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 벅과 까치밥
감나무과(柿樹科) 나무는 세계적으로 6속, 3백여 종이 주로 열대 온대지역에 널리 퍼져있다는데 우리나라에는 중남부지방의 낮은 산과 들에 스스로 자라거나 혹은 두메마을 가까이에 과일나무 밭을 일구어 가꾸고 있다.
높이 약 15m 안팎의 갈잎큰키나무인 이 감나무는 그 작은 꽃에 비하여 탐스런 열매를 맺어 먹을거리와 약으로도 널리 쓰이거니와 앙상히 남은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놀 붉은 과실은 볼거리로도 가치가 있어 곧잘 우리 그림(한국화)에 오르기도 한다.
따뜻한 곳을 좋아하여 추위를 타는 이 나무가 서울의 맨 북녘 성북구의 나무로 지정된 것은 나름대로 뜻이 있다.
매서운 추위 때문에 서울에서 자라지 못하는 감나무가 성북구의 정릉동과 성북동 그리고 안암동에서 잘 자라 가히 감나무 골이라 이르는 것은 북한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사나운 된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이란다.
여느 나무보다 갈잎이 빨리지는 감나무는 가을이 짙어지면 빨간 열매만이 두드러지는데 그 또한 다 따지 않고 여남은 개씩은 까치의 몫으로 내내 남겨놓는다.
겨울과 함께 농익어가는 남은 감을 찍어먹는 까치의 짖는 소리가 바로 울타리 안에서 울려나온다.
이때까지만 해도 까치는 한 집안 식구였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74F284C52B691BD2F)
그러던 까치가 요즘은 볼 수가 없으니 감나무가 점점 없어졌기 때문일까?
스무 해 전만하더라도 우리 집은 동네에서 “감나무 집”으로 통했다.
우리 집만 감나무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높다랗게 쌓아올린 축대위에 반 아름정도의 큰 감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해갈이도 없이 해마다 주렁주렁 풍성하게 열리는 감을 지나는 사람마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며 부러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부러 반쯤은 까치밥으로 남겨놓던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
그러던 감나무들이 하나 둘 없어지기 시작했다.
한옥들을 쓸어 아파트를 세우고, 대지 백 평 남짓한 개인집을 헐어 다세대주택이나 원 룸 등을 짓는 개발 붐에 의해서다.
물론 우리 집도 헐려 그 감나무도 없어졌다.
1931년, 소설 대지(The Good Earth)를 펴내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미국의 소설가 펄 벅 여사가 한국전쟁 이후 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 이른바 혼혈아들의 불행을 눈감을 수 없다며 부천 심곡동에 “소사 희망원”을 열고 그의 재산 7백만 불을 기꺼이 던졌다.
그리고 1960년 늦가을 예순여덟의 나이로 처음 우리나라를 찾았다.
그 때 스물일곱의 젊은 이규태 조선일보기자가 안내하여 신라의 옛 고을 경주를 찾아가는데 차창 밖으로 감나무에 매달린 감을 보며 “따기 힘들어 그냥 두는 거냐?” 물었다.
이 기자는 “겨울새를 위해 남겨둔 것으로 까치밥이다”고 답했다.
이에 펄 벅 여사는 “바로 그것이야! 내가 한국에 와서 보고자 했던 것은 고적이나 왕릉이 아니었어, 이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한국에 잘 왔다고 생각해요.”라고 감탄해했다는 것이다.
책이나 신문을 읽으며 필요한 것을 적는 버릇이 있는 내가 정확히 12년 전 (2001. 12. 29.자) 잡기장에 적어놓은 조선일보 기사 한토막이다.
이제 벽안의 노 소설가 펄 벅도 여든한 살의 나이로 갔고, 넓고 깊은 지식으로 읽는 이에게 늘 감명을 주는 글을 쓰던 이규태 조선일보 고문도 일흔세 살의 길지 않은 나이로 벌써 세상을 떴다.
겨울새를 위해 몇 낱의 감을 남기던 그 추억을 값지게 기억하는 사람인들 어찌 그지없으랴.
성북구청의 유일한 근린공원인 개운산이나 아늑한 북한산 자락에 감나무를 좀 심으면 어떨까......
요즘 서울 근교 산에서도 까치보기가 힘들다.
첫댓글 길지않은 글인데도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운치까지 그만이어서 분위기에 잠시 젖었다가 갑니다. 감사합니다.
기쁜 소식을 물고 온다는 길조인 까치가
이제 농작물에 해를 끼치고 송전사고의 원인이 된다는 이유로 해조로 밀려나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모처럼 맛깔스런 수필 한 편에 가슴 찡해집니다
펄벅. 그리고 까치밥. 그런 얘기도 있었군요
옛날 조선일보에 이규태 코너라는 것이 있었지요
그렇게 좋은 얘기를 꼼꼼히 챙기시어 오늘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시는 분. 고맙습니다
감나무를 심는다고 까치가 개운산 자락에 오려나 모르겠네요?? ㅎㅎㅎ
파란 눈의 소설가는 까치 보다 까치를 배려하는 한국인의 마음씀이에 더 깊은 감동을 받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휼융한 분은 감동도 잘하는것 갔습니다.
혼열아의 어머니 펄벅 여사와 까치밥에 그렇게
감동스런 일화가 있음을 알려주시어 감명 깊게 읽고
끼밥에 얽힌 감동 스토리 기억했다 넑게 전파해야겠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등산을 하다보면 야성이 강한 박새들도 사람 손에 날아들어 먹이를 먹고 날아가곤 하는데
가장 가깝던 까치의 모습니 주변에서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합니다.
감명깊은 글에 추억을 더듬으며 머물다.갑니다.고맙습니다
정말 우리에겐 추억으로 남아있다가
후대에선 그것마저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번에 새 집을 짓고 정원도 그럴싸하게 꾸몄습니다.
그러나 왠지 허전한 것은 이번에 베어버린 마당 한가운데를 지키던
큰 감나무의 기억때문인데, 글을 읽으며 그 나무에 앉아있었던
까치의 기억까지 생생히 되살아납니다.
'동병상련'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도 할 수 있는 말인가요?
오죽 잘 검토하시어 처리하셨겠습니까...
느낌을 같이 해주시어 감사드립니다.
핒자님 좋은 취미로 해서 지금 펄벅여사가 한말이 우리가슴에 감동으로 오네요. 감사를 드립니다.
한 낱 이름없는 촌부가 아니라 세계적인 소설가의 얘기라서 더 깊은 의미가
느껴지는지 모르겠군요......
많은 말들이 전해지고 있지만 까치밥 사연을 듣고 그처럼 감명했다는 내용은 처음입니다
작은행위 하나 만으로도 그처럼 남에게 감명을 줄수 있다는것을 깨닳아야 겠습니다
까치밥! 살벌하고 매정스럽게 다 따버리는 것 보다
몇 낱쯤 남겨 놓는 우리 민족성의 여유로움을 펄 벅 여사는 읽은 듯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돌뫼님~아름다운 사람들의 마음에 닿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날 되세요~
늘 격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평안하심을 빌며......
읽으며 우리외갓집도 영양군 영산교건너 감나무집으로 통했는데 하며 60여년 전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펄벅여사와 이규태씨 동서에서 한 획을 그으신 분들이지요 ...참에 생각나는 일화 있습니다
펄벅여사 방한시 농촌길을 지나치다 마침 추수철이라 소달구지에 가득 실린 볕단과 그달구지를
끄는 농부의 지개에도 기득실린 볕단을 보고 촌부의 동물사랑 마음씨에 감탄하셨다지요?
참으로 고운 심성으로 한세상 살다가신 분이라 여깁니다
개발에 밀려난것이 비단 까치와 감나무뿐 아니여서 논네들은 안타까운 맘입니다
메리크리스마스 하시고 복된새해에 건안건필하시길 바랍니다 .
인구 2만이 채 못되는 작은 두메 영양!
여기 우뚝 솟은 일월산에 올라 본 일이 있습니다.
시문의 큰 별 조지훈 선생의 출생지,
원한도 사무칠량이면 지극한 정성에 열리지 않는다시던 돌문은
활짝 열렸더이다.
펄벅의 대지 왕룽일가 감명깊게 읽은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분의 말씀 너무나 가슴에 와 닿네요, 易에선 碩果不食 이랍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예를 들어 주셨습니다.
자기 욕심을 줄이고 자식에게 복을 끼쳐주려는 부모의 마음이 담긴 뜻이지요. 감사합니다.
좋은 수필 한 편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일일이 챙겨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참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군요. 복되신 날 되시기 바랍니다.
중2 때 펄벅의 대지를 엄마가 추천해 주셔서 읽었던 기억이 새로워요
까치밥은 펄벅여사처럼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지금도 못 따니까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쪼금 남아 있긴 해요 ㅎ
역사를 따져보자면 퍽 오래된 풍습인 듯 합니다.
옛 어른들은 자기 요심을 좀 주려 무엇엔가 보시하는 것이 곧 후손들에게 복을 끼친다는
생각들을 하셨던가 봅니다.
그래서 과일도 겨울새용으로 조금은 남겨 놓으셨던가 봅니다. 감사합니다.
못먹고 살던 옛날엔 정이 더 많은것 같아요.
내 초등학교시절 산으로 소풍가서 점심보따리를 풀어서 먹기전에 먼저 고시레하던 생각이 나는데
그때는 뭔지 몰랐지만 산짐승에게 먹을것을 덜어 주던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됩니다.
참 따뜻하고 인정이 있는 우리 조상들의 풍습인것 같아 마음이 흐믓한데
지금은 산에 가는 인구가 너무 많아 오히려 산을 오염시키는 결과가 되겠지요.
정말 그렇군요!
지금은 산짐승들도 등산객들과 많이 가까워진 듯 합니다.
옆에까지 다가와 던져주는 먹이를 먹고 가곤 하니까요......
좋은 글에 머물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어릴적 우리집 마당에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그 감나무에 거울을 매달고 울 언니가 머리를 깎았는데 글~~쎄~~
사발을 엎어놓고서리~~ 사발따라 쭈루루룩~~
지금 그 언니는 미용실하다가 나이가 들어 쉬고 있습니다.
감나무에 얽힌 추억이시군요! 감사합니다.
펄벅의 대지 한구석이 생각납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