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흑석사는 순례 끝 무렵에 다녀온 곳이라 이름만 들어도 도량의 몇 장면이 떠오릅니다.
54차 순례는 오전도 오후도 참 유쾌했던 날이었네요.
특히나 오가는 버스 속에서 이벤트가 많았던 순례였어요.
흑석사는 2018년 6월에 다녀온 곳입니다.
----------------------------------------------------------------------------
흑석사 부처님은 까~매/제54차 인드라망 사찰순례기②
치악산 구룡사에서 영주 흑석사로 내려오는 동안 순례차 속에선 보기드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게임에 이어 흥겨운 노래 한마당이 벌어졌지요.
각자의 취향에 따라 애절한 트로트도 흐르고,
아이돌 수준의 노래도 섞였습니다.
웃고 즐기는 가운데 3시25분께에 흑석사 널찍한 주차장에 도착했지요.
흑석사는 따로 홈페이지가 없어 인용할 자료가 적었습니다.
다음 백과에서 설명글을 옮겨 봅니다.
흑석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신라 때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조선 전기까지의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재난을 당한 뒤 사세가 급격히 기울어 겨우 명맥만 이어 왔다. 그러나 1799년(정조 2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지금은 폐사되었다’고 나와 있다. 1945년 8.15 뒤 초암상호(草庵 祥鎬)가 중건하였고, 1950년 6.25를 피하여 정암산 법천사(法泉寺)의 아미타여래좌상을 이 절로 옮겨와 봉안하였다.
건물로는 법당과 약사전, 설선당, 종각, 환희전 등이 있다. 유물로는 목조아미타불좌상 및 복장 유물, 보물 제681호인 흑석사석조여래좌상이 있다. 목조아미타불좌상은 효령대군이 권선하여 세조 등 왕실에서 법천사에 봉안하였던 것으로 1458년(세조 4)에 조성되었으며, 조선 전기의 대표적 목조 불상이다. 이 불상의 복장에서 나온 유물로는 금동사리합과 사리 등이 있다. 한편, 석조여래좌상은 9세기 통일신라 때의 것이나 불상과 광배, 대좌가 분리된 채 서로 떨어져 놓여 있다.
-다음 백과에서 옮김
국보와 보물이 있다는 정보를 챙겨, 어느 전각에 계실까, 하고 살펴봅니다.
다행히 일주문 근처에서 만난 주지스님께서, 저기 노란 벽의 전각으로 먼저 가라 하십니다.
예고도 없이 일요일 오후 4시에 단체 순례객이 방문하자
스님께선 출타 시간을 잠시 미루고, 우릴 반가이 맞아 주셨습니다.
흑석사의 현재 주 전각은 커다란 신축 전각이 아니라, 위 사진 중 왼편에 자리한 극락전입니다.
-흑석사 극락전 앞모습
참배를 드리고 있자니 곧이어 스님께서 오셔서
짧게나마 예불 집전을 해 주신 덕분에
목탁 소리에 맞춰 함께 절을 하고, 잠시 석가모니불 정근까지 마쳤습니다.
-사진:범심님
-사진:범심님
-사진:범심님
그리곤 흑석사에 대해 설명해 주셨지요.
이 곳 극락전에 모셔진 국보 제282호인 목조아미타불좌상과 복장유물에 대한 설명과 함께 중창조이신 상호 스님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셨습니다.
-사진:범심님
-국보 제282호 흑석사 목조아미타불좌상(불상의 복장유물도 함께 국보 제282호)
이와 관련한 흑석사 안내판의 설명글입니다.
흑석사 목조아미타불좌상과 복장유물은 스님 말씀으로도 확인됐지만
복장기가 나오면서 조성연대가 정확히 남아 있어
그 사료적 가치가 더욱 빛나는 국보.
복장 유물인 '아미타삼존복장기', '금니묘법연화경권이변상도' 등 경전과 사리, 칠약, 번 등 직물류, 오곡 등은 대구박물관에서 전시도 하고, 현재까지 보관 중이라고 해요.
-영주 흑석사 중창조이신 초암 상호 스님
폐허가 된 사찰을 다시 중건한 분은 위 사진 속 초암 상호 스님이십니다.
1945년에 중건하고, 6.25때 소각령에 따라 사라질 뻔한 정암산 법천사의 목불을 이 곳 흑석사로 옮겨와 다시 모셨답니다.
흑석사 주지 스님은 상호 스님을 효봉, 경봉 스님과 함께 공부하신 분으로 우리들에게 소개하셨지요.
흑석사 고불께선 목조라는데 제 눈엔 가무잡잡하니 아름다우십니다. ^^*
확대해서 한 번 감상해 보실까요?
나발과 육계가 참 독특하십니다.
세련미 넘치시고요.
-불교신문에서 옮김
-사진:범심님
함께 기념촬영까지 해 주신 주지 스님께선
돌아가는 차 속에서 먹으라며, 순례단에 떡을 한 통 주시곤 다른 용무로 우리와 헤어졌습니다.
그 떡 이름은 '업장소멸떡'이랍니다. ^^*
순례기에 필요해 중창주 스님의 법명을 여쭤야 하기에 바쁜 걸음을 잠시 또 붙잡았습니다.
상자 호자 스님이라고 알려주시곤, 정작 본인 법명은 안 가르쳐 주시네요. ^^*
스님, 여러 모로 감사했습니다. ()()()
-사진:범심님
이제 한 눈에도 범상치 않아 뵈는 마애불을 뵈러 갈 차례입니다.
부지런한 님들은 이미 내려오는 길이고요.
-흑석사 마애삼존불과 석조여래좌상
뒷 배경이 경북문화재자료 제355호인 흑석사 마애삼존불이고,
앞에 따로 모셔진 석불이 보물 제681호 영주 흑석사 석조여래좌상입니다.
채색의 흔적이 남아 있는 마애불은 입술이 살짝 붉고,
세 개의 반원이 이어진 삼산관을 쓰고 계신 모습이지요.
앞의 보물 석조좌상은 우리 눈에도 익숙한 형태로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께의 작품으로 나와 있네요.
-영주 흑석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81호)
-신장 위태천
도대체 무슨 상일까 하고, 궁금증을 유발했던 이 분은
비파를 든 천인도 아니고, 산신은 더욱 아닌
신장 중의 한 분인 '위태천'입니다.
순례기 쓰면서 폭풍검색 끝에 알아낸 이름입니다. '위 태 천' 신장님!
보물과 국보까지 갖춘 이 곳 흑석사는
의미로 보면 빛나는 보석사로군요.
진작에 절 이름의 유래가 나왔어야 하는데 왜 없을까요?
못 찾아서 입니다.
절 뒷산 어디에 까만 바윗돌이 있어서 흑석사라고 했다는 한 줄 글을 어느 블로그에서 봤습니다. ^^*
고불을 모신 집이 새 집에 가깝지만
처마가 나지막하고,
앞뜰에 고색창연한 돌탑이 있어 풍경이 한결 고즈넉하군요.
그 처마 끝은 또 얼마나 순한 꽃을 피웠냈는지요.
-사진:범심님
아기를 안고 계신 지장보살상이 뭉클합니다.
대원을 세우신 지장보살에게 우리 모두는 영원한 아기는 아닐까요?
그 위를 지키는 짐승 한 마리,
제 눈엔 정겹군요.
한 시간 남짓 머물렀던 곳을 돌아보며 내려 옵니다.
언제 또 와 볼 수 있을까 싶어, 눈도장 꼭꼭 찍어둡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전각은 아직 현판이 없는 새 전각입니다.
비교적 이름이 덜 알려진 사칠인데 겉보기의 규모가 많이 큽니다.
절터도 워낙 넓었지만, 그래서인지 새로이 지은 전각들의 크기가 우람합니다.
아담한 크기의 고불을 모신 흑석사가 좀 더 소박한 모습이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잠시 스쳐갔습니다.
가령 팔공산 운부암 같은 이미지였다면 훨씬 매혹적일거란 생각은 지극히 사사로운 감정이지요.
-영주 흑석사 일주문
흑석사는 뭔가 갖춰입긴 했는데 그닥 내 취향은 아닌 차림새,
그에 비해 그 속마음은 깊고 그윽해서 또 만나질 것 같은 그런 인연쯤으로 기억될 거 같습니다.
-사진;범심님
4시 30분께에 우린 귀가길에 오릅니다.
영주이니 강원도에서 출발한 거에 비하면 제법 내려온 셈이지요.
버스법당에선 못다한 흥을 또 이어갑니다.
마침 이 날이 진여화(삼천보살)님 생일이랍니다.
호박설기 하나를 들고 다함께 축하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하루 전날은 또 월명심님의 생일이었다고 해서
생일축하곡을 연달아 두 번 불렀습니다. ^^*
이렇게 해서 54차 인드라망 사찰순례도 원만히 회향됐음을 보고드립니다.
모두가 함께 참여하고 즐겨주신 순례였음에 더욱 감사드립니다.
그 중에도 준비와 진행과 마무리까지 완벽히 해 주신 마법사 순례팀장님과 풍경 총무님의 노고는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 많은 내용들 사진으로 일일이 기록해 주신 범심님께도 심심한 감사 드립니다.
다음 순례에서 또 뵙겠습니다. ()
^^ 저날 생일 축하노래 두번 부른건 기억합니다.
사랑해요~~
머리가. 아파. 하루 종일. 누워서. 뒹굴거리다가
혈압계 끄내보니. 약이. 앵꼬내요
혈압도. 못재보고
걍. 방치하면서. 저녁까지해결하고. 늦은 출석입니다
딩굴만큼이나
머리 불편이시면
정확한 진료 받어시길 바라고
대처 하시길 바랍니다
아이쿠, 어떡해요.
혈압약 잘 챙겨드시고 쉬시면 금새 나아지시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