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성불사의 밤’이란 가곡 덕분에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절집 이름 가운데 하나가 ‘성불사’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절집 이름들이 그렇지만, 成佛寺 역시 고유명사라기보다는 일반명사에 가까우니 이 이름의 절집은 전국 곳곳에 엄청나게 많이 존재한다. 다만 문화유적을 품고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은데 나는 천안과 의정부, 그리고 단지 이름에 끌려 들어가 본 인천 계양구의 성불사만을 다녀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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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시 봉강면에 있는 성불사 역시 淵源은 깊지만 모두 허물어진 뒤 근래에 새로 세운 절집이다. 절집과 인근에 몇몇 석조문화재 파편이 있다는 것을 『한국의사지』를 통해 알게 되어 대상 목록에 넣었다. 막상 광양을 돌아다니다보니 성불사는 대표적인 절집 중 하나인 듯 곳곳에 표지판이 보이며, 절집이 위치한 성불계곡은 주요 피서지 가운데 하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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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불사는 백운산 도솔봉 아래 위치하며, 광양시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전남지역 유일한 용화종파 사찰이라고 한다. 원래 성불사는 천년 전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여 40여 개의 암자를 간직했던 거대 사찰이었다고 전해지나 소실되어 터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이곳에서 수행을 닦던 스님만 해도 40명이 넘게 있었고 사대부중(스님과 남여신도)의 수가 1천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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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많은 사대부중의 공양을 위해 성불계곡에는 12개의 물레방아가 설치되어 쉴 새 없이 방아를 찧었다고 한다. 지금은 거의 없어지고 말았지만 아직도 당시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절구통이 4개 정도가 성불사 앞 계곡에 현존하고 있어 당시의 상황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그러나 성불사 주변에는 터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 이러한 거찰이 어느 시기에 존재했으며 어떠한 연유로 소실되었는지에 대한 문헌적 보존 자료가 없어 아쉬움을 주고 있다.
빈터만 남아있던 곳을 1960년대 초가삼간으로 복원하였으나 폐사(閉寺)되었고, 현재의 사찰은 35여년 전 무현스님이 다시 중건하였다. 큰 법당인 대자보전(大慈寶殿)을 중심으로 좌우에 극락전과 관음전이 있고 양 옆에서 요사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사찰입구에는 사천왕이 수호하고 있는 범종각이 세워져 있고 범종각을 지나면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오층석탑이 웅장하게 치솟아 있으며, 범종각에는 무게가 1,870kg인 범종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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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문화유적총람에는 ‘성불사지(成佛寺址)’라는 이름으로 소개된다. 이 자료에서는 ‘사지의 원 사찰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고려시대라고 전한다.’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성불사지와 관련된다고 추정되는 ‘석조 3점이 있는데, 이들 석조의 형태는 원형과 장방형으로 원형의 석조는 비교적 대형이다’라고 쓰고 있다.
성불사로 오르는 길 중 응달 부분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아 조금 아래 차를 세우고 걸어간다. 일주문 옆에는 숙종 17년에 광양현감을 지낸 任後錫이 읊은 ‘백운산성불사’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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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曲淸溪半日尋(백곡청계반일심) 맑은 시내 돌고 돌아 반나절 찾았더니
白雲深處有鐘音(백운심처유종음) 흰구름 짙은 곳에 종소리 들려오네
爲民齊沐同儒釋(위민제목동유석) 백성 위한 목욕재계는 儒佛이 한가지라
天地神靈共昭臨(천지신령공소림) 천지신명도 굽어보시리
조금 걸어 올라가면 새로 세운 일주문이 보이고, 입구 좌측 탑비전에는 사적비와 중건공덕비, 새로운 부도 등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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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계단 위에 자리한 천왕문을 통해 경내로 진입한다. 『한국의사지』에는 돌확 4기의 위치를 대웅전 마당, 범종루 계단 우측부 2기 등으로 기록하고 있고, 모두 문지도리석으로 추정한다. ‘문지도리 (門---)’란 문짝을 여닫을 때 문짝이 달려 있게 하는 물건으로 돌쩌귀나 문장부 따위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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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왕문 진입 전 가운데를 메운 듯한 돌부재, 범종루 옆 돌확, 대웅전 옆 돌절구 등을 보았을 뿐이다. 확실치는 않지만 천왕문 진입 전, 범종루 옆에서 본 것들은 한국의 사지에 나와 있는 것과 동일한 석조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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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측에서 사명과 시주자 명문이 있는 와편을 보존하고 있으며, 기존 조사에 의하면 이 와편은 고려시대로 편년된다고 한다. 새 절집이라 굳이 법당 안을 들여다보지는 않았지만 풍광도 좋고, 특히 내가 좋아하는 풍경의 댕그랑거리는 소리만 마음을 평안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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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불사를 찾은 것은 승탑부재를 찾아보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시도해보기로 했다. 『한국의사지』에 따르면 ‘현 성불사주차장에서 계곡부 건너편 약 100m 지점에 조성된 민묘(산 166번지)에’ 승탑재가 남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일단 주차장 인근에서는 계곡을 건널 수 있는 곳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승탑부재는 그나마 묘역에 있다는 정보가 있었으므로 찾을 수 있는 확률이 높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스마트폰을 열어 위성사진을 보니 주차장보다는 조금 아래쪽 계곡 건너에 민묘가 있는 것이 확인된다. 계곡 하류방면으로 이동하면서 계곡을 건널 곳을 찾다보니 이 지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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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건너편을 바라보니 계곡에서 오를 수 있는 곳도 있는 것 같아 계곡을 건너기로 한다. 계곡을 건너 희미한 산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우측에 묘소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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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민묘 진입 계단 디딤돌에 연화형 석재가 남아 있다. 마멸이 심한 상태이지만 전체적인 형태로 보아 앙련문의 상대석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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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경 58, 높이 28cm 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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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묘 석축 오른쪽 끄트머리에는 8각 옥개석이 있다. 너비 108, 높이 40cm 정도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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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림마루가 표현되어 있으나 처마선과 옥개받침, 낙수면은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상단에는 38cm 규모의 상륜괴임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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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 봉분 사이에 있는 부재는 지대석으로 보고 있다. 규모는 115*105cm 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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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면에 1단의 굄이 흐릿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가운데 패여 있다.. 전체 추정부재에 비해 4분의 1 크기 정도이지만 원위치로 판단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곳에 석등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며, 아마도 그럼 이쪽이 원래의 절터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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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설명문 출처: 광양시청, 한국의사지, 전국문화유적총람]
첫댓글 동선에 넣고도 일정에 밀려 건너 뛰었던 님. 놓쳤던 님들도 있고.다시 도모해야겠지예.
항상 시간의 구속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 아쉬움은 남겠지요.
어쩌면 그렇기에 시간을 쪼개 만난 님들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백성을 위함에는 유불이 한 가지라 했거늘.....
천안 성불사가 제법 이름이 나 있더군요 ^^
네, 천안성불사에는 문화재가 여럿 있지요?
생각보다 골짜기가 깊어서 놀랐던 기억....
태백산백의 무대인 백운산 자락이 이렇게 깊어서, 빨치산 활동이 가능했구나 생각했었습니다
네, 한참을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이 망설였죠. 승탑부재 보러 이렇게 깊게 들어가야 하나... 하고요.