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문 / 김안
아이와 함께 물장구치다가
물속에서 고장난 나팔을 불다가
나조차 처음 보는 꽃을 그리고 오려
머리 마주한 책상 위에 놓고선 푸푸 날리다가
지구 반대편의 계절에 대해 꿈꾸듯 이야기하다가
새가 지나간 구름의 맛을 상상하다가
밤이 가시처럼 깔려 차오르면
난 아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선
배 위에서 뛰는 심장
배 위에서 푸르러지는 폐를
배 위에서 자라나는 머리칼을 생각하며
이 억세기만 한 숨을 참습니다.
붉은 꽃잎 하나 새의 머리를 부수며 떨어지는
야속한 평화의 밤,
나는 그저 최대한 부드럽게
산 적이 없었던 듯 천천히 숨쉴 뿐.
숨쉴 뿐, 아주 천천히 생활할 뿐 그런데
생활이라는 게 용서가 없어서 말이죠.
몸으로 마음으로 무릎으로
걷고 걸어야지 발바닥이 말라붙을 텐데
잠시만 멈춰 서도 이내 신발에서 누런 물이 새어나오죠.
방바닥은 늘 끈적여요. 언젠가
와본 적 있는 지옥인 것 같기도 하고,
내 배 위에 잠든 아이의 눈썹을 매만지면,
난 다시금 숨쉬는 물속이라서,
문학이란 무얼까요? 삶이란?
실은 이런 고민들 이제 멈춘 지 오래인 듯하고
어머니 얼굴에 흐르는 거친 물결들이 생각나고
이 야속한 평화와 당신과
나무와 물과 불과 내가 내뱉었던 그 말들이
모두 뒤섞인 반죽 덩어리가 되어 출렁,
아직은 밤하늘에 떠 있는 것만 같아서
새는 아직 살아 있어 물뭍으로 내려와
걷고 물장구치는 것만 같아서
-《문학동네》2019 겨울호, 김안
김안_
2004년 『현대시』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김구용시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수상. 시집『오빠생각』『미제레레』『아무는 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