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2 아이들과 매주 책모임에서 처음 하는 활동은 감정카드 찾기이다. 오늘 하루 동안이나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나타내는 카드를 고르고 왜 그런지도 돌아가며 말한다. '(인라인 하고 바로 와서, 배우는 게 많아서) 힘들다. (친구가 이러이러해서) 짜증난다.' 는 매주 나오는 카드이다. 자랑스럽다거나 기대된다 또는 무슨 감정인지 몰라서 카드 뽑기 '곤란하다'도 종종 나온다. 매주 하다보니 아이마다 뽑는 패턴이 있어서 이번에는 이제껏 고르지 않았던 카드 중에 골라보자고 말해 볼 생각이다.
주일 저녁 아이들을 다 재우고 책상에 앉은 이후부터 글쓰기 학교가 있는 월요일 아침까지 나에게 카드를 뽑아 보라 한다면, 후회스럽다. 답답하다. 피곤하다. 세 장을 집어들 것이다. '아, 내가 매일 한시간씩은 책읽기로 했는데 이번 주도 못했네. 뭘 써야할지 난감하구나. 머리가 복잡해!! 피곤한데 잠을 미리 자 둘까? 머리 식힐 겸 이거 하나만 보자' 대략 이런 패턴의 반복이다. 그래도 주중에 조금 긴 일기글을 써 두었거나 생각의 건더기가 있었던 사건이 떠오르면 일단 타자를 치기 시작해 생활에세이 한 편을 완성하긴 한다. 열시 반 수업 시작 몇 분 전에 까페에 글을 업로드하는 그 스릴과 안도감이란!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다음에는 꼭 미리 올려야지, 다른 장르의 글을 써 봐야지 늘 다짐하며 글을 올린다)
아줌마의 일상도 바쁘다. 아이들 뒤치닥거리에 최소한의 가사일은 기본이다. 지난 주 아이들 없는 시간에는 세 개의 ZOOM모임에 수요예배, 이웃을 초청해 식사를 했다. 하교 시각 이후에는 더 바쁘다. 전시회와 미술관 교육에 아이들 데리고 다녀오고, 꿈꾸미 책모임에, 저녁 8시 밤놀이터 이벤트하고, 나를 위한 시간으로 연주회 다녀와 침대에 그대로 쓰러져 담날 아침 부활하듯 일어난다. 주말은 말해 뭣하겠는가, 그렇게 일주일이 후딱 지나갔다. 약간 변명을 해 본다. '그래, 이번 주는 좀 바빴어. 아이들이 행복했지 뭘. 내 할 일을 열심히 한거야' 그러면서 염려도 든다. '이런 삶이 이번 주 만일까? 아닌데, 적어도 여름방학 끝날 때까지는 계속 이럴 것 같은데?!'
갑자기 나보다 더 바빴을 것이 분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생각난다. 요즘 ZOOM독서모임에서 읽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 제일 처음 등장하는 로마의 황제이자 철학가이다. 마르쿠스는 직면하기 싫을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매일 아침 눈을 떴을 것이다. 호시탐탐 침입해 오는 야만인들과 역병과 반란들. 잠시도 긴장감을 내려놓을 수 없는 골치아프고 바쁜 일에 파묻혀서도 그는 온전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일들을 계속했다. 굳이 시간을 내어 고전을 읽고 삶의 난제를 고민했다. 한 발을 바닥에 딛고 다른 한 발을 내딛는다. 몸을 수직으로 일으킨다. 그렇게 흐르는대로 살고자 하는 중력을 박차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제 설교. 본문은 요한복음 15장. 그 중에서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리저리 바쁘다는 변명이 확실히 궁색해진다. 나는 '거하지' 않는다. 말씀 앞에 머물지 않는다. 책을 펴지 않는다. 멈춰 서서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시간이 많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속사람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는지가 시간 사용에 있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파랗게 물이 오를대로 올라 생명력 넘쳐 보이는 초여름 나무지만 들여다보면 죽은 가지가 있다고 했다. 생명이 흐르지 않은 가지가 있다고 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았다고 살아있는 건가? 글쓰기 학교 등록했다고 살아있는 건가?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거하기 위해, 살아있기 위해 활동을 줄이고 급한 것보다 중요한 것을 먼저 하는 가지치기. 매주 아쉬움을 남기는 후회는 오늘로 그만두고 실천으로 보이자. 다음주에는 '뿌듯하다' '보람차다' '기쁘다' 카드를 자신있게 들어보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