산길 여행을 다녀와
후일에 접하는 악수 형님 산행기는
즐거움으로 접합니다...
길게 가는 산길이 힘들긴해도
다녀오면 뿌듯한 무엇이 있어 좋습니다...
다들 무탈하고 즐겁게 육적대장정을 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