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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샛별 보고 깨달은 맨발의 구도자
한 계절을 다 보낸 다음에야 절이 완성되었다.
절의 이름은 기원정사(祇園精舍),
그 이름에는 기타 태자의 숲에 수달다 장자가 지은 절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었다.
7층 규모의 기원정사는 대법당,
비구들이 거처할 승방, 수많은 서적을 보관할 수 있는 서가, 신도들이 몸을 쉴 큰 방 등 다양한 시설이 있었다.
장려한 모습의 기원정사를 바라보는 수달다 장자의 눈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기원정사가 낙성되자 이 소식을 들은 붓다는 제자들을 이끌고 사위성으로 입성하였다.
수달다 장자는 가장 좋은 수레에 붓다를 모시고 사위성 남쪽에 있는 기원정사로 향하였다.
"세존이시여, 이 곳은 사위성에서 가깝지도 멀지도 않사오며 길이 평탄하여 오고가는 데에도 피로치 않아 도를 닦고자 하는 수도자들이 쉬이 찾을 수 있사옵니다.
또한 모기와 등에, 독사나 빈대들이 적습니다.
낮에도 인적이 드물어 조용하고, 발심한 수도자들이 마음과 몸을 닦을 만한 곳으로 생각되옵니다.
이곳에 절을 지어 세존께서 계실 처소로 삼고자 하니 부디 허락하소서."
붓다에게 예를 올린 수달다 장자는 기원정사를 보시코자 이렇게 간청하였다.
"고맙소, 수달다 장자여. 그대의 보시를 받으리다."
붓다는 이렇게 말하고 수달다 장자를 위하여 축원을 하였다.
붓다의 발 밑에 꿇어 엎드려 축원을 받는 수달다 장자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외도를 끌어들인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그가 믿는 스승을 직접 모실 수 있다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제 수달과 장자가 지은 기원정사는 붓다의 진리를 만방에 펴는 기원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공덕만으로도 수달다 장자는 평생 수드라 같은 하층민들을 착취하여 부를 쌓아온 지난 날의 무거운 짐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사위성에서 가장 현명하며, 국왕의 자문역을 하던 수달다 장자의 영혼까지 빼앗은 붓다가 기원정사에서 거처하고 있다는 소문은 날개라도 단 듯 온 사위성 안에 퍼져 나갔다.
며칠 후 기원정사에서 첫 법회가 열렸다.
붓다가 대법당 가운데 높다랗게 마련된 법상에 올라서자 수많은 제자들이 예를 올렸다.
문 밖에는 붓다를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또한 사위성의 브라만들도 붓다의 설법이 과연 어떠할지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더기를 걸친 한 고행자가 법당 안으로 들어와 붓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전륜성왕의 형상을 가지신 분이여,
전 당신이 어떠한 분이시며 어떠한 깨달음을 얻으신 분인지 알지 못하옵니다.
하지만 진정 깨달으셨다면 오랜 세월 집을 버리고 출가하여 걸식으로 목숨을 잇고 고행하는 제가 과연 후에 무슨 과보(果報)를 얻을지 능히 아실 겁니다.
그것을 여쭙고자 하옵니다.
" 난데없이 뛰어들어온 고행자의 출현으로 법당 안은 잠시 술렁거렸지만 붓다의 음성이 들리자 곧 잠잠해졌다. 어차피 브라만이나, 다른 수행을 하는 외도들과 수없이 부딪치리라는 것은 일찌기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고행을 해서 얻는 과보가 무어냐고 물으셨소.
그것은 경험으로 알기 어려운 것이니 게송으로 분별해 주겠소."
붓다는 맑고 그윽한 음성으로 고행자의 물음에 게송으로 응답하였다.
모든 행자는 마을에 들거든 칭찬하건 욕하건 고요한 마음으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끝없이 겸손 하라.
행자는 마땅히 다투는 소리를 사나운 불길처럼 생각하고 아녀자의 단정한 얼굴을 보면 마땅히 마음속에서 지워버려라.
모든 욕심에 물들지 않음으로써 피차 서로 맺을 인연이 없나니 인연을 짓지 않으면 곧 다툴 인연도 없다.
세상의 일체 중생들,
내 몸 네 몸이 다름이 없고 내 목숨 네 목숨이 똑 같나니 이렇듯 자세히 살펴 생각해 보고 성날 때에 살생 말고 해치지 말며 탐욕이나 자만도 모두 버리라.
모든 사람들은 제 몸에 집착하지만눈밝은 자는 원수로 알고 몸을 떠날 것이다.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는 어떤 일을 보아도 마음 산란치 말라.
모든 탐욕을 버리고 보면 집착하지 않으므로 해탈하게 된다.
홀로 앉아 있을 때 여러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끊어버려라.
다만 날이 밝아 걸식할 때는 바른 마음 바른 생각으로 마을에 들라.
마을 가운데 이르면 말 없이 서서 차례로 집을 지나 걸식해 가며 마을에 머물러도 헤프게 웃지 말고 남에게 말하되 사납게 말라.
손에 발우 들고 걸식할 적엔 비록 말솜씨가 있어도 조용 하라.
혹 밥을 조금 얻어도 투정하지 말고 보시하는 사람 사납다고 헐뜯지 말라.
밥을 얻는 곳이야 가장 좋지만 못 얻는 곳에서도 성내지 말라.
그 두 곳에 다 함께 평등심을 내고 나무 아래 가서 달게 먹으라.
먹고 나서 다시 숲속에 돌아가 나무 아래 고요히 가부좌하고 자리 위에 앉기를 선인과 같이 하여 몸과 마음 입을 모두 거두라.
두려움을 버리고 마음 가다듬어 다른 일을 생각 말고 숲만 생각하라.
나무 아래에서 마음을 골라 혀로 입천장 받치고 차츰 숨을 쉬어라.
그 밖의 모든 욕심의 뿌리를 다 떨쳐버리고 마음으로 모든 인연 집착치 않고 경계를 다 버려 마음을 두지 말며 더럽고 탁한 곳을 모두 버려라.
청정하고 참된 마음으로 수도를 하되 좋은 말 부지런히 구하기 힘써 널리 듣고 지혜 많은 이에게 물어서 깨달아 애욕을 끊은 사람 있거든 그러한 사람들과 가까이 하여 그 곁에 이르러 마음으로 믿고 따르며 믿고 나서 공경하길 부처와 같이 하라.
남의 집 잘못을 말하지 말라.
타인을 헐뜯거나 자기를 칭찬하지 말며 말할 때도 큰소리를 내지 말라.
마치 사나운 불길이 먼 데까지 들리듯 이렇게 생각하여 모든 미혹을 끊으면 이것이 비구의 출가법 이다.
할일 안 할일 모두 몸을 떠나서 평등하게 보면 간 곳마다 편안하니,
성인의 행은 이와 같거니 업(業)이란 수레바퀴 구르는 것이라.
한 사람을 대하여 바른 이치를 말할 때 한 사람을 생각하면 곧 진리를 깨달아 얻게 되나니 모든 욕망의 근원을 떨쳐버리고 홀로 앉아서 마음을 가다듬으라.
그런 뒤에 이름이 사방천지에 떨치리라.
이런 행동은 오직 고요한 숲에 있으니 혹은 산 속이나 나무 아래 앉고 혹은 강 언덕과 샘 못 가에 있어 이런 처소에서 앉아 생각하되 지혜가 모자라면 항상 졸지만 깨달아 만족하면 항상 깨우치리라. 샘 같고 못 같고 바다와 같이 깨달은 사람도 또한 그러하리.
어리석은 사람은 수채의 뜨물 같고 지혜로운 사람은 가득 찬 호수 같네.
지혜 있는 사람은 비록 할 말이 많아도 때를 잃지 않고
혹 말솜씨가 있어 말이 많거나 말이 적어도 자신을 잘 살피네.
이렇듯 말이 적음도 역시 지혜라 하고 그 이름을 선인이나 성인이라 하네.
이것을 진실한 중도(中道)의 행이라 하며 이것을 해탈을 얻었다 하리라.
붓다의 게송은 마치 노래처럼, 샘물처럼 온 법당안을 휘감아 돌았다.
사람들은 그 게송을 들으면서 붓다가 말하는 깨달음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신이 있어 모든 것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곧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어 진리를 깨우치는 것이 바른 도리라는 가르침은,
비록 매우 간단하고 기초적인 말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당시의 인도 사회에서는 대단히 신선한 정신 혁명이었다.
이 날 붓다는 설법 대신 게송을 지어 주었다.
게송이란, 문자가 널리 쓰이지 않던 시절, 누구나 외우기 쉽게 운율을 살려 지은 시를 말한다.
붓다 시절에는 가르침을 구전(口傳)시키기 위하여 중요한 내용은 꼭 게송으로 지어 전파시켰다.
이것은 붓다만의 독특한 방식이 아니라 인도에서는 브라만교를 비롯해 문학적으로도 널리 쓰이던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게송을 들은 고행자는 붓다 앞에 엎드리며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말했다.
"거룩하신 세존이시여, 그 말씀을 듣자오니 제 가슴은 기쁨으로 넘실거리옵니다.
진정한 고행이 없이 그 과보부터 찾으려 했던 제가 부끄럽사옵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이 광경과 게송에 감동되어 붓다를 새롭게 보았다.
깨달음이라는 것이 곧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난 결과라는 사실은,
특히 브라만이 아닌 계층 사람들에게는 매우 혁명적인 말로 들렸던 것이다.
브라만교에서는 브라만이 아니고는 신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존재였지만,
붓다는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수행을 하면 깨달을 수 있고,
깨닫기만 하면 곧 브라만교의 신과도 비교될 수 없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다고 설파했던 것이다.
그러자 법당 밖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안으로 들어와 뒷자리에 앉아 붓다의 설법에 귀를 기울였다.
붓다는 대중들을 위하여 차례로 법을 설하였다.
붓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듣는 사람들의 가슴에 맺혀 법열(法悅)을 일으키고 있었다.
붓다가 팔정도(八正道)를 설할 즈음이었다.
"저 자의 말은 모두 거짓 이예요!" 갑자기 한 여인이 법당 문을 박차고 뛰어들어왔다.
모두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그 여인을 쳐다보았다.
"난 저 자의 아이를 가졌어요! 저 자가 날 능욕했어요! 저 자는 파렴치한입니다!"
너무도 돌발적인 사태여서 붓다의 제자들은 법상으로 뛰어가는 그녀를 잡아 세우지도 못하였다.
법당 안은 여름철 풀벌레처럼 제각기 떠드는 소리로 금세 시끄러웠다.
"이 배를 보십시오!" 붓다 앞에까지 다가간 그 여인은 사람들을 향해 배를 내밀어 보였다.
과연 배가 불룩하였다.
"몇 달 전 왕사성의 죽림정사 숲속에서 날 이렇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이리로 도망을 쳤어요.
설산 아래서 온 도적같으니라구! 그러고도 당신이 성도(成道)를 이룬 붓다 라고!"
여인이 법상 위로 기어 오르려 하였다.
제자들은 너무 놀라 어쩔 줄 몰라 했다.
어느 정도 외도들의 방해는 각오하고 있었지만,
외도들이야 논리로 맞서면 해결될 일이지만 이 여인은 도저히 물리칠 수 없었다.
이미 대중들이 다 들은 마당에야 붓다 스스로 해결할 길 밖에 없었던 것이다.
붓다는 이 모든 일이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것인 양 태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구경하던 사람들 가운데 '그러면 그렇지, 설산 아래에서 온 주제에 무슨...' 하며 비웃음을 보내는 이도 있었다.
그때였다.
"아얏!" 붓다의 가사자락을 휘어잡으려던 그 여인이 갑자기 비명소리를 냈다.
순간 여인의 옷자락에서 누런 바가지가 툭 하고 마루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새까만 생쥐 한 마리가 여인의 옷자락에서 튀어나와 쪼르르 법당 모퉁이로 사라졌다.
"조놈의 망할 쥐새끼!" 악을 쓰는 여인의 눈이 증오심으로 번들거렸다.
"여러분, 진정하시고 자리에 앉으십시오."
목련이 미소를 지으며 법당 한 구석에서 일어섰다.
"다 보셨을 겁니다. 저 여인은 세존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연극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중생의 얄팍한 속임수 따위가 어찌 거룩하신 세존의 뜻을 백만분지 일이라도 가릴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며 목련이 붓다에게 예를 올리자 붓다는 조용한 미소로 응답하였다.
자신의 몸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신족통(神足通)을 갖춘 목련이 생쥐로 변해 여인의 거짓을 밝혀내었던 것이다. (목련은 이처럼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기적을 앞으로도 많이 보인다. 인도, 티벳 등지에서는 문학, 전설, 민담에 마법이니 흑마술이니 하는 기적이 수없이 많이 나타나는데, 목련의 기적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상징이거나, 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북인도 지역의 문화 현상일 것이다. 심지어 브라만의 정규 교육 과정 중에도 마법을 익히는 경우가 있으므로 우리나라의 문화 현상과 바로 비교하여 허무맹랑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따라서 앞으로도 기적이 일어났다고 자료에 나오는 부분은 해석 없이 원문대로 옮긴다.)
이 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불법에 귀의하게 되었다.
사위성이 붓다의 출현으로 떠들썩하자 그 동안 수달다 장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 부쳤던 기타 태자가 기원정사에 나타났다.
그 또한 붓다의 설법에 감복하여 붓다에게 귀의하고,
수달다 장자가 아무리 요청해도 내놓지 않았던,
기원정사를 둘러싸고 있는 자신의 녹원을 보시하였다.
그즈음 산 속으로 들어가 홀로 수행을 하고 있던 수보리가 내려왔다.
산 속까지 붓다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던 것이다.
사람들이 줄을 지어 붓다에게 귀의한다는 소식을 들은 수보리는 성이 머리끝까지 나서 아버지를 찾아가 따졌다.
"아버님께서 사위성을 발칵 뒤집어놓으셨더군요."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수보리는 아버지를 힐난했다.
"나 때문이 아니다. 세존의 법력(法力)에 사람들의 마음이 저절로 움직인 것이지."
수달다 장자가 태연하게 받아넘겼다.
"그 법력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사람의 힘 아닙니까?
아버님께서 그토록 찬양하는 그 분 또한 한 인간일진대 우주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미약하고 불완전한 사람의 힘에 금세 눈이 먼 사람들이 가엾을 따름입니다."
수보리는 비록 존경하는 아버지 앞이었지만 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내뱉고 말았다.
그만큼 아버지나 사람들이 답답하고 한심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수보리야, 네가 이 세상의 모든 학문을 다 깨우쳤다고 그렇게 자만심에 가득찬 소리를 한다마는,
내가 보기에는 세존의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할 깨달음이다.
모름지기 진리를 구하는 자는 매사에 겸손해야 한다."
이 말이 수보리의 비위를 더 긁어놓았다.
"과연 그럴까요? 언젠가 그 사람을 만날 일이 있겠지요. 전 지금까지 누구와도 논쟁을 해서 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논쟁 따위를 다시 할 생각은 없지만 그 분이 그렇게 위대한 인물이라면 한번 겨루어 보고 싶군요.
우리 브라만교가 얼마나 우수한 종교인지 증명을 해 보이겠습니다.
그래서 미혹에 빠진 아버지를 깨우쳐 드리겠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마구 지껄인 수보리는 찬바람을 일으키며 방문을 나섰다.
그래도 수달다 장자는 화를 내지 않고 차분하게 대꾸했다.
"너의 말이 건방지고 불경(不敬)하기 짝이 없다만 지금 너를 나무라고 싶지는 않구나.
곧 기원정사에서 큰 법회가 열릴 것이다.
그때를 기다리마. 네가 싸워서 붓다를 물리치든지, 네가 붓다에게 지든지 그때 해보자꾸나."
"좋습니다."
수보리는 그날까지 다시한번 생각을 가다듬어 전의를 다지기로 했다.
며칠 후 수달다 장자의 말대로 기원정사에서 대법회가 열렸다.
붓다는 이번 법회를 마치고 사위성을 떠날 예정이었다.
마지막 법회라서 그동안 소문만 듣고 법회에 직접 참석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 무렵 기타 태자에 이어 국왕인 바사닉왕도 붓다에게 귀의하였다.
말로는 간단한 귀의지만 브라만교를 숭상하는 나라에서 국왕들이 외도의 교주나 다름없는 붓다에게 귀의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바사닉왕은 자신은 물론 수많은 백성들을 올바른 법으로 인도해 준 붓다를 위해 법회가 끝난 뒤 잔치를 벌이기로 하였다.
브라만의 대표격이던 수달다 장자에 이어 국왕과 태자가 붓다에게 귀의하자 사위성의 백성들은 크게 흔들렸다.
막상 일이 이렇게 진전되자 수보리도 붓다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더 이상 억누를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 불안한 마음이 깊어갔던 것이다.
그래서 논쟁을 걸기 전에 적어도 인물의 됨됨이 정도는 눈으로 직접 보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야 아버지 수달다 장자를 홀리고,
국왕과 태자까지 미혹시킨 원인을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존심 강한 그는 식구들 몰래 집에서 빠져나와 기원정사로 향하였다.
모두 독실한 붓다의 제자가 된 가족들은 법회에 갈 채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들은 붓다에게 바칠 향과 커다란 등불을 준비하고 있었다.
수보리가 사위성 밖으로 나서자 사람들이 손에 보따리를 하나씩 들고는 기원정사로 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 보따리에는 붓다에게 바칠 향, 음식, 등잔 등 갖가지 공양물이 들어 있었다.
수보리는 그 뒤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너른 들녘을 지나 기원정사로 향하는 오솔길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지더니 검은 구름이 몰려왔다.
"소나기가 오려나?"
사람들은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불안해 했다.
짓궂은 하늘은 곧 비를 퍼붓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길가의 나무 밑으로 피했다.
잠깐 지나갈 듯하던 소나기는 어느새 폭우로 바뀌었고,
게다가 바람마저 세차게 불었다.
엉거주춤 나무 아래서 비를 피하던 사람들은 비가 그칠 가망이 없음을 깨닫고 하나둘씩 길로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것이겠지."
그러나 사람들은 옷으로 머리를 가리고는 기원정사로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
'폭우를 무릅쓰고 설법을 들으러 간다?
대체 세존이라는 사람은 황금상이라도 된단 말인가?
다라수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던 수보리가 중얼거렸다.
붓다의 정체를 파헤치려면,
수보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폭우를 맞고 길을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기원정사 입구에 이르자 작은 강이 나타났다.
그런데 폭우로 강물이 불어 그 일대가 금세 물바다가 되었다.
비바람을 뚫고 가던 사람들도 막상 강물 앞에서는 어쩔 수없이 걸음을 멈췄다.
"곧 법회가 열릴 텐데 어쩌면 좋지요?"
한 여인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번이 마지막 법회라던데, 세존께서이곳에 언제 다시 들르실지도 모르고....."
"지난 밤에 미리 절로 들어간 사람들도 많답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법회는 열릴 겁니다.
우리를 기다릴 수도 없을테니..."
사람들은 물바다가 된 강가에서 우왕좌왕하였다.
비는 여전히 엄청난 기세로 쏟아지고 있었다.
"제가 먼저 건너가보겠습니다. 헤엄치는 데 자신이 있거든요."
한 사람이 손을 번쩍 들더니 보따리를 허리에 매고 강물에 뛰어들었다.
"이 강에는 원래 다리가 있었어요. 진흙탕에 가려 잘 안 보이지만 이쯤에 있을 겁니다."
또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고는 성큼성큼 강으로 걸어 들어갔다.
자세히 보니 과연 휘몰아치는 물결 사이로 한두 사람 건널 정도의 작은 다리가 언뜻언뜻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사람들이 우루루 그의 뒤를 따랐다.
비바람이 점점 더 심해졌다.
사람들은 무엇에 홀린 것처럼 두려움 없이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다리를 끝까지 건넌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성난 사자처럼 내달리는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물 밑으로 사라지기도 하고,
급류에 그대로 떠내려가기도 하였다. '아, 이것이 아수라장이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를 건너겠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의 모습에 수보리는 너무도 기가 막혔다.
'붓다라는 자의 법력이 어떻길래 이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강을 건너는 것일까?
부처는 과연 이런 사실을 알기나 하는 것일까?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은가?'
수보리는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쳤다. 여기저기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소리가 비바람에 섞여 들려왔다.
그러나 폭우는 여전히 맹렬하게 기세를 떨치고 있었고,
그 사이 더욱 불어난 강물은 수보리가 서 있는 강기슭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그 누구도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을 구해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젠장, 세존이라는 작자가 사람만 죽이는구나."
수보리는 기원정사가 있는 쪽을 향해 냅다 고함을 쳤다.
그때였다. 가사를 두른 건장한 사내가 수보리 쪽으로 걸어오더니 곧바로 강가로 걸어 들어갔다.
발목이 강물에 잠기자 그는 걸음을 멈추고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그는 기도를 올리는 듯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눈깜짝할 사이에 폭우가 그치고 먹장 같던 하늘이 조금씩 터지더니,
하늘은 금세 고운 쪽빛을 되찾았다.
사내는 사람들의 환호성을 듣는 듯 마는 듯, 성큼성큼 다리가 있는 곳으로 가더니 또 다시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미친 듯이 출렁대던 물결이 잔잔해지고,
어느새 그 많던 물이 어디론가 쑥 빠져나갔다.
강은 예전처럼 작은 냇물이 되었다.
급류에 떠내려가던 사람들은 모두 물 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사내가 다시 세 번째 기도를 올렸다.
그 순간 눈으로 보면서도 차마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물줄기가 위로 뻗쳐오르더니 건너편 강가 쪽으로 내려앉는 것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눈 앞에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도 놀라워 사람들은 입만 쩍 벌리고 있었다.
그는 물줄기로 다리를 만든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인도로 물다리를 건넜다.
사람들이 무사히 강을 건너 기원정사로 향하자 그는 그제서야 자신도 다리 위로 올라갔다.
넋을 놓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수보리가 얼른 사내를 붙잡았다.
"당신은 대단한 분이시군요. 수많은 목숨을 구하셨습니다."
수보리의 말에 사내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참으로 자비로우신 분이군요. 아직 당신만한 능력을 가진 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다시 한번 수보리가 그를 찬탄하였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저기 기원정사로 향하는 저 사람들이 뵈러 가는 분에 비하면 수미산의 돌멩이 정도나 될까 합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도 붓다의 제자란 말인가? 수보리는 다시 한번 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전 세존의 제자로 목련 비구라고 합니다. 조금 전의 일이 마음에 끌리시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세존을 만나보십시오. 그때는 저의 신통력이 한낱 미천한 재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겁니다."
"세존이라면 보지 않아서 알 수 없는 사람이고, 그보다는 목련 존자의 신통력이 궁금하군요?"
수보리는 아무래도 붓다보다는 눈 앞에서 기적을 보인 목련에게 먼저 마음이 끌렸다.
"세존께 귀의하고 수행을 하여 전 여섯 가지 신통력을 얻었습니다.
첫째가 천안통(天眼通)으로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둘째가 천이통(天耳通)으로 보통 귀로는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셋째가 타심통(他心通)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어내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넷째가 숙명통(宿命通)으로 지나간 세상의 생사를 알아내는 능력이고,
다섯째가 신족통(神足通)으로 제 몸을 마음대로 변형시켜 어디든지 다닐 수 있으며, 마지막
여섯째가 누진통(漏盡通)으로 제 뜻대로 번뇌를 끊는 힘을 얻었습니다."
"대단하옵니다. 존자께서는 그런 힘을 어떻게 얻으셨습니까?"
목련의 설명에 수보리는 혀를 내둘렀다.
"허허허,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모두 거룩하신 세존을 믿고 그 법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요.
공자(公子)께서도 이러고 계시지 말고 어서 세존을 만나러 가시지요."
목련은 껄껄 웃으며 강을 건너 기원정사로 향하였다.
수보리는 걸음을 더 떼지 못하였다.
제자에 지나지 않는 목련이란 한 사람의 능력이 그러하다면,
도대체 붓다란 이는 어떤 인물일까 도저히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수보리는 목련 존자 한 사람조차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자신의 도량이 넓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대단히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였다.
힌두의 신이 인간의 몸으로 나투었다 해도 그보다 나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붓다라는 이가 목련 존자를 제자로 거느리고 있다면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수보리는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떨리는 가슴으로는 일반 법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기원정사로 몰려갔던 가족들이 돌아왔다.
그리고 아침 나절에 있었던 폭우 이야기며, 목련의 대단한 신통력이며, 마지막 붓다의 법회가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하였다. "오늘도 수백 명이 불법에 귀의했다네."
"자네, 세존의 몸에서 빛이 나는 걸 보았나?"
창 밖에서 하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수보리는 얼핏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목련 존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붓다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들려주었다.
목련은 천천히 붓다가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마치 강물이 흐르듯 서사하였다.
히말라야 영봉의 남쪽 산기슭, 로히니 강이 구비치며 흐르는 곳. 카필라는 천연의 낙원이었다.
'태양의 자손'이라고 불리는 사캬족은 최상의 환경 속에서 대성인의 탄생을 기다리며 명상과 사유를 즐겼다.
싯다르타의 출현은 갑작스런 것이 아니라 벌써 수백, 수천 년 전부터 조금씩 쌓여온 '태양의 자손'들의 오랜 갈망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것이었다.
또한 싯다르타라는 영혼의 오랜 진화 끝에 이루어진 한 결과로 그 뿌리로 치자면 단순히 인도 역사에 나타난 고타마 싯다르타의 생애 이상의 수많은 전생에 깊이 내려져 있는 것이다.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속에서 커다란 니그루수 그늘에 자리잡은 현자와 선인들은 멀리 백설에 덮인 히말라야의 설경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은 온종일 명상에 잠겼다가 해질 무렵이 되면 대화로써 서로의 생각을 나누어 지혜를 모으고,
그곳에서 인정되는 지혜를 후손들에게 전했다.
바른 것인지,
그른 것인지도 모를 지혜들이 무수한 시간 속에 침전되어 앙금으로 있다가 훗날 뜻 깊은 '태양의 자손'으로 하여금 그들이 겪은 긴 과정을 다 겪지 않더라고 선현들이 모은 그 앙금을 보고 크게 반발하거나 크게 깨달을 수 있도록 오도의 인연을 미리부터 심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누가 그 열매를 거두느냐는 것은 문제삼지 않았다.
결국은 '태양의 자손'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한 인도인들의 명상과 사유는 우파니샤드, 리그 베다 그리고 불교를 낳았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의 충만 된 인연을 따라서 고타마 싯다르타는 이 세상에 그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봄볕 따스한 4월 초파일, 무우수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있는 룸비니 동산에서 왕자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 마야 왕비는 그가 태어난 지 이레만에 세상을 떠났다.
한 여인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4백일이 넘는 잉태 기간으로 인해 마야 부인은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것이다.
마야는 선조들이 심은 깨달음의 나무에 마지막으로 꽃봉오리를 맺어 놓고 자신의 소임을 마친 것이다.
(싯다르타의 탄생은 공안(公案) 제1칙으로 '선문염송(禪門염頌)'에 기록되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안이란 화두(話頭)와 같은 말인데, 선사들 사이에서 이야기되었던 선문답 가운데에서 공부하는 데 모델이 될 만한 것을 가리켜 부르는 선 용어다. '세존께서 도솔천을 떠나기 전에 이미 왕궁에 태어났으며, 어머니의 태에서 나오기 전에 이미 사람들을 다 제도하였다.' 세존이란,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이룬 뒤 붓다로 불리기 시작하였는데 그 붓다라는 말을 한자로 번역한 말이다. 그리고 도솔천이란 인도에 나기 전에 전생을 살던 곳을 의미한다. 나기 전에 나고 오기 전에 왔다는 뜻이 무엇인가 하는 것도 선사들이 참구하는 중요한 의문거리가 된다. 또 싯다르타가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걷고 나서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다.'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에 대해 염송 제2칙은 다음과 같은 시를 싣고 있다. 천 살 먹은 돌호랑이, 기린을 낳으니 외뿔 온 몸에 찬란한 무지개 금자물쇠, 옥철장을 단숨에 끊어내니 온 우주가 떠들썩하네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었다는 것은 공(空)의 차원에서 해석이 가능한 신화다. 인도의 스님들은 공안을 참구하는 전통이 없었기 때문에 공안에 대해서는 뒤에 다루게 된다.)
어린 싯다르타는 아버지 정반왕(Suddhodana)과 이모인 마하프라자파티의 따뜻한 사랑 속에서 자상하게 양육되었다.
일곱 살이 되면서부터는 수레를 타고 학당에 나가 범어와 무예를 익혔다.
싯다르타의 나이 열두 살 되던 해 봄 어느 날,
그는 아버지를 따라 춘경제(春耕祭)에 참석하여 농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땀과 흙으로 뒤범벅이 된 농부들이 어깨에 줄을 매어 쟁기를 끄느라고 짐승처럼 혀를 내밀고 허덕거렸다.
그들은 카스트 제도의 희생물인 수드라라는 천민들이었다.
보습의 칼날에 흙덩이가 뒤집힐 때마다 많은 벌레들이 허리가 잘린 채로 튀어나왔다.
그때마다 작은 새들이 날아들어 벌레를 물고 달아났는데,
그 새마저 독수리가 달려들어 채가고 말았다.
순간 어린 싯다르타는 큰 충격을 받았다.
"가엾어라! 산 것들이 저렇게 서로 잡아먹다니."
'하늘 위, 하늘 아래 나홀로 존귀하다.'고 말했다는 그였다.
나 귀한 줄 아는 사람이 남 귀한 줄도 아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은 싯다르타뿐만 아니라 보습에 묻혀 나온 작은 벌레들도 당당히 외칠 수 있는 말이다.
태어난 지 이레만에 어머니 마야 부인을 잃고,
이제 또 생명들이 서로 죽이는 모습을 직접 본 싯다르타는 생의 근본 문제부터 회의하기 시작했다.
왕자의 수심어린 얼굴을 들여다 본 정반왕이 그 까닭을 물었다.
동심의 싯다르타는 이렇게 대답했다.
"모든 생명들이 저마다 살기를 원하면서도 살기 위하여 서로 잡아먹는 것을 보니 불쌍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로부터 17년 후에 싯다르타를 출가시킨 동기가 되었다.
싯다르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태어나고 죽는 생사(生死)의 문제였다.
어디에 있다가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 그 온 곳과 갈 곳에 대한 강한 의문으로 수행은 시작되었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생사에서 벗어날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자연으로부터 받는 첫 질문이고,
싯다르타가 마주친 운명적인 질문이었다.
싯다르타의 나이 스물아홉이 되던 해의 봄.
궁중에서 큰 잔치가 베풀어지던 음력 2월 8일 밤,
그는 아내와 아들과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말없는 이별을 했다.
자신에게 연루되는 어떠한 인연도 출가자는 완전히 끊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깊은 밤, 온 세상이 잠든 시간에 마부 찬다카를 조용히 깨운 싯다르타는 애마 칸다카를 타고 성문을 빠져나와 동쪽으로 동쪽으로 어둠을 뚫고 달려갔다.
기왕이면 마부 없이 혼자 나갔으면 더 좋았고,
또 말을 타지 않고 걸어서 나갔더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그의 출가는 '탈출'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길눈이 밝은 마부와 빠른 시간에 도망치기 위해 잘 달리는 말이 필요했던 것이다.
싯다르타는 새벽녘에 아나바마 강이 흐르는 라아마 촌의 선인 마을에 도착하였다.
그는 말에서 내려 몸에 지닌 보석을 마부 찬다카에게 주었다.
다시 궁중으로 돌아가자고 애원하는 찬다카에게 싯다르타는 엄숙히 일렀다.
"나는 모든 중생을 죽음의 고통에서 구하기 위하여 출가한다.
변하지 않고 깨어지지 않는 진리 무상보리를 깨우치기 전에는 결코 돌아가지 않겠다."
싯다르타의 출가 동기는 소박하였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는 어디에 있었을까? -내가 죽으면 어디로 갈까? 인간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보는 수수께끼.
육신을 가진 중생에게는 영원한 수수께끼가 될 것이지만 눈 뜬 영혼에게는 그렇지 않을 의문.
싯다르타는 그가 진리를 깨닫는 그 순간까지 이 같은 질문을 여러 가지로 고치고 변형해서 '의심'을 바르게 다져놓고 깨달음의 순간을 기다렸다.
그의 출가가 남과 다른 점은 중생의 구제를 먼저 생각했다는 점이다.
출가는 무한(無限)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에 얼켜있는 무한의 사슬로부터 자기를 해방시키는 것이요,
생명에 대한 혁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싯다르타는 찬다카를 보낸 뒤에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맨발로 길을 가는 이름없는 구도자가 되어 구시나가라를 향하여 묵묵히 걸어갔다.
따가운 뙤약볕을 받으며 맨발로 길을 걸었으며 끼니 때가 되어도 먹지 못하고 밤이 되어도 편히 쉴 수가 없었다.
이 당시의 싯다르타가 겪는 어려움은 사실 완전히 그의 탓이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자청한 것이다.
왕궁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부귀 영화를 한 몸에 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싯다르타의 '주인공'은 고난의 바다로, 거친 가시밭 길로 자기 자신을 내몰았다.
자기에게 어떤 경험을 시켜주는가에 따라 그 '주인공'의 미래는 산으로도 갈 수 있고 바다로도 갈 수 있다.
싯다르타의 주인공이 싯다르타라는 육신에게 과연 어떤 경험을 시키고,
어디어디를 끌고 다닌 끝에 부처가 될 수 있게 했던가 두 눈 부릅뜨고 살펴보아야 한다.
싯다르타는 발우를 손에 들고 걸식하면서 동남쪽으로 길을 잡아 구시나가라와 베살리를 지나고 갠지스강을 건너 마갈타국의 서울인 왕사성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바가바 선인, 카르마 선인, 라마푸트라 선인을 차례로 만나서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배우고 다시 히말라야 영봉이 바라다보이는 나이란자나 강변의 숲 속으로 들어갔다.
싯다르타가 세 선인에게서 떠난 것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즉 수천 년을 두고 침전된 인도인들의 '명상과 사유'의 앙금이 싯다르타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에 대한 수용과 반발을 마친 다음 절대적인 진리의 열매를 거두러 히말라야 산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곳의 6년 고행은 껍질을 깨고 뛰쳐나오는 해탈의 진통으로 일관되었다.
보지 못하는 것까지 보기 위해서 눈의 기능을 철저히 무시하여 심안(心眼)을 열어야 했다.
듣지 못하는 것을 듣기 위해서도 귀의 기능을 부정하고 마음의 귀를 열어야 했다.
이러한 수행 과정에서 싯다르타는 신체의 기능을 부정하기보다는 파괴에 더 역점을 두었는데,
그러나 그 도가 너무 지나쳐서 기본적인 사유 기능마저 잃을 위험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 싯다르타는 고행에서 실패하고 새로운 수행법을 찾아야 했다.
생로병사와 본능을 지닌 육체를 가지고는 올바른 진리를 깨우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고행이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육체에 고통을 가하는 것은 그것의 극복이 아니라 도리어 육체에 의한 또다른 구속만을 가져올 뿐이었다.
있는 그대로를 보는 데서 진리는 저절로 나타난다.
꽃의 꽃다움은 있는 그대로에 있지 그것을 뽑아다 칼로 자르고 갈라서 분석한다고 해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뼈를 깎고 피를 짜고 살을 말리는 고행은 육체에 대한 인위적인 가공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을 찾겠다는 것이 칫 그것의 파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 예리한 관찰력으로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직관이다.
철저한 긍정이야말로 진정한 부정이 될 수 있다.
싯다르타는 허탈한 걸음으로 숲 속에서 내려와 수자티 소녀한테서 우유죽을 얻어먹었다.
그리고 나이란자나 강으로 가서 그동안에 쌓인 피로를 깨끗이 씻어냈다.
목욕을 마치고 언덕에 올라가보니 고행 중에는 힘없고 퇴색해 보이던 강과 산이 갑자기 생기를 띠었고 히말라야의 설경도 눈부시게 빛났다.
마침내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고행주의를 버리고 스스로 진정한 인간임을 자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기운을 회복한 싯다르타는 붓다가야의 보리수 그늘로 가서 앉았다.
마침 그곳에서 풀을 베고 있던 한 소년이 향기로운 풀을 한 아름 안아다가 자리를 깔아주었다.
싯다르타는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 소년이 가져다 준 풀을 깔고 앉아 깊고 고요한 명상에 들어갔다.
이 명상을 대선정(大禪定)이라고 부른다.
이때부터 싯다르타의 의식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리고 무한한 우주를 물결치며 날아다녔다.
머리 속에는 오로지 커다란 문만이 남아있을 뿐, 텅 빈 채였다.
때로는 반(反)싯다르타(즉 마라)와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유혹의 빛을 따라 한없이 낙하하다가 다시 치솟아 오르기도 하는 등 싯다르타의 의식은 시공계의 차원을 넘어 무한 비행을 했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맑은 나이란자나 강이 흐르고, 시원한 보리수 그늘에서 선정에 든 광경을 두고 고요한 풍경화같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싯다르타의 머리 속은, 큰 싸움이 일어나 포탄이 새까맣게 날아다니고 여기저기서 폭음이 들리는 전쟁터나 같은 것이었다.
들리는 게 없어도 폭음소리 요란하고, 보이는 게 없어도 섬광이 번쩍거렸을 것이다. 그래서 선인들은 고요한 산 중이라도 시장 골목보다도 더 시끄럽게 지내야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마침내 12월 8일, 긴 선정의 여행에서 돌아온 그의 의식이 의문을 밀어내고 다시 자리를 잡는 순간 여명 속에 떠오르는 동방의 샛별과 시선이 마주쳤다.
샛별의 한 줄기 차가운 빛이,
마지막으로 물고 늘어지는 번뇌의 끈을 싹둑 쳐냈다.
싯다르타는 마침내 무한 광명의 눈을 뜬 것이다.
싯다르타의 눈에서 광채가 솟구쳤다.
깨달음을 이룬 싯다르타는 자신의 깨달음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 끝에 마침내 환히 터져오는 눈부신 태양을 향하여 가슴을 활짝 펴고 일어섰다.
그리고 북받치는 설레임을 억누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제 어둠은 영영 사라졌도다! 다시는 생사의 길을 따르지 않으리라! 이것을 고뇌의 최후라고 선언하노라!"
싯다르타는 그의 깨달음을 히말라야에서 같이 고행했던 다섯 비구에게 달려가 먼저 이 소식을 전했다.
자신의 깨달음에 대한 첫 시험이기도 했기 때문에 싯다르타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싯다르타여, 고행으로도 얻지 못한 깨달음을 자네가 어떻게 얻었단 말인가?"
"수행자는 극단에 치우쳐서는 안되네.
극단의 하나는 모든 욕망에 탐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혐오해서 스스로 고행에 열중하는 것이니 두 가지 다 어리석은 짓이지.
나는 이 두 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취했다네."
싯다르타의 말을 들은 비구들은 그 중도에 대하여 물었다.
"그것은 바르게 보고, 바르게 관찰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움직이고, 바르게 살고, 바르게 공부하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마음을 안정하는 여덟 가지 바른 길이지."
이와 함께 싯다르타는 십이연기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하고 저것이 생하므로 이것이 생한다.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하고 저것이 멸하므로 이것이 멸한다.
친구들이여, 연기란 무엇일까?
무명의 연으로 행이 있고,
행의 연으로 식이 있으며,
식의 연으로 명색이 있고,
명색의 연으로 육체가 있으며,
육체의 연으로 촉이 있고,
촉의 연으로 수가 있으며,
수의 연으로 애가 있고,
애의 연으로 취가 있으며,
취의 연으로 유가 있고,
유의 연으로 생이 있으며,
생의 연으로 노사(老死)가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무명의 남김없는 멸로 행이 멸하고, 행의 멸로 식이 멸하며.... 명색... 촉... 수... 애... 취... 유의 멸로 생이 멸하고, 생의 멸로 노사가 멸하며, 그리하여 무명도 멸하게 되는 것이다."
설법이 끝나자 다섯 비구 중의 한 사람인 교진여(Ajnata kaundinya)가 그 뜻을 이해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것을 보는 싯다르타의 기쁨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는 소리 높여 그의 승리를 외쳤다.
"교진여가 깨달았다! 교진여가 깨달았다!"
목련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고 꿈은 안개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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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설 금강경을 올려주신 분께
감사말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