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9차 국제외교 안보포럼 일본 동경 포럼(06.12.14) 후기
내가 태어난 일본 동경 황궁에 가다 사진첨부
제299차 국제외교안보포럼 을 아래와 같이 안내 드리오니 귀한 시간 함께 해 주시고 계속적인 성원과 지도편달을 바랍니다.
*일시:2006년 12월 14일 (목)오전 10:00-11:00
* 장소: 주 일본동경 한국대사관*
* 진행자:김현욱 박사(4선 국회의원 국회 외무 통일. 교육위원장)
1) 제255회 제왕학(帝王學)특강/강사: 恒山 김 유혁박사
(前퇴계연구소소장. 現금강 대학교총장)
2) 주제 : "한일관계의 오늘과 내일"
3) 강 사: 라 종 일 박사(주 일본 한국대사)
4) 강사: 최서면 박사 사람들의 모임과 대 토론회 (동경한국문화원 회의장)
5) 주제: 동북아공동체 설립을 위한 협력
해 뜨고 한일 친선
전 세 원
기다란 꼬리로 사라지던 붉은 태양
살며시 구름 헤치며 솟아오르네
설악산 에서 보던 그 큰 얼굴
후지 산에서도 똑같은 그림이구나
해 뜨고 지는 지구의 극점 하나인데
네 나라 내 나라 아귀다툼 훌쩍 넘어
다시 한 번 떠오르는 저 붉은 태양
새날에
차안에서 즉흥시를
옹기종기 모여드는 산봉우리
눈에 익은 들판의 노을
이름만 낮선 센다이라네
코를 찡끗 거리며 온 몸이 흔들리는
유황 냄새 후꾸시마 온천
온천물에 물오른 우리 큰나무들
울긋불긋 너스레 춤추고
민간 외교 뜻 이루려 너와 나는 가슴 열고
백제의 피썩인 용서와 화해
어여삐 여기는 우리가 되고져 하네.
히데요시의 원숭이 놀음 격동기 지나
도꾸가와 이에야스 덕천가 강의 나라
우리도 새날엔 덕장으로 세계 정상에
어깨를 나란히 꽃피우자
귀로에
전 세 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의 커다란
가슴 한 자락 이련가
캄캄한 하늘 아래 백설 귀향길 새벽
가로등에 빛나는 동화 나라
먼 곳 나드리길 마중 나온 눈꽃이여라
따사로운 어머니 품에 그득 안기네
내 나라 집 가족 여기가 나의 터전
여행이란 타향살이에서 익힘
큰 나무 튼실한 열매 되여
소중한 나눔 되리라
1)일본에서 직접 보고 듣자
이번 여행은 우리나라 안보와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에 확고한 신념과 열정을 가진 애국충정의 국제외교안보포럼 인사들 35명이 한반도의 미래를 걱정하고 북한의 핵 위기로부터 자유로운 대안과 인권이 없는 북한백성들 그리고 동북아의 평화정착을 위해 한국일본 중국 3국의 동북아세안 공동체를 만들고자 그동안 재일 사학자 최 서면 박사를 통해 그 첫 단계로 우선 한.일 민간중심으로 공동체를 구성하여 발전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고, 일본은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를 두 번이나 혹독하게 침략을 했는데도 그에 대한 일본의 사죄가 미흡해 우리는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일본의 속성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그러한 참화를 당한 것이다. 우리속담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손자병법의 “知彼知己 百戰不殆”처럼 일본문화 탐방을 통해 일본을 속속들이 연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2. 일본문화 탐방기 1
2006년 12월 12일 10:25분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여
12:35분 2시간 10분 만에 일본 동북지방 센다이(仙台)
공항에 도착, 인근 뷔페식당에서 점심을 했다.
센다이 사진
점심 후 후쿠시마 나수(那須)에 있는 Nasu View 호텔 (☏0287-76-1111)에서 온천과 노천온천욕을 즐기고 유카타를 입은 채 저녁식사를 마치고 일박하였다
2006년 12월 13일 아침 아침식사를 하고 나수 호텔에서 내려다 본전경은 온천 지대답게 안개 속에 점점이 멀리보이는 화산 연기가 굴뚝의 연기처럼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또 지진이 많은 나라임을 실감하게 하였다. 호텔 바로 앞에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교회가 자라잡고 있었다. 일행들은 펼쳐진 바다의 절경을 배경으로 교회 사진을 찍었다
귀로에
전 세 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의 커다란
가슴 한 자락 이련가
캄캄한 하늘 아래 백설 귀향길 새벽
가로등에 빛나는 동화 나라
먼 곳 나드리길 마중 나온 눈꽃이여라
따사로운 어머니 품에 그득 안기네
내 나라 집 가족 여기가 나의 터전
여행이란 타향살이에서 익힘
큰 나무 튼실한 열매 되여
소중한 나눔 되리라
1)일본에서 직접 보고 듣자
이번 여행은 우리나라 안보와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에 확고한 신념과 열정을 가진 애국충정의 국제외교안보포럼 인사들 35명이 한반도의 미래를 걱정하고 북한의 핵 위기로부터 자유로운 대안과 인권이 없는 북한백성들 그리고 동북아의 평화정착을 위해 한국일본 중국 3국의 동북아세안 공동체를 만들고자 그동안 재일 사학자 최 서면 박사를 통해 그 첫 단계로 우선 한.일 민간중심으로 공동체를 구성하여 발전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고, 일본은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를 두 번이나 혹독하게 침략을 했는데도 그에 대한 일본의 사죄가 미흡해 우리는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일본의 속성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그러한 참화를 당한 것이다. 우리속담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손자병법의 “知彼知己 百戰不殆”처럼 일본문화 탐방을 통해 일본을 속속들이 연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다.
나수 온천을 뒤로하고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다는 뜻 말을 가진 닛코로 향했다. “닛코(日光)를 보지 않고 일본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말라”는 도치키현 닛코국립공원으로 이동,
닛꼬 사진
약 1300고지에서 야생원숭이가 서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난타이산(男體山) 화산분출로 흘러내린 용암으로 생성된 둘레 21Km의 칼데라(caldera) 쥬젠지(中禪寺)호수를 따라 산책을 한 다음 99M의 높이 절벽에서 떨어지는, 절경으로도 유명하고 일본 3대 폭포 중에서 제일 크고 멋있는 게곤노타키(華嚴ノ龍)폭포를 감상했다. 주변 카페에 들러 백설로 뒤 덮인 난타이산 정상을 바라보면서 구부구불 모퉁이 길이 히라가나 + 가타카나의 합과 같다했다.
운전이 미숙한 사람은 조심하지 않으면 어려울 것 같았고 자전거 트레킹코스로는 적합할 것 같았다. 구불구불한 길을 하산하니 명당같이 보이는 자리에 엄청난 굵기와 크기의 삼나무가 여기저기 울타리처럼 빽빽이 둘러싸 미려한 동조궁을 수백 년 지켜오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800년 된 삼나무 앞에서
매표소에 들어서 오모테몬(表門)을 통과하면 산진코(三神庫)가 있는데 “쇼우죠노 죠우”라는 상상의 코끼리상이 있다. 왼쪽으로는 신쿠샤라 불리는 신마(神馬) 마구간이 아무런 장식 없이 나오는데 그 처마 밑에 새겨진 원숭이의 삶을 조각으로 표현했는데 인간사를 은유적으로 나타냈다한다. 특히 세 마리의 원숭이가 눈과 귀와 입을 막고 있는데, 이는 일본어로 “미자루, 이와자루, 키카자루”로 나쁜 것은 보지도, 말하지도, 듣지도 말라는 인간 처세술을 계도하는 뜻이다. 우리속담에 시집오면 “벙어리 삼년, 귀머거리 삼년”과 비슷한 말뜻으로 생각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일본덕장의 얼을 기리기 위해 1636년 건립한 도쇼구(東照宮)는 예술적인 건축물로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 내부 혼지도(本地堂)의 천장에는 용(龍) 그림이 있는데 손뼉을 치면, 그 용의 울음소리를 듣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가 바로 일본 도치기현 닛코(日光)에 있는 도쇼구 신사(神社), 일본을 통일하고 에도막부(江戶幕府) 시대를 연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사당(신사)이다.
자신이 죽은 뒤 닛코(日光)에 묻어 달라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언에 따라 시즈오카(靜岡)에서 이곳으로 시신을 옮겨와 신사를 만들고 시신을 안치하였다. 원래는 크지 않은 신사였으나, 에도막부의 3대 장군이자 이에야스의 손자인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가 조부의 유지를 받들고 기리기 위해 일본 전역에서 15,000명의 장인과 450만 명의 인력을 동원해 1634년에 다시 착공, 1년 5개월만인 1636년에 전면적으로 개수하였다한다. 에도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에도무라(江戶村)가 있을 정도로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아름다운 이곳은 동경에서 차로 2시간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외국인이 즐겨 찾고 주말이면 가족나들이로 온천과 관광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가이드 말로는 입장료가 비싼 게 흠이지만 관광 수입을 올려 조상의 덕으로 먹고 사는 곳이란다. 점심식사는 일본식 전통 우동정식으로 했다. 그런대로 맛이 훌륭했다. 일본의 심장 동경시내 아사쿠사 관음사로 향했다. 차창 밖을 내다보니 가랑비고 내리고 있었다. 별비가 아니기를 바라는 요행을 기대하면서 관음사 경내를 들렀는데 비가 많이 내려 흠뻑 젖었다. 우중에 관음사를 대강 보면서 주변 번잡한 상가를 눈으로만 둘러보고버스에 탑승, 신주쿠로 향했다. 신주쿠 가는 길에 버스에서 일본 국회의사당, 도쿄타워, 총리 관저를 눈요기로 할 수 있었다. 동경 도청(東京都廳, 東京都 新宿? 西新宿2-8-1) 45층 전망대에 올라 동경 시내를 전망하면서 아버님이 다니시던 동경도청
옛날 동경도청 앞에서 아버지 .어머니 .나
자신이 죽은 뒤 닛코(日光)에 묻어 달라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언에 따라 시즈오카(靜岡)에서 이곳으로 시신을 옮겨와 신사를 만들고 시신을 안치하였다. 원래는 크지 않은 신사였으나, 에도막부의 3대 장군이자 이에야스의 손자인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가 조부의 유지를 받들고 기리기 위해 일본 전역에서 15,000명의 장인과 450만 명의 인력을 동원해 1634년에 다시 착공, 1년 5개월만인 1636년에 전면적으로 개수하였다한다. 에도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에도무라(江戶村)가 있을 정도로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아름다운 이곳은 동경에서 차로 2시간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외국인이 즐겨 찾고 주말이면 가족나들이로 온천과 관광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가이드 말로는 입장료가 비싼 게 흠이지만 관광 수입을 올려 조상의 덕으로 먹고 사는 곳이란다. 점심식사는 일본식 전통 우동정식으로 했다. 그런대로 맛이 훌륭했다. 일본의 심장 동경시내 아사쿠사 관음사로 향했다. 차창 밖을 내다보니 가랑비고 내리고 있었다. 별비가 아니기를 바라는 요행을 기대하면서 관음사 경내를 들렀는데 비가 많이 내려 흠뻑 젖었다. 우중에 관음사를 대강 보면서 주변 번잡한 상가를 눈으로만 둘러보고버스에 탑승, 신주쿠로 향했다. 신주쿠 가는 길에 버스에서 일본 국회의사당, 도쿄타워, 총리 관저를 눈요기로 할 수 있었다. 동경 도청(東京都廳, 東京都 新宿? 西新宿2-8-1) 45층 전망대에 올라 동경 시내를 전망하면서 아버님이 다니시던 동경도청
옛날 동경도청 앞에서 아버지 .어머니 .나
자신이 죽은 뒤 닛코(日光)에 묻어 달라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언에 따라 시즈오카(靜岡)에서 이곳으로 시신을 옮겨와 신사를 만들고 시신을 안치하였다. 원래는 크지 않은 신사였으나, 에도막부의 3대 장군이자 이에야스의 손자인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가 조부의 유지를 받들고 기리기 위해 일본 전역에서 15,000명의 장인과 450만 명의 인력을 동원해 1634년에 다시 착공, 1년 5개월만인 1636년에 전면적으로 개수하였다한다. 에도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에도무라(江戶村)가 있을 정도로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아름다운 이곳은 동경에서 차로 2시간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외국인이 즐겨 찾고 주말이면 가족나들이로 온천과 관광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가이드 말로는 입장료가 비싼 게 흠이지만 관광 수입을 올려 조상의 덕으로 먹고 사는 곳이란다. 점심식사는 일본식 전통 우동정식으로 했다. 그런대로 맛이 훌륭했다. 일본의 심장 동경시내 아사쿠사 관음사로 향했다. 차창 밖을 내다보니 가랑비고 내리고 있었다. 별비가 아니기를 바라는 요행을 기대하면서 관음사 경내를 들렀는데 비가 많이 내려 흠뻑 젖었다. 우중에 관음사를 대강 보면서 주변 번잡한 상가를 눈으로만 둘러보고버스에 탑승, 신주쿠로 향했다. 신주쿠 가는 길에 버스에서 일본 국회의사당, 도쿄타워, 총리 관저를 눈요기로 할 수 있었다. 동경 도청(東京都廳, 東京都 新宿? 西新宿2-8-1) 45층 전망대에 올라 동경 시내를 전망하면서 아버님이 다니시던 동경도청
옛날 동경도청 앞에서 아버지 .어머니 .나
감개무량했다 내가 태어난 동네 (나가노구 마루노 구찌( 구리스다루 하우스) 가 어느 방향에 있는지 가이드에게 물어봤다. 일본 천황이 사는 황거와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내가 태어난 황궁주소가 있는 호적등본 저 위에 황궁이 보이는 황궁 앞에 있는 정원에서 내가 태어난 곳이 80년된 유일한 아파트란다
일본에서 가장 부자 동네라고 한다. 맞긴 맞나보다 내가 황실 병원에서 태어났다고, 어머님께서 늘 말씀 하셨다. 같은 아파트에 황녀가 노처녀로 살았는데 어머니와 대학교 동창이면서 형제처럼 지내다 내가 태어날려 하니 황녀가 황실 병원에 입원시켜 내가 태어난 곳이 황실 병원이었다고, 그리고 아버님이 다니신 일본 중앙대학교 법학부가 어디에 있는지 옛날의 흔적을 확인하러 개인적으로 꼭 다시 한 번 와보아야겠다, 김유혁 박사 말씀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중앙대 법학부가 명문이라고 하신다. 동경타워는 물론 신주쿠지역과 “나가노지역(출생지)이 보이며 레인보우브리지” 까지 보인다. 맑은 날에는 멀리 후지(富士)산이 보인단다.
후지 산 사진
저녁은 인근 해간이 도락(蟹簡易道樂)에서 하고 그 식당무대에서 펼쳐지는 일행들의 장기자랑을 뒤로하고 우리가 묵을 이케부로쿠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호텔로 향했다.
마침 크리스마스 내일 한일 간 국제회의를 위해 일찍 잘 것을 김현욱 인솔 단장은 주문했다.
3. 민족의 혼 김옥균 선생님위해 기도하고 주일한국대사관 예방하다. 2006년 12월 14일 이른 아침식사를 마치고 김옥균 선생의 위패가 모셔진 진정사(眞淨寺)를 찾아 선생의 영혼을 달래는 불자들의 예배를 함께하고 재일 역사학자 최서면(崔書勉) 박사(81세)의 김옥균 선현께서 나라를 사랑했던 고매한 인품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김옥균은 한말에 기울어가는 나라를 바로잡고자 신문물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며 개화당을 조직하였다. 근대자주독립 국가를 건설하려던 노력이 대원군의 수구파와 대립하여 실패로 돌아가고 상하이(上海)로 망명한 후 그곳에서 민 씨 정권이 보낸 자객 홍종우(洪鍾宇)에게 암살되고 시신은 본국으로 송환되었는데 양화진(楊花津)에서 다시 능지처참되었다.
김옥균을 존경하던 한 일본인이 효시(梟示)된 머리를 일본 도쿄(東京)의 청산외인묘지(靑山外人墓地)에 묻고 비를 세웠는데, 1914년 9월 11일 의발(衣髮)을 이곳으로 이장, 정경부인 유씨와 합장했다한다. 김옥균 선생님의 묘가 모셔진 신사와 묘비 앞에서 이어 한국대사관에 들러 라종일 대사로부터 한일 간 의현 안 문제를 듣고, 질의응답을 가졌다. 해군제독 유지현 무관과는 독도문제, 대사로부터는 민단과 조총련과의 화해에 관한 내용에 대해 들었으나 이것은 북한의 공작에 의해 이루어진 각본임을 우리일행인 류기남 (자유민주수호연합회) 회장은 주장했다. 대사의 말과는 정반대임을 알 수 있었다. 조태영 (趙泰永, 주일본 한국대사관) 참사관이 배석했었다.
대사관에서 대사님과
시인 명함 드리니 라종일 대사님도 아동 문학 작가시라고 반기시며 기념사진 여기서 우리나라
명동거리로 비유되는 긴자(銀座)로 이동,긴자1정목 중앙 통에 위치한 “がんこ”(☏03-3567-6789)에서 일본정식으로 점심을 한 후 미스코시 백화점 등 긴자거리 탐방을약 1시간 정도 했다. 이어 아키하바라 일본 최대의 전자상가 거리로 이동하여 쇼핑을 하고 한일 공동세미나를 위해 영친왕(본명: 이은(李垠)1897-1970, 아내 이방자, 아들 이구)과 깊은 관계가 있는 아카사카 프린스호텔로 이동 했다. 영친 왕이 사시던 곳 이 호텔은 최서면 박사의 말에 의하면 영친 왕이 아홉 살에 일본에 볼모로 끌려와 일본인 황족 마사코와 정략 결혼했던 .영친왕을 위해 1930년에 지어진 저택이었다 한다. 원래 기타시라카와노미야의 저택이 다카나와로 옮겨가고 그 부지위에 튜더왕조 양식으로 지어졌다. 전후에 세이부 재벌그룹에 매각되어 프린스 호텔 계열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는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의 연회장, 결혼식장 등으로 사용, 패전 후 경제적인 지원이 끊겨 어려움을 겪던 영친왕에게 쓰쓰미 회장이 접근하여 이 저택을 헐값에 산 일화는 이방자 여사 관련 책에 나와 있다. 쓰쓰미 회장의 세이부 그룹은 영친왕 저택뿐만 아니라 다케다노미야, 기카시라카와노미야, 히가시후시미노미야 등의저택도 사들여 모두 호텔 등으로 개조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한다.
민간차원 한일 첫 세미나 성공리에 개최하다. 3층 한.일간 세미나개최장소로 이동, 양국 대표들의 인사에 이어 다쿠쇼쿠 대학 부총장 쿠사하라 교수의 학술발표에 이어 김현욱 이사장의일본소녀 메구미양의 북한납치사건과 김영남 한국소년 납치사건을 화두로 북한의 납치음모공작에 대해 강력규탄하고 동북아시아의 공동번영과 평화정착을 위해 한 삼국이 아세안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 필요성을 강조하고 북한 인권과 북핵문제, 이 2가지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세미나를 공동개최하여 그 대처방안을 모색하자고 제안했다. 이 세미나에서 우리는 하시모도(新井 寬) 元大東文化大學 교수 (天皇親舊)로부터 귀중한 역사의 뒤안길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세계 제2차 대전 때 과거 조선인이 가장 많이 징용되어 죽은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일본 국민들 몰래 당시 일본 천왕이 오키나와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왕이 움직이면 언론, 사진기자 등 많은 관리들이 함께 참석하게 되는데 이 관례를 깨었던 것입니다. 친구인 나와 일본 황실의 역사에 대해 말을 나누었는데 백제왕의 공주가 일본 황실에 시집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나하고 같은 테이블에 앉은 嘉陽嘉枝(Y. Kayo) 여인은 “같은 빵(The same of bakery)이라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6시부터 시작한 세미나가 열기를 더해 저녁10시나 되서야 마칠 수 있었다. 합동 기념촬영을 하고 내년 일본 측의 한국방문을 약속하면서 석별의 정을 년말인사말로 서로 간“We wish you a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로 마무리했다. 다시 메트로폴리탄 호텔로 …….
5. 일본문화 탐방기 2
2006년 12월 15일 짐을 챙겨놓고 아침식사를 마치고 신주쿠 에이산면세점(永山免稅店)에서 선물을 사고 하꼬네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전형적인 복식화산 지대로 깊은 산과 호수, 계곡, 고원 둘러싸여 있는 멋진 곳이다. 하꼬네(箱根)에서 일본식 점심을 하고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칼데라호인 아시호수에서 약 30여분 유람선에 올라, 호수 주변의 경관과 점점이 타오르는
활화산의 수증기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였다. 유람선 줄에 하얀 제비가 신기 했다.활화산의 수증기를 보기 위해 산에 올라 오와쿠다니계이코쿠(大涌谷) 활화산 온천에 익힌 쿠로다마고 (黑玉子) 계란을 사먹었다. 한 개먹으면 7년 젊어지고, 두 개먹으면 14년 … , 장사속의 아이디어는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태평양 바다를 끼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아타미(熱海)로 이동, 해변에 위치한 아타미(熱海)호텔에서 온천욕을 하고, 유카타 일본의상 그대로 일본식 저녁과 사께, 생맥주를 나누면서 일본여행의 하이라이트를 보냈다. 일행들의 장기 자랑과 노래방으로 나는 18번 사랑이여를 불렀다. 또 일행들은 재주도 많고 수준 높은 이야기를 많이 해, 배우고 또 배울 수 있었다. 12시나 돼서야 잠을 청할 수 있을 만큼 재미있었다.
2006년 12월 16일 일본여행 마지막 날이다. 열해 호텔에서 오전6시45분 일출을 감상하고 태평양바다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일본의 미항, 요코하마(橫浜)로 향했다. 요코하마에서 수상버스에 탑승하여 야마시타 공원(山下公園)까지 가는 동안 일본에서 제일 높은 랜드마크 70층짜리 건물을 배경으로 요코하마 전경을 볼 수 있었고 공원주변에는 많은 사연을 가진 건축물들이 즐비했다. 거리의 악사와 또 중국적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차이나타운 거리를 탐방했다. 신흥지구(地區) 오다바이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처음으로 불고기백반을 점심으로 먹을 수 있었다. 깔끔한 음식솜씨와 맛도 일품이었다. 동경만을 건너 위치한 아름다운 인공섬 오다바이로 이동하여 도요타 시티 쇼 케이스에서 각종 자동차를 타보기도하고 구경했다.
2006년 12월 16일 일본여행 마지막 날이다. 열해 호텔에서 오전6시45분 일출을 감상하고 태평양바다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일본의 미항, 요코하마(橫浜)로 향했다. 요코하마에서 수상버스에 탑승하여 야마시타 공원(山下公園)까지 가는 동안 일본에서 제일 높은 랜드마크 70층짜리 건물을 배경으로 요코하마 전경을 볼 수 있었고 공원주변에는 많은 사연을 가진 건축물들이 즐비했다. 거리의 악사와 또 중국적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차이나타운 거리를 탐방했다. 신흥지구(地區) 오다바이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처음으로 불고기백반을 점심으로 먹을 수 있었다. 깔끔한 음식솜씨와 맛도 일품이었다. 동경만을 건너 위치한 아름다운 인공섬 오다바이로 이동하여 도요타 시티 쇼 케이스에서 각종 자동차를 타보기도하고 구경했다.
단게 겐조가 설계한 후지 TV의 독특한 디자인을 한 빌딩에 올라 여러 가지 눈요기를 하고 일행의 뒤를 따르던 내가 그들을 김기용 회장님과 성경창 교육감님을 놓치는 순간 머릿속 이 백지가 되었다. 5시에 모이기로 한 장소로 가야하는데 4시 45분 카운터에서 신고를 하고 기다려도 연락이 없다
5시 10분이 되였는데 방송도 없다 당황한 내가 팔팔 뛰니 안내원이 그 장소가 어디냐고 한다. 나는 천연스럽게 비너스 동상 앞이라고 했다.
막 뛰어서. 멀리 왔는데 아니다 그때서 비너스동상 앞이 아니고 자유여신상 앞이라고 하니 뛰자고 한다. 벌써 5시 30분이다 벌써 30분이 지났다 속에서 쓴물이 올라오고 목이 탄다. 3분에 2쯤 돌아가고 있는데 안내 아가씨한테 전화가 왔다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고 가이드인가 보다 35분이나 지난다음에 방송을 했나 보다 내가 자세히 신고를 해놓았었다. 조금 일찍 방송을 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확실한 장소를 알았으니 걱정 하지 말라 하고는 내손을 잡고 뛴다 이 사고는 내가 몸에 달고 다니던 명찰을 이제 마지막 코스라고 차에 던져 놓고 온 것이 문제였다. 내가 겪은 심적 육체적 고통은 문제가 아니었다. 일행들에게 걱정을 끼친 것이 즐거웠던 일본 여행을 악몽으로 휘둘리게 했다.
머리 숙여, 죄송함을 호소를 해도 분위기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내가 안절부절 하니 장문기 회장님이 앞에 나가시어 여러 가지로 노력해 주셨다. 만신창이가 된 마음과 몸으로 귀국 길에 오르기 위해 나리타(成田)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죄송하고 감사함이 며칠이 지난 오늘까지도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판기 앞에서 벌을 서고 있다. 비록 일본 국민에 대한 미운 감정이 역사 속에서 사라질 수 없다 해도 깨끗한 거리, 잘 정돈된 농촌, 도시, 일본국민들의 준법성은 받아드려도 좋을 것 같았다. 역시 자본주의 국가는 경제력이 좌지우지 하는 것 같았다. 후지산이 보이는 마지막 호텔 열해 호텔 아타미에서
2006년 12월 18일
한반도 평화정착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을 위협하는 북핵문제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가 초미의 관심 속에서 해결방안을 찾고 있지만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 및 핵개발 프로그램이 외교적 노력을 통하여 해결될 수 있다고 아직도 믿고 있는 사람들은 북한 김정일 정권의 속성이 실제 어떠한 속성인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지금 개최하고 있는 6자회담에서 나오는 결과는 결렬 혹은 북한의 수술에 다른 참여국들이 넘어가는 형태의 결론이 나올 것 같다.
6자회담에서 북핵은 근본적으로 폐기된다는 것은 일찍부터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미국의 핵 공격으로부터 1945년 일본은 패전하고 그 후 각고의 노력으로 경제대국으로 일취월장해 지금 세계가 부러워하는 발전된 부강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근검절약하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6.25 동족상잔의 전쟁 이후 미국의 지원과 굳건한 한미 동맹으로 경제적 발전을 많이 했지만 우리 민족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하는 배타적인 근성과 민족 문화를 사랑하는 수준과 마음이 얕을 뿐만 아니라 또한 씀씀이가 너무 헤퍼 일본과 많이 비교되는 점은 아쉽다 하겠다. 끝으로 국제 외교 안보 포럼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