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다라수 숲에 빛이 깃들고
중인도에서 마갈타국(Magadha)과 함께 가장 부강한 나라로 손꼽혔던 교살라국.
수보리가 태어나던 당시에는 바사닉왕(Prasenajit)이 다스리고 있었다.
어려서 북인도의 덕차시라국에 가서 수학할 만큼 학문의 깊이가 남다른 바사닉왕은 보위에 오른 뒤에는
백성을 사랑하고 문물을 잘 정비해 교살라국은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사위성은 교살라국의 수도로 교살라국의 그 어느 곳보다 문물이 발달하고 시가가 번창했으며,
그런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훌륭한 왕 아래에는 언제나 그만한 신하가 있기 마련이듯이 바사닉왕의 뒤에는 바사닉왕 만큼이나 백성들의 신망을 받는 이가 있었다.
수달다 장자가 바로 그였다.
크샤트리아인 바사닉왕은 브라만인 수달다 장자보다 아래 계급이었다.
인도에는 예로부터 사성제도(四姓制度)라는 신분제도가 있었다.
사제계급을 브라만이라 불렀고,
무사계급은 크샤트리아,
농민이나 상인 등은 바이샤,
마지막으로 노예계급인 수드라가 있었다.
인도인들은 신분이란 것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다고 믿고 있었다.
그 때문에 서로의 계급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길이 없다고 믿었으며,
계급을 뛰어 넘어 통혼(通婚)하는 일도 없었다.
브라만인 수달다 장자는 왕의 신하라기보다는 자문역을 맡아 했으며,
교살라국이 오늘날 태평성대를 이루는 데 큰 몫을 하였다.
또한 수달다 장자는 상당한 재력가이기도 하였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사위성의 절반이라는 둥,
고래등 같은 집에 금은보화가 곳간마다 가득하다는 둥 재산에 대한 갖가지 소문이 무성하였다.
그는 소문만큼이나 엄청난 부자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수달다 장자가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는 까닭은 바사닉왕의 자문역으로 나라를 잘 다스리는 데에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컸다.
그의 높은 인격 때문이었다.
그는 특히 자비심이 많아 가난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였다.
그가 대단한 부자가 틀림없을 거라는 근거도 바로여기에 있었다.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수달다 장자의 집 앞에 몰려들었지만 빈손으로 돌아서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부자긴 부잔가봐. 그렇지 않고서야 저많은 사람들의 배를 채워줄 수 있겠어?"
"대단한 분이셔. 조금도 아까워 하지 않는 눈치이니...."
"저렇게 공덕이 많으시니 장자께서는 분명 극락엘 가실거야."
사람들은 존경하는 마음,
감사하는 눈으로 수달다 장자를 찬양하였다.
이런 수달다 장자에게 또 하나의 기쁨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아들 수보리였다.
자식 하나 점지해 주십사 기도를 해서 얻은 아들 수보리는 태어날 때부터 신비스럽고 기이한 형상을 보이더니 자랄수록 수달다 장자를 기쁘게 하였다.
수보리는 말을 하기 시작한 서너 살 때부터 책을 찾았다.
열대여섯 살이 되어야 스승을 모시고 공부하게 되는 브라만교의 경전을,
그 의미를 알기나 하듯이 책장을 넘겨가며 유심히 바라보곤 하였다.
그런 아들이 대견해 수달다 장자는 재미삼아 천천히 읽어주었는데,
놀랍게도 수보리는 토씨 하나 빼지 않고 그대로 따라 읽었다.
그뒤부터 수달다 장자는 어린 수보리에게 스승을 구해주었다.
<베다> <브라흐마나> <우파니샤드> 등의 브라만 경전을 두루 섭렵한 사위성 제일의 스승을 초청하였다.
수보리는 며칠만에 브라만의 계조(戒條)를 술술 외워댔다.
그리고 한 해만에 글씨, 그림, 산수, 4베다론, 수기법, 웅변술, 무기 쓰는 법, 대주술법, 천타론, 가지가지 문장, 5행의 성수(星宿), 음양의 도수 등 브라만교의 교리와 철학을 두루 꿰었다.
"이런 아이는 생전 처음입니다.
저로서는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사옵니다."
사위성에서 제일 간다는 그 스승은 혀를 내두르며 수보리의 집을 떠났다.
수달다 장자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수달다 장자는 사위성뿐 아니라 교살라국 전체에서 각 학문의 최고 권위자를 찾았다.
수보리 역시 천문, 지리, 길흉, 지진, 음악, 가무 등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배웠다.
마지막으로 가무를 가르치는 선생이 떠나자 수보리가 말하였다.
"그동안 여러 스승으로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학문이란 학문은 모두 다 배웠습니다.
이제 스승님도 전부 떠났습니다. 전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습니다."
수달다 장자도 할 말이 없었다.
수보리의 대답이 다소 교만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또한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버님, 이 세상의 모든 학문을 다 배워 알았는데도 왜 저의 마음은 이렇게 허전한지요?"
"수보리야, 네가 배워 안 것이 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란다. 이 세상에는 학문이란 이름을 갖지 않은 진리도 많단다. 그런 것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깨우치게 되는 것들이란다."
수달다 장자는 어린 가슴에 허전함을 느끼는 수보리가 안타까웠다.
"제가 드린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인생, 진리 그런 것 또한 덧없을 뿐입니다. 전 학문이란 이름의 것은 모조리 다 배워 알았습니다. 하늘 아래 저만큼 지혜로운 자가 또 있겠습니까? 제가 느끼는 이 허전함, 텅빔.... 절 이해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수보리는 아버지의 충고를 이렇게 일축하였다.
그런 수보리를 바라보는 수달다 장자의 마음 속에는 두 가지 근심이 스며들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인생의 허무를 알아버렸다는 점과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지혜로운 자임을 확언하는 자만심이 그것이었다.
'그동안 저 아이의 총명함에 미혹되어 지식만 심어준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 깊은 사유 끝에 우러나오는 지혜나 인품을 찾아볼 수 없으니....'
수달다 장자는 때늦은 후회를 하였다.
수보리에 대한 걱정도 그럭저럭 잊고 있을 즈음이었다.
수달다 장자는 바사닉왕의 청으로 이웃나라인 마갈타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마갈타국은 갠지스강 남쪽에 위치한 부강한 나라로 빈바사라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수달다 장자를 태운 수레 행렬이 마갈타국의 수도인 왕사성(Raja-grha)으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따앙, 따앙, 따앙, 따앙....' 규칙적으로 망치질하는 소리가 수달다 장자의 귀에 들려왔다.
수달다 장자는 수레를 멈추게 하고 고개를 들었다.
왕사성에서 멀지 않은 산꼭대기에 사람들이 까만 점처럼 다닥다닥 매달려 있었다.
'저기서 무얼 하는 것일까?'
수달다 장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한번 산꼭대기를 쳐다보았다.
왕사성 한복판에 자리한 왕궁에서 빈바사라왕(Bimbisara)을 만난 수달다 장자는 정중한 인사를 나눈 후 조금 전에 들었던 망치질 소리의 이유를 물었다.
"그 산은 영추산(靈추山)이라 합니다. 독수리가 많이 살아 그렇게 불리는 산이랍니다."
빈바사라왕이 미소를 머금고 대답하였다.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왕답게 언제 보아도 인자한 모습이었다.
"산꼭대기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던데 무얼 하고 있는 것입니까? 망치소리 같기도 하고....."
"허허허, 들으셨군요. 그 소리가 혹여 장자의 귀를 어지럽히지는 않았는지 걱정됩니다.
실은 영추산에 돌계단을 만들고 있는 중이지요."
"돌계단이라 하면?"
"산에 오르내리기 쉽게 말입니다."
"어떤 연유로 그런 대공사를 하게 되셨는지요?"
수달다 장자의 호기심어린 눈빛을 보고 빈바사라왕은 또한번 사람좋은 웃음을 흘렸다.
"성도(成道)를 이루신 세존께서 지금 이곳에 머물고 계십니다.
그분을 위해서 토목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영추산은 예부터 많은 선인들이 기도를 올리던 성스러운 땅이지요. 세존과 그분을 따르는 여러 제자들이 영추산을 좀더 쉽게 오르내리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중입니다."
"성도를 이루신 세존이라구요?"
"예. 저 북쪽 설산 아래 나라에서 오신 분이십니다.
32상(相)을 지닌 분으로 오랜 고행 끝에 마침내 산부처가 되셨지요."
수달다 장자는 빈바사라왕의 말이 미심쩍기만 하였다.
"32상을 지녔다면 우리들이 오래 전부터 기다리던 전설의 왕 전륜성왕(轉輪聖王) 아닙니까?"
"전륜성왕은 온 천하를 통일하고 태평성대를 이룩해 이 땅에 극락을 성취하실 분이지요.
하지만 그분은 전륜성왕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수달다 장자는 빈바사라왕의 말이 갈수록 기이하게만 여겨졌다.
"전륜성왕과 같이 32상을 지니시긴 했지만 세존은 성도를 이루신 분입니다.
전륜성왕은 그렇지 못하지요. 단지 영광스런 모습만 취했을 뿐입니다."
"제 눈으로 보지 않아서 뭐라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요즘 성도를 이룬 성자라고 자처하는 자가 어디 한둘이라야지요." 수달다 장자의 말이 사실이긴 하였다.
오랜 세월 인도의 정통 종교로 내려온 브라만교도 여러 파로 나뉘어 있었다.
새로운 깨달음을 찾는 출가가 유행하던 요 몇 년 사이에 사이비 종교가 우후죽순처럼 퍼지고 있었다.
따르는 이가 고작 수백 명에 불과했어도 그 광기(狂氣)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기 일쑤였다.
수달다 장자가 의아해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장자께서도 언젠가 만나뵐 수 있을 겁니다. 그때 가서 다시 말씀 나눕지요."
수달다 장자의 마음을 읽은 빈바사라왕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이튿날 빈바사라왕의 융숭한 대접을 받은 수달다 장자는 일을 다 마치고 교살라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수레를 몰아갔다.
저멀리 영추산에서는 여전히 돌계단을 두드리는 인부들의 망치소리가 울려퍼졌다.
'도대체 설산 아래에서 왔다는 이가 어떤 인물이길래 현명한 빈바사라왕을 현혹시켰을까?'
수달다 장자는 영추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수달다 장자의 수레가 갠지스강의 하얀 모랫벌을 지나고 있을 무렵이었다.
수달다 장자는 성도를 이루었다는 붓다의 이야기를 하면서 어린아이처럼 환한 미소를 짓던 빈바사라왕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이 갠지스강의 잘디잔 모래 위에 내리쬐고 있었다.
그 때문에 모랫벌이 온통 보석처럼 빛났다.
눈이 부신 수달다 장자는 될 수 있는 한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있었다.
'아니? 저것이 무엇인가?'
반짝거리는 모랫벌 아래 황금빛 태양이 송두리째 내려온 듯,
커다란 빛 덩어리가 수달다 장자 쪽으로 오고 있었다.
수달다 장자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보려 안간힘을 썼다.
그 순간 그 빛 덩어리는 한번 크게 번쩍거리는가 싶더니 마침내 제모습을 나타냈다.
수달다 장자의 눈에 비친 그 빛 덩어리, 그것은 허름한 옷을 걸친 한 사내였다.
사내의 몸 전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솟는 빛이 한 길은 좋이 넘을 것 같았다.
사내는 무심히 수달다 장자의 수레를 비껴 가고 있었다.
그 뒤로는 그 사내와 비슷하게 낡은 조각천을 꿰메 두른 몇몇 고행승들이 따르고 있었다.
'저 이가 과연 누구인가?' 수달다 장자는 찬찬히 그 사내를 살펴보았다.
맨발인 그의 발바닥은 나무조각처럼 판판하였으며, 발등은 두툼하고 발꿈치가 둥글었다.
또한 누더기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장딴지는 군살이라곤 붙어있지 않은 날렵한 사슴의 다리 같았다.
털 구멍마다 새까만 털이 나 있었는데 그 털들이 모두 위쪽으로 쏠려 일어나 있었다.
늘어뜨린 두 팔은 무릎까지 길게 내려와 있었고, 그렇게 긴 두 팔을 합친 것만한 키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 한군데 굽은 데 없이 몸이 곧고 단정했으며 마른 가운데도,
사자와 같은 기상을 가지고 있었다.
두 어깨와 정수리가 모두 둥글고 판판하며 두터웠다.
수달다 장자는 자기 앞에 나타난 사람이 말로만 듣던 전륜성왕의 모습과 어찌나 흡사한지,
그 모습에 넋을 잃고 있었다.
수달다 장자의 옆을 지나던 그가 잠깐, 아주 잠깐 수달다 장자에게 눈길을 주며 그윽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수달다 장자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환희와 전율을 느꼈다.
깊고 맑은 호수를 닮은 그의 검푸른 눈동자는 수달다 장자의 마음 속을 송두리째 비춰내 보일 것만 같았다.
그의 눈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속눈썹은 소의 눈썹처럼 길고 고왔을뿐더러,
양 눈썹 사이에는 신비로운 흰 터럭이 나 있었다.
그의 두 뺨은 사자를 닮아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턱선을 그려내고 있었으며,
살짝 내보이는 이는 희고 가지런하며 빽빽하게 나 있었다.
그가 수달다 장자 곁을 지나칠 때 그의 몸에서 이상한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어디서도 맡아본 적이 없었던 그 냄새는 수달다 장자를 그 자리에 꼼짝없이 붙들어 매었다.
그가 손을 들어 뒤에 따르는 사람들에게 무어라 일렀다.
소매 사이로 살짝 내비치는 그의 두 손은 가느다랗고 길었으며 손가락 사이마다 얇은 비단결 같은 막이 있었다.
언뜻 보이는 그의 손은 어느 여인도 따를 수 없을 정도로 보드랍고 매끄러워 보였다.
'아, 이 이가 바로 세존이시구나.
빈바사라왕이 말하던 성도를 이루었다는 그 자.
전륜성왕의 형상을 지녔다는…'수달다 장자는 그제서야 붓다를 알아보았다.
수달다 장자는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불같은 격정을 참기 어려웠다.
잠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킨 그는 수레를 돌려 저멀리 까만 점이 되어버린 붓다의 뒤를 따랐다.
붓다를 따라 수달다 장자가 당도한 곳은 니구루수잎이 무성한 죽림원(竹林園)이었다.
붓다와 그 제자들은 니구루수잎이 하늘을 가린 오솔길을 지나 커다란 절로 들어갔다.
죽림정사(竹林精舍)였다.
붓다가 마갈타국 니련선하(Nairanjananati)에서 성도를 이룬 후,
바라내국(Varanasi)의 녹야원에서 최초로 설법을 하고 다시 마갈타국에 들어서자 마침 붓다의 성도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빈바사라왕이 죽림정사를 지어 보시하였다.
이로써 최초의 절이 된 죽림정사는 붓다가 가장 많이 머물며 설법을 한 곳이 되었다.
붓다가 법상 위에 앉자 제자들이 차례로 붓다에게 예를 올린 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수달다 장자는 대법당 문 뒤에 서서 붓다의 설법에 귀를 기울였다.
"비구들이여, 출가한 사람은 항상 세상의 두 가지 일을 버려야 하니 무엇이 그 두 가지인가.
첫째가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마음이 일어나는 대로 따라 행동하는 것은 곧 범인(凡人)들이 따르는 길이니 이것을 버려야 합니다.
둘째는 스스로가 자기 몸을 괴롭히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겉보기에는 그럴 듯해 보이지만 스스로도 이익을 얻지 못하고 남에게도 이로움을 주지 못하니 이것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붓다는 이렇게 설법한 후 많은 사람들이 이 법문을 외울 수 있도록 게송(偈頌)으로 다시 읊어 주었다.
자신을 괴롭히지도 말고 모든 욕심의 뿌리도 다 버려라.
만약 이 두 가지 법을 버리면 곧 달디 단 진리의 길을 얻으리라.
붓다는 낭랑한 목소리로 욕락의 괴로움과 생로병사를 떠나 해탈에 이르는 길을 설법하였다.
육신이 얼마나 무상한 존재인가, 욕심이 얼마나 허망한 감정인가 가슴이 뭉클하도록 호소했다.
어떤 때는 칼끝 위를 달리는 바람처럼 날카롭게,
어떤 때는 푸른 초원을 달리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 세상은 브라만신이 주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인간은 단지 신이 정해준 삶대로 살아나가는 것이 참다운 삶이라는 전통적인 베다 철학과는 전혀 달랐다. 붓다는 모든 문제를 자기 자신에서 찾아내라고 거듭 말했다.
대법당 안은 붓다의 맑은 음성만이 조용히 울려퍼질 뿐이었다.
문 뒤에서 붓다의 설법을 듣는 수달다 장자의 눈에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하며 욕락에 사로잡혀 있는 중생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든 것으로부터 해탈할 수 있는 길을 붓다로부터 들었기 때문이었다.
붓다의 설법이 끝나자 그동안 브라만신을 섬겨온 사람들이 불법에 귀의하겠다고 나섰다.
붓다는 기꺼이 그들에게 삼귀의를 내렸다.
온전히 붓다에게 귀의하겠다는 귀의불(歸依佛),
온전히 불법에 의탁하겠다는 귀의법(歸依法),
온전히 출가한 자의 도리를 따르겠다는 귀의승(歸依僧)이 그것이었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사람들이 물러가기 시작하였다.
제자들도 하나둘씩 각자의 처소로 내려갔다.
법당 밖 니구루수 아래서 이런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던 수달다 장자가 마지막으로 대법당을 나오는 한 비구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 비구가 친절하게 물었다.
"전 이웃나라 교살라국에서 온 수달다라고 합니다.
오늘 처음 세존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지금 전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 듯합니다. 새 생명을 얻은 듯합니다."
그 제자는 수달다 장자의 흥분된 모습에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의 말씀은 삶과 죽음의 괴로움에 시달리는 우리중생을 구해주시지요.
전 목련(Maudgalyayana)이라는 비구입니다."
수달다 장자는 합장하는 목련에게 얼른 고개 숙여 예를 올렸다.
"이토록 귀한 말씀을 들으니 고향사람들이 생각나는군요.
전 교살라국의브라만인 수달다라고 합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제가 감히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만,
부디 저희 교살라국에도 오시어 불쌍한 중생들을 위해 설법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수달다 장자여, 세존께 직접 말씀드리시지요. 세존께서는 그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세존에게는 누구나 다 깨닫지 못한 중생이니까요."
목련은 수달다 장자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이때만 해도 성도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때라서 붓다를 직접 만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수달다 장자는 목련을 따라 붓다에게 나아갔다.
수달다 장자의 염려와는 달리 붓다는 수달다 장자의 청을 쾌히 승락 하였다.
갠지스강을 건너 교살라국으로 들어오는 수달다 장자의 마음은 환희에 가득 차 있었다.
사위성으로 돌아온 수달다 장자는 조용하고 시원하며 물 맑은 땅을 찾아 다녔다.
붓다가 설법하고 그 제자들과 함께 편히 쉴 수 있는 절을 지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죽림원과 죽림정사를 보았던 수달다 장자는 그보다 더 크고 더 훌륭한 절을 지어 붓다에게 보시하고 싶었다.
"왕사성에 다녀오셨다는데 일은 잘 되셨는지요?”
사위성 가까이에 있는 조용한 숲속에서 홀로 공부를 하고 있던 수보리가 오랜만에 집으로 내려왔다.
더 이상 배움을 줄 스승이 없으니 수보리 혼자 공부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요즈음은 수도승처럼 산중 생활을 하고 있었다.
"수보리야, 그렇지 않아도 너를 만나 할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왕사성에서 깨달음을 이룬 세존을 뵈었다."
"세존이라니요?" "난 그 분의 설법을 들었단다. 그것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이야기한 적이 없는 법,
우리 중생을 생노병사의 괴로움에서 구하는 법이었다."
수보리는 열에 들뜬 듯한 아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 우주에 있는 법 가운데 제가 모르는 법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아버님이 뵈었다는 그 세존이란 이가 새로운 법을 이야기했다면,
그 분 또한 제 스승이 될지는 모르지요.
하지만 제 마음 속의 혼란을 잠재울 수는 없을 겁니다."
"수보리야, 그 분은 너의 스승일 뿐 아니라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의 스승이며 진리 그 자체이시다."
"알겠습니다. 그 분을 뵈면 알 수 있겠지요."
수보리는 수달다 장자의 말을 가로막듯 외면하고는 얼른 자리를 떴다.
'어떤 외도(外道)를 만났기에 저렇게 흥분하시는 걸까?
광기가 대단한 외도인 모양이야.
아무리 그렇다기로 현자이신 아버님께서.....'
수보리는 아버지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평소 사리가 분명하고, 어떤 일에서든 분별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외도(外道)의 설득에 쉽게 넘어갈 브라만이 아니었다.
그런 아버지가 흥분을 했어도 이만저만 흥분한 것이 아니었으니, 실로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아버지와 마주 앉아 논쟁을 벌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수보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숲속으로 들어갔다.
자신만의 세계, 자신이 알고 있는 진리의 세계만으로도 수보리는 이 세상을 충분히 알고도 남을 것 같았다.
수보리가 다시 산으로 들어간 뒤에도 수달다 장자는 절터를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붓다를 만난 뒤 수달다 장자는 자신의 학문에 파묻혀 다른 세계를 전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수보리가 더욱 안타까웠다.
'이 세상에 자기가 가장 잘난 것으로 생각하지만,
세존의 설법을 듣고 나면 그 아이도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수달다 장자는 이렇게 생각하며 절터를 찾는데 더욱 힘을 쏟았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터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조용한 곳이면 너무 외따로 떨어져 있거나 장소가 협소했다.
하루라도 빨리 붓다를 모셔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던 수달다 장자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장자께서 보시면 꼭 마음에 드실 땅이 나타났습니다."
수달다 장자가 번번이 퇴짜를 놓아서인지 아랫사람이 눈치를 슬슬 보며 간곡하게 한번 가보십사 청했다.
마음에 들만하다는 그 땅은 사위성 남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과연 그의 말 그대로였다.
지금까지 수십 차례 땅을 둘러보았지만 이만한 곳은 없었다.
부채꼴의 다라수잎이 우거진 녹원이 널따란 평지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수달다 장자의 머리 속에는 금세 그곳에 웅장하고 화려한 절이 선 모습이 떠올랐다.
"마음에 드는구나." 오랜만에 수달다 장자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수달다 장자는 그 땅의 임자가 누구인지 알아보라고 일렀다.
곧 그 땅의 주인이 밝혀졌다.
"기타 태자의 땅이랍니다."
"그래? 하필 태자의 땅이라니." 수달다 장자는 그 길로 왕궁으로 들어가 기타 태자와 대면하였다.
"어쩐 일로 이렇게...."
수달다 장자가 상기된 얼굴로 들어서자 기타 태자는 정중히 예를 올리면서도 어리둥절하였다.
"부탁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성 밖 남쪽으로 태자의 녹원이 있는 줄 압니다."
"그렇습니다. 어릴 적부터 그곳에서 브라만 경전을 공부하기도 하고, 무술을 연마하기도 하였지요.
지금도 열흘에 한 번씩은 가봅니다만...."
"제가 그 땅을 살 터이니 저에게 주셨으면 합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수달다 장자는 쫓기는 사람처럼 매우 서둘렀다.
국왕의 뒤에서 한 나라를 움직이는 존경받는 장자의 모습이라기엔 너무 조급해 보였다.
평소 수달다 장자를 우러러 보았던 기타 태자는 실망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 땅은 왕족 대대로 내려오는 태자들의 수행지입니다.
장자께서 어디에 필요하신지는 모르지만....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땅을 내어드리기는 어렵겠습니다."
기타 태자의 단호한 말에 수달다 장자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러나 잠시뿐이었다.
"전 그 땅을 태자들의 수행지는 물론 사위성, 아니 우리 교살라국 전 백성들의 수행지로 만들 생각입니다."
어느덧 수달다 장자의 말에 열정과 힘이 들어가 있었다.
"얼마 전 국왕의 청으로 마갈타국 왕사성을 방문한 적이 있었지요.
그 곳에서 전 성도하신 세존을 뵈었습니다.
전 그 분의 설법을 듣기 위해 절을 지으려고 합니다.
바로 태자의 그 녹원에 말입니다."
수달다 장자의 말에 기타 태자는 깜짝 놀랐다.
"장자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장자께서는 브라만 중의 브라만이십니다.
우리 백성들의 정신적 지도자 가운데 최고 자리에 계신 분이 어쩌면 그런 말씀을 함부로 하십니까?
세존이 누굽니까?
그도 브라만이랍니까?
그를 따르는 이가 과연 몇이랍니까?
그가 우리를 어디로 어떻게 인도한답니까?"
다그치듯 묻는 기타 태자의 질문에 수달다 장자는 제대로 답해줄 수가 없었다.
사실 수달다 장자 자신도 아직은 붓다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그렇게 왕궁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절을 지으려는 생각이나, 붓다를 초청해다가 설법을 듣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간절해져만 갔다.
그 후 수달다 장자는 몇 차례 더 기타 태자를 만나 땅을 팔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기타 태자 또한 그만큼 완강히 거부하였다.
기타 태자는 수달다 장자가 외도에 빠져 엉뚱한 짓을 하는 것으로 여겨 매우 못마땅해 했다.
"이 나라 최고의 브라만이신 아버님이 그깟 나이 어린 태자에게 모욕을 당하고 있다니 말이나 되는 겁니까?"
소문을 듣고 산에서 내려온 수보리가 수달다 장자에게 따지듯 물었다.
"지난 번에 말씀하신 세존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어찌하여 한낱 외도에 빠져 아버님께서 그런 욕된 일을 당하십니까?"
수보리는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치며 이렇게 소리쳤다.
답답하기는 수달다 장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기타 태자에게조차 붓다의 정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뛰어난 브라만이라고 자부하는 수보리에게 붓다를 알릴 수 있을 것인가?
수달다 장자는 수보리를 외면한 채 기타 태자의 녹원에 어떻게 하면 절을 지을 수 있을 것인지 고심하였다.
"태자의 땅이 금으로 뒤덮였다네."
"그만한 금이면 그 땅을 백 번 정도는 살 수 있다는데..."
"수달다 장자는 정말 엄청난 부자야. 금으로 그만한 땅을 뒤덮다니 말일세."
기타 태자가 땅을 팔지 않겠다고 버티자 수달다 장자는 엄청난 재산을 처분해 금으로 그 땅을 뒤덮었다.
수달다 장자가 이렇게 나오자 기타 태자도 어쩔 수 없었다.
수달다 장자는 여전히 사위성에서만큼은 국왕인 바사닉왕보다 백성들에게 더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태자에 불과한 자신이 제일의 브라만인 수달다 장자의 요구를 더이상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태자는 고심한 끝에 수달다 장자와 만났다.
"장자께서 그 땅을 그토록 원하신다니 저로서도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는 지켜주셔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기타 태자. 세존께서도 태자의 이 같은 마음씀을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장자께서 큰 절을 짓는다고 하길래 말씀드리는 것이온데,
그 녹원을 뒤덮고 있는 다라수 숲만큼은 다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해주기를 바랍니다.
장자께서도 아시다시피 그 숲이야말로 우리 사위성의 자랑이 아닙니까?"
이렇게 해서 수달다 장자는 기타 태자의 녹원에 절을 지을 수 있었다.
절터가 마련되자 왕사성 죽림정사에 머물던 붓다의 제자 두 사람이 사위성으로 건너왔다.
수달다 장자가 죽림정사에서 만났던 목련과 또 한 사람, 사리불(Sariputra)이었다.
두 사람은 절을 짓는 기초를 설명하기 위해서 들어왔던 것이다.
목련과 사리불은 왕사성의 브라만 출신으로 일찍이 붓다의 제자가 되어 깨달음이 무척 깊은 비구들이었다.
수달다 장자와 목련, 사리불은 하루라도 빨리 붓다를 모실 수 있도록 부지런히 절터를 돌아보았다.
수달다 장자가 기타 태자의 녹원에 절을 짓는다는 소문은 사위성은 물론 교살라국 전체에 퍼져나갔다.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녹원으로 몰려들었다.
그 가운데는 수달다 장자를 정신이상자로 만든 외도 밑에서 외도를 배운답시고 출가한 제자들 얼굴이나 보자고 온 브라만들도 있었다.
수달다 장자가 낯선 외도를 위하여 태자에게 온갖 수모를 겪으며 절을 짓고 있다는 것은 브라만들에게는 여간 큰 충격이 아니었던 것이다.
"당신네들이 모시고 있다는 세존은 이 우주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소?"
인부들에게 법당의 크기를 설명하던 사리불에게 한 브라만이 거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리고 첫 질문부터 우주를 들먹이는 것은 시바니 비쉬니니 하는 어마어마한 힌두의 세계를 어찌 외도가 알겠느냐는 업신여김 때문이었다.
그러나 브라만 출신으로 이미 붓다의 제자가 된 사리불과 목련이 그들의 질문에 당황해 할 리가 없었다.
붓다의 깨달음이 브라만교를 이기지 못한다면 인도 땅에서 뿌리를 내릴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였다.
더구나 붓다보다 한 살 적은 사리불과 목련은 일찌기 친구 사이로,
각기 제자 250여명씩 데리고 독자적으로 교단을 만든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사리불은 이 도전적인 질문에 즉각 대답했다.
"당신이 정말로 세존의 말씀을 듣고 싶다면 그런 태도부터 버려야 할 것입니다."
사리불이 담담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꾸하였다.
"뭐라구요? 내 알아보았는데 당신도 왕사성의 브라만이라던데, 브라만인 당신이 크샤트리아 출신인 부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그는 인도의 뿌리깊은 사성제도부터 거들먹거렸다.
"세존의 법 앞에는 사성계급이란 존재치 않습니다.
모두가 깨닫지 못한 중생일 뿐이지요."
사리불의 말에 그 브라만은 더욱 흥분하였다.
"아니 그러면 저기 보이는 수드라나 이 나라의 정신세계를 주도하는 우리 브라만이 같다는 말이요?"
수드라는 천민계급으로 당시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한 이들이었다.
사람이 나면서부터 계급이 정해져 있고,
그것은 하늘이 정한대로 바라고 믿는다면,
더이상 그들을 상대로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브라만은 지지 않고 교리 논쟁을 걸어왔다.
사리불은 마침내 말로 말을 받는 것으로는 그들을 물러나게 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그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가운데 무언의 설법을 말했다.
"보시오. 내가 당신들의 온갖 질문에 한마디로 대답하리다.
"사리불은 브라만들과 일반 백성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손을 길게 뻗쳐 허공에 금을 그었다.
"이 이치를 알겠습니까?"
그러자 브라만들은 일순 침묵했다.
"이 이치를 깨닫거든 다시 만납시다."
사리불은 짐짓 말꼬리를 접었다.
"이 절을 다 지으면 세존께서 이곳으로 오실 겁니다. 그때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듣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사리불은 이렇게 말하며 자리를 피하려 하였다.
편견으로 가득찬 그들과 더이상 논쟁을 벌일 필요가 없던 것이다.
그 브라만은 사리불의 등 뒤에다 모욕적인 말을 퍼부어대더니 돌아갔다.
며칠 후 또 브라만 한 명이 두 사람을 만나러 왔다.
그는 미리 논쟁을 준비한 듯 침착하게 질문을 걸었다.
"당신네들도 아시다시피 이 세상 모든 것은 우리 브라만 신께서 창조하신 것이오.
그런데 당신들이 믿는다는 그 신은 이를 부인한다지요?"
"우리가 모시는 거룩하신 세존께서는 신이 아니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창조하거나 멸하지는 않습니다."
붓다가 신이 아니라는 사리불의 말에 그 브라만은 희희낙락한 표정이 되었다.
"이제야 올바로 말하는구료. 신도 아닌 이를 어찌 신처럼 받들고 공경한다는 말이요?"
"세존께서는 신이 아니라 깨달은 분이시지요. 그 분은 이 세상 진리에 통하신 분입니다.
그 분이 곧 진리이니 우리는 그 진리를 믿고 따르는 것이오. 결코 그 분의 형상을 보고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목련이 힘을 주며 대답하였다.
"그게 무슨 궤변이란 말이요? 그가 신이 아니라면 생노병사를 겪을 터,
그런 그가 인간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소?"
"아닙니다. 세존께서는 생노병사를 겪지 않습니다.
그 분은 우주의 법을 깨달으셨기 때문에 모든 질서 위에 계십니다.
모든 것을 초월하신 분입니다. 당신은 이 우주를 브라만 신이 창조하였다 하셨소.
하지만 이 우주는 신에 의해 창조된 것도, 저절로 그렇게 된 것도, 우연히 이루어진 것도 아니오.
다 인연법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오."
"인연법이라구요?"
목련의 설명에 그 브라만은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소. 모든 생명은 지수화풍식(地水火風識)의 5대가 인연으로 화합하여 하나의 생명체를 만들었다가,
그 인연이 흩어지면 다시 5대로 돌아간다오.
그렇기 때문에 인연이 있으면 생겼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질 뿐,
그 때문에 나고 죽는 일이 있는 것이오.
세존께서는 이러한 진리를 깨달은 분이시라오."
브라만은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당신들의 스승은 분명 몸을 이루고 있는 사람일 터인데?"
"그렇습니다. 세존이야말로 우리 인도인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전륜성왕의 모습을 지녔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 그 분의 참모습은 아닙니다. 육체란 땅, 물, 불, 바람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살, 뼈, 가죽, 털, 때 같은 것은 죽어서 땅으로 돌아가고,
눈물, 콧물, 침, 오줌, 피, 정액 따위는 물로 돌아가며,
더운 기운은 불로, 움직이는 것은 바람으로 돌아갑니다.
실상이 이러하니 어찌 육체가 허망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세존의 참모습, 즉 법신(法身)은 나고 늙고 병들고 죽지 않습니다.
법신은 자유자재하여 때와 장소에 구애됨이 없으니 가히 거룩할 따름입니다.
그러니 어찌 그런 분이 생노병사에 매였다 말하겠습니까?"
사리불의 자상한 설명에 그 브라만은 몇 마디 더 물어보더니 마침내 발길을 돌렸다.
그 이후에도 더러 몇몇이 찾아와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단지 논쟁을 벌이는 것일 뿐,
우려할 만한 방해나 불미스러운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무심하던 사람들도 절이 완성되어감에 따라 점차 제 모습을 갖추어 가는 절을 구경하러 오곤 하였다.
|
첫댓글 반갑습니다.
닉네임은 순수한글
다섯자이내로 수정해
주셔야 합니다..
내정보에서
정정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