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육하고 번성하라
담임목사 김 광 수 목사
기 독 교
동 문 교 회
대한감리회
#2-930223 참 좋은 하루
찬 송/ 33장 (온 천하 만물 우러러)
기 도/주여, 70일 기도를 시작합니다.
세상 사랑으로 식어진 주님 사랑을 되찾기를 원합니다.
주여, 나를 부르셨사오니 부르심따라 따라 가렵니다.
주여, 힘을 주옵소서. 인도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창 1:1-5
오늘날 수천만 달러에 팔리는 고호의 그림은 본래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평생에 몇 푼이라도 받고 팔린 그의 그림은 두 점 뿐이었다. 천재적인 화가인 고호는 색채감의 매력에 빠져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였고, 한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멋진 창작물에 감탄하였다. 도예가가 맘에 드는 도자기를 구워냈을 때 「참 멋지다!」고 기뻐하듯, 하나님은 위대한 예술가로서 천지창조를 하면서 감탄사를 연발하셨다. 창세기 1 장에는 「멋지다」( 보기에 좋았더라, 토브 בו)는 말이 무려 일곱번이나 거듭 나온다(. 만든 것마다 맘에 꼭들었고, 멋들어져 보였다. 오늘은 70일 기도의 첫째 날이고 이런 하루 하루가 모여 70일, 그리고 일년, 그리고 한 평생을 이룬다. 우리는 오늘을 참 멋지게 살고 싶어한다. 히브리인들은 아침 인사가 보케로 토브(좋은 아침!)이다. 좋은 하루 멋진 날은 어떻게 가능할까?
첫째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하루! 성경은 하나님에 대하여 논증하지 않는다. 성경의 첫장부터 하나님과 함께 시작한다. 하나님을 모든 만물의 근거로서 고백한다. 만물은 본뜨거나 동업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만든 독창적인 창작물이다. 「창조하다」(바라,ארב)라는 말은 언제나 하나님께 대하여만 씌였고,「복주다」(바라크,ךרב)라는 말과 한 쌍을 이루어 씌였다(1:21/22, 1:27/28, 2:3/3, 5:1-2/2 등). 하나님은 만드신 것마다 복주시고 잘 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하나님 없는 세계는 추할 뿐이다. 혼돈과 공허와 칠흑 같은 어두움! 허무, 무질서, 무의미,절망....모두 아름답지 못한 말들 뿐이다. 비록 혼돈,공허, 흑암의 세상이지만 암탉이 달걀을 품듯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품으시자 「멋진 신세계」가 창조되기 시작했다.
둘째는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있으라」. 열 마디과 명령이 나온다(창 1:3, 6, 11, 14, 20, 24, 26, 28, 29). 시내산에서 주신 말씀도 「열 마디」이다.말씀이 나올 때마다 사건이 생겨났다. 말씀(아마르,רמא)은 곧 사건이다. 건설적이고 호의적인 말은 건설적인 사건을, 파괴적인 말은 파괴적 사건을 만든다. 설교자의 창조적인 말씀에 「아멘!」하는 것은 멋진 하루를 만드는 시작이요, 씨앗이다. 말씀에 「아멘!하는 성도가 복된 성도이다.말씀은 「명령」으로 이어진다. 「...있으라 하시니」 ,즉 하나님의 생각과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그의 입에서 나오는 선언대로 창조되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바람과 폭풍도 순종케 하고 귀신들도 복종케 하는 권세가 있었다.
세째는 「성취」이다. 「....(빛)이 있었고」 흑은 「그대로 되니라」도 일곱번 거듭 나온다(3,7,9,11,15,24, 30). 하나님의 명령에 응답은 「전적 순종」 전적 아멘이요, 그대로 되었다.
네째는 「작품」이다. 명령대도 작품이 생겨났다. 첫째는 빛이다. 빛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물리치는데 가장 중요하다. 세상에 구원의 빛을 비추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바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추하고 멋없는 삶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길이다.말씀대로 빛, 궁창, 육지와 바다, 해달별, 물고기, 새들, 땅위 짐승들이 종류대로 생겨났다.
다섯째는 「시인」(Approval)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말도 일곱번 거듭나온다(4, 10, 12, 18, 21, 25, 31). 만드신 것마다 조물주의 선하신 뜻을 찬양하고 있다.
여섯째는 「이름붙이심」이다.「빛을 낮이라 칭하시고」.이름을 붙이는 것은 지배권 의미함.
일곱째는 「날 수」이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날이라」 유대인들의 하루의 시작은 저녁부터이다. 먼저 어두움이 있었고 다음 빛을 만드신 것이 창조의 순서이기도 하다.
말씀따라 살아가는 삶은 어두움 속에서 빛된 삶이 된다. 허무하던 삶이 풍성하고 보람있는 삶이 된다. 혼란이 아니라 법칙있고 질서 있게 된다. 빛/어두움, 낮/밤, 윗물/아랫물, 부정/정결, 속됨/거룩 즉 구별된 삶, 선택된 삶을 즐기게 된다.세상이 어두울수록 빛은 더욱 그립다. 빛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사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빛의 자녀로 살게 한다. 애굽은 요셉을, 바벨론은 다니엘을, 바사는 에스더를 요구했다.
합심기도 : 1) 70일 기도를 승리하게 하소서! 2) 나를 따라 오너라 부르심에 따르게 하소서!
3) 빛의 자녀답게 살게 하소서!
#3-930224 생육하고 번성하라
찬 송/ 40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기 도 / 주여, 주께서 지으신 만물이 주의 모습을 드러내고 주님을 찬양하거만
어리석은 인생들은 주께 영광돌리기 보다 추악한 죄를 짖고 있습니다.
주여, 나의 하루 하루는 주의 영광 가리우는 부끄러운 생활은 아닌지요?
더 큰 영광을 돌리고 또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성 경 / 창 1:26-28
우주의 삼라만상을 멋지게 만드신 하나님은 마지막 솜씨를 다해 사람을 지으셨다. 마지막 걸작품인 것이다. 인간을 만드시는데는 특별한 배려가 있으시다. 우주만물을 다 지으신 다음 최고점으로 인간을 만드셨다. 먼저 만든 모든 것들은 인간을 위해 배려된 것들이다. 식물들을 「먹거리」로 주셨다.특별히 사람을 지으시되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으셨다.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으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첫째로 이레니우스(Irenaeus, 180년경)이래로 교부들은 형상(image,첼렘םלצ)이란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게 하는 이성이나 인격성이요, 모양(likeness,데무트תומד)은 구속받은 성품이나 초자연적인 은혜라고 주장해왔다.
둘째로 하나님의 형상을 이성, 자유의지,자의식 등 지닌 정신적 영적 존재라는 것이다. 세째로 하나님의 형상을 신체적으로 하나님을 닮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P. Humbert, Gunkel, von Rad 등).
네째로 하나님의 형상을 지상의 하나님 대리자로서 사람을 지으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고대 근동 문화권의 공통된 특징을 왕을 하나님의 지상 대리자로 보는 것이다. 성경에도 하나님은 우주의 삼라만상을 만든 후 사람을 지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고 지배권을 주셨다. 고대 근동의 이상적인 왕은 폭군이 아니라 약자롤 돌보는 자비로운 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다섯째로 하나님의 형상을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로 보기도 한다. 칼 바르트나 베스터만 등이 이 주장을 강조한다. 오직 하나님은 인간과 대화하시고, 언약을 맺으시고, 신부를 사랑하는 신랑으로, 자식을 돌보는 아버지로, 포도원을 돌보는 주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람을 지으신 창조의 원리를 다시 되새겨 보자.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으셨다/
하나님과 대화하고 언약을 맺고 사랑하며 교제하고 순종하는 인격적인 관계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서로 모자란 점을 보충해주는 돕는 자요,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반려자요,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낳는 결혼은 창조의 질서이다.
복을 주여 생육하고 번성케 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수가 중대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아브라함도 후손이 별들과 모래 같으리라고 복주셨다.
애굽의 이스라엘도 생육하고 번성하고 중다하고 편만해졌다.
만물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권한을 주셨다.
다스리고 정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것이다.
다스림과 정복은 훼손이나 남벌 파괴, 착취를 뜻하지 않는다.
노아 같이 방주를 예비하여 피조물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파멸당하지 않도록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
안식에 참여하는 복을 주셨다.
안식은 노동의 파기이며 완성이다.
안식은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영적 교제이며,
인간됨의 자부심과 인격을 찾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피조물이 즐기는
축복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최대의 복이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지배권을 주시고 안식에 참여케 하심은 하나님께서 복주시어 생육하고 번성케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다.
합심기도
1) 70일 기도를 승리하게 하소서
2) 주님 부르셨으니 주님 뒤를 따르게 하소서.
3) 내 가정, 직장, 속회, 교회가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케 하소서.복되게 하소서.
#4-930225 에덴의 동쪽에서
찬 송 / 221장 ( 나 가나안 복지 귀한 성에 )
기 도 /
성 경 / 창 3:22-24
첫 장면(2:4-17):에덴 동산은 네 강물이 흘러내려가 언제나 메마르지 않고 기름진 땅이었으며 비손강가에는 황금과 다애몬드와 여러 진귀한 보석들이 널려 있었다. 이 곳에서 사람에게 맡겨진 일은 땅을 경작하는 일(아바드דבע과 동산을 지키는 일(샤마르רמשׁ)이다. 이 쾌적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유일한 계명이 주어졌다. 행복을 지키는 지침인 셈이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네가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이 금령은 조물주께서 베푸시는 풍요로운 배려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피조물로서의 경계였다.
둘째 장면(2:18-25) : 하나님은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시며 사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돕는 배필, 알맞는 짝을 만들어 주셨다.여자는 마지막 창조물이기 때문에 그 동안의 솜씨를 다 발휘하여 멋들어지게 최고의 걸작품을 만드신 것이다. 자기 짝을 발견한 사내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찼으며 한 몸을 이루었고 둘은 벗었으나 부끄러움이 없었다.
세째 장면(3:1-5) :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뱀이 슬그머니 등장하여 여자를 유혹한다. 풍요롭고 쾌적한 환경을 베푸신 하나님의 넘치는 배려에 음흉스런 수작으로 의심을 제기한다. 뱀은 주님(여호와,הוהי)라는 칭호를 쓰지 않는다. 한 가지 금령을 트집잡아 하나님의 너그러움에 의심을 갖게 한다. ...만지지도 말라라는 말을 덧붙이며 「죽을까 하노라」하고 주님의 말씀의 권위를 약화시켰다. 사탄의 매력에 금방 물듣 것이다. 뱀은 맛장구 치면서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라” 뱀은 주님을 새빨간 거짓말장이로 말하고 있다.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에 대하여 결코 죽지 않으리라」고 했고 오히려 하나미 같이 되리라고 부추셨다.
네째 장면(3:6-8) : 장면은 클라이막스에 도달한다. 뱀에 꾐에 빠진 여자가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보면 볼수록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헤롭게 할만큼 탐스러워 보였다. 여자는 손을 들어 열매를 따먹고 남자에게도 주어 그도 먹었다. 정말 그들은 하나님이 되었나? 뱀의 말처럼 금방 죽지는 않았다. 수치를 가리고 선악을 아는 지각이 생겨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피조물이면서 조물주 행세해야 하는 어릿광대 거짓 하나님이 된 셈인데 수치심과 두려움, 주님 앞에서 도망하여 숨는 불안한 비극적 존재로 전락되고 말았다.
다섯째 장면(3:9-13): 무대에는 다시 주님이 등장하여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부르신다. 범죄한 인간의 모습은 핑계와 떠넘기기뿐이다. 사내는 여자에게, 여자는 뱀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빴다.
여섯째 장면(3:14-21): 하나님은 범죄한 피조물들에게 무서운 벌이 선고하신다.뱀에게는 변명의기회도 주어지지않고 묵묵부답이다.본래 꾀는 자요,하나님의 대적자이기 때문이다.
뱀 - 배로 기어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 지니라.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여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뱀은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리라.
여자-잉태하는 고통, 해산의 고통, 남자를 사모하고 남편이 다스리리라.
남자-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으리라.필경 흙으로 돌아가리라.
땅 -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 엉겅퀴를 낸다.
범죄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여인의 후손으로 사람의 아들, 메시야를 주어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는 메시야 탄생의 예언을 주셨고, 벌거벗고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떠는 아담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일곱째 장면(3:22-24) : 범죄한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 쫓져난다. 동산 동쪽에는 그룹들과 두루도는 화염검을 두어 동산을 지키게 하였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은 에덴의 동쪽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갔다. 범죄의 결과는 기쁨의 동산에서 추방이다. 우리는 큰 범죄는 조심하지만 작은 죄는 간과하기 쉽다.
생명의 샘물이 흘러 넘치는 곳,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집, 생명의 양식이 공급되는 곳, 성도의 사귐과 섬김이 있는 곳,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기쁨의 집이 언제나 열려 있으니 바로 내 아버지 집 주님의 교회이다.이곳에서 잃은 낙원을 되찾게 된다.
기도 1) 70일 기도를 승리하게 하소서.2)생명샘물이 흘러 넘치는 성전을 사모하게 하소서.
#5-930226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찬 송 / 525장(주 믿는 형제들 )
기 도 /
성 경 / 창 4:1-9
창 2,3장의 낙원 이야기에서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수직적 관계의 죄를 다루었는데, 4장의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는 형제와 형제 사이의 수평적 관계의 죄를 다룬다.
1) 1-5절 아담의 두 아들:
에덴의 동쪽에서 밭을 갈며 살던 아담은 두 아들을 낳았다. 큰 아들은 가인(ןיק)은 「얻었다」(הנק)는 뜻을 가졌는데 밭을 일구는 농사꾼이 되었고, 그의 아우 아벨(לבה)은 「허무」라는 뜻인데 양떼를 지키는 목자가 되었다. 아벨은 이름 그대 인생무상함과 허무를 느낄 수 있는데 그의 생애는 너무 짧았다.
세월이 지난 후 가인은 농산물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더니 주님께서 아벨과 그 예물은 받으셨는데 가인과 그 예물은 받지 않으셨다. 이 일로 인하여 가인은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고 말았다. 동생만도 못한 자라는 자격지심이 생겼을 것이다. 또 비교가 되어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는 분개심이 생겼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 아벨에게서는 양의 첫 새끼의 가장 기름진 최상의 부위를 드리는 정성과 헌신을 엿볼 수 있다. 흠없고, 점없고 온전한 최상의 것을 드리려 했다. 가인은 그런 노력과 정성이 없고 적당히 「제물」을 드렸다.
예물의 열납은 제물에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바치는 사람이 중요하다. 그래서 본문은 「아벨과 그 에물」은 받으시고 「가인과 그 예물」은 열납하지 않으셨다고 에물을 바치는 사람을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가인의 인격에는 무슨 문제가 있나? 바로 동생을 경쟁의 대상으로 보며, 분노하고 안색이 변하는 시기심과 질투이다.
2) 6-7절 가인에 대한 하나님의 질문:화를 내는 것, 얼굴빛이 변하는 것, 낯을 들지 못하는 것 = 이런 것들은 이웃에 대한 감정의 폭발이요, 미움과 시기, 질투의 감정 표시이다. 즉 동생 아벨에 대한 적대심의 발로이다. 동생에 대한 호의적 감정을 가졌더라면 「화를 내거나, 얼굴빛이 변하거나, 낯을 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3) 8절 가인과 아벨
제물이 열납되지 못함 - 분을 내며, 안색이 변하고 얼굴을 들지 못함 -
형제에 대한 독한 시기심 - 형제 살해
4) 9-14절 주님과 가인의 대화
가인은 시치미을 뚝떼고 뻔뻔스런 거짓말을 한다. 오히려 주님께 도전적으로 대든다.
가인의 근본적인 잘못은 형제와의 문제에 있다.
무수하게 많은 번제와 화목제를 가져와도 살진 짐승을 잡아 가져와도 고난받는 이웃을 돌보지 않고 학대하며 고아를 돌보지 않고 과부를 무시하는 이웃과의 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주님은 받으실 수 없다고 단호히 경고하신다(사 1:17). 주님의 마당만 밟을 뿐이며 손에 피가 가득하기 때문에 기도도 응답되지 않게 된다고 경고하신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도 똑같은 경고를 하신다.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2-24).
형제를 미워함이 살인이라고 주님은 가르쳐 주시고 계시다.
5) 9-15절 아벨의 피와 가인의 요구
무고한 아벨의 피가 땅에서 호소한다. 또 무고한 사람의 피흘림은 거룩한 땅을 더럽히고 땅을 효력없는 황무지로 만든다. 가인은 정처없이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고 벌이 선고된다. 형제 사이의 증오는 살인을 가져왔다. 배달겨레의 남북 분단과 상호 증오의 역사를 생각해 보자. 오늘날엔 쓸모없어져 버린 사상의 대립으로 형제가 형제를 죽이고 무고한 수많은 피를 흘렸다. 지금도 쓸모없는 신경전, 상호비방, 흑색선전을 일삼고 있다. 우리 나라 구석 구석 증오의 감정이 배어 있지 않은 곳이 없다. 무고한 피흘림이 없는 곳이 없다. 제주도 4.3사건, 여순사건,지리산사건, 거창양민학살, 최근의 광주학살까지, 또 지역감정의 상처는 어떻게 치료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주님께 예물 드리기전 먼저 형제와 화목하도록 하자. 주님은 네 형제 아벨이 어디 있느냐 물으신다.
기 도: 1) 70일 기도를 통한 영성훈련과 교회 부흥을 위해 2)나의 형제를 위해...
#6-930227 주님과 걷는 하루
찬 송 / 456장 (주와 함께 길 가는 것 )
기 도 /
성 경 /창 5: 21 - 24
창 4장과 5장에는 두 계보가 뚜렷하게 구별되어 나온다. 가인의 계보와 셋의 계보이다. 가인의 계보(4:17-24)는 세속적이며, 셋의 계보(4:25-5:32)는 경건한 계보이다.
1) 가인의 계보: 가인 → 에녹 → 이랏 → 므두야엘 → 므두사엘 →
라멕 → 아다(예쁜이) → 야발(베두인의 조상)
유발(음악가의 조상)
씰라(꾀꼬리) → 두발가인(금속 공예가)
# 가인은 최초의 세속도시를 건설함
# 라멕은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아내들을 둠.일부다처
# 라멕의 아들들은 음악가의 조상, 금속공예가였으나 세속에술 창조.
2) 셋의 계보: 아담(930) → 셋(912) → 에노스(905) → 게난(910) → 마할랄렐(895) →
야렛(962) → 에녹(365) → 무두셀라(969) → 라멕(777) → 노아
# 첫 순교자 아벨 대신 경건한 자녀 셋을 주셨다.
# 아담은 자기 모양, 자기 형상 닮은 셋을 낳았다(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모양을 닮음).
# 에노스 시대부터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하나님께서 데려 가셨다.
에녹의 생애를 자세히 둘러 보자.
에녹은 경건한 계보의 일곱째 인물이다.
하나님과 동행한 인물이다:
하나님과 걷는다(할라크 에트 하엘로힘םיהאה תא ךלה)= 하나님과의 친밀한 친교
노아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6:9)
아브라함도 하나님과 동행하였다(17:1)
아브라함의 종에게도 동행하신다(24:40)
아브라함.이삭, 야곱과도 동행하셨다(48:15)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도 (첫 부부와 동행하기 위해) 거니셨다(3:8)
에녹의 삶은 365세라는 매우 짧은 생애를 살았다.
경건치 못한 자들이 즐기는 세상 쾌락적의 삶의 풍요를 즐기지 않았다.
유다서에 의하면 에녹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예언하면서 모든 경건치 않은 자들의 모든 불경건한 일과 주를 거르리는 강퍅안 말을 인하여 마음의 고통을 당했다.
하나님께서 에녹을 데려 가셨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불경건한 시대였던 아합과 이세벨 시대의 예언자였던,
엘리야가 주님을 향한 열심이 특심하여 불수레를 타고 하늘에 들려 올라감 같다.
(왕하 2:1, 5, 9, 10)
새 대통령은 지금까지 자기를 그림자 같이 따르며 돕던 충성된 동료들을 비서진과 각료 로 뽑듯이 하나님은 열심이 특심인 자들을 취하여 가신다.
주님 재림 때 그 때까지 살아있는 성도들은 변화되어 구름 위에 끌려 올려 주를 뵈올 것 이며, 잠자는 자들도 변화하여 주를 뵙는다.
우리의 소원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요, 주님 가까이 뵈오며 그를 즐거이 섬기는 일이다
수도원에서 사는 것, 사제가 되는 것,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시간만이 주님과 동행하는 경건한 시간이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매일 매순간 주님과 동 행하는 것이 중요하고 매순간마다 주님의 손길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주님은 언제난 우리 곁에 함께 하셔서 동행하십니다.
합심기도
1) 70일 기도를 통해 내 심령에 주님 사랑의 불이 붙게 하소서
2) 세속과 친하지 말고 주님과 동행하게 하소서
3) 금요철야예배에 큰 은혜를 주옵소서.
#7-930228토 무지게 뒤의 약속
찬 송 / 258장( 물 건너 생명줄 던지어라 )
성 경 / 창 9:1-3 창 9:13
노아의 시대=네피림의 시대
노아의 시대는 네피림의 시대였다. 경건한 셋의 아들들이 세속적인 가인의 딸들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사랑에 빠지고 밀어를 속삭이며 교제하다가 드디어는 한몸을 이루게 되었다. 그들의 후예는 네피림 즉 장부요, 영웅 호걸이 나오게 되었다. 영웅 호걸 거인들이 세속적인 쾌락에 빠져 활개치는 세상은 걷잡을 수 없게 타락해 갔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사람 뿐만 아니라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홍수를 쓸어버릴 결심을 하셨다. 사람의 타락은 피조물 전체의 타락을 가져온다. 자연계 전체의 멸망을 가져온다. 죄악, 폭력이 만연한 곳에 역창조 현상이 생긴다.
창조질서 창조적 말씀에 순종 혼돈 공허 흑암 → 질서 풍요 빛
역 창 조 창조적 말슴에 불순종(죄) 질서 풍요 빛의 세계→혼돈 공허 흑암
(궁창 위물과 아랫물 합쳐져 다시 혼돈)
하나님과 동행하는 노아
모두가 타락하여 캄캄한 오밤중 같은 세상에 혜성 같이 빛나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이 곧 노아이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창6:8-9). 동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세상 쾌락과 향락에 도취하여 세상의 연인의 손잡고 세상 사는 맛에 빠져 있을 때, 노아는 하나님 손을 잡고 하나님과 속삭이며 동행하는데 삶의 기쁨을 느꼈다. 노아 혼자가 아니라 아내와 세 아들, 세 자부 모두 주를 섬기는 기쁨을 누렸다.
방주를 예비한 노아
하나님은 의로운 자가 망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래서 다가올 홍수의 심판을 대비하여 방주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다. 세상 사람들의 놀림은 얼마나 받았을까? 그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줄기차게 일을 추진하여 방주를 완성시켰다. 자기와 가족만을 위하여가 아니라 숨쉬는 모든 생물들을 위하여 큰 방주를 만들었다. 하나님의 창조하신 피조물을 보존시키려는 세심한 「환경보존가」였다.
요즈음은 「환경보존」이 심각히 논의 되고 있다. 현대인이 쌓아 놓은 바벨탑 같은 기게문명은 심각한 한경 파괴를 가져왔고 생태계의 황폐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진정한 환경보존의 정신은 노아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하나님의 지으신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고 돌보는 정신에서 가능한 것이다.
궁창에 열린 창과 샘들이 터짐
노아의 방주가 완성되고 모든 숨쉬는 생물이 쌍쌍이 방주에 들어가고 노아의 8식구도 들어갔다. 7일 후부터 홍수가 땅에 덮였다. 궁창의 창문이 열리며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폭포 가이 비가 쏟아졌고, 땅에서는 샘들이 터져 물줄기가 솟구쳐 나와 40일을 밤낮으로 퍼붓자 지상은 모두 물에 잠기게 되었다. 창조의 질서에서는 궁창이 생겨 윗물과 아랫물이 갈라지고 바다와 육지가 구별되었는데, 불순종하는 세계에 대한 심판은 창조의 질서가 거꾸로 전개되어 궁창에 창이 열리고 땅에 샘물이 솟구쳐 나와 다시 원시적 혼돈, 공허, 흑악의 세계가 되고 말았다. 창조주의 뜻에 불순종하는 곳에는 역창조, 즉 혼돈,공허,흑암이 반복된다.
새 창조,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나님이 노아와 방주 안의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물이 감하게 하시고 드디어 노아의 방주는 아라랏 산에 걸리게 되고 배에서 나와 제일 먼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다. 경건한 사람의 우선 해야 할 일은 예배드리는 생활이다.
하나님은 새 세상을 만난 새 가족에게 명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첫번째 천지창조 때 인간에게 주신 명령을 다시 하신다. 새로운 창조 새 세상이 전개 되기 때문이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여 땅 위에 편만하게 퍼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축복이다. 하나님께서는 구름 사이에 무지게를 두시며 다시는 물로 혈기 있는 생물을 멸하지 않겠노라 약속하셨다. 우리는 구름 사이에 무지게가 걸려 있는 것을 보거든 영원히 약속을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소망을 가져야 할 것이다.
#8-930301월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찬 송 / 261장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성 경 / 창 11: 1-9
노아 시대에는 「네피림들의 시대」여서 영웅 호걸 대장부들이 활개치는 바람에 힘없고 백없고 약한 대다수 사람들은 쪽을 못쓰고 그들의 인권은 유린되고 죄악이 판치고 불의가 득실거리는 세상을 이루었다. 노아 홍수 심판 후에도 인생은 그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시날 평지에 모여 살면서 하늘에 닿는 큰 성을 쌓고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방지하고자 했다.
이런 야심은 위에 계신 주님을 비위를 거스르는 것이었다.
첫째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않고 자기들의 이름을 빛내려는 야심이 무모했다.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빛내보려고 한다. 유명하게 되고 광내보려 한다.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자기 집에는 금송아지가 있다고도 자랑하려 한다. 바울은 약한 것들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했다. 또 약할 때가 강할 때라고 했다.
둘째로 하늘에 닿는 성을 쌓으려 했다.
벽돌을 구워서 돌을 대신하고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여 인간의 지혜를 총동원하여 하늘에 닿는 거대한 탐을 쌓고자 했다. 하나님의 돌보심이나 협력 없이 인간은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자만심이 엿보인다. 하나님 없는 도전은 헛수고일 뿐이다. 바닷가에 쌓는 모래성에 불과하다 밀려오는 파도에 씻기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특히 꼭대기가 하늘에 닿도록 해보려는 의도는 독신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과 겨뤄보리라는 부질 없는 무례함을 나타내는 태도이다.
세째로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고자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정면 도전하는 태도이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생육하고 번성하고 온 땅에 충만하여 땅을 정복하는 것이다. 수가 중다해지고 온 땅에 편만이 퍼지고 바닷가 모래처럼, 하늘의 별들처럼 무수해지는 것이 주님의 축복이요 창조질서이다. 그러나 바벨탑을 쌓는 무리들의 의도는 「온 땅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이어서 하나님의 창조계획과 인류에 대한 경륜에 정면 도전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여호와께서 인생들이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시어 인생들의 부질없고 무모한 짓」을 금지시키려 간섭하셨다. 즉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고 하셨다. 이어서 성을 쌓던 자들은 언어가 혼잡하여 서로 알아듣지 못하고 온 지면에 흩어지게 되었다.
알아듣지 못함(로 쉐마 אמשׁ א)는 비극이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열 마디의 말씀」을 말씀하셨다. 말씀하시는 것마다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듣고 아멘할 때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피조세계가 생겨난 것이다. 아담-셋- -에녹 -노아에 이르는 계보는 하나님 말씀에 듣는 계보이다. 노아도 주의 말씀을 듣고 방주를 예비하였다.듣지 못하는 것은 불행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못한 것이요 파멸이다. 아름다운 신앙이라 주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아멘 아멘 하는 성도이다.
결국 인생들은 바벨탑 쌓기를 그만 두고 온 지면에 흩어졌다. 강제적인 방법으로라도 하나님은 자기의 창조의 질서를 이루려 하시는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도록 흩으시는 것이다.
재바벨 사건이 생겼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생긴 오순절의 사건이다. 여기서는 언어의 혼잡이 아니라 언어의 통일이 이루어졌다. 베드로 한 사람이 설교하는 것을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네 말로 알아듣게 되었다. 성령의 역사는 알아듣게(샤마אמשׁ)하는 역사이다. 한 자리에 함께 자는 부부라고,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식구라도, 한 직장에서 일하는 노사라도, 한교실에서 공부하는 사제간이라도 알아듣지 못하면(로 샤마אמשׁ א) 비극이다. 돌아눕게 되고 반항하고 분규가 생기고 불신이 생긴다. 예수님도 들을 귀 있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우리 마음에 높아진 벽을 허물고 불신으로 꽉 막힌 귀속을 귀이개로 파내고 말씀을 듣고 아멘하자. 이웃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합심기도: 1) 특별기도회가 영적 순례 기간 되게 하소서.
2) 주의 이름 빛내는 생애 되게 하소서
3) 말씀을 경청하는 복된 귀, 이웃의 소리 듣는 귀 되게 하소서.
4) 생육하고 번성케 하는 우리 가정 직장 우리 교회 되게 하소서.
#9-930302 가라
찬 송 / 360장 ( 예수 나를 오라하네)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르자
성 경 / 창 12:1-4
인간적으로 볼 때 아브람은 외로운 나그네였다. 정든 고향을 떠나 한없이 유랑하는 생활을 하였다. 그의 나그네 길에서 의지할 지팡이는 오직 주님이셨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 말씀 」
천지를 창조할 때 말씀하시던 주님의 말씀이 아브람에게 들려왔다. 열 마디 말씀이 들릴 때 마다 듣고(샤마המשׁ) 「아멘」하는 것은 ‘멋진 세상’을 만드는 길이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다.에녹처럼, 노아처럼 말씀에 따라 ‘들음’(샤마המשׁ )이 복이다. 주시는 명령이나 말씀이 없는데 멋대로 바벨탑을 세우는 것은 ‘듣지 못함’(로 샤마המשׁ א)이요 비극이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 「 명령 」
내 나라, 가까운 친척들이 오손도손 모여 사는 동네, 일가친척이 있는 정든 고향을 떠나는 것은 결단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삼촌, 고모, 사촌 조카들와 어울려 사는 본토박이가 한번도 가보지 않았은 미지의 세계로 여행하는 것은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길도 모르고 그곳에 사는 사람, 동네, 풍속 모두 낯선 곳이다. 정든 땅 하란을 떠날 것인가? 낯선 땅을 향해 개척자의 길을 떠날 것인가? 주님 명령을 듣는 것(샤마)는 시험이었다.
고고학적인 발굴에 의하면 아브람이 살던 고대 「하란」은 달(月神)을 극성스럽게 섬기는 곳이었다. 데라는 「달」이란 뜻이며, 사래는 달신(月神)인 「쉰」(Shin)의 아내 ‘사라투’에서 왔고, 밀가는 달신 「쉰」의 딸 ‘말가투’에서 나왔다. 아브람은 존귀한 아버지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의 가정은 하란의 달신 숭배하는 집안의 이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너에게 복을 주리라 = 「약속」 - 주님이 명령에 순종하면 약속하신 복은 네 가지이다.
첫째, 큰 민족(고이 가돌לודג יוג) - 창10장에는 모두 70 나라의 이름이 나온다. 이런 70나라 보다 큰 나라로 세워주마 하는 약속이다. 말씀에 아멘하면 왕 같은 제사장 나라 삼으심
둘째, 큰 이름(셈 가돌) -창11장의 바벨탑 쌓는 무리는 스스로 큰 이름 세우려 했으나 헛수 고일뿐. 말씀에 아멘하는 자를 이름을 크게 해주신다.주님 높이면 나를 높여주신다.
세째, 복의 근원(베레크) - 복 자체가 되리라. 축복의 대명사. 아브라함처럼 복주소서!
네째, 복의 매개체 - 너를 통해 만민이 복받으리라
영안 밝은 자(멜기세덱) - 아브라함 축복
영안 어둔 자(하갈) - 아브라함(사라) 멸시 - 쫒겨남.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 「 순종 」
아브람은 미련없이 정든 땅,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났다.모험가,개척자의 길을 택했다. 아담 하와의 불순종 - 가인의 불순종 - 노아 시대의 불순종 - 바벨탑 쌓는 불순종의 암담함 속에서 아브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아멘’ 하는 자가 되었다. 우리도 장망성을 떠나가자.
* 아브람의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들어온 것은 「출애굽」의 모형이다. 우상의 땅, 인정으로 연결된 혈연사회, 부모님의 그늘에서 의존적이 안일한 곳에서 미지의 세계로 탈출해야 한다. 신앙은 탈출이다. 안일이 아니라 모험이다. 의존이 아니라 개혁이요 개척이다. 행복한 과거 회상이나 실패의 연민에 빠지거나 현재에 안주하지 말라. 오늘에서 탈출하여 내일을 향해 도전하는 개척자의 삶을 살라. 미지의 세계로 불러내시며 「나를 따라 오너라」는 부르심에 아멘 하고 응답하는 성도가 되자. 아브람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미련없이 떠나 약속의 말씀따라 새 땅으로 나갔듯이,제자들이 배와 그물과 부친을 버려두고 주를 좇았듯이 나를 따라 오라고 부르시는 주님의 약속의 약속의 말씀따라 살게 하소서.
#10-930302 신앙인의 첫 시험
찬 송 / 406장 (네 맘이 낙심되며)
성 경 / 창 12: 10-20
가뭄을 당할 때 10절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하라아브 바아레츠ץראה בערה)을 두 번이나 강조하고 있다. 주께서 지켜 주시는 약속의 땅은 언제나 풍년이 있어야건만 웬 일일까? 또 아브람은 이 땅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고 신앙도 최고의 열성을 가졌지 않은가? 애굽에 내려가는 것을 아브람이 즐거운 마음으로 내려 간 것은 아니다. 애굽 사람들을 두려워하였고, 심지어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부르도록 피차 약속했다. 순전히 약속의 땅에 기근이 심하여 연명하기 위해 애굽에 내려간 것이다. 기근이 닥치면 쉽게 「약속의 땅」을 버리고 다시 세속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12:1-9의 아브람은 말씀따라 순종하고 가는 곳마다 제단 쌓고 주를 부르는 뜨거운 열심.
12:10-20의 아브람은 두려움과 불신앙의 아브람
생존을 위해 「그 땅」을 포기, 말씀이 눈이 보이지 않게 됨.
애굽 사람들을 아브람은 두려워했다.
아브람은 풍요로운 메소포타미아 우르와 하란을 떠났다. 풍요로운 사회의 죄악에 환멸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약속의 땅에 와서 극심한 흉년을 만나자 즉시 그 땅을 버리고 연명하러 다시 풍요로운 도시인 애굽 바로의 수도로 들어가게 되었다. 신앙의 사람 아브람은 세속 아내를 뺏기더라도 목숨을 연명코자하는 신앙의 조상 아브람!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넌센스인가? 신앙인이기는 커녕 비굴하고 염치없는 치한이 아닌가?
바로도 탐내는 사래
사래는 늙은 나이에도 모두가 탐내는 여인이었고 급기야 애굽왕 바로도 사래의 아름다움에 빠져 후궁으로 맞게 되었다. 12:12-16 사이에 사래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단어가 여러번 강조되어 나온다.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11절),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13절),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14절),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15절),‘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16절)’. 사래를 보는 자마다 한 눈에 반한다. 아브람도, 애굽 사람들도, 바로의 대신들도, 바로까지도! 아브람은 사래 덕에 목숨도 살고 양,소,노비,암수 나귀, 약대를 많이 얻었다. 신앙의 사람 아브람이 아내 팔아 거부가 된 것이다! 이 얼마나 비굴하고 치사스런 인물인가? 하늘의 별 같고 바닷가 모래 같은 후손은 커녕, 사래까지 빼앗긴 처지가 되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브람이 이처럼 망하도록 하나님은 어디 계시고 무얼하시나? 믿음의 사람은 이제 절망에 빠지고 말 것인가?
주님은 아브람과 함께 하셨고 사래와 함께 하셨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17절) 아브람이 약속의 땅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왔어도, 아브람이 비록 「만민을 복되게 하는 자」 답게 확신있는 처신을 못했어도 주님은 택한 자를 버리지 않았다. 바로와 그 집안을 치시므로 사래를 위기에서 건져 주시고 아브람를 궁지에서 건져 주셨다. 주님이 약속의 땅을 단념하신 것도 아니었고, 아브람과 사래를 버린 것도 아니었다. 언제나 함께 하셨고 난처한 일을 당할 때 건져 주셨다. 아브람의 불신앙과 체신머리 없는 비굴한 처신에도 함께 해주셨다. 신앙인은 약할지라도 주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다.
오히려 바로가 아브람을 꾸짖고 교훈한다.
바로와 애굽 사람들은 아브람이 생각한 것처럼 사악하지 않았다. 세속도시의 지도자들 사이에도 도덕적 바른 양심있는 자들이 있는 법이다. 바로는 아브람이 사래를 자기 아내라고 분명히 밝히지 않아 큰 범죄를 저지를 뻔 했다고 아브람을 꾸짖고 소유를 다주어 사래와 아브람을 내보냈다. 신앙인은 신앙인 답게 살고 분명한 자기 신분을 밝히고 살아야지 비굴하고 소신없이 살아서야 쓰겠느냐는 타일러 내보내므로 아브람은 자기의 불신앙과 철저하지 못한 신앙을 후회하면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 사악한 것으로 생각했던 애굽의 바로에게 교훈을 받은 것이다.
합심기도 1)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은 주님이 버린 것이 아니라 훈련이다.
2) 좀 시련이 닥친다고 불신앙에 빠지고 세상에 돌아가는 것은 낭패만 당할 뿐이다.
3) 주님은 성도를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주를 떠난 자라도 난처할 때 돕는 분이다.
#11-930304목 분쟁과 기득권 포기
찬 송 / 521장 (어느 민족 누구게나)
성 경 / 창 13:1-18
아브람 목자와 롯의 목자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다.
유목민에게는 초지와 우물이 생명이요, 재산이다. 아브람의 많아진 육축을 위해서는 더 넗은 초지가 필요했다. 땅은 한정되어 있고 양떼는 늘어나자 아브람의 목자와 롯의 목자 사이에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 형제가 함께 모여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시133:1). 그러나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함을 용납치 못하였으니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 아브람의 제안: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람은 골육지친끼리 다투기를 원치 않았다. 웃 사람으로서 우선권을 포기하고 조카 롯에게 우선권을 양보했다.
롯의 선택:
롯의 선택 조건을 보자; 1) 눈을 들어 보기 좋은 땅, 2) 물이 넉넉한 땅
3) 여호와의 동산 같고 4) 애굽땅 같은 곳 5) 요단 온 들 6) 소돔 고모라가 있는 곳; 사악한 도시문화 7) 약속의 땅의 동쪽
* 롯은 이곳 택하여 동쪽으로 갔다.그러나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다
약속의 땅 변두리를 택하였고, 약속의 땅 동쪽을 택하였다. 아담 하와도 에덴 동쪽, 가인도 에덴 동쪽, 바벨탑을 쌓던 무리도 동쪽으로 이동했고,롯도 약속의 땅 동쪽을 택하였다.
아브람의 선택; 여호와께서 아브람 편이 되어주심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 주께서 나타나 아브람에게 재약속하심.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14-17절).
아브람은 조카 롯이 비옥한 동쪽을 택하여 갔을 때 야속한 생각도 들었으리라. 사실 요단 계곡을 빼놓으면 서쪽은 불모지와 같기 때문이다.롯은 물질적 풍요를 택하여 차지했다. 그러나 그곳은 풍요로 인한 범죄가 들끓는 사악한 세속도시 소돔성이 있였다.
아브람은 자동적으로 서쪽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롯이 떠난 후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 바라다 보는 동서남북, 일어나 종과 횡으로 행하는 곳을 네게 주리라. 물질적 풍요대신 하나님이 아브람 편이 되어 주셨다. 넒은 땅과 많은 자손은 아직 약속으로 받았다. 세상 물질에 대한 탐심과 염려는 믿음을 잃게 한다.
아브람 선택 : 1) 여호와께서 나타나심.
2) 약속 갱신: 그 땅, 많은 자손 약속
둘러보고 일어나 (그 땅을 종횡으로) 밟는 땅을 주리라.
3) (아브람은 말씀따라 둘러보고 일어나 그 땅을 종횡으로 걸어서)
헤브론으로 가서
4) 마므레 상수리 나무 아래 단을 쌓았다.
약속의 땅 밖의 아브람 롯의 선택 약속의 땅의 아브람
환경:나일강물 넘치는 풍요로운 곳 환경:물이 넉넉함 환경: 애굽땅같지않음
화려한 궁전 있는 세속도시 애굽땅과 같음 광야, 산악지대
색을 탐하고 사악한 애굽인 사악한 소돔성 하나님 함께함.
태도:두렵고 떨며 속이고 태도:양보심 없음 태도:강하고 담대함
아내 팔아 연명하고 치부하려함 물질적 욕심 영토우선권양보
비겁하고 야비한 인물 약속의 땅 변두리 순종,제단쌓음.
약속의 땅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풍요를 향유함보다,
평생을 약속으로 받았던 아브람은
약속을 붙잡고 살았다.
#12-930305 전쟁과 승리(창 14:17-24)
찬 송 / 390장 (십자가 군병들아)
조카 롯을 구출한 아브람
롯은 아브람을 좇아 하란을 떠나 약속의 땅을 찾아왔지만 눈에 기름져 보이는 요단 계곡을 택하여 동쪽으로 갔다.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땅 같아 보이는 소돔성을 가까이 접근해 갔다. 약속의 땅을 찾아왔다가 다시 약속의 땅을 버리고 변두리로 벗어나고 말았다. 물질의 풍요가 있는 곳에는 향락문화가 발달되어 퇴폐적이요 죄악이 들끓게 마련인데 소돔성이 그런 곳이었다. 아브람을 곁에 모시면서 신앙의 감화를 받아온 롯이지만 주변 환경에 자연히 물들지 않을 수 없었다. 타락한 도시에 의로운 롯! 과연 어떻게 될지 아브람은 롯의 앞날이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헤브론 마므레 상수리 나무 아래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열성으로 주를 섬기던 아브람에게 조카 롯에 대한 불길한 소식이 전해졌다. 북방의 네 왕들이 연합하여 소돔왕과 고모라왕을 비롯하여 다섯왕을 쳐즐어와서 이기고 소돔성과 고모라성의 모든 것을 노략하고 많은 부녀와 사람들을 붙잡아 가는 중에 롯도 섞여 있다는 전갈이었다.
조카 롯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은 아브람은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평소에 잘 훈련된 하인 318명을 동원하여 앞장서서 단까지 쫓아가서 밤에 네 왕을 급습하여 물리치고 사로잡혔던 조카 롯 뿐만 아니라 소돔성의 부녀와 인민들과 재산을 도로 빼앗아 가지고 돌아왔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아브람은 양떼나 몰고 다니는 외로운 목자가 아니었다. 잘 훈련되고 충성스런 병사 318명을 길들이고 수천명의 가솔을 이끄는 베두인의 추장격의 인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잘 훈련되고 충성스런 기드온의 300명의 용사가 미디안 군대를 물리친 것처럼 아브람의 병사들은 평소에 잘 훈련된 솜씨를 비상시에 발휘했던 것이다. 318 이란 숫자를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아브람의 충성스런 종 ‘엘리에셀’(רי 15:2)을 숫자로 환산하면 318이기 때문이다. 헤브론 마므레 상수리나무 밑 제단에서 주님만 섬기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아브람에게는 이런 충성스런 잘 훈련된(하나크,ך=1)헌신하다 2)구별하다 3)훈련하다) 종들이 있었다.헌신되고 구별된 종은 비상시에는 전투에 임하여 승리를 가져오는 잘 훈련된 병사들이었다. 기드온도 수만명의 산만한 숫자보다 정예화된 소수를 이끌고 승전했던 것처럼 교회에는 318명의 정예화된 일꾼이 요청된다.
아브람을 환영하는 두 왕이 대조적이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王谷)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17절)
첫째 멜기세덱의 영접
1) 멜기세덱(ק־י) = ‘나의 왕은 의로우시다’라는 뜻. 「의의 왕」
2) 살렘왕( ם־ך) = 살렘은 예루살렘의 옛 이름,즉 예루살렘 왕, 「평강의 왕」
3) 샤웨 골짜기에서(에메크 샤웨,ה־ק)= 예루살렘 부근의 계곡
4) 떡과 포도주(ן ם)= 전쟁에서 지치고 상한 심신을 소생케하는 양식.성만찬 상징.
5)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엘 엘욘ןוֹיע ל 제사장)= 그리스도와 방불(히7:1-17)
6) 아브람에게 축복함:천지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7) 아브람이 십일조를 줌: 십일조는 믿음의 조상으로부터 시작된 복받는 법칙이다.
* 히브리서는 메리세덱은 의의 왕, 평화의 왕,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영원한 제사장이요, 그리스도와 방물한 자라고 했다. 그는 아브람을 축복했다.
둘째 소돔왕의 영접;
1) 소돔=악한 세속도시
2) 왕이름 없다=도시인의 익명성.
3) 영접한 곳 이름 없다.
4) 「달라」고 요구 이기주의자의 표본;「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5) 감사 없음. 6) 아브람의 맹세;“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 하노리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께 하였다 할까 하여
내개 속한 것은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 세속도시인의 본보기.이기적,감사할 줄 모름,무례한 요구만함.영안이 어두운 자.
합심기도:1) 훈련되고 충성된 일꾼 318명처럼 소수의 정예부대원 속에 들자.
2) 감사와 예의 있는 성도가 되자 3) 성찬을 사모하고 십일조를 드리자.
#13-930306 상속자?(창 15:1-6)
찬 송/ 344장 ( 이몸에 아무 증거 아니 보여도)
여호와의 말씀 임함;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1절)
「주의 말씀이 ...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라는 양식은 주의 말씀이 예언자들에게 임할 때 사용된다. 아브람은 큰 예언자로서 앞으로 자기 후손에게 생길 일을 미리 주께로부터 계시를 받게 되었다. 이상(ה)은 예언자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수단이다.14장에서 국제적 전쟁에서 맹위를 떨치고 승리한 아브람에게 주님은 “두려워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하셨다. 주님은 믿는 자의 방패(보호자)요, 상급(보상)이기 때문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골리앗 앞의 다윗처럼, 아람 군대에 둘려 쌓였지만 우리와 함께 한 불말과 불병거가 하늘에 가득함을 믿고 두려워 말고 담대해야 한다. 그러나 아브람은 대대적인 승리와 눈부신 성공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위로와 격려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앞날이 걱정스럽고 신세가 처량했다.
아브람의 불평;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주시려나이까? 나는 無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2절).
하란을 떠날 때, 하늘의 별 같이 자손이 많아지리라는 약속을 받았으나 세월은 흘러가도 별 같이 많은 자식은 고사하고 하나도 낳지 못했던 것이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자식이 없는 것은 상팔자가 아니라 저주요, 불행이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은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었다. 늙어가는 아브람은 앞날이 걱정스러웠다. 자식이 없으니 손(가계)이 끊어지니 조상에게 죄인이요, 재산이 많아도 물려줄 후손이 없고, 늙으면 봉양할 자 없고, 죽으면 장례 치뤄줄 자 없고, 무덤의 풀을 깎아줄 자 없으니 근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누지문서에 의하면 고대 근동에서는 자식이 없으면 종을 양자로 입양하여 재산을 물려 주고 늙으면 봉양하고 죽으면 묻어주고 안식처인 묘지를 지켜주도록 하는 제도가 있었다. 아브람도 충성스런 종 「다메섹 엘리에셀」을 후계자로 정하고 아쉽지만 나름대로 노후대책을 세워 놓게 되었다. 조카 롯도 소돔성으로 떠난 후 더욱 외롭던 아브람은 충성스럽고 신앙심 깊은 엘리에셀이 마음에 들어 위로를 얻고자 했다.
말씀이 다시 임함;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후사가 되리라.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4-5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인간적 노후대책을 거부하셨다.「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될 수 없다. 네 몸에서 날 자가 후사가 되리라」. 네 몸(메아,)에서 날 자가 상속자가 되리라고 약속하셨다. 몸(메아)는 창자, 혹은 아랫배 등의 뜻이다.창25:23,룻1:11,삼하16:11,17:12,대하 32:21, 사48:19 등을 살펴보라. 여호와께서는 답답한 방안에서 속을 부글부글 썩히며 근심하고 있는 아브람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셨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빛이 아브람의 가속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중동의 밤하늘은 별빛의 찬란히 빛나기로 유명하다. 아브람의 답답하던 가슴 속이 후련해졌다.저 무수한 별들도 주님의 창조물이요, 저마다 반짝이는 빛을 내며 창조주의 위엄을 노래하는 듯했다. 주님이 말씀하셨다.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뭇별을 창조하신 주님의 능력이 감탄스러웠다. 저절로 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이 모두가 조물주의 능력이요, 솜씨이다. 주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다. 어느덧 아브람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나오게 되었다.
아브람이 주를 믿음;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6절).
아브람은 주님의 약속을 믿었다(아만,ןמא).조금도 의심없이 그대로 될 줄을 확신했다.「아만」은 ‘아멘’고 같은 줄기의 말이다. 줄기차다 틀림없다 확고하다 지당하다 등의 뜻이다. 아브람은 자기에게 마씀하시는 주님의 약속을 철떡 같이 믿었다. 이런 아브람의 요지부동한 믿음을 하나님은 의롭게 봐주셨다. 믿음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올바른 응답이다. 의(체다카ה)는 하나님 앞에 판단받는 인간의 완전한 행위의 의로움인데 주님은 아브람의 주님 말씀에 철떡같은 믿음을 의롭게봐주셨다.이론이나 수긍이 아니라 아멘이다.믿음은 은혜다.먹장같은 의심의 구름이 가시는 순간이다.백부장,수로보니게여인,혈루증여인을 보라.
합심기도; 1) 현재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말씀 부여잡는 굳센 믿음 주소서!
2) 인간의 생각,수단 방법이 아니라 주님 방법 따르게 하소서!
#14-930307 믿음으로 받는 의 (창15:6) 찬 송 / 343장(울어도 못하네)
6절은 믿음의 조상 아브람을 이해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귀절이므로 좀더 살펴보자.
2-3절에서 불신앙적이고 회의적인 불평으로 응답했던 아브람이 6절에서 확신에 가득한 믿음으로 돌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2-3절의 불신앙적 응답에서 6절의 믿음의 응답 사이에 아브람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나? 아브람이 청춘을 회복하고 사래는 다시 경수가 시작되면서 새 색시로 변했나? 물론 아니다. 혈과 육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분께 전적 의탁의 자세로 변화된 것이다.
아브람은 지금까지의 가치관을 회개했다.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느낌에 의해서만 확인하던 것을 포기하고, 하늘의 뭇별과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게 되었다. 순수히 창세기의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보여 주시는 하늘의 뭇별은 어제까지 보던 단순한 사물이 아니었다. 「이상(마하제ה)」으로 보여 주시는 「표적」이요 창세기의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계시였다. 믿음으로 받는 자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되는 일종의 「성만찬」 이었다. 분별 없이 깨우침 없이 참여하는 자에게는 성찬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전 11:29).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가나의 결혼식에 있었던 「표적」을 보고 그를 믿게 되었던 것을 생각하라(요2:11, 23).
자기 계산,자기 머리의 잣대로 따지던 아브람은 믿음으로 새로 태어났다. 이것은 세상 지식,경험,증거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계시로 알려 주시는 결과인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음의 고백을 했을 때, 예수님은 매우 기뻐하며 참된 고백은 혈과 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열려 주시는 것이라고 하셨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7). 바른 신앙고백은 하나님이 알려주셔야(계시해주셔야=아프칼맆토,απολαμυψτω)만 가능한 것이다.
믿음으로 거듭난 아브람을 하나님은 의롭다 여겨 주셨다. 자기 고집,자기 생각, 자기 판단을 버리고 주님의 뜻에 전적으로 따르고 약속의 말씀을 철떡 같이 믿고 따르는 아브람의 확고한 태도가 주님 보시기에 기특해보였고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렸다. 믿음이 없이는 주님을 기쁘시기 해드릴 수 없다. 자기 고집, 자기 주견, 자기 철학, 자기 사상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다. 도덕주의, 교리주의, 실존주의,공산주의, 자본주의,휴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 모든 ...주의를 저버리고, 아브람은 창세기의 하나님께 나아갔다. 아브람은 이제 새 피조물이다. 이전 것을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 자기 편견, 아집, 사상을 버리고 전적으로 주님께 자신을 의탁하게 되었다.
신앙은 은혜로 주어진 것이다. 현재의 상황이 어떠든 약속의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열려진 미래를 향해 살아가는 것이다.전에는 자식없는 늙은 부부로서 소망없는 처량한 신세를 한탄했지만 믿음으로 거듭난 이제는 하늘의 뭇별 같은 후손을 바라보며 열려진 미래를 기뻐하게 되었다. 야고보서의 가르침처럼 히브리인의 사고에는 행함과 믿음이 둘이 아니라 본래 하나의 두 면일 뿐이다.
인간 사회가 만든 체제,가치관에 밀려난 세리 창기 수많은 병자,이방인,귀신들린자, 절뚝발이,문둥이들이 오히려 예수님께 나아와 단순하고 어린애 같은 믿음을 가지고 그들의 꽉 막힌 현재의 상황에서 열려진 미래를 향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았다.생각해보라.권위주의적 체제, 기득권자들의 판을 치는 세상에서 감히 생각도 못할 소외된 자들이 절망적인 상황, 소외된 삶,꽉 막힌 미래, 그러나 예수께서 전하는 메시지는 미래의 문을 열어주었고, 오히려 천국에서는 「큰 자」라는 칭찬을 들었다. 오히려 택하신 족속임을 자랑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천국에서 쫒겨 나게 되리라고 선언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어두운 데 쫒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8:10-12). 본국민들,심지어 제자들이 「믿음이 적은 자」라는 책망을 들었다.의식주를 염려하는 자들(마6:30,눅12:28),폭풍을 두려워 떠는 자들(마8:28),예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베드로(마14:31),음식부족을 걱정하는 제자들(마16:8), 귀신추방 못한 제자들(마17:20)을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셨다. 「믿음이 큰 자」들은 누구인가? 이방인 백부장(마8:10-13),수로보네게여인(마15:28),중풍병자의 친구들(마9:2), 12년 혈루증 앓던 여인(9:22), 죄 많은 여인(눅7:50),소경(눅18:42), 문둥이(눅17:19) 등이다.
합심기도:1)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큰 믿음 주소서! 2) 내 판단, 아집 버리고 믿음으로 아멘!
#15-930308 횃불 언약=약속과 성취(창17:7-21)
1절 -6절 =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아멘 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7절-21절 =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계약제사로 확증한다.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목적 = 이땅 업으로 주려고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나는 이 땅을 네게 주려고 ...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십계명의 서언 양식(출20:2, 신5: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는 양식이다.
출갈대아 목적 = 「이 땅」 주려고
출애굽 목적 = 「이 땅」 주려고
하나님의 약속은 땅이다. 땅은 후사가 없으면 소용없다.
아브람; 증표를 요구
8)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아브람은 땅을 업으로 주신 증표를 요구 : 「무엇으로 알리이까?」
계약 제사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2)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 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희생제물을 쪼개고 그 사이로 지나는 것은 두 나라 대표 사이의 언약체결의식이다.
렘 34장 18절 이하를 살펴 보라.
여기서 희생 제물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솔개가 희생 제물을 먹으러 내려 앉는 것 = 이방 나라가 이스라엘 삼키려함.
아브람이 솔개를 쫓았다= 14장의 아브람이 여러 나라를 물리친 것.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400년 동안섬기리라 = 애굽을 섬길 것 예언.
네자손이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오리라 = 출애굽때 애굽재물 가지고 나옴(출12:35-39)
너는 평안히 장사될 것 =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평안」(샬롬םוֹ)
자손이 4대 만에 이 땅에 돌아오리라 = 1 대 - 100년
연기 나는 풀무, 타는 횃불이 쪼갠 사이 지남 = 구름 기둥 불기둥이 동행.
영토 = 애굽강에서 유브라데까지, 10부족의 땅
* 아브람의 행위 하나 하나는 자손들의 행위의 예표가 되었다. 아브람에게 준 약속은 금방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400년 동안 애굽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한 숫자가 되어 그 땅, 약속의 땅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낄 때 구름기둥 불기둥이 동행하여 그 땅으로 인도하신다. 애굽강에서 유브라데까지의 넒은 영토에다,무수한 후손은 다윗-솔로몬 때 이루어졌다.아브람은 천년 후를 미리 내다보고 약속으로 믿고 제사드려 확증했다. 약속은 금방 이루어지지 않았다.코 앞 일에만 급급한 우리들과 얼마나 대조가 되나? 믿음은 바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요 바라는 것들의 실장이지만 아브람은 이미 받았고 그 약속 안에서 살았다.
합심기도: 1)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 속에 살게 하소서
2) 1000년 후 받은 복을 누리며 살게 하소서
#16-930309 약속의 지연=인간적 방법모색
찬 송 / 349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기 도 / 주여, 하늘에 먹장 구름 덮이고 한줄기 빛도 없을 때,
부르짖어도 속히 응답이 없을 때,
답답한 마음으로 속이 상하고 믿음도 약해지고 의욕이 살아질 때,
조급한 마음으로 내 생각 내 뜻대로 내 멋대로 일을 결정하려 할 때,
바로 그 때 주께서 곁에 오셔서 감찰하심을 알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 경 / 창 16:1-16
오늘 본문에서 두 여인 사이에 끼어 있는 아브람을 보게 된다. 소위 쉽게 풀리지 않는 삼각관계를 보게 된다.
첫째 여인 사래; 위기의 여자
1) 사래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돌계집이었다
창11:30 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아카라ה) 자식이 없었더라(로 야라드 ד א).
창16: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생산치 못하였고(로 야라드 ד א).
창16: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치 아니하셨으니
창세기는 처음 사래를 소개할 때부터 「잉태하지 못하는 여자」(아카라 ה)라고 소개한 다.아브람이 복의 근원이 되어 자손이 뭇별처럼 많아지리라는 약속 받았지만 이 복의 통 로가 될 사래는 여자 구실을 못하여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2) 한편 사래는 늙었어도 모두가 흠모하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아브람이 애굽에 몸붙여 사는 동안 사래의 미모 때문에 자신이 죽을까봐 겁내기도했다.
3) 고대 근동에서는 본처가 자식을 낳지 못하면 아내가 자기 몸종을 남편에게 주어 상속을 이어가도록 하는 풍습이 있었다.사래도 이 풍습을 따라 남편의 상속을 잇도록 계획했다.
4) 가나안에 살기 시작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주님의 약속은 이루어질 전망은 전혀 없었다.
5) 주님 약속이 지연되므로 아브람과 사래는 인간적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해본 것이다.
6) 하나님 없는 인간 방법은 가정 불화만 불러 일으켰다. 아브람의 애기를 갖게된 하갈은 아브람의 상속자를 잇게 되었다는 자부심으로 여주인 사래를 업신여겼고,사래는 이런 어 처구니 없는 푸대접을 받고 있을 수만 없어서 하갈을 구박하자 참다 못해 홀몸도 아닌 하갈은 집을 나가고 만다.
7) 약속이 속히 이루어지지 않아 인간적 수단 방법을 써보는 것은 불행만 초래한다.
둘째 여인 하갈;소외자의 호소를 들으시는 하나님
1) 하갈의 처지는 소외자의 서러움을 대변한다. 2) 하갈은 이방 애굽 여인이었다.
3) 여주인 사래의 몸종이었다.4) 「씨받이」 신세가 되어 자식을 낳아도 여주인의 아들이 됨.
5) 주인의 아기를 갖고도 여주인 사래의 구박으로 쫒겨났다.
6) 광야 샘물 곁에서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약속해주셨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만났다:
7)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곁 곧 술 길 샘물 곁에서 그를 만나
9)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7) 변두리 인생, 소외자도 감찰하시고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달았다.
샘이름 「브엘라해로이」라 부름 = 살아계셔서 지켜 봐주시는 하나님의 우물
* 아브람의 나이 86세 때의 일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람-사래 즉 선민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소외되고 억울하고 한맺힌 하갈-이스마엘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독선적이고 멋대로 행동하고 투정하는 사래를 잠깐 방관하시면서 약속을 지연시키어 우월주의와 독선과 아집과 편견과 혈기를 누그러 뜨리게 하시고, 오히려 소외되고 변두리 인생인 하갈에게 나타나 감찰하시고 보살펴 주시고 복주셨다. 사래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하갈도 감찰하시고 복주시는 분이시다.
찬 송 / 509장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합심기도 / 1) 편견 아집 우월감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2) 변두리, 소외자를 관심갖게 하소서
#17-930310 이름을 바꾸라(창17:1-27)
찬 송 /
기 도 /
성 경 / 창17:1-27
후로는 아브라함이라 하리라 17:1-8
1) 아브람의 나이는 99세가 되었다.
75세에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가나안으로 왔고,
85세에 사래는 자기 몸종 하갈을 아브람에게 첩으로 주었다(16:3).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았다.
* 나이는 늙어 99세가 되었고, 하나님의 약속 뭇별 같이 무수한 자손을 주겠다는 약속, 네 몸에서 나는 자가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은 성취될 기미가 전혀 없었다. 그래도 하갈이 나아준 이스마엘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볼 때 작마한 위로를 받게 되었다. 이제 사 래가 아들을 낳으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었다. 아브람도 사래도 너무 늦었던 것이다.
2) 다시 언약을 갱신 시키셨다(17:2, 4, 7, 9,10, 11, 13, 14, 19, 21).
전에도 여러 차례 언약해 주셨다( 첫 언약: 12:1-3,12:7,13:14-17,15:4-5,18-21,17:2-) 17장에는 「언약」이란 말이 10번이나 나온다.
인간적 가능성이 전혀 없는 때, 다시 언약을 갱신해 주셨다.
부패하기 쉬운 인간은 거듭 거듭 주님과의 언약을 갱신해야 한다.
날마다 새삼스런 하루로 살아야 한다.
3) 새 이름 주심; 아브라함이라 하리라.
지금까지 옛 이름 : 아브람(םאַ) = 존귀한 어버지
앞으로의 새 이름 : 아브라함(םאַ) = 열국의 아버지
*히브리인들에게 이름은 매우 중요하다. 새 이름을 받는 것은 인격의 새 창조,인생의 새 출발을 뜻한다. 야곱→이스라엘 시몬 →베드로 사울→바울
열국의 조상, 열왕의 시작
4)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나님 되심. 8절
할례 = 언약의 증표( 9-14절)
1) 남자마다 할례를 받으라. 언약의 표증이 되리라
(집에서 난 자, 이방인에게 돈주고 산 자) 양피 베지 않으면 백성 중 끊쳐짐.
2) 새 언약공동체의 일원되었다는 소속감, 하나님과의 약속받았다는 신앙적 확신을 줌.
3) 이런 종교의식상 상징은 형식에 흐를 위험도 있지만 소속감,일체감,신앙심 고취 시킴.
4) 초대 교회의 세례 예식도 새 신앙공동체 입교식의 상징으로 신앙 고백 필요.
공허한 규례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내 이름도 바꿔라 ; 사래 → 사라
1) 사라,ה = 여걸, 왕후, 여주인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불임 → 여호와의 복을 받아 아들 낳고, 열국 어미되고 열왕 낳으리라.
2) 아브람의 불신앙;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백세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도 불신앙에 빠졌다. 오랜 약속 지연은 아브라함의 불타오르던 신앙의 열기를 꺼지게 하고 체념을 가져왔다. 마치 예수님 제자들이 삼년이나 주님과 같이 있었어도 불신앙을 가졌고 배신하고 부인하고 흩어졌던 것처럼, 믿음의 조상은 이제는 약속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고 차라리 육의 아들 이스마엘에게 기대를 걸었다. 인간적인 완전 절망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 은혜의 신호탄이다. 하나님은 육을 의지하는 아브라함을 절대부정했다;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인간적 노력,수단,인간적 가능성이 완전 절망일 때,전적 하나님의 은혜,하나님의 능력으로 약속 자녀를 주신다.
찬 송 / 344장 (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
합심기도: 1) 거듭 거듭 새벽마다 매순간마다 주님 약속 부여잡게 하소서
2) 인간 방법 의지하지 않고 주님 능력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3) 오직 하나님 능력, 약속 따라 살아가는 새 이름 주소서
#18-930311 천사의 방문
찬 송 / 324장(주님 찾아 오셨네)
기 도 / 주여, 낯선 나그네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방문하신 주님,
거룩한 옷을 차려 입고 빛난 천사 모습의 주님을 상상하고 있을 때,
주님은 누더기 걸친 거지로 오시려나이까.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힌 자들을 돌보는 것이
주님을 돌보는 것이라 하신 말씀대로
오늘 내 집 앞을 지나가는 낯선 나그네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성 경 / 창 18:1-15
창18장-19장에는 천사의 방문 이야기가 나온다.주께서 두 천사와 함께 이 땅을 찾아오셨다. 천사방문의 결과? 1) 마므레 방문 → 아브라함의 환대 → 시작 약속 「 아들이 있으리라」
2) 소돔성 방문 → 소돔성 사람의 사악한 대접→ 소돔의 종말
똑같은 천사의 방문이지만 아브람은 축복을 소돔성은 심판을 받았다.
천사의 방문1:마므레 아브라함 장막 앞을 지나는 나그네 모습으로: 18:1-8
1) 헤브론 마므레 상수리 수풀은 아브라함이 제단쌓고 주를 섬기는 신령한 장소이다.
2) 정오 즈음에 세 천사는 나그네 모습으로 아브라함 장막 앞을 지나가셨다.
3) 정오 즈음 「케홈 하욤」 ם ם 은 정오부터 낮 3시까지 살인적인 찜통 더위여서
잠자는 휴식 시간으로 삼는 시간이다.
4) 아브라함은 케홈 하욤의 폭염 속에 지친 길손을 발견하고 극진한 환대를 베푼다.
5) 이것은 중동 지역의 베두인들이 낯선 길손에게 베푸는 예절이지만
6) 아브라함에게는 평소에 낯선 나그네에게 베풀던 태도의 반영이다.
7) 나그네를 잘 대접하던 아브라함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였던 것이다.
사라의 웃음
1) 천사들은 기한이 이르면 아브라함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으리라고 약속했다.
2) 장막 뒤에서 이 이야기를 엿들은 사라는 불신앙으로 웃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3) 앞에서는 아브라함도 사라가 아들 낳으리라는 약속의 말을 듣고 불신앙으로 웃었고,
이번에는 사라도 「아들 낳으리라」는 약속의 말을 듣고 불신앙으로 웃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늙었고 사라는 경수가 끊어졌다.「네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지성적으로 생각할 때, 머리로 계산할 때,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불가능했던 탓이다.
신앙은 머리로 계산하거나 인간적 잣대로 재거나 상식적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다.
신앙은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것이요, 하나님께 전적 응답인 것이다.
신약의 예:사가랴...의롭고 경건한 제사장이었지만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못함.둘 다 늙음.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 「네 아내가 아들 낳으리라」
사가랴;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늘고 내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
불신앙적인 사가랴는 아내가 아들 낳을 때까지 벙어리가 됨.
마리아...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사내를 모르지만 「주의 계집종이오니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아멘으로 응답했다 = 온 인류의 복된 어머니 믿음의 어머니 다운 응답.
4) 천사의 질문;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14절).
제자들; 「누가 구원 얻을 수 있는가?」
예수님;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10:27)
마17:27:“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믿음이 한 겨 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 요, 또 너희가 못할것이 없으리라.
마가9:2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합심기도:1)낯선 나그네를 외면케 마소서 2)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주의 능력 확신케 하소서
#19-939312 천사의 방문 2
찬 송 / 269(웬 말인가 내 형제여)
기 도 / 주여,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멸망한 소돔성을 생각할 때,
우리로 이 시대의 빛과 소금 되게 하소서. 우리 시대의 남은 자되게 하소서.
소돔성 주민 위해 중보기도하던 아브라함 심정으로 울부짖게 하소서.
죄악으로 멸망할 세상에서 이끌어 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성 경 / 창 18:16-19:38 (창 19:1-29)
천사방문의 두 목적(시작과 종말):1) 아브라함-사라에게 새 시작 약속 2) 소돔성의 종말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19:1-29
1) 천사의 두 방문 비교
아브라함 방문 = 극진한 환대, 발씻을 물, 막 쪄낸 고급떡(우가ה)(=인절미)
기름지고 살찐 송아지 요리, 뻐터, 우유
소돔성 방문 =
롯의 소흘한 대접→ 성문에 앉은 부유층로서 무교병(마초트,תוֹצ= 딱딱한 빵) 대접.
소돔성 주민의 악행→이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있느냐 우리가 그들을상관하리라.
상관하다(야다 ע)=동성애(sodomy):삿19:22,삿19:24 망령된 일(네발라ה)
2) 소돔성의 더 큰 죄악= 부르짖음이 크고 죄악이 중하다(18:20-21,19:13)
사회적 불공평,불의,소외계층의 아우성→하늘에 사무침
* 탈무드의 일화: 한 나그네가 외동딸을 데리고 소돔성에 들어왔다.소돔성 주민들은 환영하며 은화 열개를 주었다. 양식이 떨어져 가게에 양식을 얻을 수가 없었다. 은화에는 특수한 냄새나는 칠이 칠해져서 통용되지 않았던 탓이다. 나그네집에 양식이 떨어져 죽었을 즈음에도 굴뚝에 연기가 오르자 주민들은 분명 내통하는 자가 양식을 주었다고 판단하고 드디어 나그네에게 친절한 「한 소녀」를 잡았다. 자비를 베푼 소녀에게는 극형이 쳐해졌다. 온몸을 꿀로 바르고 벌통을 건드려 놓은 것이다. 온몸이 벌집되어 지른 비명이 하늘에 사무쳤다. 하늘에서는 웬 아우성일까 진상조사단을 파견하게 된 것이다. 천사의 방문이 바로 심판이었다.
3) 롯의 지체와 관대함 = 속히 소돔성을 떠나라는 천사들의 경고에도 롯은 지체함.
오히려 천사들이 롯과 가족의 손을 이끌어 성밖으로 이끌어냄
소돔에서 가까운 성읍 「소알」로 대피하도록 허락받음.
소돔 멸망 재고 = 롯의 구원(아브라함을 생각하사)
소돔성과 인근 도시들을 하늘에서 불과 유황을 비같이 내려 모든 것을 엎으시어 그 성에 사는 남녀노소 심지어 젖먹이까지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것이 옳은가? 하나님은 소돔성 멸망 계획을 미리 아브라함에게 숨길 수 없었다. 특별 신택된 복받고 친밀한 자였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소돔성 멸망 계획을 재고하여 주도록 타일렀다. 하나님 앞에 서서 가까이 나가 따지러 들었다;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23). 의인 오십을 인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24절).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옵니다(25절).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옵니다(25절).세상을 심판하시려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25절). 아브라함은 소돔성에 대한 연민의 정과 인도주의로 의인의 숫자를 10명까지 줄여나갔다. 그러나 소돔성에는 소수의 남은자마저도 없었다. 소수의 남은 자는 역사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롯이 구원받은 것은 자기 의로움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구출해 주신 것이다. 우리의 구원도 내 의가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의를 생각하사 구원해주신 것이다(롬3:21-26). 자랑할 것이 없다. 오직 예수의 십자가 보혈 외에는
* 아브라함을 생각하사(자카르ר)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 내어보내셨더라(28절).
5)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 17:32) : 하늘에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려 소돔 고모라에 내려서 멸하신 것은 계시록의 인류 마지막 파멸의 예표이다. 세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를 돌아다보다 소돔 기둥이 된 롯의 아내는 말세의 성도들에게 경고가 된다.
우리 시대의 소돔화를 막기 위한 소수의 남은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롯의 구원 같은 예수의 피로 얻는 구원의 길로 한 사람이라도 더 탈출시켜야 한다. 시급하지 않은가?
찬 송 / 275장(저 죽어가는 자 다 구원하고)
합심기도 / 1) 아브라함의 심정으로 죄악세상에 죽어가는 자를 위해 중보기도 하자.
#20-930313 나 비록 약하나
찬 송 / 197장( 이 세상 험하고 )
기 도 / 주여, 섯다고 할 때 넘어질까 조심하라 말씀하심처럼
우리는 자주 넘어지고 주의 뜻을 거스릴 때 많습니다.
내가 약할 때라도 버리지 않고 일으켜 세워주시니 감사합니다.
내가 비록 약하나 주님 더욱 강함을 믿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성 경 / 창 20:1-18
1.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창 20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그랄왕 아비멜렉에게 빼앗길 뻔한 이야기는 창 12:1-20에 이미 나온 바로에게 사래를 빼앗길 뻔한 이야기의 반복과 같은 인상을 주지만 자세히 살펴 보면 강조점이 다르다. 20장에 나오는 내용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자.
무대설명(1-2절) : 남방(네게브)을 여행할 때 생긴 일.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2)
가)여호와와 아비멜렉의 대화(3-8절): 여호와께서 남의 아내를 취한 아비멜렉을 꾸짖음
하나님:(꿈에) 네가 취한 이여인을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
아비멜렉:(그 여인을 가까이 아니함)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그가 나더러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 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하나님:(꿈에) 돌려 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
아비멜렉:일찌기 일어나 모든 신복에게 들리매 그 사람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다.
*불신자 이방인인 아비멜렉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온전하고 깨끗하게 산다」
반면에 신앙인 아브라함은 비굴하고 떳떳치 못하게 불신앙적으로 행동한다.
하나님이 간섭하여 막으시지 않았으면 아브라함은 약속의 여인 사라를 빼앗길 뻔했다.
나)아비멜렉과 아브라함의 대화(9-13절); 아비멜렉의 책망과 아브라함의 멀쩡한 변명
아비멜렉: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리 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관대 네가 나 와 내 나라로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아브라함: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를 인하여 사람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또 그는 실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처가 되었음이니라
*신앙인 아브라함은 하나님 두려워하는 대신 사람을 두려워하여 뻔뻔스런 변명을 늘어놓고
불신자 아비멜렉은 오히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선명치 못한 신자를 꾸짖는다.
*예수님도 “이스라엘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느니라”(마8:10).
엘리야 시절 흉년에 하나님 종 접대하고 긍휼함 받은 여인은 이방여인 사렙다.
엘리사 시절에도 이방 아람 문둥이 나만 장군이 고침받음.
믿은 이보다 경건하고 의로운 이방인이 있다.
다)아비멜렉과 아브라함의 화해(14-18절);
아비멜렉:양,소,노비를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아브라함: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생산케 하셨으니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연고로 아비멜렉의 집 모든 태를 닫히셨음이더라
*아브라함은 믿음도 없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겁장이이고 비굴한 자가 분명하지만 그랄왕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많은 보화를 주어 화해를 청하고 불의한 아브라함이 축복해 주 어야 아비멜렉과 온 백성이 받을 재앙이 풀린다.
즉, 아브라함은 열국을 축복하고 저주할 수 있는 복의 근원이다.
이런 특권은 아브라함이 의로와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요 선택이다.
2.행위냐 은혜냐?
아브라함은 행위 면에서 이방인 아비멜렉만도 못하다.오히려 아비멜렉이 경건하고 의롭다.
그러나 아비멜렉도 아지못하고 죽을 죄를 지었다(6절).아브라함이 기도해주어야 산다. 아브 라함이 기도해주지 않으면 아비멜렉과 온 백성이 망한다. 이런 특권은 아브라함이 의로와서 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찬 송 / 98장(주 예수 내가 알기전)
합심기도 / 나는 비록 약하나 주님 은혜와 사랑 능력 크심을 알게 하소서
내가 비록 약할 때도 날 버리지 않는 주님 사랑 믿습니다.
#21-930314 주께서 나를 웃기시다
찬 송 / 488장(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기 도 /
성 경 / 창 21:1-8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약속」은 기한이 되자 「성취」 되었다.
약속과 성취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련과 연단의 과정이 있었던가?
오늘도 성도들은 바로 「약속과 성취」 사이에서 유혹과 시련을 겪으며 살게 마련이다.
1.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다.1절
전에 천사들의 방문을 통하여 기한(모에드דוֹמ)이 되면 아들을 낳으리라고 말씀하신대로
주께서 기한이 되지 사라를 찾아오셨다(권고하셨다).
권고하다(파카드ד) = 방문하다.
영어성경(NIV RSV)= The Lord visited Sarah as he had said.
권고하다(파카드)에는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1) 방문하다 2) 벌을 주다
2.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다.1절
말씀(다바르ר)대로 행하셨다(아사השׂ). 말씀(다바르)의 두 가지 뜻 = 1)말씀2) 성취
주님은 말씀하신대로 일을 이루시는 분이다.식언치 않으신다. 어김이 없으시다.
3. 기한에 미쳐 늙어서 낳았다.
젊은 부부, 생육이 강한 여인이 낳은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늙은 나이(즈쿠님,םינ)임을 강조하고 있다(2,7절).
아브라함과 사라는 죽은 자와 방불한 자였다(히 11:11-12).
히 11:11-12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니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에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예수께서 처녀의 몸에서 나게 하심과 같다. 불가능한 가능
이삭고 천사의 예고대로 낳았고, 예수께서도 천사의 예고대로 낳았다.
아론의 말라 죽은 지팡이에서도 살구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창조주의 능력이
죽은 자와 방불한 늙은 나이(즈쿠님םינ)에 임심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것은 인간의 가능성, 방법, 수단, 능력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은혜에 의한 것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다.
4. 사라가 웃었다.
천사가 방문하여 「기한 차면 아들 낳으리라」고 약속할 때는 불신으로 웃었다.
막상 말씀대로 기한이 차자 임신하여 아들 낳게 되니 이번엔 즐거워서 웃었다.
사라는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므로 내가 웃는다」고 했다.
하나님은 잉태하지 못하고 나이 이미 늙은 여자에게 웃음을 주셨다.
사망과 소망없음과 불임의 결박을 깨뜨리셨다.
사라도 웃고, 아브라함도 웃고, 듣는 모든 자들이 웃었다.
기쁨과 행복은 주게서 주셔야 한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 열방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 오리로다
사라의 눈에서 눈물을 씻기시고 한숨을 춤으로,서러움이 변하여 기쁨되게하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훈련학교에서 여러 단계의 연단과정을 밟았다. 약속은 금방 실현되지 않았다. 때로는 낙심하고 인간 방법을 모색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하나님 방법,은혜를 전적으로 의지하도록 훈련시키셨다.
찬 송 / 535장 (어두운 후에 빛이 오며)
기 도 / 사라에게 웃음을 주신 주님, 나에게도 웃음을 주소서.
죽은 자와 방불한 사라를 권고하신 주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22-930315 우는 아이
찬 송 / 420장 ( 그 누가 나의 괴롬 알며 )
기 도 /
성 경 / 창21:9-21
웃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바로 옆에서는 우는 아이가 있게 마련이다.
웃는 아이의 잔치에 왁자지껄 하는 동안 우는 하나님은 우는 아이의 눈물을 씻기신다.
웃음의 아들의 돌잔치(8절)
이삭(ק)은 미완료 삼인칭 단수로서 뜻은 「그가 웃을 것이다」 혹은 「그가 웃는다」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으로 얻은 은혜의 아들이다.젖 떼던 날 큰 잔치를 베풀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웃 사람들도 모두 웃는 「웃음의 잔치」였다.
모두가 웃는 웃음의 잔치 뒷 구석에는 울음의 아들도 있는 법이다.
깔깔거리는 웃음 마당의 잔치상을 마련하며 아궁이 매운 연기에 눈물짓는 이들이 있다.
여종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다. 이들의 위치가 사뭇 불안하다.
우는 아들과 어머니의 통곡
1)사라-하갈-아브라함의 삼각관계
창 16장에서도 사라와 아브람과 하갈 사이의 삼각 관계가 소개되었는데,
21장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거듭 된다. 여기서는 아들들이 끼어들게 되었다.
두 여인,두 아들 사이에서 아브라함은 엉거주춤한 사내로 나온다.
문제는 여주인 사라에게서 발생된다. 사라는 어느날 여종의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 롱하는 것을 보고 눈에 불을 켜게 되었다. 남편을 부추겨 여종과 아들을 내쫒게 한다.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쫒으라
이 여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사라의 행동은 무례한 면이 있다. 아들 이스마엘은 사라가 불임일 때 자기의 계획으로 하갈을 남편에게 첩으로 주어 상속을 잇도록 했었는데, 이제 아들을 낳게 하자 상속을 일부분 나누어 주지도 않고 맨 손으로 쫒아내고 있다.
2)이스마엘의 요구
장자권주장;“아브라함의 첫 아들은 나다“
3)사라의 말을 듣는 아브라함
16장에서도 아브라함은 사라의 말을 듣고 하갈을 내어쫒는데
21장에서도 아브라함은 사라의 말을 듣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쫒는다.
아브라함은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하갈 어깨에 메어주며 내 보낸다.
4)방성대곡하는 모녀
브엘세바 광야를 헤메던 하갈과 이스마엘은 양식도 떨어지고 물도 동났다.
브엘세바는 지금도 메마른 광야요, 낮 12시부터 3시까지는 상점 문을 닫고 잠자는 살인 적인 더위가 계속되는 곳이다.
하갈은 불볕 더위에 굶주려 죽어가는 어린 자식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살 한바탕 쯤 떨어져 바라보고 앉아 대성통곡을 했다.
얼마나 기구한 인생이요 애꿎은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철없이 떡 달라고 물달라고 보채며 울어대는 아이...
인적없는 광야에서 굶주려 죽어가는 자식을 지켜보는 에미의 메어지는 심정
자식의 앙탈, 에미의 피눈물, 하늘여 보시는가 들으시는가
5)하나님이 그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들으셨다.
하늘은 무심치 않으셨다. 우는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들으시고 급히 천사를 보내셨다.
“하갈아 무슨 일이냐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17-18절
6)하갈의 눈이 밝아졌다.
근심과 걱정이 앞설 때는 보이지 않던 샘물이 밝히 보였다. 가죽부대에 물을 담아다가 이스마엘의 목을 축이고 둘은 새 힘을 얻었다.
사람은 버림받은 감정을 가지면 눈앞의 샘물도 안보인다. 절망감만 갖게 된다.
들어주는(샤마עמשׁ) 분, 지켜 주는 분이 있음을 알 때 소망의 눈이 열린다.
사리를 밝히 보게 된다.
7)하나님이 우는 아이와 함께 하셨다.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20절) 하나님은 하갈을 불러주셨다.
이스마엘의 소리를 들으셨고, 큰 민족 삼겠노라 약속하셨고 함께 하셨다.
웃음의 아들과 함께 웃음의 잔치가 벌어지는 순간, 바로 곁에는 울음의 아이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도 있다. 아무도 보아주는 자 없이 메마른 황야를 헤메지만 하나님은 보시 고 들으시고 약속하시고 함께 하셨다. 소외자-사라에게 버림받은 자라도 주님은 버리지 않는다. 약속의 아들은 사명이 있어 택함받았다. 그러나 다른 아들도 하나님은 들으시고 지켜주신다.어머니에게 모든 아들이 다 소중하듯이 하나님께는 모든 인류가 소중하다.
웃음의 아들 돌잔치에 모여든 사람마다 웃음이다. 아버지도 웃고 어머니도 웃고 이웃도 웃는 「웃음 잔치」이다. 웃음 잔치 뒷 구석에는 매운 연기에 눈물 흘리는 여종과 그 아들도 있다. 눈밖에나서 쫒겨나지만 하나님은 이 통곡하는 아이와 어머니의 소리를 들으시고 복주시고 함께 하신다.
찬 송 / 421장 ( 나는 갈길 모르니 )
합심기도 / 하나님의 눈으로 이웃을 보게 하소서 소외자의 외침에 귀기울이게 하소서
#23-930316 주께서 준비하시리라
찬 송 / 348장 (나의 생명 드리니)
기 도 / 주여, 주께서 주신 생명이니 주의 뜻대로 쓰옵소서.
나의 생명,나의 재능,나의 건강,나의 시간,나의 물질,나의 자녀
모두 주의 것이니 나의 모든 것의 모든 것 되신 주여, 나를 받아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성 경 / 창22:1-14
약속으로 주신 자를 죽이라는 명령에 주저함이 없이 「아멘」으로 응답하였고
처음 약속받은 축복을 다시 받게 되었다(창12:1-3 = 22:16-18).
1. 말씀 앞에 서 있는 아브라함을 주목하자.
말씀이 세 번 주어질 때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있노라)”고 응답한다(1,7,11절)
부름에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담박 순종한다.따지거나 머뭇거리거나 대들지 않는다.
말씀에 “아멘!”하는 법을 완전히 터득한 것이다.
2. “주께서 준비하시리라”는 믿음을 아브라함은 가졌다.
이 말을 할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준비하실지를 몰랐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실 줄 확신했다.
시37:5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아브라함은 더 이상 인간 수단 방법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에 매달렸다.
3. 하나님은 「시험하시는 분(1절)」이며 「준비하시는 분(14절)」이시다.
약속: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이니라(21;12)
명령:이삭을 번제로 드려라(이삭은 죽어야 한다) 22:2
결과: <후손도 미래도 없다> → 다시 창 11:30절의 불임으로 되돌아간다.
약속 취소의 결과로 아브하함의 신앙의 순례는 절망으로 끝나게 된다.
과연 생명 주신 분이 죽음을 명령하실 수 있는가?
하나님은 하나님이심을 주장한다. 「스스로 있는 자」이며, 절대자이시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20:11-)
신앙이란 납득할 만한 것을 수긍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에 응답하는 것이다.
약속에도 “아멘!” 명령에도 “아멘!”
‘주신 분도 하나님 취하여가신 분도 하나님’이라는 신앙으로 하나님께 순종.
아브라함도 약속하시고 자식주시고 바치라명령하시고 준비하실 줄 믿음.
부활하실 십자가에 달리신 분을 이 역설 속에서 만나게 된다.
4. 하나님은 「시험에 들리 않도록」 기도하라고 우리에게도 말씀하셨다.
성도들은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방법에 따르려는 유혹을 받는다.
하나님의 방법과 이 시대의 방법 사이에서 갈등을 갖는 시험을 받는다.
5. 8절의 「준비하시다」는 히브리어 라아(האַ)는 「보다, 미리 보다」는 뜻이다.
시험에 합격한 자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이 없을까 미리 알아보시고 마련해 두신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의식주 구하지 않아도 다 미리 마련되어 있다.
모리아산은 ‘여호와 이레’가 되었다.
모리아는 멜기세덱이 제사장으로 있던 성산이요, 이삭을 드린 곳이요, 다윗이 제사드린 오르난의 타작마당이요, 솔로몬의 성전이 서 있는 곳이다.
7. 신앙이란 수긍가는 지당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불합리함에도 아멘하는 것.
히11:17-19의 해석처럼 아브라함은 약속으로 받은 아브라함이라도 순종하여 드린 것은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는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서 능히 죽은 자라도 살리실 줄을 믿었으며, 이삭은 죽은 자 가운데 도로 받은 것이다. 즉 심자가 위의 죽음과 부활의 응답의 예표인 것이다. 겟세마네에서 시험을 이기시고 십자가 지심으로 삼일만에 부활의 응답을 얻게 되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8:35).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치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지음에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찬 송 / 353장 (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
기 도 / 주신 분도 취하시는 분도 준비해 주실 분도 하나님이시니 언제나 아멘케 하소서!
#24-930317 시험 후에 오는 축복
찬 송 / 363장(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기 도 / 주여, 내게 어려움이 있을 때 낙심치 말게 힘주옵소서.
시련을 통하여 연단시키시고 연단 후에 복을 주시심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성 경 / 창22:15-1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목적은 ‘넘어뜨리려는 유혹’이 아니었고, 중심의 순수성을 살펴 연단하여 ‘상 주시려 하심’이었다.
아브라함의 신앙훈련학교
1 단계 - 약속의 땅을 향한 출발
2 단계 - 약속의 땅이 기근들 때
3 단게 - 친척과의 갈등 =조카 롯과의 이별
4 단계 - 이웃이 어려움 당할 때 = 318명을 데리고 롯을 구출
5 단계 - 다메섹 엘리에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
6 단계 - 이스마엘도 안된다.
7 단계 - 언약갱신;이름바꾸고 약속증표로 할례실시하라.
8 단계 - 천사의 방문
9 단계 - 나 비록 약해도
10 단계 - 이스마엘을 내쫒다
11 단계 - 이삭을 번제로 드려라
12 단계 - 축복
아브라함 생애에 계속된 시련은 복주시려 연단하심이요 택한 그릇답게 살게 하려하심이다.
하나님의 시험의 목적은 넘어뜨리려 하심이 아니다. 뱀이 하와를 시험한 목적과 다르다.
내가 나를 가르켜 맹세하여 선언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므로 더 높은 누구를 가르켜 맹세할 대상이 없으 므로 자기 자신을 가르켜 맹세하셨다. 사랑하는 독자라도 아끼지 않고 바친 아브라함의 결 단에 감탄하여 다시 목을 선언하신다.
복의 선언; 1) 네게 큰 복을 주고
2)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 같게 하리라
3)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 가나안땅을 주시겠다는 표현)
4) 네 씨로 말미암이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라
이런 약속은 반복 되고 있다:12:1-3, 7; 13:14-16 ; 15:7, 18; 24:7; 26:3-4,24.
유대인의 전설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있었던 사건을 사라에게 말하자
사라는 여섯번 울부짖고 죽었다고 한다.아브라함은 미리 사라에게 상의하지 않았다.하나님은 최상의 것을 요구하신다. 아브라함은 최상의 것을 드렸고 최상의 복을 받았다.
어느 유학생의 체험담을 들어보자. L..A.에서 공부하던 그는 여름방학이 다가오자 걱정 되었다. 방학 동안에슨 기숙사의 문을 닫기 때문이었다. 석달의 긴 여름방학을 어디서 보낼까? 통장에 남은 돈으로는 두 달 밖에 하숙할 수 없었다. 우선 하숙방을 정하고 음식점에서 접시닦이 아르바이트를 하여 돈을 벌며 나머지를 채우기로 하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짐을 챙기던 그는 이디오피아 난민들을 위해 구제기금을 보내기로 작정했던 ‘약정서’를 발견하고 더 고민에 빠졌다. 이디오피아 난민 구호금을 내면 하숙방 월세는 한 달 밖에 치를 수 없었던 탓이다. 그래도 굶어 죽어가는 이디오피아 난민들이 눈 앞에 떠올라 먼저 은행으로 달려가 약속한 금액을 부쳤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잘 아는 교수님으로부터 집에 들어오는 즉시 전화를 해달라는 전갈이 있었다. 그 교수님에게 전를 걸어보니 “아내와 함께 여름방학 석달 동안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여행할 계획인데 아이들과 집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니 꼭 부탁한다”는 말씀이었다. 여호와 이레의 주님께 감사드리게 되었다.
찬 송 / 214장(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합심기도 / 서험을 잘 통과허여 축복받게 하옵소서
#25-930318 어머니의 장례식
찬 송 / 543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기 도 / 주여, 우리로 하여금 소망 없는 자들 같이 통곡하며 주저앉지 않게 하소서.
소망 중 본향을 바라보는 자가 되게 하소서.
우리의 주변을 둘러쌓고 있는 근심과 걱정의 절벽들은
위를 바라보며 환하고 밝은 빛 아래 기뻐하게 하는 신호인 줄 알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 경 / 창 23:1-20
이삭을 모리아산에 번제로 드리려 했던 사건 후에 갑자기 사라가 죽었다. 하마터면 모리아산 위에서 연기로 살아져 버렸을 위기촉발의 모리아산 사건을 아브라함에게 전해 들은 사라는 아연실색했을 것이 뻔하다. 사라는 127세를 살고 죽었다. 여걸의 파란만장한 인생여정은 끝났다. 믿음의 어머니 사라의 장례식은 새로운 소망으로 출발이었다.
1. 아브라함은 사라의 주검 앞에서 슬퍼하며 애통하였다.
아브라함은 거친 중동의 광야를 여행할 때 사라는 마음에 맞는 길동무였다.
함께 제단을 쌓고 주의 이름을 부르기도 했고, 기근이 들자 애굽으로 함께 내려갔다.
애굽에서 남편의 목숨을 지켜 주느라 「누이」로 속이며 바로의 후궁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늙도록 자식을 못낳아 늘 남편에게 미안했고,여종 하갈을 첩으로 주기도했다.
여성의 본능으로 하갈을 질투하여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쫒기도했다.
아들 낳으리라는 천사의 약속을 듣고 믿지 못하여 조소하기도 했다.
마침내 한많은 사라가 웃을 날이 왔다. 아들을 낳아 품에 앉은 것이다.
*아브라함은 평생 길동무 되어준 사라의 죽음 앞에 넋을 놓고 울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사라의 주검 앞에 울고 앉아 있을 수 만은 없었다.
2. 일어나 헷 족속에게 가서 매장지를 구하러 나섰다.
아브라함에게 합법적인 땅이 한평도 없었다.가나안땅을 약속받은 땅없는 떠돌이였다.
아브라함은 헷 족속에게 자기를 낮추어 소개한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4절).
그러나 헷 족속은 아브라함을 「주(主)」와 「하나님의 방백」이라 부른다.
즉 아브라함은 「땅없는 나그네」일지라도 뭇 사람이 우러르는 「하나님의 방백」이었다.
* 성도들도 땅에만 집착해서 사는 자가 아니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2:19). 성도들은 하 늘의 시민, 하나님의 권속임을 알고 긍지를 가져야 한다.
3. 아브라함은 사라의 주검을 안치할 매장지를 웃돈을 얹어주고 샀다(16-18절).
헷 족속은 매장지를 그저 아브라함에게 주고자 했으나,
헤브론의 촌장 에브론과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계약을 맺고
헷 족속이 증인이 되었고, 400세겔의 준가(상당한 돈)을 주고 합법적으로 샀다.
4. 헤브론 막벨라 굴은 약속의 땅의 보증이 되었다.
사라의 매장지가 되었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레아 등 족장들의 매장지가 되었다.
사라의 매장지 막벨라굴은 약속의 땅의 첫 합법적 소유요, 전체 땅의 보증이 된 것이다.
23장에는 신앙적인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매장지 구입을 위한 협상,정당한 구입 등 상거래에 관한 세속적인 이야기만 나온다. 그러나 세속적 상거래, 합법적 땅문서, 등기이전된 막벨라굴은 비록 작지만 가나안땅 소유의 보증이 된 것이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 모두 땅을 헐값에 버릴 때 본향으로 돌아올 날을 바라보며 땅을 사서 등기이전했다. 절망중의 백성에게 소망을 주었다.「반드시 돌아오리라」 막벨라 굴은 소망의 씨앗이다. 삼년 가뭄을 물리칠 큰 비를 내려 달라는 엘리야의 기도는 「손바닥만한 구름」으로 시작되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큰 산을 옮기는 약속의 보증이 된다.
찬 송 / 536 장(이 곤한 인생이 )
합심기도 / 1)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이라 큰 약속의 보증으로 확신 갖게 살게 하소서
2) 나그네와 행인 같은 인생길 본향을 사모하게 하소서
#26-930319 아들 장가보내기
찬 송 / 424장 (나의 생명 되신 주)
기 도 / 주여, 광야 같이 험한 인생길 사는 동안 무슨일 만날른지 모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돌보시듯 인도하시고 형통한 길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 경 / 창24:1-9
1. 아브라함이 늙은 종(엘리에셀)에게 아들 장가보내 줄 것을 부탁」 1-9절
아브라함은 매우 늙어서 아들 장가보내기를 더 미룰 수 없었다.
충성스런 늙은 종(엘리에셀)에게 환도뼈 맹세를 하게 했다.
1) 가나안 여자는 안되고 내 고향 내 족속의 여자여야 한다.
2) 여자가 따라 오지 않아도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들어가지 말라
3) 이 땅을 후손에게 주리라 하신 하나님이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시리라
4) 여자가 좇아오지 않으면 이 맹세와 너는 상관이 없다.
* 가나안 문란한 풍습과 종교에 물들지 않도록, 혙통의 순수성을 지키도록,
이삭을 데리고 아람땅으로 돌아가서는(역출애굽) 안된다고 당부.
2.엘리에셀의 기도;“순적히 만나게 하소서” 10-27절.
엘리에셀의 기도(12-14절): 아브라함에게 은혜 베푸사(12, 14절)=은혜(인자,헤세드ד)
순적히 만나게 하소서(12절): 주께서 정하신 자(14절 ),증표 이루는 소녀;
물 긷는 소녀에게 ‘네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하면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고 응하는 친절한 아가씨→정하신 자
기도의 응답: 엘리에셀의 기도가 마치자마자 물길러 나온 소녀가 있었다.
아리땁고 순결한 처녀였고 기도한대로 응하는 친절하고 부지런하고 똑똑한 아가씨였다.
엘리에셀은 반세겔 금 코걸이 하나와 십세겔짜리 금팔찌 두개를 소녀에게 주었다.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 낳은 브두엘의 딸이니이다”
감사기도: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바룩 야훼הוהי וּר).인자와 성실(ת ד)의 주께 서 길에서 평탄케(י) 인도하여(ה) 브두엘집 도착함.
3. 엘리에셀과 리브가 집안과 대화」 28-61절
리브가가 집으로 달려가 알리고 엘리에셀은 집으로 초대되어 혼사는 성사된다.
리브가는 순수히 엘리에셀을 따라 나섰다.
리브가의 식구들은 리브가의 결혼을 축복해주었다(61절).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문을 얻게 할지어다”61절
4. 이삭은 리브가를 아내를 맞음:사라의 장막에서 맞고,모친 사망 후 큰 위로를 받았다62-67
주께 충성된 자가 받는 복
1) 아브라함 가솔은 모두 큰 복받았다: 더 이상 고민거리 없고 만사가 척척 잘 된다.
아브라함도 복받았고, 이삭도 얻었고,종도 복되고,리브가도 복되다(60절).
2) 만사가 형통하였다: 주의 섭리적 돌보심
‘형통(평탄,번영)하다’(י < חלצ)란 단어가 네번 나온다(21, 40, 42, 56절).
여호와께서 천사를 그의 앞에 보내어 평탄(형통)한 길을 주셨다.
3) 주의 은혜와 성실하심이 함께 했다(12,14,27,49절)
4) 주께서 인도하셨다(27, 47절 ה) ;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고,의의 길로 인도하신다(시23:2-3).
이스라엘이 광야유랑할 때도 인도하셨다(출13:17)
「정하신 자」에게 인도했다:현숙한 여인으로서 모든 덕을 갖추었다.
예쁘고=보기에 심히 아리땁고(토바트 마르에 메오드ד ה ת,
순결하고=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처녀(베툴라 브이쉬 로예다ה א שׁיאּ הוּת)
맘씨 착하고, 친절하고, 부지런하고, 똑똑하고,순종적이고,예절바른 여자.
주께 충성된 자는 주께서 자기 천사를 앞에 보내어 거친 인생길에서 형통케 인도하시고 순적하게 주께서 정하시고 예비하신 인물을 순적히 만나게 하신다.
찬 송 / 444장 (예수가 거느리시니)
합심기도 / 큰 복주소서,형통한 길 주소서.은혜와 성실을 끊이지 마소서.내 길 인도하소서.
신랑되신 예수께 리브가 같은 신부되기 원합니다.
#27-930320 아버지의 장례식
찬 송 / 434장 (나의 갈 길 다가도록 )
기 도 /
성 경 / 창25:1-18
1.아브라함이 아랍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1-6절
그두라(향기)를 아내로 맞아 여섯 아들을 낳았다; 시므란 욕산 므단 미디안 이스박 수아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족속의 조상만이 아니라 열국의 아비이다.
2.아브라함의 장례식 7-11절.
아브라함의 향년은 175세였다. 가나안에 들어온지 100년만에 죽었다.
향복한 죽음 즉 「好喪」이었다.
8절 => 壽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 돌아갔다.
이삭과 이스마엘이 막벨라 굴에 사라와 합장하였다.
* 믿음 좋은 노인이 운명할 시간을 맞게 되었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자 친구에게 불을 밝혀 달라고 부탁하였다. 갑자가 노인이 외쳤다. “친구여, 이제 불을 끄게. 찬란한 태 양이 솟아오르고 있네” 노인은 찬란히 빛나는 광채에 싸여 운명하였다. 인생의 황혼이 저물면 더 찬란한 태양이 솟아오른다는 사실을 친구는 경험하였다.
아브라함의 유업은 죽음으로 끊나지 않았다. 이삭, 또 이삭의 두 아들이 13살이나 되었다.
3.이스마엘의 후손도 번성했다 12-18절.
이스마엘의 아들도 야곱처럼 12아들이었고 각 족속을 이루었다.
느바욧 게달 앗브엘 밉삼 미스마 두마 맛사 하닷 데마 여둘 나비스 게드마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처럼 행복한 임종을 맞았다.
17절=> 향년이 일백삼십칠 세에 기운이 진하여 죽어 가기 열조에게 돌아갔고
4.이삭의 아들들 19-34절.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사라처럼 잉태하지 못하므로 애를 태웠다.
리브가는 여자 중 참하고 생기발랄한 현숙한 여인이었어도 애기가 없어서
애태우다 결국 전능자 주님께 부르짖게 되었다.
=> 더할 나위없는 행복한 부부로 하여금 무릎꿇게 하여 믿음 키우시려는 뜻임.
*혈과 육신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의 뜻으로 나는 자에게 하나님 자녀되는 권세주심.
이삭이 주께 간구하였더니(아타르ר) 들어주셔서 리브가가 잉태하였다(ה).
리브가의 태 속에서 두 아이를 서로 싸우므로 견딜 수 없어서 주께 들어가 물었다.
23절 => 두 민족이 네 태 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내 복 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나님은 성도의 간구를 들으신다.잉태 못하던 리브가의 뱃속에서는 두 민족이 다투었다.
은혜의 「선물」이며 「축복」이다.
아브라함이 죽을 때는 이미 야곱과 에서가 13살 때이다. 이스마엘의 아들 12 족속들, 리브가의 배에서 나온 두 민족.... 아브라함의 살아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민족의 조상들이 탄생되었는가?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였다. 외로운 노인, 오직 하나님께 충성된 믿음의 조상의 한 평생이 막을 내렸고, 약속의 보증인 막벨라 굴에 안장되었다. 믿음의 자팡이 하나만 의지하고 유프라데 강을 건넌 아브라함은 절대 순종을 통해 복의 근원이 되었다. 그는 과거의 명성과 현재의 안락에서 탈출하여 약속을 바라보며 개척자의 길을 갔다. 개척자,선구자,탐험가의 길은 거칠다. 그러나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모험하는 이들 때문에 인류문명은 소망의 닻을 올린다. 뉴옥의 중심가 맨하탄은 인디언 소유의 자갈밭이었다. 이곳에 이주해온 네덜란드 사람들은 양주 한 병에 이 자갈밭을 사서 개간하기 시작했다. 이 개척자들에 의해 세계 최대의 번화가가 이루어진 것이다.
찬 송 / 344장 (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
합심기도 / 과거에 매이거나 현재에 빠지지 않고 약속의 미래를 향한 개척자 되게 하소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복을 주옵소서
#28-930321 팟죽 한 그릇 값
찬 송 / 93장 (예수는 나의 힘이요)
기 도 /
성 경 / 창 25:28-34
1.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25:23
리브가의 임신은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실 뿐만 아니라 자기 목적을 위해 선택하신다.
기도의 응답으로 주신 「선물」인 야곱은 주신 분의 간섭으로 「갈등」을 겪는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도 택함받았기에 세상에서는 미움을 받고 갈등을 겪게 되는 것이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라도 장자 이스마엘을 쫓아내고 이삭을 상속자로 삼았지만.
형보다 동생을 먼저 대하는 것은 고대근동의 풍습이 아니었다(29:26).
이스라엘에서도 장자에게 더 상속을 주는 것이 법이다(신21:15-17).
장자의 특권은 당연한 권리요 사회법이요, 습관이었지만
하나님은 인간 세상의 제도나 습관에 따라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자유로우신 분이요, 인간 세상 방식대로 따르시는 분이 아니시다.
성경에서 「작은 자」는 특권에서 제외된 자이다.
이런 사회 통념상 특권에서 제외된 사람들은 ‘고아 과부 나그네’ 등이다.
신약에서도 ‘작은 자’란 ‘세리와 죄인’을 뜻한다(마9:10-13, 11:16-19)
주님의 교훈: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된다」마19:30
바울의 교훈: 「하나님은 세상에서 낮고 천한 자를 택하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
야곱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지만 둘째로 태어났다.
야곱 = 발꿈치를 잡았다.
어머니 뱃속에서도 싸우던 야곱은 형을 발꿈치로 밀어내고 들어섰다.
야곱의 생애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갈등」을 겪는다. 생애 전체가 갈등의 생애이다.
2. 팟죽 한 그릇 값 25:29-34
야곱과 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대조적이다.
에서 => 사냥을 즐기는 활동가 =>들로 나가 사냥을 즐김 => 식욕왕성 배고픔 멸시
야곱 => 집안에 있는 조용한 성격 =>집안에서 팟죽을 끓임 => 민첩한 지혜
붉은 것과 장자권
팟죽 =>붉은 것 => 에돔( ’dm = red, edom)
붉은 것 => 세속적인 번영, 물질적 풍요, 땅 => 즉 에서는 땅의 번영과 왕성에 관심.
신앙이란 영적, 정신적 부요와 번영 보화를 더 귀히 여기는 것이다.
굶주림과 당장=> 좀 인내하고 참지 못하고 당장 허기짐을 위해 장자권이라도 팔다.
신앙이란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결국 팟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넘긴 에서는 영적인 깊이가 전혀 없는 물질적이고 현세적이고 즉흥적인 사람으로 순간의 허기증을 참지 못하여 장자권을 경멸히 여겼다.
알라스카는 군사전략상, 항공 교통상, 어업, 산림 등 모든 면에서 미국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본리 알라스카는 러시아 영토였지만 쓸모 없는 북극 지역이기 때문에 헐값에 팔아 넘겼다. 지금은 얼마나 후회하고 있을까? 잠시 잠깐의 유익을 위해 그릇 저지르는 일은 없는지. 물질적인 것을 위해 영적인 것을 팔아넘기는 일은 없는지 생각해 보자.
찬 송 / 102장 ( 주 예수 보다더 )
합심기도 / 영적인 것을 귀중히 여기게 하소서
물질 만능주의의 세상에서 영적인 은혜 소중히 여기게 하소서
#29-930322 창대,왕성, 거부가 되다
찬 송 / 492장 ( 나의 영원하신 기업 )
기 도 /
성 경 / 창 26:1-33
예루살렘과 아테네, 종교와 세속, 교회와 뒷골목 사이는 갈등의 연속이다.
그러나 이삭의 생애는 신앙과 세속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1. 그 땅에 흉년이 들어도 말씀을 따라 살았지 애굽으로 내려가지는 않았다.
1,2절 =>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 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2 아버지 아브라함의 순종한 결과임.
5절 =>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3.. 물질의 큰 복을 받음(12-14절)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불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흉년 중 백배 수확 = 예수님께서 충성된 자에게 백배로 거둔다고 말씀하심을 실현한 사람.
창대,왕성,거부 = 크다(가돌 לוֹד)는 단어가 세번 거듭 나옴.
그 사람이 커지고 가면 갈수록 커져서 마침내 매우 커졌다.
(ד ל י ל שׁיאּ לוֹד)
소떼와 양떼와 노복이 많고 불레셋이 시기할 정도로 복받음.
4. 가는 곳마다 물줄기 찾아냄
고대근동 베두인에게는 물줄기는 생명샘물줄기였다.
다른 사람은 대를 잇어 한 물줄기 얻기도 힘든데 파는 곳마다 샘물 솟았다.
하나님의 선물인 생수가 늘 흐르는 사람이었다.
5. 이삭은 「평화의 사람」 29:31 = 시37:37
그랄 사람과 우물 싸움에서 양보:에섹(다툼)=>싯나(또 다툼)=>르호봇(장소가 넓음)
6. 불신자도 인정한 사람.
이삭이 아리따운 아내를 누이라 속였으나 그랄왕 아비멜렉이 보호함.
아비멜렉이 언약맺기 자청함.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28절)
7. 제단 쌓고 여호와를 불렀다(25절)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옴」(략1:17)을 깨 닫고 감사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아브라함은 축복을 약속으로 받았다. 이삭은 축복을 현실로 받았다. 커지고 날이 갈수록 더 커져서 마침내 심히 커졌다. 주변 원수들도 「주께서 함께 하심을 보고」 급히 돌아왔다. 물질적 축복 크게 받고도 조금도 교만치 않고 제단 쌓고 주님 이름 불렀다. 신앙과 생활, 교회와 세속 사이에, 불신자들과 사이에 조금도 갈등이 없고 흉년에도 백 배를 거두고 쫒교 다녀도 주께서 여유를 넓게 해주셨고 양보 속에 더 큰 축복을 받은 온유했지만 땅을 차지하고 평화했지만 강해진 인물이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얻으리라.
찬 송 / 489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30-930323
축복이 뭐길래
찬 송 / 542장 (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뵈었으니 )
성 경 / 창27:1-45 (읽을 성경 27:18-29)
27장은 25:19-34의 연속이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는 예언이 어떻게 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늙은 이삭이 맏아들 에서에게 베풀고자한 축복을 야곱이 가로챘는데, 축복받은 야곱은 형의 분노를 피하여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매사가 잘 되어야 할 축복이 한 가정 형제 사이에 미움으로 살기등등한 긴장이 감돌게 되었다. 그러나 야곱에게 선언된 축복은 가족의 의도에는 아랑곳 않고 제 길을 가는 것이다.
1. 촉복의 의미
족장들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축복과 언약을 죽기 전에 「복의 안수」를 통하여 자손에게 물려주는 풍습이 있었다. 이 때 손을 얹어 복을 선언하는 성례전적인 의식은 단순한 언어, 손짓이 나리라 능력이 임하는 것이었다. 죽산의 대부분을 물려주는 유언이상의 행위였다. 이런 축복의 능력을 야곱의 가족 4식구는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이삭과 에서에게 비밀히 일렀고, 리브가는 야곱에게 그 복이 임하도록 「거룩한 열심」을 가졌던 것이다.
2. 장자가 받는 복
이삭이 에서에게 죽기전에 마음껏 복을 전애주고자 하는 것은 당연했다. 맏아들이 장자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25:29-34에서 에서는 장자권을 경홀히 여기고 팟죽 한 그릇에 야곱에게 헐 값에 팔아넘긴 적이 있다. 그러므로 당연히 축복은 야곱이 받아야 옳다. 또 창25:23에서 리브가 뱃속에 두 형제가 싸울 때 하나님은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는 예언을 하셨다. 무대 뒤에서 연극을 꾸미고 야곱을 에서로 분장시켜 사기극을 연출케 한 분장기술자 리브가와 주인공 야곱의 사기극은 이미 미리 위로부터 정해진 축복이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고 제 방향으로 야곱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도구로 쓰였을 뿐인 셈이다.
3. 아버지와 맏아들의 밀담 27:1-4
이삭은 맏아들 이삭이 듬직하고 마음에 들었다. 날 때부터 온 몸에 붉은 털이 많은 혈색 좋은 우량아였는데 자라면서 사내 대장부답게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사냥을 해다가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렸다. 늙은 아버지가 자랑스런 맏아들에게 죽기 전에 마음껏 복을 전해 조고 싶은 심정은 당연한 것이다.
4. 리브가와 작은 아들의 계략 27:5-17
리브가는 쌍둥이가 뱃 속에서 뛰어놀 때부터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는 예언을 마음에 담고 있었고, 계집애 같지만 늘 집안에 머물며 어머니 치맛자락 붙잡고 자라는 야곱을 좋아했고, 지혜롭고 민첩한 막내가 우직하고 들나귀 같은 맏이 대신 약속의 아들될 것을 믿었다. 아버지가 맏이에게 은밀하게 하는 밀담을 엿듣고, 야곱을 에서로 분장시켜 「축복」을 훔치도록 했다. 어머니로서 자기에게 소중자에게 복받게 하려는 필사적 노력이었다.
5. 막내가 아버지를 속이다.
아버지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축복을 마음껏 아들에게 전해주었지만, 이삭 자신이 원하는 아들에게가 아니라 야곱에게 하게 되었다. 이삭은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었다.
축복의 내용 : 하늘의 이슬, 땅의 기름짐, 풍성한 곡식, 잘됨,평강, 어미 아들이 굴복함.
6. 아버지와 맏이의 슬픔 27:30-40
맏이가 장자권을 누려야 함은 당연하고 풍습에 따라 아버지는 에서에게 복주려 했는데 엉뚱하게 잘못되자 이삭은 심히 크게 떨었고, 에서도 크게 분노하며 동생에 대해 복수의 칼을 갈게 되었다.
7. 가정 불화와 위기 41-45
리브가와 야곱의 음모라 들통나고 에서의 분노로 이삭 집안은 편치 않았다. 야곱이 축복받은 결과란 「가정 환난」과 「도망하는 신세」인가? 가정환난을 통해 야곱의 하나님의 축복의 그 뜻으로 쓰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축복이란 공동묘지 같은 정적, 안일, 조용함 만이 아니라 위기요, 환난이요 변화인 것이다.
찬 송 / 502장 (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
31-930324 환난을 보는 눈
찬 송 / 363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기 도 /
성 경 / 창27:46-28:9
나이 많아 눈이 보이지 않는 이삭을 깜쪽 같이 속이고 형 에서로 꾸미고 축복을 훔쳐 받은 야곱은 도끼눈 되어 눈에 불켜고 으르렁거리는 에서의 눈을 피하여 멀리 하란 외삼촌 집으로 도망갈 수 밖에 없었다. 축복은 커녕 가정에 환난이 찾아왔고, 범사가 잘 되기는 커녕 평화롭던 가정이 평지풍파를 맞게 되었다. 일이 이쯤 되면 음모를 꾸민 리브가가 백배 사죄해야 옳지 않겠는가? 우리 속담에 암탉이 울면 집안 망한다는 말이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일까?
1. 오히려 큰 소리 치는 리브가 27:46
‘똥뀐 놈이 오히려 큰 소리 친다’는 말이 있는데 리브가야말로 가정에 풍파는 만든 인물 인데도 자중할 줄 모르고 오히려 큰 소리 치며 앙탈이다. 에서가 헷 족속 여자에게 멋대로 장가들은 일을 트집잡아 살맛이 안나는데 야곱까지 형을 본받고 그런다면 더욱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지리라는 것이다. 즉 문제의 발단은 에서가 신앙 가정의 상속자 구실을 못하고 헷 족속과 피를 섞어 신앙 가정의 순수성을 흐려 놓았다는 뜻이다. 야곱까지 가나안 여자에게 장가들게 할 수야 없지 않느냐는 부추김이다.
이삭이 세상 방식대로 에서를 상속자 삼고, 신앙 혈통 흐려 놓아도 방관하는 것과 반대로 리브가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 방식에 순종하여 상속자 삼고, 조상의 약속과 신앙혈통의 순수성을 지켜가려는 「말씀에 아멘」하는 태도를 가졌다.
2. 이삭이 야곱에게 하란땅 여자를 아내로 맞도록 보냄 28:1-5
이삭은 아내의 부추김으로 겨우 신앙의 눈을 떠서 야곱을 축복하고 하란으로 본낸다.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생육하고 번성케 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삭은 리브가를 꾸짖거나 야곱을 야단치기는 커녕 오히려 축복해주었다.
영안이 밝은 리브가의 「거룩한 열심」이 옳았기 때문이었다.
3. 에서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28:6-9
1) 에서는 아버지께서 야곱을 꾸짖기는 커녕 축복하고 가나안 여자와는 결혼하지 말라며 밧단아람 땅 외삼촌 집으로 야곱을 보내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2) 자기가 부모님 뜻을 묻지도 않고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은 일을 후회하며
3) 이스마엘 딸 중에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다.
결론: 리브가의 「거룩한 열심」과 불평은
첫째로 이삭에게 신앙의 눈을 열어주었고
둘째로 야곱을 약속과 신앙의 순수한 혈통을 지키도록 했고,
세째로 에서에게도 지나치게 경거망동하고 세속적으로 혼잡된 자신을 반성케 했다.
결국 이삭 가정의 환란은 영적인 깨우침을 주는 계기였다.
야곱이 외삼촌 집으로 가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인 것이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보이지 않는 손길로 바른 목적으로 이끄신다.
찬 송 / 428장 ( 내가 환난당할 때에 )
합심기도 / 환난당할 때도 육신 눈으로 보고 낙심치 말고 영안 밝히사 주의 손길 보게 하소서
#32-930325 벧엘의 꿈
찬 송 / 364장(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기 도 /
성 경 / 창 28:10-22
야곱은 갈등의 사람이다. 어머니 뱃속, 팟죽으로 장자권 구입, 축복을 쟁취함.
하란으로 가던 도중 해가 저물어 들녘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평안한 가정을 떠나 사람 살지 않는 들짐승들이 울부짖는 무서운 들녘에서 잠들게 되었다.
1. 외로운 들판이 하나님 만나는 장소였다.
어머니 아버님 께시는 평안한 집에서는 하나님 만나는 체험이 없었다.
안락한 가정을 떠나 한적한 들판, 아무도 없는 외롭고 무서운 곳에서
그는 하나님을 만났다.
야곱이 겪은 환난 1) 가정에서 떠나게 함이요
2) 벧엘에서 하나님 만나게 함이었다.
이 무서운 들판에서 비로서 야곱은 자기 생애에 간섭해 오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외롭고 무서운 곳이 아니라.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곳.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곳.
하늘 문이었다.
야곱은 여기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하나님 만나는 체험을 한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약속을 해주셨다.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찐대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2. 벧엘의 돌베개
야곱의 생애에서 최대의 위기, 고독하고 두려움과 떨림의 순간.
돌베게 하고 자던 그 곳이 바로 야곱의 생애를 붙잡고 계신 주님의 계신 곳이었다.
바로 고독의 순간에 하나님을 만났다. 인간적으로 외로운 순간 「하나님이 함께 계심」
하나님의 약속을 들었다.
베고 자던 돌베게는 하늘의 문 , 하나님 성전의 돌기둥이 되었다.
3. 야곱의 서원 20-22절
서원 조건 : 여행길을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사 지켜 주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평안히 아비집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약속내용 1) 여호와게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3) 십일조를 드리겠나이다.
어머니 사랑만 받고 자라던 야곱, 형의 미움을 받고 하란으로 가던 도중 들짐승 울부짖는 들녘에서 돌을 베개하고 잠들었으나, 인생 최대의 고독과 불안의 순간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평안하던 집에서 체험하지 못한 경험을 하게 되었고 하나님께 서원하는 종교적인 사람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내 생애 외로운 순간은 주님 만나고 영적인 사람되는 제2의 기회이다.
내가 만족하던 우물 안의 개구리같은 세계관을 탈출해야 한다. 작은 이권에 눈에 불을 켜고 실강이 하고 다투던 울타리에서 벗어나야 하늘문이 열리고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하는 영적인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 나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다.
찬 송 / 364장 (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기 도 / 좁은 울타리 벗어나 축복의 세계, 영적인 세계, 주님의 세계로 이끄소서.
#33-930326 사랑이 뭐길래
찬 송 / 316장(목마른 자들아)
기 도 /
성 경 / 창29:21-35 (읽을성경 / 창29:21-30)
고향을 떠나서 밧단아람으로 가던 야곱은 벧엘에서 돌베개하고 잠자다가 하나님을 만났다. 은혜 충만한 야곱은 발걸음도 가볍게 하란(밧단아람) 성밖 한 우물에 이르렀다.
1. 우물가의 만남 29:1-14
1) 야곱은 우물곁에 누워있는 양무리 세 때와 목자들을 통해 외삼촌 소식을 듣고,
2) 순적하게 하란땅에 도착했음을 알았고
3) 마침 양떼에게 물먹이러 오는 라헬을 만났다...반가와서 입맞춤.
4) 라헬은 집으로 달려가서 아버지 「라반」에게 알렸다...라반과의 입맞춤.
아주 목가적이고 행복한 장면을 연상할 수 있다.
우물가는 만남의 장소이다.
1) 물을 깃는 여인들이 만나서 이야기 꽃을 피우는 장소요,
2) 성서에서는 여러 복된 만남이 우물가에서 이루어졌다.
엘리에셀/리브가, 야곱/라헬, 모세/십보라 예수님/사마리아 여인.
2. 사랑에 눈먼 사내 29:15-20
라반의 보수제안: “네가 나의 조카이긴 하다만 나의 일을 거저 할 수야 없지 않느냐?
너에게 어떻게 보수를 주면 좋을지 네 말좀 들어보자”.
야곱의 요구; “제가 칠년 동안 외삼촌 일을 해드릴 테니
그 때 가서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과 결혼하게 해주십시요”.
라반 => 첫째딸 레아 = 눈매가 부드러웠으며
둘째딸 라헬 = 몸매가 아름답고 용모도 예뻤다.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맞으려고 칠년 동안이나 일하였지만
라헬을 사랑하기 때문에 칠년이라는 세월을 마치 며칠 같이 느꼈다(20절).
사랑이 뭐길래 7년 머슴살이를 라헬과 결혼한다는 설래움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3. 속이고 속는 세상 29:21-30
야곱은 머슴살이 칠년이 지나고 성대한 결혼식을 마치고 벅찬 마음으로 첫날밤을 보냈다.
라헬을 사랑하기에 칠년을 하루같이 고된 일 힘든 줄 모르고 해왔지 않았던가?
그러나 아침이 되어 야곱이 눈을 떠보니 「레아」가 아닌가? 이 웬 날벼락이냐?
야곱이 라반에게 항의했다:“외삼촌께서 제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왜 저를 속이셨습니까?”
라반의 능청맞게 대답했다:“우리네 풍습으로 큰 딸보다 작은 떨을 시집보낼 수는 없다네. 작은 딸도 줄테니 칠년을 더 일해주게”.
팟죽 한그릇으로 헹한테 장자 명분도 샀으며, 형이 받을 축복도 속여 받았던 약싹빠른 야곱이
이번에는 자기보다 약싹빠른 외삼촌 라반에게 철저하게 속고 만다. 속이고 속는 세상. 뿌린대로 거두는 세상임을 실감케 된다. 라헬을 사랑하였기에 칠년을 더 라반집에서 머슴살이 했다.
4. 하나님은 누구를 사랑하는가?
31절) 주께서는 레아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레아의 태를 열어주셨다.
루우벤 = 주께서 나의 고통을 살피시고 나에게 아들을 주셨구나
시므온 = 주께서 내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하소연을 들으시고 아들을 주셨구나
레 위 = 내가 아들을 셋이나 낳았으니 남편도 별수없이 내게 단단히 매이겠지
유 다 = 이제야 말로 내가 주를 찬양하겠다.
야곰은 사랑에 눈멀어 14년을 며칠 같이 보냈다. 사랑에 눈멀었고 사랑 앞에 머슴살이도 즐거웠다. 사랑하기에 세월가는 줄 몰랐고, 아까운 것 더 귀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야곱이 라헬 을 열애할 때, 하나님은 레아를 사랑하사 복 주셨다.
찬 송 / 169장 (강물 같이 흐르는 기쁨)
합심기도 /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의 일을 힘든 줄 모르고 하는 성도되게 하소서
주님의 사랑받는 성도 되기 원합니다.
#34-930327 아들이 뭐길래/아들낳기 경쟁
찬 송 / 197장 (이 세상 험하고)
기 도 / 주여,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 하셨건만
우리는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여, 전도하여 생명을 낳게 하소서. 성령의 능력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읽을성경 / 창 30:1-24
1. 나도 아이를 낳게 해주셔요, 그렇지 않으면 죽어버리겠어요.1-2절
라헬은 몸매가 아름답고 용모가 예뻐서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 했지만 자식을 낳지 못했다.
자녀를 낳지 못하는 것은 수치였다
라헬은 쑥쑥 아들을 넷이나 낳은 언니를 시새우며, 야곱에게 앙탈을 부렸다.
말도 안되는 시새움이요, 앙탈이지만 아기를 낳고 싶어하는 라헬의 솔직한 소원이었다.
아들을 낳게 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셨다=(사라,리브가,한나,엘리사벳).
29:31=> 주께서 레아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레아의 태를 열어주셨다. 라헬은 임신하지 못하였다.
자녀를 낳고 못낳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다.
유대 랍비 전승 ; 하나님은 네 개의 열쇠를 가지고 계시다 --> 구름,마음,무덤,태
2. 라헬의 아들 낳기 첫째 노력:3-8절
몸종 빌하를 씨받이로 줌 “빌하의 몸을 빌려서 나도 당신의 집안을 이어가겠어요”
단 =>그가 판단하였다
“하나님이 나의 호소를 들으시고 나의 억울함을 들어주시려고 아들을 주셨다“
납달리 => 겨루어서 이겼다.
“내가 언니와 크게 겨루어서 마침내 이겼다”.
레아도 실바를 씨받이로 줌.
갓 => 행운 “내가 복받았다”
아셀=>행복 “ 행복하구나 여인들이 나를 행복하다고 말하리라”
3. 라헬의 아들 낳기 둘째 노력:14-15절
르우벤이 합환채를 캐어왔다.
합환채는 작은 토마토 같은 노란 열매를 다닥다닥 맺히며, 뿌리는 사람 모습 같다.
아기 갖지 못하는 여가가 먹으면 임신케 하는 효력이 있다는 전설이 있다.
라헬은 합환채를 이용해 애를 낳아보려 했다. 그러나 미신적일 뿐이다.
레아는 합환채 없이도 아들 낳았다.
잇사갈=>값 “내가 나의 몸종의 남편에게 준 값을 하나님이 갚아 주셨구나”
스불론=>잘해 주다 “나의 남편이 나에게 잘해 주겠지”
라헬도 드디어 아들을 낳았다.=>합환채 효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들어주심.
4. 생명 주심은 하나님 선물
22절 “하나님은 라헬도 기억하셨다.하나님이 라헬의 호소를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열어주셨다.
기억하셨다(자카르 ר) 들으셨다( 샤마 ע ) 열어주셨다(파타흐ח)
요셉=> 더하다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벗겨 주셨구나.
주께서 나에게 또 다른 아들 하나를 더 주셨으면 좋겠다“
창 30장은 야곱을 사이에 두고 두 자매의 아들 낳기 경쟁을 벌인다. 라헬은 몸매도 아름답고 용모도 예뻤지만 자식을 낳지 못하는 부끄러움 때문에 야곱에게 「나도 아들 낳게 해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고 말겠다」고 앙탈을 부렸다. 몸종을 씨받이로 주기도 해보고, 합환채의 효력을 의지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주께서 라헬을 기억하시고 하소연을 들으시고 태의 문을 여시니까 「요셉」을 낳게 되었다. 생육하고 번성키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을 얼마나 이루어 드리고 있나? 라헬처럼 기도해보자, 나도 전도하여 결실을 얻게 하소서 그렇지 않으면 죽겠나이다.
찬 송 / 275장(저 죽어가는 자)
합심기도 / 나에게도 전도의 열매 맺게 해주소서.
#35-900328 서러운 서가살이
찬 송 / 366장(어지러운 세상 중에)
기 도 / 주여, 나그네 인생길 살면서 욕심부리고 탐내며,사랑하고 미워하며,
세상 일에 분주하게 수고하며 허송 세월할 때, 주님 나를 인도하소서.
타향살이 20년만에 큰 부자 되도록 축복하신 주여, 내 인생길도 축복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성 경 / 창 30:25-43
형도 속이고 아버지도 속였던 약싹빠른 야곱, 외삼촌 밑에서 속고 또 속으며 어연 14년을 두 아내 위해 머슴살이 하며 세월을 보냈다. 쇠경 한푼 못받고 건진 거라고는 두 아내와 11남 1녀의 자식 농사만 풍성히 거두었다. 언제까지 지독한 구두쇠 외삼촌 밑에 허송세월할건가? 이제 홀홀단신도 아니요 먹여 살릴 처자식도 딸린 몸 자기 인생도 돌볼 처지가 되었다.
1. 제가 고향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저를 보내 주십시요.
타향살이 14년 동안 라헬과 사랑에 빠져 멋모르고 보냈지만 불현듯 고향산천 그립고 늙으신 부모님 모습이 그리웠다. 아벗님은 돌아가셨겠지만 어머님은 어떠하신지?
1) 라헬로 잉태 못하던 부끄러움을 벗고 「요셉」을 낳았다.
11남 1녀의 가솔을 책임져야 할 어엿한 가장이 되었으니 남의 밑에만 살 수 없었다.
2) 처가살이 나그네 인생은 잠깐 뿐이지 돌아갈 약속의 땅 「본향」이 있었다.
3) 쇠경은 못주더라도 「 두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가게 하락해달라」고 부탁했다.
레아를 위해 7년 라헬을 위해 7년 도합 14년을 머습살았으니 마땅한 요구였다.
4) 라반도 야곱 때문에 복받은 것을 점쳐서 알았다.
4) 야곱이 라반집에 왔을 때는 살림이 궁색했지만 지금은 떼가 불어나 큰살림이 되었다
이것은 주게서 야곱 때문에 라반 집에 복주신 것이었다(30절).
* 주게 복받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복받게 한다. 야곱 때문에 라반이 복받았고,
요셉 때문에 보디발 집이 복받고 애굽 나라가 복받았다.
라반은 이런 복덩이를 쉬 나가게 할 수 없었다.
2. 라반과 야곱의 흥정;
경제적으로 이해타산이 빠른 라반은 야곱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28,31절
1) 라반은 이제부터는 무보수가 아니라 보수를 주겠노라 제안한다.
“자네의 품삯은 자네가 정하게. 정하는대로 주겠네” 28절
“그러면 내가 자네에게 무엇을 주면 좋겠는가?”31절
2).야곱의 제안;
“무엇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제게 한 가지 일만 허락해 주시면
제가 장인 어른의 가축 떼를 계속 먹이고 돌보겠습니다” 31절
야곱은 라반에게 여러 차례 속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라반의 속마음을 잘 알았다.
그래서 매우 가벼운 듯한 제안을 라반에게 했다.
3)야곱의 몫은 무엇인가?
양떼 중 얼룩이와 점박이, 염소떼 중에 점박이와 얼룩이들를 삯으로 주십시요, 32절
4)라반은 야곱의 제안을 허락했다.34-36절 자기 때와 야곱 떼 사이 사흘길 떼어놓음.
3. 큰 부자가 된 야곱 37-43절
1) 야곱의 가축 태교 방법
미루나무 감봉숭아나무 플러터너스 나뭇의 푸른 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기고 흰 무늬를 내어 실한 양이나 염소가 새끼를 가질 때 물구유 앞에 놓았다.=> 성공
그래서 약한 것들은 라반에게로 가게 하고 튼튼한 것들은 야곱에게로 오게 하였다. 르
2) 야곱은 아주 큰 부자가 되었다.가축떼 남종 여종 낙타 나귀가 심히 많았다.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사랑에 눈멀어 속고 또 속으며 살았다. 그 사이 복받은 야곱이기에 가난하던 라반집은 큰 부자가 되었다. 야곱 몫이 정해지자 야곱은 지독한 구두쇠 외삼촌을 따돌리고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복받은 야곱이 바라고 계획하는대로 만사는 형통했던 것이다.
찬 송 / 492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합심기도 / 잠깐 지나가는 인생길 허송세월 않게 하소서.바라고 목적하는대로 큰 복주옵소서.
#36-930329 처가살이에서 탈출
찬 송 / 543장(저 높은 곳을 향하여)
성 경 / 창 31:1-55 읽을성경 / 창 31:1-21
라반의 아들들 31:1-2
야곱이 큰 부자가 되자 라반의 아들들이 시기를 했다.
“야곱은 우리 아버지의 재산을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재산으로 저처럼 큰 부자가 되었다.“
라반도 안색이 변하여 태도가 전과 같지 않았다.
라반의 딸들의 태도 31:
야곱의 라반의 안색 바꿈과 그 동안 횡포를 아내들에게 밝히자 라반딸들은 야곱 따른다.
“장인께서는 나에게 주실 품삯을 열번이나 바뀌치면서 지금까지 나를 속였소”6절
“그런데 하나님은 장인 어른이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소“ 7절
“하나님은 이렇게 장인의 가축떼를 빼앗아서 나에게 주셨소” 9절
“라반이 이제까지 너에게 어떻게 하였는지 내가 다 보았다”. 12절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다... 13절
이제 너는 곧 이 땅을 떠나서 네가 태어난 땅으로 돌아가거라“
라반딸들의 태도 31:14-16
이제 우리가 아버지의 집에서 얻을 분깃이나 유산이 없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딴 나라 사람처럼 여기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것은 다 우리와 우리 자식들의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신대로 다 하십시요.
* 딸자식은 도둑이란 말이 있는데, 라반 딸들은 라반 아들들처럼 친정아버지 편들지 않고 남편 편을 들며 남편을 따른다. 아버지 재산빼앗은 것 아니라 우리와 우리 자식들 것이라 한다. 라헬은 한술 더 떠서 친정집 수호신 「드라빔」마저 훔쳐 가져온다.
야곱의 야반도주 31:17-213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에 태우고 모든 짐승과 밧단아람에서 모은 모든 소유를 가지고
라반을 속이고 강을 건너 길르앗 산간 지방으로 도망쳤다.
라반의 추격과 언약 22-55
라반의 호통; 작별인사 못한 것,수호신상 「드라빔」 훔쳐간 것을 호통쳤다.
야곱의 호통;
“저의 허물이 무엇입니까?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불길처럼 달려들어서..” 36절
“저는 장인 어른의 집에서 스무 해를 이렇게 한결 같이 살았습니다.
두 따님을 저의 처로 삼느라고 십년 하고도 사년을 장인 어른의 일을 해드렸고
지난 여섯해 동안은 장인 어른의 양떼를 돌보았습니다.
그러나 장인께서는 저에게 주셔야 할 품삯을 열번이나 바꿔치셨습니다.“
나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이시며,
이삭을 지켜주신 「두려운 분」깨서 저와 함께 계시지 않으셨으면,
장인께서는 저를 틀림없이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가 겪은 고난과 제가 한 수고를 살피시고,
어젯밤에 장인 어른을 꾸짖으셨습니다“41-42절
야곱은 라반과 대등한 위치에서 상호불가침 협정을 맺었다.
이제 더이상 고분고분한 데릴사위가 아니었다.
하나님 말씀 듣는 가족 / 야곱은 말씀따라 살았다.
하나님이 편들어 주신다=>아음 고생 육신 고통 살피시고 갚아주신다.
큰 복을 주신다 => 빈손으로 하란땅 갔지만 큰 부자 되어 떠나게 되었다.
많은 자식주신다=> 외로운 나그네로 갔다가 처자식 많이 얻어 돌아오게 되었다.
강력한 권세주신다=> 쇠경도 못받는 데릴사위였는데 오히려 처가보다 강해졌다.
말씀을 들음이 복이다. 주님이 편들어 주시는데 무엇이 두려우랴.주님이 보시는데 무엇이 서러우랴.주님이 갚아 주시는데 무엇이 아쉬우랴.
#37-930330 건너야할 얍복나루
찬 송 / 383장(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 경 / 창 32:22-32
한많은 타향살이 끝에 고향 찾아 발길 옮기는 야곱의 마음은 어떻했을까? 「타향살이 얼마런가 손꼽아 세어보니...」. 파란만장한 야곱의 타향살이 어연듯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요단 나루를 지팡이 하나만 의지하고 빈손으로 건넜는데, 양떼 염소떼 낙타떼 나귀떼 여러 처자식 큰 부자가 되어 고향땅에 돌아가게 되었다. 말 그대로 금의환향(錦衣還鄕)이었다. 그러나 반겨줄 가족은 누구런가? 형 에서는 아직도 복수의 칼을 갈로 있다. 고향산천이 점점 가깝자 설레는 마음 보다는 화난 형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더욱 무겁고 착잡했다. 형님은 과연 나를 용서하실까? 받아주실까? 생각할수록 두렵고 답답하기만 했다.
형을 만날 준비
1. 천사의 방문 32:1-2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길을 걷던 야곱은 하나님의 천사들을 만났다.
「하나님의 귀향 명령」으로 돌아가는 길이니 안심하라는 위로와 보호방문단이었다.
여호수아도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두렵고 떨릴 때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고 용기얻었다.
야곱은 그곳을 「마하나님」(두 진지)이라 불렀다.
2. 심부름을 형 에서에게 보냄 3-8절
심부름꾼의 전갈 내용 ; 「저는 큰 부자 되었습니다. 너그럽게 보아주십시요」
심부름꾼의 보고 : 「부하 400명을 거느리고 치러 이리로 오고 있습니다」
야곱의 대책 :일행과 가축떼를 두 패로 나누어 한 패를 치더라고 한 패를 건질 대책 세움.
3. 기도로 간구 9-12절
1) 고향으로 돌아가면 은혜베푸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
2) 그동안 베푸신 인자하심과 진실하심 감히 받을 자격 없습니다.
3) 지팡이만 가지고 요단강 건넜는데, 두 무리가 되도록 복주셨습니다.
4) 형 에서의 손에서 건져주소서. ...가족을 죽일까 하나이다.
5) “네 씨가 바다 모래처럼 많게 해주겠다” 약속하시지 않으셨습니까?
4. 엄청난 선물 사절단 파송 13-21절
암염소200 + 숫염소20, 얌양200 + 숫양20, 어미 낙타30 + 딸린 새끼30
암소40 + 황소10, 암나귀20 + 새끼나귀10, => 여러 떼의 선물 사절단을 파송.
* 많은 선물 앞서 보내어 형의 분로를 풀어주어 만날 때 반갑게 맞아주도록 앞서 선물 보냄.
타향살이 20년 동안 모은 재산 보다 귀중한 것은 형님 얼굴 반갑게 만나는 것 깨달음.
5. 마지막 준비 = 얍복강가의 천사와 씨름 32:22-29
1) 두 아내 두 여종, 딸린 자식도 나루 건넘. 소유도 다 건너 보냈다.
2) 홀로 남아 밤새워 씨름 : 재산보다 소중한 것, 처자식보다 소중한 것=>형제화해
3) 밤새워 야곱은 이름모를 신비로운 능력과 씨름 한다
4) 축복하기까지 결사적으로 매달려 축복 받는 대신 환도뼈 상한다.
5) 야곱 대신 새 이름 얻는다 => 이스라엘
6. 브니엘의 새 아침 29-32
밤새워 씨름하던 밤은 샜다.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얻었다.복받은 증거:「절름발이됨」 이기주의,독선,아집이 부서지자 부끄러움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었다.
소유보다 소중한 건 형님과 화해, 아집 박살나자 환한 하나님 미소 발견.
고집스런던 야곱, 사깃군 야곱, 집념의 사내 야곱, 재산 탐내던 야곱은 귀하게 여기던 모든 것 포기했다. 소중하던 것 다 버리고, 굳게 의지하던 건강도 박살났다. 모든 것보다 귀한 것 형제와 화해임을 깨닫고, 부서지고 바서졌다. 옛 사람 야곱은 죽었다. 절름발이 이스라엘이 되엇다. 약할 때가 바로 강할 때인 것이다.
찬 송 / 406장
기 도 / 재산보다 소중한 것 깨닫게 하소서. 약할 때 강함을 깨닫게 하소서.
우리 민족이 건너야할 얍복 나루는 무엇인가? (광주항쟁, 남북통일, 정통성회복)
#38-930331 형제의 화해
찬 송 / 278장(사랑하는 주님 앞에)
성 경 / 창33:1-11
1.조심스럽게 에서에게 접근했다
400명의 장정을 이끌고 오는 에서를 두려워하면서
맨앞에 야곱 => 두 여종과 그들의 자녀 => 레아와 그 아들들을 => 라헬과 요셉.
*형 에서가 치더라도 자기 자신이 살아남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맨 먼저 희생되기를 바랐고, 그러나 라헬과 요셉만은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
2.형님 눈앞에 은혜를 입기를 바랐다.「형앞에 은헤 입기를」 세번(8,10,15절) 간청.
3.엎드려 절한다.
3절, 야곱은 맨 앞으로 나가서 형에게로 가까이 가면서 일곱번이나 땅에 엎드려 절하였다. 6절, 두 여종과 그 자녀들이 나아가 엎드려 절하였다.
7절, 레아와 그 아들들이 엎드려 절하였다.
7절, 라헬과 그 아들들이 엎드려 절하였다.
교만스런 모습은 전혀 볼 수 없다. 엎드려 절하고 또 절하며 용서를 구했다.
4.두 형제는 부둥켜 안고 울었다 4절
그러자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끌어안았다.
에서는 두 팔을 벌려, 야곱의 목을 끌어안고서 둘은 함께 울었다.
5.에서는 야곱의 간곡한 부탁으로 선물을 받았다.11절
“하나님이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므로 제가 가진 것도 이렇게 넉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형님께 가지고 온 이 선물을 기꺼이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간곡히 권하므로 에서는 그 선물을 받았다.
6. 아곱은 형님 얼굽 뵈오니 하나님 얼굴 뵙는 것 같다고 했다.
형과 갈등 속의 물질 축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님을 깨달았다.
물질을 포기하면서까지 형과 화해를 열망했다.
환도뼈가 상하고 절름발이 되도록 이기주의, 아집을 깨뜨렸다.
형제 사랑보다 중요한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라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요일4:12,20)
7. 야곱은 새 인생을 출발하게 되었다.
고집스럽고, 형제와 불목하던 옛 사람은 얍복 나룻가에서 죽고
하나님의 얼굴(브니엘)을 뵙는 새 아침을 「이스라엘」이란 새 사람으로 태어났다.
미움과 질투,욕심과 속임수,갈등과 불화의 옛 사람은 죽고 화해와 사랑의 새사람 되었다.
형님과의 화해를 위해 소중하게 여기던 모든 것 포기하고 생명 같이 여기던 자존심의 환도뼈 꺾고 약하고 엎드려 절하는 겸손한 사람 될 때, 형님의 용서를 받고 화해하게 되었다. 옛 사람 죽고 용서와 화해 속에 원수되었던 형 얼굴을 하나님 얼굴 같이 반갑게 맞게 되었다.
찬 송 / 523장 ( 나 형제를 위해 )
기 도 / 아직 화해하지 못한 형제, 이웃이 있나 살피자, 형제사랑없이 주님 사랑없다.
용서와 화해를 통하여 형제 얼굴을 하나님 얼굴 뵙는 것 같이 하자.
#39-930401 타협이냐 순수성이냐?
찬 송 / 521장(어느 민족 누구게나)
성 경 / 창 33:18-34:31
읽을성경 / 창 34:25-31
야곱이 약속의 땅 가나안의 중심부 세겜에 정착했다.그곳은 이미 가나안족이 살고 있었다. 정착하여 살면서 기득권자들인 기존 거민들과 어떻게 조화하면서 살아갈까? 이웃과 협조하며 타협하며 살아가야 하는 현실성과 신앙적 순수성을 지켜야하는 갈등이 생기게 되었다.
1. 세겜에게서 땅을 사서 정착하다. 33:18-20
은 백냥을 주고 합법적으로 구입했다. 세겜 성문 앞에 장막을 쳤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엘엘로헤이스라엘)’을 불렀다.
2. 어느날 디나에게 생긴 일 34:1-7
디나는 처음 보는 이국풍경에 호기심을 갖고 세겜성 구경을 갔다.
사실 낯선 나라의 사람, 살아가는 풍습, 집, 의상 모든 것이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된다.
그러나 디나 자신도 그곳 사람들에게 낯선 외국 여자여서 눈요깃 감이 되게 마련이었다.
1.결국 방정맞은 디나는 세겜성 추장 세겜에게 더럽혀지고 말았다.
2.세겜은 디나에게 반하여 합법적 결혼을 요구했다.
3. 야곱 아들들의 분노:야곱의 아들들은 슬픔과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있었다.7절
3. 하몰과 세겜의 제안 34:8-12
디나 사건은 불미스런 일이 아니라 서로 협조하며 살 수 있는 좋은 기회.
“그리고 우리와 함께 섞여서 여기에서 같이 살기 바랍니다.
땅이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자리를 잡고 여기에서 장사도 하고,
여기에서 재산을 늘리십시요.” 10절
세겜도 어떤 조건도 들어주겠다고 약속함
“아무리 많이 요구하셔도 요구하는만큼 치르겠습니다”
4. 야곱 아들들의 요구 43:13-17
결혼 지참금이나 물질을 요구하지 않고 세겜 족 전체가 할례받을 것을 요구.
5. 하몰이 세겜 성읍 사람들을 설득함 43:18-24
우리가 할례를 받으면 야곱 족속과 통혼할 수 있고,
한 민족이 되어 그들의 재산이 우리 것이 되니 요구대로 하자
성읍 사람들이 제안을 좋게 여기고 장정들은 할례를 받았다.
*세겜성 추장과 사람들의 관심은 종교적이 아니라 경제적 이득이었다.
6. 야곱 아들들의 복수 43:25-29
시므온과 레위가 성읍에 들어가 순식간에 남자를 다 죽임(하몰과 세겜도 죽임).
야곱의 다른 아들들이 성읍에 들어가 「더럽힌」 성읍을 약탈하고 털다.
*야곱 아들들의 관심은 경제적 이득보다 종교적 순결성을 위해 열심 보임.
7. 야곱과 아들들의 갈등 43:30-31
풍전수적 다 겪은 야곱은 아들들의 무모한 열심을 꾸짖었다:
소수 족속으로 가나안 여러 부족들 사이에 생존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야곱 아들들은 아버지의 타협,통혼에 대한 미온적 태도에 「신앙적 순수성」으로 분조했다.
늙은이는 경험상 타협하며 살아야 한다 // 젊은이는 신앙적 순수성 지켜야 한다.
현실과 이상, 세속과의 타협이냐 신앙의 순수성이냐, 협조냐 배타성이냐, 조화냐 독선이냐, 이런 갈등은 신앙인들에게 언제나 부딛히는 문제이다. 세상에서는 신앙의 순수성만 고집하면서 살 수 없다고 느낄 때가 많다. 순수성을 잃고 세속화 되어 가나안 족속화 되면 「약속」과 「하나님의 뜻」은 쓸모없는 휴지쪽이 되고 만다. 세상 속에 살되 신앙의 순수성과 열정이 꺼지지 않도록 늘 긴장 속에 살아가야 한다.
찬 송 / 388장
합심기도 / 세상 속에 살되 믿음의 순수성과 열정을 잃지 않게 합소서.
#40-930402 베델로 올라가라!
찬 송 / 364장(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성 경 / 창 35:1-15
디나 사건은 야곱 가정에 엄청난 풍파를 몰고 왔다. 디나가 더럽혀 졌고, 야곱의 아들들이 무자비하게 세겜성에 보복하고 약탈하였다. 야곱은 소수 민족으로 기존 가나안 여러 족속들 사이에 악평이 나서 서로 연합하여 공격해오면 몰살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했다.
두렵고 떨리고 약해진 순간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베델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셨다.
1. 베델로 올라가라 35:1
1)형의 낯을 피하여 가던 야곱은 베델에서 하나님께 서원했었다(28:20-22).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제가 안전하게 저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주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제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 이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2)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켜주셨지만 야곱은 아직 베델에 올라가지 않았다.
환난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약속 장소로 가지 않고 세속 속에서 살려했던 것이다.
2. 야곱 가정의 정결(28:20-22).
1) 이방 신상을 다 버려라.
라헬은 친정집에서 훔쳐 온 가정수호신 ‘드라빔’을 섬기고 있었다.
2) 몸을 깨끗이 씻어라.
세겜 사람들에게 더럽혀지고 세속화된 것 다 깨끗히 씻어야 한다.
3) 옷을 갈아 입어라.
디나의 유별난 옷이 범죄를 유발했을 가능성이 높다.
시내산 아래 이스라엘도 옷을 빨고 삼일을 기다렸다.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다.
죄로 더렵혀진 인격의 옷을 보혈에 빨아야 한다.
4) 묻어라
이방 신상과 귀고리를 세겜 근처 상수리 나무 아래 묻었다.
전에 귀하게 여기던 것 배설물 같이 여겨야 한다.
5) 신앙으로 강화된 야곱 일행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다.
믿음이 없을 때 공연히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약해지는 것이다.
믿음이 강해지면 담대해지고 주변 사람들도 두려워한다.
6) 베델에 올라가 제단을 쌓고 「엘베델」이라 불렀다.
7) 주께서 나타나서 복을 주셨다.
네 이름이 야곱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이스라엘’이다.
나는 전능자 하나님이다. 너는 생육하고 번성하리라.
여러 민족 여러 왕이 네게서 나오리라.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준다.
신앙가정에 닥쳐온 환난은 언제나 하나님께 나가는 길이다. 아브라함도 애굽에서 고초겪고 난 후 신앙으로 더욱 연단되었고, 이삭도 그랄 사람들의 핍박 속에서 흉년 중에도 100배의 속을 받았다. 야곱은 형 에서의 분노 때문에 하란에 가서 정결한 가문과 결혼하게 되었고, 라반의 핍박 속에 고향땅을 찾아 떠나게 되었다. 디나 사건이 몰고 온 풍파도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 환난 속에 두려워 떨고 있는 야곱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베델로 올라 가라.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 바쳐라” 환난 풍파 만날 때 베델로 올라가자. 하나님께 올라가자. 세상 향락 버리고,의복을 바뀌고 몸을 정결케 하고 베델의 제단을 쌓자. 이것이 복받는 길이다.
찬 송: 363장( 내 모든 시험 )
합심기도: 환난 만날 때 더욱 주께로 가게 하소서.세상향락 버리고 벧엘로 올라가게 하소서.
#41-930403 삶과 죽음 사이에서
찬 송 / 474장(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성 경 / 창 35:16-29
1. 베냐민의 탄생과 라헬의 죽음 35:16-21
야곱은 가솔을 이끌고 베델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가고 있었다.
족장 아브라함이나 이삭과 같이 야곱도 떠돌이 나그네 인생길을 살았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길을 걷는 인생길이 바로 모든 인생의 모습이기도 하다.
야곱 일행이 에브랏에 채 이르기 전에 라헬이 몸을 풀게 되었다.
라헬은 고통이 너무 심하였고 아기를 낳느라 산고에 너무 시달렸다.
새 생명을 낳는 것은 심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
생명은 바로 죽음 한 가운데서 태어나는 것이다.
인생에게 태어날 때도 있는가 하면 죽을 때도 있는데 둘 다 고통을 겪는다.
난산일 경우 산파는 아기를 살리겠느냐 어미를 살리겠느냐 묻기도 한다.
야곱에게는 라헬이 너무 소중하였다.
생사의 기로에서 라헬은 아들을 분만했다.
그러나 너무 진통을 겪어 아기를 낳고 혼이 떠나 죽고 만다.
“나로 하여금 아이를 낳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겠노라”고 말하던 라헬이다.
요셉을 낳고도 ‘하나 더 낳기’를 바라면 「요셉」이라 지었다.
라헬은 그렇게 사모하던 아들을 낳고는 너무 진통을 겪어 혼이 떠나 죽었다.
라헬의 마지막 말: 「슬픔의 아들」= 벤(ן아들) + 오니(יוֹא나의 슬픔)
2. 야곱은 슬픔의 아들을 「오른손의 아들」(베냐민)이라 불렀다.
야곱에게 소중했던 라헬이 생명을 바쳐 낳은 아들이므로 라헬보다 존귀했다.
예수께서는 산고를 겪고 새 생명을 탄생 시키는 출산의 기쁨을 말씀하셨다.
“여인이 해산할 때는 근심한다.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 때문에
그 고통을 잊어 버린다”(요 16:21).
야곱은 생명의 탄생으로 기뻐해야 할까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으로 슬퍼해야 할까?
사랑하는 라헬을 잃은 슬픔에 매여 베들레헴에 묶여 있지 않고,
죽음 댓가로 태어난 「슬픔의 아들」을 「오른손의 아들」로 고쳐 부른다.
2. 라헬의 묘비
에브랏(베들레헴)은 예수탄생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탄생의 마을 베들레헴 길가에 있는 라헬의 묘비를 둘러보자.
야곱은 뭐라고 묘비명을 기록했을까? 아마 이런 내용이 아니었을까?
“아기를 낳기를 열망했던 라헬이
아기를 낳고 여기서 죽다.
그의 죽음은 새 생명으로 영원히 이어지리라”.
3. 야곱의 열 두 아들들과 이삭의 죽음 35:23-29
레아게통 =>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라헬계통 => 요셉 베냐민
빌하계통(라헬 몸종) => 단 납달리
실바게통(레아 몸종) => 갓 아셀
이삭이 180세를 살고 죽어 에서와 야곱이 헤브론에 장사지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태어난다. 야곱의 12 아들은 이스라엘 12지파를 이루게 된다.생명에는 무수한 신비가 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할 것이다.
찬 송 / 536장(이 곤한 인생이)
합심기도 /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산고를 겪는 라헬을 생각해 보자.
새 생명을 낳기는 생명을 각오하는 진통을 겪어야 한다.
나는 전도하여 새 새명을 낳기 위해 진통을 겪고 있는가?
#42-930404 우리밖 다른 양떼도 돌보시는 주님
찬 송 / 335장 (양떼를 떠나서)
성 경 / 창 36:1-8
1. 성경은 에서의 족보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우리의 관심은 아브라함 - 이삭 - 야곱...그리스도에 이르는 계보이다.
구세주 탄생의 계보에 관심 갖다보면 편협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두메 산골짜기에서만 자란 아이는 달과 태양이 자기 동네 것인 줄만 안다.
자기 마을을 벗어나 이웃 마을에서 해와 달을 볼 때,세계관은 넓어진다.
성경 구속사의 관심은 선택받은 계보이지만 하나님은 인류 전체의 아버지시다.
2. 에서의 가문도 큰 복을 주셨다.
에서의 후예도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였다.
에서에게서도 많은 민족과 왕들이 태어났다.
너무 재산이 많고 가솔이 많아 야곱 일행과 함께 살 수 없었다.
3. 하나님이 에서 족속에게도 배려를 베푸셨다.
사라의 능살에 쫒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의 부르짖음도 들으시고 큰 복을 주심처럼.
에서의 후손들에게도 하나님은 복을 주셨다.
4. 약속의 땅 변두리를 거처로 삼았다.
롯이 재산이 많고 가솔이 많아 아브라함을 떠나 요단강 계곡으로 갔듯이.
에서는 세일산 부근으로 가서 정착하였다.
성경의 관심은 약속의 땅이므로 에서의 일당은 관심의 촛점에서 벗어난 것이다.
5. 에서의 후손은 일찌기 왕을 세웠다.
가인의 계보가 세속도시를 먼저 건설하고 세속문화를 만들어 내었듯이
에서의 후손도 세속 정치에 더 일찍 눈이 떴다.
에서의 아내도 가나안 여자, 거처도 약속의 땅 주변을 차지했다.
6. 선택받은 자의 관심은 영적, 말씀이어야 한다.
세속적인 견지에서 보면 에서도 물질 복 받았고,
야곱족속보다 왕정을 일찍 시작하여 탄탄한 나라 세웠고,
많은 족속, 많은 왕들이 나왔지만, 영적으로 약속의 땅 변두리이다.
7. 택함받은 자의 선교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을 나의 하나님으로만 편협하게 좁히지 말고
온 인류의 하나님으로 넓혀야 한다.
내 밭에만 비를 내려 주시는 하나님, 내게만 햇볕 내려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골고루 모두에게 은총을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감사드려야 한다.
아브라함을 통해 만민이 복을 받아야 하듯.
택한 자의 사명은 만민에게 주의 사랑을 전하라는 것이다.
나만 축복받고 나만 구원받았으니 감사하다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축복과 예수의 구속적 사랑을 만민에게 알려야 할 사명이 이써다.
찬 송 / 274장 ( 주 예수 넓은 사랑)
합심기도 /1) 나만 구원받고 축복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게 하소서
2) 인류 전체의 아버지를 모두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소원 알게 하소서.
3) 모두 주일 성수하게 하소서.
4) 담임목사님께 말씀충만 능력충만 주옵소서.
#43-930405
사랑과 미움
찬 송 / 278장 ( 사랑하는 주님 앞에 )
기 도 /
성 경 / 창37:1-4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은 긴 요셉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늙으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라고 있는 17세의 청년 요셉은
꿈을 꾼다. 이 꿈은 가장 불화를 일으키고 형제들은 꿈쟁이를 죽이려 든다.
꿈을 꾼 요셉 자신이나 아버지나 형제들이나 꿈의 뜻을 알지 못했지만
먼 세월이 흐르고 꿈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함께 했음을 깨닫는다.
하나님은 한 가정과 개인의 생애에 숨어 계시면서 섭리하시는 분이시다.
1. 요셉은 지혜로운 사람의 모델이다.
다윗 같이 범죄하지도 않았고, 모세 같이 사람을 죽이지도 않았다.
가족도 살리고 민족도 살리고 제국도 살렸다.
2. 요셉은 이름 뜻대로 「더하기」 인생이다.
하나님의 은총이 더했고, 아버지는 특별한 사랑을 더했고, 동생을 더 얻었다.
형들의 미움도 더 받았다. 보디발 집에 축복을 더해 주었고, 애굽에 풍요를 더했다.
그의 인생길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더했다.
3. 요셉은 마지막 아들이다.
야곱이 얍복 나루를 건넬 때 라헬과 요셉은 가장 마지막에 두었다.
야곱은 라헬이 죽은 후 요셉을 가장 사랑한 자식이었다.
4. 요셉은 꿈의 사람이다.
요셉이 꾼 꿈은 가족의 평화를 깨뜨렸다.
형들은 「꿈쟁이 요셉」을 죽여 버리려고 했다.
꿈은 요셉을 원치 않는 미지의 세계로 이끌어 갔고
꿈 때문에 요셉은 보이지 않는 분의 손길에 이끌려 인생길을 걷게 되었다.
꿈이 없으면 가족의 미래, 민족의 미래도 없다.
5. 야곱은 늙으막에 얻은 요셉을 끔찍이 사랑하였다.
요셉은 야곱의 소망이었고 살아가는 이유였다.
야곱은 요셉을 위하여 채색옷을 입혔다.
채색옷이란 소매와 발목까지 내려오는 화려하고 값진 옷이다.
하나님께서 아담 하와를 불쌍히 여겨 손수 옷을 지어 입혔듯이
야곱의 옷은 아버지의 사랑이 담뿍 담겨 있었다.
6. 편애는 형재들의 미움을 불러일으켰다.
아버지가 요셉은 너무 끔찍히 사랑하고 다른 아들들은 덜 사랑했다.
유별란 사랑에 형제들 시새움이 어떻했을까?
더군다나 요셉은 형들의 비위 사실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하기를 잘했으니
형들의 미움이 오죽했을까?
7.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한 반면에, 여러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야 했다.사랑과 미움 사이에서 꿈동이 요셉은 알지 못할 미지의 세계로 끌려 간다. 예수께서 미움은 살인이라 하심처럼 형제들은 요셉을 죽이려 했지만, 마지막 사랑받는 자는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으로 승리한다. 우리 생애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에 이끌려 함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
찬 송 / 542장 (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뵈였으니 )
#44-930406
꿈과 현실
찬 송 / 349장 (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성 경 / 창 37:5-39
1. 꿈꾸는 요셉 37:5-11
요셉은 꿈꾸는 자이다. 두 번씩이나 절하는 꿈을 꾼다.곡식단, 해와 달 별.
야곱은 특별한 요셉을 배려한 것이 다른 형들과는 분명 다른 꿈을 꾸도록 인도했다.
이 꿈이 이루어지 못하도록 저항하는 세력이 나오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2. 꿈의 중요 핵심은 「다스림」이다.
“절하다” 현실적 위치에서 요셉이 형들과 어버지 어머니에게 절해야 한다.
요셉의 꿈에서는 오히려 형들과 아버지 어머니도 요셉에게 절하다.
늙은 야곱은 「당연한 질서」를 원치 않았다. 요셉이 제일 관심 대상이다.
꿈꾼 이야기를 듣고 형제들은 분노했지만 야곱은 마음에 두었다.
마치 마리야가 목자들이 전해준 천사의 말을 마음에 간직하듯(눅2:19).
3. 헤브론에서 도단으로 형들 방문 37:12-17
헤브론 아버지 야곱의 집에서는 요셉의 꿈이야기가 애교로 통했다.
이제 아버지 슬하를 떠나 형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현장으로 야곱은 들어간다.
도단에서 주도권은 형들이 잡고 있다. 아버지 슬하를 벗어난 야곱은 위험하다.
4. 형들의 태도 37:18-31
통치자외 통치받을 자들이 만났다.
통치받을 형들은 「요셉의 꿈」을 믿지 않고 그 꿈을 박살내기 위해 죽이려 한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쥐도 새도 모르게 꿈꾸는 자(=꿈의 주인)를 죽이면 꿈은 죽고 말리라고 생각한다.
꿈이 형제들의 모함보다 강하여 꿈꾸는 자 살인 모의는 뜻을 이루지 못한다.
5. 맏형 르우벤의 대책=> 죽일 필요 없이 「채색옷」만 벗기려 한다.
형제들 위에 유별나게 행세하는 「우월감」을 벗겨 버린다.「왕좌차지」못하게 함.
채색옷(=보좌)을 벗긴다.= 왕좌에서 내려 앉힌다.
채색옷을 벗기고 염소피를 적셔 아버지에게 갖다 준다.
맏형으로서 꿈꾸는 자의 「우월감」을 용납치 않은 것이다.
유다의 대책 => 지배권을 형으로서 용납할 수 없다. 지배자 대신 노예로 팔아넘긴다.
약속의 땅에서 지배권을 인정치 않는다. 애굽에 가서 꿈을 이루든지 지배를 하던지 한다.
6. 야곱의 야통=> 꿈둥이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는 소식은 야곱에게 충격이었다.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오래도록 애통하였다.
모든 자녀가 위로 하여도 위로 받지 못하였다.
7.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
꿈꾸는 자를 죽이려 할 때, 형제들 의견을 일치되지 않게 된다.
마침 미디안 장사꾼이 지나가게 한다. 애굽의 거물급 집에 들어가게 한다.
꿈꾸는 자는 애굽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들어간다.
꿈이 깨진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손길로 역사하신다.애굽에서 크게 꿈이 성취될 분위기를 보이지 않는 손길도 역사하신다.
찬 송 / 341장 (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
#45-930407
나보다 더 의롭다.
찬 송 / 200장 (주의 피로 이룬 샘물)
성 경 / 창 38:1-11
1. 유다집안의 잘못된 결혼 38:1-11
유다는 약속의 백성으로서 혈통의 순수성을 잘 지켜 가야 함에도 무시하고
가나안 수아의 딸과 결혼하여 세 아들을 낳았다.
큰 아들 「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여 일찍 죽고,
둘째 「오난」도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여 죽고,
세째도 죽을까봐 「게대결혼법」을 무시하고 며느리를 친정으로 보냈다.
유다는 가나안화 되었고 하나님의 법인 「계대결혼법」을 무시한 자가 되었다.
繼代結婚法(Levirate Law)이란 ‘시동생’((levir) 결혼법이란 뜻이다.
형제 중에 자손 없이 죽으면 형제나 친족이 자손을 이어주는 제도이다.
형의 자손과 재산과 기업을 이어주어 대가 끊기지 않도록 하는 제도이다.
2. 다말은 계대결혼법을 충실히 이행하려 한다.
세째 「셀라」가 성장하여도 시아버지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다말은 가나안 성창(聖娼)으로 변장하여 유다를 유혹한다.
신앙인 가문의 체통을 지키지 못할 때 어처구니 없는 잘못을 저지른다.
가나안 宗敎의 聖娼制度
고대근동지방의 농경 문화의 종교는 비를 내리는 바알과 풍년을 가져온다는 아세 라 여신을 섬겼다. 그들의 신전에는 아세라를 상징하는 「거룩한 성녀」라는 여사제 들이 많아 풍요를 비는 종교의식에서 매음이 공공연하게 행해졌다. 유다는 가나 안 풍속에 빠져서 가나안 신전을 찾았고, 다말은 이런 유다를 유혹하여서라도 계 대결혼법을 성취하려 했던 것이다.
3. 나보다 의롭도다.
다말은 유다를 통하여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
세라가 장자이지만 영적 장자는 베레스가 된다.
둘째가 영적 장자 되는 것이 영적 계보의 특징이다.
이스마엘보다 이삭, 에서보다 야곱, 루우벤보다 유다, 세라보다 베레스
유다의 행위는 모든 면에서 악하고 가나안 풍습에 물들어 쾌락을 찾았다.
다말의 경우는 다르다. 오직 「손」을 이루려는 집념이었기에
유다주관으로 다말을 돌로 쳐죽이는 공개처형식이 있었다.
다말은 이 때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내밀었다.
유다는 양심의 가책을 받고 회개한다: 나단 선지자 앞의 다윗처럼.
1) 자기의 무절제로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여 신앙가정 순수성 깨뜨린 죄.
2) 가나안 풍속 본받아 에나임 문에 드나들어 聖娼(크데샤,ה)과 관계했던 죄.
에나임 문(페타흐 ה)는 단순한 문(샤아르,ר)가 아니라 신전문이다.
성창(聖娼)은 아세라 여사제로 거룩한 매음녀였다.
3) 세째가 성장했는데도 이스라엘 법인 시형제결혼법 약속을 안지킨 것.
4) 자기는 무절제와 타락으로 죄지었으나 다말은 손 잇기 위한 집념인점.
유다는 자기 위치와 신분을 깨닫고 신앙가족 체통을 지키며 다시는 범죄안함.
퀘벡시에서 욕심많은 빵제조업자가 근교의 농부에게서 버터를 사오곤 했다. 어느 날 무게를 측정해 보니 1파운드짜리가 형편없이 적었다. 그는 농부를 법정에 고소했다. 판사가 농부를 심문했다.
판사 :농장에 저울은 있겠지? 농부:없습니다.
판사: 어떻게 무게를 달지? 농부:빵공장의 1 파운드짜리 빵으로 무게를 달지요.
판사가 빵공자의 빵의 무게를 달아보니 형편없이 적었다. 판사는 빵제조업자를 구속시켰다.
찬 송 / 401장 (천성을 향해 가는 신도들아)
#46-930408
주께서 함께 하시니
찬 송 / 455장 ( 주 안에 있는 나에게 )
성 경 / 창39:1-6
1. 주께서 함께 하시니 형통한 자가 되어
형통 = 마츠리아흐 (י) -> 번영, 요셉이 하는일 마다 잘 되어 주의 사람이 인정.
애굽에 종으로 팔려 오되 유력한 인물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려왔다.
비록 노예 신세였으나 모두 주목할만큼 하는 일마다 잘 되었다.
모두가 주님 은혜였다.
2. 주께서 함께 하심을 그 주인이 보았다
보디발은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요셉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함을 보았다.
성도는 빛과 소금된 생활로 이방이이 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야 한다.
요셉은 생활신앙으로 자기의 믿음을 증거했다.
이방인인 주인이 요셉의 하나님을 볼 수 있었다.
3. 주께서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다.
범사 형통 마츠리아흐 브야도(וֹד י) => 그의 손의 형통
신명기 28:8 =>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주께서 함께 하시면 손으로 하는 범사, 축산도 복을 받고, 토지 농산물도 복을 받고,
자녀도 복을 받고, 의식주도 복을 받고, 가정평안 등 두루두루 복받음.
4. 주인에게도 은총을 입었다.
주인을 특별히 섬겼다.
요셉을 가정 총무를 삼았다 => 아브라함 가정의 충신 엘리에셀 같은 직분.
자기 소유물을 다 요셉에게 위임하였다.주인이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치 않았다.
5. 주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집에 복을 주셨다.
라반의 집도 야곱 때문에 재산이 늘어나고 복받았다.
복있는 사람이 성읍에 들어가면 성읍이 복을 받고 들에 나가면 들이 복받는다.
복있는 사람이 떡반죽 그릇을 만지면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광주리를 만지면 광주리가 복받는다.
주의 복이 그 집의 밭과 소유 모두에 미쳤다.
오벳 에돔이 주의 언약궤를 잘 모신 결과 범사가 복을 받았듯이,
주님이 요셉과 함께 하므로 요셉이 섬기는 주인 집에 범사에 복받았다.
6. 주의 목전에서 살았다.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잘생긴 미남이었다 => 보디발 아내의 끈질긴 유혹 받음.
요셉의 시험 물리친 비결
1. 주인께서 집안 모든 것을 다 맡겼지만 오직 한 가지만 금했다.
2. 하나님 눈 앞에서 어찌 큰 죄를 지으리요?
3. 함께 있지도 않았다.
4. 마지막에 뿌리치고 도망쳤다.
뜻을 이루지 못한 보디발 아내의 모합으로 요셉은 감옥게 갇혔다.
7. 주께서 감옥까지 찾아오셔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 39:20-23
왕의 죄수들이 갇히는 특수 감방에 갇혀서 바로궁전 정치인과 교제하게 됨.
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니 => 전옥에게 은혜를 받아=>옥중 총무를 삼았다.
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니 => 전옥이 전혀 관여 않함.
주게서 범사에 형통케 하셨다.
요셉 생애에 가장 고달픈 순간, 요셉 생애에 가장 뼈아픈 순간 주께서 그이 가는 곳, 있는 곳, 그이 손길마다 함께 하셨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다는 귀절을 세어보아라.
찬 송 / 489장 (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
#47-930409
꿈보다 해몽
찬 송 / 542장 (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뵈었으니 )
성 경 / 창 40:1-23
1.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 40:1-4
감옥( 베이트 핫쇼하르 ר־תי )는 ‘둘러쌓인 집’이다.
자유스럽게 드나들 ‘출구’가 없는 곳이다.
요셉은 주께서 함께 하시어 번영하고 복받았지만 ‘테두리 안에서’ 이다.
감옥은 세상의 축소판이다.
요셉이 갇힌 감옥은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곳으로 정치범 수용소였다.
요셉은 시국관련 죄수들을 통하여 당시 애굽 바로 왕국의 실상을 경할 수 있었다.
바로가 다스리는 애굽제국주의의 밑바닥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감옥은 「인생대학」이다. 요셉은 앞으로 애굽을 다스릴 공부를 「감옥」에서 했다.
요셉을 감옥에 넣은 것은 보디발 아내의 모함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짧은 시간 동안 애굽의 정치,행정,경제를 배우도록 입학시키셨다.
시국관련 양심수들은 당시의 애굽의 양심있는 지성인들이었던 것이다.
전직 바로왕의 두 관리
술 맡는 관리 => 바로왕궁의 비서실장 격인 직위
떡 맡은 관리 => 바로의 경제 담당 관리
2. 꿈의 정치학 40:5-8
어느 날 술맡은 관리와 떡 맡은 관리는 각각 꿈을 꾸고 근심하였다.
갇혀 있는 답답한 현실 안에서 꿈 같이 신비로운 것이 없다.
프른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도 꿀 수 있고 왕이 되는 꿈을 꾸기도 한다.
꿈은 미래로 열린 창이다. 미래는 하나님의 영역이다.
몽조 있는 꿈을 꾸고도 뜻을 알 수 없어서 답답하게 마련이다.
요셉 :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나이까 청컨데 내게 고하소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 요셉에게 미래의 몽조를 해석할 실마리가 있다.
하나님 사람은 꿈을 꾸고 꿈이 있고 꿈을 풀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가 있다.
3. 길몽(吉夢)과 흉몽(凶夢)
1)술 맡은 관리의 꿈=>“포도나무 세 가지의 열매로 술을 빚어 바로에게 바쳤다”.
해몽 => 사흘만에 당신 머리를 들고 복직 될 것입니다.
2)떡 맡은 관리의 꿈=> 흰떡 세광주리가 머리에 있고 새들이 먹더라
해몽 => 사흘만에 나무에 달려 새들이 당신 시체를 먹을 것이라.
* 요셉의 해몽대로 한 사람은 복직되고 한 사라믄 사형집행되었다.
요셉의 부탁 =>1)나를 생각해달라.2)이집에서 건져내라 3)히브리출신이다 4)무고하다.
이런 소원은 모든 죄수들의 한결같은 소원이다. 「억울하게 갇혔다 나가고 싶다」.
특히 히브리 출신을 강조한다. 히브리는 당시 고대 근동의 떠돌이 무산계층을 말한다.당시 애굽은 셈족 계통이 집권하고 있어서 구세대 기득권자들을 숙청하고 재야세력이 기용되었다. 요셉이 풀려날 절호의 기회였다.그러나 복직된 술맡은 관원은 요셉을 까마득하게 잊었다. 요셉은 기약없는 출옥의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세월을 보내야 했다.
몇 해전 예루살렘 가야바 집 지하 감옥 맨 아랫층 절벽을 뚫어 만든 예수께서 갇혔던 감옥을 방문한 적이 있다. 겟세마네에서 체포되어 아침에 빌라도 법정에 끌려 가기까지 갇히셨던 감방이었다. 야바위꾼들의 음모로 갇히고 심문받고 십자가에 달리셨던 혔던 주님 모습 생각해보자.
찬 송 / 510장 ( 겟세마네 동산에 주를 생각할 때에 )
기 도 / 1) 꿈과 소망 있는 성도 되게 하소서. 2) 수난의 주심을 기억케 하소서.
#48-9310
생각나는 그 사람
찬 송 / 235장 (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성 경 / 창 41:1-13
1. 바로의 꿈
술 맡은 관리는 요셉의 해몽대로 복직 된지 만 2년이 지나도록 요셉을 잊고 살았다.
득의하면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간곡히 부탁했건만 감감무소식이었다.
2년 되는 날, 즉 바로의 생일날 바로는 두 가지 꿈을 꾸었다.
1) 나일강에서 올라온 살진 일곱 암소가 갈밭에서 풀을 뜯고 있는데,
잠시 후 올라온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살진 일곱 암소를 삼켜버린 꿈.
2)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잠시 후에 세약하고 파리한 일곱 이삭이 나와서 충실한 이삭을 삼켜 버린 꿈.
2. 바로의 근심
몽조가 있는 꿈을 꾸고도 해석할 길이 없어 근심하였다.
애굽 안의 모든 술객, 박사를 소환하여 해몽을 부탁했지만 허사였다.
애굽은 방대한 나라요, 팔레스타인까지 다스리는 힘있는 제국이었다.
이런 대 제국의 황제가 고민에 빠졌다.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앞날을 예비치 못한 다면 애굽왕국은 파멸당한다.
바로의 금심은 애굽의 근심이요, 애굽의 미래는 암담한 것이다.
3. 생각나는 그 사람
바로의 근심은 왕궁의 근심, 대신들의 근심, 비서실장인 술 맡은 자의 근심이었다.
속 시원하게 해몽해줄 사람이 어디 없을까?
이런 위기의 시간에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시위대장 보디발의 감방에 갇혀 있는 히브리 출신 「요셉」!
술 맡은 관리는 무릅을 탁치면서 왜 내가 그를 잊고 있었을까? 하고 자신을 나무랐다.
술 맡은 관리는 즉시 바로에게 명석한 꿈 해몽가 요셉에 대해 이야기 했다.
꼭 이년전 오늘, 그는 복직되고 떡 맡은 관리는 사형집행된 사건을.
요셉의 말대로 되었던 귀신이 곡할 요셉의 꿈해몽을.
9)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오늘날 나의 허물을 추억하나이다
10)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시위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11)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징조가 있는 꿈이라
12) 그곳에 시위대장의 종된 히브리 소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고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인에게 해석하더니
13) 그 해석 한대로 되어 나는 복직하고 그는 매여 달렸나이다
바로의 눈동자는 빛났다. 귀신이 곡할 히브리출신 꿈 해몽가가 있다니 얼마나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인가? 지금까지 근심하고 걱정하던 바로와 애굽 왕국에 소망이 소식이 들려지게 된 것이다. 요셉은 잊혀진 인물이 아니었다. 온 땅에 물로 가득찼을 때 노아의 방주에 타고 있던 노아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심처럼, 소돔성에서 유황불에 타죽을 롯을 아브라함을 기억하사 롯으 구출해주심처럼, 애굽에서 울부짖는 이스라엘을 주께서 기억해 주심처럼 주님은 바로가 꾼 꿈을 통하여 요셉을 기억하게 해주신다.
택한 자여 낙심치 말라 주께서 기억해 주신다. 그날이 오기까지 길이 참아라. 무덤 속에 갇힌 주께서 사흘을 기다리듯,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이 사흘을 기다려 부활의 목격자 되듯, 침묵하며 기다릴 때가 있느니라.
찬 송 / 146장 ( 저 멀리 푸른 언덕에 )
합심기도 / 절망 중에도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게 하소서. 부활을 소망케 하소서.
#49-930411
부활절의 계란
찬 송 / 152장
성 경 / 롬 8:
언제부터인가 부활절이면
계란을 나누는 전통이 생겼다.
그러나 그 계란이 상징하는바를 알고 나눈는 것일까?
많은 교인들이 자신들이 받은 계란이
무정란인지 유정란인지도 모른채 받아먹는다.
유정란은 달걀 안에 생명의 씨앗인
정자가 있어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주면
병아리가 깨어나온다.
그러나 무정란은 양계장에서 억지로 생산하여
생명의 씨인 정자가 없다.
그래서 따뜻하게 해주면 오히려 썩어버리고 만다.
로마서 8장에 의하면
사도바울은 우리의 부활의 근거를
우리안에 계신 생명의
씨앗인 성령때문으로 증거하고 있다.
우리는 성령을 모시고 있기에
유정란처럼 부화(부활)할 것이다.
그런데 부활절에
무정란을 먹다니........
#50-930412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십니다.
찬 송 / 82장 (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
성 경 / 창 41:14-36
1. 바로가 요셉을 부르다 14절
큰 나라 애굽의 황제 바로는 꿈을 꾸고 큰 근심에 빠졌다.
그 큰 나라 애굽에는 바로의 꿈을 속시원히 해몽해줄 박사가 없었다.
바로의 근심은 애굽의 근심, 바로의 위기는 애굽의 위기였다.
근심의 수렁에 빠진 바로궁전과 애굽에 신명난 것 없을까?
술맡은 관리는 명석한 꿈해몽가 「요셉」을 생각해 냈고,
바로는 급히 요셉을 불렀다.
관리들은 급히 요셉을 1)감방에서 데려다가
2)수염을 깍고
3)옷을 입혀
4)바로 앞에 세웠다.
요셉의 소원이 성취되었다.“난 억울하오 나가게 해주오”.
애굽의 벽화를 자세히 관찰해 보라.
수염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구별이 있다.
수염 기른 사람은 셈족이고 수염깎은 사람은 애굽인이다.
요셉은 감방에서 기른 수염도 깎은 것이지만, 지위가 높아진 것이다.
노예로서는 바로 앞에 설 수 없으므로 노예 신분 벗겨서 바로 앞에 섰다.
2. 내꿈을 해석하는 자 없더니 너는 능히 푼다더라.
큰 나라 애굽의 술객들과 박사들 중에는 진짜 해몽가가 없었다.
답답함만 더해 주는 가짜들이었다.
바로가 요셉에게 기대하는 바는 신통력 있는 꿈해몽이다.
요셉의 시원한 꿈 해몽을 어서 듣고 싶었다.
바로는 요셉에 대한 과대한 칭찬과 기대를 가졌다.
애굽 술객, 박사들 말짱 거짓 것들로 드러났지만, 너는 능히 푼다더라.
너는 능히 할 수 있다더라.
3.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원케 하시리라.15절
요셉은 겸손한 인물이었다.
자기를 자랑하거나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지 않았다.
꿈 해몽의 능력은 자신에게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게 있노라고 밝혔다.
인생의 감추어진 미래의 활로를 시원히 뚫어줄 분은 하나님이시다.
자기칭찬 , 자기영광, 자화자찬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나는 죽고 오직 주님만 내 안에 사는 삶을 요셉은 살았다.
부활절 새벽 어린 자녀가 내게 물었다. 부활절 새벽에는 촛불 밝히고 예배드려 인상적이고 달걀을 받아 기분 좋은데 달걀을 따뜻한 곳에 놔두면 병아리가 깨어나오나요? 그럼, 그러나 어느 달걀이든 병아리가 나오는 게 아니란다. 수탉과 함게 놔 먹여 기른 암탉이 난 달걀만이 병아리로 깨어난단다. 씨가 없는 달걀을 따뜻하게 두면 곯아서 지독한 냄새가 난단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씨를 받은 자들이다. 그리스도게서 부활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은 부활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에게 생명의 능력은 주님께 있다. 주님 자랑하자. 내가 자랑하고 영광 받을 것 전혀 없다.
찬 송 / 204장 (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
합심기도 / 오직 영광을 주님께 돌리자. 나를 내세우지 말고 주님 내세우자
#51-930413
번성케 하는 지도자
찬 송 / 151장 ( 다시 사신 구세주 )
성 경 / 창 41:17-
1. 바로의 꿈 설명 41:17-24
하숫가에서 올라온 살진 일곱 암소;
하수는 나일강을 가리킨다. 나일강은 생명을 주고 번성케 하는 애굽의 젖줄이다.
애굽은 겨울에 약간 내릴 뿐 년중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사막성 기후이다.
그러나 늘 나일강의 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물 걱정 없다.
애국의 국토도 대부분 사막이므로 나일강 계곡과 하류 삼각주가 곡창지대이다.
비가 오지 않아도 나일강물을 발로 논밭에 대어 살지게 한다.
하수에서 올라온 살진 암소는 생명의 젖줄 나일의 은총을 강조한다.
하수가에서 올라온 파리하고 쇠약한 일곱 암소;
나일강이 위협당할 때가 있다.나일강의 위협의 애굽왕국의 위협이요, 풍요의 위협이다.
파리하고 세약한 일곱 살진 암소들을 먹었으나 먹은 것 같지 않더라.
먹지 않아도 배부를 때가 있다.
가을녘 누렇게 익어가는 풍요로운 황금들판을 바라보는 농부,
황금어장에 그물을 던지는 어부, 이들은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
먹을 것 많고 만난 것 쌓인 아이들은 안먹어도 배부르다.
먹을 것 없고 가난한 소말리야 난민들은 먹어도 배고프다.
풍요의 나라 애굽은 앞으로 먹어도 배고픈 절망이 닥칠 징조다.
2. 요셉의 해몽 41:25-32
요셉은 바로에게 하나님을 증거한다.
하나님이 바로에게 좋은 해답을 주시리라.16절
하나님이 바로에게 보이신 것.25절
하나님의 하실 일. 28절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 38절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3. 요셉의 제안 41:33-42
1) 명철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택하여 애굽을 치리하게 하시고,
2)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세금으로 거두어
3) 양식을 위하여 각 성에 저축하소서.
4) 저장하여 흉년을 예비하면 흉년 만나도 멸망치 않으리라.
4. 바로가 요셉을 총리삼다.41:37-45
바로의 제안 :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을 어찌 얻으리요?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로운 자가 없도다.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인장반지 빼어 요셉 손가락에 끼어줌.세마포옷 입히고. 금사슬 목에 걸어주고
버금 수레에 태우고, 사브낫바네아라고 부름. 제사장 딸 아스낫을 아내로 삼음.
5. 요셉의 통치 46-57
1) 30세에 총리되었다. 17세에 노예로 팔려 13년 고난의 풀무불에 연단받음.
2) 풍년 때 저축하여 바다 모래 같이 셀 수 없이 풍부해졌다.
3) 두 아들을 낳다. 장자=므낫세(고난 잊음) 차자 =에브라임(풍요)
4) 온 세계는 기근으로 양식 없으나 애굽엔 양식이 있어 각국에서 사러오다.
애굽을 살리고 세계를 살리는 사막을 풍요로 번케 하는 지도자 요셉은 하나님이 감동한 자, 어린이 같이 지혜롭고 명석한 자이므로 하나님의 비밀과 계시를 깨달았다. 바로 같은 민중 탄압자 아닌 어린이 같은 지도자가 백성을 번성케 하고, 신바람 나게 하는 지도자이다.
찬 송 / 233장 ( 황무지가 장미꽃 같이 )
#52-930414
드디어 꿈이 이루어지다!
찬 송 / 542장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뵈었으니)
성 경 / 창 44:11-34
1. 형제들;
요셉을 미워하여 노예로 팔은 것. => 형제우애 못한 것.
=>평생 마음 깊이 양심 가책.
짐승에게 찢겼다고 아버지 속임 => 부모존경 못한 것.
부친에게 솔직담백하게 진실을 밝히지 못한 채 20여년 세월흐름.
양심 가책은 영적능력을 쇠퇴시키고 물질적 빈곤 가중시킴.
1) 환난을 형제 사랑 못한 탓으로 양심가책받음.
42:21=>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44:16=> 하나님이 종들의 죄를 적발하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되 자가
다 내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
과거의 실수에 얽매어 아버지께 진실치 못하고 거짓으로 은폐된 세월,
가정의 우울과 근심을 가중시키고 미래의 열린 가능성에 무지하다.
2) 꿈꾸는 자를 제거하므로 꿈이 못이루어지도록 했지만 꿈대로 요셉에게 잘한다.
42:6 =>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러 절하매
43:28=> 머리 숙여 절하더라.
44:14=> 그 앞에 땅에 엎드리니
3) 형제들은 기근과 애국에 와서 모함당함이 모두 요셉 핏값이란 죄책감으로 시달림.
미래의 생명에로 가능성에 눈이 어두움.
4) 맏형 답게 요셉 두둔하고 구하려 했던 르우벤,
요셉을 미디안 대상에게 팔아넘기자고 제안했던 유다도 회개한다.42:16,44:18-34.
2. 아버지 야곱:자녀들의 속임수로 죽을 결심으로 먹지 않고 슬퍼하며 위로 받기를 거절함.
1) 라헬 자식에 대한 애착을 못버린다.
42:38=>요셉도 잃었는데 베냐민까지 잃으면 음부로 내려가게 되리라.
2) 가족 생존 위한 빵을 위해 자기 고집 꺾는다.
43:11-13=>1)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예물로 가지고 가라.
(유향, 꿀, 향품, 몰약, 비자, 파단행)
2) 너희 손에 돈을 배가 가지고 가고 전에 돈을 도로 가져 가라.
3) 너희 아우 베냐민도 데려 가라.
3) 인간 방법 넘어서서 전능자 하나님을 전적의지한다.
43:14=> 전능자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의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으면 잃으리로다.
가족 전체의 생명을 위하여 생명 같이 여기는 자식을 잃으면 잃으리라는 결심과
전능자 하나님(엘 샫다이,י ל)의 자비를 간청한다.야곱의 생애동안 도우셨다.
3. 요셉: 형제들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애굽의 생명과 세계의 생명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실력자이다.
1)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와서 자기 앞에 절하는 모습을 보고 어려서 꾼 꿈을 추억한다.
그리고 형들에게 무례하고 간교하게 속이고 애태우는 모습으로 나온다.
42:9 => 요셉이 그들에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2) 그러나 요셉은 몰인정한 사람이 아니라 뜨거운 동기간 사랑을 지녔다.
42:24=> 요셉이 그들을 떠나 울고 다시 돌아와서
43:29-34=>요셉이 아우를 인하여 마음이 타는 듯 하므로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꿈꾸는 소년 요셉은 꿈 때문에 많은 시련을 당하고 연단도 받으며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고 은총을 입으며 마침내 애굽을 다스리고 기근에서 세계의 생명을 조절하게 된다. 가족의 생명을 다스리게 된다. 꿈은 성취된다. 그러나 고난의 풀무학교의 연단과정을 거쳐야 한다.
찬 송 / 331장 ( 나 주를 멀리 떠났다 ) 주는 회개할 때 중심이 뜨거워지신다.
#53-930415
하나님이 보내셨나이다!
찬 송 / 353장 (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
성 경 / 창 45:1-
1. 요셉이 형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질러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에게
자기를 알리니 때에 그와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
2) 요셉이 방성대곡하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능히 대답하지
못하는지라
형들은 요셉이 살아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더군다나 애굽의 총리가 되었으리고는 꿈엔들 생각했으랴.
죽었으리라 생각했던 요셉이 살아서 한 나라의 총리가 되다니!
형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더군다나 엄위 있는 애굽 총리대신 앞에서 엄히 문착받을까봐 두려웠다.
요셉은 신하들을 물리치고 방성대곡하고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다.
2. 형제들을 위로한다.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께서도 두려워하는 여인들과 제자들에게 ‘두려워 말라’했다.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3. 지난난의 허물을 하나님의 경륜으로 해석했다.
5절하)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 이다
과거의 고난의 행적을 숨어계신 하나님의 행적으로 이해한다.
인간사 배후에서 하나님은 자기의 일을 성취해 나가신다.
보이지 않는 손길로 도우시고 역사하심을 요셉은 분명 알았다.
형들에 의해 구덩이에 던져짐=>마침 미디안+이스마엘 대상이 지나감=>
=> 보디발 집에 노예로 팔림 => 보디발집 가정총무됨 =>보디발 아내의 모함=>
=> 정치인 수용 감옥에 갇힘 => 바로의 술맡은 관리의 복직되는 꿈해몽=>
=> 바로의 꿈해몽 =>애굽의 총리대신됨 =>7년 풍년과 7년 흉년 =>
=> 전 세계 기근과 가나안 기근으로 형들 만남 => 야곱 가족 애굽 정착.
흉년 동안 생명 유지를 위해 하나님이 미리 요셉을 보내심 것으로 해석.
4. 가족 생명 살리려는 하나님의 섭리의 도구
6)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니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형들의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미리 보내신 것이라 하나님 섭리로 해석한다. 7년 대기근에 가족의 생명을 이어가도록 하나님이 미리 보내셔서 애굽의 주권자로 삼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축복으로 변케 하시고 두려움과 근심을 변하여 기쁨되게 하시고, 죄책감과 불안을 없애고 용서와 화해를 주시는 분이다. 요셉은 이름 그대로 하나님의 축복과 용서 은혜를 「더 해주는 하나님 섭리의 도구」이다.
#54-930416
흡족하다!
찬 송 /
성 경 / 창 45:9-
1. 요셉은 하나님의 보낸 자로서 명령을 내린다.45:9-13
애굽전국의 주권자로서 권위 있는 명령을 내린다.
요셉은 「속히, 9절」 「속히 13절」 시행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아직도 남은 5년 기근에 아버지의 가속이 결핍될까 하여 봉양하려는 것이다.
택함 받은 가족은 요셉 때문에 얻은 애굽의 번영 덕으로 흉년에도 특별 공양받는다.
하나님은 숨어계신 분으로서 선민에게 생명을 공급하신다.
2. 요셉의 아비 가족 이민 계획은 황제의 승인을 받았다.16절-20
바로는 요셉 형제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명령을 내린다.
1) 수레와 기구를 다 동원하여 가나안에 가서 모셔오라
2) 온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너희 것임이라.
굶주린 백성이 배불림을 얻고,
가장 기름진 땅을 차지하고 윤택한 생활을 하게 된다.
하나님 백성에게 주님은 풍족한 것으로 은사로 채워주시고
기름지고 풍성한 것들로 채워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
3. 야곱의 반응을 어떨까? 21절-28절
요셉은 바로의 명령대로 시행;
1)형들에게 수레와 길 양식을 주었고
2)옷 한벌씩을 주되 베냐민에게는 은 삼백과 옷 다섯벌을 주고
3)아비에게 선물:애굽 아름다운 물품 열수나귀+떡과 양식 암나귀 열필
4)형들에게 도중에 다투지 말라 당부
야곱에게 보고;
1)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있어 애굽의 총리가 되었더이다.
2) 야곱이 믿지 못함.
3) 야곱은 요셉이 보낸 수레를 보고 기운이 소생함.
4. 야곱의 반응;
이스라엘이 가로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야곱의 지금까지 슬름과 눈물로 살아있지만 실상은 죽은 것 같은 세월을 살아왔다.
요셉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소망의 눈이 번쩍 떴다.
죽은 줄만 알았던 심청이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은 심봉사가
내 딸 심청이거든 어서 보자며 눈이 번쩍 떴던 것처럼
야곱은 근심의 눈거풀 벗겨지고 기쁨의 눈을 떴다. 슬프던 인생은 기쁨으로 바뀌었다.
야곱은 바로가 보낸 선물과 애굽의 기름진 땅 때문이 아니라,
죽었던 아들 살아 있는 요셉을 보러 갈길을 서둘렀다.
“족하도다” = 라브 ב 넉넉하다. 풍족하다.많다.
야곱은 요셉이 살았다는 것만으로 더 이상 구할 것 없이 만족했다.
주님은 믿는 자에게 넘쳐 흐르도록 잔을 채워주신다.
주님은 믿는 자에게 지금 굶주린 자에게 배부르게 해주시고, 슬픔과 걱정으로 눈이 가린 자에게 기쁨으로 바꿔 주신다. 넘쳐 흐르는 잔처름 우리에게 각종 은사와 좋은 것을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채워주신다.
찬 송 / 169장 (강물 같이 흐르는 기쁨)
기 도 / 야곱의 슬픔과 걱정의 인생 기쁨으로 바꿔주심처럼 우리에게 기쁨충만 주소서.
#55-930417
가장 행복한 순간!
찬 송 / 401장(천성을 향해 가는 신도들아)
성 경 / 창 46:1-7
1.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묻다 1-4절
1)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브엘세바에서 아비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드림.
브엘세바=>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던 곳(창21:22-34)
아비멜렉왕과 군대장과 비골에게 일곱 암양새끼를 주고 언약
맹세한 우물=>브엘세바
아브라함이 에셀 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불렀던 곳.
이삭이 맹세한 우물(창 26:26-33)
2)야곱은 약속의 땅을 떠나는 것을 염려하며 브엘세바에서 희생을 드렸다.
이방 땅 애굽에 가서 물질 축복 누려야 할찌?
가난해도 약속의 땅 지킴이 옳은지?
3)밤에 이상 중 하나님이 나타나심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 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정녕 너를 인도하여 애굽에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즉, 1) 애굽이민 허가.2) 큰 민족 약속 3) 하나님이 동행 약속.
4) 출애굽 약속. 5) 행복한 임종 약속.
야곱은 조상 때부터 섬기는 하나님의 이민계획 결재를 받았다.
2. 야곱 일행이 브엘세바를 출발하여 애굽으로 향하다 5-7절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바로가 보낸 수레에 아버지와 처자를 태우고
생축과 가나안에서 얻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야곱의 자손이 다 애굽으로 내려 갔다.
야곱이 아들들, 딸들, 손자들, 손녀들, 모든 자손이 내려 갔다.7절
3. 애굽으로 내려간 야곱 가족 70명의 이름들 8-27절
27절 =>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의 도합이 칠십명이었더라.
야곱의 집 = 베잍 야곱(ב־תי)
이스라엘 공동체의 가장 작은 단위, 대가족 제도의 기초단위
완전수 70명이 몽땅 애굽에 내려 갔다.
4. 요셉이 가족을 마중하다 28-34절
요셉이 이스라엘의 정착지 고센땅으로 아버지 일행을 마중나옴.
감격적인 부자상봉=> 목을 어긋맞겨 안고 얼마동안 울매 29절.
야곱:“네가 지금까지 살아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가하도다”29절
지금 죽어도 가하도다 => 나로 지금 죽게 하라ם הוּמאָ Now let me die!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극도로 만족한 황홀한 상태.
요셉의 당부: 바로가 묻거든 우리와 선조가 다 목축하는 자라 하소서
애굽인은 전통적인 농경사회이므로 목축업을 가증스럽게 여겼다.
필경 이스라엘이 애굽 안에 특수부락을 이루어 「고센땅」에 거하게 되리라.
이스라엘의 애굽 이주는 하나님의 인가를 받았다.“두려워 말고 애굽으로 내려가라. 거기서 큰 민족을 이루고 내가 함께 내려 가리라. 필경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라”. 이스라엘은 요셉이 살아 다시 만나게 되니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극도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눈물과 한숨,슬픔과 걱정으로 보낸 22년의 세월의 한스러움이 이 한 순간에 활짝 걷혔다. 더 소원도 없고, 더 이상 감격도 없었다. 요셉의 파란만장한 고난과 역경의 어름장 같던 세월이 한순간 녹아내렸다. 참 만남은 행복의 극치이다. 성도들은 주님과의 만남 속에 참 행복의 순간을 갖는다.
찬 송 / 209장 ( 주의 말씀 받은 그 날 )
합심기도 /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결재를 받고 시작하게 하소서!
#56-930418
험악한 나그네의 본향!
찬 송 / 429장 ( 내 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 )
성 경 / 창 47:1-12
1. 바로 앞에서 선 야곱의 아들들 1-6절
요셉은 형제들 중 오인을 바로에게 소개한다.
바 로: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형제들: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나이다”
형제들: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세계적 흉년
종들의 떼를 칠 곳이 없기로 ....목축이 직업
종들이 이곳에 우거하러 왔사오니 ....우거하러(구르רוּג)=임시 머물러
청컨데 종들로 고센 땅에 거하게 하소서” ....고센땅 요청
바 로: “애굽 땅의 좋은 곳, 고센 땅에 거하게 하라”
“능한 자로 궁중목축 주관케 하라”
요셉의 형제들은 애굽 땅에 잠시 머룰 작정으로 왔다.
바로는 애굽 땅 중 좋은 곳을 주고 실력자로 왕궁 가축 감독관을 삼았다.
즉, 매우 우호적인 배려를 받았다.
2. 바로 앞에선 야곱 7-12절
바로 야곱
땅과 궁전 권력 있다. 땅도 궁전도 권력도 없다.
애굽의 왕 우거하러 온 나그네
영적으로 백치 바로를 축복하는 자(7,10절)
3. 요셉의 양곡 관리 13-26절
가뭄이 계속되자 백성이 돈, 짐승, 전지를 팔아 곡식을 사가게 되었다.
요셉이 애굽 모든 땅을 사서 바로에게 바침.제사장의 전지는 사지 않았다.
요셉이 토지법을 세움 = 추수 때 오분지 일을 바로에게 세금 바치게 함.
*반타작 하거나 삼분지 이를 지주의 몫으로 하던 고대근동에 비해 가벼운 편이다.
4. 요셉에게 유언을 남긴 야곱
요셉 야곱
현실적이고 사무적 비현실적, 영적 열정
세속 정치에 밝음 하나님 약속에 몰두
성공적 실권자였다. 족장
혜택받으며 행복추구 애굽은 잠시 거류지일 뿐
좋은 땅 고센 약속의 땅 사모
야곱은 기름진 고센 땅에 묻히기를 원치 않았다.
선조의 뼈가 묻힌 선영 「헤브론 막벨라 굴」에 묻히는 것이 소원
그래서 야곱은 요셉에게 환도뼈 맹세를 하게 한다.
고센땅이 제아무리 기름지고 풍요로운 땅일지라도, 아들 요셉이 애굽의 실권자여서 각종 헤택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손치더라도 야곱은 아들 요셉 얼굴 보기 위해 왔지 잘 살러 온 것이 아니었다. 이제 147세의 고령에 살아서 조상의 뼈가 묻힌 약속의 땅에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내가 죽거들랑 애굽땅에 묻지 말고 선영에 묻어달라 간곡히 유언한다. 몸은 애굽(세상)에 있으되 애굽(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애굽 고센 땅의 풍요와 행복은 잠시 나그네 인생의 위로일 뿐, 영원히 돌아갈 본향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돌아갈 본향을 사모하는 것이 성도의 행복이다. 뼈라도 약속의 땅에 묻히기를 사모하는 야곱처럼 이 세상에서 우리는 나그네와 행인으로 살며 본향을 향하는 나그네임을 늘 기억하자.
찬 송 / 221장 (나 가난 복지 귀한 성에 들어가려고)
합심기도 / 이 세상 현실적 행복만 추구하지 않고 영원한 본향 사모하게 하소서.
나그네와 행인 같은 험악한 인생길 가는 동안 주 동행하소서
#57-930419
다음세대에 잇는 축복
찬 송 / 234장 ( 나의 사랑하는 책 )
성 경 / 창 48:1-7
1. 야곱이 병들다.
야곱은 요셉에게 환도뼈 맹세를 시켜 선영에 뼈를 묻어줄 것을 당부했다.
요셉의 확답을 들은 야곱은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죽어서 뼈라도 약속의 땅에 묻히기를 바라는 소원을 엿볼 수 있다.
91년 KBS-TV에서 「삼일간의 약속」이란 연속극이 방영된 적이 있다.
함경북도 주을 온천 부근에 살던 「정동규 청년」은 「삼일만에」 돌아오겠다고
어머니에게 약속하고 후퇴하는 미군을 따라 동네청년과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33년만에 고향땅 밟으니 기다리는 것은 어머님 묘지였다. 그는 통곡하며
「내 뼈라도 고향땅에 묻어다오」 유언하는 고향친구의 뼈를 고향산천에 뿌려주었다.
인생은 이렇듯 본향을 그리는가 보다.
뼈만이라도 약속의 땅에 묻힐 확답을 받은 야곱은 날로 병세가 악하여졌다.
2. 두 아들 데리고 부친 병문안 하는 요셉.
요셉의 의도는 병문안도 있었지만
부친 별세전에 축복을 받게 하려는 것.
다가오는 세대, 차세대가 축복받게 하려는 요셉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아브라함 - 이삭으로 이어지는 족장의 축복이 자손에게 이어지기를 바란 것이다.
3. 야곱은 루스땅에서 주께서 주신 복을 회상한다.
내가 너로 생육하게 하며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4.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에브라임 므낫세는 나중에 요셉 대신 두 지파 몫을 분배받는다.
요셉은 「더하다」는 이름대로 곱배기의 복을 받았다.
베들레헴으로 가던 도중 죽은 라헬이 낳은 아들 요셉,
그 자손의 번성하고 강성해질 것을 야곱은 내다보았다.
한 세대는 가고 사라지지만 다가오는 새 세대가 소망스럽게
번성하고 강성해져야 한다.
나 한 세대로 복받고 마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나의 신앙, 나의 받은 복, 물려주어 어린 세대가 번성해야 한다.
소망은 바로 어린 세대에 있다.
고아의 아버지로 알려진 조지 뮬러 목사님은 무일푼의 가난뱅이였다. 정부에 의해 헐린 빈민굴의 오갈데 없는 30명의 고아를 불러 모아 고아원을 시작했다. 재산이라고는 「고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 뿐, 어떤 부인이 와서 왜 기부금을 모금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물러는 하나님께 부탁해 놓았다고 대답했다. 감동된 부인은 10실링을 내 놓았다. 1 파운드도 안되는 적은 돈이 설립기금이 된 것이다. 잠시 후 자원 봉사자들이 찾아오고 가구와 식기 등을 가져오는 분들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2,000명을 수용하는 다섯 개의 고아원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주님이 원하시는 소망스런 일에 함께 일하신다.
찬 송 / 344장 (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
기 도 / 우리 다음 세대, 우리 교회의 다음 세대에 축복 물줄기 잇게 하소서.
#58-930420
나도 안다 나도 안다
찬 송 / 490장 (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
성 경 / 창 48:8-22
1. 축복이란 무엇일까?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아버지 야곱의 손에 이끌려 늙으신 할아버지 앞에 선다.
이 젊은이들은 애굽의 총리대신의 아들로 화려하고 풍요로운 생활에 익숙해 있다.
이 애굽 풍습과 생활에 젖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할아버지의 모습은 어떨까?
애굽에 몸붙여 살려고 온 나그네요, 추하고 괴상한 할아버지의 모습일 뿐이다.
요셉은 버르장머리 없는 두 아들을 늙으신 할아버지의 축복을 받게 하려한다.
재산과 권력과 부귀영화 없는 늙은이가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요셉은 두 자식을 타일러 할아버지께 축복받으러 가자고 데려왔는데,
가난하고 부귀영화 없는 늙은이가 무엇을 베풀 것인가?
이 아이들 몇 대 이후의 미래의 축복을 주었다.
지금 부동산 투기하여 떼돈벌고 부정한 방법으로 대학들어는 것이 복이 아니다.
부정으로 번돈,부정으로 얻은 학위 가지고 자란 젊은이들의 미래에 무엇을 기대할까?
가난하고 늙은 야곱이 축복은 열린 미래와 영적 권위이다.
2. 축복의 내용은 무엇일까? 15-16,20절
하나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 지끔까지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복을 주소서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으로 칭하게 하시고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특히 하나님은 모든 환난에서 건지시고 기르신 목자이시다.
야곱을 인도한 목자께서 자손들을 기르시는 목자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3. 야곱은 눈이 어둡고 또 손을 어긋 맞게 안수하였다.17-19절
요셉은 아버지께서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심을 알았기 때문에 자상한 조치를 취했다.
맏아들 므낫세를 아버지 오른손쪽에, 둘째 에브라임을 왼손쪽에 두었다.
그런데 야곱은 손을 어긋 맞게 언져 오른손을 둘째 머리 위에 얹고 축복했다.
요셉은 얼른 아버지의 실수를 바로잡으려 했다.
세례식에서 이름을 잘못부르는 것 같고, 다른 묘지 앞에 참배하는 것 같아보였다.
야곱은 「나도 안다, 나도 안다」 하시며 고집대로 축복을 했다.
축복은 자기 길을 가는 것이요, 하나님의 신비이다.
눈어두운 야곱의 축복행위는 하나님의 신비요,축복의 물꼬를 차자에게 잇게 했다.
4. 야곱은 세상식의 장자권을 거부했다.
이스마엘보다 이삭 에서보다 야곱,세라보다 베레스,형들보다 다윗을 하나님은 선택했다.
먼저 잔치에 초대된 자들을 한 사람도 참예 못하고
절름발이, 소경, 가난한 자, 문둥이들이 오히려 천국 잔치에 참예하게 되었다.
후대 역사에서 에브라임은 므낫세 보다 강성하고 큰 복을 차지했다.
5. 요셉에게는 일부분을 더 주었다.22절
요셉이라는 이름 뜻대로 「더」 일부분을 받았다.
일부분이란 산의 한쪽 경사지 즉 ‘세겜’(ם)을 분배받았다.
세겜은 약속의 땅 중심지요, 요셉 지파는 바로 세겜을 얻었다.
요셉은 아버지까 죽기 전에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축복을 받도록 애썼다.
가난한 할아버지가 머리에 손얹고 선언하는 것은 애굽에서 자란 새 세대에게 이상한 행위였다.더군다나 손을 어긋 맞게 놓여졌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요, 축복은 축복을 선언한대로 가기 길을 가는 것이다. 에브라임은 더 복을 받고 큰 역활 감당했다.
우리도 축복을 사모하는 성도가 되자.
#59-930421
열두아들 축복
1. 야곱은 죽기 전에 열두 아들을 불러놓고 축복한다.
이 름 이름의 뜻 축복 출생순 축복순
레 르우벤 보라 아들이라 끓는 물 1 1
시므온 들으심 잔해하는 칼 2 2
레 위 연합함 잔해하는 칼 3 3
아 유 다 찬송함 사자(獅子) 4 4
잇사갈 보상받음 건장한 나귀 9 6
스불론 거함 해변의 배 10 5
빌 단 심판 뱀과 독사 5 7
하 납달리 경쟁함 놓인 암사슴 6 10
실 갓 복됨, 행운 전사(戰士) 7 8
바 아셀 복받은 자 기름진 식물 8 9
라 요셉 수치를 제거함 무성한 가지 11 11
헬 베냐민 오른손의 아들 물어뜯는 이리 12 12
2. 유다 지파의 축복
맏아들 르우벤이 장자권을 잃고 유다지파가 메시야의 혈통을 잇는 축복받음.
유다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라...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사이를 떠나지 않으리라.
유다 => 다윗 => 그리스도 => 하늘, 땅, 땅 아래 물 속 모든 무릎꿇음.
3. 요셉 지파의 축복
샘물 곁의 무성한 가지
요셉을 힘주시는 분 =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
이스라엘의 반석의 목자가 나옴.
아비의 하나님이 도우심.
전능자가 도우심.
축복 = 전능자가 네가 복주시리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로다.
네 아비의 축복이 네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요셉은 전능자의 손이 돕는 복, 복의 복을 받았다.
3. 야곱의 죽음
야곱은 열두 아들을 축복하고 가나안땅 헤브론 막벨라굴에 묻어달라 부탁하고 죽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은 바로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이다. 애굽에서 번성한 지파로 양육된 후 필 경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다. 야곱의 뼈를 막벨라굴에 묻음은 출애굽의 소망이다.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야곱의 생애는 끝났다. 그의 생애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하나님이 선택하셨다. 야곱의 전능자(엘 샫다이)가 목자가 되어 주셨고, 인도하셨다. 그의 열두 아들 축복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이루었다. 우리의 인생길에도 목자되신 주님이 지켜 주신다. 우리의 자손이 복되게 믿자. 민족의 차세대를 축복하자.
#60-930422
선으로 바꾸시는 주님
찬 송 / 455 장 ( 주 안에 있는 나에게 )
성 경 / 창 50:15-21
1. 야곱의 장례 50:1-14
요셉의 높은 지위 때문에 야곱의 장례식은 국장급으로 성대히 거행되었다.
장레식은 애굽식으로 치루어졌다.
애굽의 장로들,아이 외의 가족들이 막벨라굴에 올라가 매장하다.
팔레스타인의 장례 = 당일 치룬다. 예수님처럼
장레식이 거창하지 않고 시체는 부정하므로 행렬이 많지 않다.
*이스라엘은 생명 문화
애굽의 장례 = 40일간 미이라를 만든다.
70일간의 애곡 기간을 갖는다.
엄청난 호상군들과 귀빈이 행렬에 따른다.
* 애굽은 무덤 문화, 피라밑, 왕들의 무덤, 미이라
미이라 만드는 법
1) 콧속으로 골을 빼내고 향재료(몰약)로 채운다.
2) 배를 가르고 창자를 빼내고 향재료(몰약)로 채운다.
3) 창자는 병에 보관하든지 강에 버린다.
4) 천연 소다로 시체를 씻고 세마포로 싸서 송진으로 바른다.
5) 여러 겹을 세마포로 싸되 각종 보석을 넣고
6) 관에 넣는다.
7) 현실에 보관한다.
2. 아버지 죽은 후 형제들의 두려움
형들은 요셉이 해꼬지 할까 두려워했다.용서를 구하며 엎드려 절했다.
37장의 어린 요셉이 꾼 꿈이 다시 이루어진 셈이다.
3. 요셉의 너그러움
(1) 두려워 마소서
(2)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했지만
(3) 하나님은 선으로 바꾸셨다.
(4) 만민의 생명을 구원케 하시려 하심이다.
(5)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들을 기르리이다.
우리는 여기서 성숙한 성도의 모습을 본다.
1) 형제들의 악행을 선으로 갚음..
하나님께 나가기전 먼저 형제와 화해하라는 말씀 실천.
2)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믿음.
4. 요셉의 죽음
유언:24)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요셉은 성숙한 성도의 모습이다. 형들의 악행에 보복하지 않고 용서하고 오히려 선으로 악을 갚았다. 요셉은 숨어계서서 인생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분명 체험했다. 형들에게 받은 고통, 뼈아픈 추억은 하나님이 넉넉히 보상해주셨다. 요셉의 애굽의 부귀영화 누렸지만 돌아갈 곳은 본향 약속의 땅 가나안 복지임을 분명히 알았다. 먼 후손들이 출애굽할 때 자기의 뼈만이라도 약속의 땅으로 메고 가라고 부탁하였다. 인도하심 믿고 두려워 말라.
#61-930423
#64-930426
요셉의 전도법
찬 송 / 455장 ( 주 안에 있는 자에게 )
성 경 / 창 50:20
1. 요셉은 어떤 환경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증거했다.
보디발 집에서
비록 노예의 모습이었지만
매사 감사함으로 생활하여
생활로 주인을 감동시켰다.
*보디발은 요셉의 범사에 주께서 함께 하심을 알았다.
감옥에서
술맡은 관리, 떡굽는 관리의 꿈을 하나님 이름으로 해석
바로의 꿈 해몽
요셉을 필요로 하는 순간에 하나님 이름으로 꿈 해몽함.
하나님 영광을 드러냄.
2. 선으로 악을 갚았다.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 했지만
요셉은 형들을 선으로 대했다.
3.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로 믿음
매사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믿고 살았다.
4. 어떤 순간 어떤 상황도 선용함이 중요하다.
전도의 접근법
1) 우선 대문을 열어라.
극동아파트 32가정을 축호전도한 결과 5집이 교인집, 3집이 천주교인집,
1집이 원불교인집, 불교인이라는 집이 몇 집 되었다.
부재 중인 집이 7-8 가정 되었고, 전혀 거부하는 집이 3집 정도되었다.
무공해 비누늘 가지고 갔을 때 몇 집 외에는 호의적이었다.
음식 나누어 먹기 - 명절, 생일 등 이웃에 떡을 돌린다.
우는 아이 데려다 주기
짐보따리 들어다 주기-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굳은 일 돕기 - 관혼상제
2) 마음문 열어라.
생일초대. 승진, 합격, 출산 등 축하.
사랑의 편지 보내기, 이슬비편지 보내기, 생일카드 보내기, 주보 보내기
3) 교회와 접촉
영화상영 어린이 무용발표회 자녀교육강좌 주부대학 및 강좌 저명인사 초청 강의
속회와 접촉
4) 교회로 인도
몇 차례 찾아가서 주일예배에 인도. 주일아침 찾아가서 같이 오기
환영시간 꽃달아주기. 기념촬영. 새신자 환영회. 해당기관 속에 인도.
5) 정들이기
결석했을 때 찾아가기 관심보이기.
새신자를 내 집 찾아온 손님 처럼 모실 것.
먼저 찾아가 인사할 것.
기존 성도끼리 인사보다 먼저 새 신자와 대화 인사할 것.
옆에서 성경 찬송 찾아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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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옥련지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