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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기고싶은말 진실을 찾아서 역사속으로!>여양(未登譜)진씨
해송(海松) 陳玉洙 추천 2 조회 2,131 12.01.25 00:04 댓글 2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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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2.12.30 14:26

    첫댓글 이런 여양진씨이전의 진씨인물들 자료를 다 찾아내시다니 대단한 노력이십니다.전 진양을 진수로 잘못 표기한거이면 좋겠네요.그런데,신라고승 부설의 속성이 진씨,고려쵸 충주에서 반란을 일으킨 진선부자,나주진씨 시조 진영략장군등등 이분들 자료도 찾아봐야 될거 같읍니다.
    암튼,진씨가 중국에선 가장 흔한 성씨중 하나라서,귀화한 분들이 수없이 많을듯 싶읍니다.

  • 12.12.30 19:35

    전 사실 오래전부터,삼척진씨 시조 진경이분이 진씨선계중국편에 나오는 진경 이분이 아닌가 생각했읍니다.

  • 작성자 13.01.06 05:02

    중국편 진경과는 동명이인으로 보여집니다. 귀화설-송나라인 陳守는 귀화하지 않았으며, 陳養이 귀화하였습니다. 淸州帥 파진찬 陳瑄,宣長 형제는 일단 후손이 없는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유는 역모를 했기 때문이죠. 나주진씨 진영략 장군은 역사적으로 고증할 수 없고, 나주진씨 시조는 여양진씨 4세 陳溫 예빈경공이며, 貫祖는 예빈경공의 아드님이신 5세 陳就 양주목사공이십니다. 어느분이 시조공의 선계인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고려개국초 창부령:陳原, 삼척진씨 시조:陳鏡 개국공신:陳評이 있습니다. 고려조 역사에 기록된 진씨들은 대부분 외자 이름(諱)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 작성자 12.12.31 20:43

    송나라인 陳琇선계설이, 陳養 선계설이었다면....
    아버지, -조부에 해당합니다.

  • 12.12.31 22:39

    그건,진수-진양이 부자지간이라는 말씀이신가요?
    제가 폰이라서 한문이 안되는데,문맥상으로는 귀화하지 않은 진수분과 부자지간이라는 말씀같으신데,헤깔리는군요.

  • 작성자 13.01.01 00:58

    陳守-陳養이 父子之間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대종회에서 말하는 시조공 선계-陳琇說은 동래시기와 년대가 맞지를 않고,
    시조공 선계-陳養설이었다면 역사적으로 검토해 볼만하고,
    동래시기를 토대로 년대를 추정하면,
    아버지-조부항렬에 해당된다는 뜻입니다

  • 13.01.14 14:48

    숨어살았다.후손 총후 비로소 입사하여 이부문.즉,동래조에서 시조까지 한대이상이 더 계시다는것으로 해석가능하잖아요?
    근데,조정에 귀화하면,대체적으로 벼슬을 받는데,왜 숨어사셨
    냐 하는 부분과,시조님이 벼슬을 했으면,2세조께서 병졸에서 시작할수가 없는데,도대체 영문을 모르겠읍니다.진 숙이분이 중간에 탄핵을 받아 면직된 시기가 있는데,이때 병졸이었다면,
    그나마 납득이 조금될것 같읍니다

  • 작성자 13.01.14 19:36

    시조공 사적자체가 앞뒤가 맞지를 않습니다. 이자겸의 난을 토평하여 여양군이란 군호를 받았다하지만 사서에 기록이 없어 정체성 정립에 큰 모순점이 되지요. 지적하신 '공신의 아드님' 2세조-진준 선조는 고려사 진준편에 行伍-병졸에서 공을세워 여러번 승진 참지정사,판병부사에 올랐다."라고 적고있습니다. 음서제가 있으므로 공신의 자제라면 군역을 면제받을 수 있고 또한 바로 出仕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러하지 못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고려사 역시 조선초에 집필되었습니다. 문제가 되는 행오라는 표현이 집필자 사견이었을 가능성 또한 없지 않습니다. 무관 말직에서 시작하여 군최고위직까지 오른 인물

  • 작성자 13.01.14 19:36

    을 그렇게 표현했을 수 도 있지 않을까요? 고려의 역사는 조선이 개국되면서 상당부분 훼절되었다고 보여집니다. 나라의 역사가 그러한데 백성의 씨족사가 제대로 전해진다는것은 기대하기 어렵겠지요. 이 시점에서 어느것이 옳은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선조의 사적이 미흡하면 차선책으로 학자를 모시고 상대사를 연구하여 사적을 재구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전)연세대학교 교수 양권승 박사를 모시고 여양진씨 상대사를 연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양진씨 대종회에선 선조의 역사를 부정한다고 우리를 매도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 입니다.

  • 13.01.15 12:59

    그런데,귀화설이 사실이라면,고려사-진준편에 왜 진준은 귀화인의 후손이다 이런 내용이 없는것일까요? 당췌 이해가 되질 않읍니다.시조이후의 인물중에서 대동보에 없는 진씨들은 이름이 잘못 전해졌거나,북쪽에 살아서 등재가 안되었다고 생각해 볼수도 있읍니다.진씨대동보도 조선중후기에 와서야 비로소 만들어졌고,진홍주이분의 서문에 보면,분명히 남쪽에 사는 종인들이 통문하여 이대목이 나옵니다.즉,처음 대동보에 북쪽에 사셨던 진씨종인들은 빠졌읍니다.당시,교통도 안좋았고,전국의 진씨들을 전부 실는다는건 불가능했겠지요.글고,각 가문마다 가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귀화설이라거나 고려때의 벼슬을 조작했을
    가능성이있음.

  • 13.01.15 13:06

    진준은 전에 티비드라마-무인시대에 보니,정중부정권의 실세라고 적혀있더군요.근데,전 2세조이하 3세조 모두 무인에 병부상서면,충분히 경대승.이의민등같이 무신정권의 실권을 장악할 정도는 되지않았나 싶은데,뜻이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물론,실권을 잡았다면,나중에 누군가에게 멸족에 가까이 되었을지도 모르니,어찌보면 다행이지만요.

  • 작성자 13.01.15 14:17

    전기축보 수보책임자들을 살펴보면 전남지역(수보청소재지?)에 연고를둔, "예빈경계 정자공파,참의공파,목사공파 후손이며, 매호공후손인 진홍주님은 서문을 썼습니다. 교통수단,통신등 열악한 환경속에서 여양진씨의 최초족보가 만들어 지게됩니다. 지적하신데로 이북은 남한의 최남단 전남까지 오가기도 힘들었을 뿐만아니라 연락조차 하기 어려운 당시를 추정한다면 수보에 참여한다는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후 후기축보, 을축보, 기유보, 갑인보까지의 내용을 보면 누보된 후손이 보를 재록하면서 계속입보를 하게됩니다. 6.25동란으로 남북이 분단되면서 북한에 거주하는 후손은 자연스럽게 누보되게되지요.

  • 작성자 13.01.15 14:32

    2세조이하 3세조 모두 무인이라고 하는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3세조:진광순은 문과에 장원급제한 기록이 고려사에 실려전하며, 진광수 병부상서공의 사적은 동문선에 기록되었는데 사료를 살펴보면 내직인 낭중(정5품)문관직에 계시다가 안서(현 황해도 해주)대도호부사로 나가시어 선정을 베푼기록이 동문선 서하집에 실려있습니다. 5子로 계대된 진광현도 樞密副使로 전하는데 문신으로 보여집니다. 그렇다면 5형제중에 3분이 문신인데, "2~3세조 모두가 무신으로 정리된 지금까지의 여양진씨 씨족사에, "이런내용들이 본 필자가 동의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 13.01.15 17:32

    중간에 입보한 경우는 북쪽에 살았던 진씨들이거나,누락된 종인들.진씨로 편입된 경우(이 경우는 진씨가 조선에서는 한미했으니,크게 해당사항이 없다고 개인적으론 생각듭니다만)즉,6.25이전부터 북쪽의 진씨들은 누락되었고,이들이 처음이후의 족보에 다 입보했다고 생각되지는 않읍니다.일부만 입보되었겠지요.

  • 작성자 13.01.15 23:34

    남쪽 역시 누보된 후손이 있었을테고... 북쪽은 상대적으로 정도가 심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구한말과 일제치하에서 저녁 끓일 걱정을 해야할때 수단금마저도 큰 부담이었을것입니다. 정미, 임신보를 살펴보면 절손되었거나 입보하였다해도 휘자만 전해지는 계대가 부지기수이며, "북한/남한에 거주하는 일가들중에 단금을 내지못하여 선계를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었을것이란 추측이 듭니다. 조선의 수도는 한양(서울)이었고 전기축보를 비롯해서 6.25 이전의 5大譜 역시 남쪽에서 족보를 편수했으니, 북한은 지리적으로도 불리했을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생활의 형편도 남한보다는 궁핍했을것이고요.

  • 13.03.03 02:49

    동감입니다.
    임신보 수보할 당시에도 수단금을 입금치못해 입보를 하지못한 분들도 있고
    특히 무인보가 폐보로 인하여 이북쪽에 거주한분중 일부가 임신보에 누보가 된것으로 압니다.

  • 작성자 13.03.03 11:42

    여양진씨 대동(임신)보 의 사적과 계대는, 대수술을 해야합니다.
    부분적이지만 오류가 너무 심합니다.
    사적과 계대를 다시 정리하여 정체성을 확립하는일이 시급하며,
    또한 한글세대도 읽을 수 있는 국.한문 혼용의 족보가 절실한데,
    대종회는 관심이 없는것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 13.11.07 10:22

    잘 보고 갑니다
    대종회는 기대 하기는 어렵고
    진씨인물 자료 발취한 글을 읽어니 귀하에 노고에 감사드리며
    충분한 자료가 집계되면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아야

  • 작성자 13.11.07 11:02

    다녀가셨군요. 댓글 감사합니다.

  • 13.11.22 19:20

    공부할 게 너무너무 많습니다. 저 또한 대종회보다 더 자료가 많은 게 너무 좋습니다.

  • 작성자 13.11.23 04:30

    그렇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선조님에 대한 역사의 편린을 주어뫃으며 많은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 15.01.16 00:38

    우리 아부지 여양진씨의 역사를위해
    늘 공부하시고 낮과밤도 부족해
    새벽을지나 아침까지 끊임없이
    연구하시는 모습에 늘존경스럽습니다.
    이제는 책보시고 글쓰시는 일보다
    건강을 생각하시길 간절히 바라며...
    ㅡ광주수완지구아빠딸올림ㅡ

  • 작성자 15.01.16 00:41

    우리큰딸이 다녀갔네^^ 염려해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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