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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가난한 노파의 싸구려 등불
가비라성에서 수차례의 법회와 포교 활동을 벌인,
붓다와 비구 수행승들은 마침내 다음을 기약하고 가비라성을 떠났다.
출가를 위해 떠나던 시절과는 사뭇 달랐다.
밤중에 몰래 마부를 깨워 담을 넘던 옛날과 달리,
붓다는 제자들을 거느리고 정반왕과 왕족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가비라성을 나선 것이었다.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붓다에게 출가하여 따르는 비구들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그리고 그보다 출가하지 않은 사람들은 재가 신도가 되어 삼보에 귀의하였는데,
그 수효는 더더욱 많았다.
바라문들이 주류를 이룬 붓다의 제자들 때문에 바라문교를 믿던 사람들이 대부분 불교에 귀의했다.
붓다와 제자들은 왕궁을 빠져나와 거리로 나섰다.
수많은 신도들이 붓다가 걸어가는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생불(生佛)을 찬미하고
그의 오묘한 불법을 찬양하였다.
붓다는 자비로운 미소를 띤 채 천천히 신도들 사이를 걸어가며 기꺼이 그들의 공경을 받았다.
비구들도 길게 늘어서서 붓다의 뒤를 따랐다.
수보리는 무리의 중간쯤에 끼어 걸어갔다.
붓다의 바로 뒤에는 사리불, 목련같은 으뜸제자들이 따랐고,
그 뒤를 출가한 순서대로 열을 지었다.
수보리 뒤에는 우바리가 있었고 그 뒤를 이어
지난 시절 왕자였던 아난, 아나율, 데바, 라훌라, 바제리가 비구가 나란히 걸어갔다.
행렬의 맨 뒤쪽에는 난타 비구가 누더기 가사를 걸친 채 따르고 있었다.
왕궁을 떠날 때 정반왕은 붓다에게 귀한 물건을 아낌없이 공양하였다.
그런 것들은 하루 한 끼 먹을 음식만을 탁발하는 비구들에게는 별로 소용이 없는 것들이었다.
때문에 붓다의 제자들은 값비싼 공양물은 극구 사양하였다.
그러자 붓다가 말했다.
"그냥 받아두어라. 그런 것이 나나 너희들에게는 가치가 없을 터이나,
대왕의 공덕을 헤아리면 기꺼이 받아야 옳다.
붓다와 비구들에게 귀한 것을 바친 대왕의 공덕은 다음 세에서 능히 그 과보를 받으리라."
정반왕과 석가족들이 바친 갖가지 진귀한 공양물들은 코끼리 등에 실어 행렬을 따르게 했다.
사람들은 붓다에게 정성껏 준비한 꽃, 향, 등불 따위를 공양하였다.
부자들은 수백 송이의 우발라 꽃,
몇 년 동안 피울 수 있는 향과 큰 절 하나를 두루 밝힐 수 있을 만큼 많은 등불을 바쳤다.
그러나 형편이 넉넉치 못한 사람들은 꽃 몇 송이, 향 한두 상자, 작은 등불을 공양하였다.
붓다는 많고 적음의 헤아림 없이 기쁜 마음으로 그것들을 받았다.
붓다가 계속 백성들의 예배를 받으며 걸어가던 중,
한 꼬부랑 노파가 인파를 헤치고 나오더니 길 한복판에 넙죽 엎드렸다.
"이쪽으로 가서 공양하세요. 세존의 앞길을 막으시면 안됩니다."
앞서 가던 목련이 노파를 일으켰다.
워낙 인파가 많다 보니 서로서로 길가로 모여 가운데 길은 터놓고 있었는데,
이 노파가 갑자기 붓다의 앞길을 막아버린 것이었다.
"전 세존을 만나 뵈오려 며칠 전부터 여기에서 기다렸습니다."
노파는 이렇게 말하며 꿈적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단순히 붓다의 시선을 한번 받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사연이 있다고 목련 존자에게 하소연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존께 공양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모두들 순서를 기다리지 않습니까?"
붓다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목련은 다급해서 노파를 타일렀다.
그러나 노파는 막무가내였다.
결국 붓다가 그 노파가 있는 곳까지 걸어왔을 때에도 노파와 목련의 승강그 바람에 붓다와 비구들의 눈길이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목련이여, 무슨 일인가?" 붓다가 물었다.
"세존이시여, 이 노파가 길을 가로막고 서 있사옵니다. 곧 옆으로 비켜서게 하겠사오니 그동안 잠시 쉬소서."
목련이 얼른 대답하고 다시 노파의 손을 잡아 끌었다.
"길을 가로막고 있는 데는 연유가 있을 것이다." 붓다는 노파에게 다가섰다.
붓다의 뜻을 알아차린 목련은 노파를 일으켜 붓다 앞으로 안내했다.
"할머니, 고개를 드시지요. 그리고 그렇게 뵙고 싶어하던 세존을 만나보십시오. 여기 와 계십니다."
"할머니, 고개를 드시지요. 그리고 세존을 만나보십시오."
목련의 말에 노파가 머리를 번쩍 들었다. 주름살로 뒤덮인 얼굴이 마치 가면 같았다.
"거룩하신 세존이시여, 불쌍하고 어리석은 이 중생을 어여삐 보아주소서."
노파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품에 안고 있던 조그만 보따리를 내놓았다.
목련의 명에 따라 수보리가 보따리를 풀었다.
그 속에서 싸구려 등불 한 개가 나타났다.
“보잘것없는 줄 아옵니다. 등잔도 가장 질이 나쁜 것이고, 기름도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이니 부디 거두어주옵소서."
노파는 머리를 조아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인도인들은 숭배하는 신이나 스승 앞에 흔히 등잔을 바쳐 신심을 표현한다.
그러다 보니 등잔의 재질도 가지가지 금은보화로 화려해지고,
기름도 굉장히 귀한 과실 씨를 짠 것으로 채워 심지를 세웠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흙으로 빚은 질그릇에 그을음이 나는 기름조차도 마음놓고 공양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붓다와 노파의 이 기이한 만남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 노파에게 쏠렸다.
붓다는 자비로운 미소를 띠며 노파가 내놓은 등불을 받으려 했다. 그때였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더러운 물건이옵니다. 받으시면 아니 되옵니다."
어디선가 날카로운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곧 한 젊은 여인이 사람들 속에서 뛰어나와 붓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거룩하신 세존이시여, 세존의 지혜로운 눈으로 그 물건을 보시옵소서.
저 노파는 일평생을 더러운 짓으로 살아 왔사 옵니다.
젊은 시절, 사치와 낭비로 많은 남자들을 파멸시킨 저 노파는 그 대가로 지금은 저렇게 거지가 되었사옵니다.
하오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형편없는 등불 하나로 세존의 자비를 얻어 공덕을 쌓고자 하는 것이옵니다."
젊은 여인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들 놀라 엎드려 있는 노파를 바라보았다.
"저 여인의 말이 사실입니까?" 목련이 노파에게 물었다.
"부끄럽사옵니다." 노파가 고개를 떨구었다.
"저 더러운 노파를 내치십시오!"
"늙은 여우야, 어서 물러가라!" 사람들이 흥분하여 여기저기서 소리질렀다.
목련이 팔을 내저으며 그들을 말렸다.
잠시 후 주위가 조용해지자 노파가 머리를 들었다.
"저 여인이 말하는 저의 지난 날은 모두 옳사옵니다. 전 거렁뱅이가 되었사옵니다.
이렇게 병이 들어도 누구 하나 동정하지 않사옵니다.
그것이 잘못 살았던 과거 때문이라면 달게 받겠습니다.
전 더러운 몸입니다.
죄를 많이 지었사옵니다.
하지만 이 등불만은 깨끗하옵니다.
저는 이 등불을 사기 위해 동쪽 성을 짓는데 가서 돌을 날랐습니다.
병만 들지 않았어도 일을 더 하여 좋은 등불을 살 수 있었을 텐데.....
거룩하신 세존이시여, 저의 말씀을 믿어주소서. 비록 제 몸은 더럽다 해도 이 등잔만은 깨끗합니다."
노파는 울먹이며 피를 토하듯 말했다.
붓다는 아무 말 없이 노파를 바라볼 뿐이었다.
"젊은 여인이여, 그대는 이 노파를 어찌 아는가?"
목련이 물었다.
젊은 여인은 증오하는 눈빛으로 노파를 쏘아보았다.
"이 노파는 나이가 들자 여자들을 팔고 사는 포주가 되었습니다.
노름에 빠진 아버지는 저를 이 노파에게 팔아 넘겼습니다.
이 노파는 열네 살이던 저를 10년 동안 몸을 팔게 한 다음,
70이 된 눈먼 노인에게 금팔찌를 받고 시집 보냈습니다.
이 노파와 함께 있던 10년은 악몽과도 같았습니다.
노파는 저를 모진 매로 학대하였고, 굶주림에 시달리게 했습니다.
눈먼 노인에게 시집간 후에도 그 동안의 빚을 갚으라고 머리카락을 잘라가기도 하였습니다.
깨달음을 구하시는 분들이여.
지금 비록 이 노파가 세존 앞에 엎드려 있다고는 하나,
이 노파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의 나날을 보낸 수많은 사람들은 어찌하고 이 노파를 용서할 수 있겠사옵니까?"
여인은 마지막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그 울음소리가 사람들의 가슴을 저미게 하였다.
곁에서 여인의 말을 듣고 있던 수보리의 눈에도 눈물이 괴었다.
여인에게 차마 못할 짓을 한 노파를 수보리 또한 혐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존이시여, 어찌 하오리까?"
목련도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붓다의 얼굴도 굳어 있었다.
"불쌍한 여인이여, 참으로 너의 인생이 가엾고 안타깝구나.
그만한 삶을 사느라 얼마나 고단하였느냐?"
붓다는 먼저 젊은 여인을 위로하였다.
붓다의 말에 여인은 감격에 차오르는 눈물을 쏟았다.
그 동안의 괴로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하였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졌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바로 사람의 생이 아니더냐?
어리석은 중생들은 생노병사의 고통이 이 생이 지나면 끝나리라 생각하지만 그렇지가 않느니라.
현세가 이렇게 괴로운 것은 모두 과거세의 업보 때문이니라.
불쌍한 여인이여,
네가 현세에 그러한 시련을 겪은 것도 다 과거에 잘못 살았던 삶의 대가이니 너무 서글퍼 말아라.
이 생에서 네가 이만한 고통을 받고 나쁜 업을 소진시켰으니 다음 세에서는 영락을 누릴 수 있으리라.
또한 여인이여, 그대에게 이르노니,
마음에 원망을 품지 말아라.
저 노파가 너에게 준 그 고통에 원한을 갖는다면 다시 새로운 업을 쌓는 셈이니 다음 생이 어찌 또 괴롭지 않겠느냐?”
붓다의 말을 들은 여인은 눈물을 그치고 일어나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그리고 노파여, 그대가 흘리는 눈물이 후회와 괴로움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소.
행하는 일마다 업이 생겨 그에 따른 과보를 받게 되느니,
현세에서 그대의 사악했던 행은 다음 세에 마땅히 그 대가를 받을 것이오.
그러나 그대도 어리석은 중생일 뿐,
오늘 이렇게 나를 만나 하찮은 것이지만 자신의 전부를 내놓는 공덕은 매우 크도다.
수보리야, 노파의 등불을 받아두거라.
그리고 오늘 밤 그 등잔으로 내 처소를 밝혀라.
노파는 붓다에게 큰 공덕을 지었으니 내세에 기쁨을 얻으리라."
붓다의 명에 따라 수보리는 등불을 받아 짐 속에 꾸려 넣었다.
노파는 감격에 겨워 몇 번이고 절하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이 다시 한번 붓다의 자비심에 감복하였다.
붓다 일행이 남쪽으로 길을 잡고 한나절을 걸으니 바기라이라강이 나타났다.
설산에서부터 물줄기가 내려와 큰 강을 이루는 바기라이라강을 건너 북쪽을 보니 왕궁탑이 까마득하게 눈에 들어왔다.
마침내 가비라성을 벗어난 것이다.
붓다와 비구 수행승들은 길게 행렬을 지어 남쪽으로 남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저기 사위성 왕궁이 보이는구만."
목련이 손가락으로 바사닉왕이 살고 있는 왕궁을 가리켰다.
수보리의 고향인 교살라국 사위성 가장자리를 붓다 일행이 지나가고 있던 참이었다.
사위성이 수보리의 고향임을 아는 목련이 일부러 말을 꺼낸 것 같았다.
수보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네의 부친은 참으로 훌륭하신 분이라네."
목련은 지난 날이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기원정사를 지을 무렵 사위성에서는 석가모니 세존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
수달다 장자께서는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악담까지 들어가며 홀로 엄청난 규모의 절을 지으시지 않았던가?”
물론 수보리도 당시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도 붓다를 믿는 아버지를 비난하지 않았던가?
"잠시 부친을 만나고 오면 어떻겠는가?"
수보리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목련이 말했다.
"아닙니다. 훗날 뵈올 날이 있겠지요."
수보리는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채 아버지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아직도 불법을 익히고 수행을 하고 있는 단계였다.
언제나 더할 수 없는 진리의 바다에 다다를 수 있을까?
그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때 가서야 아버지를 뵈오리라.
수보리는 목련 존자 모르게 한숨을 내리 쉬었다.
잠시 다리를 쉰 붓다 일행은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붓다는 마갈타국 빈바사라왕의 초청으로 왕궁에서 법회를 열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최초의 절인 죽림정사가 있어 붓다는 우기 동안 그곳에 머물 예정이었다.
비사리국을 지나자 마침내 거대한 갠지스강이 나타났다.
갠지스강은 인도 북부에 있는 설산 히말라야에 근원을 두고 인도의 가슴 한복판을 가로질러 동쪽 벵골만으로 흐르는 강이었다.
그래서 인도인들은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신비의 강이라고 부른다.
갠지스강이 흐르는 유역은 너른 기름진 평원이기 때문에 많은 왕들이 이곳에 수도를 정했다.
그 때문에 자연히 갠지스강 유역은 수천 년 내려오는 인도 문명의 발상지가 되었고,
또 훌륭한 문화가 꽃피었다.
사색을 좋아하고 명상을 즐기는 인도 사람들은 갠지스강의 푸른 물줄기를 바라보며 신과 우주와 삶과 죽음의 문제를 생각하였다.
특히 갠지스강의 모래는 깨끗하고 잘기로 유명한데 그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나고 죽으며 인도의 종교와 철학을 발전시켰다.
사람들은 이렇게 신성한 갠지스강에서 몸을 씻으며 새롭게 거듭나기를 기원하였던 것이다.
기원전 6백년경,
갠지스강 유역에 세워진 여러 나라 가운데 마갈타국은 기름진 땅과 유능한 국왕의 선정(善政)으로 태평성대를 이루고 있었다.
국왕인 빈바사라왕은 문화를 숭상하였는데,
특히 갠지스강 남쪽에 자리한 수도 왕사성을 중심으로 종교와 철학이 발달하였다.
이러한 입지 조건 때문에 바이바루, 비뿌라, 라트나, 우다야, 소나라는 이름의 다섯 개의 산으로
둘러싸인 왕사성은 후에 불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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