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ochus and Stratonice
Oil on canvas, 1774
47 1/4 x 53 1/8 inches (120.02 x 134.94 cm)
Ecole des Beaux-Arts, Paris
Madame Recamier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이 작품은 수직과 수평의 구도가 사물들에 의해서
연속적으로 반복되는 독특한 구조입니다.
이 그림은 그의 다른 작품들 <포토키 백작>, <라보아지에의 초상>과 더불어
다비드 회화의 주요한 특징과 화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정작 주문자였던 레카미에 부인은 이 작품에 불만을 느껴
2년 후 제라르에게 다시 초상화를 주문하였다고 합니다.
화가는 화가대로 모델이 차분히 앉아 있질않아 몹시 기분이 상했으며
이 작품은 결국 미완성으로 남았습니다.
나폴레옹 집권 당시 그려진 이 작품의 모델,
쥘리에트 레카미에는 자기 생애에 걸쳐 사회의 유명세를 즐겼던 여자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상류 사회의 숱한 남자들이
그녀에게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받는 것 없이 그저 베푸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Portrait of a Young Woman in a Turban
Oil on canvas
Public collection
The Courtship of Paris and Helen
Oil on canvas
Public collection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나의 정사는
호메로스의 시편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파리스가 헬레나를 납치함으로써 트로이 전쟁이 촉발됐고,
두 사람의 이야기는 화가들에게 좋은 소재가 되었습니다.
자끄 루이 다비드의 1788년작 <파리스와 헬레나>는
두 사람이 처음 연인으로 맺어지는 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파리스는 벌거벗은 몸이지만 잘 때 쓰는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헬레나는 옷을 입고 있지만 몽롱한 분위기를 풍기며 파리스를 유혹합니다.
이것은 파리스가 잠자고 있는 사이 헬레나가
그의 침실로 들어온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파리스도 헬레나의 유혹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더 뜨겁게 유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The Courtship of Paris and Helen [detail: 1]
Oil on canvas
Public collection
The Death of Seneca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The Farewell of Telemachus and Eucharis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나폴레옹의 유배 후 브뤼셀로 망명한 다비드는
인생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의 정서에 대해서도 다시 느끼게 된 다비드는
그의 말년에 이렇게 로맨틱한 작품을 그리게 됩니다.
사랑을 나누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은 관능적이지만,
고전주의의 엄격함 또한 동일하게 묻어나고 있습니다.
Portrait of Henriette de Verninac
Oil on canvas, 1799
57 x 44 inches (145 x 112 cm)
Mus? du Louvre, Paris
Portrait of Anne-Marie-Louise Th?usson, Comtesse de SorcyPortrait of Anne-Marie-Louise Th?usson, Comtesse de Sorcy
Oil on canvas, 1790
50 3/4 x 38 1/8 inches (129 x 97 cm)
Alte Pinakothek, Munich
Mars Disarmed by Venus and the Three Graces (detail)
Oil on canvas, 1824
Mus?s Royaux des Beaux-Arts, Brussels
Cupid and Psyche
Oil on canvas, 1817
72 3/8 x 95 1/4 inches (184 x 242 cm)
Private collection
Leonidas at Thermopylae
Oil on canvas, 1814
155 1/2 x 209 inches (395 x 531 cm)
Mus? du Louvre, Paris
뚜렷한 정치 성향을 지닌 작가,
프랑스 대혁명을 맞이한 격변의 시기를 대표하는 화가,
자코뱅당 당원으로서 프랑스 혁명 운동에 적극 참여하기도 했으며,
나폴레옹의 선전작가이자
신고전주의의 구체적 실현을 이루었던 예술가,
19세기 초 프랑스 화단에 군림하였던 사람,
자끄 루이 다비드. 그는 앵그르와 더불어 신고전주의의 대표작가입니다.
Consecration of the Emperor Napoleon I and Coronation of the Empress Josephine
Oil on canvas, 1805-1807
247 5/8 x 385 3/8 inches (629 x 979 cm)
Mus? du Louvre, Paris
1804년 12월, 황제의 공식 화가로 임명된 다비드는
대관식의 의식을 기념하는 대작 네 개를 맡게 됩니다.
이 중 두 작품만이 실제로 그려졌는데,
다른 한 작품은 현재 베르사이유 궁전의 미술관에 있습니다.
대관식 의식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거행되었고,
다비드는 이를 상세하게 묘사했습니다
대관식 의식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거행되었고,
다비드는 이를 상세하게 묘사했습니다.
다비드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참석자들을 모두 찾아다니며 만나서
밀랍 인형을 만들고 옷을 입히고
그것을 크로키한 자신의 화첩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은 로마 교황에게 황제의 관을 받아 스스로 썼다고 합니다,
다비드는 이 장면 대신 이미 황제의 관을 쓴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왕비의 관을 씌어주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나폴레옹과 사이가 좋지 않던 영국 대사는
그림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화면 정면 별실로 만들어진 장소에는
이 행사에 불참한 나폴레옹 어머니와 가족들이 보입니다.
나폴레옹 부탁으로 이 그림에 참석시킨 것이었습니다.
Napoleon krönt Kaiserin Joséphine
<나폴레옹의 대관식>의 세밀한 장면들은
나폴레옹의 정치적 야망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대관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복장뿐만 아니라,
모든 실내 장식도 자신의 구미에 맞게 요구합니다.
프랑스 왕실 의전에 따르면, 대관식은 대성당에서 이루어져야 하지만,
프랑스의 어떤 대성당도 그림과 같은 고대 신전 같은 곳은 없습니다.
나폴레옹은 대관식을 위해 수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실내 장식을 바꾸게 한 것입니다.
따라서 다비드의 그림 속에서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모든 특징들이 지워져 버렸고, 다만 그림의 우측 상단에 보이는
부조 조각들만이 대관식이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려줄 뿐입니다.
<나폴레옹의 대관식>은 세로 621cm, 가로 979cm의 거대한 크기를 자랑합니다.
이 작품의 규모가 이렇게 큰 것은 그림 속의 중요 인물들을
부각시키기 위한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대관식을 주관하는 사제들, 의자에 앉아 있는 교황,
프랑스 제국의 고관 대작들과 황실의 왕자들,
제국 군대의 대원수들이 모두 참석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 옆에는 나폴레옹 황실의 여인들이 있고,
제단 뒤에 있는 몇 명의 인물들 중 다비드 자신의 얼굴도 들어있습니다.
교묘하게 연출된 대관식을 통하여, 나폴레옹과 프랑스 제국의
역사적 운명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정치적인 성격뿐만 아니라 신성한 일면까지도
화폭에 담으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Bonaparte, Calm on a Fiery Steed, Crossing the Alps
Oil on canvas, 1801
102 1/4 x 87 inches (260 x 221 cm)
Mus? national du Ch?eau, Versailles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은 이상화 시킨 영웅의 초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실제 그의 모습은 키도 작고 그다지 볼품이 없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 그림에서 처럼 백마의 갈기를 휘날리며 군대와 함께
그 험한 알프스의 생 베르나르산을 넘지는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은 말이 아니라 노새를 타고 산을 넘었으며,
부대가 먼저 넘어가고 며칠뒤 따로 안전하게 넘어갔엇습니다.
따라서 이 초상화는 철저한 허구입니다.
다비드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영웅의 이상적인 이미지를
형상화 한 것일 뿐입니다.
이 그림은 예술이 정치적 선전수단으로 얼마나 대단한 기능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첫 사례이기도 합니다.
The Intervention of the Sabine Women
Oil on canvas, 1799
151 1/2 x 205 1/2 inches (385 x 522 cm)
Mus? du Louvre, Paris
이 작품의 배경은 고대 로마의 건국에 대한 전설입니다.
로마를 건국한 왕이 사비니의 여인들을 납치하고,
사비니의 군대가 로마로 쳐들어오지만 이 싸움을 말리는 사람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비니의 여인들입니다.
여인들은 사비니의 군대에 있는 아버지와 오빠를 향해 부부의 연을 맺고 있는
로마의 병사들과 다투지 말 것을 애원합니다.
이 비극적인 주제는 다비드가 프랑스 혁명을 통한
동족 상잔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The Lictors Returning to Brutus the Bodies of his Sons
Oil on canvas, 1789
127 1/8 x 166 1/8 inches (323 x 422 cm)
Mus? du Louvre, Paris
이 작품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던 해인 1789년에 그려진 작품입니다.
정치적 선동도구의 목적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혁명 정신으로 무장시키기 위한 계몽의 의도가 농후한 회화로 보여집니다.
브루투스는 타르퀸 왕의 부패를 뿌리뽑기 위해
로마에 공화정을 세웠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들들이 자신이 세운 공화국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이 그림은 브루투스의 관리들이 처형된 아들들의 시체를 가져오는 가운데
가족들이 슬퍼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자식들을 죽이라고 명한 비정한 아버지는 화면 왼쪽 그늘에 가려져 있습니다.
한 팔을 괸 채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모습은 죄의식에 괴로워하는
감정의 일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위의 <호라티우스의 맹세>와 여러 면에서 유사합니다.
고대 로마 풍의 건축양식, 주제가 펼쳐지는 왼쪽,
비탄에 잠긴 오른쪽의 여인들, 빛과 색채를 통한 인물과
사물의 입체감 있는 재현, 그리고 영웅주의의 찬양 등.
The Combat of Mars and Minerva
Oil on canvas, 1771
57 3/8 x 71 1/4 inches (146 x 181 cm)
Mus? du Petit Palais, Paris
이 그림 속 미네르바는 강한 여인상의 표본인 듯합니다.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는 자기를 연모하지만,
폭력과 유혈을 좋아하는 전쟁의 신 마르스에 맞서서 곧잘 싸웠다고 합니다.
Mars Disarmed by Venus and the Three Graces
Oil on canvas, 1824
121 1/4 x 103 1/8 inches (308 x 262 cm)
Mus?s Royaux des Beaux-Arts, Brussels
1814년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에서 실패하였으며,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동맹군들은 파리로 진격을 합니다.
이로 인한 나폴레옹의 실각은 추종무리들의 몰락을 불러왔습니다.
1816년 다비드도 브뤼셀로 망명을 하였으나
다시는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림에 대한 설명이 상세히 잘 되어 있어
"가람 가구학교 커뮤니티"에서 펌글하였읍니다.
Miracles - Paul Cardall
M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